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성 금요일 협정 이후 지역 커뮤니티, 종교단체, 문화단체, 스 포츠클럽, 국제단체의 지원을 받은 기구 등 다양한 형태의 단체들이 특 정 주제의 벽화를 전문 벽화가들에게 직접 의뢰하는 제작 방식이 증가했 다. 이 새로운 벽화 제작 방식은 개신교 노동자 계층 지역에서 두드러졌 다. 특히 로열리스트 준군사조직들이 주로 활동하는 지역의 커뮤니티 단 체들은 환경 개선을 목적으로 준군사조직들과 협상을 통해 벽화 교체에 나섰다. 예를 들어 게리 메이슨(Gary Mason) 목사는 동벨파스트에서 UVF와 RHC 지도자들과 협상을 벌여 무장한 복면 남성이 그려진 벽화 를 제거하고 동벨파스트에서 태어난 축구선수 조지 베스트(George Best), 문학가 C.S. 루이스(C.S. Lewis)나 근처 할랜드 앤 울프 조선소에 서 제작된 타이타닉호 이미지로 대체하도록 했다(도 85).268) 타이타닉호 를 그린 벽화는 1930년대 로열리스트 벽화의 전성기에도 등장한 주제였 다. 벨파스트 출신의 문화예술·체육계 유명인이나 지역 명소를 그린 벽 화는 지역민에게 거부감을 주던 군국주의적 이미지와 달리 지역의 정체
267) McCormick and Jarman(주 248), p. 64.
268) Rolston(주 13), pp. 452-53.
성을 대변하는 것으로 여겨졌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사례로 샌디 로(Sandy Row)의 린필드 스트리트(Linfield Street) 상인들과 기업가들은 총기가 그려진 로열리스트 벽화가 새로운 기업가들의 투자를 막는다는 이유를 들어 준군사조직과 타협하여 벽화를 교체했다(도 86). 2005년에 제작된 벽화에는 아이들이 야외동물원에서 코끼리, 하마, 악어 등의 동물들을 보고 웃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2002년부터 서벨파스트 체육문화협회(the West Belfast Athletic and Cultural Society)와 동벨파스트 역사문화협회는 각각 15개의 벽화를 후 원하여 연합주의 역사와 문화의 한 단면을 그리도록 했다(도 8). 이 벽화 는 Ⅱ장에서 설명한 1643년의 엄숙동맹규약을 다룬 벽화로 동벨파스트 역사문화협회의 후원으로 제작되었다. 이처럼 여러 단체의 후원으로 제 작된 벽화는 1985년의 앵글로-아이리시 협정 이후로 많이 그려진 준군 사적 벽화들이 예전의 오렌지회를 상징하는 이미지나 스포츠·문화 아이 콘으로 대체되는데 일조했다고 볼 수 있다.269) 그러나 이러한 지역단체 의 벽화 후원은 로열리스트 벽화의 군국주의적 요소가 얼스터 개신교 역 사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을 뿐 여전히 벽화에서 종파적 요소를 제거하 는 것과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성 금요일 협정은 윌리엄 3세의 승리주의 이미지와 중무장한 민병대 이미지 외에 주제가 빈약했던 로열리스트들이 새로운 벽화 주제 를 찾는 계기가 되었다. 성 금요일 협정에는 북아일랜드에 존재하는 다 양한 민족 언어를 문화적 자산으로 보고 지원한다는 항목이 포함되어 있 다. 이에 따라 17세기 스코틀랜드에서 얼스터로 이주한 사람들을 지칭하 는 얼스터-스콧(Ulster-Scot)의 언어 및 문화 연구가 1998년에 시작되었 다. 로열리스트들은 얼스터-스콧 에이전시(Ulster-Scot Agency)의 후원 을 받고 얼스터-스콧 선조들을 벽화로 제작할 기회를 얻었다.270) 1999년
269) McCormick and Jarman(주 248), p. 65.
270) 얼스터-스콧 에이전시(Ulster-Scot Agency)는 북아일랜드 문화·예술·레저부(the Department of Culture, Arts and Leisure)와 아일랜드 공화국의 커뮤니티·농촌·게일 어 사무국(Department of Community, Rural and Gaeltacht Affairs)이 공동 출자하여 설치되었다. 이 후 얼스터-스콧 에이전시는 현재까지 언어, 음악, 춤과 축제 등의 문
화를 주관하는 지역 단체들에게 보조금을 제공해 오고 있다.
에 벨파스트에는 도네갈 카운티 출신이자 미국 15대 대통령을 역임한 제 임스 뷰캐넌(James Buchanan)을 묘사한 벽화가 제작되었다(도 87).
2000년에는 데리 지역에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을 그린 벽화가 제작되었다(도 88).271) 워싱턴의 초상화 옆 에는 “만약 다른 모든 곳에서 패배한다면, 나는 내 고향 버지니아의 스 카치-아이리쉬(얼스터-스콧)와 함께 자유를 위한 마지막 입장을 취할 것 이다”라는 미국 독립전쟁 당시 그의 발언이 적혀 있다. 이 벽화는 워싱 턴이 지휘한 군대의 거의 절반이 얼스터-스콧이었다고 기록하고 있 다.272)
얼스터-스콧의 정체성 연구는 1978년과 1987년 두 차례에 걸쳐 UDA 내부 정치그룹이 스코틀랜드와의 역사를 통해 얼스터 정체성을 만 들고자 했던 시도와 비슷한 점이 있다. 그러나 신화적 인물이나 얼스터 의 독립 이념을 만들려고 했던 UDA와 달리 1998년 이후의 연구는 오히 려 언어 연구와 얼스터 출신의 실존 인물들에게 관심을 돌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얼스터-스콧에 대한 연구는 로열리스트 준군 사조직과 구분되는 새 이미지를 로열리스트에게 부여하는 데 도움이 되 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얼스터-스콧 출신으로 미국에서 대통령, 장군, 군인이나 모험가로 이름을 남긴 인물을 그린 벽화는 19세기 미국 에서 활동했던 가톨릭 독립운동단체인 페니언과 구분되는 아일랜드 개신 교 이주민들의 존재를 북아일랜드 지역민들이나 해외방문객들에게 알릴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얼스터-스콧의 역사를 다룬 벽화는 여전히 ‘붉은 손’ 도상을 포함하 는 특징을 보였다. 14세기 게일 영주 오닐 가문이 문장과 깃발에 채택한 이후 얼스터를 상징해 왔던 붉은 손 도안은 1970년대부터 UDA나 UVF 등 로열리스트 준군사조직들이 엠블렘으로 사용해 왔다. “4천 년의 얼스 터-스콧의 역사와 유산”이라는 글이 적힌 한 벽화는 얼스터의 조상이
https://www.ulsterscotsagency.com/about-us/, 2020.10.13.
271) Bill Rolston(주 197), p. 12.
272)https://petermoloneycollection.wordpress.com/2003/02/28/george-washington/, 2020.10.13.
400년 전이 아닌 4천 년 전에 스코틀랜드에서 왔다는 역사를 설명하면서 벽화의 중앙에 크게 붉은 손을 그려놓았다(도 89). 이로부터 얼스터-스 콧의 역사를 연구하는 단체들 역시 14세기 게일 영주가 사용한 도안을 옮겨 오면서도 가톨릭 아일랜드와의 관계를 배제하고, 얼스터-스콧의 역 사를 17세기가 아닌 4000년 전으로 설정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또 다른 역사연구를 통해 2002년에 제작된 한 벽화는 1649년에 있었 던 올리버 크롬웰의 가톨릭 원주민 대학살을 다루며, 가톨릭교도에 대한 개신교도의 반감을 재현하고 있다(도 90). 이 벽화에는 “가톨릭은 종교 그 이상이다. 그것은 정치적 힘이다. 그래서 나는 가톨릭교회가 무너질 때까지 아일랜드에 평화가 없을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라는 크롬웰의 글 을 적어놓았다.273) 이 벽화는 북아일랜드에 거주하는 다양한 민족들을 인정하고 차별하지 않겠다는 성 금요일 협정 취지와 다르게 가톨릭과 개 신교 사이의 민족 및 종파적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장에서는 1994년에 가톨릭과 개신교 양편의 무장단체들이 휴전 을 선언한 후 벽화의 주제와 형식이 변화되는 과정을 고찰해 보았다. 북 아일랜드 관광 산업의 재개와 벽화를 이용한 관광은 북아일랜드 벽화가 이전과 다른 목적으로 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공화주의 벽화와 로열리스트 벽화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변화의 방향이 달랐다. 공화주의 자들은 전쟁장면 대신 과거 아일랜드의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기념하 는 벽화를 제작하고 아일랜드의 민족적 자부심을 표현하는 한편 가톨릭 아일랜드인들에게 과거 영국의 탄압을 기억하고 경계를 늦추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반면 북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에 불만이 많았던 UVF 와 UDA는 로열리스트 벽화에 군국주의적 요소를 더 많이 그리면서 그 러한 이미지에 거부감을 지닌 개신교 노동자 계층 내부에서조차 갈등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로열리스트 준군사조직의 세력은 빈민 지역의 주택 소유권을 지닌 주택공사도 벽화를 제거하는 결정을 하지 못할 정도 로 강력했던 것을 볼 수 있다.
1998년의 성 금요일 협정은 개신교 정당과 가톨릭 정당이 권력을 분
273) https://extramuralactivity.com/2004/07/27/cromwell/, 2020.10.30.
담하여 북아일랜드에 자치정부를 건립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 영국 정부와 아일랜드 공화국 정부 사이의 합의였다. 협정 통과 후 영국은 북 아일랜드의 내정을 새로운 자치 정부에게 넘기는 권한 위임을 시작했다.
아일랜드 공화국은 아일랜드 양쪽의 다수가 원하면 언제든 이루어질 수 있는 아일랜드 통일에 대한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북아일랜드 권력- 분담 자치정부는 1999년 행정부가 꾸려진 이후 2002년까지 4차례에 걸 쳐 중단될 만큼 난항을 겪었다. 특히 이 시기 벽화는 여전히 북아일랜드 사회에 팽배해 있는 가톨릭교도와 개신교도 사이의 갈등을 더 분명히 보 여주었다. 2000년대 초까지도 공화주의 벽화에는 여전히 UDA나 UVF에 게 종파적 괴롭힘을 당하는 가톨릭 아일랜드인의 상황이 묘사되었다. 또 한, 이에 단호히 대처하지 못하는 자치정부에 대한 비판과 트러블 시기 에 있었던 문제를 제대로 밝히지 않는 영국 정부에 대한 비난이 표현되 어 있다.
성 금요일 협정 이후 로열리스트 벽화에도 얼스터-스콧의 역사연구 와 같은 새로운 주제가 다루어지고 얼스터 개신교 정체성을 벽화로 제작 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여전히 종파적 혐오감이 벽화를 통해 재생산되고 있었다. 벽화를 통해 본 성 금요일 협정 전후의 북아일랜드 사회는 민족적으로 쉽게 화해할 수 없는 골이 깊은 갈등을 표현하고 있 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