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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주도의 벽화 제작과 활용(2004- )

북아일랜드에서 폭력사태가 실질적으로 종식된 것은 2003년 북아일 랜드 정치계가 새롭게 재정비되고 난 후다.274) 2003년 11월 총선에서 개 신교 강경파 DUP와 가톨릭 강경파 신페인이 새로운 권력-분담 행정부 를 장악하게 되면서 북아일랜드 정치의 실질적인 변화가 시작되었다.275) 1998년 7월 총선에서 온건파 UUP와 SDLP가 집권당이 되었던 첫 번째 권력-분담 행정부는 네 차례나 유예되는 파행을 겪었기 때문에 강경파 DUP와 신페인이 평화 프로세스의 완성을 책임지게 되자 이러한 정치계 변화는 오히려 북아일랜드 평화에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2007 년 5월 새롭게 출범한 권력-분담 행정부는 당해 여름 영국군 병력의 90%를 북아일랜드에서 철수하도록 했고 2009년 UVF의 무기 해체 완료 와 UDA의 무기고 철수와 같은 성과를 보였다.276) 개신교와 가톨릭 양편 모두 강경파들이 권력-분담 행정부에서 요직을 차지한 이후 북아일랜드 에 폭력시위가 더 감소했고 해외기업 투자가 증가했다는 점에서 확실히 북아일랜드 상황은 이전과 달라졌다. 역사가들은 이때부터 북아일랜드에 진정한 평화 시대가 도래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277)

따라서 북아일랜드 자치정부는 2004년 즈음부터 본격적으로 커뮤니 티 사이의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전략을 세울 수 있었다. 북아일 랜드 자치정부와 공공기관들은 벽화의 제거와 교체가 여전히 분쟁의 불

274) 북아일랜드 폭력사태로 인한 사망자 수는 1972년에 480명을 기록했다. 이후 1973년 255명, 1974년 294명, 단식투쟁이 일어난 1981년에 114명에 이르는 등 사망자 숫자는 감소하긴 했지만, 여전히 세 자릿수 이상을 기록했다. 이후 차츰 감소세를 보였으나 여전히 두 자릿수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성 금요일 협정이 있었던 1998년에도 55명이 사망했고 2000년 19명, 2001년 16명이었다. 그러나 2006년부터 2020년까지 사망자는 5명 이하의 한 자릿수를 유지하고 있다(7명이 사망한 2016년 제외).

https://cain.ulster.ac.uk/sutton/chron/index.html, 2021.1.15.

275) 2003년 11월 북아일랜드 총선에서 DUP 30석, UUP 27석, 신페인 24석, SDLP 18석, APNI 6석, 그리고 기타 소수정당들이 3석을 차지했다.

276) DUP의 이안 페이즐리와 신페인의 게리 아담스는 2006년 10월 영국 정부와 아일랜 드 정부가 맺은 성 앤드류 협정(St Andrews Agreement)에 동의하였고 완전한 분쟁 종식을 약속했다. O’Kane and Dixon(주 258), pp. 21-22, and p. 26.

277) 위의 책, p. 23.

씨가 남아 있는 종파적 갈등 문제를 해결할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즉 자치정부는 서로에게 강한 적대감을 드러내는 벽화가 개신 교와 가톨릭 사이의 관계 회복을 막는 부정적 요인이라고 보았다.278) 이 에 따라 북아일랜드 자치정부는 기존의 종파적 갈등을 키우는 벽화를 지 역 사회의 실질적 삶을 반영하는 ‘커뮤니티 벽화’로 교체한다는 목적으로 국가적 차원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또한, 북아일랜드 미술계는 이때부 터 새로운 자치정부의 벽화 프로젝트에 협력하기 시작했다.

1994년부터 관광 산업의 필요에 맞춰 주로 민간단체들이 주도했던 벽화 제작은 2004년부터 정부가 벽화 프로젝트에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주제와 형식 측면에서 더 다양해졌다. 무엇보다 2000년대 초까지도 벽화 를 계속 제작했던 로열리스트들과 공화주의자들은 북아일랜드에 정치적 혼란 요인이 많이 제거되자 벽화를 통해 정치적 현황에 대한 의견을 표 명하는 빈도가 확연히 줄게 되었다. 이러한 정황들을 비추어 볼 때, 2000 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정부의 벽화 프로젝트는 북아일랜드 벽화의 주제 와 형식이 바뀌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1920년대 멕시코 정부가 주도한 벽화 운동 역시 “인종적, 지역적, 계 급적 균열을 봉합”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멕시코 정부의 벽화 운 동은 근본적으로 멕시코를 침략했던 유럽과 미국으로부터 주권과 자결권 을 지키며 멕시코인들에게 “혁명 이후 국가가 새롭게 재구성한 지배 이 념을 효과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운동이었다는 점에서 북아일랜드의 경우와 벽화 프로젝트의 주된 목적이 달랐다.279) 북아일랜드 자치정부는 제1정당인 개신교 연합당과 함께 가톨릭 정당들도 선거로 확보한 의석수 에 비례하여 새로운 정부에 참여했기 때문에, 특정 민족을 위한 지배 이

278) Andrew Hill and Andrew White, Painting Peace? Murals and the Northern Ireland Peace Process, Irish Political Studies, 27:1(2012), p. 81.

279) 멕시코 벽화 운동은 1910년 혁명 이후 새롭게 재정립된 멕시코 민족주의 이념을 대 중에게 전파하기 위해 국가가 주도한 벽화 운동이다. 1920년대 멕시코 교육부 장관이 었던 호세 바스콘셀로스(José Vasconcelos)는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호세 클 레멘테 오로스코(José Clemente Orozco)와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David Alfaro Siqueiros) 등의 미술가들과 함께 스페인 식민지 이전의 멕시코 정체성, 즉 “인디언적 전통의 복원”을 강조하며 국가 주도의 벽화 운동을 시작했다. 이성형, 「멕시코 벽화 운동의 정치적 의미: 리베라, 오로스코, 시케이로스의 비교분석」, 『국제지역연구』, 제11권 제2호(2002), 서울대학교 국제학연구소, p. 106.

념을 구축하지 않았고 또한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인구 180만 명인 북아일랜드에서 새로운 자치정부의 최대 과제는 두 커 뮤니티 사이의 분쟁이 재개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북아일랜드 자치정부의 벽화 프로젝트는 미국 필라델피아 시장이 도 시 미화와 도시 정체성 구축을 목적으로 1984년에 설립한 반-그라피티 네트워크(Philadephia Anti-Graffiti Network, PAGN)와 1996년에 확대 개편한 필라델리아 벽화 프로그램(Mural Arts Program, MAP)과 비교 될 수 있다. 필라델피아시는 1984년부터 30여 년 동안 도심에 3,600여 점 의 벽화를 제작하여 ‘벽화 도시’라는 타이틀을 얻고 벽화를 관광에 이용 해 왔다.280) 그러나 북아일랜드의 경우 종파성이 강한 벽화 제거와 비- 정치적 주제의 벽화 제작에 목적을 둔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그 제작 과 정에서 차이가 있었고 사회적으로 더 철저한 논의와 합의가 필요했다고 볼 수 있다.

본 연구자는 2019년에 현장을 방문하고 자료를 수집하면서 서로에게 총을 겨누었던 트러블을 극복하기 위해 보는 이로 하여금 혐오감이 들게 하는 벽화의 제거가 일정 부분 필요하다는 사실에 공감했다. 그러나 ‘중 립적 이미지’의 벽화로 대체한다는 정부 프로젝트의 목적이 제대로 지켜 질 수 없고 그 자체로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실제로 벽화 프로젝트의 중립성에 대한 문제점들이 발견된 이후 북아일랜드 이해관계자들 사이에 서도 벽화의 제거와 교체가 왜 더욱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다. 북아일랜드 벽화 프로젝트의 결과물 은 총을 포함한 도상을 제거하는 데 큰 의의를 두었을 뿐 새로운 도상이 지닌 문제점들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판과 논란을 피할 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장에서 북아일랜드 벽화 교체 프로젝트의

280) 그라피티를 근절하기 위해 1984년 설립된 PAGN과, 도시 정체성 고양, 사회적 화합 과 도시 미화를 위해 1996년 설립된 MAP의 활동 결과로 필라델피아 도심에 30년간 3,600여 점의 벽화가 제작되었다. 김지연은 필라델피아 벽화 프로젝트가 유색인종들의 모습만 벽화로 그렸고 시 정부의 이념적 목표를 반영하기 위해 “미학적 독창성보다는 상투적인 소재를 형상적인 양식으로 제작”했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보았다. 김지연,

「필라델리아 벽화 프로젝트」, (석사학위논문, 서울대학교, 2014), pp. 19-20, p. 45 and pp. 123-26.

진행 과정을 살펴보고 그 결과물들을 비판적으로 고찰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브렉시트 전후의 북아일랜드의 정치적 상황 변화에 따른 북아일랜드 벽화의 미래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