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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매개로서의 김수영 : 결론을 대신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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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에 대한 민족문학론 진영 내에서의 분석과 해석의 양태가 70년대 에 이르러 크게 변모하는 모습이 나타났던 것 역시 이러한 맥락 하에서 이 해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백낙청의 「시민문학론」에서 개진된 김수영에 대 한 평가가 새로운 현실 변혁적 주체의 형성이라는 면에서 소박한 자기 부 정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은 (70년대 이후의 민족문학론의 관점에서 볼 때) 다분히 문제적일 수밖에 없다.

일찍이 이러한 문제점을 간파하고 새로운 주체론에 기반한 생산적인 시 창작 방법론이 필요하다고 주창한 이가 바로 김지하이다. 그는 1970년 「풍 자냐 자살이냐」라는 시론(詩論)에서 ‘풍자’라는 방법론에 주목하여 이를 기 술한 바 있다. 「시민문학론」에서의 백낙청이 소시민을 시민 계급의 분화와 의식의 퇴조로 나타난 특수한 역사적 주체로 파악한 반면, 김지하는 그것을 민중의 일부로 포함시키는 길을 택한다. 그는 시인이 진정한 시인이 되기 위해서는 풍자 아니면 자살이라는 시대의 양자택일적 운명 속에서 풍자를 택해야 하고, 풍자가 온전한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민중성이

획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흥미롭게도 김지하는 이러한 논지를 펴나가 는 과정에서 김수영의 한계를 지적한다.

김수영 시인의 폭력 표현의 특징은 풍자의 방법 속에 자기 자신과 더불어 자기 가 속한 계층에 대한 부정, 자학, 매도의 방향을 보여준 점에 있다. 바로 이 점에 김수영 문학의 가치와 한계가 있고 바로 이 점에서 젊은 시인들이 김수영 문학으 로부터 무엇을 어떻게 이어받고 무엇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하는 문제점이 선 명하게 나타난다. (중략) 과연 그가 그 자신의 지향에 맞게 풍자를 선택했고 또 그 풍자의 폭력을 권력 집단이 아니라 민중 자체에게 가한 것은 그로서는 당연한 것일는지도 모른다. 그의 풍자가 사회 전체, 이 문명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 되어 야만 반역사주의의 거대한 뿌리를 갈기는 도끼질로 되고 또 그렇게 되려면 그의 시적 폭력의 대상인 소시민은 하나의 계층이나 계급이 아니라 하나의 의식 형태 로 집약되고 상징되는 민중 자신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중략) 부정적 요소가 있 다면 그에 비례하여 있는 긍정적 요소를 보지 않고 부정적 요소만을 공격하면서 민중 위에 군림한 특수 집단에 대한 공격을 포기한 것이라면, 김수영 문학의 폭력 은 그릇된 민중관 위에 선 것이며 그 풍자는 매우 위험한 칼춤일 수밖에 없다.52)

김지하는 “풍자의 방법 속에 자기 자신과 더불어 자기가 속한 계층”에 대한 비판이 존재한다는 것을 거론하면서도 그에 대한 평가에서는 백낙청 과 다소 다른 입장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김수영의 시 세계에서 소시민적 자기 부정성을 확인한 것은 동일하나, 이 부정의 대상과 방향성이 자기를 포함한 계층을 향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평가가 서로 상이하다. 백낙청이 소시민과 시민을 정치적 맥락에서 분리시킴으로써 김수영의 자기 부정이 어떤 단계적 비약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본 것에 반해 김지하는 소시 민을 민중이라는 개념에 편입시킴으로써 김수영의 자기 부정성 속에 숨어 있는 정당한 정치적 주체(민중)에 대한 폄훼의 위험성을 발견한 것이다.53)

52) 김지하, 「풍자냐 자살이냐」(뺷詩人뺸 6~7월호, 1970), 뺷김지하 전집뺸, 실천문학사, 2002, 26면.

53) 이후 백낙청은 김지하의 지적에 동의하면서 김수영이 근본적으로 민중과 같은 위치에

김지하의 비판적 독해는 70년대의 민족문학론 진영에 의해 계승되고 발 전되면서 김수영에 대한 새로운 담론장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 친다. 이러한 비판적 작업은 특히 뺷창작과비평뺸에서 계승되어 지속적으로 수행된다. 가령 「문학과 민중」이라는 글에서 신경림은 김수영에 대한 발전 적 계승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결과적으로 김수영이 지식인의 소시민성 을 완전하게 극복하지 못했음을 거의 동일한 맥락에서 지적한다. “이것은 그의 목소리에서 아직도 지식인의 나약함과 비겁함과 이기심이 완전히 청 산 극복되지 못하고 산재해 있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의 목소리가 완전 히 민중의 것이 되기 전에, 그 완성 바로 문턱에서 그의 작업이 중단되지 않으면 안되었다는 것은 우리 문학을 위해 더 없는 불행이었다.”54)지식인 의 나약함과 비겁함이 극복되지 못했다는 지적은 앞서 살펴본 김수영의 자 기 부정적 태도를 동일하게 가리키고 있지만, 그 말이 품고 있는 뉘앙스는 백낙청의 초기 담론과 상당히 다르다. 여기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역시 민중이다. 김수영이 지식인의 소시민성을 청산하지 못한 것도 그의 시 적 언어가 “완전히 민중의 것”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백낙청의 분석대로 시민이 미완의 존재태라면, 시민에 미달했으나 그러한 결여를 정직하게 증 명하는 것이야말로 김수영이 도달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 된다. 그러나 이 미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는 실체로 민중을 규정하게 된다면 김수영의 자기 비판적 특성은 민중의 극히 일부분, 그것도 왜곡된 의식으로 채워진 지식인

/전문가 그룹의 나약한 태도로 수렴된다.

70년대에 이르러 김수영과 창비로 대변되는 진보적인 리얼리즘 사이의 기묘한 동거가 끝내 어색한 결별로 끝맺게 된 사정이 여기에 있다. 그는 이 제 더 이상 직접적으로 ‘민족문학론’의 기수로 나설 수 없게 된다. 김수영의

서기를 거부하는 지식인의 성향을 지녔다고 비판한다. 이에 대해서는 백낙청, 「역사적 인간과 시적 인간」 참조.

54) 신경림, 「문학과 민중」, 뺷창작과비평뺸 봄호, 1973, 19면.

시가 지닌 난해성의 문제가 민족 / 민중적 의식의 결핍이라는 형태로 본격 적으로 불거져 나온 것도 이 시기에 이르러서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백낙 청의 글을 보자.

민중이 잘 알 수 없는 ‘난해한’ 문학 가운데도 이렇게 근본적으로는 민중편에 서 있으면서 직접적으로 민중 모두의 것이 될 수는 없는 숙명을 지닌 작품들이 있다. 이들은 (중략) 민중의 편에 서서 시대가 요구하던 탐구를 하고 기여를 했 던 한 전우의 기념비로서 보존되고 존중되기에 이르는 것이다. 우리 문학에서 김수영의 경우가 그 좋은 예의 하나로 남으리라 생각된다.

이것은 혹시 도저히 민중의 것이 될 수 없는 난해한 문학에 대한 필자 자신의 취미를 완전히 청산 못해서 억지로 갖다 붙이는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민중 자신은 일부 민중주의자 내지 민중문학론자들보다 훨씬 관대하다고 보아야 한다. 이것은 물론 무슨 앙케트 같은 것으로써 입증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실재하는 민중의 의식은 특수층의 기존문화에 현혹되어 필요 이상의 관용 을 보일 수도 있고 이에 대한 당연한 반발로 옥석을 가리지 않고 불태우려는 충동 을 나타낼 수도 있다. 민중이 더 관대하다는 것은 그들이 그들의 현실적 욕구에서 출발하지 ‘일체의 난해한 예술은 반민중적이다’라는 관념이나 ‘민중을 위해 평이한 작품만 쓰련다’라는 이상주의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며, 인간의 본마음 에 담긴 어떤 넉넉함을 유지함으로써만 그들이 하나의 각성된 집단을 이루고 참으 로 인간적인 것을 이룩하는 역사에 제대로 기여할 수 있다는 뜻이다.55)

1973년에 씌어진 위 글에서 백낙청은 직접적으로 김수영이 지닌 소시민성 과 엘리트주의에 대해 비판하지는 않으나 김수영의 시세계와 민족과 민중이 라는 개념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화 가능성에 대한 의식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눈여겨 볼만한 사실은 이 시기의 백낙청이 김수영을 평가하는 데 있어 다소 애매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신경림의 논의를 이어받으면서도 여전히 김수영의 작업에 대해서는 “한 전우의 기념비로서 보존되고 존중”되어야 할 사례라고 평가하는데, 이 과정에서 김수영 문학의

55) 백낙청, 「문학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116면.

‘난해성’에 대한 독특한 논리가 펼쳐진다. 주지하듯 난해성은 모더니즘 문학 의 어떤 대표적인 표징처럼 덧씌워진 수사라고 할 수 있거니와 그가 김수영 문학의 난해성을 민중의 “넉넉함”으로 포괄하려 했던 것 역시 그의 입론 안에 김수영을 의미있는 존재로 배치시키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그가 더욱 강조를 하기 시작한 대상은 ‘민중의 관대함’이다. 설령 김수영이 충분히 모더니즘적인 요소를 극복하지 못하고, 소시민적 자기 비판 을 걷어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민족문학론의 관대함으로 이를 충분히 끌어 안을 수 있다는 요지이다. 김수영에 대한 백낙청의 온건한 평가는 시민문학론 과 민족문학론 사이의 분리가 확연하게 나타나기 이전의 백낙청, 즉 김수영에 여전히 의존하고 있는 시민문학론자 백낙청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평가에 있어서의 변화의 조짐을 드러내고 있다. 다시 말해 위 대목은 김수영이 향후 민족문학론 내부로 수용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충돌을 상징적으 로 예고하는 대목이기에 충분히 의미심장해 보인다.

1976~77년은 민족문학론의 이론적 토대가 강화되고 동시에 새로운 시 인들이 등장함으로써, 김수영에 대한 발전적 지양이 더욱 분명하게 공표될 수 있었던 시기였다. 그런 맥락에서 뺷창작과비평뺸에서는 76년 겨울호부터 77년 여름호에 이르기까지 3회에 걸쳐 김수영에 대한 비판적인 극복이 구 체적으로 개진된다는 사실은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른바 이 시기에 이르러 ‘민족문학론’의 진영으로부터 김수영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들이 경 쟁적으로 제출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염무웅이 「김 수영론」에서 포문을 열었다면56), 77년 봄호의 좌담에서는 시사적인 맥락에 서 김수영과 신동엽을 비교선상에 올리는 작업이 이루어진다.57)덕분에 김

56) “그는 ‘혁명은 / 왜 고독한 것인가’를 알았으되, 혁명이 또한 탁월하게 군중적인 것을 충분히 알지는 못하였다. 힘없고 모자란대로나마 서로 뒤섞여 돕고 이끌며 역사를 만들 어가는 군중성의 체험, 민중적 실천의 체험은 아직 그의 것이 아니었다. 김수영 시의 난해성이 끝내 극복되지 않았던 근본적 이유는 바로 여기서 찾아진다.” 염무웅, 「김수영 론」, 뺷창작과비평뺸, 1976년 겨울호, 16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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