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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립하는 가치관

정론일보 기자들은 동시대에 비교적 동질적인 집단에 속해 있지만, 기자로서 어떠한 정체성이나 가치관을 축적하고 있느냐에 따라 변화에 대하여 다른 태도를 보였다. 정론일보의 신문기자로서 가지는 가치관과 정체성이 강한 이들은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높았다. 반면, 비슷한 연차 의 기자라 할지라도 기자생활 동안 보다 다양한 경험을 하였던 이들은 새로운 것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러한 차이는 완전히 개인적인 것이라기보다 그들의 경 험과 맥락에 반영하는 집단성을 갖고 있었다.

약 25년 간 정론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한 이원진 기자는 그의 정체성 을 ‘정론일보 이원진 기자’로 정의하고 있었다. 그는 매우 성실하게 기자

축적하고, 스트레이트 취재부서의 데스크를 오가며 커리어를 쌓아 나갔 다. 그는 기자생활을 하면서 많이 배웠고, 기자로서의 자부심도 가지게 되었으며, 그가 하는 행동이나 태도, 가치관은 정론일보 기자의 입장에서 형성되어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정론일보라는 조직이 가진 가 치관과 본인의 가치관에 괴리가 없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느꼈으며 정 론일보 기자로서 자랑스러운 마음도 숨기지 않았다. 반면, 집단의 변화에 대해서는 상당히 신중하며 보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 신문 기사와 신문지면은 온라인 플랫폼이나 뉴콘텐츠보다 훨씬 큰 의미를 가 진다. 정론일보 기자로서 추구해야 하는 저널리즘, 정론일보 기자로서 가 지는 로열티, 공동의 자산 등은 계속 지켜내야 할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문을 만들어 온 이들의 정체성은 신문이라는 객체로부터 왔다. 집 단이라는 활동시스템에서 객체는 가장 중요한 개념인데, 행동은 활동의 객체에 따라 일어나며, 활동의 정체성은 주로 그 객체에 의하여 결정되 기 때문이다(Leont’ev, 1978; Engeström, 2016: 123에서 재인용). 그와 유 사한 경험을 하며 기자생활을 한 기자들의 태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 았다. 디지털뉴스국에서 교육을 받으면서도 마음은 신문지면에 가 있거 나 온라인에 기사를 쓰는 것 자체에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이들 도 많았다. 이들은 기자로서 신문지면에 집중된 경험을 하였고, 신문기자 로서의 정체성을 매우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강고한 정 체성의 근간에는 정론일보 기자로서 가진 성취의 순간이나, 보람찬 경험 들이 존재하였다. 특종을 한 경험, 박수를 받았던 기억, 조직의 소속감을 크게 느낄 수 있었던 기억 등은 이들의 정체성을 강화하였다. 박상욱 차 장 역시, 본인의 전문 영역에서 전방위로 활동하며 상당한 입지를 쌓아 올리고 있는 기자이다. 그는 아직도 신문에서 영상도 찍고 뉴콘텐츠도 만들자는 제안에 신문기자로서 혼란을 느낀다. 그가 보기에 최근 여러 신문사에서 하는 일들은 “방송용 아이템”으로 생각되고 “방송들이 하는 영역”으로 보인다. 신문기자들이 이런 일까지 하는 것은 신문의 질을 낮 추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우리가 한참 동영상 되는 핸드폰 나왔을 때 나가서 현장을 찍고 그랬었잖아. 그때 내가 정체성의 혼란을 느꼈던 게 뭐냐면 내 가 당장 오늘도 신문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걸 찍고 있는 거야, 이 거를. 물론 홈페이지에 (영상이) 올라가는 건 맞겠지만 이게 신문 으로 넘어가 가지고 지면의 질로는 올라가지 않는다고. 이걸 찍고 있으니까 뒤에 가서 (현장을) 읽을 수가 없잖아. 어떻게 돌아가고 이거를 못 찍겠더라고. 들고 있어야 하는데. 원래는 ‘아 그거 어떻 게 그렇게 된 거냐’ 듣기도 하고 그런 거 해야 하는데... (박상욱 차장)

이러한 정체성이 고참세대 기자들에게 더 강하기는 하지만, 반드시 세대나 나이로만 구분되는 특징은 아니다. 외부의 다양한 플랫폼이나 새 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기자생활을 하면서 보다 다채로운 경험을 했던 이들은 그들의 기자 정체성을 신문지면 중심으로 고정하고 있지 않았다, 정윤형 국장은 평소 컴퓨터 소프트웨어에 관심이 많았고 잘 다루는 편이었으며, 이러한 배경을 근거로 디지털뉴스국에 발 령받은 이후부터 “넓고 할 일도 많”은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다. 이때 부터 정론일보의 온라인 퍼스트를 위한 근간을 다지고, 국내·외의 다양 한 매체를 공부하며 뉴콘텐츠 리포트를 작성하는 등 정론일보 온라인의 추진방향을 결정하는데 실무적으로 큰 역할을 했다. 그는 계속 신문사가 할 수 있는 다양한 방향의 경험을 축적하며 기자의 정체성을 확장해 나 갔다. 김영동 부장도 2000년대 후반에 이미 신문제작 위주의 정론일보에 서 새로운 발전의 방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사회부 사 건팀장으로 재직하며 팀원들 대상으로 온라인 카페를 개설해서 외국의 좋은 기사를 소개하고 다양한 콘텐츠화 방식을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이 후 전문적으로 미디어 부문을 취재하며 신문사에서도 플랫폼을 다양화하 고 디지털을 강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내가 미디어 담당하던 2009년, 2010년에 개인자격으로 밤마다 남아 가지고 다음 날 아침인가, 조·중·동·경향·한겨레 다섯 개를 내가 브리핑을 해줬어, 기자 블로그를 만들어가지고. (...) 그때 보니까 조회수가 꽤 나왔거든. 하루에 몇백 명씩 보고 그랬어. (김영동 부 장)

이처럼 정론일보에 변화가 시작되던 시기에 새로운 경험을 축적하며 정체성을 확장해 나간 이들은 집단의 변화를 위하여 전면에서 문제제기 를 하고, 다른 이들을 설득하는 일을 자발적으로 하게 된다. 부서별로 돌 아다니면서 온라인 강화를 위한 간담회를 주도하고, 새로운 실천 방향을 제시하며 개별적인 소통을 통하여 구성원들을 설득하여 스스로 변화의 추동 동력이 되는 것이다. 젊은 기자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온라인 부문 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빨리 접하고, 새로운 것에 수용적인 경우가 많았 기 때문에, 그동안 상당한 시간을 지면신문 위주로 살아왔다 할지라도 고참들보다 용이하게 변화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2010년 경에 디지털뉴스국이 만들어지고 상당수의 젊은 기자들 이 이 부서에 순환 근무를 하며 학습하고 경험한 것들이 이들에게 큰 영 향을 미쳤다. 점차, 젊은 기자들 사이에서 온라인이나 뉴콘텐츠를 강화하 는 방향으로 집단이 변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게 개진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차이는 고참세대와 마찬가지로 꼭 나이나 연차가 어려서 나타난 것이 아니다. 일부 타 언론사의 경우, 오히려 젊고 낮은 연차의 기자들 사이에서 온라인 뉴스나 새로운 플랫폼에 대한 반발이 더욱 심한 경우가 많다고 정론일보 기자들은 전한다.

그게 ○○(언론사)이 대표적이야. (...) 몇 년 전에 밑에 애들이 자 보를 붙이고 그랬어. 밑에 애들이 더 저항했어. 저항의 논리가 그 거야. 업무부담도 있지만, 우리가 뭐 통신사 기자냐, 이런 식으로.

우리는 그런 일 하는 사람이 아니다... (임경원 기자)

변화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은 그들이 기자생활을 하며 어떠한 경험에

따라 정체성을 형성하였느냐에 따라 달라졌다. 신문기자로서, 신문지면을 제작하는 것에 가장 큰 의미에 가치를 둔 이들일수록 신문 이외의 플랫 폼으로 업무를 확대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높았다. 그들이 터한 맥락 에서의 경험에 따라 형성된 가치관이나 정체성에 따르면 추구해야 할 저 널리즘은 신문지면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데스크진들이 현업에서 빠지고 디지털뉴스국의 교육에 참여하면서도, 막상 신문지면 제작 업무 를 놓지 못하는 것도 본인이 해야 할 일이 바로 이 일이며 이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론일보 기자들이 가진 기 자로서의 가치관과 정체성은 변화를 거부하는 힘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반면 변화를 추동하는 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2) 강고한 위계와 조직구조

언론사는 강한 조직문화와 위계를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집단이다.

위계적이고 수직적인 관료적 구조에서 공고한 연공서열이나 기수문화 중 심의 조직문화가 형성되어 있다(원철린, 김봉렬, 2011; 김동규, 김경호, 2005). 나이를 막론하고 선배에게는 깍듯이 대하고, 수직적 의사소통 구 조에 따라 움직이며, 강압적 회식문화가 존재한다. 언론사 집단이 종종 군대나 검찰 조직과 비교되는 것도 조직문화의 유사성 때문이다. 이러한 조직문화는 수습교육으로 대표되는 도제식 교육과 언론사의 수직적인 위 계 시스템 하에서 수십 년간 지속적으로 재생산되어 왔다. 정론일보 기 자들은 연차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신입으로 처음 입사했을 때는 이러 한 조직문화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 은 공동체의 전임참여자로서의 역량을 키워나가면서 점차 관행에 순응하 게 된다.

저는, 지금과 달리 엄청나게 구악(舊惡)으로 악독하게 많이 했었기 때문에... 제가 수습 떼고 사건팀에 남은 다음에, 바로 수습들을 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