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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자동차 강대국이 되려면?

문서에서 R&D 성공실패사례 에세이 (페이지 33-39)

진정한 자동차 강대국이 되려면?

ReSEAT 전문연구위원 김종필

는 한국과 독일의 엔진 생산회사의 실험실에서 일했던 경력 으로 1979년 12월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에 입소하였다. 내 가 서독의 M·A·N(세계 최초의 디젤엔진 제작 업체)에 취업하기 위해 독일로 간 1971년도만 해도 우리나라는 일본이나 미국의 자동 차회사에서 부품을 수입해 생산하던 시대였다. 우리나라 고속도로 1호인 경부고속도로가 준공된 것이 1970년도였으니 당시 우리나 라 자동차산업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연구소에 들어갈 때만 해도 자동차를 가지고 있던 연구원이 많지 않았는데, 경제성장과 더불어 고액봉급자가 증가하면서 마이카 붐이 일어났 다. 그 추세는 중산층까지 확대되어 1985년 5월경 우리나라 자동 차 보유대수는 100만대를 넘어섰다. 나도 차를 한 대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구입한 첫차는 현대의 엑셀이었다.

진정한 자동차 강대국이 되려면? 31 횟수, 정지 횟수 및 시간, 주행속도 등 하나라도 빼먹지 않고 데이터를 수집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서울시의 복잡한 시내구간과 시 외곽 등 정해진 노선을 수차례 반복 주행하면서 주행상태를 페이퍼 레코드와 카세트 레코더에 저장하기로 했다.

우선,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주행모드를 개발하기 위해 각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연비측정모드의 특성을 분석했다. 그리고 서울시 승용차의 주행패턴을 조사하기 위해 서울 시내 주요노선과 주행시간대를 정해 놓고 수차례 주행을 반복해야 했다. 일반자동차에는 없는 속도 측정 장치를 트렁크 뒤에 달고 다녔는데 교통단속차량으로 오인 받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뿐만 아니라 어떤 날은 교통경찰의 속도위반 단속으로 실험을 망치는 일도 있었다.

연구팀은 정해진 노선을 정해진 시간에 맞춰 주행해야 되기 때문에 실험 도중에 쉴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숙소가 가까우면 숙소에 갈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길거리나 차 안, 혹은 다방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에 수상하다는 오해도 많이 받았다. 그렇지만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정확한 데이터를 얻기 위해 사고위험까지 감수 하며 정말 성실하게 실험에 임했다. 그리고 주행 데이터를 분석하기 위해,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386컴퓨터를 사용했다. 이 또한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소요되어 우리는 매일 야근을 해야 했다. 하루에 보통 10시간 이상을 자동차와 보내며 어떤 역경 속에서도 대가 없이 실험을 마칠 수 있었던 그때를 회상하면 정말 젊음이 아니면 할 수 없던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구에 참여해 함께 고생했던 연구원들의 노력에

대해서도 고맙게 생각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개발된 모드를 시가지 주행연비 측정모드로 최종 확정지었다. 본 연구팀은 이 모드를 Seoul-14Mode로 명명하였다.

지금까지의 실험을 종합해 본 결과, Seoul-14Mode의 총 주행거리는 11.94km, 평균주행속도 30.1km/h, 총 주행시간은 1,427초로 나타 났다.

우리는 이 주행모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대도시의 환경오염문제 및 에너지소비 증가 등의 난제를 풀어나가는데 한 몫을 하리라는 큰 기대를 가졌다. 국내 자동차산업의 발전에도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또한 적은 연구비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선진국에 전혀 뒤지지 않는 좋은 연구결과를 도출하였다는 자부심을 갖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생각했다. 당시 산업자원부에서도 우리의 연구결과를 매우 좋게 평가하였지만 실제 정책에 채용하는 데는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끝내 우리의 연구결과는 자료로만 남게 되었다.

그 이유는 자동차를 제조할 때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Seoul-14 모드로, 수출하기 위해서는 CVS-753) 모드로 배기배출물 및 공인 연비 측정시험을 거쳐야 하는 복잡한 절차와 비용문제가 있었기 때문 이다. 그래서 국내 자동차업체는 Seoul-14 모드의 사용을 회피하였다.

3) CVS-75(Constant Volume Sampling)는 1975년 미국 LA 시내 주행 상황을 기준으로 만든 주행모드로 총 주행거리 17.85km, 소요시간 42.3분(공회전 18%), 최고속도 91.2km/h, 정지 횟수 23회, 평균속도 34.1km/h로 되어 있는 배기가스측정모드임.

진정한 자동차 강대국이 되려면? 33 무엇보다도 CVS-75 모드와 Seoul-14 모드의 평균주행속도는 약 4km/h 정도 차이가 났었는데, 업계에서는 표면상으로 공인연비가 낮게 표시되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 또한 산업자원부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위상을 고려하여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1987년 7월 이후부터 2011년까지 공인연비 측정모드로 사용한 CVS-75 모드는 실주행연비와 공인연비가 약 20% 이상 차이 난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해당 모드는 우리나라의 교통상황과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서 2012년부터 현재까지 CVS-75 모드에 고속도로주행모드를 추가한 복합주행연비를 공인연비 측정모드로 사용하였다. 그 결과, 실제 주행연비에 가까운 연비정보가 소비자들에게 제공되는 것은 다행이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연비측정 방식이라고는 할 수 없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나라의 자동차산업이 급속하게 발전하게 된 이유는 자동차회사의 끊임없는 노력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국민들의 애국심으로 국산차를 더 적극적으로 구매한 결과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수출로 해외시장을 개척하고자 하는 자동차회사를 배려하는 것도 좋지만, 국산차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을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하루빨리 우리나라의 교통흐름을 반영한 진짜 국내의 연비 정보가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개발 당시와 지금은 교통상황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바뀌어 그대로 사용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현 시점에 맞게 업데이트 하는 일은 큰 문제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가 자동차 생산대수가 세계 5위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에 판매되는 차량은 물론 수입하는 차량들도 당연히 우리 나라의 주행특성을 반영한 주행모드로 공인연비를 측정해 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국내외 소비자들에게도 공인주행연비가 실 주행연비에 가깝다는 신뢰회복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느덧 4차 산업의 시대에 살고 있고 그 중심에 자동차가 있다. 우리가 자동차주행모드를 개발할 때만 해도 우리나라의 자동차 산업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큰 성장을 이루리라 예측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급변하는 자동차산업 속에서 자율주행 자동차라는 또 다른 미래가 현실화 되고 있는 요즘 시대에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또 다시 외국의 정책이 국내에 뿌리 내리기 전에, 우리만의 기준을 굳건히 확립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엄연히 자동차 강대국 아닌가! 언제까지 남의 나라에서 만든 잣대를 기준으로 삼을 순 없는 일이다. 세계 1위의 반도체와 휴대전화를 생산하는 대한민국의 위상에 자동차분야 세계 1위의 꿈이 더해지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문서에서 R&D 성공실패사례 에세이 (페이지 3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