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질적 요소의 혼합
3.2. 상이한 주제의 혼합
앞서도 언급했지만 채득기의 <봉산곡>은 은거 생활을 노래하는 한편으로 병 자호란으로 인한 치욕, 그것이 자신의 삶에 미친 영향, 그 결과 은거지를 떠나 세자와 대군을 호종하기 위해 심양(瀋陽)으로 가야 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서술 하고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노랫말은 그 길이가 짧지 않다. 뒤에 덧붙였 다고 보기에는 적지 않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경천대의 경관과 그곳 에서 노니는 즐거움에 이어지는 부분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是非榮辱(시비영욕) 다 더지고 白鷗偕老(백구해로) 럇더니 무삼 才德(재덕) 잇다 고 나라조차 아라시고
쓸 읍신 이 한 몸을 차즈시기 窮極(궁극)
商山(상산) 季冬月(계동월)의 瀋陽(심양) 가라 부르시니 어 뉘 일이라 頃刻(경각)인들 머물손가
君恩(군은)을 感激(감격)야 行裝(행장)을 顚倒(전도)니 三年(삼년) 입은 겹즁치막 이불 요 겸엿다
南州(남주) 더온 도 치움이 이러커든
北極窮陰(북극궁음) 깁푼 고 우리 님 계신 데야 다시곰 바라보고 우리 님 각니
五國(오국) 寒月(한월)을 뉘 이라 바라시며 異域(이역) 風霜(풍상)을 어이 그리 격그신고 旄邱(모구)의 버든 칠기 三年(삼년)이 되야셔라 倒懸(도현)이 이러커든 屈膝(굴슬)을 언제 펼고 漢朝(한조)의 람 읍셔 犬羊臣(견양신)이 되야시니 三百年(삼백년) 禮樂文物(예악문물) 어로 가단 말고 오늘날 降虜妾(항노첩)이 다 옛날 觀周賓(관주빈)이라 堯天(요천)이 久閑(구한)고 宋日(송일)이 잠겨시니 東海水(동해수) 어이 둘너 이 羞辱(수욕) 씨련가 吳宮(오궁)의 셥흘 싹코 越山(월산)의 씨 단이
主辱(주욕) 臣當死(신당사)은 古今(고금)의 常經(상경)이라 하물며 우리 집이 世世國恩(세세국은) 입오니
아모리 溝壑(구학)인들 大義(대의)을 이질손가 平生(평생)의 어린 계교 旣倒狂瀾(기도광란) 마그랴
조 읍신 弱(약) 몸이 大厦將傾(대하장경) 어이 할고
房(방) 안의셔 눈물 면 兒女子(아녀자)의 態度(태도)로다 이 怨讐(원수) 못 갑푸면 어 面目(면목) 다시 들
岳手(악수)의 춤을 밧고 祖楫(조즙)의 盟誓(맹서)니
몸의 쥭음 름 一鴻毛(일홍모)의 빗겨 두고
東西南北(동서남북) 萬里(만리)박게 命(명)을 좃 단이리라 닛거라 가노라 가노라 잇거라
無情(무정) 白鷗(백구)더른 盟誓期約(맹서기약) 웃건마
聖恩(성은)이 하 罔極(망극)시니 갑고 다시 도라 오오리라
심양행의 명이 내려진 뒤의 감회와 행장을 꾸리면서 드는 생각을 노래하고 있다. 심양에 있는 세자와 대군을 떠올리며 걱정스러워하고 병자호란의 결과가 초래한 굴종과 치욕에 대해 개탄한다. 중국 송(宋)나라 때 명장이자 충신 악비 (岳飛)가 금나라와의 강화에 반대했던 일과 진(晋)나라 때 조적(祖逖)이 양자강 을 건너면서 중원을 회복하지 못하면 두 번 다시 강을 건너지 않겠다고 배 위 에서 노를 치며 결의한 일을 떠올리며 원수를 갚고자 하는 충절을 드러낸다.
목숨을 걸고 소임을 다할 것을 다짐하고 은거지로 다시 돌아올 날을 꿈꾸는 것 으로 작품이 마무리된다.
상당한 분량으로 노래된 이와 같은 내용은 <봉산곡>을 자연을 노래한 작품으 로만 보는 데 주저하게 한다. 나랏일에 대한 근심을 다룬 부분이 길게 마련되 면 작품 전체에서 은거 생활을 노래한 부분이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노랫말은 이 부분보다 경천대의 풍광과 그 속에서의 삶을 다루는 부분이 길지만 둘 가운데 어느 것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지, 어떤 부분을 중심으로 주종 관계가 설정되어 있는지 판단내리기가 쉽지 않다. 앞부분의 노랫말 가운 데 보이는 다음과 같은 부분이 판단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① 生涯(생애)은 分內事(분내사)라 淡泊(담박)한들 어이하리 大明天地(대명천지) 일편토의 바린 百姓(백성) 도야 잇셔 松菊(송국)을 씨다듬고 猿鶴(원학)을 벗졀 니
어위야 이 江山(강산)이 景槪(경개)도 고 만타
② 薇蕨(미궐)을 손됴 야 石泉(석천)의 씨쎠 먹고
崇禎日月(숭정일월) 保全(보전)야 軀命(구명)이나 라나면
長城萬里(장성만리) 밧게 白骨(백골)이 싸엿신들 이거시 桃源(도원)이라 綠髮(녹발)을 불을손야
①은 초가집을 짓고 정자터를 닦는 등 은거지를 조성하는 내용에 뒤이은 부 분이다. 소박한 삶을 분수로 여기며 자연 속에서 즐거움을 찾고자 하는 지향을 제시하는 이 부분에서 시적 화자는 강호의 명나라 황제의 봉토에 속한 백성으 로서의 의식을 나타낸다. ②에서는 백이숙제(伯夷叔齊)의 절개를 연상시키는 고 사리를 언급하고 명나라 의종(毅宗)의 연호 “崇禎(숭정)”을 전면에 드러내면서 대명의리를 천명한다. 이처럼 은일의 삶을 노래한 부분에서도 병자호란과 관련 된 상황에 대한 의식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각각 당대 상황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은거 생활을 노래하고, 은거 생활을 방해한 당대 상황을 노래함으로써 앞부분과 뒷부분은 서로 얽혀있 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전후로 양분되어 있으면서 서로 얽혀 있는 노랫말이 그리는 세계는 조화롭게 공존하기보다는 대립과 충돌을 일으킨다. 전자에 해당 하는 부분에서 그려지는 세계의 무결(無缺)함, 충만함과 후자에 해당하는 부분 에서 전제로 삼고 있는 세계의 불완전성, 결핍은 서로 대립한다. 각각이 절실하 게 노래될수록 대립은 더 심화된다. 은거지의 겨울 풍광을 다룬 부분과 그에 이어지는 노랫말을 통해 그러한 점을 살펴보도록 한다.
天寒白屋(천한백옥)의 玉屑(옥설)이 霏霏(비비)니 千巖萬壑中(천암만학중)의 瓊謠窟(경요굴)이 되엿셔라
蒼髥丈夫(창염장부) 捧日亭(봉일정)은 孤節(고절)을 구지 가셔 石上(석상)의 特立(특립)니 歲寒(세한)의 더욱 貴(귀)타 漁翁(어옹)이 나을 불너 고기잡이 거날
夕陽(석양)을 빗겨 고 笞磯(태기)로 나려가셔 孤舟(고주)을 손조 져어 氷網(빙망)을 거더니 銀鱗玉尺(은린옥척)이 罟(고)마도 걸여셔라 鸞刀(난도)로 鱠(회)을 치고 고기 파라 비진 슐을 깁푼 盞(잔)의 가득 부어 醉(취)토록 머근 후의 烏巾(오건)을 빗기 씨고 詠歸門(영귀문) 도라드러 天臺上(천대상) 爛柯石(난가석)을 놉피 베고 지어씨니 長松落雪(장송낙설)은 醉眠(취면)을 오 닷
(…………)
物外烟霞(물외연하) 혼 조아 富貴功名(부귀공명) 이져씨니 人世上(인세상) 黃粱(황량)은 몃 번이나 익언난고
幽靜門(유정문) 나졔 다다 人跡(인적)이 쳐씨니 天崩地坼(천붕지탁)들 그 뉘라셔 傳(전)할손고 (…………)
소곰도 醬(장)도 읍시 맛조흘 江山(강산)이야 비듬밥 풀쥭의 부를 風景(풍경)이야
눈 내리는 자천동의 풍경을 노래하며 소나무가 드리운 봉일정의 정취가 새삼 스레 다가온다고 한다. 그리고 물가로 가서 얼음 아래 있는 그물을 건져 내어 물고기를 잡아 잔 가득 술을 부어 마시면서 겨울 정취에 흠뻑 빠진다. 그리고 는 자천대에 올라 바위를 베고 누워 소나무 아래로 떨어지는 눈을 맞으며 취기 를 깨운다.
이처럼 아름답고 조화로운 은거지의 산수를 시적 화자는 혼자 좋아 할 따름 이라고 한다. 세속적 이익에는 관심이 없으며 세상일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 낮 에도 문을 닫아걸고 있고 주변에 인적이 끊어졌다고 한다. 이에 하늘이 무너지 고 땅이 갈라진다고 해도 그 일을 전해줄 이가 없다고 한다. 이처럼 고독감을 부각시킨 까닭은 세상사의 방해로부터 은일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시적 화자는 간을 맞출 것이 없어도, 허술하기 짝이 없는 식사라도 맛이 좋고 배부 르다고 하면서 세상사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에서 느끼는 충만함을 노래한다.
고심해서 정하고 애써 가꾼 은거지에 대한 노래는 충일한 만족감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떠나야 하는 곳을 바라보는 아쉬운 마음에 그 풍광은 더욱 완벽 하게 보일 것이고 그 속에서의 삶이 주는 만족감은 더할 나위 없이 느껴질 것 이다. 은거지는 다시 돌아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실현할 공간이기 때문에 가벼 이 다룰 수 없다. 그 공간을 이상적으로 형상화하면 할수록 심양으로 떠나야 하는 상황은 절망적으로 다가온다. 심양행의 이유가 전쟁에 패배해서 볼모로 잡힌 왕손을 보필하기 위해서이니 더욱 그러하다. 심양으로 나아가야 하는 때 는 “季冬月(계동월)”, 즉 겨울이다. 같은 겨울이지만 바위 위에 굳건하게 서 있 는 정자를 보고 “孤節(고절)”을 느끼며, 잔 가득 술을 마시고 소나무에서 떨어 지는 눈을 맞으며 취해서 든 잠을 깨는 등 운치 있는 겨울 풍경 속에서 한적함
을 즐길 수 있는 은거지에서의 삶과 달리, 겨울의 심양행은 앞으로 겪을 고생 과 추위에 대한 걱정을 불러일으킨다. “五國(오국) 寒月(한월)”, “異域(이역) 風 霜(풍상)”이 자아내는 차갑고 매서운 분위기는 상황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부정 적인 전망을 심화시킨다. 이렇게 볼 때 작품의 앞부분과 뒷부분은 반발력으로 서로 밀어내는 관계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각각이 추구하는 삶은 동시진 행이 불가능하다. 자천대 아래에서 은일의 지향을 완성하든 심양행을 통해 우 국충정을 실현하든 둘 가운데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
은거지에서의 삶과 심양행 사이의 대립과 충돌에 대해 시적 화자는 “君恩(군 은)”, “主辱(주욕) 臣當死(신당사)”, “大義(대의)” 등 충의 이념을 되새기는 것에 서 해결법을 찾는다. “才操(재조) 읍신 弱(약) 몸이 大厦將傾(대하장경) 어이 할고”라고 하여 재주 없고 병약한 몸으로 기울어져 가는 큰 집을 어찌할 수 없 다고 하며 주저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그 해결이 손쉬운 것이 아님을 말해준 다. 작품의 마무리를 향해 가면서 시적 화자는 원수를 갚을 것을 맹세하며 마 음을 다잡는다. 그리고 생사를 염두에 두지 않고 명을 수행하겠다고 다짐한다.
이는 주어진 소임에 대한 생각이 시적 화자의 의식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끝에서 은거지에 대한 미련을 드러내는 노랫말을 붙여 앞서 다짐한 우국(憂國) 의식의 우위에 여지를 남긴다. 이는 원수를 갚는 것만큼이나 은거지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 시적 화자에게 중요함을 말해준다.
심양에서 쓴 한시 <심양에서 감회를 읊다(瀋中寫懷)>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채 득기에게 설욕의 의지와 은거지에 대한 그리움은 동가(同價)의 것이었다.
우리 동방 천리의 나라 吾東千里國
오직 남향 두 곳을 보전했구나. 惟保兩南鄕
임금은 걱정으로 수라를 잊으셨는데 聖主憂忘食
조정의 신하는 침상에 누워 있네. 廷臣偃在床
한절을 굳게 지닌 이 다시 없으니 更無持漢節 누가 오랑캐의 창자를 짓밟을 것인가. 誰是履胡腸
하루 종일 심사가 뒤틀려 있는데 盡日心懷惡
한 잔 술 올리는 이 없네. 無人進一觴
봉산의 한 조각 땅을 鳳山一片土
스스로 고향에 비기었네. 自擬作桑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