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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구한말)의 영어교육

문서에서 1. 서 론 (페이지 11-14)

2.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역사적 고찰

2.2. 초창기(구한말)의 영어교육

우리 나라의 근대교육 초창기인 구한말 영어교육은 교육목표가 정립되지 않았고 관립 영어학교들은 통역관 양성 또는 양반계급이나 관료 등 일부 특권계층을 대상으로 제도적인 뒷받침이 부족한 채 도구적 동기에 의한 영어 교육을 하였다. 반면에 미국인 선교사들이 개신교의 선교와 국민의 개화를 위해 설립한 사립학교들은 한 명 또는 수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수하기 시작하였다. 선교사들의 주관심사는 영어교육이 아니었고 더구나 국가적으로 불운한 시기였다는 등의 부정적인 요인들이 있었으나 초창기의 관립과 사립학교에서의 영어교육은 제도적, 교수방법적으로 몇 가지 특징 을 갖는다.

구한말의 영어교육기관은 제도적으로 특별목적을 위한 영어를 교수하였 다. 관립학교인 동문학, 육영공원, 영어학교 등의 설립 목적은 통역관, 외국 파견 요원의 양성으로 외국어 훈련원의 성격과 기능을 갖는다. 일부 사립 학교에서 선교사들에게 영어를 배우려는 학생들도 그와 비슷한 특별한 목 적으로 영어를 배우고 자란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새 사회에 적응력 이 없는 양반 고관의 자제들만 입학한 관립 영어학교를 통해 새 문화를 받 아들이기가 힘들었고, 학습자의 필요나 흥미보다는 국가적 필요에 의한 근 대적 의미의 특별목적 영어교수였기 때문에 학습자들은 도구적 학습동기에 서 출발한 경우가 많아 흥미와 의욕을 쉽게 잃어버렸다.

그러나 관립과 육영공원, 영어학교 및 선교사가 직접 가르치는 사립학교 에서는 설립 당시 교육과정의 조직과 내용면에서 모든 교과를 통하여, 다 시말해 영어 뿐 아니라 다른 교과들의 교수언어가 모두 영어였다는 점에서

근대식 집중훈련학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화학당의 초기 졸업생 김룻세 (1888-1897)씨7)의 회고에 의하면 “처음 학교에 들어오니까 소꿉질을 하게 하고 주기도문 또는 찬송가를 영어로 가르쳐 주고 차츰 선생이 늘고 여러 가지 과목이 늘어갔으며 모든 것은 처음부터 통역도 쓰지 않고 선교사들이 대뜸 영어로 모두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이는 모든 교과의 교수용어가 영어라고 볼 수 있으며 영어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교과를 가르 치는데 목적이 있었지만 각 교과는 영어학습 경험의 일부가 되었다. 또한 구한말 영미인 선교사들의 영어교수법은 직접 교수법이 주종을 이루었음을 다음과 같은 Gilmore의 기록8)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Thirty-five were named as our first class, of whom thirty began attendance on the exercises. We found that not one of them knew a word of English, so that we had to begin with alphabet. Three interpreters were attached to the school, one for each of the teachers. These were found useful at first, though we could soon have dispensed with their services.

즉, 육영공원에서 처음에는 통역이 필요했지만 직접 교수법에 대한 확신 을 갖고 영어를 교수하였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배재학당의 경우도 한문, 역사, 교리문답 외의 과목은 ‘영어로 교수했으 니 배우려는 학생들 자신도 어서 영어를 배워서 정계(政界)에 출세하려는 욕망이 컸기 때문에 못 알아듣는 영어이지만 선생들의 손짓, 발짓을 보고 애쓰며 한 일년을 지나면 알아들을 수가 있었고 얼마 안 지나서 쉬운 말을 할 수가 있었다’(백남준)는 말로 보아 영어사용 원주민에 의해 직접 교수법

7) 김룻세(1888-1987), 초기의 졸업생이며 그의 회고담이「이화 80년사」에 수록되 어 있다.

8) 배두본(2000), 영어 교육학, 한신 문화사, p.124에서 재인용

을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구한말의 영어교육은 관직, 의료, 기타 특별한 목적을 위해 시 작되었지만 선교사들과 뜻 있는 이들의 적극적인 활동과 교육 의욕으로 사 학기관을 설립하여 영어교과뿐 아니라 기타 교과목도 영어로 수업을 하였 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인정되며 외국인 선교사들의 영어교육을 위한 봉사 정신과 공헌은 높이 평가할 수 있다.9)

9) 박원, 앞의 책, p.125 이 계몽기에 선교계 학교가 없고 옛 사상이 내포된 세속 적인 관주도형 학교와, 교육이념이 빈곤한 몇 개의 민간 사립만이 존립했다면 참 교육에 대한 국민 계몽이 훨씬 더 늦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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