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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량 및 배점

- 출제문항수: 2개

- 분량: <문제1> 800~1000자 안팎 / <문제2> 1300~1500자 안팎

▣ 출제경향

서강대학교는 논술 고사에서 두 문항을 출제했다. 지난해까지 3문항 정도를 출제했는데, 시 험 시간과 문항수를 줄였다. 계열별로 조금씩 다른 주제를 다룬다. 제시문은 4~6개 정도 나 오는데, 각 제시문의 길이는 짧은 편이다. 그렇지만, 철학이나 사회과학의 고전들이 곧잘 나 와서 제시문의 수준이 높기 때문에 독해가 쉽지는 않다. 사회과학 계열은 표나 그래프를 해석 하도록 하는 문항이 자주 출제된다. 제시문 이해에서부터 제시문 내용을 적용해 분석하기까지 한 편의 완결성 있는 글을 쓰도록 하는 논제가 나오기 때문에, 제시문을 하나의 주제로 엮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공부를 깊이 해야 서강대학교 논술 고사를 대비할 수 있다.

<문제 1 : 40%, 800~1,000자>

제시문 [가], [나], [다]의 논지를 통합하여 요약・정리하고, 이를 활용하여 [라]와 [마]의 작품의 특 성에 대하여 설명하라.

[가] ‘사실’은 ‘느낌’의 죽음과 더불어 시작된다. …(중략)… ‘사실’의 세계는 고름이나 패총처럼 ‘느 낌’의 잔해이다. 일상적 삶은 ‘느낌’에서 ‘사실’로, ‘위험’에서 ‘안정’으로의 끊임없는 이행이다. 예 술이 진정한 삶을 복원하기 위한 시도라면, 예술은 일상적 삶과는 반대방향으로 진행할 것이다.

즉 사실에서 느낌으로, 안전에서 위험으로. 예술 ― ‘느낌’의 잔해인 ‘사실’로부터 ‘느낌’을 되살려 내는 일. 즉 패총으로부터 옛날 조개를, 고름으로부터 흰피톨을 되살리는 일. 요컨대 죽은 나무 에서 꽃을 피우는 일. 그러므로 예술은 본질적으로 무모하고 어리석다.

- 이성복,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나] 사람들은 그토록 숱하게 욕조에 들어가면서도 몸을 담글 때 수면이 높아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물질의 비중이 배수량과 관련 있음을 간파한 사람은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였다.

…(중략)… 사람들은 수없이 하늘을 쳐다보았지만 하늘이 왜 파란지에 대해선 누구도 의문을 제기 하지 않았다. 여기에 의문을 가졌던 최초의 인물은 18세기 물리학자 존 틴달이었고, 그는 하늘의 색깔이 대기 중의 먼지나 다른 입자들과 부딪쳐 산란하는 햇빛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밝혀냈 다. …(중략)…

무용가 애너 할프린은 “누구든 동작을 통해 의사전달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무용수다”라고 말했 다. 마크 모리스는 일상의 동작, 예를 들어 껌을 씹거나, 으쓱대며 걷거나, 농구장에서 십대 소년 들이 공을 다루는 동작을 이용해 춤을 만들어 왔다. …(중략)…

마르셀 뒤샹의 기성품들은 눈을 치우는 삽이나 변기처럼 변형을 가하지 않은 오브제들인데, 이는 보다 충격적인 미술의 재관찰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찾아낸 오브제들은 관람객들을 향해 이 렇게 말을 건다. “당신이 보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라. 당신이 가장 생각을 하지 않는 것들 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해보라.”

- 로버트 루트번스타인・미셸 루트번스타인, 뺷생각의 탄생뺸

[다] 일상화되어 있는 우리의 지각은 보통 자동적이며 습관화된 틀 속에 갇혀 있다. 특히 일상적 언어의 세계는 이런 자동화에 의해 애초의 신선함을 잃은 상태이며 자연히 일탈된 언어의 세계인 문학 언어와는 본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지각의 자동화 속에서 영위되는 우리의 일상적 삶과 사물은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 채 퇴색하는데, 예술은 바로 이러한 자동화된 일상적

2. 2012학년도 서강대학교(인문계/영미문화계/커뮤니케이션학부)

▣ 논제 및 제시문 (문제1)

인식의 틀을 깨고 낯설게 하여 사물에게 본래의 모습을 찾아주는 데 그 목적이 있다.

- 한용환, 뺷소설학 사전뺸

[라]

(※ 그림 속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적혀있다.)

-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배반」

[마] 나는 각설이처럼 타령으로 떠돌다가 빈손으로 되돌아온 것일까, 왠지 내 의식 속의 모든 것 이 원점으로 되돌아와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한 가지 사실만이 분명하게 인식된다. 지금, 나는 쓰고 있다. 지금, 당신은 읽고 있다. 변함없는 현재. 나는,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순간’이라 쓰 고 있는데, ‘쓰고 있는데’를 읽는 당신을, ‘당신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 아니다, 나는 빈손으 로 왔지만 빈 느낌으로 돌아오지 않은 것 같다. 이상한, 이라기보다는 자못 신비한 느낌이 든다.

지금, 나는 쓴다. 지금, 당신은 읽는다. 이 때 나와 당신은 정말 동시적인가? 당신과 나는 다른 공간의 같은 시간 속에서 이 글을 주고받고 있는가? 현실적으로는 이렇다. 지금, 나는 쓴다. 지 금 씌어지는 이 소설은 얼마 후 출판사에 넘겨져 편집되고 인쇄되어 책으로 제본되고 나서 책방 을 거쳐 당신 손에 들어간다. 그때 당신은 읽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쓰고 있는 지금, 당신은 읽고 있지 않다. 지금 당신은 밥을 먹고 있거나 직장에서 사무를 보고 있거나 버스 안에서 졸고 있거나 화투를 치고 있거나 애인 팔짱을 끼고 걷고 있거나 다른 책을 읽고 있거나 어쩌고저쩌고 하고 있거나이다. 그런데, 분명히, 다름 아닌 지금, 당신은 읽고 있다. 그렇지 않은가? 지금 막,

‘그렇지 않은가?’라고 당신은 읽지 않았는가? 하지만 당신이 이 소설을 읽고 있을 때, 내가 이걸 쓰고 있을리 만무하다. 그때 나는 이미 썼다. 그러니까 당신이 읽고 있는 지금, 나는 늦잠을 자고 있거나 다른 돈벌이가 없을까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거나 등산을 하고 있거나 술을 퍼 마시고 있거나 부부 싸움을 하고 있거나 다른 소설을 쓰고 있거나 어쩌고저쩌고하고 있거나이다. 그렇다 면 나는 ‘나는 썼었다’라고 쓰거나 ‘당신은 읽을 것이다’라고 써야 할까? 그렇지 않다. 지금 나는

쓰고 있고, 지금 당신은 읽고 있기 때문에.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 이인성, 「당신에 대해서」

<문제1>

우리의 일상적 삶은 습관화된 행위와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매일 만나는 사람들, 매순 간 마주하게 되는 상황을 새롭게 해석해서 그때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종소리에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상대가 머리를 숙여 인사하면 나도 머리를 숙이며 “안 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고, 교실에 들어가면 교탁이 아니라 책상과 의자가 있는 곳에 가서 앉으 며, 식사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식당으로 향해 식판을 집어 든다. 우리의 행위가 습관화, 자동화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일상은 안정적이다.

하지만, 상대가 내게 인사할 때 조건반사적으로 “안녕하세요”하고 말하지만, 그 인사말에는 느 낌이 죽어있다. 습관처럼 내 입에서 그 말이 흘러나왔을 뿐 정말 그 사람이 안녕한지 궁금해서 물어본 것은 아니다. (가)의 용어를 빌어 표현해 보자면 느낌은 죽고, 사실만 남았다. 안정적이긴 하지만, (다)에서 얘기하듯 신선함은 잃었다.

상대방이 나에게 “안녕하세요”라고 말할 때 내가 “안녕이라고요? 내 건강을 묻는 건가요? 내 성적? 내 기분? 아니면, 우리 가족의 안녕? 도대체 어떤 점에서의 안녕을 말하는 거죠?”하고 되 묻는다면 어떨까? 이상한 사람 취급 받을 가능성이 높다. 가핑클이라는 사회학자가 실제 행한 실 험이다. ‘위반실험’이라 불리는 이 실험에서 가핑클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상황을 깨는 반응을 보여줌으로써 상대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우리는 의심없이 일상을 당연하 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새삼 인식하게 한다. (다)에서 말하고 있는 ‘낯설게 하기’

도 예술가들이 비슷한 목적으로 행하는 기법이다. 신선함을 잃고 죽어있는 사물에게 본래의 의미 를 되살려 주려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일상의 안정성을 깨고 불안정하게, 위험하게 만든다. 그러나, (나)에서 보듯이 과학이나 예술 등 창조적인 영역에서 이룬 많은 업적들은 이런 불안정과 위험, 일상적 시선을 흔 드는 과정 속에서 가능했다. 욕조에서 물이 넘치는 모습, 파란 하늘, 껌을 씹는 단순한 행동, 변 기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가는 현상을 곱씹어본 학자와 예술가로 인해 우리는 더 발전할 수 있었다.

요컨대, 제시문 (가), (나), (다)는 문학, 예술, 과학 등 창조적 활동이 일상적 활동과 어떤 점 에서 다른지 논하고 있다. 일상을 낯설게 보기, 흔들어 보기, 뒤집어 보기, 의심해 보기 등이 핵 심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라)와 (마)의 작품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라)는 파이프 그림을 보여주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파이프를 보여주고 이

▣ 출제의도 : 밝히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