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질적 요소의 혼합
3.1. 공적 발언과 사적 술회의 혼합
<위군위친통곡가>의 경우 임진왜란 등 당대인이 보편적으로 경험했던 사건이 나 사실을 다루는 데 있어서는 구체적인 서술 태도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앞서 지적한 바 있다. 대신 자신의 견해를 힘주어 서술하는 데 관심을 보였다. 반면 에 자신의 신변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사건의 전말을 상당히 소상하게 밝 히고 있다. 작품 후반부에서 “爲君陳達(위군진달) 그만고 聖人不無私意(성인 불무사의)니 平生慷慨(평생강개) 爲父私情(위부사정) 혜야리”라는 말로 시작
하여 가문의 위기와 그 해결을 위한 과정을 주요 화제로 삼고 있다.
한아비 주근 後(후)의 아비 代任(대임)은
異母弟(이모제) 陰壞陷兄(음양함형)야 構成虛事(구성허사)고
千變萬化(천변만화)야 虛事羅織(허사나직) 呈狀(정상)으로 久繫獄中(구계옥중)야 小祥(소상)을 지고 一定(일정) 죽게 되여거늘
英雄豪傑(영웅호걸) 大丈夫(대장부) 兵曹正郞(병조정랑) 徐益(서익) 令翁(영옹)이 獄中(옥중)의 드러가 墮淚(타루)고 일온 말샴
洞長(동장)의 孝行(효행)은 中和齋先生(중화재선생)의셔 됴곰도 지쟈나니 如此(여차) 事情(사정)을 城主(성주) 아외오니
名宰(명재) 洞辨(통변)야 解放(해방) 脫喪(탈상) 後(후)의
生平(생평)에 不敏(불민) 姜復中(강복중)는 不得已(부득이) 去鄕(거향)고 扶老携幼(부노휴유)야 處處(처처) 乞糧時(걸량시)예
四十餘年(사십여년) 在外艱苦(재외근고)야 지 어늬 알리 其間(그간) 葛麻山(갈마산) 一洞(일동)이 厲氣所種(여기소종) 되여 趙漢大賊(조한대적) 六父子(육부자)과 內外門族(내외문족)과
朱勸農(주권농) 金勸農(김권농) 朱捕將(주포장) 子孫(자손) 等(등)이 威力成黨(위력성당)고 同惡相濟(동악상제)야
窺伺間隙(규사간극)고 乘時作亂(승시작란)호
先賢墳山(선현분산)과 田民故宅(전민고택)을
傳傳易色(전전역색) 放賣(방매)야 僞造文記(위조문기) 그러셔 公然劫奪(공연겁탈)고 揚揚自得(양양자득)니
墳山(분산)이 兀兀(올올)고 奉祭祀(봉제사) 뉘 던고
작품에 언급된 바에 따라 강복중 가문에 일어난 일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 다. 강복중의 조부가 세상을 떠난 후 부친의 이복형제가 없는 일을 만들어 소 송을 제기하는 바람에 부친이 구금되는 일이 벌어지고 그 상태에서 조부의 소 상(小祥)을 치르게 된다. 마침 서익(徐益, 1542~1587)의 도움으로 풀려나고 이 후 부득이 고향을 떠나 오랫동안 돌아가지 않는다. 그 사이에 집안과 동리 사 람들 몇몇이 선산, 농토, 가옥 등을 무단으로 팔고 문서를 위조하여 빼앗는다.
이와 같은 내용은 작품에서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작품의 전반부에서 사건을 다룰 때와 달리 상세한 서술 태도를 보인다.
강복중은 이 사건의 전말을 담은 <분산회복사은가>를 창작하기도 하였다. 이
작품을 통해 사건의 해결 과정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가가 주글만졍 上言(상언)이 여 보
靑藜杖(청려장)만 감셔 쥐고 허위허위 가가셔
天安(천안) 大路中(대로중)의 往來人(왕래인)이 닐온 말이 公洪道(공홍도) 監司(감사) 明鏡(명경)의셔 明鏡(명경) 되어
千里(천리)를 머 호 千里(천리) 밧긔 빗취데 人皆(인개) 傳說(전설)커늘 암킈나 보 여 議送(의송) 張(장) 呈(정)오니
果若人言(과약인언)야 社稷臣(사직신) 李使道(이사도) 듯쟈 보쟈 반기시고 差使員(차사원) 定(정)야
先賢墳山(선현분산)의 偸葬(투장) 急速(급속) 掘出(굴출)라 背書(배서) 推給後(추급후)의 이 몸을 불러 드려
高祖辭說(고조사설) 무르시고 됴 飮食(음식) 머기시니 大旱(대한) 七年(칠년)의 時雨(시우)를 본 고 三春(삼춘) 歡樂(환락)인 그데도록 즐거오며
三年(삼년) 든 주글 病(병)의 淸心元(청심원) 蘇合元(소합원)이 그데도록 快樂(쾌락)랴 그 議送(의송) 到付(도부)니 推官(추관)이 모 이셔 掘冢(굴총)을 可否(가부)니 凡人(범인)은 니와 四寸弟(사촌제) 姜復古(강복고)가
猶爲不當(유위부당)이 箇箇(개개) 捧招(봉초)로 緣由(연유) 報狀(보장)니 千萬(천만) 分揀(분간)나 이긜 히 젼혀 업셔
고 셜올샤 이 어 두리
이 부분에는 충청감사로 부임한 이안눌(李安訥, 1571~1637)에게 기대어 분 산(墳山)을 회복시키려고 노력한 경과가 상술되어 있다. 가다가 죽을망정 말씀 이나 올려보자 하는 심정으로 감사를 찾아뵈러 천안으로 향한다. 천안 시정을 오가며 들어보니 모두들 감사가 명관 중에 명관이라고 해서 용기를 얻어 소장 을 올린다. 올리고 나서 보니 과연 사람들의 말과 같이 혜안을 지닌지라 담당 관리를 정해 투장(偸葬)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준다. 그에 더해 자신을 불러 조 부의 일을 묻고 좋은 음식까지 먹여 보낸다. 그리하여 좋은 기분으로 처분을 기다리는데 담당 관원이 가부를 결정하려고 할 때 사촌동생 강복고가 부당하다 고 주장하는 문서를 올리는 바람에 해결에 난항을 겪는다.
작품의 주요 화제인 분산(墳山) 문제는 분명하게 시비를 가리는 것을 요하는
문제이다. 승패를 나누는 싸움이나 마찬가지이다. 한 편이 옳다고 인정되면 그 것만이 진실이 되고 다른 한 편은 비난이나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이에 시적 화자는 이 문제의 승자가 되기 위하여 자신의 입장을 항변하는 목소리를 담아 내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시적 화자의 목소리는 당대 사회적 사건을 다룰 때보 다 격앙되어 있다. 강복중이 남긴 두 가사 작품에 분산 문제가 공히 다루어지 고 있는 것은 그만큼 말하고자 하는 바가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문제와 관 련하여 해명하고 토로할 것이 적지 않았던 탓에 두 작품 모두 상당한 길이로 마련되었다.
<분산회복사은가>에서 없는 일을 꾸며 모함하는 바람에 옥에 갇혀 고초를 겪 었던 부친처럼,120) 자신 또한 어처구니없는 일로 어려움에 처하는 일이 많았다 고 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역설하는 부분을 보이면 아래와 같다.
① 其間(기간)의 葛麻山(갈마산) 一洞(일동)이
厲氣(여기) 所種(소종)되여 無數(무수) 結黨(결당)고 鼠竊(서절) 狗偸(구투)는 곳곳의 싸혀 이셔
朝生(조생) 暮惡(모악)야 僞造文記(위조문기) 그라 先賢(선현) 器物(기물)과 우리 墳山(분산)을
쓰러 劫奪(겁탈)고 乘時(승시) 用術(용술)야 無窮(무궁) 作亂(작란)니
② 아비 잡던 아비도 自作(자작) 其罪(기죄)로 獄中(옥중)의 드러 이셔 判然(판연) 죽게 되엿거늘 無情(무정)한 이 몸이 代罪(대죄) 야셔
强卞(강변) 白活(백활)야 卽時(즉시) 放送(방송)니
③ 無辜(무고)한 이 몸을 僞造文記(위조문기) 그라셔 非理好訟(비리호송) 한 고 誼誼(의의) 傳說(전설)야
江亭(강정) 불 지르고 父子家(부자가)를 불 지르니
①과 ③은 자신을 모해한 이들이 행한 일을 제시하여 그들이 계속해서 간악
120) “ 아비 代任(대임)은 異母弟(이모제) 陰壤陷兄(음양함형)야 / 虛事羅織(허사나직) 呈狀 (정장)으로 獄中(옥중)의 드러 이셔”
한 행위를 일삼았음을 말한다. ①에서는 사리에 맞지 않는 일로 모여서 무리를 지어 좀도둑처럼 남의 것을 탐했던 일을 지적한다. 문서를 위조하여 기물과 분 산을 겁탈하는 등 계속해서 기회를 엿보고 술수를 부려 끝없이 난리를 일으켰 다고 한다. ③에서는 무고한 자신을 법도도 모르고 송사를 좋아한다고 비난하 며, 정자와 집에 불을 지르기까지 한 사건을 거론한다.
이러한 무고에 맞대응한다든가 되갚아준다든가 하는 포즈는 언급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가문의 일원에게 얼마나 성실한 자세를 취했는가를 밝힌다. ② 는 그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②에서 다루고 있는 사건은 무고한 부친을 옥에 갇히는 지경에 이르게 했던 친척이 스스로 지은 죄로 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대 신 죄를 청하고 탄원하여 풀려나도록 했던 일이다.
이와 같은 태도를 보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분산의 투장(偸葬) 문제가 해결되 지 않자 답답한 심회를 토로하고 하소연한다.
④ 네 高祖(고조)ㅣ 高祖(고조)요 高祖(고조)ㅣ 네 高祖(고조)ㅣ니 私情(사정)도 보련니와 高祖(고조) 네 리며
高祖(고조)곳 아니면 네 몸인 삼겨 날
⑤ 堯舜(요순)이 化其子(화기자)를 아니코쟈 못시며 周公(주공)이 和兄弟(화형제)를 아니코쟈 못시랴 聖賢(성현)도 未免變憂(미면변우) 이러야 그런 탇
⑥ 客窓(객창)을 지혀 이셔 셴 머리 두들이고 鷄鳴聲(계명성) 돗도록 고초 안 恨(한)면셔
숨을 지냐 한숨이 졔 지히고 눈믈을 나냐 눈믈이 졔 흘러셔
⑦ 月虧(월휴)도 則盈(즉영)이오 鏡分(경분)도 則合(즉합)이니 墳山(분산) 恢復(회복)을 혼 다가
四寸弟(사촌제) 姜復古(강복고)로 랄 길히 젼혀 업셔 이리 혜고 져리 혜고
못 주거 신들 사셔도 쓸 듸 업
④에서는 “네 高祖(고조)ㅣ 高祖(고조)요 高祖(고조)ㅣ 네 高祖(고조)ㅣ
니”라고 하여 한 핏줄로서의 동질감을 강조하면서 문제 해결에 마음을 쓰고 있 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마음 쓰는 대로 일은 이루어지지 않으니 ⑤에서 보이는 것처럼 화목을 도모하지 못한 것을 인정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요임금, 순임금, 주공의 고사에 기대어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한다. 성현으로 숭앙을 받는 이들 도 집안의 화목을 이루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었다는 고사는 마찬가지로 집안 문제로 곤란해 하는 자신을 비하하지 않을 주요한 근거가 된다. 성현이라 할지 라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있으니 성현에 못 미치는 자신이 이루지 못하는 바 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근심이 모두 사라지거나 문제 해결을 위해 애쓰는 것을 그만둔 것 은 아니다. ⑥에서 나타나듯이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일은 계속 된다. 머리를 두드리고 한스러워하며, 내쉬려고 하지 않아도 한숨이 나오고 흘 리려고 하지 않아도 눈물이 흘러나온다고 하며 자신에게 닥친 문제와 그로 인 해 집안의 불행을 마음 깊이 아파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러한 괴로움 속에도 문제의 해결을 포기하지 않음을 노래한다. ⑦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달 이 이지러져도 다시 차오르고, 거울을 나누며 헤어진 이들도 그것을 다시 맞추 며 만나는 것처럼 자신의 문제도 해결의 기미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 고 어려움을 타개할 뜻을 내비친다.
그러나 자신의 바람이나 노력만으로는 일이 성사되지 않는 법이다. 한 쪽의 승리로 귀결되는 문제의 성격상 상대편 또한 자신과 같은 태도를 가지고 임하 지 않는 이상 원만한 해결을 보기 어렵다. 상대편에게 자신과 같은 태도를 바 랄 길이 전혀 없다. 이리 생각하고 저리 생각해도 방책이 떠오르지 않는 자신 의 상황에 대해 죽지 못해 살고 있고 살아 있어도 쓸데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절망에 빠져 있고 고통스럽다고 한다.
①에서 ⑦의 흐름을 통해 강복중의 형편은 충분히 두둔할 만한 것이 되었다.
상대편이 합당하지 않은 처사를 거듭한 데 반해 자신은 정성을 다하여 온화한 태도로 상대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간곡히 호소했으며 서로 간에 화목을 도 모하기 위해 힘썼다고 한다. 어려움 속에서도 계속 희망을 가지고 문제의 원만 한 해결을 꾀했으나, 그러한 자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깊이 상심했음을 토로한다. 이렇듯 <분산회복사은가>는 자신의 사정과 ‘분산회 복’의 목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행한 자신의 행동을 상당히 공을 들여 설명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