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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재적 맥락을 중시한 讀詩 태도

문서에서 비영리 - S-Space - 서울대학교 (페이지 117-129)

삼연은 시경학의 총론과 관련해서는 주자의 설을 충실히 수용한 편이었지만, 개별 작품론이나 시어 해석의 차원에서는 주자의 주석과 다른 견해를 제시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일부 선행연구에서는 이를 ‘反주자·脫주자적 시경론’이라 명명하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으나,133) 필자는 견해를 달리 한다. 적어도 시경 학의 영역에서 삼연에게 주자는 뛰어난 안목을 갖춘 문예비평가로 인식되었을 뿐, 성인의 도통을 이은 도학자로서 인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연이 모시서 의 정치·역사주의적 시 해석을 거부하고 주자 시경학의 국풍민요설을 수용한 것도 그것이 시경의 문학적 본질을 올바로 간파했기 때문이었지 주자가 도학 방면에서 쌓아 놓은 업적과 권위를 지키기 위함이 아니었다. 주자와 다른 방식 의 시 해석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삼연 나름의 감식안과 비평적 안목을 발휘 하여 시를 좀 더 자연스러우면서도 맛깔나게 해석해보고자 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일 뿐, 큰 틀에서 주자 시경학의 대강을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삼연은 시경을 읽어나가며 작품 밖에 눈을 돌리기보다는 우선 작품 그 자 체에 충실하여 시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작품 해석 과정에서 최우선적 기준으로 고려되었던 것은 意味·語勢·文勢 등의 ‘내재적’ 요소들이었다. 작품의 역사적 배 경, 도덕적 효용성, 전대인의 해석 등 ‘외재적’ 기준들은 우선순위에서 배제되었 131) 湛軒書·內集권1, 三經問辨·詩傳辨疑 : “<園桃>之興, 恐不必疑.”

132) 朱子語類권81 詩 2에 나온다. 그러나 주자가 시집전에서는 興으로 풀이해놓고 도 왜 주자어류에서는 比인 것 같다고 했는지는 미상이다.

133) 박명희, 삼연 김창흡의 시경론 , 한국언어문학47, 한국언어문학회, 2001.

다. 그는 시를 어떻게 풀이하는 것이 문맥의 흐름에 비추어 가장 자연스럽고, 시를 가장 생동감 있게 만들어주며, 시 읽는 ‘맛’을 가장 잘 살려줄 수 있는지 고민하면서 시경을 읽어나갔다. 이는 시경을 ‘經’이 아닌 ‘詩’로 이해하는 태 도가 전제되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본 항에서는 이를 문예 비평적 시경 해석으로 규정하고 그 구체적 양상을 검토해보려 한다.

<淇奧>편의 ‘重較’를 卿士의 수레로 본 것은 毛傳과 鄭箋에서 비롯되었고, 주자도 이를 답습하였는데, 그렇게 봐서는 안 될 듯하다. ‘重’은 (인품이) 중후하다는 뜻이 고, ‘較’는 (도량이) 넓고 크다는 뜻이다. 너그럽고 여유롭기 때문에 이완되고 긴장 되는 때가 있게 되고, 중후하고 도량이 넓기 때문에 농담을 하더라도 경박한 지경에 이르지는 않게 되는 것이다. 그 사이에 ‘경사의 수레’를 끼워 넣게 되면, ‘寬綽’과 ‘戱 謔’의 맥락이 연결되지 못하고, ‘猗’자 또한 놓일 곳이 없게 된다. ‘較’자가 ‘크다’는 뜻이 됨은 명확히 근거가 있다. 설사 ‘경사의 수레’를 ‘重較’이라 부른다 하더라도, 이 장의 語勢에 비추어 볼 때, 活字인 ‘瑟’이나 ‘僩’의 예로 풀이하는 것이 온당하다.

(…) 衛風 <淇奧>편의 ‘綠竹猗猗’의 ‘綠’자를 質字로 보아 ‘王芻와 篇竹, 두 식물이 야들야들하네.’라고 하였으니, 또 ‘綠’자를 말살시킨 것이다.134)

위풍 <기욱>편을 대상으로 하여 漢代 시경학을 대표하는 毛·鄭의 시어 해석 을 비판한 조목이다. <기욱>편 해석과 관련하여 삼연이 문제 삼은 시어는 제3장 에 나오는 ‘重較’이었다. 삼연의 말대로 이 ‘重較’이라는 시어는 毛傳·鄭箋·集傳 모두에서 일괄적으로 경사의 수레로 풀이했다.135) 그렇다면 ‘重較’을 경사의 수 레로 풀이할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인지, 작품에 즉하여 삼연이 제기 한 문제의 타당성을 살피기로 한다. 단, 문제가 된 시어는 번역하지 않고 그대 로 둔다.

저 淇水 물굽이를 보니, 瞻彼淇奧, 푸른 대나무가 대자리 같네. 綠竹如簀.

문채나는 군자여, 有匪君子,

금 같으며 주석 같고, 如金如錫, 홀 같으며 구슬 같네. 如圭如璧.

너그럽고 여유로우며, 寬兮綽兮,

猗重較兮. 猗重較兮.

134) 金昌翕, 三淵集권35, 日錄·庚子3月初5日 : “以‘重較’爲‘卿士之車’, 昉自毛 鄭, 而朱子 仍襲之, 竊恐未然. 重者, 厚重也; 較者, 博大也. 以其寬綽, 故有弛張之時; 以其重厚博大, 故雖戱謔而不至於輕佻. 今以‘卿士車’揷著其間, 使‘寬綽’ ‘戱謔’脉理不貫, 且‘猗’字亦無安頓.

‘較’字之爲‘大’, 則確然有據. 設使‘卿士車’或名‘重較’, 而此章語勢, 只可以活字‘瑟’ ‘ ’之例釋 之爲當. (…)‘綠竹猗猗’之‘綠’字, 看作質字, 以爲‘綠也竹也, 兩箇猗猗’, 又殺‘綠’字.”

135) 毛詩正義, 衛風 ,<淇奧>第3章 傳 : “중각은 경사의 수레이다.”[重較, 卿士之車.]

농담·장난을 잘 하시나 善戲謔兮,

지나치지는 않으시네. 不爲虐兮. (제3장)<淇奧> 衛風

주자는 시집전 주석에서 毛傳·鄭箋의 설을 따라 ‘重較’을 ‘경사의 수레’로 풀이하긴 했지만, 시 속에서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서 는 침묵하였다. 그런데 삼연의 말처럼 전후맥락을 살펴보면 해당 구절은 군자의 덕성을 형용하는 내용이 되어야 한다. ‘군자의 성품이 ~하기에 군자는 농담을 잘하고 장난을 잘 쳐도 지나치지는 않는다.’는 식의 내용이 전개되어야 자연스 러운데, 중간에 갑자기 경사의 수레가 끼어들면 맥락이 단절되기 때문이다. 삼 연이 또 다른 논거로 들고 있는 것은 제1·2章과의 비교이다. 제1·2장에서는 군 자의 덕성을 묘사하며 ‘씩씩함’[瑟]·‘위엄 있음’[僩]·‘빛남’[赫]·‘훤칠함’[喧]과 같 은 活字(형용사)136)를 사용했는데, 그렇다면 제3장의 ‘猗重較兮’의 ‘重較’도 마찬 가지로 活字로 새기는 것이 語勢에 비추어 자연스럽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래 서 삼연은 ‘重較’을 한 글자씩 분리한 뒤 ‘重’은 ‘인품이 중후하다’[厚重]는 뜻으 로, ‘較’는 ‘도량이 넓고 크다’[博大]는 뜻으로 풀이한다.

기존의 통설을 따를 경우 “너그럽고 여유로우며, 아! 중각이네.137) 농담·장 난을 잘 하시나 지나치지는 않으시네.”가 되고, 삼연의 설을 따를 경우 “너그럽 고 여유로우며, 중후하고 도량이 넓으시니, 농담·장난을 잘 하시나 지나치지는 않으시네.”가 되는데, 삼연의 말처럼 문맥의 흐름만 놓고 보면 후자가 훨씬 자 연스러워 보인다. 이렇듯 삼연은 순전히 작품 내부의 논리만을 갖고 기존의 통 설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사항은 삼연이 문자나 名物의 考證은 거의 도 외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경전의 자구 해석에 의문을 제기할 때는  爾雅·說文解字 등의 字書로부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해줄 용례를 찾아 전 거로 제시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삼연은 “‘較’자가 ‘크다’는 뜻이 됨은 명확히 근 거가 있다.”라고 말만 할 뿐, 어떤 문헌에서 ‘較’자가 ‘크다’는 뜻으로 쓰였는지 전거를 밝히지 않았다. 물론 1720년 당시 중국에서도 아직 고증학이 본격적으로 발흥하기 이전이었음을 감안하면, 삼연에게 엄밀한 고증 작업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겠으나, 아무리 청대 고증학이 본격화되기 이전이라 할지라도, 경전의 자구 136) 삼연은 같은 조목에서 다시 <기욱>편을 논하며 ‘質字’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이 ‘活 字’라는 말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쓰인 듯하다. 필자는 이 ‘質字’·‘活字’라는 개념쌍의 용례나 출전을 찾아보려 했으나 찾지 못했다. 다만 삼연이 사용한 맥락에 근거하여 그 가리키는 바를 추정해보면, ‘質字’는 우리말의 體言에, ‘活字’는 우리말의 用言에 해 당하는 말인 것으로 생각된다. 만일 이 용어를 삼연이 고안해내서 처음 쓴 것이라고 하다면, 活/質의 대비는 매우 재미있는 조어법이라 하겠다.

137) 시집전에서는 ‘猗’를 감탄사로 풀었지만, 毛傳에서는 ‘기대다’[倚]로 풀었다.  모전의 풀이에 따르면 ‘중각에 기대 계시네.’가 된다.

를 풀이할 때 문헌적 근거를 밝히는 작업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삼연의 태도는 학문적 엄밀성이 결여된 것이라고 비판받을 여지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는 그만큼 삼연이 시경 해석에서 작품의 내재적 문맥을 중시했음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정조의 시경강의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논의되었는데, 홍재전서에 이에 대한 정약용의 답변이 실려 있다. 문답을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重較을 卿士의 수레로 본 것은 주자가 毛·鄭의 설을 쓴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의 선유는 옳지 않다고 하였다. 그 주장하는 내용에, ‘重은 厚重한 것이고, 較은 博 大한 것이다. 너그럽고 여유가 있기 때문에 조일 때도 있고 느슨할 때도 있으며, 중 후하고 박대하기 때문에 비록 戱謔하더라도 경박한 데에 이르지 않는 것이다. 그런 데 이제 경사의 수레를 그 사이에 끼워 놓아 글의 맥락이 통하지 않으며 猗자도 놓 일 곳이 없게 된다.’ 하였다. 이 설이 일리가 있는 듯한데, 어떤지 모르겠다.”

정약용이 대답했다. “字書에서 較자를 풀이한 것이 매우 많은데, 博大로 풀이한 것은 없습니다. 또 ‘較’을 ‘각’으로 발음한 것은 본래 수레 위에 뿔처럼 서 있는 것에 서 뜻을 취한 것이니, 만약 박대함으로 풀이한다면 ‘교’로 발음해야 하지 ‘각’으로 발 음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 네 句 가운데 작(綽)·학(謔)·학(虐)이 모두 ‘각’자와 운이 맞으니, 重較이 수레의 제도가 되는 것은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선유의 설을 따라서는 안 될 듯합니다.”138)

정조는 작품의 내부 맥락에만 비추어볼 때 삼연의 설이 일견 타당하다고 판 단했던 듯하다.139) 그러나 정약용은 音韻學·字學·名物學 등 각종 小學 지식을 동원해가며 삼연의 설이 왜 잘못되었는지 조목조목 논박한다. 정약용의 입장에 서 볼 때, 삼연의 주장은 문헌적 근거 없이 도출된 주관적 견해에 불과했을 것 이다. “설사 경사의 수레를 ‘重較’이라 부른다 하더라도” 이 시의 이 문맥에서 만큼은 그렇게 볼 수 없다고 했던 삼연의 말을 상기해보면,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접근법을 취했던 셈이다. 다소 이분법적인 구분의 혐의가 있긴 하나, 삼연 이 철저히 ‘문학적 입장’에서 시경을 해석하려 했다면, 정약용은 철저히 ‘경학 적 입장’에서 시경 해석에 임했음을 확인시켜 주는 대목이라 할 만하다. 아울 138) 弘齋全書권89, 經史講義 26, 詩 6: “重較爲卿士之車, 朱子用毛 鄭說, 而我東先 儒以爲未然. 其說曰: ‘重者, 厚重也; 較者, 博大也. 以其寬 綽, 故有弛張之時; 以其重厚 博大, 故雖戲謔而不至於輕佻. 今以卿士車, 揷著於其間, 脈理不貫. 且猗字亦無安頓.’ 此 說似爲有理, 未知何如? 若鏞對: ‘字書較訓甚多, 而獨無博大之訓. 且較之音角, 本取車上 角立之義. 若訓博大則當音校, 不當音角, 而今四句中綽 謔 虐, 皆與角叶韻, 則重較之爲 車制無疑. 東儒之說, 恐不可從.’”

139) 홍대용 역시 삼연의 해석에 공감했다. 湛軒書·內集권1, 三經問辨·詩傳辨疑 : “重 較 2글자에 대한 설은 매우 정확하고 이치에 순하다.”[‘重較’二字, 說得確正順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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