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집단 지식의 압축적 전달 기제로서의 학습

수습교육은 ‘기선제압’으로부터 시작된다. 정론일보의 수습기자들은 처음으로 현장에 가기 전 반드시 회식을 한다. 이 회식은 ‘출정식’이라고 불리는데, 본격적인 사회부 수습교육이 시작되기 직전에 엄청나게 많은 술을 먹인 직후에 출입하게 될 경찰서로 배치하는 것이다. 수습기자들은 술에 잔뜩 취한 채로 첫 담당 출입처인 경찰서를 방문하게 되고,16) 술까 지 마신 상태에서 첫 현장 취재를 경험하게 되는 수습들은 담당 사수인 일진에게 크게 혼날 수밖에 없게 된다. 이원진 기자 역시 술에 취한 채 로 종로경찰서에서 첫 취재를 하고 선배에게 첫 보고를 했다. 그때 그는 정신이 확 들었다. 전날까지 회식자리에서 화기애애하게 술을 마시던 선 배의 태도가 180도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잘해줬던 ○○○ 선배가 갑자기 ‘이 XX야’ 하면서...(웃음) 그날 정신이 확 들면서 이걸 내가 왜 해야 하지?

수습기자는 현장에 참여하여 취재를 실천하며 선배와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학습하지만, 이 상호작용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선배의 일방적인 지시를 수습기자는 무조건 이행하고 그 결과를 ‘보고’하며 다음 지시를 기다려야 한다. 수습기자는 비합리적이거나 무리한 취재지시라 하더라도 이에 대한 의문이나 반대를 표시할 수 없으며 취재지시를 받아들여 이행 해야 한다. 이에 따라 비윤리적인 행위를 하게 되거나, 수습기자가 위험 에 처하는 사건도 간혹 벌어졌다. 2000년대 중반에 수습교육을 받았던 한 기자가 병원 장례식장에서 취재 지시를 받고, 망자(亡者)의 친구로 위 장하여 유족에게 접근해 취재를 위한 정보를 얻었다가 발각되어 폭행을 당한 사례도 있었다. 1990년대까지는 사건 현장에서 증거품이나 피해자 의 유류품 등을 가지고 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고참 기자들이 수습

16) 그때부터 대략 3-6개월의 본격적인 수습 기간이 시작되는데, 이 시기를 기 자들끼리는 ‘사츠(스)마와리’라고 불렀다. 이 은어는 일본식 용어로, 경찰을

기자 시절을 떠올리며 무용담처럼 하는 이야기 중, 신문의 사건 기사에 실리는 사건 당사자의 사진을 구하기 위해 몰래 집안에 잠입하여 사진 액자를 훔쳐 온 일은 마치 단골처럼 나오는 경험담이다.17)

퇴근 없이 경찰서에서 숙식하며 진행되는 수습교육 스케줄은 수습기 자를 억압하는 가장 폭압적인 장치이다. 이원진 기자의 이야기를 토대로 당시 수습기자의 일과를 재구성해보면, 아침 6시 일진 선배에게 첫 보고 를 하게 된다. 이때 자신이 속한 라인의 경찰서를 모두 들려서 그곳에서 벌어진 사건·사고, 즉 기삿거리를 ‘수집’하여 일진에게 보고해야 한다. 아 침 6시에 보고를 하려면 수습기자는 2-3시간 전인 새벽 3-4시에 일어나 서 자신이 담당하는 경찰서를 모두 다니며 취재를 해야 한다. 전날 밤 보고가 새벽 1시 전후로 끝나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수습기자에게는 2-3 시간의 수면시간만 주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수습기자들은 집에 귀가하지 못하고 보통 큰 경찰서에 마련되 어 있는 수습기자실에서 잠을 청할 수밖에 없으며 이것이 규칙이기도 하 다. 이러한 숙식 취재를 언론사에서는 ‘하리꼬미’18)라고 통칭하는데, 수습 기자실은 온돌방처럼 생긴 (보통 아무것도 없는) 방이며 남녀 구분 없이 모든 수습기자들이 이곳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움직이는 것이다. 아침 보고가 끝나면 일진이 추가로 지시하는 보강 취재를 실시하고, 낮 동안 은 계속 일진의 지시에 따라 취재를 진행한다. 다만, 택시, 버스와 같은 교통수단에서 꾸벅꾸벅 졸거나 요령 있게 눈을 붙이고 식사도 하면서 체 력을 보충해야 한다. 하지만, 불시에 선배로부터 연락을 받게 되면 모골 이 송연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많은 기자들이 몰래 잠을 자다 선배에 게 걸린 기억, 국밥을 한 그릇 시켜서 한 숟갈 뜨는 순간 선배에게 연락 을 받고 그대로 나와야 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17) 2000년대 중반에 입사한 김윤주 기자만 해도, 선배들로부터 ‘마루사진 없 냐?’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마루사진은 일본어로 동그라미를 뜻하는 명사

‘まる’에서 비롯된 기자들의 은어로, 신문에 들어가는 얼굴 사진이 동그란 타 원 형태로 들어간 것을 묘사한 단어이다.

18) 하리꼬미는 ‘잠복함’이라는 뜻을 가진 일본어 명사 ‘張込み’에서 나온 기자들 의 은어로, 수습기자가 경찰서에서 숙식하며 취재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혹독한 수습교육을 상징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신문사의 기사 마감 시간이 지나는 오후 6시 이후, 수습기자들은 모 두 회사 사회부로 복귀하는데, 이때 일진 기자들과 직접 대면하여 그날 쓴 기사에 대한 첨삭을 받게 된다. 첨삭이 끝나면 다시 수습기자들은 본 인이 담당하는 라인 경찰서로 복귀하고 밤 11-12시 사이 정해진 시간에 다시 당직인 일진 기자에게 출입처의 사건·사고를 보고한다. 이러한 일 과가 일요일부터 금요일 밤까지 이어지고, 휴일은 토요일은 하루이다. 이 러한 일과는 아래 [그림 Ⅲ-5]처럼 표현할 수 있다.

[그림 Ⅲ-5] 1990년대의 수습기자 일과표

수습기자들은 주 6일을 이와 같이 숨막히는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며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며 취재경험을 쌓고, 기자로서 필요한 지식을 전수 받게 된다. 이에 대한 반발은 보통 개인적인 형태로 나타나는데, 도중에 그만두고 퇴사하는 경우가 간혹 발생하지만 이는 보통 기자들 사이에서

‘근성’ 없이 낙오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 과정을 겪어낸 수습기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폭압적인 수습기자 교육을 하나의 훈련 과정으 로서 받아들인다. 이러한 인식은 이원진 기자와 20년 이상 차이가 나는 3년 차 김성우 기자도 가지고 있었다.

빨리 빨리 생산물을 내놔야 하는 체계 안에서는 그렇게 (선배가) 하나 시킬 때마다 의문을 품고 했을 때, (선배가) 말을 너무 명령 조로 한다고 해서 이거는 잘못된 거여서 일 안하겠다고 버티고 이 렇게 하면 조직이 기능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웬만큼 엄 청나게 불합리한 일을 하지 않는다면, 약간의 인격모독...(은 할 수 있다) (웃음) (선배가) 욕은 안했어요. 아무도 욕하는 선배는 없었 는데 짜증나죠. 어차피 기사 안될 거는 저 선배도 알고 나도 아는 데 어쨌든 그 과정 자체가 훈련이라고 생각해서 저는 따랐던 편이 고, 그랬습니다. (김성우 기자)

이원진 기자는 점차 수습기자 교육이 “게임같은 것”이라고 느꼈다.

“정말 선배들이 후배들을 갈구고 싶어서 그랬다기보다는... 사람을 빨리 (기자로) 바꿔야 되고 적응하게 만드는 일종의 통과제의라고 생각”을 하 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얻으며 수습 생활에 익 숙해졌다. 이원진 기자는 후에 일진 기자를 거쳐 사건팀 캡을 하면서 회 의시간을 줄이는 등 방식을 약간 수정하기는 하였지만 역시 같은 방식을 따라 수습기자를 교육하였다.

정론일보의 수습기자 교육이 이처럼 수십 년 간 이어질 수 있었던 것 은 공동체의 지식이 일방향으로 전달되는 메커니즘에 따라 그대로 재생 산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습기자 교육에 성실히 참여한 이원진 기자

와 같은 이들은 선배가 되면 배운대로 수습기자를 교육시키며 그들이 학 습한 것들을 다시 후배에게 전달한다. 조직의 위계에 따라 일방향적으로 전달되는 지식은 결국 집단의 동일성을 유지하는 효과적인 기제가 되었 다.

(2) 위계적 조직문화

언론사에서는 업무 효율성을 강조하는 조직의 특성상 수직적 구조와 명령체계가 매우 강고하게 구조화되어 있다. 수습기자에 대한 취재 지시 는 일차적으로 일진이 담당하지만, 지시와 명령체계는 이러한 수직적 조 직구조에 따라 일어난다.

수습기자들은 조직 구조의 가장 하단에 위치하여 일방적으로 지시를 수용하는 위치에 있다. 사건팀의 일진 기자 역시 보통 5년 차를 넘지 않 는 비교적 젊은 기자들로, 일진 기자들 위에는 사건부팀장 격인 바이스 의 지시를 받으며, 그 위에는 소위 캡이라 불리는 사건팀장이 있다. 사건 팀장은 보통 10년 차를 전후로 한 중견기자이며, 그 위에는 사건 담당 차장, 사회부장, 사회에디터(부국장급), 편집국장이 포진되어 있다. 일진 기자는 수습기자에게 취재지시를 하지만, 특이사항이 있으면 바이스와 캡에게 보고하고 그들은 차장, 부장에게 보고하며, 부장은 에디터와 국장 에게 보고하는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회부의 위계구조는 아래 [그림 Ⅲ-6]과 같다.

[그림 Ⅲ-6] 사회부의 기본적인 위계 구조 출처: 연구자 재구성

지시체계는 보고체계의 역순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구조는 연공서열 에 따라 형성되며, 상위로 갈수록 고참으로서 권위와 역량을 인정받는다.

이원진 기자는 1995년에 수습기자였지만, 편집부, 섹션팀, 경제1부, 경제2 부, 사회부 사건팀, 사회부 법조팀, 사회부 교육팀, 온라인콘텐츠팀, 논설 위원실 등 다양한 부서를 지나는 사이에 연차가 쌓이고 직급은 점차 높 아져, 평기자에서 차장대우, 차장, 부장을 거쳐 이제 부국장급인 에디터 가 되어 의사결정을 주도하고 있다.

이러한 위계는 수습기자들에게 두려움으로 작용한다. 이들이 처음 부 딪치는 벽은 ‘무서운 선배’인데, 선배에게 보고 전화를 거는 상황을 기자 들은 가장 두려웠던 순간으로 꼽는다. 아래 [그림 Ⅲ-7]에서 볼 수 있듯 이 정론일보의 2013년도 ‘수습매뉴얼’에 따르면 보고시간과 보고요령 및 내용이 상세하게 적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