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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文藝美에 대한 관심

문서에서 비영리 - S-Space - 서울대학교 (페이지 103-117)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만으로도 삼연이 시경을 ‘經’보다는 ‘詩’로서 간주하고 텍스트 해석에 착수했다는 점은 어느 정도 확인되었으리라 판단된다. 본 장에서 는 삼연의 그러한 접근법이 어떻게 본격적인 문예이론 내지는 비평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는지 살펴보는 데 초점을 맞춰보려 한다. 요컨대, ‘시경론’이 ‘시론’·

‘시비평’으로 확장되는 양상을 탐구해보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1)‘詞欲巧’론과 比興에 대한 관심 (2)意味·語勢·文勢를 중시하는 讀詩 태도 두 가지 측면에서 삼연의 시경론을 검토해보려 한다. (1)이 比興을 중심으로 한 시학이론의 탐구 로서의 지향이 강하다면, (2)는 개별 시편 품평을 위주로 한 시 비평으로서의 지향이 강하다고 구분지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시의 문예미를 탐구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양자는 공통분모를 지닌다.

1) ‘詞欲巧’와 比興에 대한 관심

전통적으로 儒家에서는 시를 강조했다. 이는 유가의 宗師인 공자가 논어에 서 시 학습의 중요성을 누차 강조했던 점과도 무관치 않다. 그러나 漢代 이후 유가 지식인들의 전형적인 시의식은 형식·표현적인 측면보다는 내용·주제적인 측면에, 내재적 예술성의 측면보다는 외재적 효용성의 측면에 그 초점이 맞추어 져 왔다. ‘詩言志’(서경)·‘溫柔敦厚’(예기)·‘思無邪’(논어) 등 유가 경전에 서 유래된 시학 명제들 역시 항시 그러한 맥락에서 회자되어 왔다. 물론 동아시 아에서 시의 표현·형식적 측면에 대한 논의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유가의 이념적 구속이 약화되었던 위진 시대에 ‘문학·예술의 자각’이 이루어진 이래로, 唐宋대를 거치며 근체시가 확립되고 詩話·評點書 등이 활성화됨에 따라 시의 표현·형식에 대한 관심도 아울러 증대되었다. 그러나 그 결과 각종 ‘○○

體’·‘○○格’ 등이 정립되고 시인들이 이를 절대적 규범으로 받아들이게 됨에 따 라 반대로 과도한 기교주의·형식주의의 병폐를 낳기도 했다.

삼연의 시학이론은 위와 같은 시학사의 두 조류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수렴시 키려는 관심에서 시작되었다. 이를 위해 삼연은 두 조류가 갈라지기 이전의 ‘원

내용·주제적 측면 강조 표현·형식적 측면 강조

言志 葩藻

溫柔敦厚 玲瓏掩映

旨 格

思無邪 詞欲巧

命意 詞致

형적 상태’, 곧 ‘시의 원류’를 탐색해나갔고, 그러한 探源的 여정의 궁극에 놓인 것이 바로 동아시아 最古의 시가집인 시경이었다. 삼연은 刪前詩/刪後詩를 구 분하여 전자는 ‘經’으로 후자는 ‘詞章末技’로 이원화하려는 시각에 반대했다. 그 는 ‘시경 시’나 ‘시경 이후의 시’나 모두 ‘詩’로서의 본질을 공유한다고 보았 다. ‘경전’으로 박제화된 시경에 다시 ‘시’로서의 생명력을 불어넣고, 詞章末技 로 치부되던 ‘시’를 경전에 버금가는 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격상시킴으로써, 자 신의 시론을 정립하고자 했던 것이다. 삼연의 이와 같은 시경 인식은 앞 절에 서 간단히 검토했던 다음 두 조목에 잘 나타나있다.

 시는 하나이다. 刪詩의 전과 후에 비록 言志와 葩藻의 구별이 있긴 했지만, ‘溫柔 敦厚’로 旨를 삼고, ‘玲瓏掩映’으로 格을 삼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100)

 시경삼백 편을 한마디 말로 총괄하여 ‘思無邪’라 한 것은 大綱의 바름이다. 나 는 ‘詞欲巧’라는 세 글자를 더 보태고 싶다. 邶風 <綠衣> <燕燕> <凱風> <匏有苦 葉> <谷風> 등의 시편을 살펴보면, 흥을 기탁하고 비유를 취한 것이, 구구절절 섬세 한 경지에 들어갔으며 하나하나 공교로움을 드러내니, 그 솜씨의 묘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지금 사람들이 시를 지으면서 설령 그 명의(命意: 주제의식, 창작의도)는 참되고 올곧더라도, 사치(詞致: 시어의 표현력)가 그에 걸맞지 못하다면, 사람을 감 발시킬 수 있겠는가?101)

·에는 대립적인 개념쌍들이 몇 쌍 제시되어 있는데, 이들은 ‘내용·주제’적 측면과 ‘표현·형식’적 측면 중 어느 쪽과 더 밀접히 관련되는지에 따라 이분화 할 수 있다. 이를 도표로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이 중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玲瓏掩映’과 ‘詞欲巧’라는 명제이다. 이들은 각 기 정통 유가 시학의 대명사와도 같던 ‘온유돈후’ 및 ‘사무사’와 상보적인 관계

100) 金昌翕, 三淵集권33, 日錄·己亥3月初6日 : “詩則一也. 刪前刪後, 雖言志 葩藻之有 別, 而以‘溫柔敦厚’爲旨, 以‘玲瓏掩映’爲格, 則古今同然.”

101) 金昌翕, 三淵集권35, 日錄·庚子3月初3日 : “詩三百, 一言以蔽之, 曰: ‘思無邪’, 大 綱正矣. 更欲添三字, 曰: ‘詞欲巧’. 且以<綠衣> <燕燕> <凱風> <匏葉> <谷風>等章觀之, 其託興取譬, 節節入細, 種種呈巧, 工妙不可言. 今人爲詩, 假令命意雖眞實正直, 而詞致不 稱, 則亦何能起發人乎?”

를 이루는 것으로 언급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온유돈후’와 ‘사무사’는 전통적 으로 ‘詩敎’ 즉 시의 ‘도덕적 효용성’과 관련하여 회자되던 말들이었다. 그러나 삼연은 이러한 측면만이 강조될 경우, 시 장르의 독자성이 담보될 수 없다고 생 각했던 듯하다. 기실 性情을 도야하고, 권계·징창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굳이 시를 통해서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목적을 이룰 수 있을 것 이었기 때문이다. 시를 ‘시답게 해주는 것’으로서의 ‘시의 본질’을 탐구하려면 표 현·형식의 문제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삼연이 시의 표현·형식적 측면을 형용하는 말로 선택한

玲瓏掩映’

과 ‘詞欲巧’이라는 말의 함의를 좀 더 따져보도록 하겠다. 우선

玲瓏掩映’이라는 표현은 구체적 전거를 갖는 말은 아닌 듯하다. 다만 삼연이 시의 본질을 논하는 다른 자리에서 이와 유사한 ‘透徹玲瓏’이라는 표현을 몇 번 사용한 예가 발견되 어 주목을 요한다.102) 주지하다시피 ‘투철영롱’은 중국 송나라 때 시학이론가인 嚴羽가 쓴 滄浪詩話에 나오는 말인데, 엄우는 이 말을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 사용했다.

盛唐의 여러 시인들은 오로지 興趣에 주력하여, 그들의 시에서는 영양이 뿔을 걸 듯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 妙處는 투철영롱하여 구할 수 있는 자취가 없다. 허공의 소리와 같고, 相 중의 色과 같고, 물속의 달과 같고, 거울 속의 象과 같아서, 말에는 다함이 있지만 뜻은 무궁하다.103)

비유가 많이 사용된 탓에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기 쉽지 않으나, 대략적인 의 미를 추정해보면, 盛唐詩는 ‘논리적·개념적 사유’가 아닌 ‘興趣(직관적·연상적 사 유)’로부터 우러나온 것이기에 그 속에는 말로 설명될 수 없는 오묘한 경지가 깃들어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는 말과 ‘가닿을 수 없 다’는 말은 ‘空中之音’·‘水中之月’ 등과 같이 있는 듯 없는듯하여 그 실체를 온전 히 파악할 수 없는 대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영롱투철 혹은 영롱 엄영은 시 언어가 지니는 함축성·다의성·모호성 등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102) 金昌翕,『三淵集』권26, <金秀才傳>: “무릇 시란 透徹玲瓏해지기를 기약해야 한 다.”[夫所謂詩, 正欲其透徹玲瓏也.]; 金昌翕, 三淵集권36, 漫錄·庚子 : “유독 시학 만은 적적하여 수백 년간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온 것은 모두 저열한 詩魔였으니 이 른바 水月鏡花와 玲瓏透徹의 묘함이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獨其詩學寥寥, 數百 年間入人肝脾者, 皆下劣詩魔, 所謂‘水月鏡花’ ‘玲瓏透徹’之妙, 無復存者.] 이상은 김형 술, 앞의 논문, 23-25면에서 재인용한 것이다.

103) 嚴羽, 滄浪詩話, 詩變 : “盛唐諸人, 惟在興趣, 羚羊掛角, 無跡可求. 故其妙處透徹 玲瓏, 不可湊泊. 如空中之音 相中之色 水中之月 鏡中之象, 言有盡而意無窮.”(번역은 곽 소우 校釋, 김해명·이우정 譯, 창랑시화, 소명출판, 2001, 66면을 참조하되 약간 수 정했다.)

그렇다면 시 언어가 지니는 오묘한 속성들을 가능케 해주는 원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결국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관계맺음을 통해 言外之意를 창출해내는 비 유와 상징, 곧 比興의 작법일 터였다.104)

한편, ‘詞欲巧’는 禮記 表記 편에 근거를 둔 말이다. 출전을 살펴보면 “情은 믿음직스럽게 하고, 말은 공교롭게 하라.”[情欲信, 辭欲巧.]고 되어 있다. 情과 辭의 관계를 고려해보면 辭는 情을 담아서 전달해주는 ‘표현수단’이라 할 수 있 다. 情이 내용·주제라면 辭는 표현·형식에 대응되는 셈이다. 마음이 아무리 진실 해도 이를 전달해줄 말의 표현이 적절히 다듬어지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예기의 해당 구절은 내용·주제에 못지않게 표현·형식도 중요함을 강조한 말로 볼 수 있다. 삼연은 이 중 ‘詞欲巧’라는 세 글자를 끌어다 가 思無邪에 버금가는 위상을 부여하며 ‘시의 본질’을 정의하는 자신만의 명제 로 삼았다.

그런데 일부 선행연구에서는 ‘詞欲巧’의 ‘巧’라는 글자가 민간가요로서 국풍 이 지니는 天眞性을 긍정했던 논리와 다소 상충된다는 문제를 제기했다.105) 시 어를 ‘공교롭게 한다’는 것은 민요의 천진스러움보다는 오히려 ‘인위적 按排’와 상통하는 입장이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견해를 달리한다. 민요의 천진성이 반드시 표현·형식적 측면의 巧와 배치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는 데는 앞 장에서 검토했던 이몽양의 시론이 좋은 참조 가 된다. 이몽양은 일자무식의 길거리 백성들이 부르는 즉흥적인 노래일지라도

‘장단과 빠르기가 들어맞지 않음이 없고’[長短疾徐無弗諧焉], ‘比興이 아님이 없 다’[無有不比焉興焉]라고 했다. 그는 민요의 천진성을 높이 평가했지만, 그렇다 고 민요에 나타나는 比興의 작법이 천진성과 상충된다고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러한 ‘형상적 사유’가 민요를 민요답게 해주는 천진성의 핵심요소라고 여겼다.

따라서 삼연이 ‘詞欲巧’를 말하며 의도했던 ‘巧’는 ‘天眞스러움’과 상반된다기보 다는 오히려 ‘粗野함’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봄이 온당할 것이다.106)

위의 논의들을 종합해볼 때, 삼연이 시의 표현·형식적 측면을 중시하며 제창 한 ‘玲瓏掩映’과 ‘詞欲巧’는 공통적으로 比興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앞장의 논의에서 확인한 것처럼, 시의 근본 구성원리로서의 比興에 대한 탐구는 삼연에게 청년기 시절부터 만년까지 일관된 관심사였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할 때 삼연이 비흥의 유래인 시경을 연구하며 부비흥 판정의 문제에 특별한 관 104) 이종호, 삼연 김창흡의 시론에 관한 연구, 성균관대 박사논문, 1992. 91면 참조.

105) 이종호, 위의 논문, 89면 참조.

106) 이 점에서 삼연의 시학이론은 ‘獨抒性靈’을 강조했던 공안파와는 근본 인식부터가 달랐다고 판단된다. 삼연이 보기에 마음 가는대로 입으로 뱉어내는 시는 억지로 쥐어 짠 인위적 시만큼이나 조야한 수준으로 떨어질 위험성이 농후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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