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칠레 FTA 체결과정
2.2. 단계별 갈등구조 및 갈등관리기제 분석
2.2.2. 갈등표출단계의 갈등구조와 갈등관리기제
국가간 협상은 제2차 공식협상을 기점으로 구체적인 상품양허안
(관세철폐안) 논의로 이행하고 있었다. 따라서 국가간 공식협상의 주 요 의제는 양허안 작성에 놓여졌고, 양허안 실무협의(2001. 3)가 공 식협상과는 별개로 진행되었다.
양허안 작성문제를 계기로 국내에서는 정부와 농민단체 간 갈등 이 표면화되기 시작했고 국가간 양허안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이에 양국 외무장관은 양허안 협상을 재개하기 위한 고위급 협의(2002. 2) 를 진행함으로써 공식협상을 지속하고자 했다. 그러나 양국간 공식 협상이 재개되기까지는 1년 8개월의 오랜 갈등과정을 피할 수 없 었다.
가. 갈등구조: 갈등내용
국가간 협상이 양허안 협상으로 구체화되고 칠레의 산업구조 및 시장여건에 대한 관심과 정보가 늘어나면서 잠재단계에서 표면화되 지 않았던 농업가치 인식들과 이해관심들이 구체적으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농업보호 국익론과 농업개방 국익론 각각을 뒷받 침하는 농업가치에 대한 상이한 인식은 한․칠레 FTA 체결이 국내 특정 산업부문(농업)에 미칠 피해에 대한 공공적(public) 부담을 둘러 싼 이해갈등으로 우선 표면화되었다.
이전부터 존재해온 ‘공산품수출을 통한 국익증대’라는 정부입장과
‘농업부문 제외를 통한 국내농업 보호육성’이라는 농민단체 입장 사 이의 심층적 긴장관계가 ‘협정체결을 통한 국가신뢰도 제고’ 주장과
‘국내영향평가 및 의견수렴을 통한 선대책 마련’ 주장 사이의 표면 적 긴장관계로 표출되었던 것이다. 또 이러한 정부와 농민단체 간 긴장관계는 농산물 양허안 협상을 중단․연기하라는 농민단체와 국 가간에 합의된 협상을 지속하겠다는 정부의 대립관계로도 이어졌다.
갈등내용이 이와 같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칠레의 산업구조 및 시장여건에 관한 정보가 갈등잠재단계를 거치는 동안 주요 주체들
사이에서 보다 활발히 생산․공유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와 농민단체 간 갈등이 이해갈등의 형태로 진행되면서 이해 갈등을 관리․해소하는 방안으로 협정체결이 가져올 국내피해에 대 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인식이 구체화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무 엇보다 중요한 점은 한․칠레 FTA 체결 비용의 공공적 부담을 둘러 싼 이해갈등의 밑바탕에는 칠레와의 자유무역이 국익증대로 귀결한 다고 보는 시각을 직접적으로 부정하는 국익무효론(농업보호 국익론) 이 이전에 비해 더욱 분명하게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29 나. 갈등구조: 갈등주체
(1) 정부
1999년 김대중 정부는 정부조직을 개편하면서 국내 경제정책에 관한 부처간 협의기구로 재정경제부장관을 의장으로 하는 경제정책 조정회의를 신설한 바 있다. 2001년에는 한․칠레 FTA 체결과정이 양허안 협상으로 진전되면서, 대외경제정책에 관한 부처간 실질적 협의를 목적으로 기존의 대외경제조정위원회가 폐지되고 해당 업무 는 1999년에 신설된 경제정책조정회의로 이관돼 국내 경제정책과 함께 다뤄지게 되었다(2001. 8). 이처럼 협의기구가 변화하는 과정에 서 재경부, 농림부, 산자부, 국무조정실장, 대통령 경제수석 등 대외 경제정책과 관련한 참여 부처의 범위가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2001년 8월에 대외경제정책은 이를 전담하는 부처간 협의기구로 재이
29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으로 국가적 이익을 얻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국익무효론은 2001년초에 농민단체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기 시작한다.
칠레의 자유무역협정 체결현황, 칠레의 공산품 시장규모․관세수준, 농산업현황 등을 근거로 ‘공산품 수출에 따른 국익의 과잉추정과 농 산물 수입에 따른 국내농업 피해규모의 과소추정’ 주장이 그 근거를 이뤘다.
관되었다. 양허안 작성 등 한․칠레 FTA 관련 업무 역시 이때 신설된 대 외경제장관회의(의장 재경부장관)와 산하의 차관급 대외경제실무조정회 의(의장 외통부 통상교섭본부장)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지게 되었다.
(2) 농민단체
한․칠레 FTA에 대한 인식공유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개별적․독 립적으로 존재하던 농민단체들이 품목단체-생산자단체연합체-농민운 동단체 간에 광범위한 연계를 이룬다. 이와 같은 갈등주체의 발전을 뒷받침했던 것은 우선 2000년 9월부터 구체화된 통합 농단협 결성 움직임이었다.30 기존 농단협, 농촌지도자회, 한농연, 전여농, 낙농육 우협회, 전업농협회, 양계협회, 양돈협회, 유기농협회, 한여농 등이 수입농산물에 따른 농업위기의식을 공유함으로써 생산자단체-농민 운동단체 간 결속을 결의했던 것이다.
2001년 2월에는 21개 단체로 이뤄진 제1기 통합 농단협이, 2002년 3 월에는 23개 단체로 이뤄진 제2기 통합 농단협이 출범하게 된다. 이 과 정에서 포도생산자단체 간 연계틀이었던 포도생산자단체 비상대책위원 회를 비롯해 개별 생산자단체의 추가적인 결합이 이뤄지고, 비농업부문 사회단체들과의 연계를 유지해오던 전농, 전여농, 가농 등 농민운동단체 의 결합도 이뤄질 수 있었다. 그에 따라 갈등표출단계에서는 통합 농단 협이 농민단체의 이해를 주도적으로 대변하는 가운데 회원 단체들 차원 의 개별적 활동도 함께 전개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통합 농단협과 비농 업부문 사회단체연대(무역협정․WTO 반대 국민행동, 전국민중연대 등) 간 연계활동 역시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30 이러한 통합 농단협 결성 움직임은, 농업협동조합을 포괄하는 모든 농 업․농민단체의 협의체로 경제 제6단체격인 ‘농업회의소’를 결성하자 는 이념에서 출발했다고 한다(전국농민연대 사무국장 인터뷰 내용).
다. 갈등관리기제
국가간 양허안 작성이 정부의 주요한 이해관심으로 자리잡고 농 민단체는 통합 농단협을 중심으로 연계틀을 공고히 한 가운데, 정부 -농민단체 간 갈등관리노력은 농림부와 통합 농단협 간 정책간담 회․방문면담, 외통부 통상교섭본부와 통합 농단협 간 정책간담회․
방문면담 등으로 빈번해지기 시작했다.31 또한 정책건의문 교환, 협 상 관련 정보 및 정부의 협상전략 공개 요구 등도 정부와 농민단체 사이에서 꾸준히 진행되었다.
이상의 갈등관리과정과 더불어 이 단계에서는 농민대회 등 집회 와 시위를 통한 비제도적 의사전달로 갈등관리를 시도하는 모습이 비로소 본격화하기도 하였다. 정부와 농민단체 외 제삼자에 의한 갈 등관리와 관련해서는, 정당, 국회의원 등을 상대로 하는 농민단체의 간담회, 서명운동 등이 점차 정부-농민단체 간 갈등을 관리하는 방 식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