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機論은 조선후기 시학이론의 한 특징으로서 일찍부터 많은 선행연구에서 다루어진 바 있다.16) 그 외연과 내포에 대해서는 역대로 많은 논란이 있어왔지 만 ‘소박함’과 ‘자연스러움’의 미학을 추구한 시학이론이라는 점에서는 대체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학적 가치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할 경우 논의의 추상성을 벗어나기 어렵기에, 좀 더 구체적인 논의를 위해서는 시 의 창작 과정에서 문제시되는 제반 사항들과 관련해 천기론이 어떤 지향을 보 이는지에 대한 규정이 필요하리라고 본다. 이를 테면, 시형식과 관련해서는 근 체시 형식보다는 고시 형식이, 작자층의 신분과 관련해서는 양반 사대부 계급보 다는 여항의 하층민이, 언어와 관련해서는 문어인 한문보다는 구어인 우리말이
‘소박함’과 ‘자연스러움’의 미학에 더 가까울 것이라는 판단이 가능하다.
실제 조선후기 한시사의 흐름을 관찰해볼 때 두드러지는 현상 중 하나로 민 요취향 한시의 대두가 꼽히기도 하며,17) 엄격한 자수 및 평측의 제한에 얽매이 16) 천기론을 다룬 선행연구는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많지만, 연구사적으 로 자주 거론되는 대표적 성과들만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장원철, 조선후기 문학 사상의 전개와 천기론 , 한국학대학원 석사논문, 1982; 이승수, 17세기말 天機論의 형성과 인식의 기반 , 한국한문학연구18, 한국한문학회, 1995.; 이동환, 조선후기
‘천기론’의 개념 및 미학이념과 그 문예 사상사적 관련 , 한국한문학연구28, 한국한 문학회, 2001; 정길수, 천기론의 문제 , 한국문화37,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06; 정 요일, 천기의 개념과 천기론의 의의 , 한문학보19, 우리한문학회, 2008; 김형술, 천기론의 비평사적 의의와 한시 창작상의 공효 , 한국한시연구22, 한국한시학회, 2014.
17) 이동환, 조선후기 한시에 있어서 민요취향의 대두: 조선후기 한문학의 역사적 변화 의 일국면 , 한국한문연구3, 한국한문학회, 1978.
는 근체시보다는 그러한 제한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고체시의 선호가 두드 러진다는 점이 거론되기도 한다. 아울러 한시 창작 및 비평에 종사하던 사대부 문인들이 18세기에 새롭게 등장한 여항시집이나 우리말 가집의 서 발문을 써주 며 중인들의 시나 우리말 노래가 사대부의 한시문학에 비해 훨씬 ‘天眞스럽다’
는 논리를 전개하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들의 근저에는 공통적으로 ‘소박함’과
‘자연스러움’의 미학을 지향하는 천기론의 논리가 깔려 있다고 규정해볼 수 있 을 것이다.
17 18세기의 전환기를 대표하는 시인이었던 삼연 또한 위와 같은 문학사적 흐름으로부터 자유로웠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삼연과 관련된 대부 분의 선행연구들에서는 삼연의 시론을 논하며 천기론을 언급하고 있다. 삼연의 시론 내에서 천기론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데에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할 것이다. 삼연이 사용한 천기의 개념을 개념사적으로 추적하여 그 사상적 기반을 따져볼 수도 있고, 그의 시작품을 대상으로 천기론이 창작을 통해 구현 된 양상을 살필 수도 있다. 본고에서는 삼연이 시경을 단순히 유가의 의리를 담은 경전으로만 여기는 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문예론적 입장을 투 사하는 시학이론의 재료로 삼았다는 판단 하에, 삼연의 시경론에 천기론이 어떻 게 반영되어 있는지 살피고자 한다.
삼연의 시경론에 반영된 천기론의 양상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기에 앞서, 경학 의 한 분야로 출발한 시경론이 시론으로서의 천기론과 어떻게 접점을 맺을 수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일단 언급할 수 있는 것은, 모시서의 미자 설과 주자의 국풍민요설 음시설을 비교해 볼 때, 전자보다는 후자에서 천기론과 관련된 좀 더 풍부한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는 점이다. 예컨대, 국풍 을 식자층 이 지은 정치 사회시로 보는 사람과, 여항 민중의 입에서 나온 서정시로 보는 사람이 시경을 재료로 삼아 저마다의 문학론을 펼쳐나간다고 할 때, 전자는 사대부 문학의 정치 사회적 효용에 대한 논의가 유리하겠지만, 후자는 민요의 천진성과 소박함을 긍정하는 논의가 유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제Ⅱ장 제1절에서 확인했듯이, 실제로 명대 전칠자 문인들이 민요의 천진성을 강조하며 원용했던 시경론도 모시서의 미자설이 아니라 주자의 국풍민요설 음시설이었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위의 논의를 염두에 둘 때, 삼연이 모시서의 미자설에 거부감을 느끼고 주자 의 국풍민요설 음시설을 수용하는 입장을 취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서 시사하 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주자의 국풍민요설 음시설을 수용함으로
써 삼연에게는 천기론을 펴나가는 데 유리한 시경이라는 재료가 생겨난 셈이 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조선 문인들이 시경을 이해하는 기본 관문으로 주자의 시집전을 경유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삼연이 국풍민요설 음시설을 수 용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리 특별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삼연이 주자의 시경학설 을 수용했던 여타 문인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그가 국풍 의 讀詩 단계에서 생겨나는 ‘교화적 효용’만큼이나 作詩 단계에서 작동하는 ‘比興의 원리’에도 많 은 관심을 쏟았다는 데에 있다.
주자는 국풍 이 민간가요로서 지니는 서정문학적 본질을 훼손시키지 않으면 서도 그것이 경전으로서 지니는 효용을 마련하기 위해, 작시/독시를 엄격히 분 리하여 작시 단계에는 유가적 예교논리를 개입시키지 않았지만, 독시 단계와 과 련해서는 ‘感發善心, 懲創逸志’라는 유가의리에 입각한 효용론을 주장했다. 그리 하여 국풍 에는 여항 하층민의 솔직한 감정을 노래한 淫詩들이 존재하지만, 그 것을 후대의 독자가 반면교사로 삼아 스스로의 음란한 마음을 경계하는 감계의 자료로 삼으면 경전으로서의 효용이 성립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주자 시경론에 입각해 천기론을 개진하고자 하면, 독시의 단계보다는 작시의 단계에 초점을 맞 추는 것이 유리하다. 그런데 주자 시경학을 수용한 일반적인 유가 지식인들은 대부분 독시 단계에서 발생하는 懲創 感發의 효용을 강조하며 시경이 갖는 교화서로서의 가치를 강조하는 입장이었다. 이에 비해 삼연은 작시 단계에서 시 인의 정감이 형상화되는 원리에도 많은 관심을 쏟았다. 논의의 편의를 위해 앞 장에서 이미 살펴본 바 있는 삼연의 시경론 관련 자료들 몇 가지를 다시 인용 하여 검토하기로 한다.
시라는 것은 法이 없어서도 안 되고, 法에 구속되어서도 안 된다. 내 일찍이 주 자께서 시를 논하신 것을 들었는데, 風雅의 正變을 구별하는 일에 단호하지 않 은 것은 아니었지만, 어떤 사람의 질문에 답하는 데에 이르러서는, “關關雎鳩는 어디에 출처를 두고 있는가?”라고 하였으니, 이 말씀이 참으로 통쾌하구나! 천 고의 고루한 견해를 깨부술 수 있으니, 聲病家들을 깨우쳐주는 活句가 될 만하 다. 대저 시란 무엇인가? 성령에서 기원하고 물상에 가탁하며, 靑黃을 섞어 무늬를 내고 宮商을 번갈아 운율을 내는 것이다. 周易 繫辭傳 에서 ‘고정된 법칙이 있을 수 없고, 변화에 따라 움직여갈 뿐’, ‘神의 작용에는 정해진 방향이 없고 易에는 고 정된 형체가 없다’고 했는데, 시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象에 전변이 일면 눈 속의 파초라도 가한 것이며, 境에 몰입하면 겨자씨 속의 수미산이라도 가한 것이다.
이것이 어찌 按排와 拘滯로써 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18)
18) 金昌翕, 三淵集권23, <何山集序>: “詩之爲道, 不可無法, 不可爲法所拘也. 不佞嘗聞
사람에게는 情志가 있는데, 저마다 그 不平함에 울게[鳴] 되면, 절로 슬프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화나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하게 되어, 자신도 모르게 읊조리 는 말소리로 나타나게 되니, 이것이 이른바 ‘風’이다. 어찌 美刺로만 일괄하여 모두 가 國史의 붓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겠는가? 국풍 의 興 중에는 민간의 아이나 여 인의 입에서 나온 것이 많으니, 실로 美刺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비록 대아 · 소아 라 할지라도, <鹿鳴>이나 <行葦>편과 같은 시들은 모두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興情에서 나온 것들이니 어찌 美刺의 목적으로 지은 것이겠는가?19)
정자와 주자는 모두 雅가 風보다 나은 것은 그 말이 모두 正當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내 생각에, 天眞의 발로는 按排를 허용치 않으니, 대부분 민간 골목의 아이나 여인네들의 입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점잖은 사대부가 붓에 먹물을 묻히고 草를 잡게 되면 간혹 여러 번 고치고 다듬게 되니, 그러면 언어구사는 비록 정당해 지겠지만 天機와는 차츰 간격이 벌어지게 된다. 이러한 까닭에 童謠는 無稽한 것이 라도 대부분 靈驗하니 신명이 찾아오면 안배하지 않고 지어내기 때문이다.20)
은 제Ⅱ장 제2절에서 살펴보았던 <하산집서>이고, 은 제Ⅲ장 제2절에 서 살펴보았던 삼연일록 의 조목들이다. 에서 삼연은 주자의 周南 <關雎>편 관련 발언을 인용하면서, 詩作의 본질이 외재적 전거나 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성정이 일상적인 자연경물로 형상화되는 데에 있다는 입론을 폈다. 그러 면서 주자의 이 발언이 聲病家들을 깨우쳐주는 活句가 될 것이라고 말하며, 감 정의 자연스러운 형상화라는 서정시의 본령이 인위적 안배 따위로 성취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에서는 국풍 이 감정의 不平함에서 촉발되어 자 연스럽게 언어화되어 나온 노래임을 강조하며, 이를 일괄하여 정치적 美刺의 목 적으로 지어진 것으로 보면 안 된다는 입장이 개진되고 있다. 에서는 正當이 朱子之論詩矣, 其於風雅正變之別, 非不截然, 至答或人之問, 則曰: ‘關關雎鳩, 出自 何處?’ 快哉, 斯言! 可以破千古膠固之見, 而足爲聲病家活句矣. 夫詩何爲者也? 原於 性靈, 假於物象, 靑黃之錯爲文, 宮商之旋爲律. 不可爲典要, 惟變所適, 神無方而易無體, 詩亦如之. 故象有所轉, 雪中芭蕉可也; 境有所奪, 芥裏須彌可也. 是豈可以安排拘滯爲 哉?”
19) 金昌翕, 三淵集권33, 日錄·己亥3月初3日 : “人有情志, 各鳴其不平, 自哀自樂, 自怒 自怨, 不覺其形諸吟哦, 是所謂‘風’也. 豈可專以美刺蔽之, 謂盡出於國史筆乎? 國風 之興, 多出街童巷女之口, 固不暇於美刺. 雖 大 小雅 如<鹿鳴> <行葦>之類, 皆出於懽忻興情, 豈 以美刺而爲之哉?”
20) 金昌翕, 三淵集권35, 日錄·庚子3月12日 : “程 朱之說, 皆云雅勝乎風, 以其語皆正 當, 而竊謂天眞呈露, 不容安排, 多在於街童巷女之口氣. 若老成士大夫濡毫起草, 容或有 累次點竄, 則命辭雖當, 而稍與天機有間矣. 以是之故, 童謠沒巴鼻者, 槩多靈驗, 以其神來 而不安排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