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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 전통의 재현

전후 복구의 핵심은 전란 이전과 같은 평화로운 삶으로 돌아가는 데 있다. 과 거 즐겼던 풍류를 다시 즐길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그러한 삶에 안착했음을 나타내는 증좌가 될 수 있다. 태평한 시절을 선언하고 성대의 풍류를 노래함으 로써 문제적 상황의 해결을 꾀하거나 문제적 상황의 종결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박인로의 <태평사>와 <선상탄>에서 그러한 면모를 찾아볼 수 있다.

<태평사>에서는 작품 제목에 드러나듯 태평한 시절의 도래를 선언한다.

窟穴(굴혈)을 구어보니 구든 덧도 다마

有敗灰燼(유패회신)니 不在險(부재험)을 알니로다

上帝(상제) 聖德(성덕)과 吾王(오왕) 沛澤(패택)이 遠近(원근) 업시 미쳐시니 天誅猾賊(천추활적)야 仁義(인의)를 돕다

海不揚波(해불양파) 이젠가 너기로라

無狀(무상) 우리 물도 臣子(신자) 되야 이셔더가 君恩(군은)을 못 갑흘가 敢死心(감사심)을 가져 이셔 七載(칠재)를 奔走(분주)터가 太平(태평) 오 보완디고

시련을 가져다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경과를 다루고 그것을 극복하고 맞 이한 태평한 시절을 노래한다. 물결이 일지 않고 고요한 바다를 보며 전란의 종식을 확인하고 “太平(태평) 오 보완디고”라고 하며 평화를 되찾았음을 선언 한다.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이를 기뻐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投兵息戈(투병식과)고 細柳營(세류영) 도라들 제 太平簫(태평소) 노픈 솔의예 鼓角(고각)이 섯겨시니 水宮(수궁) 깁흔 곳의 魚龍(어룡)이 다 우 

龍旗(용기) 偃蹇(언건)야 西風(서풍)에 빗겨시니 五色祥雲(오색상운) 一片(일편)이 半空(반공)애 러딘  太平(태평) 模樣(모양)이 더옥 나 반가올사

揚弓擧矢(양궁거시)고 凱歌(개가)를 아뤼오니 爭唱歡聲(쟁창환성)이 碧空(벽공)애 얼다 三尺(삼척) 霜刃(상인)을 興氣(흥기) 계워 둘러메고 仰面長嘯(앙면장소)야 춤을 추려 이러셔니 天寶(천보) 龍光(용광)이 斗牛間(두우간)의 소이다 手之舞之(수지무지) 足之蹈之(족지도지) 절노절노 즐거오니 歌七德(가칠덕) 舞七德(무칠덕)을 그칠 줄 모로다

人間(인간) 樂事(낙사)ㅣ 이 니  인가 華山(화산)이 어오 이 말을 보내고져 天山(천산)이 어오 이 활을 노피 거쟈 이제야 올 일이 忠孝一事(충효일사) 이로다 營中(영중)에 일이 업셔 긴  드러 누어시니 뭇노라 이 날이 어 적고

羲皇盛時(희황성시)를 다시 본가 너기로랴

태평소, 북, 나팔 소리가 바다 속의 용을 깨울 듯이 높고 상서로운 구름과 같 은 깃발이 하늘 높이 날리는 가운데 “太平(태평) 模樣(모양)”을 반가워하며 기 쁨의 노래를 소리 높여 부른다. 흥겨운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손과 발이 절로 움직여 춤이 되고 그것이 그칠 줄 모른다. 세상사에 즐거운 일이 또 있겠냐고 하며 태평한 세월의 도래를 찬탄한다. 말, 활 등 전투에 쓰이는 것들이 이제는 필요 없다고 하고, 근심할 일 없이 긴 잠을 잘 수 있는 시절이 와서 기쁘다고 한다. 이렇게 기쁨을 즐기며 “羲皇盛時(희황성시)”를 다시 본 듯하다고 하여 되 찾은 평화를 확인한다. 이에 뒤이어 전쟁의 종식과 태평한 시절의 도래가 가져 온 결과를 노래하며 세상의 안온함이 지속되기를 기원한다.

天無淫雨(천무음우)니 白日(백일)이 더욱 다 白日(백일)이 그니 萬方(만방)애 비최노다 處處(처처) 溝壑(구학)에 흐터 잇던 老羸(노리)드리 東風(동풍) 新鷰(신연)가치 舊巢(구소)을 자 오니 首邱初心(수구초심)에 뉘 아니 반겨리

爰居(원거) 爰處(원처)에 즐거옴이 엇더뇨 孑遺生靈(혈유생령)들아 聖恩(성은)인 줄 아다 聖恩(성은)이 기픈 아 五倫(오륜)을 발켜라 敎訓生聚(교훈생취)ㅣ라 졀로 아니 닐어가랴 天運(천운) 循環(순환)을 아옵게다 하님아

佑我邦國(우아방국)샤 萬歲無疆(만세무강) 눌리소셔 唐虞(당우) 天地(천지)예 三代(삼대) 日月(일월) 비최소셔 於萬斯年(어만사년)에 兵革(병혁)을 그치소셔

耕田鑿井(경전착정)에 擊壤歌(격양가)을 불니소셔

우리도 聖主(성주)을 뫼고 同樂太平(동락태평) 오리라

하늘에서 내리던 궂은비가 그치고 밝은 햇빛이 세상만방을 비추어 평화의 기 운이 방방곡곡에 퍼짐을 노래한다. “萬方(만방)”을 비추는 “白日(백일)”은 문제 적 상황으로부터의 회복을 표상한다. “白日(백일)”이 시사하는 평화와 복구의 기운에 힘입어 봄바람을 타고 제비가 옛 둥지로 돌아오듯이 여기저기 숨어 있 던 백성들이 옛 보금자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수구초심(首邱初心)으로 그리워하 던 고향에 돌아온 반가움과 즐거움을 노래한다. 태평한 시절이 “聖恩(성은)”에 서 비롯되었음을 유념하고 “五倫(오륜)”을 밝혀 이러한 시절의 지속을 도모해야 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하늘이 보우하여 평화로운 세상이 만세토록 끝없이 지속되고 영원히 전쟁의 위협에 시달리지 않으며 백성들이 태평한 세월을 구가 하며 노래 부를 수 있기를 기원한다.

이와 같이 <태평사>는 태평한 시절로의 복귀를 선언하고 확인하며, 태평성대 의 지속에 대한 기원을 담고 있다. 이로써 현재에 대한 긍정적인 이해와 미래 에 대한 희망적인 전망을 제시한다. 이 작품의 전후에 창작된 이현의 <백상루 별곡>, 이호민의 <서호가> 등에서 자연 경물을 노래하며 했던 작업이 바로 이 것이다. 이들뿐만 아니라 앞서 다룬 여타 작품의 양상 또한 현재와 미래에 대 한 낙관적인 인식의 표출과 관련된다. 박인로의 <선상탄>은 이러한 인식의 확 보가 과거 태평한 시절의 풍류를 다시 즐기는 것으로 연결되는 과정을 보여준 다.

<선상탄>의 서두에서 대마도를 굽어보고 배 위를 배회하면서 고금의 역사를 돌이켜 생각하던 시적 화자는 “어리 미친 懷抱(회포)애 軒轅氏(헌원씨)를 애

노라”라고 하며 배를 만들어낸 헌원씨를 원망한다. 배가 없었으면 왜적이 건너

오지 못했을 터인데 배가 있어 큰 폐가 되고 만백성의 원성을 산다고 한다. 이 렇듯 배를 근심의 발단으로 여기고 원망하는 데에는 이상을 현실화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가 놓여 있다. 배와 관련된 이상이 시적 화자의 마음속에 어떠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는 아래와 같은 부분을 통해 살펴볼 수 있 다.

張翰(장한) 江東(강동)애 秋風(추풍)을 만나신들 扁舟(편주)곳 아니 타면 天淸海闊(천청해활)다 어 興(흥)이 졀로 나며 三公(삼공)도 아니 밧골

第一江山(제일강산)애 浮萍(부평)  漁父生涯(어부생애)을 一葉舟(일엽주) 아니면 어 부쳐 힐고

일언 닐 보건  삼긴 制度(제도)야 至妙(지묘) 덧 다마 엇디 우리 물은

  板屋船(판옥선)을 晝夜(주야)의 빗기 고 臨風咏月(임풍영월)호 興(흥)이 전혀 업 게오 昔日(석일) 舟中(주중)에 杯盤(배반)이 狼藉(낭자)터니 今日(금일) 舟中(주중)에 大劒(대검) 長鎗(장쟁)이로다

 가지 언마 가진  다라니

其間(기간) 憂樂(우락)이 서로 지 못도다

시적 화자에게 배는 가을 바람을 가르며 하늘과 물의 기운과 흥취를 한껏 느 낄 수 있는 것이요, 소박한 어부의 삶에 부쳐 강산에 묻혀 사는 고결한 선비가 기대는 것이다. 배가 그 이상적인 본질을 구현하는 것은 풍류를 즐기는 공간이 될 때이다. 칼과 창을 들고 혹시 모를 적의 동태를 감시해야 하는 날카로운 긴 장감 속의 현재와 반대되는, 이상적인 형태로 배가 쓰이는 광경으로 시적 화자 는 “昔日(석일)”의 “杯盤(배반)이 狼藉(낭자)”한 배에서 “臨風咏月(임풍영월)”하 는 것을 떠올린다. “憂國丹心(우국단심)이야 어 刻(각)애 이즐넌고”, “鼠竊狗 偸(서절구투)을 저그나 저흘소냐”, “九十月(구시월) 霜風(상풍)에 落葉(낙엽)가 치 헤치리라”라고 하여 한시도 잊은 적이 없는 충심과 조금의 두려움도 없는 강개한 기상으로 적이 다시 우리 땅을 유린한다면 추풍낙엽같이 섬멸해버리겠 다고 한다. 이렇게 몸과 마음을 다해 이루어내고자 하는 화평한 시절에 시적 화자가 즐기고 싶은 것은 옛사람 소동파의 풍류인 것이다. 그에게 소동파처럼

배 위에 술상을 어수선하게 흩어놓으면서 “興(흥)”을 즐기는 것은 황폐해진 강 토와 피폐해진 정신 세계가 회복되었음을 알려주는 척도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적 화자의 소망은 작품의 마지막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된다.

太平天下(태평천하)애 堯舜君民(요순군민) 되야 이셔 日月光華(일월광화) 朝復朝(조부조) 얏거든

戰船(전선) 던 우리 몸도 漁舟(어주)에 唱晩(창만)고 秋月春風(추월춘풍)에 놉히 베고 누어 이셔

聖代(성대) 海不揚波(해불양파) 다시 보려 노라

위와 같은 결사에는 앞으로의 태평성대에 대한 전망과 그러한 시절을 표상하 는 풍류가 제시되어 있다. 시적 화자는 태평한 시절의 백성이 되어 성군의 변 함없는 은덕 아래에 잔잔한 물결과 같은 평안한 삶을 영위하고 싶다고 한다.

그에게 이상적인 삶은 고깃배에 누워 봄바람과 가을달의 정취를 즐길 수 있는 삶이다. 이렇게 형상화된 소망태는 앞 시기 강호가사에서 노래하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선상탄>의 시적 화자가 희구하는 바는 강호자연의 풍류를 재현 하는 것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16세기 강호가사의 전통에 기대어 강호자연에 서 은일하는 삶을 형상화한 작품은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구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강호자연에서 은일하는 삶을 형상화하기 위해서는 강호자연의 모습이 시적 화자에게 즐길 만한 것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17세기 전반기의 전란에 따른 시 련과 그에 이은 정치적, 사회적 혼란은 벗 삼아 즐길 만한 풍광과 그 속에서의 평온한 삶에 직·간접적으로 상처를 입혔다. 이는 바꿔 말하면 16세기적 강호자 연의 훼손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강호자연의 훼손이란 실제 자연물이 훼 손된 것과 함께 자연물을 인식하는 태도와 시선에 문제가 생긴 것을 아울러 의 미한다. 이에 강호자연의 복구는 자연물뿐만 아니라 그것에서 즐거움을 찾는 삶의 자세 바꿔 말하면 풍류를 회복하는 차원에서 모색되었다. 앞 시기 강호가 사의 전통을 재확인하는 17세기 전반기 가사 작품은 그러한 모색의 결과를 보 여준다. 전대의 풍류를 재현하는 가사 작품을 통해 당대인은 즐길 만한 강호자 연의 복구와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정신 세계의 회복을 확인하였던 것이다.

자연을 노래한 이 시기의 작품 가운데 은거지의 공간 구성에 초점을 두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