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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준화: 단순계 사고의 결과

평준화 개념은 ‘단순계’ 사고의 결과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평준 화정책의 의도와 명분은 물론 시행과정과 결과 등 일체의 드러나는 현상들이 단순계 사고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우선 평준화정책의 거 창한 명분인 평등교육 논의가 식상할 대로 식상한 ‘평등’ 대 ‘수월성’ 과 같이 단순계적 사고에 의한 부당한 이분법에 의존하고 있다. 평 준화 문제를 ‘평등’ 실현으로 보는 시각은 그릇된 것일 뿐만 아니라 단순계적 사고에 입각한 것이다. 여기서 단순계적 사고란 ‘평등’이란 미명 아래 모든 것을 동일하게 교정(즉 강제)하려는 시도를 가리키기 도 한다. 정작 도입 당시에 ‘평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보 면 동일화 대상을 삼는 이 정책 자체의 문제와 함께 모든 것을 동일 화하려는 시도가 국가개입을 불러오고, 사회공학적 계획에 의한 폐 해와 여러 가지 오류를 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평준화정책이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은 곧 복잡계의 특징을 빌리지 않고는 온전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모두 단순계 사고에 의존한 결과에 기인한다. 여기서는 복잡계 상황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현상들을 단순계의 해법으로 합리화 하려는 평준화의 오류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이를 토대로 하여 평 준화정책이 야기하는 통계의 오류를 비롯한 각종 폐해, 이를테면 불 평등 해소의 실패, 사립학교의 학생선발권 박탈문제, 학생들의 학교 선택권 박탈문제, 내신제의 부당한 추진, 3불(不)정책과 고교등급제 금지 등이 지니는 폐해, 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인한 천문학적인

규모의 정부 보조금 지급에 따른 재정 손실 및 지대추구의 양상(제 Ⅳ 장 제3절), 공진효과(제Ⅵ장 제2절) 등과 같은 문제점들을 이어지는 장 들에서 검토될 것이다.

비선형, 카오스, 프랙탈, 복잡적응계, 네트워크 과학 등을 망라하 는 분야를 지칭하는 복잡계는 인지과학, 인공지능, 신경과학, 뇌과 학, 진화론, 성 선택 이론, 정보기술, 생명공학, 나노, 환경, 바이오 등 걸쳐져 있지 않은 분야가 없고, 경제학과 관련하여 복잡계 경제 학(complexity economics)도 있다. 그러나 정작 교육학 분야에서 이러 한 접근은 매우 생소한 것이다. 이 말은 평준화정책을 비롯하여 교 육학에서 설명하는 대부분의 이론이 단순계를 전제하고 있다는 것 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교육을 설명하는 기제가 단순계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은 곳곳에 서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교수-학습의 결과를 선형적인 것으 로 보는 모형이나, 스키너(B. F. Skinner)의 행동주의에 입각한 행동수 정이론 등이 교육에 도입된 것은 모두 단순계를 전제한 예이다. 이 러한 단순계 사고를 바탕으로 교육학에서 널리 사용되는 조작적 정 의(operational definition)는 설상가상으로 교육의 국가통제의 수단으로 볼 개념 기제를 제공한다. 즉 정범모의 ‘교육’의 조작적 정의, “인간 행동의 계획적(의도적) 변화”62)는 좌파들이 인간을 마음대로 개조할 수 있다는 ‘오만’으로 잘못 해석하기도 한다. 앞서 검토한 바 있는

‘사회공학적 계획’ 또는 ‘거대 공학 계획(Grand Engineering Project)’에 의하여 개조할 수 있다는 그릇된 신념으로 오용되고 있다. ‘거대 공 학 계획’의 논점은 인간의 삶이 복잡계의 양상을 띤다는 사실을 묵

62) 정범모 , 󰡔교육과 교 육학󰡕, 서울: 배영 사, 1976.

과한 채, 단순계의 논리로 해석하고 집행한 결과로 드러난 폐해에 있다.

물론 여기서 언급하는 ‘교육’의 조작적 정의처럼 행동과학적 실증 주의가 1960년대 이후 교육의 과학화에 기여했고, 우리나라 교육학 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수준으로 격상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해 온 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점은 조 작적 정의에 의하여 정의된 “인간 행동의 계획적 변화”라는 것이 당 초 이데올로기 중립적이었던 것이 좌파들에 의하여 “사회공학적 계 획”의 일환으로 전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에 의하여 인간은 개 조될 수 있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정의 방식’이 국 가통제와 적극적인 개입에 의하여 ‘조작’될 수 있다는 전체주의적 발 상에 전용된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선 단순계 사고의 전형은 자율과 선택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획일주의, 단순분배(1/n 사고), 동일결과의 평등과 같은 오류를 범하 는 평준화정책의 요소들이다. 여기서는 1/n 사고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평준화정책이 1/n 사고의 결과 폐해를 낳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것을 1/n으로 나누어 보 면, 같은 학군 내에서 학력이나 우수 대학 진학실적이 학생 수 대비 로 나타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평준화 찬성론자들의 논거 는 자신들의(학생들의 관점이 아 닌)관점에서 이른바 ‘1/n’ 논리에 따라 학생들의 학력이나 우수대학 진학자 수가 결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결정’되지도 않으며, 자신들의 주장하는 바와 반대로 나타나 가난한 학생들의 성취 기회를 근본적으로, 원천적으로 박탈 하고 있다. 이는 제Ⅳ장 제2절에 제시된 서울의 자치구별 서울대 진 학자 수와 서울대 진학자를 많이 낸 고등학교 명단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 평준화정책의 오류를 확인하게 하는 복잡계의 특징은 무 엇인가? 단순계는 시스템을 지배하는 법칙이 존재하고 그것을 통해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결정론적 시스템’이라 고 한다면, 복잡계는 초기 조건에 매우 민감하다는 특징과 함께 비 록 법칙이 존재하긴 하지만 무한의 법칙이 지배하여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한 ‘카오스 시스템’으로 대비된다. ‘카오스’로 설명되는 복잡계 는 결정론적인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통계와 확률로밖에 기술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물론 교육문제를 모두 복잡계 설명 방식인

‘카오스’ 시스템으로 접근하자는 것이 아니다. 단순계 사고의 일종인 결정론적 사고가 인위적인 개입과 통제 수단을 강구하기 때문에 다 양한 교육욕구를 설명하거나 충족시킬 온당한 방안을 찾지 못한다 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시스템인 평준화정 책이 아니라 자생적 질서로 교육문제를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를 위하여 ‘시장’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좋은 예가 된다.

2008년에 일어난 미국의 파생금융상품에 따른 금융위기의 경우도 복잡계로 이해해야 할 시장을 단순계 사고에 의하여 작동하는 정부 의 개입과 간섭으로 인하여 야기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에 관 하여 하나의 예를 들자면 안재욱의 최근 발표63)를 들 수 있다. 이 발표 내용을 여기서 다시 거론하는 것은 필자의 능력 밖의 일이지 만, 그 요지를 나름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시장 자체가 복잡계 현상이다. 둘째, 정부의 대책은 대부분 대증요법적인 수단을 강구한다. 그리고 정부의 대증요법적 수단은

63) 안재욱, 「파생금융상품과 금융위기」, 󰡔제7회 하이에크소사이어티초정포럼 발표집󰡕, 2009, pp.15-26.

단순계적 사고의 산물로서, 그 대표적인 강구책이 규제이다. 더욱이 규제는 매번 사후적인 것이어서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셋째, 근본대책은 복잡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특히 복잡계인 시장의 특성 을 인정하는 일이며, 시장을 신뢰하는 일이 요구된다. 이와 함께 자 생적인 질서가 회복되도록 개입이나 규제(사후처방)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경제 주체의 자율성을 존중한다. 여기서 핵심은 규제 가 사후책이고, 사후책은 복잡계의 특성상 예기치 못한 다른 문제를 불러온다는 점이다. 예기치 못한 상태에서 야기된 이번 금융위기 사 태의 경우, 파생금융상품을 구제하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는 경우 가 이에 해당한다.

이를 평준화에 그대로 똑같이 대입할 수 있다. 평준화는 복잡한 상황 또는 개입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즉 default state)에서 정부가 깊 숙이 개입을 한 대표적인 정책이다. 평준화는 ‘평등’ 이라는 미명 아 래 ‘교육조건을 동등하게 만든다.’는 대전제를 가지고 ‘거대 공학 계 획’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생적 질서를 무시하고 인위 적인 조치를 강구함으로써 예기치 않은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대 표적인 것이 사립학교에 지급하는 ‘재정결함보조금’이다. 이 돈은 연 간 약 2조 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명분은 평준화 지역의 사립고등학교를 시설, 재정 등의 교육 여건에서 국・공립 고등학교와 똑같이 만든다는 데 있다. 그러나 결과는 사학의 의존도 심화이다.

평준화정책이 단순계 사고의 결정판이라고 하는 것은 제Ⅲ장 제1 절에서 살펴볼 도입 당시 다음과 같은 명분에서도 찾을 수 있다.

∙고등학교 입시경쟁의 완화로 인한 중학교 교육의 정상화

∙학교 간 교육 격차 해소

∙중학생 과열 과외 해소로 인한 사교육비 경감

∙서민층의 교육기회 확대

∙대도시 인구 집중 억제

위의 명분은 대개 피상적 또는 표층적인 측면에서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이 문제는 뒤의 제Ⅵ장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어느 것 하 나 해결된 것 없이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다. 이를테면, 평준화 지역 인 대도시에서 평준화정책이 다양한 교육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므 로 학교성적과 대학입시에 관심이 쏠리는 ‘쏠림현상’이 나타나고, 그 결과 사교육 과열로 인하여 중학교 교육이 비정상적으로 흐르는 악 순환이 일어난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또 학교 간, 지역 간의 교육격차 해소도 실패하였다. 제Ⅳ장 제2 절에서 학군 간의 격차가 심하다는 것을 확인할 것이다. 학군 간의 격차는 학부모의 거주여건, 즉 경제적 여건이 아이들의 학력을 결정 한다는 의미이다.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은 서민층 자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평준화 찬성론자들이 들고 나오는 것 이 “평준화 효과”라는 주장이다. 제Ⅳ장 제6절에서 자세히 살펴볼 평준화의 합리화를 위한 언필칭, ‘평준화 효과’ 연구는 단순 평균의 비교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단순 사고의 단 순 비교가 낳은 평준화정책의 연장에 학교 간의 차이를 전혀 인정 하지 않는 내신제 반영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제Ⅳ장에서 보 다 심층적으로 소개하겠지만, 여기서는 두 가지만 다시 지적하고자 한다.

하나는 평준화 지역의 학력 평균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다. 왜냐하면 평준화 지역의 상당한 지역은 대도시이고, 대도시는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중소도시나 농어촌 지역보다 앞서 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