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순원왕후 언간의 현황과 특징
3. 왕실 생활상의 반영
순원왕후는 1802년부터 약 55년간 조선 왕실의 상징적인 존재임과 동시에 실 질적으로 막강한 권력을 지닌 여성이었다. 특히 순원왕후의 언간에는 왕실에서 벌어지는 생활상에 대한 다양한 단상과 왕실의 언어적 특징 및 왕실 내부의 정 치문화를 잘 반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왕실 정치의 비밀스러운 상황을 처리하 는 방법44), 왕실 내에서의 치병행위에 대한 실상 등이 보이기도 한다. 특히 헌종 의 지나친 음주로 건강을 잃을까 염려하면서도 왕실의 후사가 걱정된다는 내 용45)과 수렴청정에 대한 심적 부담감46) 등 왕실 일상에 대한 개인적 정서가 나
43) 덕온공주는 어머니 순원왕후의 명으로 아버지 순조가 쓴 자경전기를 한글로 풀어썼다. 길이 는 528센티미터이다. 그 외에도 <고문진보>의 ‘양양가’ <비파행><낙지론><적벽부><출사표>
등을 필사했다. 23세에 세상을 떠났지만 공주로서는 가장 많은 양의 한글 자료를 남겼다. 이는 조선 왕실 3대에 걸친 효성을 잘 보여주는 유물임과 동시에 덕온공주의 글씨의 역량을 유감없 이 보여주는 명품이다.
44) “갑오화변은 지금 각면 그 엇디여 셜워엿던고 시븨 오라바님긔셔야 뉘가 업수이 보 니가 이실가 본고 그러니 밋 가 잇더니 지금 당여 누 힘이 업스니 됴뎡 일이 므
이 될디 모게 여시니 내가 업고져만 시븨 어즐 이만 긋티니 짐쟉 보소 휴지 쇼화소<순 원봉서-12, 1849년, 순원왕후(재종누이)→김흥근(재종동생)>” 이렇듯 왕실여성의 언간은 왕실과 조정 내부의 비밀스러운 의견을 청하는 내용도 있기 때문에 알려지면 곤란하다고 생각하여, 언 간의 말미에 ‘셰쵸소, 쇼화소’를 덧붙이기도 했다. 이는 언간을 받고 확인한 후 바로 없애버 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45) 홀연이 과음신다 말이 외간디 쟈쟈여 안흐로 드러오니 못 잡 술을 엇디 일됴의 그 리 과히 진어실가 본고 실샹 그러면 걱졍이오 쳬다 양 시니 긔 념녀로세 금슬노 닐너 도 아딕은 감감니 이슌 이제야 넘어 겨시니 아기가 밧븐 거시 아니로 그져 사과 다시 니 기리 이 밧븐 니 어셔 졍궁의 탄휵을 라 졈은것들 이시니 엇더넌디 그도
역 텬의니 엇디고 아모 라도 튼튼이 나흐면 대이게 엿<순원봉서-27>
타나기도 한다.
첫째, 생생한 언어 생활과 정치적 상황의 결합을 통한 왕실의 생활상을 잘 보 여준다.
(1) 가. 이 연 보고 웃기도 우 거시오 오감저이도 알 거시로 튱졍으로 난 말이로 세 나 무이 디내 평안이 디내게 소 휴지 즉 셰초소<순원어필-21, 1849 년>
나. 나 늙은 형셰 업 홀어미니 내 이리들 뉘 므어시라 리 여 이리니 졀분기 측냥업 만일 슈작이 다시 잇거든 다시 말려 회셔 말고 이런 휴지 즉시 쇼화소<순원봉서-11>
위의 (1가)는 1847년 봄, 김흥근이 귀양 가 있을 때 보낸 것으로 안부와 함께 임금을 원망하지 말고, 군신유의를 지키고 있으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 위로하 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당대 언어문화적 요소가 들어 있는데, 명령형 종결어 미 ‘-디내게 소’와 같이 ‘’체 등이 나타나고 있다. (1나)는 친정오빠 둘(김 유근, 김홍근)이 세상을 떠나 김흥근만 남아 있는 상황에서 조정 대신들과의 의 견 대립으로 인하여 분한 마음을 토로하고 있으며 판셔로 있을 당시라 1842〜
1851년 1월 이전의 언간으로 ‘’체, ’체를 사용하고 있다.
이와 같이 왕실의 언간들은 대개 왕실 가족을 중심으로 주고받으며 안부를 전 하는 내용들이었다. 내용상으로는 개인적인 신세 한탄과 대비로서 왕실의 일을 주관하면서 겪은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이지만, 단순히 일반 사대부가의 여성들이 가족들에게 털어놓는 것과는 다른 왕실의 특수한 일상과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
둘째, 순원왕후의 언간은 진솔한 개인의 정서를 잘 보여주고 있다. 아래의 예 문 (2)의 언간들이 가장 대표적인데, 발신자의 솔직한 감정이 있는 그대로 전달 되어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사건들이 실감나게 수용되기도 하였다.
46) 어 과 이 평안 적이 업더니 셩산이 뎡명셔 가당티 아닌 짐을 버니 위종샤
여 경츅 외 내 몸의 한가과 집을 위여셔 홀노 만분이 아니니 각록 싀훤
내가 이리싀훤여 샹을 겨셔 보디 못시니 그도 셟데 도 일 잇 마다 잘 여 내라 심히 보채여시니 이제 각여도 즈질티 아니가 쾌 연을 번 베플고져 벼르 기 고도 못엿더니 이제야 뎍<순원어필-09>
(2) 가. 텬품의 명민 긔이시던 거시 그린 이 되며 녜일이 되어시니 이제야 뉘가 본 셩의 비샹시던 줄을 알 니가 업스니 앗갑고 원통기 죽기 젼 엇디 이질고
갓 믈욕의 므든 님군으로만 알 일이 원통원통<순원어필-03>
나. 대뎐의셔 결단코 그른 일은 아니실 거시오 <중략> 고집은 약간 겨시나 츈츄 더시면 그도 나으시오리이다<순원어필-10>
다. 텰념을 니 외견 과연 싀훤타 속은 것만 디 못여 답답오이다 엇디 만긔지무를 급이 다 잘실길이야 잇오리잇가마보도를 자여 쳐 드 려야 될 일이니 속이 답답오이다 이 은 언제나 싀훤히 트일디 모게오 며<순원어필-23>
(2가)는 1849년 6월 헌종이 승하하고 사우제(四虞祭)를 지낸 후 김흥근에게 보 낸 것으로, 헌종이 명석했던 성품이 아깝고, 물욕에 어두운 임금으로 비춰질까봐 원통하다는 순원왕후의 감정이 잘 묘사되었다. 순원왕후는 자신이 오래 살아 있 다는 것이 한탄스럽고, 철종의 성품이 어질고 잘 보필하면 종묘사직을 잘 이끄는 데 충분한 자질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왕실의 주체로서 지녀야 할 덕목과 자질 의 부족함을 염려하고 있다. (2나)는 철종을 추대한 것에 대한 불안감을 솔직하 게 드러내고 있다. 특히 철종의 고집과 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매우 심각 하게 걱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다)는 1851년 수렴청정을 철렴하면서 쓴 것 이다. 정치적 역할을 마무리하면서 느끼는 개인의 감정이 후련함과 걱정스러움이 교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철종에 대한 실망과 기대가 복잡하게 얽혀 종 잡을 수 없는 근심이 핍진하게 나타난다.
1850년에 조카 김병주(육촌오라버니 김홍근의 아들)의 과거급제를 계기로 집안 의 육촌형제들이 화목한 일가를 이루기를 바라는 순수하고 기쁜 마음을 나타내 고 있다.47) 철종 부친의 사례를 통해 왕실 사당의 운영에 관한 시각을 보여주기 도 한다.48) 그리고 덕온공주의 죽음을 맞이하여 딸에 대한 애정이 잘못된 장례
47) 무결의 챵방 보고 즉시 교외로 나갓다 니 쇼동누의 미를 이 드렷가 시브니 웃진
의 관복모양을 보니 동탕풍의가 교관 직명이 가니 외양과 가 기 라고 든든 깃 브기 측냥업<순원어필-08>
48) 샹감긔셔 능묘소의 녀오며 대원군 궁의 거동을 시랴 시니 그아딕 말노 어량 치기 여시친으로 졍은 그러종묘 츈츈 뎐알처로 마다 시기아니실 일인
절차로 이어지는 순원왕후의 감수성이 잘 들어난 사례가 등장하기도 한다.49) 철 종의 비를 간택하는 과정에서 사돈이 갖추어야 할 덕목에 대한 순원왕후의 인식 을 보여주는 언간도 발견된다.50) 뿐만 아니라 새해맞이에서 왕실의 어른으로서 백성들을 생각하는 애민정신이 잘 반영되기도 하였다.51) 그리고 언간의 가장 일 반적인 특징인 단순 안부가 잘 반영된 사례가 등장하기도 한다.52)
셋째, 덕온공주의 병치레로 인하여 왕실 주체의 치병 행위와 그 실상이 잘 나 타나기도 한다. 이에 관련된 자료는 특히 국립한글박물관에 소장된 <순원왕후언 간>53)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된다.
(3) 가. 마염이 심니 브리디 못더니 셔증으로 긋디 아니가 시브니 오은 엇더
디 념이며 덕온도 일젼 은진 긔운 잇고 날이 더워 그러디 므어시 돗져기고 마안질도 잇고 조여 뵈기 오챵열이게 므러 약방문을 내여 그제 어제디 두 텹 먹어시나 은진은 믁던 날 밤브터 관겨티 아녓이 약은 은진 말고 년 거 시니 관겨티 아닐디 의심스러워 방문 보내니 보고 므러 보소 안질은 븟고 싀기
가지오 <중략> 다약은 브졀업스니 보아 가며 면 됴흘 돌임이엇나
니 그러디 풍열인디 보아 알게 <순원한글박-10, 1838∼1843년>
나. 봉셔 보고 무이 디내일 든든 깃브나 비아니 오고 무더워 일긔 심히 거 복니 조심여 평안이 디내고 앗가 편지엿더니 거의 보아실 며 몬져
연의 다 엿<중략> 소드믈 도 잇고 담이 되다 믉은 담은 아니니 나으랴 그러디 그 말도 므러보소<순원한글박-09, 1838∼1843년>
다. 일간 무가 본긔셔도 엇디 브지시디 이심오실가 일라 디 내<중략> 쟝지 오년이니 아니 이샹가 본가 려워던 거낫다 혹
기샹회슈로 기<순원한글박-12, 1841∼1844년>
니<순원어필-12>
49) 공쥬의 묘디로 여러 곳을 보다 맛당가 업고 예다폐 업고 만타 말을 듯고 게 로 뎡기신니가 업다 면 모잇게 되면 이셔 모히거시 텬니 인졍의 합
기 그리로 완뎡여 셔계디 여 치표 뎡디 일이오<순원어필-17>
50) 돈 목이 극난거시 문이나 잇고 심지나 튱후고 상감을 잘 도와 드릴 목이야
<순원봉서-01>
51) 환셰 평안히 시고 신졍 긔운 평온신디 알고져 오며 <중략> 감회 비원더이<순원봉 서-24>
52) 텬쳥시과져 연이니 도 짐쟉려니와<순원봉서-04>
53) 국립한글박물관(2019), 앞의 책, 312∼363쪽.
라. 야간 평안이 디내일 알고져 나가지로 디내겨 태화탕을 그
이 먹텹식 두 텹식 먹엇머리가 알프다 여 겨요 세 번 긋치고
리기를 더로 다 고 그러여 시작긔 근 이십 일이나 되아홉 텹을
리기를 더로 다 고 그러여 시작긔 근 이십 일이나 되아홉 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