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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의식 앞에서 불가능이란 없다

문서에서 R&D 성공실패사례 에세이 (페이지 44-49)

도전의식 앞에서 불가능이란 없다

ReSEAT 전문연구위원 신효순

순신 장군의 옥포대첩 전승지인 산자수명한 옥포 대우조선해 양이 아직 완공도 되지 않은 1979년 12월의 일이다. 경영 진이 노르웨이에서 4척의 케미컬 탱커를 첫 수주해 온 것이다. 기 뻐서 가슴이 벅차면서도 품질관리 담당 이사였던 필자는 걱정이 앞섰다. 케미컬 탱커란 황산, 염산 및 질산 등 부식이 강한 화합물 을 운반하는 선박이기 때문에 탱크 내부가 부식에 강한 스테인리스 강판으로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80년도 당시에는 스테인리스 강 판을 용접할 수 있는 용접사가 국내에 한명도 없었다. 성공적인 화 학물 운반선 건조를 위해서는 스테인리스 강판의 용접이 필수였기 때문에 난감한 상황이었다. 조선왕국을 자처하는 이웃나라 일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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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부적인 부식 전지가 형성되어, 활성경로 부식 형태로 진행된다. 수소 침식에 의한 수소유기 균열과 같은 손상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손상과 균열이 발생하지 않도록 작업 전 용접봉을 예열했다.

수정 용접 및 부동태 피막 처리를 하고 스테인리스 용접봉 관리를 철저히 하면서 작업한 끝에, 화학물 운반선 4척을 성공적으로 노르웨이 선주에게 인도할 수 있었다. 1만 여명의 직원들이 합심해 불철주야 노력한 결실을 본 것이다.

품질 관리는 제품설계에서 구매, 생산에 이르기까지 전사적 품질관리 체제(TQC)로 되어야 하는 만큼 사전예방을 위해 직원의 교육에 노력을 다해야 한다. 필자는 선박과 시추선의 품질보증시스템 매뉴얼을 제정 하고 용접을 비롯한 각종 작업의 절차서를 작성하여 품질보증 체계를 확립하였다. 대부분의 생산 문제점에 관한 해답은 현장에서 찾을 수 있었다. 또한 선박이나 시추선의 품질도 현장에서 결정되므로 주말에도 조선소에서 건조중인 선박이나 시추선에 올라가 용접 작업자들을 독려 하였다.

그 당시 팔자는 스테인리스 강판 편면 용접 기술을 개발하였다.

전통적으로 맛 이음 판재를 용접할 때, 한 면을 용접한 후 무게가 10톤 이상 되는 스테인리스 강판을 오버헤드 크레인으로 들어서 뒤집는다.

그리고 뒷면 용접부위의 산화 불순물을 파내고 갈아내고 뒷면 용접을 한다. 용접 할 때 스테인리스 강판을 올려두기 위한 V자형 부재 밑에 지지대 역할을 하도록 세라믹 블록을 만들어 부착했다. 그리고 작업이 끝나면 밑판 지지 블록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용접 시간을 단축 시켰고,

도전의식 앞에서 불가능이란 없다 43 원가절감과 화학물 운반선 건조 기간을 앞당길 수 있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82년 제15회 과학기술의 날, 대한민국 과학 기술 대통령상을 수상하였고 일간 신문에 내 이름과 사진이 대서특필 되는 영광을 누렸다. 각 극장에서도 영화 시작 전 대한뉴스에 내 이름과 공로가 상영되기도 했다. 이런 결과가 가능했던 이유는 스웨덴 AVSTA회사에서 연수를 받은 용접사들과 본거지를 떠나 타지인 옥포 에서 젊음을 받친 대우조선해양의 품질 관리 검사원들의 공로 덕분이다.

이렇게 시작한 대우조선해양은 지금까지 1,100척 이상의 선박과 110기의 시추선을 인도 완료하여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과 함께 대한민국을 세계 1위의 조선해양 건조국가로 발돋움 시켰다.

우수한 연구 개발자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일에 호기심을 가지고 전공을 착실히 배워 기초를 탄탄하게 다져야 한다. 입사 후엔 연구소나 생산 현장에서 자신의 전문 분야에 필요한 지식과 선임 연구자들의 업적을 충분히 이해하고 숙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기존의 연구를 뛰어 넘으려는 도전의식을 가지고 새로운 연구와 기술을 개발하려는 열정을 가져야 한다.

우리나라가 GNP $28,000 국가로 성장한 배경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중화학공업입국 정책을 비롯해 KIST, 원자력연구원, KAIST, 과학 기술 대학원 설립이 한몫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꾸준히 해외 과학 기술자를 유치하는 등 과학기술자의 우대정책이 한강의 기적을 이룬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이웃나라 일본도 총리가 되기 전에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와 같이 문부과학상을 거친 총리가 많다고 한다. 미국도 2차 대전 중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을 찾아가, 나치가 핵폭탄 연구를 하니 미국도 핵폭탄 연구에 착수해야 한다는 제안을 했다. 이를 루즈벨트 대통령이 받아들여 맨해튼 프로젝트를 극비리에 착수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개발하여 일본의 항복을 받아냈다. 우리나라도 제4차 산업혁명에서 세계의 선두에 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학기술자의 우대 정책이 앞서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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