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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간의 형식적 특징

문서에서 순원왕후 언간의 국어학적 연구 (페이지 40-0)

Ⅱ. 순원왕후 언간의 현황과 특징

4. 언간의 형식적 특징

19세기의 왕실 여성들의 언간은 그 이전 시기와 비교하면 양적으로나 질적으 로 풍부한 편이다. 특히 이 언간들은 낱장으로 되어 있지 않고, 여러 장이 묶음 형태로 전하고 있다. 언간은 오늘날 편지와 같이 사연을 적는 내지(內紙)와 그것 을 담는 봉투(封套)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언간의 내지와 봉투는 사 연을 적는 위치부터 특정한 부호나 용어의 사용에 이르기까지 일정한 격식을 갖 추어야 했다.54) 본 자료 또한 봉투에 넣어 한 번 더 싼 상태로 보관되어 있는데, 예법과 격식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19세기 왕실 여성들의 언간 자료의 경우, 그 이전의 언간에 나타나던 안부 중심의 내용적 형식 관련 투식성은 계승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왕실 여성들은 언간을 통하여 진솔한 개인의 감정을 전달하였고, 왕실 밖에 있는 친척들과 서로의 안부를 묻는 과정에서 가족이라는 연대감을 끈 끈하게 형성하려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순원왕후의 언간 역시 이러한 특징들을 잘 가지고 있으며, 이는 19세기 언간의 형식적 특징의 사례로 문헌학적 가치가 높아보인다. 특히 민간 사대부 여성들의 언간과는 달리 봉투가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19세기 왕실 여성 언간의 봉투의 형식적 특징을 검토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다. 뿐만 아니라 봉투와 내 지를 별도로 두어 발신자의 사회적 지위 등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형식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나아가 궁체로서 전형적인 진흘림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서체는 근현대를 거치면서 한국의 한글서예사의 핵심적인 서체로 자리매김하였 다.

첫째, 중봉과 단봉으로 나뉘어진 봉투의 형식적 특징이 잘 남아 있다.

현존하는 민간 사대부들의 언간들 중에는 내지(內紙)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 다. 순원왕후의 언간인 경우 상대적으로 봉투와 내지(內紙)가 모두 남아 있는 경 우가 많다. 다만 재종동생이나 사위, 딸등 가족들 사이에 오고 갔던 언간들인 경 우 가족적 친밀성으로 인하여 처음부터 봉투가 없었을 수도 있고, 언간들이 전해

54) 황문환(2015), 조선시대의 한글 편지 언간, 역락, 55쪽.

내려오는 과정에서 분실했을 가능성도 있다. 순원왕후의 언간들인 경우에는 비교 적 보관 상태가 양호한 편이며, 봉투에 넣은 다음 한 번 더 종이에 싼 상태로 보 관되어 있다.

언간의 봉투와 내지는 사연을 적는 위치부터 특정한 부호나 용어의 사용에 이 르기까지 격식을 갖추었다. <순원왕후언간>의 봉투 규격은 길이 26.7㎝×넓이5.3

㎝, 24㎝×넓이5.3㎝, 26.7㎝×넓이5.3㎝, 23.6㎝×넓이5㎝, 23.5㎝×넓이5㎝, 23.7㎝×넓 이5㎝, 22.2×넓이5.6㎝ 등으로 다양하게 남아 있다.

〔그림-1〕중봉의 예) 순원왕후어필(古貴 2410) 21/2-1

〔그림-2〕단봉의 예) 순원왕후어필(古貴 2410) 21/1-6

위의 이미지에서 알 수 있듯이 봉투의 종류는 봉투가 둘인 중봉과 하나인 단 봉으로 나뉜다. 〔그림-1〕의 경우가 중봉의 예이며, 이는 먼 지방을 왕복하는 경우나 상대방을 높여야 할 경우에 사용되는데 혼례 때 쓰이는 예장(禮狀) 같은 것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언간에서 중봉이 사용된 경우는 드물어 실물로 전하 는 예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위의 〔그림-1〕에서 보듯이 내지(內紙)를 넣는 데 쓰인 봉투와 그것을 다시 싼 겉종이를 통해서 중봉의 예를 <순원왕후언 간>에서 드물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55) 〔그림-2〕의 경우가 단봉56)의 예이 다. 이 경우 위의 표에서와 같이 봉투를 만들기는 했지만, 내지에 맞추어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먼저 사연을 적고 일정 간격으로 접은 후 봉투는 내지의 크기 에 맞추어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현전하는 언간의 실물을 보면 사연을 적은 내지가 봉투와 거의 같은 크기로 접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57) 단봉의 경우 한 문 간찰에서 내지가 봉투를 겸하는 방식이 빈번하였다. 이 경우는 수신자와 격식 을 따지지 않거나 급하게 보낼 때 사용하였다. 언간은 친척 간에 주고받는 경우 가 빈번했기 때문에 내지가 봉투를 겸하는 단봉을 많이 사용하였다.

그리고 봉투에는 대부분 관직명이 적히는 경우가 많다. 이를 살펴보면, ‘​교, 판셔, 니판, 판부​, 대신, 좌상, 참판, 도위, 남녕위, 셕촌, 남녕위 윤공계’ 등이 대 표적이다.

둘째, 내지(內紙)와 그 서식적 특징이 잘 드러난다.

내지의 크기는 대체로 23×5㎝, 24.1×5.1㎝, 21×5.3㎝, 12.5×96㎝, 24×36.8㎝, 24.2

×43.2㎝, 26×40.3㎝, 22.2×40㎝ 등으로 제각각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겉종이가 14

∼16㎝ 정도로 접혀서 내지를 싸고 있다. 글씨 크기는 대체로 2∼2.7㎝ 내외이며, 반흘림, 흘림, 진흘림체로 구성되어 있다. 언간에서는 반드시 수신자가 전제되는 만큼 발신자는 적절한 예법을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

내지(內紙) 내용의 형식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첫째는 전문이다. 여 기는 칭호와 안부를 묻는 인사말로 되어 있고, 둘째는 본문이다. 이는 주된 내용

55) 황문환(2015), 앞의 책, 57쪽.

56) 내지에 사연을 쓰고 접은 다음 그 접은 곳이 곧바로 봉투와 똑같이 중간을 기점으로 발·수신 자를 쓰고 아래 봉하는 부분에 이름을 쓰고, 근봉 등을 쓰는 것이다.

57) 황문환(2015), 위의 책, 58쪽.

을 서술하고 있으며, 마지막이 후문(後文)이다. 후문은 주로 기원(祈願)의 뜻과 월일, 성명으로 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오른쪽 끝에서 바로 시작하지 않고 여백 을 두고 쓴 것들이 있는데, 이는 내용을 쓰기 전에 내지가 봉투를 겸할 수 있도 록 봉할 부분의 여지를 남겨 놓은 것이거나, 내용이 넘쳐서 추가해야 할 경우를 대비한 것이기도 하다. 반면에 고문서 작성 시나 조선시대 언간에서 간혹 볼 수 있는 것은 시작하는 부분을 행을 바꿈과 동시에 머리부분이 본문보다 1∼3자 정 도 올려 쓰는 대두법이 있는데, 이는 발신자가 수신자를 대우할 때 사용하였다.

다른 대우 방법으로 간자법이 있는데 이는 행을 바꾸지 않고 단어 앞에 1∼3자 정도 비워 두고 쓰는 경우이다. 대두법에서 올려 적는 글자 수가 다를 수 있는 것과 같이, 간자법에서도 비워 두는 글자 수에 차등을 줄 수 있는데 이 경우를 격간(隔間)이라고도 한다. 대두법은 통상적으로 존대의 의미이기도 하다. <순원 왕후언간>에 사용된 여백과 대두법은 화제의 전환과 수신자에 대한 존대나 겸양 을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겸양을 표시하고자 할 때 자신을 명명하는 글 자는 다른 글자보다 절반 정도로 작게 쓰고 행의 오른쪽 끝에 치우쳐 쓰는 차소 법(差小法)이 쓰이기도 한다.

글자가 잘못되어서 삭제하고자 할 때에는 그 대상 글자에 점이나 원을 치거나 빗금 또는 까맣게 칠하기도 한다. 이 언간에는 삭제의 흔적으로 글자를 까맣게 칠한 것들이 보인다.

글자의 반복을 나타낼 때에는 다음에서 볼 수 있듯이 ‘걱졍〃〃/든〃’처럼 재 점이 사용된다. 특이한 것은 한 글자를 반복하여 쓰기도 하고 낱말을 반복하여 쓰기도 하는데 한 글자는 한 번(〃), 두 글자는 두 번(〃〃) 사용한다. 이렇듯 언 간에서는 글자 수만큼 반복 부호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판독할 때에는 문 맥을 고려하여야 한다.

셋째는 후문으로 본문 내용을 다 쓴 후에 우측 여백으로 돌아와 본문 내용보 다 조금 낮은 위치에서 발신 일자와 발신자를 쓰고 낙관을 하는 것이다.

그외에 겉종이가 추가되는 것이 큰 특징이다.

겉종이는 주로 봉투를 싸는 역할을 하는데 주로 수신인이 거주하는 지역 이름 으로 보이는 ‘광양, 뎐동, ​동, 계동, 이문​, 이문안’58) 등의 지명이 일반적으로 적혀 있거나, ‘봉셔’ 또는 수신인의 관직명 혹은 ‘병덕이’와 같이 이름이 적힌 것

도 종종 보인다.

언간의 서체 역시 주목할만 하다. <순원왕후언간>의 가장 대표적인 서체는 진 흘림체이다. 이 서체는 19세기에 언문의 보급과 필사본의 확산으로 인해 언간과 그 언간에 사용된 서체 역시 미적 대상이 되었다. 당시 왕실 여성 언간들은 일반 사대부 여성의 언간과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특히 문헌적 측면에서 뿐만 아니 라 한 시대를 살다간 인물의 솔직한 생각이 담겨져 있어서 그 시대의 생활상과 사회상을 조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조선시대 왕후들은 수렴청정을 하면서 많은 언간들을 남겼다. 이들 언간은 왕 후의 품격을 담은 서체로 나타나고 있다. 순원왕후의 글씨는 획의 연결이 자연스 러우면서 조화를 이루고 편안한 안정감을 준다. 필력은 자유분방하면서 능숙한 흘림체를 구사하여 수려한 필의로 고상한 인품과 위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서 왕후의 높은 품격을 보여준다.

현재 남아있는 조선시대 왕후들의 언간은 인목대비 김씨와 인조의 계비 장렬 왕후 조씨, 효종의 비 인선왕후 장씨, 현종의 비인 명성왕후 김씨,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 민씨, 사도세자의 비인 혜경궁 홍씨,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 김씨, 순조 의 비 순원왕후 김씨, 익종의 비 신정왕후 조씨, 철종의 비 철인왕후 김씨, 고종 의 비인 명성황후, 순종의 비인 순명효황후의 것이 있다.

이러한 조선시대 왕후들의 글씨를 보면 인목대비의 글씨는 17세기의 언간으로 궁체의 정형화 된 모양과는 차이가 보이는 자유롭게 흘려 쓴 민체에 가깝다. 장 렬왕후의 글씨는 서서히 궁체의 정형화된 모습으로 접어드는 모습이다. 인선왕후 의 글씨는 궁체 흘림에 가깝게 나타나며, 인현왕후의 글씨는 ‘ㅇ’의 기필이 가늘 고 세로획의 머리가 짧고 강하게 표현된 반흘림이다. 혜경궁 홍씨는 필세가 정적

이러한 조선시대 왕후들의 글씨를 보면 인목대비의 글씨는 17세기의 언간으로 궁체의 정형화 된 모양과는 차이가 보이는 자유롭게 흘려 쓴 민체에 가깝다. 장 렬왕후의 글씨는 서서히 궁체의 정형화된 모습으로 접어드는 모습이다. 인선왕후 의 글씨는 궁체 흘림에 가깝게 나타나며, 인현왕후의 글씨는 ‘ㅇ’의 기필이 가늘 고 세로획의 머리가 짧고 강하게 표현된 반흘림이다. 혜경궁 홍씨는 필세가 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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