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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원왕후언간>은 지금까지 규장각에 소장된 <순원왕후어필봉서(奎27785)>

33건, <순원왕후어필(古貴2410-21)> 25건으로 총 58건과 단국대석주선기념박물 관 4건, 국립한글박물관 30건, 조용선 소장 4건, 건국대박물관 1건 등, 총 96건에 달한다. 이 논문에서는 위의 96건의 <순원왕후언간>을 대상으로 발·수신자 별로 언간의 현황을 파악하고, 이를 통해 표기법과 음운, 문법적 특징 등 국어학적 논 의를 하였다. 본론에서 논의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제2장에서는 <순원왕후언간>의 발신자와 수신자 그리고 필사 연대, 생애 와 2대에 걸친 수렴청정, 언간의 내용을 판독하였다. 이를 통해 당시 정치적으로 일어났던 사건 등을 토대로 발·수신자와 작성 시기를 밝혀내고, 순원왕후가 수렴 청정을 하는 동안의 주변 인물들을 파악하였다. 수렴청정 과정에서는 왕과 대비 의 역할 규정을 ‘수렴청정절목’의 제정을 바탕으로 시행하였으며, 대비의 권한과 지위를 설정하여 국정 운영의 방법을 명문화하였다. 순원왕후는 56년간의 궁중 생활 중에 10여 년간 수렴청정을 하였다. 순원왕후는 언간을 통해 당대의 왕실의 생활상, 특히 정치적 사건의 결합, 왕실 밖에 있는 친척들과 서로의 안부를 묻는 과정에서 가족이라는 연대감을 끈끈하게 형성하려는 진솔한 개인적 정서 등을 매우 현실감 있는 언어로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들은 <조선왕조 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 공식적인 사료에 등장하지 않는 왕실 생활상이 드 러나는 것으로 개인 간에 주고받은 편지의 자료적 중요도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순원왕후언간>의 필사, 원문 도판의 시기는 1839∼1843년으로 보이며, 규격 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특히 민간 사대부 여성들의 언간과는 달리 봉투가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뿐만 아니라 봉투와 내지를 별도로 두어 발신자의 사회적 지위 등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형식적으로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19세기 왕실 여성 언간 봉투의 형식적 특징을 검토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며, 19세

기 언간의 형식적 특징의 사례로 문헌학적 가치가 높다.

내지의 형식은 전문, 본문, 후문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후문은 기원의 뜻 과 낙관을 썼는데, 전문은 칭호와 안부를 묻는 인사 말, 본문은 주된 내용의 서 술, 후문은 기원의 뜻과 낙관(월일 성명)을 썼는데, 오른쪽 끝에서 바로 쓰지 않 고 여백을 두고 썼다. 그리고 말미에 윤용구가 후손을 위해 편지가 유입된 유래 와 경위를 기록하여 유물에 가치를 더욱 높여 주고 있다.

순원왕후의 서체는 현대서예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위치에 있으면서 한문 초 서의 필의로 남성적이면서 역동적이며 세련미가 있다. 그리고 전형적인 궁체의 진흘림체를 잘 보여주고 있어서 전형적인 궁체의 기초 자료가 된다. 이는 근현대 를 거치면서 한글서예사의 핵심적인 서체로 자리매김하였다.

제3장에서는 표기적 특징과 음운적 특징을 살펴보았다. 표기적 특징으로 첫째, 합용 병서이다. 중세국어에서는 ㅅ계와 ㅂ계 등의 합용 병서로 이루어진 어두자 음군이 존재하였으며, 이중 ㅂ계는 ‘ㅴ, ㅵ’ 등을 ㅄ계로 별도로 구분하기도 한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 ‘ㅲ’과 ‘ㅾ’이 출현하고, 17세기 후기에는 17세기 중엽에 비 해 ‘ㅴ, ㅵ’의 ‘ㅄ’계가 완전히 소멸하였고, ㅂ계의 ‘ㅷ’과 ㅅ계의 ‘ㅅㅎ’이 소멸한 것 으로 알려져 있다. 19세기에 와서는 ‘ㅲ’은 몇몇 문헌을 제외하고는 거의 사용되 지 않는데, 이 언간 자료에서도 그러한 추세가 확인된다. 19세기에, 특히 ‘ㅳ, ㅶ’

등의 ㅂ계는 ㅅ계에 비해 그 빈도가 훨씬 줄어 들면서 19세기 후기에 가면 ㅅ계 로 거의 통일되어 간다. ‘ㅄ’만이 예외였는데(특히, ‘以’의 ‘​’에서), 이 현상은 ‘ㅆ’

이 각자병서로 인식되었던 데에 기인하는 것이다. ㅅ계 합용 병서는 현대국어의 된소리 표기 ‘ㄲ, ㄸ, ㅃ, ㅆ, ㅉ’ 중에서 파열음에 해당하는 표기에서만 확인된다.

마찰음 ㅅ과 파찰음 ㅈ에서는 ㅅ계가 보이지 않고 ㅂ계로만 나타나는데, 동일한 조음 방식의 문자가 반복되면 된소리에 대응되지 않는 인식이 적용된 것으로 보 인다. 이 언간에서 ㅅ계 합용 병서는 ㅺ, ㅼ, ㅽ과 ㅂ계 합용 병서 ㅄ, ㅶ 등이 나타난다. 반면에 각자병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둘째, 연철 표기와 분철 표기에 대해서 대략적인 경향을 미리 살펴보았다. 형 태소 경계를 사이에 둔 선행 형태소의 종성 자음 뒤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 나 어미, 접사 등이 이어지는 경우, 받침 자음을 뒤로 이동하여 후행 형태소의 초성으로 표기되는 연철 표기의 형태가 전체적으로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일한 자음이 반복되는 중철 표기와 ‘명사+조사’, ‘용언 어간+어미’의 형태소 결 합에서 이들을 분리해서 제시하는 분철 표기가 적지 않게 나타난다. 분철 표기는 체언 언간과 조사가 결합하는 형태소 경계에서 주로 보여진다. 또한 용언 언간 중에서 말음이 ‘ㄱ’과 ‘ㄺ’으로 끝나는 경우에는 분철 표기로 나타나는 특징을 보 인다. 중철 표기과 어중 유기음 표기는 19세기 국어에서도 그 명맥이 유지되는 데, 중세국어와 동일하게 체언이나 용언 등의 어간말 자음과 후행 음절의 두자음 (頭子音)이 동일한 자음이 또는 동일한 계열의 자음을 어간말 종성 위치에 적는 중복 표기로 나타난다. 중철 표기와 어중 유기음 표기의 선행 음절 말 자음은 형 태음소적 원리에 따라 어간 형태소를 밝혀 표기하고, 후행 음절의 두자음은 음소 적 원리에 따라 발음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연철 표기와 분철 표기의 성격이 혼 재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셋째, 어중유기음은 어중의 ‘ㅌ’의 경우는 부분 중철의 양상이 두드러지는데,

‘​​텨’나 ‘긋티’, ‘곳텨’, ‘굿텨’ 등에서 이러한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가운데

‘​​텨’나 ‘긋티’의 경우는 ‘그치-’의 예로 볼 수 있는데 구개음화에 대한 과도교정 의 양상으로 볼 수 있다. ‘곳티’, ‘굿티’ 등에서는 부분 중철의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어중 ‘ㅍ’의 표기 양상의 경우에는 이른바 재음소화 표기가 두드러진다. ‘겁 흘, 녑흐로, 압흔’에서와 같이 체언의 형태소 내부나 형태소 경계에서 ㅂ+ㅎ이 주 를 이룬다. 또, ‘놉흔’과 같이 활용형에서도 재음소화 표기가 확인된다. 또. ‘깁히’

와 같이 파생어에서도 이러한 양상이 잘 나타난다. 아울러, ‘휘잡히’나 ‘덥히’와 같이 파생어 환경에서, 그리고 ‘갑갑​’와 같이 ‘-​’에서도 어간의 말음 ‘ㅂ’을 분 명히 표기한 것이 나타난다. 이로써 어중 유기음의 표기는 문법 환경에 따라 차 이가 발생하였으며, 또한 각 어중 유기음(‘ㅊ, ㅋ, ㅌ, ㅍ’)에 따라, 각각 다른 양 상이 나타난다.

다음은 음운적 특징을 살펴보았다. 첫째 ‘ㆍ’ 변화의 출현 양상이다. 구체적으 로 살펴보면 단모음으로 사용된 어두 음절의 ‘ㆍ’ 관련 용례는 전체 2,811회가 나 타난다. 어두 음절에서 ‘ㅏ’가 사용된 용례는 1,664회이며, 이중에서 ‘ㆍ>ㅏ’를 보 이는 용례는 15회로 분석된다. ‘ㆍ>ㅏ’의 변화가 나타나는 비율은 채 1%도 나타 나지 않는 0.90%에 해당된다. 또한 어두 음절에서 ‘ㆍ’가 사용된 용례는 1,147회 이며, 이중에서 ‘ㅏ>ㆍ’인 예는 53회로, ‘ㆍ’의 비음운화를 보이는 ‘ㆍ>ㅏ’의

0.90%보다 약 5배 높은 4.62%의 비율을 보인다. 국어사 문헌 자료 연구를 살펴 보면 어두 음절에서 ‘ㆍ>ㅏ’의 변화는 18세기 중엽 이후부터 현저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시기적으로 1세기가 경과한 19세기 중엽의 <순원왕후언간>에서는 이러 한 변화가 더 현저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그 빈도와 비율이 그리 높지 않았다.

왕실 언간의 보수성을 알 수 있는 특징이라 하겠다.

둘째, ‘ㄹ’ 비음화와 유음화 현상이다. ‘ㄹ’ 비음화는 ㅁ+ㄹ, ㄴ+ㄹ, ㄱ+ㄹ의 연 쇄가 각각 ‘ㅁ+ㄴ’, ‘ㄴ+ㄴ’, ‘ㄱ+ㄴ’으로 나타나는데, 이들은 현대국어에서 ‘담력’이 [담녁]처럼 실현되는 것과 같이, 자음 뒤에서 ‘ㄹ’이 ‘ㄴ’으로 바뀐 것이다. <순원 왕후언간>의 특이점은 ‘인릉(仁陵)’의 ‘ㄴ+ㄹ’ 연쇄가 ‘인능’과 같이 ‘ㄴ+ㄴ’으로 표기된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선릉’의 표준 발음이 [설릉]이지만, 일반적으로 [선능]으로도 실현되는 현상과 동일한 것으로 판단된다. 현대국어의 표준어 발음 과 달리 ‘ㄴ+ㄹ’ 연쇄에서는 ‘ㄴ+ㄴ’으로 실현된 것이다. 이 언간은 발신자가 ‘순 원왕후’ 한 사람이어서, ‘ㄹ’ 비음화 중에서 ‘ㄹ+ㄹ’ 연쇄나 역행적 유음화의 ‘ㄴ+

ㄹ’ 연쇄 등과 관련된 표기 유형이 매우 정제된 경향이 확인된다.

셋째, 구개음화의 발현 양상이다. ‘ㄷ’구개음화의 확산 비율을 바탕으로 왕실 어른으로서의 언어의 변화를 파악하고, 수신자들의 언어를 관찰하여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왕실 언어의 음운 변화의 특징이 나타난다. 이 언간의 구개음화는 8.23%, 과도교정이 6.41%가 나타난다. 세부적으로 분석해보면, 구개음화 중에서

‘ㄷ>ㅈ’인 경우는 956회 중에서 61회가 발생하여 6.38%의 비율을 보인다. ‘ㅌ>ㅊ’

은 186회 중에서 33회로 17.74%로 나타난다. 과도교정은 ‘ㅈ>ㄷ’이 639회 중에서 52회로 8.14%이 나타나며, ‘ㅊ>ㅌ’은 219회 중에서 3회로 1.37% 정도만이 보일 뿐이다. 이와같이 19세기 사대부가의 언간에서는 구개음화가 대부분 이루어졌음 에도 이 언간에서는 거의 실현되지 않고 있었다. 이러한 형태들은 표기의 보수성

은 186회 중에서 33회로 17.74%로 나타난다. 과도교정은 ‘ㅈ>ㄷ’이 639회 중에서 52회로 8.14%이 나타나며, ‘ㅊ>ㅌ’은 219회 중에서 3회로 1.37% 정도만이 보일 뿐이다. 이와같이 19세기 사대부가의 언간에서는 구개음화가 대부분 이루어졌음 에도 이 언간에서는 거의 실현되지 않고 있었다. 이러한 형태들은 표기의 보수성

문서에서 순원왕후 언간의 국어학적 연구 (페이지 143-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