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의 성장과 구조조정(1973~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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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도약

3.1.1. 중농정책과 농협사업의 확장

정부는 1962년부터 경제정책방향을 공업화를 통한 수출 증대와 농업생산기 반구축을 통한 생산성 향상, 식량자급을 목표로 한 중농정책으로 정하였다. 수 리시설의 확충과 비료·농약 공급의 확대, 주산단지조성사업 추진, 미곡2중곡가 제 도입 등이 1960년대를 통해 이루어졌고, 1970년대에는 새마을운동, 식량자 급을 위한 녹색혁명의 추진, 정책금융의 공급확대 등이 강력하게 추진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0년대 말에 가서는 식량을 완전 자급할 것이며 농공병진 정책으로 농촌과 도시를 같이 성장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하였다.

1960년대를 통해 추진해 온 경제개발 정책의 성과가 1970년대 들어 확산되 기 시작했다. 농업이 성장하고, 농촌생활환경개선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한

편으로는 도시화·산업화의 급진전에 따라 농촌의 인력이 도시로 대거 빠져나 갔다. 다수확 신품종인 통일벼의 도입으로 단수가 증가하면서 1977년에는 드 디어 쌀자급을 달성하게 되었다. 농가인구는 1967년을 정점으로 줄어들기 시 작하여 1970년대 중반부터는 농촌에서도 농번기에는 일손 부족 문제가 나타나 기 시작했다. 농가의 소득지지를 위해 도입한 쌀과 보리에 대한 2중곡가제도가 효과를 나타내면서 농가경제의 소득이 올라가고 부채는 줄어들었다. 즉 1970 년대의 한국농업과 농촌은 매우 다이나믹하게 변화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농협 은 경영기반을 확고하게 구축해 나갔다.

1970년대에도 식량자급은 농정의 제1과제였다. 정부는 식량증산을 유도하기 위해 쌀과 보리의 가격지지정책과, 다수확 신품종의 재배 독려, 비료·농약의 적 기·적량 공급을 위해 전행정력과 농업관련기관을 독려하였다. 쌀과 보리의 가 격지지정책은 농민에게 비싸게 사서 소비자에게 싸게 파는 2중곡가제를 말하 며, 증산과 농가의 소득지지를 위해 매년 수매가격을 높은 비율로 인상했다.

1974년 쌀수매가격은 전년보다 38.5%나 인상되었으며, 1978년 쌀수매가격은 4년 전 가격의 2배가 되었다. 한편 쌀의 증수를 위해 통일벼를 개발하고 비료·

농약의 공급을 늘렸으며 경지정리, 저수지, 관배수로 건설 등 가뭄과 풍수해 피 해를 줄일 수 있도록 생산기반 정비에 많은 투자를 하였다. 뿐만아니라 정부가 장려하지 않은 품종을 심지 못하게 감시하였는데, 농촌지역의 전공무원과 농협 을 포함한 농업관련 기관의 전직원들이 정부정책의 홍보와 현장 모니터링에 동원되었다.

농협은 식량증산을 위한 비료와 농약 공급을 책임지는 기관이 되었고, 쌀과 보리의 정부수매업무와 보관업무를 담당하였다. 식량증산을 위한 강력한 정책 의 추진은 행정이 책임졌지만 이를 위한 투입재의 공급과 생산물의 수매 및 보 관, 가공, 방출 등의 관리는 농협이 전담한 것이다. 이는 농협의 사업량과 수입 에 그대로 반영되었고, 조직의 확충을 가져오게 했다. 농협은 양곡의 수매, 보 관, 도정, 방출의 업무에 따른 창고를 확보하고 도정공장을 신설하였다.

1960년대 말부터 정부는 농민의 자조, 자립의식을 고취하고 스스로 잘살기 운동인 새마을운동을 전개했다. 정부에서는 약간의 철근과 시멘트를 공급하고

마을은 노동력과 토지 등을 제공하여 마을의 도로정비, 교량 건설, 담장정비,

는 사업을 추진했으며, 1977년부터는 단위조합을 중심으로 ‘새마을종합소득개 발사업’을 추진했다. ‘새마을종합소득개발사업’은 새마을사업을 식량증산에서 부터 유통개선, 농업소득 증대, 농촌복지 향상을 단계적으로 발전시키고, 특정 품목의 생산을 지역적으로 집중화·전문화·규모화 함으로써 생산과 판매의 효 율화·계획화하며 마을단위개발에서 읍·면단위로 광역화 종합개발을 한다는 사 업이다.

정부는 경제성장에 따라 재정력이 증대되자 1970년대 초반부터 농업개발을 위한 각종 중장기 농업자금 공급을 늘려나갔다. 농업기계화, 농산물가격 안정, 농촌주택개량자금을 지원하는 기금들이 설치되었으며, 새로이 도입되는 낙농 업, 가축개량, 인공수정, 사료공장 건설 등 축산부문의 개발을 지원하는 자금이 확충되었다.

3.1.2. 농협의 도약

1973년까지 1읍·1면당 1조합의 틀을 갖추게 되자 단위농협은 독자적인 사업 수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군조합이 그동안 수행해 온 대농민 서비스 사업인 비 료공급, 농사자금 취급, 공제, 농산물 판매 업무를 이관 받았고, 상호금융과 생 활물자의 구매 공급을 위한 연쇄점사업을 독자적으로 개척하였다. 단위조합 자 체의 조합사무소를 갖추고 임직원을 고용하여 협동조합으로써의 기능을 하게 되었다. 농협은 비로소 단위조합을 중심으로 현장의 협동조합운동을 본격적으 로 추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972년부터는 농민들의 생산조직인 농축산물 작목반을 조직하여 공동생산 과 공동출하가 이루어지도록 지도하였다. 전국적으로 400개의 시범 작목반을 조직하고 이들에 대해서는 자금을 우선적으로 지원하였다. 소비지에서는 기존 의 공판장 시설을 확충하고 농산물슈퍼마켓을 설치하여 직접 소매활동을 개시 하였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양곡창고, 비료창고, 기타 창고 시설을 확충하고 시설의 개보수 및 대형화를 통해 창고의 효율성을 제고시켰다.

조합의 사업규모가 확대되고 직원이 늘어나면서 임직원의 교육을 강화하고

전·상무제를 도입하여 전문경영체제를 강화하였다. 단위농협의 직원 수는 1974년에 비해 1980년에 40%가 증가했다.

1970년대를 통해 농가경제의 사정이 좋아지면서 조합시설과 자본의 확충을 위해 조합원의 출자배가운동을 전개하였다. 조합원에게 벼 한가마를 직접 출자 하도록 장려하고 조합사업의 이용 시에 일정 금액을 떼어 출자로 전환토록 하 였다. 한 때는 출자부담이 과다하다는 조합원의 불평이 높아지자 장려운동을 완화하기도 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출자운동을 강화하였다. 단위조합 의 자기자본은 1974~1980년에 6배나 증가하였다(농협중앙회, 1991)<표 2-4>.

단위조합이 급속하게 성장하게 한 가장 큰 동력은 상호금융의 도입이었다.

1969년 시범사업으로 도입한 상호금융은 1973년부터 전국단위조합으로 모두 실시하게 되었으며, 본격적으로 사금융이 지배하는 농촌금융시장을 제도금융

표 2-4. 단위조합의 경영기반 조성 및 경영성과(조합당)

구 분 1974(A) 1977 1980(B) B/A(배)

조직

전체조합수(개) 1,545 1,519 1,485 0.96

조합원수(명) 1,240 1,282 1,302 1.05

직원수(명) 12.3 16 17.6 1.43

자기자본

조합당(백만 원) 18,136 45,729 111,641 6.16

조합원당(원) 14,626 20,160 85,743 5.86

시설

금액(백만 원) 28 47 105 3.75

동 수(동) 7.5 12.1 12.7

경영성과

당기순이익(천 원) 861 3,800 10,410 12.09

배당률(%) 3.3 5 6.4

손실조합수(개) 79 8 2

(비율)(%) (5.1) (0.5) (0.1)

자료: 농협중앙회, “농협30년사”, 1991

으로 편입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상호금융은 조합원의 예수금을 받아 조합 원에게 대출해 주는 조합금융이다. 반면에 중앙회가 운영하는 은행은 일반국민 으로부터 예금을 받고 대출을 해주는 은행으로 조합금융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농협이 상호금융을 운용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조합금융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이다.

상호금융 예수금은 1975~80년의 5년 사이에 9배의 증가율을 보일만큼 폭발 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당시 상호금융의 이자율은 은행의 금리보다는 높지만 사금융시장보다는 낮았다. 따라서 일반은행에 예금하는 것보다는 상호금융에 예금하는 것이 이득이 컸다.

상호금융의 수익이 올라가자 경제사업은 일부 손실을 보더라도 운영할 수 있게 되어 이때부터 신용사업 수익으로 경제사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종합농 협의 큰 장점으로 내세우게 되었다.

단위조합의 사업확충과 신용사업 수익의 증가는 조합경영을 안정 성장궤도 로 진입시켰다. 조합의 1980년의 당기순익은 1974년에 비해 12배나 증가했다.

1972년엔 적자조합이 269개(17.2%)나 되었으나 1980년에는 단 2개로 줄어들 었다. 1970년대는 농협에게 도약의 시대였다.

3.2. 전환기 농정과 농협개혁 3.2.1. 1980년의 농협개혁

1970년대를 통하여 한국경제와 농업은 급속히 성장하면서 산업구조의 변화 가 두드러지게 진행되었다. 농업인구의 탈농이 지속되었고, 도시인구의 증가에 따른 채소, 과수, 축산 등을 중심으로 한 농업의 상업화 속도가 높아졌다. 녹색 혁명의 성과로 1977년 쌀을 자급함으로써 식량부족에 대한 두려움도 거두어졌 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농촌의 일손부족도 일반화되고 농업임금이 가파르게 증가하였다. 농촌의 잠재실업은 옛이야기가 되었으며, 농업도 국제적인 비교우

위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농업·농촌은 이제 그 성격이 과거와는 다른 전환기에 있으며, 농정도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여 보다 시장지 향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전환기 농정론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농정의 중요한 파트너인 농협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가 적용되었다.

도약과 성장의 1970년대를 뒤로 하고 1980년이 되자 농협은 또 한 번의 개 혁을 단행했다. 1980년에 들어선 새정부는 농정개혁의 일환으로 농협의 조직 개혁을 추진했다. 농협의 계통조직체계인 단위조합 - 시군조합 - 중앙회의 3단 계 조직체계를 단위조합 - 중앙회의 2단계로 축소하고, 농협에서 축산농협을

도약과 성장의 1970년대를 뒤로 하고 1980년이 되자 농협은 또 한 번의 개 혁을 단행했다. 1980년에 들어선 새정부는 농정개혁의 일환으로 농협의 조직 개혁을 추진했다. 농협의 계통조직체계인 단위조합 - 시군조합 - 중앙회의 3단 계 조직체계를 단위조합 - 중앙회의 2단계로 축소하고, 농협에서 축산농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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