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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 갈등의 모호한 해결

3. 내적 갈등의 혼입

3.2. 내적 갈등의 모호한 해결

시적 화자의 내적 갈등 양상은 정훈의 <탄궁가>·<우활가>에서도 발견된다.

“하 삼긴 이 내 窮(궁)을 혈마  어이리 / 貧賤(빈천)도 내 分(분)이어니 셜워 므슴리”(<탄궁가>), “一間(일간) 茅屋(모옥)이 비  줄 아돗던가 / 懸 鶉百結(현순백결)이 붓러움 어이 알며”(<우활가>) 등과 같이 ‘안빈(安貧)’의 이념이 내비쳐지지만 이에 대한 시적 화자의 목소리는 일정하지 않다.

정훈의 <탄궁가>의 시적 화자가 처한 상황은 <누항사>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누항사>에서와 같이 이 작품의 서두도 곤궁한 처지에 대한 시적 화자의 고민으로 시작된다.

春日(춘일)이 遲遲(지지)야 布穀(포곡)이 야거

東隣(동린)에 보 엇고 西舍(서사)에 호 엇고 집 안희 드러가 갓 마련니

올벼  말은 半(반)나마 쥐 먹엇고 기장피 조 튼 서너 되 부터거

한아한 食口(식구) 일이야 어이 살리 이바 아희들아 아모려나 힘 쓰라 쥭운물 샹쳥 먹고 거니 건져 죵을 주니 눈 우희 바 졋고 코흐로 람 분다

올벼   고 조튼 다 무기니 살히피 바랑이 나기도 슬찬턴가

봄이 오자 이웃에게 농기구를 빌려 농사를 지어보려고 하는데 씨앗으로 쓸 만한 것을 찾아보니 올벼씨는 쥐가 반이나 먹어 버렸고 기장 등의 잡곡이 서너 되 정도 있을 뿐이다. 죽이나마 자신은 웃물을 먹고 건더기는 일하는 종에게 주었는데 종은 불만스러워한다. 그나저나 수확이라도 괜찮으면 좋겠는데 그마 저도 나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시적 화자는 궁귀 (窮鬼)와 대면한다.

수 餱粮(후량)을 초오고 일홈 불러 餞送(전송)야 日吉辰良(일길진양)에 四方(사방)으로 가라 니 啾啾憤憤(추추분분)야 怨怒(원로)야 니론 말이

自少至老(자소지노)히 喜怒憂樂(희노우락)을 너와로  야 죽거나 살거나 녀흴 줄이 업섯거

어듸 가 뉘 말 듯고 가라 여 니뇨 우 덧 짓 덧 온 가지로 恐嚇(공혁)커

도롯셔 각니 네 말도 다 올토다

無情(무정) 世上(세상)은 다 나 리거

네 호자 有信(유신)야 나 아니 리거든 人威(인위)로 絶避(절피)며 좀로 녀흴너냐 하 삼긴 이 내 窮(궁)을 혈마  어이리 貧賤(빈천)도 내 分(분)이어니 셜워 므슴리

<탄궁가>의 시적 화자는 가난을 몰고 온 귀신과 대적하여 그를 쫓아냄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를 거부하는 궁귀의 목소리가 작품에 등장 한다. “自少至老(자소지노)히 喜怒憂樂(희노우락)을 너와로  야 / 죽거나 살거나 녀흴 줄이 업섯거 / 어듸 가 뉘 말 듯고 가라 여 니뇨”에서 볼 수 있듯이, 궁귀는 평생 모든 것을 함께 나누고 항시 떨어질 때가 없었는데 어 디 가서 누구의 말을 듣고 자신을 떨쳐내려고 하느냐고 하소연한다.

여기서 궁귀는 가난 그 자체를 지칭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궁핍함을 야기하 는 시적 화자의 일면, 즉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성격으로도 볼 수 있다. 그렇게

보면 궁귀는, 작품을 이끌어가는 화자와 다른 별도의 화자라기보다는 시적 화 자의 또 다른 목소리라고 할 수 있다.90) 궁귀와의 대화를 시적 화자 내부에 있 는 또 다른 자신과의 대면이라고 하면, 가라고 쫓는 목소리나 못 가겠다고 버 티는 목소리는 모두 시적 화자의 마음속에 일어나고 있는 대립과 충돌을 표현 하는 것이 된다. 화를 내고 원망하며, 꾸짖는 듯 우는 듯 말하는 궁귀의 목소리 는 대립과 충돌의 강도(强度)를 말해준다. 대립과 충돌은 시적 화자와 궁귀가 같은 견해를 지니고 있지 않아서이다. “네 말도 다 올토다”라고 하며 궁귀의 목소리를 인정하기 전까지, 시적 화자의 내면은 계속해서 서로 다른 생각이 대 립하고 충돌하는 상태에 놓여 있다.

이처럼 <탄궁가>에서는 시적 화자의 또 다른 목소리라고 할 수 있는 궁귀가 등장하고 그가 시적 화자와 갈등함으로써 내면의 균열이 표면화되어 있다. 둘 사이의 틈은 시적 화자가 궁귀의 말에 수긍하고 궁귀의 존재를 인정함으로써 무마되는 듯하다. 천명으로 주어진 “窮(궁)”을 어찌할 수 없으니 “貧賤(빈천)도 내 分(분)”으로 여기고 서러워 할 것 없다고 하는 말은 시적 화자가 궁귀의 목 소리에 동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시적 화자는 궁귀로 대변되는 목소리의 편에 서서 자기 내면의 화해를 이끌어냄으로써 번민을 해결하고자 한다.

이러한 화해가 이루어진 것은 궁귀가 자신과 언제나 함께 해왔음을 시적 화 자가 깨달았기 때문이다. 궁귀를 포용하는 명분으로 내세운 이유, 세상이 버린 자신을 궁귀만이 버리지 않았다고 한 것은 시적 화자의 고독을 드러낸다. 궁귀 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진 까닭은 “無情(무정) 世上(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자신의 고독감이 떠올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시적 화자는 소외감대 신 곤궁과 빈천을 선택한 것이다. 마지막에 이르러 하늘이 정한 분수라는 명분 을 제시하고 그것을 자신의 최종 귀착지로 삼고 있으나, 시적 화자가 궁귀를 받아들이게 된 결정적인 까닭은 외로움과 쓸쓸함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둘 간의 화해는 완전무결하게 보이지 않는다. “네 호 자 有信(유신)야 나 아니 리거든”이라고 하여 궁귀만이 시적 화자의 곁을 지켰다고 한 것이 화해의 명분으로 충분한지 의심이 된다. 궁귀 자체의 존재 가치보다는 외로운 시적 화자의 곁을 지켜준 데 대한 보상이 궁귀의 목소리에 수긍하는 이유가 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90) 선행 연구에서도 같은 시각을 찾아볼 수 있다. 이상원(2002), 178면.

궁귀의 목소리는 매우 격앙된 상태로 그려져 있다. “啾啾憤憤(추추분분)”,

“怨怒(원로)”, “우 덧 짓 덧”, “恐嚇(공혁)” 등의 노랫말로 거듭 드러낸 것처럼, 궁귀는 큰 소리로 성을 내며 원망과 노여움을 감추지 않는다. 한편으로 는 울면서 애원하고 한편으로는 잘못되었다고 꾸짖으면서 두려움을 느낄 만큼 화를 내며 시적 화자를 거세게 몰아붙인다.

궁귀의 공격적인 목소리에 대응하는 시적 화자의 목소리는 방어적이다. 안빈 낙도의 의지를 드러내는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지 않다. 유연하다기보다는 무기력해 보인다. 빈천을 자신의 분수로 받아들이는 것은 시적 화자가 고민하 고 궁귀와 대화한 끝에 도달한 최후의 결론이지만 이를 제시하는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없다. 이것이 내적 갈등이 원만하게 해결된 결과 선택한 것인지 의구 심이 든다. 도리가 없어 선택한 것이지 그 유효함에 대한 확신을 갖고 선택한 것은 아닌 듯하다. 저편보다는 나쁘지 않다는, 차라리 이편이 낫다는 식의 뉘앙 스가 엿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시적 화자는 자신과 궁귀 사이의, 다시 말해 자 기 내면의 틈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스스로 알고 있는 듯하다.

궁귀의 목소리가 고독과 자괴감에 매몰되지 않게 지탱해주는 자존감의 버팀 목이라는 확신을 시적 화자의 목소리에서 찾을 수 없다면, 궁귀의 목소리와의 대립·충돌은 어찌할 도리가 없어 부득이하게 무마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무 엇보다 화해가 너무 쉽게 이루어졌다. 어떻게 보아도 궁귀와의 화해에는 미진 한 구석이 있다. 시적 화자와 궁귀와의 견해 차이는 다시 말해 시적 화자의 자 의식에 생긴 틈은 미봉(彌縫) 상태인 것이다.

곤궁함에 대한 고민, 그 때문에 이루어진 궁귀와의 대화, 불완전한 것처럼 보 이는 궁귀와의 화해, 확신이 부족해 보이는 결론 등은 빈곤함을 하늘이 내린 분수로 여긴다는 노랫말의 무게감을 덜어낸다. 궁귀의 등장만으로도 조화롭고 완결된 세계와의 거리가 멀어졌는데, 이와 같은 귀결로 인해 그것과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지기 어렵게 되었다.

이와 같은 내면의 혼란과 균열은 정훈의 또 다른 작품 <우활가>에서도 마찬 가지로 발견된다. 아래는 정훈의 <우활가>의 서두이다. “엇지 삼긴 몸이 이대 도록 迂闊(우활)고”라고 하여 자신의 우활함에 대한 탄식으로 시작하는 이 작 품의 첫머리에서 시적 화자는 ‘우활(迂闊)’이라는 노랫말을 여러 번 노출하며

‘우활’이라는 화두를 각인시킨다.

엇지 삼긴 몸이 이대도록 迂闊(우활)고

迂闊(우활)도 迂闊(우활)샤 그레도록 迂闊(우활)샤 이바 벗님네야 迂闊(우활) 말 들어 보소

이 내 져머신 제 迂闊(우활)호미 그지 업서 이 몸 삼겨나미 禽獸(금수)에 다르므로

愛親敬兄(애친경형)과 忠君弟長(충군제장)을 分內事(분내사)만 혜엿더니

 일도 믓 되여 歲月(세월)이 느저지니 平生(평생) 迂闊(우활)은 날 와 기러간다

밑줄 친 부분을 통해 여러 번 확인할 수 있는 ‘우활(迂闊)’이라는 표현은 작 품 전체에 포진해 있다. 그 표현이 담긴 “迂闊(우활)도 迂闊(우활)샤 그레도 록 迂闊(우활)샤”라는 구절은 이후 몇 번에 걸쳐 반복된다.

아이 不足(부족)들 져녁을 근심며 一間(일간) 茅屋(모옥)이 비  줄 아돗던가 懸鶉百結(현순백결)이 붓러움 어이 알며 어리고 미친말이  무일 줄 아돗던가

① 迂闊(우활)도 迂闊(우활)샤 그레도록 迂闊(우활)샤 春山(춘산)의 곳을 보고 도라올 줄 어이 알며

夏亭(하정)의 을 드러   줄 어이 알며 秋天(추천)의  마자 밤 드 줄 어이 알며 冬雪(동설)에 詩興(시흥) 계워 치움을 어이 알리 四時(사시) 佳景(가경)을 아므란 줄 므로라 末路(말로)애 린 몸이 므스 일을 렴 고 人間(인간) 是非(시비) 듯도 브도 믓거든 一身(일신) 榮枯(영고) 百年(백년)을 근심가

② 迂闊(우활)토 迂闊(우활)샤 그레도록 迂闊(우활)샤 아의 누 잇고 나죄도 그러니

하 삼긴 迂闊(우활)을 내 혈마 어이 리

밑줄 친 ①, ②에 보이듯이, 시적 화자는 “迂闊(우활)도 迂闊(우활)샤 그레 도록 迂闊(우활)샤”와 같은 어구를 반복하며 자신의 우활함 여러 차례 강조한 다. 그리고 “아돗던가”, “어이 알며” 등 ‘알다/모르다’의 문제를 거론하는 노랫 말을 거듭 언급하며 우활의 면면에 대해 풀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