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중국 외교 진화의 특징과 과제

문서에서 2021년 국내학술회의 (페이지 55-60)

중국의 외교 전략은 시기에 따라 우선순위에서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개괄해보면 안보, 영토 및 주권, 발전, 국제적 영향력, 체제 안전이라는 국익을 증진하는 데 집중해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외교 전략의 변화와 지속성이 혼재하는 상황에서 몇 가지 주요한 특징이 발견된다. 첫째, 대외관계에서 이념이나 가치보다는 유형의 실질 국익을 추구하 는 현실주의적 사고가 주도해 왔다. 1970년대 미국과의 관계개선은 물론이고 1950년

17) 이동률, 「남중국해 판결 이후 중국의 행보」, 󰡔EAI 논평󰡕, (2016.07.26), 1-3쪽.

18) 이동률, 「1990년대 이후 중국외교 담론의 진화와 현재적 함의」, 󰡔현대중국󰡕, 제21권 제1호 (2019), 29-30쪽.

대 소련과의 동맹 체결 역시 안보 우선의 현실주의적 사고가 기저에 있었다. 지난 40년 의 개혁기에는 세계화의 적극적인 참여라는 자유주의 방식을 통해 비약적 경제성장을 실현해 왔다. 그러나 이 역시 궁극적으로는 중국의 힘(power)과 지위(status)의 향상을 통한 중국의 부국강병 실현이라는 현실주의 목표를 지향한 결과였다. 시진핑 정부에서 국가 민족주의가 고양되고 있지만, 이 역시 외교의 독립변수이기보다는 수단으로 활용 되고 있으며 주로 외부의 공세를 국내 통합과 체제 지지 확보의 동력으로 전환하여 이용 하고 있다.

둘째, 건국 후 70여 년 역사에서 전반기 30년은 전면적 폐쇄와 고립, 또는 제한적 개방의 시기였다면 후반기 40년은 지속해서 개방과 세계화 참여를 확대해왔다. 현재 중국의 부상은 바로 지난 40년간 국제체제의 지속적인 참여 확대를 통해 실현되었다.

중국의 국제제도와 기구에 대한 인식과 태도는 기존의 부정적 인식에서 소극적 참여, 적극적 참여, 그리고 주도적 참여의 방향으로 지속해서 일관되게 진화해왔다.

현재 시진핑 정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글로벌 거버넌스체제 개혁’ 논의는 개혁을 넘 어서 새로운 체제와 질서 구축으로 변화될 개연성을 시사해주고 있다. 최근 중국의 강 대국화가 일정 정도 궤도에 진입하면서 중국에서는 다시금 역사의 연속성과 중국의 특 수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일부에서는 중국식 발전 경험의 확산을 외교의 주요한 과제로 제시하기도 한다. 세계화의 참여는 중국 부상의 필요조건이었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 는 인식이 있다. 중국은 부상을 이룩한 지난 40년간 중국의 세계화를 추구해 왔다면 이제는 중국적 특수성을 세계질서의 변혁에 반영하려는 의지를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지금까지 보다는 훨씬 복잡한 도전과 과제를 안고 있으므로 보다 장기적 맥 락에서 점진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셋째, 중국 정책결정자들의 화법과 담론의 변화는 지난 100년 중국외교 전략의 변화와 진화를 대변해주고 있다. 반패권주의와 내정불간섭이라는 수세적, 저항적 담론에서 시작 해서 점차 국력 증강에 조응하면서 단계적으로 독립자주, 책임대국, 그리고 평화발전, 조화세계 등으로 진화했다. 대체로 부상에 적합한 국제환경을 조성하려는 반응적이고 신중한 담론들이었다. 그런데 21세기, 특히 시진핑 정부에서는 이전과 달리 신형국제 관계, 인류운명공동체 등 국제질서의 방향성과 비전을 제시하는 담론들이 등장하고 있다.

외교 담론의 변화는 지난 100년간 중국 성장의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대체로 성장 일정에 보조를 맞추면서 국제사회에 중국의 부상을 설득하고자 했다. 그런데 시진핑 정부에서는 외교 담론과 부상간에 유지되어 오던 기존 패턴에서 이탈하고 있다. 외교 담론이 오히려 중국의 부상 일정을 앞지르며 비전으로 제시되고 있으며 그로 인해 공세 적이라는 이미지를 형성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고 있다.

중국은 ‘죽의 장막’이라는 자기 폐쇄적 대국에서 지금 G2라 불리며 국제사회의 핵심 행위자로 부상하였다. 세계적 강대국으로의 부상의 가장 직접적인 동인은 지난 개혁개 방 40년간의 고도성장이었다. 동시에 이러한 고도성장이 세계화에의 적극적인 편승을 통해 이룩되었다는 점에서는 중국외교의 성과인 동시에 외교 전략 변화의 촉매제이기 도 하다. 특히 중국의 경제성장은 기존 국제체제에서 국제기구와 제도의 적극적 참여를 통해 실현되면서 국제사회의 영향력을 신장시키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아울러 지난 40년 중국이 부상을 실현한 주요한 역사적 변곡점에는 기성 패권국인 미국의 공백과 위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예컨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2001년 9.11 테러 사건,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는 미국에는 위기와 도전이었으며 역설 적으로 중국에는 국제적 위상과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는 중요한 시, 공간을 제공하였 다. 중국은 이러한 흐름에 연동하여 중국 부상에 대한 의지를 연속적으로 외교 담론에 담아서 제시해왔으며 국제체제에서 주도국의 위상을 확보하려는 시도도 병행했다.

그런데 연이은 외생변수의 효과에 따른 예상보다 빠른 부상은 시진핑 정부에게 새로 운 기회인 동시에 도전으로 다가왔다. 중국이 초강대국 진입 문턱에서 복잡한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중국은 코로나 19라는 중국발 위기에 봉착했고,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세계의 강력하고 전면적인 견제, 그리고 인접국들의 경계와 우려에 직면해 있다.

‘신시대’ 구상과 ‘중국 특색의 대국 외교’ 기치를 내세우며 본격적인 강대국 외교를 진 행하고자 하는 시진핑 정부는 이제는 상대적 부상이 아닌 ‘절대적 부상’. 또는 ‘독자적 부상’을 실현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시진핑 정부는 세계적 보편 규범과 가치의 생산, 국제제도와 기구를 주도하는 글로벌 리더십, 국제사회에 공공재를 제공하는 기여 국의 정체성, 그리고 매력국가로서의 이미지 창출 등에서 새로운 돌파를 실현하여 국제 사회의 지지와 호응을 끌어내는 외교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시진핑 정부가 이른바 일대일로와 인류운명공동체를 제기하며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 를 부각하며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하고자 하지만 인접국들과 주권, 영토 등 핵심이익과 관련된 분쟁이 재차 발생할 때 중국 인민들의 고양된 기대와 국제사회의 경계를 어떻게 조율해 가느냐 하는 딜레마에서 혼선을 초래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시진핑 정부 는 중국 부상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설득하기 위해 다양한 비전과 담론을 제시하고 있지 만, 오히려 담론 과잉의 혼선과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19) 중국이 건국 100년을 겨냥 한 부상 일정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인접 지역 국가들의 ‘중국위협론’과 미 국과의 경쟁, 충돌이 초래할 수 있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두 개의 높은 문턱을 넘어서야 한다. 그런데 시진핑 정부는 스스로 ‘강국몽(强国梦)’이라는 호랑이 등에 올라 19) 이동률(2019a), 33-34쪽.

타면서 기존의 안정적이고 단계적인 상대적 부상의 패턴에서 이탈하는 징후들이 나타 나고 있다. 국제환경, 외교 담론, 그리고 국제체제에서 역할 확대 사이에서 유지 되어왔 던 기존의 패턴과 궤도에서 이탈하면서 부조화와 불협화음이 초래되고 있다.

< 중국 외교 목표, 담론의 진화와 국제체제 참여 추이 >

시기 외교목표 외교 담론의 진화 국제체제 참여 추이 주요 역사 사건 50,60 이념,

안보, 영토 보전

반패권 저항국 문혁/ 중소분쟁(1969)

1970 반패권

비동맹

국외자

유엔 가입(1971)

미국과 데탕트(1972) 개혁개방(1978)

1980 발전

o 현대화외교 (现代化外交) o 독립자주외교

(独立自主外交,1982)

선별 참여 IMF, WB(1980) ADB(1986) GATT(1986)

덩샤오핑 체제 천안문사건(1989) 냉전종식(1991)

1990 발전 체제안전

o 다극화(多极化) o 동반자외교(伙伴外交) o 책임대국

(负责任的大国,1997)

전면 참여 ARF(1994) CTBT(1996) 사회적 규약(1997)

남순강화 (南巡讲话 1992) 아시아 금융위기(1997)

2000

발전 체제안전 (핵심이익)

영향력

o 평화굴기 (和平崛起,2003) o 평화발전

(和平发展,2004) o 조화세계

(和谐世界,2005)

주도국

중-아프리카협력포럼 (2000)

WTO, SCO, 보아오포럼(2001) 북핵 6자회담(2003) G20(2008)

9.11 테러(2001) 세계금융위기(2008) 베이징올림픽(2008) 상하이엑스포(2010)

시진핑 시기

발전 (中国梦)

영향력 체제안전 (핵심이익)

o 중국특색의 대국외교 (中国特色的大国外交 2014) o 두 개의 구축

(两个构建):

-신형국제관계 (新型国际关係 2013) -인류운명공동체

(人类命运共同体 2013) o 글로벌거버넌스 체제개혁

(全球治理体系变革 2014) o 강국화(强起来).해양강국

체제 변혁과 ‘보완’

(全球治理体系变革) BRI(2013)

AIIB, NDB(2014)

트럼프정부 출범(2016) 중국헌법 개정: 주석 3연임 제한규정 삭제(2018) 코로나 팬데믹(2020)

본 글은 중국공산당 창당 이후 100년의 역사를 군사안보적인 측면에서 회고하고 평가 함으로써 향후 중국이 군사안보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해 전망해보고자 한다. 또한 이러한 전망을 바탕으로 한중관계의 함의와 전망을 살펴보고 한중관계 발전 을 위한 방안을 논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주지하듯이, 2021년은 중국공산당이 창당(創黨)된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1921년 7월 23일 13명의 중국공산당 대표는 상하이(上海)에서 중국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 (中國共產黨第一次全國代表大會)를 개최함으로써 중국공산당의 정식 창당을 선포하였 다. 그 후로 약 6년 후인 1927년 8월 1일 일어난 난창봉기(南昌起義)를 기점으로 현재 중국인민해방군(中國人民解放軍)의 모태가 된 중국공산당 최초의 무장역량인 공농혁명군 (工農革命軍)이 창설되었다.

중국공산당은 공농혁명군(工農革命軍)1)을 이끌고 토지혁명전쟁(土地革命战争)을 치 렀고, 항일전쟁 시기 중국공산당은 국민혁명군 제8로군(国民革命军第八路军, 통상 팔 로군으로 불림), 국민혁명군 육군 신편 제4군(国民革命军陆军新编第四军, 통상 신사군 으로 불림), 화난항일종대(华南抗日纵队), 둥베이항일연군(东北抗日联军) 등을 이끌고 전쟁을 수행하였다. 이어서 해방전쟁(解放战争) 시기에는 중국공산당은 중국인민해방군 (中国人民解放军)2)을 이끌고 전쟁에서 승리하여 종국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하게 되었다.3) 중국공산당의 100년의 역사에서 중국인민해방군의 역할과 업적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1) 토지혁명전쟁 시기에 공농혁명군은 1928년 6월 이후에는 홍군(紅軍)으로, 1930년 5월 이후에는 중국공농홍군(中國工農紅軍)으로 개명되었다.

2) 해방군(解放军), 인민해방군(人民解放军)이라는 명칭은 항일전쟁 말기부터 이미 사용되기 시작하 였으며, 1948년 9월에 이르러서는 중국인민해방군(中國人民解放军)이라는 명칭을 전군에서 사용 하기 시작하였다.

3) 中國共産黨新聞, “中国人民解放军称谓的演变”, http://cpc.people.com.cn/GB/64162/64172/

85037/85039/6170009.html (검색일 : 2021년 6월 8일)

중국 공산당 100년의 변화와 한중관계 군사안보 분야를 중심으로

-양정학 (육군사관학교 교수)

100년의 중국공산당 역사를 군사안보적인 측면에서 “不變”(불변, 지속)과 “變”(변화) 라는 두 가지 시각으로 접근해본다면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우선 “不變”으 로는 중국공산당의 무장역량인 중국인민해방군의 성격이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고, 이 와 반대로 “變”(변화)에는 중국인민해방군의 능력이 대폭 향상되었다는 것과 중국의 군 사전략이 변화되었다는 점이다.

문서에서 2021년 국내학술회의 (페이지 55-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