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수는 이러한 ‘만물을 살리는 마음[生物之心]’이 바로 권(眷)이라고 본 다. 이렇게 보았을 때 ‘권’은 다름 아닌 ‘인(仁)’이 구체적으로 발현한 것이 라 하겠다. 천지가 만물을 살리는 마음으로서의 ‘인’이 구체화된 작용이 ‘권’
인 것이다. 육사의 각 조목에는 이러한 ‘권’의 정신이 관류하고 있다. 일수는
‘권’을 인술(仁術)의 근원이라 하는데, 이는 인정(仁情)으로서 인륜구도가 육사의 ‘권’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역학적으로 보았을 때 이 ‘권’은 건도의 인정과 곤도의 인술을 하나로 소통시키는 매개가 된다는 것이다. 권 이 건곤의 매개점이 되는 까닭은 권’의 실질은 곤원(坤元)과 같기 때문이 다. ‘곤원’은 ‘건원’과 같은 하나의 ‘원(元)’으로서, ‘원’의 내용은 ‘인(仁)’일 뿐이다.45) 인륜을 인정(仁情)이라 하고 산업을 인술(仁術)이라 함에서도 보듯이, 양자는 ‘인(仁)’을 매개로 소통하고 있는 것이며 ‘권’이 그 접점이 된다고 해석된다. 따라서 인륜과 산업은 ‘권’을 통해 인(仁)의 생의가 소통 됨으로써 천지합덕의 생생지도를 구현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일음 일양’으로서 도의 내용인 것이다. 그러므로 일수가 산업을 강조한 궁극적 이유는 인륜과 산업을 함께 고양시킴으로서 전체로서의 생명을 발현하기 위해서라 할 수 있다. 일수의 곤도중심의 산업론은 ‘구체적 삶 속에서 인 (仁)의 실현’을 목적으로 한다고 할 것이다.
으려 한다. 일수의 문제의식은 당대에 인륜과 산업의 괴리가 심각하다는 것 과, 당대의 시의(時宜)는 ‘산업’의 재인식과 정립에 있다는 것이다. 이에 일 수는 산업을 중심으로 인륜을 수용하여 양자를 통합하는 이론을 수립한다.
그 이론은 역의 건곤음양론에 기반한 것으로, 일수는 곤도를 건도를 완성하 는 의미로 인식한다. 곤도로 지목되는 ‘산업’은 오늘날과 같은 의미의 산업 이 아니라, 민생의 기반으로서 생산과 경제의 문제, 그리고 교학 및 법제의 영역까지를 포괄하는 것이다. 곤도는 건도의 인정(仁情)을 구체적으로 실 현하는 인술(仁術)의 뜻을 지니며, 건도의 인(仁)을 적절히 조절하여 완성 하는 의(義)의 성격을 갖는다. 육사의 첫 번째 일로서의 ‘권(眷)’은 ‘인(仁)’
의 구체적 발현으로서, 삶의 대강령인 건도의 ‘인(仁)’을 계승하는 것이다.
‘인(仁)’을 계승하는 권(眷)의 ‘아끼고 사랑하는’ 정신은 육사(六事)의 각 조 목을 관류한다. 이로써 이 세상을 경영하는 지침인 육사는 인(仁)의 실현이 라는 목적을 갖는다. 일수에 있어 권(眷)은 사랑의 정신이며 동시에 생산의 의미이기도 하다. 백성을 사랑하는 위정자의 급선무는 민생의 기반을 안정 시키는 것이다. 일수의 산업육사에 있어서 두 관절은 ‘권(眷)’과 ‘예(禮)’로 제시되는데,46) ‘예’는 ‘권’의 정신을 삶의 현장에서 실현하는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일수의 ‘예’는 단순히 예의도덕이 아니라, 삶을 영위하는 문화적, 경 제적, 사회적 형식과 제도를 망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수가 곤도에 의 한 건도의 완성이란 측면에서 산업의 위상을 제고한 것은 실학의 입장에서 성리학적 도학과의 접점을 이론적으로 해명하고자 한 노력의 산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46) 앞서 살펴보았듯 眷은 산업육사 가운데 三生의 關이고, 禮는 三分의 關이다. 음양론 의 구조를 보면 陽으로 드러나는 현상일지라도 이면엔 음양이 함께 존재하고, 陰으로 드러나는 현상일지라도 이면에 역시 음양이 함께 들어있듯, 산업육사는 陰으로 규정되 지만 그 이면엔 三生의 陽(眷으로 대표)과 三分의 陰(禮로 대표)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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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 「일수 이원구의 역학사상과 그 실학적 지향」, 뺷태동고전연구뺸 제23집, 한 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2007, 79~84면.
Abstract
The Concept of Industry in Yi Wongu's Philosophy
A Study from the perspective of IChing
-Yi, Suhn-gyohng*47)
Yi Wongu was the scholar who was active in the late 18th century and the early 19th century. He is the I-Ching specialist and his academic tendency is pragmatic. He diagnosed the problem of his period was due to the disruption of industry and Humanity(moral laws). Therefore, he set up 乾坤陰陽論 (Qian Kun Yin Yang theory), which can integrate the both. Humanity and industry are not in conflictual relationship but they are complimentary. His theory of industry is centered on ‘坤 (Kun)’,which symbolizes the earth. In this regard, his theory is differentiated from that of contemporary Confucian scholars who admired ’乾 (Qian)’.
According to him, ‘Qian’ means directivity of value and ideology, which is achieved by Kun’s activity. So, Humanity and industry are not to be separated. Without industry, Humanity will not be able to be realized.
Generally, ‘實學 (pragmatic thought)’ set more value on industry than on Humanity. However, Yi Wongu asserted the integration of industry and Humanity and opened up a new era of pragmatic thought in late Chosun Period.
Key Words : I Ching, Yin Yang theory, pragmatic, Confucianism, Yi Wongu
* Sungshin Women’s University
<필자소개>
이름 : 이선경
소속 : 성신여자대학교 한문교육과 전자우편 : [email protected]
논문투고일 : 2015년 12월 27일 심사완료일 : 2016년 1월 29일 게재확정일 : 2016년 2월 2일
이영란**
목 차 1. 머리말
2. 뺷소학뺸의 여성교육관
3. 조선 여성상은 수신제가치국(修身齊家治國) 4. 맺음말
<국문초록>
조선시대 여성은 우리에게 예속적인 삶을 살았던 여인으로 회자된다. 인간은 누구나 어디 시대에서나 살아가는 목적을 갖는다. 인간이 가지는 목적 자체보다는 사회적 성격에 의해 규정되어지는 경우가 보통이다. 특히 조선시대의 여성은 가부 장제적 사회 속에서 유교적 덕목에 기준하여 살아가야하는 삶으로 정의해 버린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인간은 살고 조선시대 여성도 그러했 을 것이다.
조선시대 여성은 제도적 교육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비형식적으로 가정에서 교육을 받은 여성은 스스로 자각 의식을 가지며 자신을 표출하였다. 결국 여자가 제도적 교육을 받는 것만이 여성이 의식화되고 사상을 갖는다고 단정하기는 힘들 다. 조선 초에 등장하는 여러 문학가를 보더라도 여성 자신들의 세계가 분명히 자 리 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가정에서의 여성교육은 주로 여성교훈서를 교육되었다. 여성 교훈서의 기본 바탕은 그 근본을 뺷소학뺸에 두었다. 여성이 뺷소학뺸을 어느 정도 읽었는가에 * 위 논문은 2015학년도 조선대학교 학술연구비 지원을 받아 연구되었음. 조선대학교 인
문학연구원 우리철학연구소와 中國 湖南省 船山學硏究基地 공동 국제학술대회의 발 표 원고를 수정 보완함.
** 조선대학교
대한 기록은 당시 문집을 통해 여성 독서목록의 예만 보아도 뺷소학뺸을 기본적으로 읽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뺷소학뺸은 7~8세 아이들이 읽었던 책이다.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즉 인간으로서의 기본 도리를 알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책이 다. 뺷소학뺸을 읽는다는 것은 조선시대 여성들이 갖추어야 할 덕망을 교육하는 것 이 주목적이기는 하지만, 이는 여성에게 글을 깨우치는 시작이기도하기 때문에 여 성이 자각적 의식을 갖게 하는 중요한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뺷소학뺸은 어려서 여성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하는 중요한 서적이라 할 수 있다. 집안에 서의 권한을 여성에게 주어 집안의 규율을 정립하여 수신제가치국이라는 유학적 기본 원리를 여성에게 어려서부터 교육하였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여성들은 유교적 가부장제적 사회 안에서 정숙한 성품과 몸가짐을 닦으려고 하였고 또한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자녀교육 그리고 남편과 신의를 갖고 지내며 근검절약하여 집안을 돌보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나아가 정치적 참여를 통 해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의 여성은 자신이 처한 사회적 환 경에 맞추어 가면서도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놓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준비 된 여성이었던 것이다.
주제어 : 소학, 조선시대, 여성, 가부장제, 수신제가치국
1. 머리말
조선시대 여성은 우리에게 예속적인 삶을 살았던 여인으로 회자된다. 인 간은 누구나 어디 시대에서나 살아가는 목적을 갖는다. 인간이 가지는 목적 자체보다는 사회적 성격에 의해 규정되어지는 경우가 보통이다. 특히 조선 시대의 여성은 가부장제적 사회 속에서 유교적 덕목에 기준하여 살아가야 하는 삶으로 정의해 버린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인간은 살고 조선시대 여성도 그러했을 것이다.
조선시대 여성은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 내외법(內外法)과
또 여자십년불출(女子十年不出 : 小學 立敎)이라는 말로 여성을 위한 제 도적 교육기관은 없었다. 그렇다면 제도적 교육기관이 없으니 여성은 교육 의 대상이 아닐까? 제도적 교육을 받지 않았더라도 여성은 자식을 낳고 기 르는 생물학적 존재로써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외면할 수 없는 존재이다. 특 히 이미 태교에서부터 여성은 교육대상에서 제외할 수 없다. 현대에도 현명 한 자식을 낳기 위해 여러 가지 태교 방법에 어머니들이 많은 고민을 한다.
이렇듯 어머니의 배속에서부터 교육은 이루어지기 때문에 여성의 역할은 중요하고 어떤 방법으로든 교육을 받아야 했을 것이다. 현대 교육학에서도 교육의 가장 중요한 교사는 어머니라고 한다.
물론 여성교육은 근대여학교의 설립 이전까지는 가정에서의 비형식적인 교육만 있었다.1) 조선시대 여성들은 제도화된 교육제도 아래서 교육받지 못했다. 하지만 여자가 제도적 교육을 받는 것만이 여성이 의식화되고 사상 을 갖는다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조선 초에 등장하는 여러 문학가를 보더라 도 여성 자신들의 세계가 분명히 자리 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여성 연구는 주로 사대부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였다. 1980 년대 여성교육에 대한 연구를 하였고,2) 1990년대는 여성의 지위와 역할에
1) 근대적인 의미의 여성 운동이 전개된 것은 서양문물을 받아들여야 하는 19세기 80년대 부터였다. 한국의 역사상 여성을 위한 교육기관은 1886년에 세워진 梨花學堂이 그 최 초였다. 개화에 대한 여성의 자각을 처음 노출시킨 것은 1898년의 양성원(養成院)에서 부터였다.
2) 최숙경, 「한국여성사 연구의 성립과 과제」, 뺷한국사시민강좌뺸 제15집, 1994, 3~4면, 11면. 1950년대 여성 연구는 주로 사회학, 인류학, 법학 또는 교육학과 윤리학, 민속학 측면에서 각각 한국의 가족과 혼인, 여성교육 등에 관한 연구들이 등장하였다. 그러나 이들 연구 성과는 엄격한 의미에서는 여성 연구라고 하기보다는 다만 이후 여성 연구에 이차적인 연구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일정한 공헌을 한다고 하였다. 1960~70년대 전근 대여성 연구의 특징은 주로 당시 사회에서의 여성의 존재양태를 문헌자료를 이용하여 실증적으로 고증하는 실증이 중심이 되고 있다. 여성의 입장에서 여성연구를 시도한 것은 1970년대에 와서 이화여자대학교 여성사편찬위원회와 숙명여자대학교 아세아여 성연구소가 중심이 되었다. 1980년대에 전근대에서도 여성교육의 일정한 교육방법, 교 육내용 등은 여성의 주요 부분을 점하였다.
대해 연구하였다.3) 2000년대에 들어와서 여성사 연구는 연구주제나 시각이 다양해져 여성의 정체성 확립에 관심을 가졌다.4) 이러한 여성상의 꾸준한 연구는 여성교훈서에서의 여성 정체성문제는 많이 다루고 있지만, 일반 유 교경전에서의 여성관련 연구는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 가운데 특 히 여성의 교육에 관련된 연구서나 논문은 제도적인 면에서의 부정적인 시 각을 가지고 있으나, 조선시대의 시대적 상황을 파악하면서 당시 조선시대 여성에게만 찾을 수 있는 덕육(德育)을 부각시켜 현행교육과의 접목을 시 도하려는 연구 경향이 보편적이다.
조선시대 교육은 실제로 과거시험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진 사람들 이외에 는 모두가 교육이라는 제도권에 있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여성만이 교육기관 이 제도화되지 않았고 그래서 여성의 지위가 낮다는 상관관계는 무의미하다.
조선시대 여성은 비록 제도적인 면이나 형식교육(形式敎育; Formal Education) 은 없지만 가정에서 이루어진 비형식교육(非形式敎育; Informal Education) 으로 몇몇 여성들은 스스로 자각의식을 가지며 여성들의 권위를 찾고자 하였 다. 조선시대 여성이 가정 내에서 여성 교육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자발적 으로 찾아가고자 하였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실제 현대의 사회
3) 정현백, 「여성사연구의 현황과 과제」, 뺷여성과 역사뺸 Vol.17, 1994, 61~90면, 1990년대 이후부터 정치, 일상생활, 특수직, 문화 등의 각 분야에서의 여성의 지위와 역할에 대해서 연구 정리하였다. 생활사의 대표적 예로 이배용 외의 뺷우리나라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 까뺸 1권에서는 여성으로의 출생부터 교육, 혼인, 출산, 자녀교육, 시집살이, 가사노동, 애환과 사랑, 예술세계, 치장, 신앙 등 여성의 평생사를 고대부터 조선시기까지 통시대사 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4) 정해은, 「조선시대 여성사 연구 동향과 전망, 2007~2013」, 뺷여성과 역사뺸 19, 2013, 34면, 김언순의 박사학위논문 「조선시대 여훈서에 나타난 여성의 정체성 연구」, 2006은 여성들의 유교의 가치와 규범을 내면화하는 현실에 주목하여 조선에서의 여성유교화 방식과 여성들의 정체성 확보를 연구하였다. 이외에도 여성 스스로 주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논지로 김경미의 「뺷열녀전뺸의 보급과 전개- 유교적 여성 주체의 형성과 내면화 과정」, 뺷한국문화연구뺸 13, 2007; 이순구의 「조선시대 여성들은 왜 목숨 바쳐 열녀가 되었을까?」, 뺷질문하는 한국사뺸, 서해문집, 2008; 이남희의 「조선사회의 유교화와 여성의 위상 - 15, 16세기 족보를 중심으로」, 뺷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뺸 48, 2011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