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사업

문서에서 농업발전을 위한 농업협동조합 운영 (페이지 104-130)

3.1. 한국의 농업금융제도와 농협의 신용사업 3.1.1. 농업금융 시스템

농협의 신용사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의 금융제도와 농업금융체 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한국의 금융제도의 기본구조는 다른 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농업금융의 체계는 농협과 밀착되어 있어 다른 나라에서는 보 기 힘든 특징을 갖고 있다.

한국의 농업금융체계를 정부, 농업금융기관, 금융보조기관, 이용자 등의 경 제 주체와 그 관계망으로 표시하면 <그림 4-1>과 같다. 농촌금융시장에는 농민 과 농촌거주민 및 기업 등이 자금의 최종 수요자이자 공급자가 된다. 금융중개 기관으로는 회원조합, 농협중앙회, 신협, 새마을금고, 지방은행 등의 금융기관 이 있다. 정부는 2002년에 설립한 농업정책자금관리단을 통하여 농업정책자금 을 공급하는데, 그 채널로는 농협과 농업정책자금관리단과 특별히 계약을 맺은 상업은행이 이용되나 상업은행의 비중은 매우 작다. 농림수산업자신용보증기 금(농신보)은 신용력이 미약한 농림수산업자의 신용을 보증해줌으로써 금융기 관으로부터 자금을 차입할 수 있게 지원하는 기관이다.

농촌의 금융시장은 농협이나 은행과 같은 제도금융기관을 통해 금융거래가 이루어지는 제도금융시장과 개인 또는 제도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금융회사 를 통해 이루어지는 사금융시장으로 분류된다. 농촌금융시장에서 개인 중심의 사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은 최근에 다시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농가의 차입처별 부채의 구성을 보면, 사금융의 비중이 1998년에 4.6%에서 2010년엔 19.4%로 높아졌다.

그림 4-1. 한국의 농업금융 시스템

정부가 정책자금을 공급하는 방식으로는 재정자금을 재원으로 자금을 조달 해서 농협 등을 통해 대상자에게 전달토록 하는 방법과 농협등의 예수금을 이 용해서 지원대상자에게 자금을 공급토록 하고, 그 자금의 조달이자율과 대출이 자율의 차이를 보전해주는 이차보전방식을 병용한다(<그림 4-2> 참조). 농협이 조성한 자금에는 중앙회의 은행자금과 회원조합의 상호금융이 모두 이용되는 데 조달이자율이 낮은 중앙회 자금을 대부분 이용하고, 상호금융은 보조적으로 이용된다. 조달이자율이 비싼 상호금융을 이용하는 것은 작은 금융기관인 회원 조합을 지원하는 의미가 있다.

이 관계에서 농협이 정책금융제도로부터 받는 편익은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농업금융의 공급채널을 농협에 독점시킴으로써 농협의 신용사업은 물론 경제사업 등 다른 사업도 농촌에서는 경쟁우위를 갖게 했다. 둘째, 정부는 농협 이 조성한 자금을 안전하게 운용할 수 있게 해주는 무위험의 수요자가 되어준 다. 셋째, 신용력이 약해서 대출해주기를 꺼리는 영세소농이나 위험도가 높은 대규모 농림수산업자에 대해서는 농신보가 보증을 서줌으로써 대출을 늘릴 수 있고, 회수위험을 줄일 수 있다.

그림 4-2. 농협채널을 통한 농업자금의 공급

3.1.2. 농협 신용사업 구조와 특징

한국 농협의 신용사업은 조합과 중앙회가 별개의 금융기관을 보유하고 있다 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회원조합은 조합원의 예금을 받아 대출해주는 조합금융인 상호금융을 운용 하고 있으며, 그 중앙회 기능을 하는 상호금융특별회계를 중앙회의 조직으로 두고 있다. 현재 상호금융은 중앙회의 회원조합인 지역농협, 품목농협, 지역축 협, 품목축협, 인삼협 등 모든 회원조합(1,100여 개)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회원 전체의 예수금 규모는 2010년 말 196조 원으로 단일금융기관으로 가정하면 한 국에서 가장 큰 금융기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상호금융의 중앙은행 기능을 하는 상호금융특별회계는 회원조합 상호금융 의 지불준비금과 회원조합의 여유자금을 예치 받아 필요한 조합에 대출을 해 주며 자금운용을 지도해준다. 현재 상호금융특별회계에 예치된 자금만 해도 한 국의 중견은행 수신고 정도의 규모가 된다.

중앙회는 은행법과 농협법에 동시에 규제를 받는 특수은행을 운영하고 있는 데 그 지점은 주로 도시와 농촌의 중심도시인 읍에 두고 있으며, 전국에 약 1,000여 개의 지점을 갖고 있다. 중앙회의 농협은행은 수신고가 145조 원으로 은행권에서는 5위에 해당된다.

중앙회의 은행과 조합의 상호금융을 합한 전체 농협 금융의 수신고는 2010 년말 기준으로 약 340조 원이 넘으며, 그 점포망도 5,000개가 넘는 한국의 최대 의 금융기관이다.7)

7) 한국의 금융제도는 은행법에 규제를 받는 상업은행과 은행법과 특별법 적용을 동시에 받 는 특수은행이 제1금융권으로 분류되고, 주로 중소상공인과 서민들이 이용하는 협동조합 금융기관인 상호금융과 상호저축은행, 우체국 예금 등은 제2금융권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농협중앙회의 은행과 회원조합의 상호금융은 서로 다른 성격의 금융으로 취급된다.

3.2. 사금융이 지배하던 1960년대 3.2.1. 종합농협 발족 이전

1958년 농업은행이 설립되기 이전까지는 농촌의 제도금융기관으로 금융조 합이 있었으나 금융업무보다는 정책대행사업에 치중해 기능이 크게 약화되어 있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1949년의 농지개혁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농 지개혁으로 농지를 담보로 잡을 수 없었기 때문에 금융조합은 농민에 대한 대 출을 꺼리게 되었고, 신용사업이 위축되자 금융조합은 비료공급업무, 고공품, 양곡관리 등의 정책대행사업에 열중하여 점점 신용사업의 비중이 낮아졌다.

1950년대 농촌의 금융시장 사정이 악화된 것은 농지개혁으로 종전의 농촌의 자금공급자 역할을 했던 지주계층이 와해되어버린 것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금 융조합의 기능 약화와 지주층을 중심으로 한 농촌의 전주(money lenders)들의 세력 약화로 자금공급이 줄어들면서 고리사채가 크게 발흥하였다. 반면에 농지 개혁으로 분배받은 농지대금을 상환해야 하는 농민은 자금이 필요한데다, 화학 비료의 현금 판매제도가 도입되면서 농가의 자금수요는 더 늘어났다.

정부는 농촌금융시장의 다급한 사정 때문에 농협발족을 기다리다 못해 일반 은행법을 적용받는 주식회사 농업은행을 1956년 출범시켰다가, 1958년 특수법 인 농업은행법에 의한 농업은행으로 전환되었다. 특수법에 따라 종전에는 할 수 없었던 한국은행으로부터 금융자금을 원활하게 차입할 수 있게 되었고, 정 부의 재정자금 공급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져 전체 농업자금 공급액이 크게 늘 었다. 하지만 농촌의 금융수요에 비하면 농업은행에 의한 제도금융의 공급은 매우 적은 것이었다.

3.2.2. 종합농협의 발족과 농어촌고리채정리사업

구농협과 농업은행의 합병으로 1961년 8월 15일 탄생한 새농협은 3개월 전 공포된 농어촌고리채정리사업을 담당했다. 새농협의 첫 번째 정책사업을 수행

한 것이다. 당시 농정에서 가장 시급한 것이 한 번 차입하면 정상적인 상환이 곤란한 농어촌의 고리채로 인한 빈곤의 악순환 고리를 끊는 것이었다. 동년 5 월 16일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사정부가 거사 후 10일 만에 발표한 정책 1호가 이 조치였다.

농어촌고리채정리사업은 정부가 연리 20%이상의 농어민 채무를 신고하게 한 다음 고리채 여부를 판정해서, 고리채로 판정된 채무에 대해서는 채권자에 게는 연리 20%로 농협이 대위변제해주고, 채무자에게는 연리 12%로 상환받는 정책이었다. 당시의 농촌의 사금융의 금리가 평균 50% 이상이었으니 채무자로 서는 평균금리로 보면 최소한 38% 이상의 이자율을 낮춤으로서 상환부담을 덜 수 있는 획기적 조치였다(농협중앙회, 1965). 이를 위해 정부가 보증하는 연 리 20%의 농업금융채권을 농협이 발행하여 조달한 재원으로 채권자에게 대위 변제해주고, 채무자에게는 연리 12%의 차용증서를 징구하였다. 정부는 대위변 제해주는 금리와 상환받는 금리의 차이(8% 포인트)만큼의 재원과 농협의 취급 수수료를 부담하기로 했다.

농어촌의 고리채를 소멸하겠다는 정책 의지는 좋았지만 결과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정부의 재정력도 충분하지 않아 대위변제의 재원마련이 어려웠고 이자 차이를 보전해줄 수 없었기 때문에, 이 조치는 1961년 1회로 끝났다. 문제는 채무자였던 농민들인데, 그 다음 해부터 필요한 자금을 얻기가 더 어려워졌다.

돈을 가진 이웃들이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 평가하여 돈을 빌려주려 하지 않 았기 때문이다. 농촌공동체의 이웃관계를 소원해지게 했고, 농촌금융시장의 자 금경색을 심화시킨 대책이었다. 채무자 중에는 농협에게 상환하지 못하는 농민 이 많이 생겨 이들의 채무를 손실처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정부는 농협에 지원하기로 한 이자차액과 수수료를 제때에 주지 못했다. 이 조치로 인한 채무 상각이 완료된 것은 15년 후인 1976년이었다.

3.2.3. 농업개발계획의 지원과 정책금융의 확대

정부는 1962년부터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수립하여 공업화와 수출증대시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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