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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절 제3섹터를 둘러싼 쟁점

앞서 제3섹터에 대한 세계적 관심과 그 필요성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제 본 연구의 핵심 사안인 사회적 일자리 또는 좀더 광의에서 사회 정책과 관련해서 제3섹터 조직들(Organizations in the Third Sector)의 역할이 무 엇인지 논의하기에 앞서, 21세기 제3섹터가 직면하고 있는 상황을 진단할 필요 가 있다. 그것은 제3섹터를 구성하는 조직들이 직면하고 있는 환경변화가 무엇 인지 살펴보는 것이다.

제3섹터의 이념적 기조는 우애(友愛)와 연대(連帶)이며, 권력이나 수익실현을 위한 배타적 경쟁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을 구성하는 각 조직들은 권력이나 수 익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하지만 쟁점 은 이러한 목적을 실현하는 방식을 둘러싸고 나타날 수 있다. 한편에서는 비영 리민간단체가 권력과 수익에 대한 투명성을 윤리적 무기로 국가와 시장에 대한 견제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라는 원칙론(原則論)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비영리민간단체가 그러한 목적사업을 수행하는 방식의 하나로 자신 의 이념적 가치에 기반한 영리사업을 수행해야 한다는 대안론(代案論)이 있을 수 있다. 이는 생산공동체, 생활협동조합, 노동자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등 일련 의 대안적 경제운동조직들에 의해 표방되어 온 것이다.

전자(원칙론)는 ‘비영리활동 자체가 자신의 고유한 목적사업인’ 민간단체들을 근간으로 하며, 이들은 통상적으로 시민단체, 재단 등을 들 수 있다. 물론 시민 단체들도 비영리적인 목적을 위해 영리사업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환경보 호라는 비영리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는 방안으로 기념 품 판매 등의 수익사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좀더 극단적인 형태로는 임대사 업 등을 통해 비영리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경우도 발견할 수 있을 것 이다. 이는 제3섹터가 존립하기 위한 환경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국가 나 기업의 재정적 지원에 따라 자신의 목적사업을 추진해 왔던 많은 단체들이, 지원축소에 따라 스스로의 힘으로 활로를 모색해야 할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재정적 압박은 비영리민간단체들로 하여금 대안적인 재원조

달방안을 강구하게 하며, 이러한 경합에서 낙오되는 많은 단체들은 사실상 그 기능을 상실하는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많은 단체들은 순수하게 회원들의 회비와 지역사회의 자원동원을 통해 생존을 모색하는 전통적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른 많은 거대 시민단체들은 재원조달을 위한 수익 사업 또는 영리사업을 수행하도록 강제되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 경우, 시민단체 모두가 수익사업과 관련해서 대안적 경제운동의 형태를 취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많은 경우, 이들 단체들은 완전한 의미에서의 수익사업 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많은 시민단체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이러한 위 기를 돌파하는데 한계가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시민단체들의 입장에서도 이러 한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출구가 필요했음을 의미한다.

후자(대안론)는 ‘영리활동에 대한 참여가 자신의 고유한 목적사업인’ 민간단 체들로 앞서 언급했던 생산공동체나 사회적 기업 등을 근간으로 한다. 그리고 이들 단체들은 좀더 광의에서 ‘새로운 방식의’ 생산과 소비를 목적으로 하며, 수익의 극대화보다 나눔의 가치를 중시하는 성향을 나타낸다. 이러한 실험들은

‘대안적 경제운동’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운동이 20세기 중반이후 매우 취약해져 왔다는 것이다. 서구 자본주의의 전후 성장기 를 경유하는 동안, 협동조합이나 공제조합 등은 자구적 또는 자조적 운동으로 서의 위상이 약해지기에 이르렀다. 대부분의 노동자가 거대산업의 한 부문의 노동자로 참여하여 일정한 임금을 보장받고 사회보장체계의 혜택을 누리는 과 정은 이러한 연대운동의 위상을 약화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더욱이 이들 조직들은 시장부문에서의 경쟁에서 ‘지속적으로’ 큰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였다.

단기적으로 세상의 주목을 받을 수는 있었으나, 대안경제로서의 위상을 구축하 기보다 시장에 포섭되거나 붕괴되는 상황에 직면했던 것이다. 한국의 생산공동 체 운동에 대한 한 연구는 그것이 외환위기 등 변화하는 경제환경 속에서 시장 에 포섭되거나 무너지는 상황을 잘 말해주고 있다(신명호, 2005). 이러한 상황 에서 ‘전통적’ 사회적 경제의 조직들은 새로운 생존방식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구적 노력을 통한 대안경제의 구축시도가 확장되는 시장의 벽을 넘 어서지 못하고 좌절되며, 점점 자원동원의 어려움을 경험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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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파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1980년대 후반이후 서구의 경기침체와 실업률 증가 등의 사회경제상황은 제3 섹터 조직들에게 ‘새로운 위기 또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처럼 보 인다. 그것은 국가 및 시장과의 새로운 협치체제(governance system)를 구축함으 로서 지역사회에서 연대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을 확보하고 자신의 지위 를 강화하기 위한 가능성을 의미한다. 좀더 단순하게 표현하면, 전통적인 사회 적 경제부문의 조직들이 정부와 기업으로부터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지역사회 가 필요로 하는 일자리와 서비스를 공급하되, 이러한 방식으로 창출되는 일자 리에 사회적 가치라는 특수한 위상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미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것처럼, 이 방식은 과거와 같이 자구적 또는 자조적 방식이 아니라, 국가 와의 새로운 협력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 점에서 제3섹터 조직들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이자 위기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1990년대 중반이후 서구 복지 국가들이 복지축소(Welfare Retrenchment)의 국면으로 진입하는 경향을 보이고, 많은 복지서비스를 공공부문의 직접공급방식에서 민간위탁방식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기회가 제공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것이 왜 위기로 이해 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에스핑-엔더슨(Esping-Andersen)이 말한 복지체제의 탈상품화(decommodification)의 관점에서 보면, 각국의 복지체제는 후퇴하는 것 으로 인식될 수 있으며, 이러한 후퇴의 와중에서 제3섹터 조직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제공되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세계 각국에서 복지서비스는 민간부문에게 위탁되기 시작하였고, 그러한 공급자 중 하나로서 비영리민간단체 또는 전통적 사회적 경제 조직들은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비영리민간단체들이 각종 사회서비 스를 위탁 운영하는 현상이나, 유럽에서 사회적 기업이 사회서비스 공급자 중 하나로 부각되는 현상은 이미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서비스 공 급과정에서 비영리민간단체들은 스스로 경제조직으로서의 기능을 부여받게 된 다. 서비스 공급을 위탁받았으나 이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고용의 주체로서 자 신의 위상을 확인해야 하고, 그것에 새로운 법적 지위를 부여할 필요성을 인식 하게 되었다. 이러한 필요성에 따라 제3섹터의 조직들은 과거 비영리민간단체

의 수익사업조직 또는 전통적 사회적 경제조직들의 대안경제조직을 넘어서는 - 좀더 정확한 의미에서는 그것을 포괄하는 - 새로운 조직형태에 착안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이었던 것이다.

결국 제3섹터 조직들은 당당하게 정부의 지원을 요구하기 힘들고, 자구적 생 존을 모색하기 힘든 상황에서, 지금까지 대결상대였던 조직들과의 새로운 위상 정립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일부 국가에서 우려되는 것처럼, 제3섹터 조직들 의 의존성 확대라는 문제(위기)를 야기할 수도 있으며, 반대로 새로운 활성화의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복지축소의 경향 속에서 그것에 저항할 것인지, 그것에 편승할 것인지의 선택의 문제 또한 남겨 두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피할 수 없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특히 사회적 일자리 창출에 참여한 비영리민간단체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그 사업에 참여하는 단체들 간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다. 파편화된 채, 개별적인 서비스 공급자로 전락하기보다 제3섹터의 조직들이라는 유대의 강 화가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본 연구의 중요한 문제의식 중 하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