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들어가며 : 죽음 이후의 영적 세계에 대한 문학적 구성력

문서에서 저작자표시 (페이지 177-186)

인간은 죽음을 미리 경험할 수 없으며, 혹 그것을 경험하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없다. 이는 우리가 인간이라는 굴레를 벗어버리지 않 는 한 그 이상 자명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인간의 사후에 펼쳐지는 세계 의 존재적 외양은 우리에게는 늘 상상적으로 재현되는 대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의 인지 저 너머에 존재하는 세계의 존재 방식이 늘 그러하듯, 죽음 이후의 세계는 언제나 인간의 지적 작용이 결코 닿을 수 없는 영역으 로 존재해 있게 마련이다. 당연하게도, 인류가 쌓아올린 신화나 역사 혹은 문학 등 지식과 사상의 도정에 있어 추상화된 관념으로서든, 언어나 혹은 여타의 예술적 수단에 의해 상상적으로 구체화한 형태든 죽음 이후의 세계 를 구체화하여 ‘재현’하거나 ‘발명’하는 과제가 인간에게 중요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은 한편으로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공포로부터 도래하는 것이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의 삶에 대한 존재론적인 이해를 도모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전제로서 기능해왔던 셈 이다. 이를 죽음에 대한 사유와 철학은 특히 종교적인 신앙의 측면에서 보 다 극적인 국면으로 펼쳐져 현재의 생의 국면을 더욱 의미 있게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었다고 말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기독교에서나 불교

의 교리 속에서 인간의 죽음 이후에 대한 이론적 접근의 역사가 어떻게 형 성되어 있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게 되면, 저승 세계의 구조적 체계 같은 사 후 세계의 존재 방식과 그 구체적인 형상에 대해 오히려 현실 세계보다도 더욱 생생하고 구체적인 이미지들이 산출되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죽음 이후의 상상적 세계의 시공간 구조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정신적 구조는 언제나 현세의 삶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중요 한 요인으로 작용해왔던 것이다.1)

이처럼 죽음 이후의 세계는 인간이 미리 경험 가능한 세계가 아니며 단 지 그것이 존재한다는, 혹은 존재했다는 흔적들로부터 재구축되어, 궁극적 으로는 진실을 방불하는 박진감 넘치는 서사적 공간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 는 세계이다. 죽음이라는 미지의 영역을 개념적 수준에서 해명하여야 하는 철학자의 과제와 감각적 이미지로 다루어야 하는 예술가의 과제 사이에서, 두 가지 서로 다른 영역을 모두 포괄하는 형식으로 죽음 너머에 존재하는 세계에 대해 언어를 통해 형상화 했던 문학가에게 있어서 그 인간의 인지 가 닿을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언어적 구성력이란 긴요하고도 중요한 것이

1) 자크 르 고프(Jacques Le Goff)는 고대 힌두교에서부터 그리스, 로마의 사상을 거쳐 기독교의 교리와 단테의 뺷신곡뺸에 이르는 사상적 도정을 통해서 이승과 저승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적 공간으로서 ‘연옥’의 의미적 역사를 살피는 과정에서 죽음 이후의 세계 의 존재 근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연옥이란 기독교의 원시적 체계가 중세에, 그리고는 카톨릭적인 형태로 발전해감에 따라 덧붙여진 부수적 지엽만은 아니다. 저승은 여러 종교 및 사회들이 갖는 광대한 지평들 중 하나이다. 모든 것이 죽음에서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신자의 삶은 달라 진다. / 연옥 신앙의 출현과 수세기에 걸친 형성과정은 기독교적 상상 세계의 시공간적 구조의 실질적인 변모를 전제로 하는 동시에 그 변모를 초래한다. 그런데 시공간의 이 러한 정신적 구조들은 한 사회의 사고 및 생활 방식의 기반이다. 고대 후기로부터 산업 혁명까지 지속된 긴 중세의 기독교 세계가 그러했듯이 사회가 온통 종교로 침윤되어 있을 때에는 저승의 지리 곧 우주의 지리를 변경한다는 것, 내세의 시간을 즉 현세의 역사적 시간과 종말론적 시간 사이의 관계를 변모시킨다는 것은 느리지만 근본적인 정 신적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삶을 바꾸는 것이다.”(자크 르 고프, 뺷연옥의 탄생뺸, 최애리 옮김, 문학과 지성사, 1995, 20면)

아닐 수 없다. 앞서 자크 르 고프가 수많은 연옥에 대한 종교적 사유 끝에 단테의 뺷신곡뺸을 두고서 그것이 연옥의 개념을 교향악적으로 완성시킨 것 이라 찬탄하였던 것은 다음 아니라 연옥의 개념이 뺷신곡뺸 속에서 이루어진 단테와 베르길리우스의 나흘 동안의 연옥 여행을 통해 비로소 그 서사적인 육체를 갖출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2)

다만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상상력이 기독교라는 종교적 형식을 통해 오랜 기간에 걸쳐 구체화되어 비로소 분명한 서사의 육체를 구성할 수 있었 던 서구의 사례에 비한다면,3)동양에서, 특히 전형적인 유교 중심의 사회였 던 조선에서 사후 세계에 대한 사유는 그리 중시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철저 히 현생의 삶과 도의 추구에 맞추어진 유교의 교리적 관점에서 본다면, 죽음 이란 결국에는 현재의 인생의 마무리이며, 단지 쉴 곳으로만 간주되었던 것 이다. 이미 공자가 죽음이나 귀신같은 사후 세계의 영역에 대해서 말을 아꼈 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거니와 그것은 사후 세계의 존재성을 부정하고 자 한 것이라기보다는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철저하게 현재의 삶에 두었던 까닭인 것이다.4) ‘죽음’을 또 다른 세계를 향한 열린 전이적 계기로 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 세계의 완성이자 천명의 수용이라는 관점으로 보는 종교 적 교리의 차이가 조선 시대의 인간들 대다수의 지배적인 정신 내면을 구축 하였을 것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로 생각되지 않을 수 없다. 하지 만, 당시 조선 시대에는 정치체제와 결합된 지배적인 종교로서 유교 외에, 현생보다는 죽음이후의 내세에 대한 관념을 널리 발달시켰던 전통적인 민속

2) 자크 르 고프, 앞의 책, 639면, “단테가 연옥을 그처럼 풍부한 것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 적극적 중개 역할을 이해했기 때문이며, 그 공간적 구현과 자신이 믿는 바 영적 논리의 형상화를 통해 그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단테는 자신의 우주론 과 신학을 조화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중략) 하지만 그의 우주론과 철학과 신학이야말 로 그의 시의 소재이며 정신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도외시할 수 있겠는가.”

3) 필리프 아리에스, 뺷죽음 앞에 선 인간뺸 상, 하, 유선자 옮김, 동문선, 2006; 필리프 아리 에스, 뺷죽음의 역사뺸, 이종민 옮김, 동문선, 1998.

4) 이희재, 「죽음에 대한 유교의 인식」, 뺷공자학뺸 15, 한국공자학회, 2008, 122~126면.

신앙이나 불교 혹은 도교에 폭넓은 이해가 공존하고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유교 이외의 종교적 신앙을 통해 발원한 사후 세계에 대 한 상상력이 근대에 이르기까지 구성되어온 인간의 정신적 구조에 폭넓은 영향을 주고 있었던 사실만큼은 부인하기 어려운 것이다.5) 물론 이러한 도 교나 불교의 교리는 그 영향력의 측면에서 사후 세계에 대한 독특한 관념이 근대에 나타난 죽음에 대한 인식과 그 서사를 해명하는 데 있어서 한계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어느 정도는 분명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6)

인간에게 내재된 죽음에 대한 의식과 사유는 한 시대에서 경험할 수 있 는 사상과 철학을 종합하여 구성되는 초월적인 것이며, 사후 세계에 대한 문학예술적 형상화는 그러한 죽음에 대한 의식을 반영하여 구축되는 것이 다. 따라서 문학에 나타난 죽음에 대한 의식을 해명하고자 한다면 한국의 전통 무속신앙이나 불교, 도교, 혹은 유교 등 지금까지 조선을 거쳐 한국인 의 죽음에 대한 의식을 지배해왔던 다각적인 종교와 신앙의 영향성을 충분 히 고려할 필요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한국의 근대 문학에 나타난 죽음의 양상을 해명하고자 한다면, 조선 이전 시대로부터 인간 정신의 내면 을 통해 내려오던 무속 신앙이나 불교의 전통적 죽음 관념과의 연결을 고 려하는 것은 긴요한 일이 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연구적 관점에서 간과하 기 어려운 점은 이러한 죽음에 대한 의식이 시대와 공간을 넘어서 불변하 는 단일한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재구성되는 것이라는 사실 이다. 죽음이라는 대상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의 정신이 해명하지 않

5) 정출헌, 「15세기 귀신담론과 유명서사의 관련 양상-김시습의 「귀신론」과 「남염부주지」

를 중심으로」, 뺷동양한문학연구뺸 26, 동양한문학회, 2008, 419~448면.

6) 김동식, 「신소설에 등장하는 죽음의 양상-소문과 꿈을 중심으로」, 뺷한국현대문학연구뺸 11, 한국현대문학회, 2002, 47~51면, 김동식은 역시 마찬가지의 문제의식에 봉착하여, 신소설에 두드러지게 등장하고 있는 죽음은 유교의 죽음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의 식 저변에 널리 퍼져 있던 무속신앙에서 비롯된 것으로 결론짓고 있다. 이는 소설은 인간의 세속화된 삶의 내밀성의 재현하는 양식이므로 유교 의식이 아니라 무속 신앙이 소설 속의 죽음에 반영될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합리적인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으면 안 되는 가장 어려운 난제인 까닭으로, 바로 이 죽음에 대한 의식과 문학예술적 형상화 속에는 시대가 허용하는 한 인간이 수행해낸 가장 고도 의 지적인 노력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상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동안 한국의 근대 문학 작품들에 담겨 있는 죽음이라는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 불교나 도교, 혹은 무속신앙에 드러난 한 국의 전통적인 죽음 의식을 충분히 참조해 온 것은 충분한 의미를 갖는다.

근대적인 인간들에게 있어서 신화나 민담 등의 이야기의 양식이나 가족 등 친밀성의 관계를 통하여 죽음에 대한 무의식에 가까운 경험들이 축적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마찬가지 관점에서 근대에 이르러 새 롭게 번역된 죽음과 관련된 개념과 기호들이 문학에 차용되면서 새롭게 서 사적 육체를 가지고 의미화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간과되기 어렵다. 이는 최 근 한국의 초기 근대문학에 나타나고 있는 ‘죽음’ 혹은 사후 세계의 영적인 계기들에 대한 일련의 연구들이 근대 초기 한국에 도입된 서구 철학 등 번 역된 근대적 사상으로부터 죽음에 대한 세계적 구축의 양상을 확인하고자 하는 일련의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궤에 속하는 것이다.7)

본 논문은 조선시대를 굳건하게 떠받치고 있었던 정치 이념으로서 유교 가 쇠퇴하면서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서구 기독교(서학)와 동학의 이념 속 에 내포되어 있던 사후 세계에 대한 의식과 상상력이 근대문학에서 드러난 사후 세계에 대한 서사화 과정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 하는 것을 살피고 자 하는 기획의 일단으로, 20년 이후 한국 근대 문학에 적극적으로 등장하

7) 이철호, 뺷영혼의 계보-20세기 한국문학사와 생명담론뺸, 창비, 2013, 이철호는 한국 근 대문학에 있어서 영혼의 계보를 논하는 자리에서 주로 그것이 에머슨을 수용하는 과정 에서 약동하는 영혼의 사유가 도래되었다고 파악하고 있다. 그는 이를 이른바 다이쇼 생명주의의 수용 과정의 일부로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서구 낭만주의 정신의 번역으로부터 도래한 영혼의 사유가 단지 축자적으로 전신된 것이 아니라 보다 궁극적 으로 상응하는 국면을 갖는다는 사실을 밝히는 과정은 결국 당대의 종교나 철학에 표현 된 생명의 반대면으로서 죽음에 대한 사유를 해명하는 과정을 빠뜨리고서는 불가능한 국면을 갖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문서에서 저작자표시 (페이지 177-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