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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했던 탈빈곤정책의 흐름은 빈곤원인 및 탈빈곤 경로에 대한 각국의 문화적 인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빈곤원인에 대한 해석은 탈빈곤 정책 의 방향제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9) 그러나 빈곤원인을 둘러싼 기존의 이론적 논의들은 빈곤에 대한 개인의 책임이나, 빈곤의 구조적 원인을 일방적 으로 강조하는데 초점을 두어 왔던 것처럼 보인다. 그 결과, 이러한 접근방법은 탈빈곤정책 수립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을 뿐더러, 편향된 해석을 토대 로 추진된 각종 탈빈곤 정책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빈곤이론은 탈빈곤이론으로 외연을 계속 확장하여 왔 다. 한편으로는 근로빈곤층 문제로, 다른 한편으로는 빈곤의 틀을 넘어 사회적 배제의 문제로 그 이론적인 영역을 확장시켜 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 는 각국의 탈빈곤정책 결정과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보인다. 여기 서 쟁점이 되는 것은 빈곤탈출의 일차적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취업가능성 (Employability)에 관한 상이한 해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절에서는 전통적 탈빈곤 이론의 토대를 이루었던 인적자본이론을 중심으로 그것에 대한 비판과 재비판을 간단히 정리하고자 한다.

9) 예를 들면, 개인의 나태가 빈곤의 원인이라고 이해한다면, 빈곤탈출의 핵심경로는 개인의 근 면과 노동이 될 것이다. 반면에 사회구조의 변화가 빈곤발생의 원인이라고 이해한다면, 이러 한 변화에 적응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적 지원이 탈빈곤의 관건이 될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빈곤원인에 대한 이해는 탈빈곤 경로를 이해하는데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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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적 접근방법: 인적 자본(human capital) 이론

전통적인 신고전주의 경제학에서 상품으로서의 노동의 가치는 한계생산성 이 론에 따라 설명된다. 이로부터 노동의 가격, 즉 임금은 시장에서 수요‧공급되는 노동의 양적 변화에 따라 설명된다. 이 점에서 신고전주의 경제이론은 노동의 질적 차이를 간과해 왔다는 비판을 받곤 하였다. 이에 비해 인적 자본 이론은 노동의 질적 차이에 주목함으로써 각 노동자간의 생산성의 차이를 설명하고자 한다. 이에 따르면 노동의 공급자는 생애소득의 관점에서 미래의 더 많은 소득을 기대하여 현재의 이익을 어느 정도 희생하고 자기개발에 투자함으로써 임금의 향 상을 꾀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임금불균형, 특히 저임금 및 그에 따른 빈곤의 원인은 개인의 낮은 생산성,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개인에 대한 공식적‧비공식적 능력개발 부족으로 설명된다. 바로 이 점에서 인적자본이론이 탈빈곤의 해법을 개 인에 대한 교육과 훈련에서 찾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이와 같은 인적자본이론은 60년대이래 특히 미국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발전 되어, 임금결정요인, 빈곤, 소득불평등 등을 설명하고 그에 대한 현실적 처방을 내어놓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이 이론은 탈빈곤 정책과 경제성장정책을 하나의 방향으로 유인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 러나 70년대로 접어들면서 많은 연구자들이 인적자본이론이 제시하는 탈빈곤 처방의 효과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비판의 핵심은 인적자본이 론이 근거하고 있는 가정과 조건이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데 있었다(P.

Bourdieu, 1976). 비록 인적자본이론이 노동의 질적 측면에 주목하고 있다고는 해도 여전히 완전한 정보공유와 동질적 노동시장에서의 완전경쟁을 상정한다는 신고전주의 경제이론의 비현실적 가정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점이 한계로 지적 되었던 것이다. 결국, 인적자본이론은 그것이 갖는 많은 강점과 타당성에도 불 구하고, 빈곤층의 탈빈곤 문제가 단순히 인적자본개발이라는 도식에 따라 해결 될 수 없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점에서 신자유주의적 복지개혁의 중요한 도구로 활용되었던 이 이론은 신호이론이나 사회적 자본론 등으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2. 구조적 접근방법: 신호이론

암묵적으로 자유경쟁의 동등한 조건을 전제하는 인적자본이론이 방법론적 개 인주의에 기초하고 있다면, 이를 비판하는 다양한 이론은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으로 상징되는 구조주의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과 관련되어 있는 이론으로는 신호이론과 직무경쟁이론 등을 들 수 있다. 그 중에서 신호이론에 대해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먼저 신호이론(Signal theory)은 학력과 임금간에 정의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와 같은 상관관계가 인적 자본 이론에서 설명하는 바와 같 이 교육수준이 실제로 노동의 생산성을 증대시켜서라기보다 노동의 생산성과는 무관하게 시장에서의 거래에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신호기제로서 작용하기 때문 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신호이론에 따르면, 대부분의 업무는 처음부터 명확히 구분된 숙련이나 기술을 요구하기보다, 현장훈련이나 실제 일을 통해서 학습되 는 것(learning by doing)이다.

따라서 신호이론에서의 쟁점은 학력이 높아짐에 따라 임금이 높아지는 가운데 어느 정도가 신호효과이며 어느 정도가 생산성 향상 효과인가 하는 점이다. 개별 노동공급자의 생산성 관련 정보가 보다 많이 공개되어 신호효과가 약해질 경우, 이는 약한 신호효과로 개념화되는 반면, 개별 노동공급자의 생산성 관련 정보공개 정도와는 무관하게 학력 그 자체가 개인의 생애에 걸쳐 영원한 사회적 지위를 대 변하는 하나의 상징적 신호역할을 할 경우는 강한 신호효과로 개념화될 수 있다.

이를 좀더 쉽게 풀어 설명하면, 취업이나 직무경쟁에 있어 인적자본은 고용주가 그것을 평가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단순화된, 따라서 사회적 편견이나 통념이 반 영된 신호를 경유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적자본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에 앞서 인종이나 학력 등의 일반화된 판단기준이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호효과가 빈곤정책에 시사하는 바는 크다. 개인적 차원에서라면 개 인의 교육수준이 실제로 생산성을 높이든, 아니면 단지 시장에서의 신호체계로 서의 의미를 갖든, 임금수준과 정의 상관관계를 갖는 한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 전체로 보면 교육이 신호효과에 머물 경우 교육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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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효과성 및 효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게 된다. 인적자본개발보다 학위취 득이 보다 효과적인 취업수단으로 고착화된 사회에서 취업촉진정책의 기본방향 과 추진전략을 재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3. 노동시장분절 이론

인적자본이론은 노동시장은 통합적‧동질적 공간이라고 가정하는 신고전주의 경제이론의 기본가정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반면, 노동시장분절이론은 그와 같은 노동시장의 통합성과 동질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시한다. 이에 따르면, 노동시장은 독특한 임금결정과정으로 작동하는 부분들로 분절되어 있으며, 그 각각의 부분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노동시장의 분절선을 자유롭게 넘나들지 못한다(Doeringer and Piore, 1971). 따라서 노동시장참여자들 간 임금 격차 자체는 상이한 임금결정과정을 따르는 노동시장의 분절상(分節像)을 반영 할 뿐이라는 주장이 가능하다. 이러한 시장분절이론은 다시 내부시장론과 이중 시장론으로 대별해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시장분절이 발생하게 되는 구체적 과정에 대한 설명차이로부터 기인한다.

내부시장론에 따르면, 노동시장의 분절은 내부노동시장 속에서 발생한다. 즉 시장분절은 내부시장과 외부시장 간에서 나타나며, 외부시장을 경쟁시장으로 가정할 때 내부시장은 그러한 경쟁의 논리로부터 괴리된 채 작동하는 것으로 개념화된다. 내부시장의 형성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현재의 기술발전수준은 기업에게 기업특유의 기술이나 직무특유의 기술을 필요로 하게 하는데, 노동시 장 참여자의 입장에서 이는 기업 간 또는 직무 간 이동이 그만큼 어려워짐을 의미한다. 더불어 기업의 입장에서 이는 기업특유의 혹은 직무특유의 교육훈련 의 필요성을 의미하므로 피고용자의 고용안정은 반복적인 교육훈련비용부담의 경감을 의미하며, 더 나아가 해당 직무숙련도가 안정적으로 축적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고용안정을 위해 각종 임금‧비임금 보상체계의 구축, 근로조 건의 향상, 내부 진급의 가능성 개발 등을 주요한 경영전략으로 채택한다. 이상 과 같은 다양한 내부시장 구축노력의 일부는 피고용자의 이해와도 부합하는 측

면을 갖게 되는데, 그에 따라 기업의 입장에서와는 다른 피고용자들의 노력-비 공식적 작업규칙의 형성 등-에 의해서도 유지되는 측면을 갖는다.

반면에 이중시장론에 따르면, 시장분절은 산업자본주의의 고유한 목적, 즉 자 본축적에 초점을 두어 설명된다(Baran and Sweezy, 1966). 자본은 노동의 잉여 가치로부터 자기축적을 하는 동시에 개별 자본간 경쟁을 끊임없이 전개한다.

반면에 이중시장론에 따르면, 시장분절은 산업자본주의의 고유한 목적, 즉 자 본축적에 초점을 두어 설명된다(Baran and Sweezy, 1966). 자본은 노동의 잉여 가치로부터 자기축적을 하는 동시에 개별 자본간 경쟁을 끊임없이 전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