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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농협의 경험과 의의

한국 농협은 창립 이래 농업·농촌개발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 정부의 정책 파트너로서 정부에 협력하고, 정책대행기관으로서 정책을 수행하며, 자조적인 협동조합으로서 농업과 농촌의 발전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농촌과 도시에서 성공적인 저축동원을 통해 농업부문에 대한 자금공급을 원활히 하고, 고질적인 농촌의 고리사채를 시장에서 구축하였다. 정책대행사업으로 비료·농약 등 농 자재 공급업무를 원활히 수행하여 농업생산력 증대와 주곡인 쌀의 자급달성에 기여하였으며, 시장이 발달하지 않은 농촌지역에 생활물자를 공급하여 생활의 불편을 덜어주었다. 조합원의 농산물 판매로 조합원의 소득을 증대시키고, 유 통시설의 확충과 정보제공 등으로 농산물유통을 발전시켰으며, 정부 양곡의 수 매와 관리를 담당하여 국가의 식량수급관리에 기여했다. 정부의 정책 홍보와 지도, 교육을 통해 정책효과를 높이는데도 앞장 서 왔다. 아직 농협은 조합원을 충분히 만족시키는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농민에겐 농협이 없는 생활과 영농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농협과 농민 조합원은 밀접하게 묶여 있다.

한국의 농협이 이렇게 성장하기까지 오랜 시행착오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 다. 일반적으로 개발도상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난과 부채, 참혹한 내전, 협동조합에 대한 인식 결핍과 지도자 부족, 빈곤한 정부와 정책 실패, 정치적 이기심과 갈등 등으로 희망이 안보이던 시대를 겪었다. 정치적 안정과 경제성 장에 따른 협동조합의 단계적 성장과 구조전환 과정도 겪었다.

한국은 1945년 8월 15일 일본 식민지로부터 해방이 되었지만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이유로 남북으로 진주해온 미군과 소련군에 의해 남북이 분단되었다.

1948년 정부가 수립되었으나, 2년 뒤 1950년 6월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한 3년 동안의 한국전쟁은 전 국토와 경제사회를 폐허화시켰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그 후유증은 오래갔고, 1960년대 초까지는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빈곤과 저개발의 탈출을 위한 수단과 방법을 필요로 했다. 농업협 동조합은 그 대안 중 하나였다.

해방당시부터 농업과 농촌개발을 위해 농업협동조합이 필요하다는데 모두 공감했으나 그 방향과 방법을 놓고 의견이 갈렸다. 1948년 정부가 수립되자 곧 바로 농업협동조합 설립 논의를 시작했으나, 협동조합에 대한 인식의 부족과 의견 대립, 리더십 부족, 전쟁 등의 원인으로 10년 후인 1958년에야 경제사업 을 전담하는 농업협동조합과 농업금융을 전담하는 농업은행을 설립하였다. 그 러나 두기관간의 갈등으로 3년 뒤인 1961년에 두 기관을 통합하여 종합농협으 로 재탄생시켰다.

그러나 농협의 토대인 이동조합은 직원도 사무실도 없는 이름만의 조합이었 고, 사업은 단위조합의 지역연합체인 시군조합이 수행했다. 농협 시스템의 하 부구조를 강화를 위해 조합의 설립과 조합원 가입, 그리고 이동조합의 규모화 추진되었다. 이동조합의 합병운동을 2차에 걸쳐 전개하여 읍면단위의 단위조 합으로 통합하는데 또 11년이 걸려 1972년에는 거의 전국의 단위조합은 읍면 단위로 통합되었다.

조직의 토대를 확고히 한 한국농협은 계통조합간 업무의 조정과 신규사업의 개발 등을 통해 사업을 성장궤도로 진입시키고 경영을 안정화시켜 나갔다.

1970년대는 농협의 도약과 성장의 시기였다. 단위농협은 비료·농약·농사자금·

공제 등 4대사업을 시군조합으로부터 이관받고, 자체사업으로 상호금융과 생 활물자사업을 시작하였다. 농민조합원과의 사업을 통한 접촉이 활발해지면서 농협의 중심은 차츰 단위조합으로 이동해갔다. 사업은 급성장을 했으며 농협의 역량도 크게 높아졌다.

한국경제의 지속적인 성장, 새마을운동, 녹색혁명과 같은 1970년대의 경제 사회 환경 변화는 농협의 활동을 더욱 촉진시켰다. 농촌의 잘살기운동인 새마 을운동의 교육과 지도자 양성, 식량자급을 위한 국가정책의 홍보와 지도, 그리 고 농업투입재의 원활한 공급으로 녹색혁명에의 기여 등 농협은 자신의 성장 과 함께 지역사회와 국가로 활동영역을 넓혀 갔다. 농협은 상호금융이 급성장 하면서 농촌금융시장에서 사금융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농협이 독점 공급했던 비료와 농약, 농기계 등 구매사업의 사업규모도 급격히 증가했으며, 정부양곡 수매는 가장 큰 경제사업이 되었다.

단위조합의 급성장은 10년이 되지 않아서 시군조합과의 업무중복 논쟁을 일 으켰다. 1980년 들어선 새정부는 농협의 계통조직의 축소와 축협의 분리를 주 내용으로 하는 농협개혁을 시행했다. 1980년대 초 정부의 정책 전환에 따라 농 협중앙회가 한 때 경영위기를 맞았으나 정부의 지원과 자체 경영혁신으로 위 기를 넘긴 후 고속 성장을 지속했다. 그리고 협동조합으로서 오랜 숙원이었던 농협민주화를 이루어내었다. 농협은 1962년 임시조치법에 의해 잃어버렸던 자 신의 대표 선정권을 회복함으로써 자율조직으로서의 위신을 되찾았다. 1988년 중앙회장의 대통령 임명제와 단위조합 조합장의 중앙회장 임명제를 철폐하고 정부의 예산통제 등을 벗겨낸 농협민주화를 이루었다.

1990년대 이후 한국 농업은 WTO체제로의 전환에 따른 농산물시장 개방의 격랑에 휘말리고, 농협도 역할 변화와 강화 논쟁의 한 가운데 서게 되었다.

1980년대까지의 한국농정의 전략은 대외적 보호의 틀 안에서의 성장전략이었 으나, 1990년대부터는 세계시장에서의 무한경쟁에서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가 핵심과제가 된 것이다. 농협에게 요구되는 것은 자금의 원활한 공급 이상의 역할, 즉 농민조합원이 생산한 농산물을 제때에 제가격을 받고 팔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 개방된 경제에서는 생산보다는 공급과잉이 문제

였고, 국내시장으로 유입되는 해외의 농산물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었다.

개방경제에 대응하기 위한 농협의 역할에 대한 요구는 종합농협에서 전문농 협으로의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논쟁을 불러왔다. 농협의 사업부문 중 유독 조 합원이 원하는 판매사업이 취약한 것은 신용사업 수익에 안주하여 경제사업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비판자들은 농협중앙회의 경제사업과 신용사업을 분리하여 전문화시키는 것이 경제사업의 효율화뿐만 아니라 갈수록 격화되는 금융시장에서 농협의 신용사업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길이라 주장하였다. 새정부의 농정개혁으로 시작된 농협의 신용·

경제사업분리는 논의는 18년이 지난 2011년 3월 이 안을 수용한 개정농협법이 국회에서 통과됨으로써 오랜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한국의 발전수준과 농업구조의 특성을 고려할 때 구매·판매·이용·가공·신용 사업을 겸영하는 종합농협의 선택은 옳았던 것으로 평가된다. 개별 사업부문별 또는 기능별 협동조합으로 분리될 수 있는 경제사회적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 이다. 사업별 전문화보다는 한 기관으로 모든 사업을 집중시킴으로써 최소규모 의 사업을 달성할 수 있고, 사업부문간 범위의 경제를 키워 성장을 할 수 있었 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 농협은 농업정책의 협조기관이자 집행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요구받았 다. 정부는 농업부문에 대한 자금지원과 투입물의 지원, 정부양곡의 관리 등 주 요 정책사업을 모두 농협에 전담시킴으로써, 농촌 경제의 중심기관으로 만들었 었고 농협은 이 힘을 바탕으로 성장을 할 수 있었다. 반면에, 정부는 농협의 지 배구조에 강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간섭하고 통제했다. 이점 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협동조합의 발전과 국민경제에의 기여에 도움이 되었는가의 여부에 논쟁의 소지를 남겼다. 비판론은 늦더라도 협동조합이 스스 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정부의 간섭과 통제를 줄였더라면 보다 강건한 발전의 토 대를 구축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농협설립을 주도했던 측에 서는 농협설립 당시의 한국사회의 상황은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협동조합의 발 전을 가꾸어낼 수 없었다고 주장해왔다. 어느 쪽이든 논란의 가능성은 있지만 오늘의 한국농협이 있기까지에는 정부의 강력한 리더십이 크게 기여한 것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 농협이 걸어왔던 길은 많은 개도국에게 벤치마킹 의 대상으로서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들은 자기책임의 자유인이라는 시민정신 이 확립되어 있었던 사회에서, 규모화된 전문 농업으로 분화가 이뤄진 바탕위 에 발전해온 서구의 협동조합보다는 여러 간난이 겹쳤던 한국의 역사적 상황 을 헤쳐나온 한국 농협의 경험이 더 유용한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 이다.

이 책은 많은 개발도상국들의 발전단계와 역사적 상황에서 유사점을 갖고

이 책은 많은 개발도상국들의 발전단계와 역사적 상황에서 유사점을 갖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