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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론일보 기자공동체는 수십 년간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작동해왔 다. 기자공동체 구성원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항상 해오던 방식으로 업무 를 수행하며, 기자들은 소위 ‘스트레이트’36) 특종을 좇아 매일 마감에 맞 36) 전통 미디어인 신문사는 1면 등에 스트레이트 기사로 보도할 수 있는 정치,

춰 신문을 생산하고, 전국 각지로 유통하는 일을 반복하여 왔다. 정론일 보의 잘 짜여진 이러한 시스템은 신입 기자가 들어오면 수습기자 교육이 라는 압축적인 학습과정을 통하여 전수되었다. 이들은 다시 기자공동체 의 숙련된 구성원이 되어 업무를 수행하고 또 새로운 이들을 맞아 지식 과 역량을 전수하였다. 이러한 재생산 구조는 큰 변화 없이 반복하여 작 동하며 2000년대 후반까지 지속되었다.

정론일보의 집단재생산 과정은 집단과 지식, 학습, 조직(활동)의 관계 를 통하여 설명된다. 정론일보 기자공동체는 과거 전통 미디어의 독점 환경에 맞는 권위주의적이고 위계적인 소통구조에 따른 집단 시스템을 갖추어 왔다. 이는 통제적인 권위주의 정치·사회 체제라는 맥락과도 상 응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 하에서 기자공동체는 관료적이고 하향적 인 신문제작 시스템과 기사의 논조와 편집방향을 통제할 수 있는 상명하 달의 의사소통 방식 등과 같은 집단의 성격과 구조를 만들어냈다. 집단 에서의 지식은 이러한 집단의 특징에 결맞은 가치관과 세계관, 문화, 관 행 등으로 규정되었으며 이는 집단이 생산하는 콘텐츠에 집약되었다. 집 단의 지식은 그에 걸맞은 방식의 객체, 즉 게이트키핑이 자유롭고 정보 의 일방향성이라는 특성을 가진 신문지면을 통하여 유통되었다. 조직에 서의 활동, 체계(구조)는 집단이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방식으 로 규정되었다. 집단의 구성원인 기자들에게는 집단이 원하는 방향의 기 사를 작성하고 신문을 제작할 수 있는 역량, 그리고 조직에 대한 충성심 을 가지고 조직문화에 순응하는 태도가 요구되었다. 따라서, 집단의 위계 구조, 의사결정 구조, 지식의 생산 및 전달 양식 등은 집단에서 일관성을 가진다. 즉, 집단은 맥락과의 상호작용에 의하여 규정되며, 집단에서의 지식과 학습을 규정하고, 이는 집단의 활동 및 체계를 규정하였으며, 집 단은 다시 학습을 통하여 재생산되는 순환 구조에 따라 작동하여 왔다.

이러한 구조를 해체하는 모순은 객체의 층위에서부터 드러나 점차 집 단 전반으로 구조화되었다. 기자공동체를 둘러싼 미디어 환경 등 맥락이 변화하면서, 신문이라는 집단의 객체가 점차 미디어 수용자로부터 외면

받게 되었다. 객체의 모순은 객체만의 이슈가 아니라, 변화한 맥락이 집 단에 요구되는 지식을 변화시킨 데에서 기인하였다. 그동안 신문이라는 객체를 통하여 생산해 온 지식이 새로운 맥락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면 서, 새로운 방식의 지식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지식을 전달 하는 매체로서 지식과 상호 유기성을 가지는 객체에서 먼저 모순이 드러 나게 되었다. 모순은 점차 집단 전반으로 확장되었다. 지식을 전수해 온 기존의 학습방식과 기존의 집단을 받쳐 오던 분업체계, 규칙 등의 활동, 위계나 권위적 위사결정 구조 등 집단 전반의 시스템에 모순이 나타나게 된다.

즉 새로운 맥락에 따라 집단에 새로운 지식과, 지식을 전달하는 새로 운 객체가 나타나면서 기존에 통용되었던 지식과 객체는 더 이상 집단을 온전하게 작동시키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 기존의 체제에 통용되던 지식 을 보유한 고참기자들의 권력은 약화되고, 새로운 지식을 가진 젊은 세 대들의 힘이 커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기존의 지식을 후대에 전수하여 왔던 기존의 학습양상과 방식도 그 용도를 잃게 되었고, 기존의 집단 재 생산 구조가 흔들리게 된다. 이처럼 집단에 구조화된 모순은 집단 전반 을 흔드는 큰 변화를 촉발하였다.

모순이 구조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정론일보 기자공동체에는 집단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이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신문지면 이라는 객체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은 집단의 근간을 흔들었고, 신문 없는 사회의 신문기자가 될 수 있다는 존재론적 우려와 함께 신문기자로서의 정체성이 위협받는 상황이 일상화되었기 때 문이다. 콘텐츠의 유통은 곧 수익구조와 연결되기 때문에 변화의 필요성 은 더욱 설득력을 가졌다. 언론사는 주로 신문지면의 광고수익만으로 운 영되었으나, 온라인 플랫폼으로 기사를 서비스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면서 온라인에서 언론사 인지도를 유지하는 것은 곧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점차, 모순 인식의 지점은 객체의 변화로부터 시작하여 변화하는 객체와 새로이 요구되는 지식을 지지할 수 없게 된 집단 시스템으로 확장되어 갔다. 또한 기존의 집단을 재생산하는 학습 형태인 수습기자 교육 방식

에도 문제제기가 나타났다. 기존의 수습기자 교육은 변화한 집단과, 집단 이 요구하는 지식에 부합하는 기자를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모든 구성원들이 같은 시점에 이러한 모순을 인식하였던 것은 아니다. 특히 연차별, 세대별로 상당한 차이가 나타났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기자들은 자신들이 성장하면서 내면화하였던 가치, 양식 이나 태도와 어긋나는 기존 집단의 모순점을 바로 민감하게 인식하고,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젊은 기자들은 지면제작과 온라인 콘텐츠 제작을 분리하여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면제작에 고착화되어 있는 기존의 시스템에서 큰 모순을 발견했다. 이들에게 콘텐츠는 당연히 온라 인으로도, 지면으로도 제작할 수 있는 것이지만, 신문지면 제작만을 중시 하며 비효율을 만들어내는 기존의 시스템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오히려, 신문사에 입사하면서 온라인용 기사와 신문 기사를 따로 송고해 야 하는 인위적인 구분에 혼란을 느꼈다. 이는 집단 내부에 갈등으로 나 타났다.

맨날 온라인, 온라인 하면서 제일 크게 나온 목소리가 뭐냐면, 후 배들은 ‘우린 알아서 할테니, 부장들 부국장들이나 잘하세요.’, ‘배 워야 할 건 우리가 아니라 고참들입니다.’ (...) ‘자꾸 우리보고 열심 히 일하라, 말라 따지지 마시라, 우리는 아무리 할래도 위에서 막 혀 있고, (선배들은) 신문 얘기만 하고.’ (정윤형 국장)

입사한 지 10년 안팎인 정론일보의 중견기자들은 과거 집단의 관행과 문화에 순응하여 전임참여자로서 활동하여 왔다. 수습기자 교육을 열심 히 받았고 또 관행대로 수습기자를 교육시켰으며, 회식에 참여하여 주량 을 넘는 술잔도 사양하지 않았고, 단독과 특종을 지향하며 신문제작 과 정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맥락의 변화를 상대적으로 예민하게 받 아들이며 자기반성과 함께 기존 시스템의 모순을 비교적 빠르게 인식하 였다. 현대 사회에 나타난 담론의 생성과 변화를 겪으며 문화적으로 진

템, 출입처 시스템 등 그에 맞는 조직문화와 교육환경이 필요하다는 인 식이 보편화하게 되었다. 이들은 젊은 후배들과 교류하고, 또 시대의 변 화에 따라 ‘정치적으로 옳은 것’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나갔기 때문에 이 러한 자각을 할 수 있었다.

구성원의 상당수인 중견 이상의 고참 기자들은 신문지면으로 구현하 는 저널리즘의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여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경 향이 강했다. 다만 집단 내부에 모순이 점차 응집하면서 계속 이를 회피 할 수는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집에서 가족들이 신문은 펼치 지도 않고 이것(스마트폰)만 보”는 상황이 일상적인 풍경이 되어 갔다.

심지어 기자들마저도 신문은 “1면하고 제목만 보고 버”리는 이들이 많았 기 때문에, 이제 변화를 “모르면 바보”(김영동 부장)인 세상이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정론일보 기자공동체에 나타난 모순과, 그에 따른 변화는 기존의 집단에서 작동되어 왔던 재생산 시스템의 순환 고리를 끊는 것이 었다. 변화된 지식은 집단과 학습의 양상을 변화시키고, 학습은 이제 기 존 체계의 재생산이 아니라 새로운 집단 체계를 창발하는 새로운 형태로 드러나야 하는 단계가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