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이원조가 일수의 학문은 ‘자득한 것’이라 평하였듯 이, 그의 문제의식과 이론은 독창적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일수가 말하는
‘산업’의 의미와 내용이 무엇이며, 이를 구성하는 체계로서 건곤론이 어떻 게 변주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해하려면 반드시 ‘산’자를 보태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른바 경전 에서 말하는 사업의 내용은 무엇일까? 여기에서 말하는 경전은 뺷주역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뺷주역․계사전뺸에는 ‘사업’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대목 이 있다. 다음 구절을 보자.
“형이상의 것을 도(道)라고 하고, 형이하의 것을 기(器)라고 한다. 변화하여 마름질하는 것을 변(變)이라 하고, 미루어 행하는 것을 통(通)이라 하며 들어서 천하 백성들에게 조처하는 것을 사업(事業)이라고 한다.”7)
뺷주역뺸에서 말하는 사업이란 성왕(聖王)이 형이상의 도(道)와 형이하의 기(器)를 아울러 재단함으로써 알맞게 변통하고, 그것을 백성들의 삶에 유 익하도록 들어 쓰는 것을 말한다. 사람의 일상은 도(道)와 기(器)라는 양면 의 세계를 모두 포괄하는 것으로, 사업이란 물질적 토대를 구축함과 동시에 형이상으로 상징되는 도의 세계를 함께 지향해 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뺷주 역뺸에서 지향하는 사업의 내용이 이러하다면 일수가 여기에 ‘산’을 덧붙여야 본래의 의미에 도달할 수 있다고 역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먼저 뺷주역뺸에서 의(義)와 리(理), 덕(德)과 업(業)과 같은 대립적 개념이 오히려 서로 뿌리가 되는 상호지향성을 갖는다고 보는 사유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 다. 「계사전」에서는 건곤천지의 도가 각기 현인의 ‘덕’과 ‘업’으로 드러난다 고 보며,8) ‘숭덕(崇德)’과 동시에 ‘광업(廣業)’을 말한다.9) ‘덕’과 ‘업’은 도 (道)와 기(器)로 구별되는 상반된 방향성을 지니지만 결코 모순관계가 아니 라는 것이다. 「계사전」에서 ‘숭덕․광업’은 ‘성덕(盛德)․대업(大業)’으로 표현되기도 하며 ‘대업’은 ‘부유(富有)’로, ‘성덕’은 ‘일신(日新)’으로 해석되
7) 「繫辭傳」 上12章 뺷周易뺸 : 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 化而裁之謂之變, 推 而行之謂之通, 擧而措之天下之民謂之事業.
8) 「繫辭傳」 上1章 뺷周易뺸 : 乾之大始, 坤作成物. 乾以易知, 坤以簡能. …可久則賢人 之德, 可大則賢人之業…
9) 「繫辭傳」 上7章 : 夫易, 聖人所以崇德而廣業也.
고 있다. 물질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제도 및 기구를 통해 역의 도는 일상생 활 속에 실현된다는 것이다. 역의 입장에서 ‘정의입신(精義入神)’은 ‘치용 (致用)’을 위한 것이며, ‘이용안신(利用安身)’은 ‘숭덕(崇德)’을 위한 것이다.
이와 같이 역의 논리에서 인륜과 산업의 상호지향성을 볼 수 있다. 일수는 이러한 상호지향성의 바탕 위에 ‘기(器)를 다하는 것이 도(道)이다’라 하여 기(器)를 통해 도(道)를 통합하는 사유를 보여준다.
다음으로 일수가 자신이 말하는 ‘산업’의 의미는 맹자(孟子)가 주창한
‘제민산(制民産)’과 같다10)고 한데서 ‘산’을 강조하는 이유를 찾아볼 수 있 다. ‘제민산’이란 백성들이 기본적 민생을 보전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 고 잘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뺷맹자뺸에 실린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밝은 임금은 백성들의 살림을 잘 경영하여 반드시 위로는 부모를 섬길 수 있 고, 아래로는 처자를 기를 수 있어서 풍년에는 배부르게 하고, 흉년에도 죽음을 면할 수 있게 한 연후에, 선(善)으로 몰아갑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따르게 하 는 것은 쉽습니다.11)
맹자는 당시의 정치가들이 흉년을 핑계로 기본적인 민생을 외면하는 것 을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로 보았다. 흉년을 당하여 백성들이 굶어 죽는 상황에서도, 세도가의 가축들이 배불리 먹는 것은 짐승을 몰아다가 사 람을 잡아먹게 하는 것과 같다고 극언(極言)한다.12) 그것은 모두 ‘제민산 (制民産)’, 즉 기본적인 제도를 정비하여 제대로 운영하지 않기 때문에 발 생하는 인재라는 것이다. 맹자는 구체적으로 농수산 및 임업분야의 생산관
10) 뺷心性錄뺸 第一上部, 8面 : 産業者, 孟子所謂制民産.
11) 「梁惠王」 上 뺷孟子뺸 : 是故明君制民之産, 必使仰足以事父母, 俯足以畜妻子, 樂歲 終身飽, 凶年免於死亡, 然後 驅而之善, 故民之從之也輕.
12) 「梁惠王」 上 뺷孟子뺸 : 狗彘食人食而不知檢, 塗有餓浮而不知發, 人死則曰 非我也 勢也, 是何異於刺人而殺之, 曰 非我也兵也. 王無罪歲, 斯天下之民至焉; 「梁惠王」
上 : 曰庖有肥肉, 廐有肥馬, 民有飢色, 野有餓孚, 此率獸而食人也.
리, 토지제도정비, 학교의 설립 등을 주장하고, 이를 토대로 하였을 때 비로 소 예의(禮義)를 중심으로 하는 왕도정치로 나아갈 수 있음을 역설한다.
“항상된 소득이 있으면 항상된 마음을 가질 수 있고, 항상된 소득이 없으면 항상된 마음을 둘 수 없다”13)라 한 맹자의 언급에서 일수가 맹자의 ‘제민산’
을 추종하고 ‘산’자를 보태야 경전의 본의를 명확히 할 수 있다고 주장한 이유를 알 수 있겠다. 물질 생산으로 인해 생명을 존속할 수 있는 ‘삶의 기 초를 세울 수 있다[立生]’. 이러한 생산을 생산답게 하는 것[産産]이 일[事]
이고, 일을 일답게 하는 것[事事]이 ‘업(業)’이다.14)일수는 사람들이 제왕 의 정사(政事)가 중요한 줄은 알면서도 제왕의 ‘산업(産業)’이 중요한 줄은 모른다고 역설하는 것이다.15)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수의 ‘산업’은 근대적 의미의 산업은 아니다.
그것은 유가의 왕도정치개념에 입각해서 본래 유학의 모습을 회복하자는 것이며, 그 이론체계도 전통 역학의 체계를 응용한 것이다. 그는 ‘산업’을
‘산(産)’과 ‘업(業)’의 결합으로 이해한다. ‘산’은 후생을 위한 물질생산을 말 하고, ‘업’은 생산을 위한 기획과 운용, 더 나아가 교학과 법제의 문제까지를 포괄한다. 말하자면 민생을 위한 여러 가지 입법과 교육, 사법의 영역까지 를 포괄하는 것이 ‘업’의 개념이다.16)일수의 ‘산업’은 단순히 물질생활의 풍 요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인륜의 실현이라는 목적을 함께 담
13) 뺷孟子․滕文公뺸 上 : 民之爲道也, 有恒産者有恒心, 無恒産者無恒心. 苟無恒心, 放 辟邪侈, 無不爲已. 及陷乎罪, 然後從而刑之, 是罔民也. 焉有仁人在位罔民而可爲也.
14) 뺷心性錄․辨疑뺸 : 立生曰産, 産産曰事, 事事曰業.
15) 뺷心性錄뺸 第一上部, 48面 : 人知帝王之有政 而不復知有蔀屋之政, 人知蔀屋之有 産 而不知有帝王之産, 故目之以産業而啓風.
16) 이는 뺷주역뺸의 건곤론에 근거한다. 뺷주역뺸에서는 乾은 현인의 德을, 坤은 현인의 業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 또 건의 천도는 仁으로, 곤의 지도는 義로 설명되는데, 「계사전」
에서는 義의 내용을 理財․正辭․禁民爲非라 한다. 즉 義란 財貨를 경영하고, 말을 바로 잡고, 백성들이 그릇된 일 하는 것을 금하는 일이다. 이와 관련한 일수의 논의는
‘3. 산업론의 기반으로서 곤도의 재해석’에서 구체적으로 다룬다.
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산업을 이끌어갈 가치 표준으로서 인륜적 가치를 확고히 하려는 일수의 의식은 매우 뚜렷하다. 다만 그러한 인륜은 그 자체 추상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사회와 삶을 구성하는 제도가 인륜이라는 목표를 향하여 재조직 되고 운용됨으로써 인륜적 가치를 실현 해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인륜과 산업은 결코 떨어질 수 없다는 신념으로 드러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세간에 혹 인륜은 높이면서 산업을 속되다고 하는 자도 있고, 혹 산업은 취하 면서 인륜을 가벼이 여기는 자도 있으니 옳겠는가? 이처럼 해서 그치지 않는다 면 나는 이 도(道)가 어느 지경에 이를지 알지 못하겠다. 인륜과 산업은 하나인 데, 둘로 하여서 서로 싸우니 애석하구나! 이는 한 몸의 좌우 팔뚝이 서로 다투 는 것과 같다. 그 병통이 이미 고질이 되었으니 또한 둘이 다 망할 따름이다.17)
인륜(人倫)과 산업(産業)은 서로 그 뿌리가 되어, 높고 낮음과 멀고 가까움을 막론하고 이르지 않는 곳이 없으므로 도(道)라 한다.18)
인륜과 산업이 하나이며 서로 뿌리가 된다는 인식은 역의 건곤음양론을 취한 것이다. 뺷주역뺸에서 ‘일음일양’의 상호작용을 ‘도’[一陰一陽之謂道]라 고 하듯이, 일수는 인간사회에서의 ‘도’는 바로 인륜과 산업이라는 음양의 작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본다. 인륜과 산업을 동시에 추구하면서도 산 업을 통해 인륜을 수렴하고자 하는 그의 이론은 구도육사론(九道六事論), 인정인술론(仁情仁術論)으로 구체화되며 이는 ‘3. 산업론의 기반으로서 곤 도의 재해석’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17) 뺷心性錄뺸 第一上部 17面: 世或有擧人倫而俗産業者, 或有取産業而輕人倫者, 可 乎. 如此不已則吾未知是道至於何境也. 倫業一也, 二之而相戰 惜哉. 是如一身上左 右肱之相鬪也. 其疾已痼 終亦兩敗而已矣.
18) 뺷心性錄뺸 第一上部, 10面 : 人倫産業者, 互爲其根, 卑高邇遠, 無所不達曰道; 第六 一貫, 255面 : 九道之本 在仁情, 六事之本 在仁術. 故仁情仁術, 互爲所重.
2) 인륜과 산업의 관계
일수가 인륜과 산업의 관계를 역학의 이론으로 정립한 것은 실학의 발전 사적 맥락에서 주목할 만한 의의가 있다고 생각된다. 용어의 차이는 있지만, 인륜과 산업의 관계에 대한 모색은 실학자들의 한결같은 관심사였으며, 그 러한 모색이 일수에 이르러 하나의 체계화된 이론으로 정립되기 때문이다.
정덕(正德), 이용(利用), 후생(厚生)을 치국의 3대 요건으로 제시한 것은 뺷서경(書經)뺸에서 이미 볼 수 있다.19)이후 역사시기에 따라 강조점의 차 이는 있지만 이 세 조목의 균형적 추구는 유가 정치사상의 공통된 내용이 라고 할 수 있다. 성리학은 ‘정덕’의 확립에 중점을 두고 이용후생을 도모한 것이며, 조선후기 실학의 경우는 ‘이용후생’에 기반을 두고 정덕과의 통합 을 도모한 것이다. 이는 주요 실학자들의 언급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 최초의 언급은 「반계수록서문」에 나타난 오광운(1689~1745)의 견해이다.
도덕은 하늘에 근원하고 법제는 땅에 근본하는 것이다. 하늘만 본받고 땅을 알지 못하거나, 땅만 본받고 하늘을 알지 못한다면 옳겠는가? … 후세의 군자가 옛 성왕(聖王)의 도기(道器)를 품어, 정주(程朱)가 미처 서두르지 못한 것을 보 완해 이 기(器)에 급급한 것이 어찌 정주가 이 도(道)를 밝히기에 급급하였던 것과 다르겠는가?20)
19) 「大禹謨」 뺷書經뺸 : 禹曰, 於, 帝念哉. 德惟善政, 政在養民, 水火金木土穀惟修, 正德 利用厚生惟和.
20) 「磻溪隧錄序」 뺷藥山漫稿뺸 卷15 : 道德本乎天, 政制本乎地, 師天而不知地, 師地而 不知天, 可乎? … 然則秦漢以來千數百年之間, 大抵天地幾乎息, 而地制之壞爲尤 甚. 夫以程朱之大賢, 慨然有意於三代之治, 而其所論著, 詳於道而闕於器何也. 盖 其時視孟子之時, 又益降矣. 道之喪也日遠, 故諸君子之心, 汲汲皇皇於斯道, 而於 器則未遑焉. 盖其意以爲道明則器自復爾, 觀於橫渠買田畫井之說, 而諸君子之心, 可推以見也. 然程朱以後, 道不可謂不明, 而器之蕩然者自如, 道何甞離器而獨行哉.
後之君子, 抱皇王之道器, 補程朱之未遑者, 宜其汲汲皇皇於斯器, 亦何異於程朱之 汲汲皇皇於斯道也.
일수 보다 앞선 시기에 오광운은 하늘[乾]과 땅[坤]을 도덕과 법제로 대 별하고, 이를 도기론(道器論)으로 풀이한다. 그는 양자가 함께 추구되어야 하지만 당대의 시의(時宜)는 ‘기(器)’를 개혁하는데 있다고 보았다.
일수보다 한 세대 가량 앞서 활동한 홍대용(洪大容, 1731~1783)과 박지 원(朴趾源, 1737~1805), 그리고 일수와 거의 동시대에 활약한 박제가(朴 齊家, 1750~1815)는 이용후생학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그들 학문의 특징을 이용후생의 세계를 개척하는데 있다고 평가하지만, 그들이 인륜도덕과 이용후생의 균형을 도모했다는 점은 오히려 간과되어온 듯하 다. 홍대용의 말을 들어보자.
학문에서는 세 가지 등급이 있으니 의리(義理)의 학문․경제(經濟)의 학문․
사장(詞章)의 학문 등이 있다. … 학문을 세 가지 등급으로 구별하는 것은 세속 선비의 고루한 견해이다. 의리(義理)를 버리면 경제가 공리(功利)에 빠지고, 사 장(詞章)이 헛되이 꾸미는데 빠질 것이니, 어찌 학문이라 할 수 있겠는가. 또한 경제(經濟)가 없으면 의리(義理)가 펼쳐질 곳이 없고, 문장이 없으면 의리(義 理)가 나타날 것이 없다. 요컨대, 이 세 가지 가운데 한 가지라도 버리면 학문이 라 할 수 없으되 의리(義理)가 그 근본이 아니겠는가?21)
홍대용에게 있어서도 학문의 근본은 의리(義理)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는 의리를 중심에 둔 이용후생(利用厚生)이라야 한갓 공리(功利)에 매몰 되지 않음을 역설하는 것이다. 박지원의 경우를 보자.
이용(利用)을 이룬 뒤에라야 후생(厚生)을 할 수 있고, 후생(厚生)을 이룬 뒤 에야 그 덕을 바르게 할 수 있다. 그 기물(器物)의 사용을 편리하게 하지 않고
21) <吳彭問答> 「燕記」 뺷潭軒書뺸 外集, 卷7 : 余曰, 學有三等, 有義理之學, 有經濟之 學, 有詞章之學, 且問足下所問者何學也. 彭與吳相顧笑曰, 他還分說如此, 乃曰儘 如尊言, 三學各擧一人. 余亦笑曰, 學分三等, 世儒之陋見. 舍義理則經濟淪於功利 而詞章淫於浮藻, 何足以言學, 且無經濟則義理無所措, 無詞章則義理無所見, 要之 三者舍一, 不足以言學而義理非其本乎.
그 생활을 두텁게 하는 일은 드문 것이다. 생활이 이미 넉넉하지 못하다면 어찌 그 덕을 바르게 할 수 있는가?22)
박지원 역시 이용후생이 정덕의 기초가 됨을 역설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용후생학파의 또 한 사람, 박제가도 “대체로 이용(利用)하고 후생(厚生) 하는 것이 하나라도 닦여지지 않으면 위로 정덕(正德)을 해치게 된다”23)라 하고 있다. 이와 같이 18세기 실학자들은 모두 당대의 시의(時宜)가 이용후 생의 개혁에 있다고 보면서도 정덕과의 조화를 추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일수가 당대의 사상적 과제를 인륜과 산업의 통합으로 설정하고, 역의 건 곤음양론을 통해 이를 이론적으로 모색한 것은 위와 같은 조선후기 실학파 의 일관된 사유의 흐름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다.24)일수는 인륜과 산업을 정덕(正德)과 이용후생(利用厚生)으로 설명하고, 정덕(正德)으로서의 인 륜(人倫)이 삶을 이끄는 대강령이 됨을 명확히 한다.
사람은 육부삼사(六府三事)의 이기(理氣)를 품부받아 생겨난다. 그러므로 그 덕이 구도(九道)가 되니 이를 정덕(正德)이라 하고, 그 기물의 쓰임은 예․위․
법(禮威法)이 되니 이를 ‘기물의 쓰임을 이롭게 함[利用]’이라 하고, 그 생계를 도모함은 권․교․토(眷敎土)가 되니 이를‘생활을 윤택히 함[厚生]’이라 한다.
정덕(正德)은 인륜구도(人倫九道)의 강령으로 으뜸이 되고, 이용후생(利用厚 生)은 산업육사(産業六事)의 항목으로 그 다음이 된다.25)
22) 「熱河日記-渡江錄」, 뺷燕巖集뺸 卷11 : 利用然後, 可以厚生, 厚生然後, 正其德矣. 不 能利其用 而能厚其生鮮矣. 生旣不足以自厚 則亦惡能正其德乎.
23) 「北學議序」, 뺷北學議뺸 : 夫利用厚生, 一有不修, 則上侵於正德.
24) 이상 ‘인륜과 산업의 관계’에 대한 서술은 이선경, 「일수 이원구의 역학사상과 그 실학 적 지향」, 뺷태동고전연구뺸 제23집,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2007, 79~84면 참조.
25) 뺷心性錄뺸 第一上部, 9面 : 人稟六府三事之理氣而生, 故其德爲九道而標之曰正德, 其用爲禮威法而題之曰利用, 其生爲眷敎土而題之曰厚生. 正德者, 人倫九道之綱, 一也; 利用厚生者産業六事之目, 二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