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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 사업이 실패하는 과정에 대하여

문서에서 R&D 성공실패사례 에세이 (페이지 54-61)

국가적 사업이 실패하는 과정에 대하여

ReSEAT 전문연구위원 오성남

리나라는 수자원이 극히 한정되어 있는 나라이다. 특히 인 구가 증가하고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올라감에 따라 물의 사용이 급격히 높아가고 있다. 반면에 수자원 공급은 안정적이지 못하여 근래 년 강수량이 증가하였음에도 들쑥날쑥 장마는 오히려 주기성을 잃고 가뭄은 지역적으로 심각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1995년 극심한 가뭄을 겪은 정부는 이듬해 수자원 확보를 위하여 기상청을 중심으로 인공강우 개발 연구전담반을 구성했다. 인공 강우에 대한 경험과 장비가 없었던 당시, 기상연구소 전담반은 동해안 지역 소백산 언저리에서 인공 강우 지상 실험을 한동안 실시하였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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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기상청은 또 다른 사업으로 상층 대기의 기상 관측 정보를 수직하기 위해 자체 항공기를 보유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상층 기상 관측은 일기예보 컴퓨터를 운영하고 예보 정확도를 향상시키는데 매우 중요한 정보다. 기상청이 상층기상관측을 위하여 항공기를 보유 하고자 하는 이유는 미국 NASA가 매년 서태평양지역 대기의 미세먼지 측정을 위해 C-130항공기를 운영하는 것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상층 기상 상태와 대기 질 관측, 인공강우 실험을 위해서는 항공기를 보유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2014년 기상청은 미국 Beachcraft사의 KingAir- 350HW 중형항공기 도입을 위한 예산을 확보했고, 항공기 도입 대행 업체로 렌트카 회사가 선정되었다. 기상 업무나 항공기와 전혀 관련없는 자동차 임대 업체가 지인의 힘을 빌려 사업을 맡게 된 것이다.

다음 해 봄, 한통의 전화가 나에게 왔다. 내가 우리나라의 구름 물리 인공 강우 전문가이고 기상항공기 도입 기획연구를 수행한 경험이 있으니, 곧 도입될 기상항공기 운용을 위해 본부장직을 맡아 달라는 연락이었다. 항공기 위탁운용회사로 지정된 KBAS항공기 운영업체 사장으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은 나는, 인공 강우를 성공시키고자 했던 꿈을 위해 좋은 기회라 생각하였다. 마침 평소 가뭄 문제를 인공 강우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구름 입자는 작은 응결핵을 중심으로 수증기가 응결하거나 빙결하여 형성되는, 반지름이 10㎛ 내외의 작은 수적 또는 빙정의 집합체로서 구름 속에서 부력을 받는 입자이다. 일반적으로 강수입자는 1,000㎛ 정도로서 수증기 직경의 100배가 된다. 따라서 하나의 강수입자가 형성되려면 약 100만개의 구름입자가 뭉쳐져야 한다. 이를 위하여 구름 속에서

국가적 사업이 실패하는 과정에 대하여 53 수많은 응결과 충돌 병합이 발생해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구름 입자를 필요로 한다.

영하의 차가운 구름에 요오드화은(AgI)과 요오드화납(PbI)을 연소시켜 응결빙정핵을 뿌려 줌으로서 많은 구름입자를 만들어 준다. 이 입자가 0.1~1μm 크기일 때 빙정핵으로써 작용하기 때문이다. 요오드화납과는 달리 요오드화은(AgI)은 인체와 환경에 무해하기 때문에 구름 시딩 재료로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영상의 따뜻한 구름에는 흡습성 물질인 고체염소(Cl)를 태워 발생된 0.1~1μm 크기의 응결핵을 구름 속에 뿌려주면, 이들이 구름 속 수분을 흡수하여 수적을 형성한다. 이 방법이 우리나라의 대부분 계절에 사용되는 인공 강우 구름 시딩이다.

김포공항에 도착할 기상청 기상 항공기는 KingAir-350HW로 미국에서 2015년에 개발한 최신 항공기다. 이 말은 즉, 우리나라에 KingAir- 350HW의 운항 실적이 전무한 상태고 항공 안전을 입증할 만한 경험과 경력이 없다는 뜻이다. 항공기 이착륙 시 공항의 시정 조건에 따라 항공기 비행을 결정할 CAT-2 항공검증자료조차도 없다. 그런데 기상 관측과 인공 강우 장비 장착을 위해 항공기 개조를 해야만 했다. 이 항공기 개조는 운항 안전과 관련되어 있어 기준이 매우 엄격한데다 미국연방항공청(FAA)로부터 운항 승인을 받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

FAA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항공기 운항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런 문제가 있다는 걸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 기상청 담당 공무원은 항공기의 활용만 강조했다.

항공기를 왜 도입해야 하는 지만 강조하다 보니, 측정 범위를 무한정 으로 확대해 전혀 관련도 없는 다른 부처에 다목적기상항공기의 활용을 독려하게 되었다. 그 결과 상층기상관측 외에 대기온실가스, 미세먼지 측정, 방사능 탐지, 해양풍 및 해수면온도, 태풍관측 그리고 인공강우 실험 등 무려 20여 가지 이상의 측정 장비와 자료수집시스템을 탑재 하게 되었다. 항공기 기상측정에 보통 2-3가지 측정요소로 한정하고 있는 선진국과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이에 엄격한 FAA의 승인 과정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고 도입 업체와 계약한 항공기의 국내 도입 일정은 기약 없이 뒤로 미루어졌다. 다급해진 기상청은 도입 업체를 압박했고, 그 해 12월 FAA의 승인도 없이 항공기를 김포공항에 강제 도착시켰다. 그러나 항공기는 일주일 만에 미국으로 되돌아갔다. FAA의 감항 증명도 없는 항공기를 국토교통부에서 운항 승인을 내어줄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항공기 도입 업체는 항공기 기상 장비 설치를 맡은 미국 콜로라도 SPEC사와의 계약을 파기하고 North Dakoda주에 있는 Weather Modification Inc.,(WMI)사로 옮기게 되었다. 그러나 WMI사의 장비 장착과 검증, FAA의 STC 감항 증명을 무한정 기다려야 하였다.

기상청 담당자와 항공기 도입 공정 도입반, KBAS 직원들은 항공기 견학과 실사를 위해 자주 WMI사를 방문했지만 2년이 지나도록 항공기는 국내에 도착하지 않았다. 항공기를 도입하기로 계약한 업체는 도입 지체 상환금으로 항공기 자체 매매 금액 90억 원의 2배인 180억 원을 납부해야만 했다. 국고 낭비와 인력 그리고 기술적 운영 손실은 도입 계획 초기 담당 공무원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기상 항공기

국가적 사업이 실패하는 과정에 대하여 55 운영 본부장이었던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측정 기상 항목을 줄여 내가 직접 미국 WMI사에 가서 상황을 살펴 볼 것을 여러 차례 건의했다. 하지만 본부장은 자리만 지키고 있으라는 회답만 되돌아올 뿐이었고 항공기 제작 및 기상 장비 제작 회사와의 면담조차 차단 되었다. 이유는 한 가지였다. 기상 분야와 장비를 잘 아는 사람이 이것 저것 따지면 행정상 복잡해지고 담당 공무원이 불편해 진다는 이유이다.

다목적 기상 항공기 도입 지연이 되면서 가장 뼈아픈 사건이 생겼다.

2017년 봄, 대 가뭄 때문에 경기도 및 충청도 지역의 농작물이 타 들어 가고 식수 보급마저 어려워졌다. 다목적 기상 항공기를 이용한 인공 강우를 사용했다면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국가 재난을 대비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였던 최신 항공기 도입이 2년 이나 지체돼 모두가 허송세월을 보냈지만, 누구 하나 이 문제를 다시 되짚어보는 일 없이 행정 상 문제가 없기만 바랄 뿐이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우리나라의 기상 상태는 미국이나 중국과 비교해 편서풍의 유속이 빠른 편이다. 이런 경우는 소형 항공기를 이용해 하천의 저수지나 하천 유역의 산맥에 구림이 걸릴 때마다 구름 시딩을 사용하는 인공 강우 방법을 사용해야 했다. 다목적 기상 항공기인 King-ir350HW는 측정 고도나 최대 항공 거리, 상승률, 항공기 회전각 등 여러 모로 우리나라 조건과 맞지 않은 선택이었다.

이후 기상청은 2017년 2월 KBAS와 계약을 해지한 뒤 또 다시 경험 없고 재정도 빈약한 업체에게 기상 항공기 운영을 맡겼다.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모두 버리고 예산을 낭비한 과거 정부와 무책임한 기상청의

업무 문화를 지켜만 보고 있노라니 답답한 무기력함이 느껴졌다. 결국 나는 다목적 기상 항공기 운영 본부장 자리에서 내려와 갈 곳 없는 직원들의 일자리를 부탁하며 대학교 교단으로 갔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나라 인공 강우 기술을 실용화 시키고자 미국, 중국, 일본 등을 다니며 전문가를 만나고 때로는 그들을 국내로 초청해 토론회도 개최 했다. 그런 와중에 틈틈이 국토교통부, 기상청, 한국수자원공사 등에 인공강우의 실효성과 기술이 얼마나 중요한 지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그들의 태도는 전국에 가뭄이 생길 때만 다소곳할 뿐이었다.

20년 동안 실용화 시키지 못하고 똑같은 과정만 반복한 것이다. 결국 그렇게 나의 오랜 꿈이었던 인공 강우 개발은 접어야 했다.

인공강우를 “비 나와라 뚝딱”하면 금방이라도 가뭄을 해결할 것처럼 발표하는 국내 언론들, 가뭄 때는 절실하다가 비만 내리면 개발 의지를 잊어버리는 정부, 수자원 부족이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는 국민들을 생각 하면 안타까울 뿐이다.

사각지대에 숨어있는 돌발변수를 기억하라 57

사각지대에 숨어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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