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변란 체험과 기억의 술회 ‧ 99
1.1. 기억의 편집과 논평의 확대
외부로부터 침략과 내부적 정변이 이어졌던 17세기 전반기 상황 속에서 당대 인이 겪었던 비일상적이고 특수한 경험은 여러 가지 형태로 기록되고 형상화되 었다. 가사에서는 최현의 <용사음>과 <명월음>, 백수회의 <재일본장가>, 조우 인의 <자도사>, 강복중의 <위군위친통곡가>, 김충선의 <모하당술회> 등이 전 쟁, 반란, 반정 등의 역사적 사실이나 그와 관련된 작자의 경험을 배경으로 하 여 창작되었다. 이들 작품의 선례는 양사준(楊士俊)의 <남정가>에서 찾을 수 있다. 당대나 후대인의 평가가 두드러진 작품은 아니지만, 다른 예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남정가>는 1555년(명종10)에 왜구가 전라남도 해안 일대를 침범해 일어난 을묘왜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품은 을묘년 여름에 일어난 왜적의 침입과 전투, 적을 격퇴한 후 찾아온 평화를 담고 있다. 그 일단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 다.
賊徒(적도) 隳突(휴돌)야 烏鵲戱(오작희) 倡優戱(창우희) 萬具齊發(만구제발)니 聲振一城(성진일성)이로다 軍士(군사)야 두려 마라 裨將(비장)아 니거스라
賊謀不測(적모불측)이라 一陣(일진)은 徘徊(배회)고 一陣(일진)은 行軍(행군)다 錦城(금성) 橫截(횡절)야 茅山(모산)으로 도라드니 元帥府(원수부)애 갓갑도다 被轢轅門(피력원문)이 이대도록 단 말가
鷹揚隊(응양대) 風馬隊(풍마대) 左花列(좌화열) 右花列(우화열) 一時躍入(일시약입)니 炮火(포화)ㅣ 雹散(박산)이오
怒濤飛雪(노도비설)이오 射矢如雨(사시여우)로다 莫我敢當(막아감당)이어 어라 드러온다 長槍(장창)을 네 브린다 大劒(대검)을 네 다
칼 마자 사더냐 살 마자 사더냐
天兵四羅(천병사라) 내라 어 갈다 春蒐夏苗(춘수하묘)와 秋獵冬狩(추렵동수)
龍眠妙手(용면묘수)로 山行圖(산행도)를 그려내다 이 미 쉬오랴 金鼓爭擊(금고쟁격)니 勝氣塡城(승기전성)이오
猛士飛揚(맹사비양)야 執訊獲醜(집신획추)로다 旌旗(정기)을 보와 니 니니 賊首(적수)ㅣ오 東城(동성) 도라보니 히니 賊屍(적시)로다
위에 인용한 것은 적과의 일전을 노래하는 부분이다. 군사를 독려하고 갖가지 전략을 동원하여 적을 격퇴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예측하지 못한 적의 움직임에 대비해 군사를 배치하고 각 부대가 전열을 갖추어 일시에 진격 하는 등의 전략을 소상하게 밝히고, 흩어지는 우박, 성난 파도, 날리는 눈과 비 등으로 포화가 떨어지고 화살이 날아다니는 상황을 그려낸다. 시적 화자는 창 과 칼이 마주치고 화살이 날아다니는 가운데 적이 쓰러지고 아군이 달아나는 적을 쫓는 모습이 마치 사냥을 보는 것 같다고 하며 산행도(山行圖)를 떠올린 다. 이에 이어 승리를 확인하고 전투를 마무리하는 장면을 하나하나 짚어낸다.
징과 북이 울리는 소리가 아군이 성을 장악했음을 알려주고 용맹한 군사가 나 는 듯한 기세로 적의 잔당을 잡아들인다. 휘날리는 정기에는 베어낸 적의 머리 가 달려 있고, 사방에는 적의 시체가 쌓여 있다.
을묘왜변의 처리 과정을 기록하고 당시 상황을 담아내는 이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가사 양식의 주제적 성격은 어느 시기보다 17세기 전반기에 유효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란이 장기간 지속되고 이후 그 여파가 잔존하는 가운데 굵 직굵직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던 시기에 그러한 상황을 형상화하여 표출하고 자 하는 욕구가 적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현의 <용사음>과 <명월음>, 백수회의 <재일본장가>, 조우인의 <자 도사>, 강복중의 <위군위친통곡가>, 김충선의 <모하당술회> 등에서 당대 벌어 진 사건과 상황을 다루는 양상을 살펴보면, 사건과 상황 그 자체를 구체적으로 서술하기보다는 그에 대한 논평에 힘을 기울이는 경향이 발견된다. 작자의 입 론에 크게 기여하지 않는 한, 사건과 상황은 상당히 간추려져 제시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표면화되지 않기도 했다.
임진왜란 때 일본에서 포로 생활을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창작된 백수회의
<재일본장가>에서 시적 화자는 세계에 대한 형상화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 는다. 낯선 세계와 고단한 생활의 실상을 다룰 법도 한데 작품에 이러한 내용 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작품의 전모를 보면 아래와 같다.
어와 이 내 몸이 一日(일일)도 三秋(삼추)로다 海東(해동) 異域(이역)을 이 어라 게이다
天心(천심)이 不助(부조)니 萬里(만리) 漂臨(표임)이라 눈물을 베셔고 左右(좌우) 도라보니
語音(어음)이 不同(부동)고 風俗(풍속)이 相違(상위)로다 靑衣(청의)를 메앗고 腥膻(성단)의 절며
夷齊(이제)의 采薇(채미)와 蘇武(소무)의 漢節(한절)과 天祥(천상)의 爲國丹心(위국단심)을 닛디 아닌 이 내
朝朝暮暮(조조모모)의 西山(서산)을 悵望(창망)니 一寸肝腸(일촌간장)이 닛
乾坤(건곤)을 俯仰(부앙)고 古事(고사)를 思量(사량)니
父母(부모)의 恩德(은덕)과 兄弟(형제)의 友愛(우애)를 못다 갑흔 殘軀(잔구)로다 枕上(침상)의 어 故國(고국)의 도라오니
宮室(궁실)이 如前(여전)고 松菊(송국)이 荒蕪(황무)로다 父母(부모) 절며 二弟(이제)를 더위잡고
中年(중년) 不見(불견) 며 兩生(양생) 相悲(상비) 니며 무르며서 涕淚(체루)를 相揮(상휘)고 積積(적적) 前情(전정)을 못내 베픈 이예
夷謠(이요) 亂耳(난이)니 遠蝶驚廻(원접경회) 도다
길지 않은 작품을 채우고 있는 것은 피랍된 상황 아래에서의 감회이다. 더디 게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언급으로 서두를 열고 있는 이 작품에서 낯선 땅에서 의 경험을 읊은 것은 상이한 언어와 풍속 속에서 포로의 신분으로 비속하다고 여기는 풍습을 따를 수밖에 없음을 노래한 “語音(어음)이 不同(부동)고 風俗 (풍속)이 相違(상위)로다 / 靑衣(청의)를 메앗고 腥膻(성단)의 절며” 정도이다.
이 외에는 고달픈 상황에서도 위국충절의 마음이 변치 않았음을 밝히고, 서글 픔, 그리움 등 내면 심회를 토로하는 노랫말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고사리로 연명하며 절개를 지켰던 일과 흉노의 사
신으로 갔던 소무(蘇武)가 항복 권고에 응하지 않고 양치기 생활을 견디며 한 (漢)나라에 충성했던 고사를 떠올리면서, 고국에 대한 충절이 변치 않을 것임을 맹세한다. 아침저녁으로 고향 땅을 바라보며 부모형제와 함께 했던 시절을 떠 올리고 함께 있었을 때 더욱 마음 쓰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아쉬움의 토로 뒤에 이어지는 것은 꿈이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며 그 속에서 그리워하 던 부모형제를 만나고 눈물을 흘리면서 그간 못다 나눈 이야기를 한다.
꿈속의 일을 더듬는 데 집중하고 있는 시적 화자의 모습을 통해 볼 때, 이 작 품에서 정서는 현실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 그것으로부터 벗어난 또 는 벗어나기 위한 것으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적 화자는 상 실감과 불안을 야기한 경험에 대한 기억은 배제하고 상실감과 불안에 처하기 이전의 기억에 의지한다.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세계와는 거리를 두고, 감각적으 로 확인할 수 없는 세계를 지향한다.
최현의 <명월음>의 경우 달빛을 잃은 세계 아래 놓인 시적 화자의 상태를 통 해 전란의 상황을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그런데 이 작품의 시적 화자도 <재일 본장가>의 시적 화자가 그러했던 것처럼 상황을 그려내기보다는 그러한 상황에 처한 심회를 노래하는 데 주력한다.
아 근 아 靑天(청천)의 아 얼굴은 언제 나며 기 뉘 삼기뇨
西山(서산)의 숨고 긴 밤이 沈沈(침침) 제 靑奩(청렴)을 여러노코 寶鏡(보경)을 닷가내니 一片光輝(일편광휘)예 八方(팔방)이 다 거다
밤 람의 눈의 온가 서리 온가
어이 乾坤(건곤)이 白玉京(백옥경)이 도엿고 東窓(동창) 채거늘 水精(수정)발을 거러노코 瑤琴(요금)을 빗기안아 鳳凰曲(봉황곡)을 타집흐니 聲聲(성성)이 淸遠(청원)여 太空(태공)의 드러가니 婆娑(파사) 桂樹下(계수하)의 玉兎(옥토)도 도라본다 搖璃(요리) 琥珀酒(호박주)를 부어 權(권)챠 니 有情(유정) 嫦娥(항아)도 전맛 얏다
淸光(청광)을 머그므니 肺腑(폐부)의 흘너드러 浩浩(호호) 胸中(흉중)이 아니 비친 굿기 업다
위에 인용한 부분은 <명월음>의 서두이다. 이 작품은 달을 향한 찬미를 숨기 지 않는 “아 근 아 靑天(청천)의 아”라는 노랫말로 시작한다. 팔 방을 훤히 밝히는 달빛 아래 시적 화자는 수정(水精)으로 만든 발을 걸어 놓고 거문고로 봉황곡(鳳凰曲)을 타며 달의 아름다움을 예찬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몸 속 깊숙이 달빛을 느낀다. 자신을 압도하는 달빛의 아름다움에 자신의 속내 를 열어 보이기로 마음먹은 시적 화자는 “옷가 헤텨내여 廣寒殿(광한전)을 도 라안자 의 먹은 을 다 로려 엿더니”라고 하며 옷섶까지 헤치는 적극 적인 태도로 밝은 달을 향해 마음에 품은 뜻을 다 말하려고 한다. 그런데 어디 에서인지 나타난 뜬구름이 이를 방해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밝은 달빛 즉 명월 (明月)의 부재(不在) 아래 시적 화자의 불안과 고독은 다음과 같이 노래된다.
天地(천지) 晦盲(회맹)야 百物(백물)을 다 못보니 上下(상하) 四方(사방)애 갈 길흘 모노다
遙岑(요잠) 半角(반각)애 녯빗치 빈취 雲間(운간)의 나왓더니 구름 밋처나니
熹徵(희징) 비치 漸漸(점점) 아 여온다 重門(중문)을 다다노코 庭畔(정반)의 로 셔셔 梅花(매화) 가지 杜(두)경인가 도라보니 凄凉(처량) 暗香(암향)이 날조쳐 시름다
밝은 달이 구름에 가리자 천지사방이 어두워진다. 시적 화자는 앞을 분간할 수 없고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빛이 비치는 것도 같아 잠시 희망을 품었다가 떼구름이 일어나 희미한 빛이 점점 더 아득히 멀어지는 것을 본다. 깊은 상실감에 빠진 시적 화자는 문을 닫고 뜰에 선다. 문을 닫아거는 모 습에서, 앞서 가슴에 품은 뜻을 모두 펼쳐보이고자 했던 열망의 정도만큼 굳게 닫혀버린 마음이 감지된다. 뜰에 선 시적 화자의 곁에 있는 매화는 ‘한 가지’이 어서 더욱 쓸쓸함을 자아낸다. 두견새라도 자신과 함께 하는가 싶어 돌아보는 몸짓이 시적 화자의 상실감과 고독을 짐작하게 한다. 그에 더해 시적 화자가 예감했던 대상이 흔히 슬픔의 정조와 연관지어지는 두견새이어서 처량함이 강 조된다. 게다가 몸을 돌린 시적 화자가 결국 두견새조차 볼 수 없다는 점에서 그 외로움은 짙어지게 된다. 고개를 돌린 시적 화자가 맞닥뜨린 것은 매화 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