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사에서 김수영의 문학은 비평적 / 이론적 화약고와 같다. 한국 문학이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이라는 양대 진영으로 양분되기 시작한 70년대 이후, 김수영의 시와 시론은 한국 비평의 이분법적 경계가 무화되는 지점이 자 동시에 양 진영의 새로운 이론적 규범들을 폭발적으로 재생산시키는 뇌 관이었던 것이다.1)언어에 대한 의식을 중시하는 모더니즘에서부터 현실의 직접적 변혁을 기획하는 저항적 리얼리즘에 이르기까지, 김수영을 향한 한 국 비평의 진영을 막론한 편애로 인해 김수영 시 해석의 역사는 늘 새롭게 재구성 되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비평은 자기 갱신이 필요한 시점에 이를 때면 어김없이 그를 일종의 비평적 지렛대로 활용하곤 했는데, 당대의 정치 적 현실에 비추어 김수영에 대한 표상을 각 진영의 문학적 입장에 입각하여 변주하는 흐름은 주지하듯,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물론 문학과 정치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탐문해야 할 시점에 이를 때마다 김수영이 호출되는 현상이 단순한 우연은 아니다. 무엇보다 김수영의 시와 시론의 텍스트 내재 적 특성과 더불어 그의 시가 한국시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야말로 문학 과 정치를 동반 사유하려는 비평적 욕망을 지속적으로 자극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두 가지 맥락으로 이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한국 현대시의 계보에서 정치의 문제와 시적 사유가 현대성이라는 문제를 매개로 밀접하게 연동되기 시작한 것은 김수영에 이르러서이다. 그 는 현대 한국시사에서 개인/ 사회, 문학/ 현실의 관계를 하나의 종합적 문제 로 다뤄야 한다는 태도의 시원을 이룬다. 문학과 현실이 동떨어진 것이 아니
1) 이러한 현상을 ‘창비’와 ‘문지’의 대립 구도 속에서 1970년대 문학사를 설명하는 사례로 연구한 것으로 최현식의 연구를 참조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김수영은 두 진영의 공통 분모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김수영에 대한 다른 독해를 통해 각 진영의 자기동일성 을 확장시켜 나갔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이에 대해서는 최현식, 「다중적 평등의 자유 혹은 개성적 차이의 자유- 유신기 시 비평의 두 경향」, 뺷민족문화연구뺸 통권 58호, 고려 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13, 32면.
라 하나로 맞물려 있다는 것을 치열하게 고뇌하고 그것을 시로 육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가 바로 김수영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정치와 문학의 관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많은 작가들에 의해 개진되었지만, 그것이 시 인의 문학적 상상력과 시작의 방법론, 특히 현대성에 대한 사유와 긴밀하게 결합되었던 것이라 할 수는 없었다. 이에 반해 김수영은 자신이 추구하는 시의 현대성(모더니티)이 궁극적으로는 민주주의의 정치적 혁명으로 수렴 될 때에 비로소 유의미해질 수 있다고 여러 군데에서 밝힌다. 4․19가 일어 났던 60년, 김수영은 더욱 빈번하게 시와 산문을 통해 민주주의 혁명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한다. 때로는 환희에 찬 목소리(“사실 4․19 때에 나는 하늘과 땅 사이에서 ‘통일’을 느꼈소. 이 ‘느꼈다’는 것은 정말 느껴본 일이 없는 사람 이면 그 위대성을 모를 것이오.”)로 혁명의 미를 노래했으며(“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그처럼 아름다워 보일 수가 있습디까!”)2), 때로는 비애가 짙게 내 려앉은 실망감으로 혁명의 미진함을 토로하기도 하였다(“혁명은 안 되고 나 는 방만 바꾸어버렸다”).3) 그리하여 그가 끝내 “말하자면 혁명은 상대적 완 전을, 그러나 시는 절대적 완전을 수행하는 게 아닌가. 그러면 현대에 있어서 혁명을 방조 혹은 동조하는 시는 무엇인가. 그것은 상대적 완전을 수행하는 혁명을 절대적 완전에까지 승화시키는 혹은 승화시켜 보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4)라고 토로할 때, 그는 현대시의 시작 원리와 사회적 혁명 사이 의 관계를 동일한 지평에 올리면서 양자에 가로놓인 심연과 같은 간극을 메우기 위한 구체적인 원리를 모색하는 중이었다.
둘째, 그런데 그의 사유들은 그 자체로 논리적으로 엄밀하게 구축된 결과 물이라고 할 수 없어서, 종종 해석자의 욕망이 투사될 수 있는 통로를 지나 치게 넓게 열어놓는 측면이 있다. 요컨대, 시와 현실 / 정치에 대한 김수영의
2) 김수영, 「저 하늘 열릴 때」, 뺷김수영 전집2뺸(이하 뺷전집2뺸), 민음사, 2003, 495면.
3) 김수영, 「그방을 생각하며」, 뺷김수영 전집1뺸(이하 뺷전집1뺸), 민음사, 2003, 205면.
4) 김수영, 「일기초」, 뺷전집2뺸, 495면.
사유가 개념적으로 엄밀하게 개진되기보다, 시인 특유의 직관과 비약에 의 해 산발적으로 선언되어 일종의 혼란을 초래하는 측면이 있다는 뜻이다. 그 는 한 월평에서 “이달에도 시의 현실참여를 주장해 왔고 내달에도 그것을 주장할 참”5)이라고 말하다가도 다른 곳에서는 “반드시 사회참여적인 것이 나 민족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최소한도 작품다운 작품”6)이 필요하여 “우 리의 생활현실이 담겨 있느냐 아니냐의 기준”이 “시의 새로움”7)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언어의 시학적 갱신을 목적으로 삼는 모더니스트의 면모를 부각 시키기도 한다. 특히, 자주 인용되는 그의 글 「시여, 침을 뱉어라」에서는 이 를 ‘온몸의 시학’으로 복잡하고 일면 비의적으로 서술하는데, 이러한 복잡성 에 대해서도 김수영 나름의 분명한 명분이 있다.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 지 시를 논하는 사람이 아니며, 막상 시를 논하게 되는 때에도 그는 시를 쓰듯이 논해야 할 것이다.”8)그러니까 그는 시론을 논리적인 설계 하에 구축 하려 하지 않고, 하나의 시로서/로써 시론을 쓰려 했던 것이다.9) 이와 같은 김수영의 태도는 그의 시론이 내장하고 있는 논리적 비약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그는 시와 세계에 대한 직관적 사유의 조각들을 산문 의 저변에 흩어놓는 데 열중하였는데, 이 산발성과 시인 특유의 직관적 언어 가 결합함으로써, 김수영의 시와 산문은 그 어떤 진영의 독자들도 스스로의 비평적 욕망을 투사시키기 좋은 개방적 텍스트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변주의 계보학 맨 앞자리에 놓여 있는 것이 바로 민족문학론이다. 오 늘날과 같이 김수영에 대한 해석들이 이분화되기 전, 70년대의 민족문학론
5) 김수영, 「시인의 정신은 미지」, 뺷전집 2뺸, 255면.
6) 김수영, 「생활현실과 시」, 뺷전집 2뺸, 260면.
7) 위의 글, 264면.
8) 김수영, 「시여, 침을 뱉어라」, 뺷전집 2뺸, 397면.
9) 김수영이 시론이 지니고 있는 내용적 모호성이 그의 시적 세계관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에 대해, 다시 말해 시를 쓰듯이 시론을 쓰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는 졸고,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무엇인가? - 김수영의 「시여, 침을 뱉어라」에 부쳐」, 뺷시인수첩뺸 가을호, 2013.
은 김수영에 대한 비평적 헤게모니를 선취함으로써 문학이 사회적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비평적 전거를 마련하고자 했다.10)이 과정에 서 김수영은 단순한 참조점 중 하나에 그치지 않았다. 이를테면, 민족문학 론을 이끌어 온 비평가 백낙청이 리얼리즘론의 이론적 모색을 꾀하는 중요 한 입론들에서 어김없이 김수영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 다.11)특히 70년대에 이르러 민족문학론으로 수렴되기 시작한 일련의 비평 적 흐름들 안에서 김수영은 더더욱 중요한 전거이자 대결 대상으로 거듭나 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특기할 만하다, 이와 관련하여 백낙청은 2000년대 후 반부터 평단에서 일었던 ‘문학과 정치’ 논쟁에 개입하는 가운데, 논쟁의 과 정에서 끊임없이 활용되고 있는 김수영의 미학적 / 정치적 잠재성을 민족문 학 진영이 일찍부터 발굴했음을 다음과 같이 회고한 바 있다.12)
다른 한편 ‘삶과 정치의 실험’이 문학의 진정한 새로움에 필수적이라는 인식을 갖고 ‘진지한 고뇌’를 1970년대부터 진행해온 한국평단의 다른 흐름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학에서의 현실인식과 문학인의 정치적 실천을 강조하면서 도 예술성을 희생하는 정치주의를 경계하고 ‘현실재현’에의 과도한 집착을 넘어서 는 길을 모색해온 리얼리즘론은리얼리즘론은리얼리즘론은, 모더니즘의 극복이 김수영에게서 이미 시작되었다는 리얼리즘론은리얼리즘론은, , , , , 모더니즘의 모더니즘의 모더니즘의 모더니즘의 극복이 극복이 극복이 극복이 김수영에게서 김수영에게서 김수영에게서 김수영에게서 이미 이미 이미 이미 시작되었다는 시작되었다는 시작되었다는 시작되었다는 인식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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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최근 연구 중에서 김수영을 비평적 참조점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한 ‘창비’ 그룹에 대한 분석한 것으로 주목할 수 있는 글들은 다음과 같다. 최현식, 「다중적 평등의 자유 혹은 개성적 차이의 자유- 유신기 시 비평의 두 경향」, 뺷민족문화연구뺸 통권 58호,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13; 박연희, 「1970년대 뺷창작과비평뺸의 민중시 담론」, 뺷상허학보뺸, 41호, 2014.
11) 백낙청의 비평적, 이론적 진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글로 평가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시민문학론」, 뺷창작과비평뺸 여름호, 1969; 「문학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뺷창작과비평뺸 여름호, 1973; 「역사적 인간과 시적 인간: 민족문학론의 창조적 지평」, 뺷창 작과비평뺸 여름호, 1977.
12) 2000년대 후반부터 제기되었던 ‘문학과 정치’ 논쟁에서 김수영이 자주 언급되는 현상에 대한 분석으로는 정한아, 「운동의 윤리와 캠페인의 모럴 - ‘시와 정치’ 논쟁에 대한 프래 그머틱한 부기」, 뺷상허학보뺸 35호, 상허학회, 2012를 참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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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이기도 했다.13) (강조는 인용자)
이미 70년대부터 김수영의 가능성을 읽어냈다는 백낙청의 자신감 넘치는 발언은 주목할 만하다. “모더니즘의 극복이 김수영”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판단은 물론이거니와, 김수영을 지양해야 할 필요성(“김수영에게서 한발 더 나가 민중의 현실에 한층 밀착할 필요성”)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민족문학론 이 걸어온 이론적 발전과 변화의 궤적이 암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민족문학론의 이론적 구조를 고찰하 기 위한 예비적 작업의 일환으로 김수영에 대한 민족문학론의 해석학적 역 사를 고찰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 글은 김수영에 대한 단순한 연구사 검토를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그보다 민족문학론이 70년대의 유력한 비평적 담론 으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과 그것의 이론적 구조를 분석하기 위한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로서 김수영과 그에 대한 백낙청의 해석을 활용하고자 한 다. 특히 앞서 언급한 백낙청의 평론들이 내면화하고 있는 논리와 그러한 맥락 속에서 표상화되는 김수영의 시적 특성은 더욱 세심한 독해를 요한다.
단순히 그가 민족문학론을 이끌었던 중요 이론가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백 낙청의 김수영 해석이 변화해 나가는 궤적이 곧 한국문학에서의 민족문학론 이 진화해 나가는 과정을 상동적으로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을 미리 당겨 말하면, 백낙청이 김수영을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인 중 하나 로 거론하다가(「시민문학론」) 다시 그를 비판하고 끝내 결별하게 된(「역사 적 인간과 시적 인간」) 사연을 추적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70년대 민족문 학론의 논리에 닿을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김수영에 대한 민족문학론 진영의 해석과 평가 속에서, 혹은 이러한 일련의 독법들이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민족문학론 특유의 인식 구조를 밝 혀내는 일이다.
13) 백낙청, 「우리시대 한국문학의 활력과 빈곤」, 뺷창작과비평뺸 겨울호, 2010, 2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