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내적 갈등의 혼입
3.1. 내적 갈등의 흔적
박인로의 <누항사>는 전후 피폐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드러냈다는 측면에서 주목을 받아온 작품이다. 이와 함께 전반부와 후반부 사이의 서로 다른 목소리 가 자주 지적되었다. 이에 대해 기존 관념을 거부하는 한편으로 그것을 지향하 기도 하고, 사실적인 표현과 관념적 표현이 교차되는 현상을 거론하며 언어와 의식의 이중성을 지적하기도 하고,81) 이념과 현실의 괴리에 따른 비애를 읽어 내기도 하였다.82) 후반부가 시적 화자가 견지하는 태도의 본질을 드러낸다고
81) 조세형, 「가사 장르의 담론 특성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8, 147~148면.
보고 거기서 작자가 궁극적으로 노래하고자 한 바를 찾아야 한다고 한 논의도 있다.83) 이 경우 전후 어려운 사정에도 불구하고 안빈낙도의 이념을 굳건히 지 켜나갈 것을 표방하는 작품으로 해석하였다.
“明月淸風(명월청풍)”을 벗 삼고 “님 업 風月江山(풍월강산)” 가운데 “無 心(무심) 白鷗(백구)”와 함께 하는 삶을 꿈꾸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작품 결 사에서 시적 화자가 확인한 지향은 강호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선비로서의 삶이다. 이를 볼 때 작품 전반을 어떠한 의미로 해석하든 <누항사>를 지배하는 의식 한 편에 16세기적 강호관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 리고 이와 상반되는 측면이 존재하며 이로 인해 작품이 전개되는 가운데 시적 화자의 내면에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이렇게 <누항사>는 앞 시대의 강호가사와 공유점을 확보하면서도 조화롭게 공 존하기 어려운 의식의 충돌을 담고 있다.
어리고 迂濶(우활)산 이 우 더니 업다 吉凶禍福(길흉화복)을 하날긔 부쳐 두고 陋巷(누항) 깁푼 곳의 草幕(초막)을 지어 두고 風朝雨夕(풍조우석)에 석은 딥히 셥히 되야 셔 홉 밥 닷 홉 粥(죽)에 烟氣(연기)도 하도 할샤 [………①………]84)
설 데인 熟冷(숙랭)애 뷘 쇡일 이로다 生涯(생애) 이러다 丈夫(장부) 을 옴길넌가 安貧(안빈) 一念(일념)을 젹을망졍 품고 이셔 隨宜(수의)로 살려 니 날로조차 齟齬(저어)다
히 不足(부족)거든 봄이라 有餘(유여)며 주머니 뷔엿거든 甁(병)의라 담겨시랴
[………②………]85)
貧困(빈곤) 人生(인생)이 天地間(천지간)의 나이라 飢寒(기한)이 切身(절신)다 一丹心(일단심)을 이질가
82) 우응순, 「박인로의 “안빈낙도”의식과 자연」, 조선중기 시가와 자연, 태학사, 2002.
83) 최현재(2004).
84) 필사본 노계가사에 실려 있는 부분은 생략했다.
85) 필사본 노계가사에 실려 있는 부분은 생략했다.
<누항사>의 첫마디는 “어리고 迂濶(우활) 이 내 우희 더니 업다”이다. 자 신보다 우활한 사람이 없다는 자기 인식으로부터 시작된 작품은 궁핍함을 토로 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누추한 곳에 지은 초가집에서 비바람에 썩은 짚을 땔감 으로 쓰며 별것 없고 먹을거리가 얼마 되지도 않아 채 다 데워지지도 않은 숭 늉에 고픈 배를 속인다고 한다. 이렇게 고달픈 삶에도 불구하고 “生涯(생애) 이 러다 丈夫(장부) 을 옴길넌가”라고 하며 안빈낙도의 일념을 삶의 지침으로 삼고 그에 따라 살고자 함을 천명하고 “一丹心(일단심)”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이와 같이 몸으로 와 닿는 어려움 속에서도 마음의 변화는 없다고 밝힌 뒤, 직 접 농사를 지어 보기로 마음을 정하고 그것을 자신의 분수로 받아들이며 처한 상황을 무리 없이 수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처럼 신념의 불변을 계속해서 확인하는 모습은 그렇게 거듭 확인할 필요가 있음을 말해준다. 거듭 확인하지 않으면 잠재울 수 없는 심리적 불안의 존재를 노출하는 것이다. 시적 화자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불안한 자신의 내면 을 마주하고 계속 혼잣말을 하고 있다. “齟齬(저어)다”라는 노랫말은 그러한 불안감을 수면 위로 드러낸 것이다. “齟齬(저어)다”고 한 것에 더해 가을에도 부족한데 봄이라고 해서 여유가 있을 리 없고 주머니도 병도 비었다고 하면서 아무것도 없는 자신의 처지를 밝히는 시적 화자의 목소리는 분명 자괴감과 연 결된다. “一丹心(일단심)”을 잊을 수 없다며 그러한 감정을 부정하지만, 거듭된 확인이 오히려 번민의 존재를 확신하게끔 한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一丹心(일 단심)을 이질가”라는 노랫말의 이면에는 시적 화자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물 음, 즉 불안, 자괴감 속에 휩싸여 있는 자신의 번민이 “一丹心(일단심)”을 통해 사라질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내면의 불안정한 상태는 필사본 노계가사에 실려 있는 내용을 고려하면 보다 첨예해진다. 필사본 노계가사에는 앞서 살펴본 서두의 ①, ② 부분에 각각 아래의 ㉮, ㉯와 같은 내용이 있다.
㉮ 얼머만히 바 밥의 懸鶉雉子(현순치자)들은 將碁(장기) 버려 卒(졸) 미덧 나아오니 人情天理(인정천리)예 마 혼자 머글넌가
㉯ 다 나 뷘 독 우 어론 털 덜 도든 늘근 쥐
貪多務得(탐다무득)야 恣意揚揚(자의양양)니 白日(백일) 아래 强盜(강도)로다 아야라 어든 거 다 狡穴(교혈)에 앗겨 두고
碩鼠三章(석서삼장)을 時時(시시)로 吟詠(음영)며 歎息無言(탄식무언)야 搔白首(소백수) 니로다 이 中(중)에 탐살은 다 내 집의 모홧다
누추한 곳에 지은 초가집, 비바람에 썩은 땔감 등 곤궁한 생활을 드러내는 요 소를 언급하며 턱없이 부족한 양식을 말한다. 얼마 되지 않은 양을 늘리기 위 해 죽을 쑤는데 연기만 많이 나서 민망한 상황이다. ㉮부분을 덧붙여 보면 그 민망함이 배가된다. 죽이나마 얼마 만에 먹을 것을 보는지 아이들이 마치 장기 판의 졸과 같이 올망졸망 나아온다고 한다. 장기판의 졸을 들어 노래하는 헛웃 음 섞인 목소리에는 죽이라도 끼니때마다 구경하기 힘든데 딸린 식솔은 적지 않은 상황에 대한 애절한 탄식이 배어 있다. 한 숟가락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쳐다보는 눈동자들을 마주한 상황을 그려내고 차마 혼자 먹지 못하겠다고 하는
㉮부분은 채 다 데워지지도 않은 숭늉에 고픈 배를 속인다는 다음 노랫말에서 감지되는 내면의 흔들림을 보다 증폭시킨다.
㉯부분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빚어낸다. ㉯부분은 곤궁한 삶에도 “丈夫(장부)
”을 꺾지도 않을 것이고 “安貧(안빈) 一念(일념)”을 놓치지도 않을 것이라 소 리 높여 말하지만 풍족한 시절에도 부족하고 여유롭지 않은 시절에는 참혹한, 주머니든 병이든 뭔가 채우고 담을 수 있는 것에 아무것도 없는 상황을 노래한 다음에 자리한다. ㉯부분의 내용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데 그나마 얻은 것도 쥐 에게 빼앗긴다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碩鼠三章(석서삼장)”을 읊으면서 욕심 많은 귀신이 내 집에 다 모였다고 탄식하며 머리를 긁적이는 일 뿐이라고 한다.
여기서 시적 화자가 때때로 음영한다고 한 “碩鼠三章(석서삼장)”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시경(詩經) 「위풍(魏風)」에 실려 있는 이 작품86)은 가렴주구를
86) 작품은 아래와 같다.
큰 쥐야, 큰 쥐야, 내 기장을 먹지 말지어다. / 3년 동안 너와 알고 지냈거든, 나를 생각해주지 않는구나. / 이제 너를 떠나서, 저 즐거운 땅으로 가련다. / 즐거운 땅, 즐거운 땅, 이에 내 살 곳 얻으리로다(碩鼠碩鼠 無食我黍 三歲貫女 莫我肯顧 逝將去女 適彼樂土 樂土樂土 爰得我所).
큰 쥐야, 큰 쥐야, 내 보리를 먹지 말지어다. / 3년 동안 너와 알고 지냈거든, 내게 덕을 베풀 지 않는구나. / 이제 너를 떠나서, 저 즐거운 나라로 가련다. / 즐거운 나라, 즐거운 나라, 이에
견디다 못한 백성의 참담함을 표현하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쥐는 백 성을 도탄에 빠뜨린 탐욕스럽고 잔혹한 정치를 비유한다. “碩鼠三章(석서삼장)”
을 정치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담은 것으로 바라보면 쥐에 대해 “貪多務得 (탐다무득)”하다, “恣意揚揚(자의양양)”하다, “强盜(강도)”라고 한 것 또한 현실 비판의 함의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이해할 때 ㉯부분이 노래하고 있는 바는 곤궁한 처지에 그친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앞서 노래해 온 삶의 고달픔이 위정자의 탐욕, 부정, 수탈로 인한 것임을 지적하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문제적 상황에 대해 “歎息無 言(탄식무언)”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시적 화자의 내적 갈등은 문제의 원 인을 꼬집어 말하면서 보다 깊어졌을 것이다. 상실감은 주머니와 병이 비어 있 다고 할 때보다 누군가 빼앗아 갔기 때문에 비어 있으며 빼앗기면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할 때 더 클 것이다. 다시 말해 ㉯부분이 있을 때 시적 화자의 내면에 생긴 균열의 폭과 깊이는 보다 넓고 깊어지게 된다고 할 수 있다.
㉯부분 다음에는 앞서 노래한 “丈夫(장부) ”, “安貧(안빈) 一念(일념)”에 이 어지는 “一丹心(일단심)”을 강조하는 노랫말이 놓인다. ㉯부분이 없는 경우와 있는 경우를 비교해보면, ㉯부분이 있을 경우 ㉯부분 앞에 있는 “丈夫(장부)
”과 “安貧(안빈) 一念(일념)” 그리고 ㉯부분 뒤에 있는 “一丹心(일단심)” 사이 의 거리는 짧지 않은 길이의 ㉯부분이 있음으로 해서 물리적으로 멀어지게 된 다. 시적 화자의 내면에 생긴 갈등의 진폭 또한 ㉯부분이 있을 때 훨씬 커진다.
㉯부분으로 인해 그 앞뒤에서 “丈夫(장부) ”, “安貧(안빈) 一念(일념)”, “一丹 心(일단심)”을 천명하고 확인하는 목소리 사이의 간극은 보다 멀어지게 된다.
㉮, ㉯부분이 없더라도 불안한 내면으로 인해 시적 화자의 의식에 생긴 균열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지만, ㉮, ㉯부분이 있을 때 의식의 저류에 흐르는 심리적 갈등의 무게가 보다 무겁게 느껴짐을 알 수 있다.
<누항사>의 시적 화자는 이렇듯 가볍지 않은 내면의 균열을 서두에서부터 노
나에게 마땅한 곳을 얻으리로다(碩鼠碩鼠 無食我麥 三歲貫女 莫我肯德 逝將去女 適彼樂國 樂 國樂國 爰得我直).
큰 쥐야, 큰 쥐야, 우리 곡식의 싹을 먹지 말지어다. / 3년 동안 너와 알고 지냈거든, 나를 위 로해주지 않는구나. / 이제 너를 떠나서, 저 즐거운 들판으로 가련다. / 즐거운 들판, 즐거운 들판, 누구 때문에 길게 부르짖겠는가(碩鼠碩鼠 無食我苗 三歲貫女 莫我肯勞 逝將去女 適彼樂 郊 樂郊樂郊 誰之永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