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강호에서의 삶과 내면의 진술 ‧ 23
1.1. 강호가사 전통의 확인
강호의 자연미를 발견하여 그에 몰입하고자 하는, 이른바 강호가도(江湖歌道) 가 조선 전기에 하나의 경향으로 자리 잡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자연의 아 름다움을 통하여 은둔생활을 합리화하고, 강호생활의 즐거움을 묘사하며 그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내는54) 작품이 일군을 이루며 창작되었다. 가사 문학에서도
<상춘곡>, <매창월가>, <낙지가>, <면앙정가>, <서호별곡>, <성산별곡> 등의 작품이 양산되며 자연 속에서 은일하는 삶을 노래하는 전형이 마련되었다.
17세기 전반기 가사 작품 가운데 김득연의 <지수정가>, 조우인의 <매호별 곡>, 박인로의 <사제곡>·<소유정가>·<노계가>, 정훈의 <용추유영가>․<수남방옹 가>, 이경엄의 <사천귀전가>, 황일호의 <백마강가>, 채득기의 <봉산곡> 등은 이러한 앞 시기 강호가사의 흐름을 이어가는 양상을 보인다. 이들 작품을 일견 하면 공통적으로 앞 시기 강호가사에서 마련된 틀을 수용하는 양상이 쉽게 눈 에 띈다.55) 앞 시기 강호가사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송순의 <면앙정가>와 이들 작품을 견주어 보면, 은일의 공간과 그 속에서의 삶을 다루는 데 있어 공 통의 궤적을 확인할 수 있다.
54) 정재호, 「강호가사 소고」, 한국가사문학론, 집문당, 1982, 310면 참조.
55) 논의의 초점이나 해석에 있어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점은 개별 작자 및 작품에 대한 선행 연구에서 언급된 바 있다. 다음의 논의를 참조할 수 있다. 강경호, 「정훈 시가(詩歌)에 반영된 현실 인식과 문학적 형상 재고」, 한민족어문학 49, 한민족어문학회, 2006; 김창원,
「김득연의 국문시가: 17세기 한 재지사족의 역사적 초상」, 어문논집 41, 민족어문학회, 2000; 박요순, 「정훈과 그의 시가」, 한국시가의 신조명, 탐구당, 1994; 신영명, 「보수적 이 상주의의 계승과 파탄: 김득연의 강호시가 연구」, 논문집 18, 상지대학교, 1997; 이승남,
「17세기 강호가사의 전환기적 서정: 정훈의 「용추유영가」와 「수남방옹가」를 중심으로」, 우리 어문연구 28, 우리어문학회, 2007; 최상은, 「蘆溪歌辭의 창작기반과 문학적 지향」, 한국시 가연구 11, 한국시가학회, 2002; 최현재, 「朴仁老 詩歌의 現實的 基盤과 文學的 指向 硏究」,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4; 홍재휴, 「雩潭 蔡得沂와 鳳山曲 硏究: 丙子胡亂을 背景한 歌 辭의 新資料」, 어문학, 한국어문학회, 1959 등.
우선 <면앙정가>의 면모와 성취를 심수경(沈守慶, 1516~1599)이 견한잡록 (遣閑雜錄)에서 언급한 바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심수경은 당대에 성행하는 가사 가운데 손꼽힐만한 두 작품 중 하나로 <면앙정가>를 거론하며 작품의 면 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면앙정가>를 보면 그윽한 산천과 전야의 탁 트인 모양과 높고 낮은 누대와 굽이굽이 감도는 길을 서술하고, 춘하추동 사시와 아침·저녁의 경치를 두루 기 록하지 않음이 없다. 우리말과 한자를 섞어 쓰며 그 변화를 지극히 하였으니, 진실로 볼 만하고 들을 만하다. 송공은 평생 동안 가사를 잘 지었는데, 이것은 그 중에서도 가장 잘 된 작품이다.56)
심수경이 포착한 <면앙정가>의 장처는 자연 풍광과 누정의 모습을 두루 다루 었다는 점과 표현이 유려하다는 점이다. 여러 가지 면모로 언급된 산, 강, 들의 주변 풍광과 누정, 사계절에 따른 풍경과 아침·저녁의 경치 등은 <면앙정가>에 서 노래되고 있는 내용을 적실하게 지적한 것이면서, <면앙정가>가 마련한 전 형성의 일단을 보여준다. 특정 공간을 감싸고 있는 주변 풍광을 다루고, 그 속 에 놓인 특정 공간의 경관을 말하며, 그 풍광과 경관이 사계절 등 시간에 따라 어떠한 모습을 띠는지를 서술하는 것은 좁은 의미에서 ‘일종의 양식’처럼 기능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윽하다, 탁 트였다, 높고 낮다, 굽이굽이 감돌다 등의 수사는 <면앙정가>에 서 그려진 세계가 담고 있는 바를 잘 나타내고 있다. 작품을 보면 정자 주위의 산봉우리들에 대해 “노픈 즌 긋 닛 / 숨거니 뵈거니 가거니 머물거니 (···) 秋月山(추월산) 머리 짓고 / 龍歸山(용귀산) 鳳旋山(봉선산) 佛臺 山(불대산) 漁燈山(어등산) / 湧珍山(용진산) 錦城山(금성산) 虛空(허공)의 버러 거든 / 遠近蒼崖(원근창애)의 머믄 것도 하도 할샤”라고 하여 여러 봉우리가 연 이어 펼쳐져 있어 깊고 그윽한 산세를 이루는 모습을 서술한다. 그리고 “오르 거니 리거니 長空(장공)의 나거니 廣野(광야)로 거너거니” 한다고 하며 안 개와 노을, 산아지랑이가 하늘로 들판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으로써 봄의
56) “俛仰亭歌則, 鋪敍山川田野幽敻曠闊之狀, 亭臺蹊徑高低回曲之形, 四時朝暮之景, 無不備錄. 雜 以文字極其宛轉, 眞可觀而可聽也. 宋公平生善作歌, 此乃其中之最也.”: 심수경(沈守慶), 견한잡 록(遣閑雜錄).
경치를 노래한다. 여름의 정취는 “藍輿(남여) 야 고 솔 아 구븐 길노 오며 가며 적의”라고 하여 가마를 타고 굽은 길로 오며가며 바라본 풍광 으로 담아낸다. 들판에 곡식이 익어 가는 가을의 풍광을 “黃雲(황운)은 엇지 萬頃(만경)의 편거니요”라고 하며 황금 구름이 넓은 들판에 펼쳐져 있는 듯하다 고 그려낸다. “瓊宮瑤臺(경궁요대)와 玉海銀山(옥해은산)이 眼底(안저)에 버러셰 라”라는 노랫말로 눈앞에 넓게 펼쳐진 눈 내린 겨울의 풍경을 읊는다. 이로써 보건대 견한잡록의 언급이 면앙정과 그 사계절의 정취를 즐기는 시적 화자의 시선 및 움직임에 대한 노랫말을 응축해서 제시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윽하고 탁 트였다고 하는 것은 한계가 없고, 포용할 수 없는 것이 없는 우 주를 연상시킨다. 높고 낮은 것은 직선적인 것을, 굽이굽이 감도는 것은 곡선적 인 것을 나타내며, 이로써 음양(陰陽)과 같이 서로 다른 것의 조화 상태를 말한 다. 결국 산천, 전야, 누대, 길 등으로 표현한 <면앙정가>의 세계는 동일성의 논리가 지배하는 조화로운 우주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사계 절, 아침·저녁이라는 순환적 질서 속에 놓여 있다.
이렇게 볼 때 <면앙정가>는 면앙정을 중심으로 한 공간이 보편 우주를 표상 하도록 하고, 사계절의 모습을 비중 있게 다루면서 사계절의 순환이 지닌 항구 성에 기대어 영원성을 지향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岳陽樓上(악양루 상)의 李太白(이태백)”을 떠올리고 “浩蕩情懷(호탕정회)야 이예셔 더소냐”라 고 한 것은 이상적 삶이 실현으로 얻어진 완전무결의 흥취를 드러낸다. “이 몸 이 이렁굼도 亦君恩(역군은)이샷다”라고 하며 임금의 은혜를 언급한 것은 우주 적 질서를 내재한 조화로운 자연 속에서 풍류를 즐기는 가운데 느끼는 충만감 의 다른 표현이다.
구체적인 공간을 영원불변의 이상을 담은 공간으로 만드는 <면앙정가>의 이 러한 면면은 자연에서 노니는 즐거움을 노래한 17세기 전반기 가사에 하나의 틀로 작용했다. 주요 공간이 위치한 형세와 주변 경관, 사계절의 풍경, 자연완 상과 흥취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 구성에서부터 전개, 표현, 지향성 등 여러 측 면에서 유사점이 관찰된다. 작품의 서두를 견주어 보며 이러한 점을 확인해 나 가보도록 하자.
아래는 <면앙정가>와 김득연의 <지수정가>의 서두이다.
无等山(무등산) 활기 뫼히 동다히로 버더 이셔 멀리 쳐 와 霽月峯(제월봉)이 되여거
無邊(무변) 大野(대야)의 므 짐쟉 노라 일곱 구 움쳐 믄득 믄득 버려 가온대 구 굼긔 든 늘근 뇽이
선을 야 머리 안쳐시니 너 바회 우 松竹(송죽)을 헤혀고 亭子(정자) 안쳐시니 구름 탄 쳥학이 千里(천리)를 가리라 두 나 버렷
<면앙정가>
臥龍山(와룡산)이 臥龍形(와룡형)을 지에고
남역크로 머리 드러 구의구의 느릿혀 다가 구기 니러 안자 九萬里(구만리) 長空(장공)을 울워러 天柱峰(천주봉)이 되야 이셔
활기 버더 려 中央(중앙)에 쳣거
져 黃鼠年(황서년)에 先巃(선롱)을 安葬(안장)니 千峰(천봉)은 競秀(경수)야 鶴(학)이 개 편 萬壑(만학)은 爭流(쟁류)야 怒(노) 龍(용)이 리 치
길고 깁푼 고 거후러 리거
山家風水說(산가풍수설)에 洞口(동구) 모시 죠타
十年(십년)을 經營(경영)여 어드니 形勢(형세) 좁고 굴근 巖石(암석)은 하고 만타 (…………)
며 암애(岩崖) 노푼 우
老松(노송)이 龍(용)이 되어 구푸려 누엇거
雲根(운근)을 베쳐 내고 小亭(소정)을 브쳐 셰어 茅茨(모자)을 不剪(부전)니 이거시 엇던 집고
南陽(남양)애 諸葛廬(제갈려)인가 武夷(무이)예 臥龍庵(와룡암)인가 고쳐곰 살펴보니 畢宏韋偃(필굉위언)의 그림엣 거시로다
<지수정가>
<지수정가> 서두의 흐름은 <면앙정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두 작품 모두 주변의 명산을 거론하고 그 기운을 이은 봉우리의 아래에 터를 잡는다는 노랫말로 작품을 시작하고 있다. <면앙정가>에서 무등산에 이어 제월봉을 노래 한다면, <지수정가>에서 와룡산에 이어 천주봉을 노래한다. <면앙정가>에서
“너 바회 우 松竹(송죽)을 헤혀고 亭子(정자) 안쳐시니”라고 하여 넓은 바위 위에 소나무와 대나무를 헤치고 정자를 마련한다고 한 것처럼, <지수정 가>에서는 “암애(岩崖) 노푼 우 老松(노송)이 龍(용)이 되어 구푸려 누엇거
雲根(운근)을 베쳐 내고 小亭(소정)을 브쳐 셰어”라고 하여 늙은 소나무가 드리 워져 있는 바위를 보고 터를 닦아 정자를 세웠다고 한다. 이어서 두 작품 모두 정자의 경관을 노래한다.
정훈의 <용추유영가>에서도 유사한 양상을 찾아볼 수 있다.57)
方丈山(방장산) 노픈 히 西北(서북)으로 흘러 려 龍湫洞(용추동) 머므러 盤谷(반곡)이 되엿거
物外(물외)예 린 몸이 山水(산수)에 病(병)이 되여 暮往朝來(모왕조래)예 슬믠 줄이 젼혜 업서
數間茅屋(수간모옥)을 雲水間(운수간)의 얼거고 西窓(서창)을 비겨 안자 兩眼(양안)을 흣보내니 遠近(원근) 蒼巒(창만)은 翠屛(취병)이 되엿거
高低(고저) 石壁(석벽)은 그림엣 거시로다
“方丈山(방장산) 노픈 히 西北(서북)으로 흘러 려”라는 <용추유영가>의 첫머리는 역시 <면앙정가>의 서두를 연상시킨다. 이어서 초가집을 짓고 그곳에 서 바라본 풍광을 노래한다. 이렇게 은거 공간에 대한 서술을 제시하고 그 공 간에서 바라보는 경관을 노래한 점도 <면앙정가>와 유사하다.
구체적인 표현에서도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면앙정가>에서는 면앙정 주위 의 원근경을 “모힌가 屛風(병풍)인가 그림가 아닌가”, “노픈 즌 긋
닛 ”, “遠近(원근) 蒼崖(창애)의 머믄 것도 하도 할샤”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 나타난 원근과 고저의 구도, 병풍과 그림의 비유는 <용추유영가>
에도 쓰이고 있다. 위 인용 부분에서 밑줄 친 부분, “遠近(원근)”, “蒼巒(창만)”,
“翠屛(취병)”, “高低(고저)”, “그림” 등의 노랫말을 보면 주저 없이 <면앙정가>
의 표현을 떠올리게 된다.
<용추유영가>의 경우 작품 후반부에서도 <면앙정가>와의 유사점이 발견된다.
57) <용추유영가>와 <면앙정가>의 유사성은 정훈의 가사를 다룬 논의에서 여러 번 언급되었다.
박요순, 「정훈과 그의 시가」, 한국시가의 신조명, 탐구당, 1994; 이승남(2007)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