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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담론의 진화 : 반패권, 독립자주, 책임대국, 평화발전, 신형국제 관계

문서에서 2021년 국내학술회의 (페이지 48-55)

중국은 국력의 비약적 증강과 국제적 위상의 변화에 따라 이에 상응하여 주요 외교 담론이 진화해왔다. 건국 이후 줄곧 ‘반패권주의’를 기치로 제3세계의 리더로서 저항 국가의 역할을 자임해왔던 중국은 1980년대 ‘독립자주외교(独立自主外交)’, 1990년대

‘책임대국론(负责任的大国)’, 그리고 21세기 ‘평화굴기(和平崛起)’와 ‘평화발전(和平发 展)’을 거쳐 시진핑 시기는 ‘중국 특색의 대국 외교(中国特色的大国外交)’를 제시하는 변화가 진행되었다.

혁명과 건국 후 중국은 반패권주의를 사실상 외교의 중요한 원칙이자 담론으로 강조 해왔다. 반패권에 기반을 둔 외교 기조는 중국의 독특한 혁명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즉 중국 혁명은 반봉건, 반제국주의를 기치로 농민들을 동원하여 성취하였다. 따라서 반제국주의 원칙과 정신은 건국 이후 중국 통치의 중요한 이념이었고 반미, 반일 제국 주의는 반패권 외교로 반영되었다.

냉전 시기 중국이 대외관계에서 일관되게 주장해온 ‘반패권주의’는 외형상 강한 이데 올로기 색채를 담고 있지만 사실상 주변 안보환경에 대한 중국 지도부 인식의 표출이었

다. 즉 반패권주의의 주 대상은 수사적인 의미나 내용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해도 실질적인 내용상 항상 중국의 최대 위협 세력이자 주적이었다. 즉 반패권주의는 이데올 로기의 외형을 지닌 채 안보 차원에서 역설된 외교 담론이었다.

중국은 80년대 개혁개방 정책을 전개하면서 상대적으로 안보환경은 개선됐지만 서방 국가에 대한 경제 의존성 증대가 야기하는 새로운 체제 불안 요인 발생했다. 중국은 기존의 안보 중심의 외교 전략에서 경제협력과 체제 안전을 동시에 고려하는 이른바

‘독립자주외교 노선’을 1982년 12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천명하였다. 독립자주 외교 노선은 외견상 마오쩌둥 시기의 자력갱생으로의 회귀를 연상시키고 있지만, 사실은 더욱 적극적으로 현대화 실현을 위한 대외개방을 추진하겠다는 중국지도부의 의지를 담고 있었다. 즉 독립자주외교는 대내적으로는 현대화를 위한 대외개방이 불가피하게 초래할 수 있는 의존의 문제, 주권 침해, 체제의 취약성 노출 등의 부정적 현상에 대한 내부의 우려와 반발을 불식시키고자 했다. 아울러 대외적으로는 경제발전을 위해 서방 국가와의 협력은 더욱 적극적으로 지속해 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미국 등 서방국가들에 기울어진 외교가 일으킬 수 있는 취약성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의도가 내재하여 있었다.

탈냉전 초기 중국은 미국의 ‘일방주의’와 중국에 대한 봉쇄정책이 중국 발전의 최대 장애라고 판단하고 기존의 ‘반패권주의’ 담론은 서서히 ‘다극화(多极化)’로 대체되었다.

1997년 15차 전국대표대회 보고에서 ‘다극화는 하나의 국제정세의 추세이자, 국제사회 의 평화와 안정에 이상적인 국제체제의 모델’이라고 강조되면서 제기되었다.3) 그리고 2002년 16차 전국대표대회 보고에서는 “세계 다극화의 적극적인 추진”이 언급되면서 다극화는 본격적으로 중국외교의 중요한 담론이자 지향으로 부각되었다.4) 중국은 탈냉전 초기 미국의 일방주의를 견제하는 한편, 경제협력 대상의 다변화를 통해 경제 외교의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고자 ‘다극화’ 담론을 기치로 다양한 유형의 ‘동반자 외교’를 전개했다.

그리고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전후하여 중국은 ‘중국위협론’에 대응하는 기존과 는 다른 새로운 담론, 이른바 ‘책임 대국론’을 제기하였다. 탕자쉬안(唐家璇) 외교부장 은 16차 전국대표대회를 앞둔 시점에서 1989년 이후 장쩌민(江泽民) 집권 시기 13년 의 중국외교를 3시기로 구분하여 총괄하면서 1997년 15차 전국대표대회 이후 외교를

3) 15차 전국대표대회 보고 내용은 「高举邓小平理论伟大旗帜,把建设有中国特色社会主义事业全面 推 向 二 十 一 世 纪 - 江 泽 民 在 中 国 共 产 党 第 十 五 次 全 国 代 表 大 会 上 的 报 告 」 ( 1 9 9 7 / 9 / 1 2 ) , http://www.china.com.cn/ch-80years/lici/15/15-0/8.htm(검색일: 2019.4.20)

4) 16차 전국대표대회 보고 내용은 「全面建设小康社会,开创中国特色社会主义事业新局面—江泽民 在 中 国 共 产党 第 十 六 次 全 国 代 表 大 会 上 的 报 告 」 ( 2 0 0 2 / 1 1 / 1 7 ) , h t t p : / / w w w . c h i n a . com.cn/zhuanti2005/txt/2002-11/17/content_5233867.htm(검색일: 2019.04.20).

설명하는 가운데 “책임 있는 대국의 역할”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바 있다.5) 중국은 “지 역 및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공동발전”이라는 전형적인 수사로 대국의 책임을 표명했 다. 그리고 이러한 책임을 실현할 수 있는 바람직한 체제로 다극화를 제시했다.6)

‘책임 대국론’은 중국이 국가 정체성에 대한 인식에 중대한 변화가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책임 대국론’은 대국으로서 대국 관계, 특히 대미 외교에 우선순위를 두겠다 는 것이고, 지역 및 세계에서 책임 있는 대국의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즉 중국은 개 도국이라는 위상을 견지하면서 동시에 대국임을 더는 부인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전 한 것이다. 요컨대 중국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다하는 대국이기 때문에 국제사회 의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책임 대국론’은 1997년 아시아 금 융위기로 인해 예상 밖의 실체적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21세기에 들어서 기존의 주로 반응적, 대응적, 방어적 특성을 보였던 중국외교 담론 이 강대국 정체성이 더욱 명료해지고 선제적으로 외교 비전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진화 하기 시작했다. 우선 대표적인 대응적, 방어적 성격의 외교 담론이었던 반패권주의와 다극화가 2000년 이후 사용 빈도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대신에 공동(共同安保, 共同 发展), 윈-윈(双嬴)이 새로운 주요 담론으로 등장하면서 변화의 징후가 나타났다.7)

아울러 기존에 경제발전에 집중하기 위해서 저비용의 대외전략을 지향했던 이른바 도광양회(韬光养晦) 부류의 담론에서 벗어나는 징후들도 이 무렵 서서히 나타났다. 21 세기 첫 당 대회였던 2002년 11월의 16차 전국대표대회 보고에서 장쩌민 주석은 이례 적으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으로 보고의 서두와 말미를 장식하면서 무려 9차례나 역설하였다. 이를 신호로 2003년 보아오포럼(博鰲論坛)에서 정비젠(郑必坚)은 ‘평화 굴 기(和平崛起)’론을 제시했다. 그리고 2004년부터는 후진타오(胡锦涛)주석, 원자바오총 리 등 중국지도부에서 ‘평화 굴기론’을 대신하여 ‘평화발전(和平发展)’을 공식적으로 사 용하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후진타오 주석이 유엔창립 60주년 정상회의 연설에서

‘조화세계(和谐世界)’론을 들고 나오면서 사실상 중국 부상을 기정사실로 하고 본격적 으로 이를 국제사회에 전파하고 설득하여 부상 환경을 조성하려는 외교를 전개했다.

5) 唐家璇, 「中国跨世纪外交的光辉歷程」 http://www.fmprc.gov.cn/chn/36007.html (검색일: 2002.11.23).

6) 「全面建设小康社会,开创中国特色社会主义事业新局面—江泽民在中国共产党第十六次全国代表大会 上的报告」(2002/11/17)

7) ‘공동’은 2002년 16차 전국대표대회 보고에서 12회 사용되었고, 2007년 17차 전국대표대회에서는 17회나 등장하였다. 인민일보(人民日报)에서도 패권주의, 다극화는 1999년과 2000년에 빈도수가 정점을 이룬 후 많이 감소했지만 윈-윈이 1999년부터 증가하기 시작하여 2005년에는 앞의 두 용어보다 무려 4배 이상의 빈도수를 보여주었다. Susan L. Shirk, China: Fragile Superpower,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7), pp. 98-100.

중국은 이른바 평화 굴기, 평화발전론 등 중국의 부상 담론을 제기하는 시점에 동반 자 관계를 ‘전략(战略)동반자’ 관계로 격상하면서 적극적으로 부상을 위한 국제전략 환 경을 조성했다. 중국이 전략적 관계로 격상시켰던 국가들은 러시아, 프랑스와 같은 대 미전략상 중요한 강대국, 또는 인도, 파키스탄, 아세안, 한국과 같은 지역 중견국, 그리 고 중남미와 아프리카의 자원 부국들이었다.

그런데 2010년 이후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의 해양영유권 분쟁이 격화되고, 미국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재균형(rebalancing)’ 전략이 중국을 겨냥하여 전개되면서 ‘핵 심이익’을 둘러싼 미국과의 갈등이 고조되었다. 중국은 2010년 이후 해양영유권 분쟁, 미국과의 갈등으로 인해 과거 10년간 아태지역에서 쌓아온 긍정적 이미지와 외교 성취 를 상실했다는 평가를 받는 원치 않는 결과를 초래했다. 중국이 부상 담론을 본격적으 로 제기하자 곧바로 부상의 딜레마에 직면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진핑 정부는 이례적으로 다양한 외교 담론을 동시다발로 쏟아내면서 담론 과잉현 상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부상을 정당화하고 설득하는 수준을 넘어서 국제규범과 질 서의 방향을 제시하는 새로운 차원의 외교 담론을 내놓기 시작했다. 외교 담론의 주요 대상도 집권 1기에는 미국, 주변 지역 등 특정 대상을 겨냥했지만 시진핑 체제의 권력 강화를 실현한 2기에서는 지역을 넘어서 전 지구적으로 확장되었다. 예컨대 18차 전국 대표대회 이후 제시되었던 ‘신형대국관계’, ‘아시아 운명공동체(命运共同体)’는 19차 전 국대표대회를 계기로 ‘신형국제관계’, ‘인류운명공동체’, ‘글로벌 동반자 관계’,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개혁’ 등으로 진화해 갔다.

시진핑 정부는 집권 2기에 들어서 다양한 담론들을 체계화하고 설득력을 높이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 특색의 대국 외교를 상위에 두고 이를 구체화하는 ‘신형국제 관계’, ‘인류운명공동체’를 양대 축(两个构建)으로 배치하고 있다. 그리고 AIIB, 실크로드 기금, 일대일로 등이 주요 실천 전략으로 제시되어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중국은 양자 차원에서는 전략동반자 외교를 전 세계적으로 확장하고 있고, 다자차원에서는 글로벌 거버넌스 개혁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면서 미국 중심의 동맹 공세에 대응하는 한편 기존 국제체제의 변혁을 모색하여 국제사회에서의 중국의 위상과 영향력을 높이고자 한다.

시진핑 정부의 외교 담론 역시 중국 부상이 국제사회에 위협과 위기를 초래하지는 않을 것을 주장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연속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 동시에 이전과는 다른 주목할 만한 변화도 있다. 우선 시진핑 주석이 직접 담론 제안자로 나서고 있고, 단지 평화적 부상을 설득하는 차원을 넘어 국제체제의 주도국으로서 선제적으로 새로운 비전, 규범, 가치를 제시하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미국 주도의 ‘보편성’에 대한 대응 수준을 넘어서 국제사회를 향해 ‘중국방안’과 ‘중국 지혜’를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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