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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주도한 프로젝트들은 아일랜드와 유럽 출신 예술가들을 벽화 제작에 참여시키면서 커뮤니티가 지닌 정체성이 제대로 반영된 벽화를 제작하는 데 있어 한계를 드러낸 반면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벽화 들이 등장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또한, 2010년대에 들어오면 예술위 원회가 제작한 벽화뿐 아니라 지역 미술제를 통해 제작된 벽화나 다양한 단체들이 후원한 벽화들이 이전보다 많아졌는데, 특히 도심의 상업지구 에 그려진 벽화는 주제나 형식 면에서 더 자유롭게 제작될 수 있었다.

실제로 도심을 포함한 몇몇 지역은 최근 들어 종파적 특징이 드러나 지 않는 ‘제3의 공간’, 즉 중립적 공간으로 조성되고 있다.309) 이러한 공

308) 이 후속 프로젝트에는 북아일랜드 예술위원회 외에도 유럽연합 평화 3 프로그램 (EU’s PEACE Ⅲ Programme)과 국제 아일랜드 기금(the International Fund for Ireland)이 보조금을 제공했다. Simone-Charteris(주 147), pp. 220-21.

309) 예를 들어 벨파스트시는 타이타닉 지구에 수백 채의 새 아파트와 사무실을 짓고 모 든 이들이 접근할 수 있는 도심의 새로운 중립적인 공간을 조성했다. 그러나 학계에 서는 ‘타이타닉’ 명칭이 개신교 측의 상징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중립적이 지 않다고 보았다. Rapp and Rhomberg(주 285), p. 472.

간에 그려진 벽화에는 국내외 예술가들의 작업 방식이 그대로 적용되었 다. 대표적으로 런던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아일랜드 거리미술가인 코너 해링턴(Conor Harrington)은 2012년 5월에 성당 지구 예술 축제 (Cathedral Quarter Arts Festival)에 참가하여 <벨파스트의 결투 The Duel of Belfast>로 알려진 벽화를 그렸다(도 103).310) 이 벽화에는 죽은 개의 사체 옆에서 칼을 들고 결투하는 두 사람과 그 뒤편의 의자에 앉아 결투를 지켜보는 한 사람이 그려져 있다. 고전적 회화 양식을 응용한 작 품을 제작해 온 헤링턴은 그의 스타일대로 이 벽화를 완성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수 세기 동안 분쟁을 겪어온 벨파스트의 역사를 비유적으로 표 현했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 거리예술가로 알려진 MTO가 2014년에 그린 <프로타고라스 의 아들 Son of Protagoras> 벽화는 위의 작품과 같은 맥락에서 제작되 었다고 볼 수 있다(도 104). 프로타고라스는 신의 존재 여부를 아는 것 이 불가능하다는 책을 썼다는 이유로 아테네에서 쫓겨났던 B.C. 5세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였다. MTO는 이 벽화를 통해 ‘종교적 집착이 평화 의 적’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의 벽화에서, 프로타고라스의 아들로 보이는 한 소년이 몰타 기사단(the Knights of Malta) 십자가와 라틴 십 자가가 새겨진 화살에 맞은 비둘기를 두 손으로 감싸고 있다.311) 이 벽 화는 인적이 드믄 한 주차장 벽에 그려져 있지만, 벨파스트 거주민들과 방문객들이 자주 찾는 벽화 명소로 알려지게 되었다.

맨체스터 출신 예술가인 노마드 클랜(Nomad Clan) 역시 2016년에 노스 스트리트(North Street)에서 열린 거리 미술제에 참가하여 벨파스 트를 주제로 한 새로운 형식의 벽화를 제작했다(도 105).312) 100년이 넘 는 역사를 지닌 ‘할랜드 앤 울프’ 조선소의 동음이의어에서 착안한 이 벽 화에는 선박과 조선소가 있는 바다를 배경으로 늑대와 한 여성이 서로 바라보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미술 작품은 작품이 그려진 공간을 이용 하는 이들의 사상에 따라, 그리고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르게 이해될 수

310) https://extramuralactivity.com/2013/07/13/the-duel/, 2020.12.29.

311) https://extramuralactivity.com/2014/10/03/son-of-protagoras/, 2020.11.9.

312) https://extramuralactivity.com/2017/10/07/harland-wolf/, 2020.12.29.

있다.313) 위에 소개한 세 벽화는 북아일랜드의 역사와 지역의 상징을 주 제로 제작되었지만 보는 이들의 관점과 생각에 따라서 다양한 해석의 여 지를 주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2010년대부터 확실히 북아일랜드 벽화에는 2000년대 초반까지 보였 던 종파적 갈등과 정치적 사건에 기반한 사회 비판적 주제나 권력에 대 한 저항의 의미가 드러나 있지 않다. 현재 가톨릭과 개신교의 접점 지역 에 그려진 종파적 갈등을 드러내는 벽화는 벽화 관광을 위해 보존되거나 복원된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이것이 북아일랜드 사회에 종파적 갈등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성 금요일 협 정 이후 서로 다른 민족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이 지난 갈등을 잊고 함께 살기 위한 시도가 계속되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여전히 깃발, 벽화, 행 진과 같은 문화적 상징물에 대한 갈등이 있었다.

예를 들어 2012년 12월 벨파스트 시의회가 시청에 유니언잭의 게양 일수를 연 18회(주로 왕립 기념일)로 제한하자 로열리스트 노동자 계층 은 이를 개신교에 대한 불공정한 문화 탄압으로 보고 3개월간 비폭력 거 리 시위를 벌였다. 2013년 7월에는 퍼레이드 위원회가 크럼린 로드 행진 을 금지한 것에 항의하는 오렌지맨의 시위가 벌어졌고 그 시위는 8월까 지 이어졌다.314) 2010년대에 벌어진 시위는 대부분 비폭력적으로 조용히 진행되었다. 주로 개신교도들이 벌인 시위였다는 점에서 북아일랜드 분 위기가 불과 한 세대 사이에 크게 바뀐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북아일 랜드 사회에 정치적·제도적 불합리가 이전보다 많이 감소한 후에 제작된 벽화는 특정 집단의 이념을 표명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보기 어려울 수 있다. 앞서 설명한 세 점의 벽화에서 볼 수 있듯이 북아일랜드에서 최근에 새롭게 제작된 벽화는 과거의 종파적 갈등을 하나의 소재로 사용 할 뿐이며 벽화 도시의 명성을 위해 활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결정은 북아일랜드가 영국과 결별 하고 아일랜드 공화국과의 통일이 한층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315)

313) 김정희, 「미술속의 공간정치학: 도시설계도, 회화와 미술관 건물의 '공간표현'」,

『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 제21집(2004), 서양미술사학회, p. 49.

314) O’Kane and Dixon(주 258), p. 30.

영국의 EU 탈퇴는 북아일랜드 정치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영국이 EU 에서 탈퇴하면 북아일랜드가 EU와 육지 경계가 되는 영국의 유일한 지 역이 된다는 점에서 북아일랜드에서 브렉시트의 의미는 영국본토와 다르 기 때문이다. 브렉시트 이후 진행된 협상에서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공 화국의 국경문제가 EU와 영국의 실질적인 무역협상에 큰 걸림돌이 되기 도 했다.316) 그러나 영국 정부는 EU 단일시장을 떠나겠다는 결정을 확 고히 했다. 영국은 2020년 1월 31일 유럽연합에서 정식으로 탈퇴했고, 12 월 31일까지 이행기를 거친 후 북아일랜드를 포함한 영국 전체가 EU 관 세동맹을 탈퇴하기로 최종 합의가 마무리되었다.317)

실제로 브렉시트 이후 북아일랜드 사회에서 아일랜드 통일에 대한 관점이 바뀌고 있다. 1998년의 성 금요일 협정 이후에도 가톨릭 인구조 차 35%만이 아일랜드 통일을 지지했는데, 이러한 분위기는 2000년대에 도 계속되었다. 그러나 2016년 6월 이후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통일에 대 한 북아일랜드 거주민들의 지지도가 높아지고 있다. 2017년 3월 아일랜 드 통일에 대한 북아일랜드의 지지율은 50%였고 같은 해 12월의 여론조 사에서는 지지율이 60%로 증가했다. 통일에 대한 가톨릭 중산층과 개신 교 연합주의자들의 거부감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 수치로 확인되었다.318)

여기에는 경제적 요인도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아일랜드 공 화국은 2001년 1인당 GDP 수치에서 처음 영국을 앞지른 이후 2017년에 7만 달러를 넘어섰고 2019년에 5위(77,742달러)를 차지하며 23위(44,177 달러)인 영국을 크게 앞섰다. IMF는 각 국가의 2025년 1인당 GDP를 예

315) 데이빗 카메론(David Cameron) 영국 총리는 유로 지역 재정위기, 중동부 유럽국가 들의 유럽연합(EU) 가입과 대규모 난민 유입에 대한 대응책으로 2016년 6월 23일 브 렉시트(Brexit) 찬반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투표 결과, 72.2% 투표율에서 51.9% 찬성 과 48.1% 반대로 EU 탈퇴가 확정되었다. 55.8%가 브렉시트에 반대한 북아일랜드는 EU 탈퇴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316) Jarman(주 238), p. 111 and p. 126.

317) 다만 단일시장 관련 EU 법령 일부가 북아일랜드에 일정 기간 유지되며 차후 협상 을 진행할 예정이다. 윤형준, 조동희, 「브렉시트 개시: 의미와 쟁점」, 『오늘의 세계 경제』, 제20호(2020), 대외경제정책연구원, pp. 1-10.

318) John D. Brewer, “The Sociology of the Northern Irish Peace Process,” in Charles I Armstrong, David Herbert and Jan Erik Mustad, eds., The Legacy of the Good Friday Agreement. (Cham: Palgrave Macmillan, 2018), pp. 285-86.

측하면서 아일랜드 공화국이 112,518달러로 세계 2위, 영국이 48,734달러 로 23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319) 브렉시트 이후 두 나라의 격차 는 더 벌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따라서 아일랜드 국경문제를 포함한 경제적 관점을 고려할 때 가까운 시일 내에 북아일랜드는 아일랜 드 공화국과의 통일을 선택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와 같은 북아일랜드를 둘러싼 정치적 경제적 상황을 볼 때 이제 북아일랜드 거주민들은 벽화의 의미를 트러블 시기와 같은 정치적 의미 로 해석하지 않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공화주의 벽화에 그려진 피닉스 (Phoenix)는 무장독립운동을 했던 공화주의자들의 부활을 상징하지만, 이제 가톨릭 민족주의자들은 이것을 영국에 대한 투쟁을 부추기는 이미 지로 해석하지 않을 것이다(도 106). 피닉스는 1980년대 공화주의 벽화 에 자주 등장했던 이미지로, 완전히 불에 타서 재가 된 곳에서 부활함으 로써 “패배로 보이는 것으로부터의 승리”를 전하기 위해 페니언이 19세 기 중반에 처음 사용했던 도안이다.320) 하지만 현재의 피닉스에는 북아 일랜드의 평화와 앞으로 있을 통일에 대한 기대감, 가톨릭 승리주의 의 미가 더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검은 복면의 총잡이를 그린 벽화는 여전히 가장 번화한 동부 벨파스 트 대로변의 한 벽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전과 달리 총구는 아래를 향하 고 있다. “공격받으면 스스로 방어할 권리”라는 슬로건에서 알 수 있듯 이 로열리스트 준군사조직은 공격보다 방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도 101). 데이비드 허버트(David Herbert)는 2000년대 들어 북아일랜드 정 부가 중산층에게 혜택이 더 많이 갈 수 있는 도심 재생과 도시 외곽 산 업단지 성장에 지원을 아끼지 않은 반면, 트러블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받은 노동자 계층에게 가장 적은 혜택을 주었다고 보았다.321) 미래가 없 다고 느끼는 로열리스트들을 과거 로열리즘 이념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 는 사회에서 단절되고 고립된 커뮤니티를 개방시키는 북아일랜드 사회 구조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319) https://www.imf.org/external/datamapper/NGDPDPC@WEO/AZE 2020.12.26.

320) Hayes-McCoy(주 97), pp. 149-50.

321) David Herbert(주 10), p. 2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