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982년 협약 제76조의 입법 배경
1) 과학기술발전의 1958년 대륙붕협약에 대한 도전
1958년《대륙붕협약》 제정 전후, 인류사회의 해저광산자원 개발(주로 석유자원) 능력은 일반적으로 200미터 등심선에 이르지 못할 정도의 제한적인 것이었다. 예를 들어, Mouton은 제1차 해양법회의 준비문건인〈대륙붕광물자원 개발의 최신 기술 발전〉을 통해 약 183m를 대륙붕의 개념으로 보아 금후 20년의 탐사와 개발수준으 로 가늠하고 있다76). 1958년 《대륙붕협약》에서 확정한 대륙붕 범위 기준중의 하 나는 200미터 등심선 기준이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도출된 것이다.
그러나, 일부 국가는 해양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향후 개발가능한 구역이 200미 터 등심선 외측으로 확대 될 것이며, 이러한 고정된 한계 기준은 결국 폐기될 것임 을 예측하였다. 따라서 1958년 대륙붕협약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많은 국가들은 단 순한 심도 기준의 사용에 반대하였고, 고정된 한계 획정 방식이 여러차례 부결되기 에 이르렀다77). 이러한 논쟁 과정에서 개발가능이라는 기준은 적절하게 각방의 논 쟁을 완화시킬 수 있는 융통성있는 방법으로 제기되었다. 그러나 개발가능한 기준 이라는 것 역시 성숙된 이론은 아니었고, 그 적용 문제에 대한 논쟁 역시 매우 뜨 거웠다. 먼저, “개발가능한” 이라는 것이 함의하는 것이 무엇인가? 각국의 기술개발 능력을 의미하는 것인지 세계 임의의 지역에서 이미 도달한 가장 선진적인 기술개 발 능력을 의미하는지가 분명치 않았다. 어떠한 수준의 활동을 개발로 보아야 하는 가의 문제 역시 같은 논쟁이 있었다. 이에 대한 1958년 대륙붕협약 규정은 매우 모 호하게 형성되었다. 두 번째는 개발가능한 기준의 적용이 제한을 받는가의 문제였 다. 1958년 대륙붕협약은 이 문제에 대하여도 매우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개발가능한 기준의 적용에 대하여는 두가지 의견이 있었다. 첫째, 기술상 상당 정 도의 수준에 도달하면 개발가능한 기준은 연안국이 관할권을 심해 대양저를 포함한 전체 해저까지 확대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에 대하여, 반대론자들은 개발 가능한 기준은 제한적이며, 이러한 제한은 1958년 대륙붕협약이 규정하듯 대륙붕은 단지 “연안국에 인접한 해저와 하층토”것이어야 하고, 이러한 제한은 200미터 등심 선 이내의 해저와 하층토에 적용될 뿐만 아니라, 200미터 등심선 외측 해저와 하층 토에 대하여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주장하였다.
“연안국에 인접한”이 의미하는 구체적인 함의에 대하여는 또 다른 논의를 요하나, 연안국 대륙붕이 심해 대양의 중심부까지 확대될 정도에는 이르지 못하였다78).
76) 赵理海,《海洋法的新发展》(北京: 北京大学出版社, 1984年), p.15.
1958년 대륙붕협약은 이 부분에 대하여 임의의 해석 여지가 있는 모호한 형태로 남 겨 두었다. 또한 기술혁신의 속도가 인류가 예측할 수 없을 만큼 향상되었고, 해저 자원의 개발가능 정도 역시 이후 단시일 내에 혁신적 변화를 가져왔다. 1958년 대 륙붕협약이 체결된 후 10년이 채 안되어서, 근해 시추 기술은 이미 약 304.8m 정도 의 수중 작업을 가능케 하였고, 일부 선박은 탐사 시스템을 활용하여 약 3,660m 정 도의 수심에서의 보링 작업을 가능케 하는 정도에 이르렀다79). 1969년 미국 전국석 유회의가 작성한 해저석유자원에 관한 보고서에서는 5년 내에 약 460m정도 수심, 10년 내에 약 1,828m 수심에서의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예측하였다80). 1960년에서 1969년 기간동안 근해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은 이미 이란․인도네시아․브라질과 아랍에미리트 등의 개도국을 포함한 20여개 국가로 확대되었고, 근해 탐사는 약 50 여개 국가에 이르고 있었다81).
이러한 기술적 성장은 연안국의 해저와 그 자원에 대한 관심을 극대화하였고, 해 저문제에 주목하게 된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이들은 현재의 개발 수요 보다는 향후 배타적관할권을 취득함으로써 타국의 진입을 배제하고 미래의 개발자원 확보를 위 해 보다 넓은 범위까지 자국의 해저관할권을 확대하고자 하였다. 200m 등심선 기준 은 이미 연안국의 수요를 충족하기에 부족하였고, 이러한 기대를 실현하는데 장애 로 작용하였다. 만일 연안국의 자의적 해석으로 개발가능 기준을 대륙붕 외측 한계 를 설정하는데 적용한다면, 이것 역시 보다 큰 논쟁으로 이어질 것을 명약관화하였 다. 이러한 상황에서, 1958년 대륙붕협약이 규정한 대륙붕 외측한계 획정에 관한 두 가지 기준은 이미 수정이 요한다는 일반적 합의에 이르게 되었다.
이후 대륙붕 법률제도 발전 과정에서 개발가능한 기준은 점차 그 의미가 퇴색되 어갔고, 1982년 협약 제6부 대륙붕에 관한 조항에서 심도기준은 수정을 통해 대륙 붕 외측한계를 결정하는 주요 기준의 하나로 확정되었다. 단지 1958년 대륙붕협약 이 규정한 200m 등심선을 2,500m 등심선에서 외측으로 100해리 확정시키는 것으로 수정되었다.
2) 새로운 대륙붕제도 제정과 자연연장원칙의 과학적 기초
1945년 9월 28일, 미국 트루먼 대통령은 《미국의 대륙붕 해저와 하층토 자연자 원 정책에 관한 공고》를 발표하였다. 미국은 대륙붕은 연안국 육지영토의 연장으 로 그 성질상 연안국에 귀속되어야 하며, 대륙붕자원이 일반적으로 연안국 영토내 침적분지가 바다로 향하여 형성된 것이므로 연안국의 대륙붕 자연자원에 대한 관할 권 및 통제는 합리적이고 공정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82). 당시 일부 국제법 학자들 또한 자연연장이론에 찬성하였고, 저명한 학자인 Lauterpacht 역시 이 이론에 찬성
79) 巴里·布赞,op.cit.
80) 巴里·布赞,op.cit.
81) 巴里·布赞,《海底政治》(中译本),时富鑫译,(北京:三联书店, 1981),p.76.
82) 陈德恭,《现代国际海洋法》(北京:中国社会科学出版社,1988年), p.162.
하는 입장이었다83).
1958년《대륙붕협약》은 대륙붕에 대한 정의(제1조)를 통해 직접적으로 자연연장 을 언급하지는 않고 있으나, 이것이 해당 협약이 대륙붕자연연장 이론을 수용하고 있지 않다고는 할 수 없다. 반대로, 해당 조항은 사실 대륙붕을 연안국 육지영토의 바다로의 자연연장이라는 과학적 논증을 기초로 하는 것이고, 연안국이 대륙붕의 최대 범위까지 향유할 수 있다는 문제에 중점을 두었다. 1958년 대륙붕협약을 제정 할 때, 체약국 들은 대륙붕이 육지 영토의 바다로의 자연연장이라는 성질에 대하여 큰 이견은 없었다. 협약 제1조가 대륙붕 정의를 통해 “연안에 인접하되 영해 밖에 있는” 해저구역의 “해상 및 해저지하”는 대륙붕이 반드시 연안국 육지와 밀접한 관 련이 있어야 함을 명백히 하고 있다. 각 체약국이 주목한 것은 대륙붕을 획정하는 범위의 문제에 있었다. 따라서 1958년 대륙붕협약 제1조는 “대륙붕”이라는 정의를 규정한 동시에 구체적으로 대륙붕 외측한계를 확정하는 두가지 기준을 규정한 것이 었다. 즉 “대륙붕”이라 함은 : (1) 연안에 인접하되 영해 밖에 있는, 수심이 200m 혹은 그 한도를 넘는 경우에는 상부수역의 심도가 해저 구역의 천연자원 개발을 가 능케 하는 곳 까지의 것 ; (2) 도서의 연안에 인접하고 있는 같은 해저구역의 해상 과 해저 지하로 규정하고 있다.
ICJ는 1969년 북해대륙붕사례를 통해 자연연장 원칙을 “대륙붕과 관계된 법규중 가장 기본적 규칙”에 있는 지위로 격상시킴으로써, 이 개념이 확산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84). ICJ는 판결에서 자연연장이 연안국의 대륙붕 권리 주장의 기초가 되며85), “따라서 국제법이 법적으로 연안국의 대륙붕에 대한 권리 행사를 수권한 것이며, 이러한 사실로 인해 해저지역은 연안국이 실질적으로(ipso jure) 통치권을 행사하는 영토의 일부이다. 해당 부분이 해수에 의해 덮여 있더라도 여전히 영토의 해저로의 연장 혹은 계속이다. 만일 일부 해저지역이 연안국 육지영토의 해저로의 자연연장을 구성하지 않는다면, 해당 해저지역이 거리상 타국 영토와 비교하여 해 당국에 가깝게 형성되어 있어도 이것이 해당 연안국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 하고 있다86). ICJ는 판결을 통해 1958년 대륙붕협약 제1조 규정의 국제관습법 지위 를 인정하고, “이들 3개 조항(1958년 협약 제1조 내지 3조)은 적어도 현재 생성중인 대륙붕에 관련된 국제관습법적 규칙을 승인하거나 명확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적시 하고 있다87).
따라서 ICJ 판결중 자연연장에 관한 판단은 1958년 대륙붕협약 제1조의 규정과 연계하여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연안국은 200m 등심선 기준을 적용하 든 혹은 개발가능한 기준을 적용하여 그 대륙붕 외측 한계를 판단하든 모두 자연연
83) JEWETT, M.L.,The evolution of the legal regime of the continental shelf, Canadian Yearbook of international law, Vo122, 1984, pp.l74-175.
장 기준의 적용을 받게 되며, 이때 자연연장의 적용은 200m 등심선과 개발 가능한 이라는 제한적 범위를 초과할 수 없게 된다. ICJ의 판결은 200m 등심선 이내의 연 안국 대륙붕 외측 한계의 확정과 해당 범위내에서 대향 혹은 인접 국가간 대륙붕경 계획정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였고, 또한 개발가능한 기준이라는 명확한 제한 해 석을 부여하였다.
ICJ의 자연연장에 관한 판단은 많은 국가들의 지지를 받았으며, 국제법 원칙을 승인하고 확정하는데 있어서의 ICJ가 갖는 권위적 지위로 인해 자연연장 개념은 이 후 많은 국가들의 행위로 수용되는데 일조하였다. ICJ의 1969년 판결은 자연연장 이론의 발전에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3) 대륙붕 제도의 새로운 기준으로서의 200해리 거리
대륙붕 제도에서 200해리 기준과 배타적경제수역 제도의 형성은 매우 밀접한 관 계를 갖는다. 1940년대 후반부터 라틴 아메리카를 필두로 200해리 관할해역 주장 움직임이 고조되었고, 1970년 3월까지 콜롬비아와 베네주엘라, 가이아나를 제외한 거의 모든 남미 소재 연안국이 관할권을 200해리까지 확장하였다. 그러나 이들 국 가들이 주장하는 200해리 해역의 구체적 권리내용은 다소 상이하였는데, 예를 들어 서, 니카라과 같은 국가는 200해리 포획구역을 주장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해저와 하층토는 해당 범위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었다. 페루와 칠레 및 에쿠아도르는 200 해리 수역 뿐 아니라 수역 아래의 해저와 하층토에 대한 주권적 권리를 주장하였 다88). 이들 삼개국이 200해리 주장을 선도하였던 중요한 이유는 이들 국가의 지질 상 대륙붕이 매우 협소하였으므로 자연연장을 기초로 하는 대륙붕 학설은 이들에게 이로울 것이 없었으며, 이 학설의 불리한 부분을 보충할 새로운 발전적 제시가 필 요하였다는데 근거한다89). 이는 또한 200해리 거리 기준을 연안국의 인접 해안 해 저와 하층토에 대한 주권적 권리와 연계한 이유이기도 하다.
라틴 아메리카의 200해리 해양권리 주장은 빠른 속도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 로 확산되었다. 이들 국가는 소수의 기술선진국이 자국 연안에서 자원을 개발하는 사태를 막음으로써 자원권익 보호할 필요에서 200해리 관할권 주장을 지지하였다.
제3차 유엔해양법협약이 개최될 즈음, 배타적경제수역제도는 내용적인 측면에서 이 미 비교적 완벽하게 확정되었고, 제3세계 국가를 포함한 많은 국가에 의해 지지를 받고 있었다. 거리에 근거하여 권리를 향유하도록 하는 배타적경제수역제도는 국가 실천을 통해 국제관습법의 일부가 되었다90).
배타적경제수역 제도하에서 연안국은 영해 외측 200해리 이내의 해저와 하층토
88) 陈德恭,《现代国际海洋法》(北京:社会科学出版社,1988年), pp.119-121.;刘楠来等《国际海洋法》(北京:海 洋出版社,1986年), pp.189-190.
89) 巴里·布赞,《海底政治》(中译本)时富鑫译(北京:三联书店,1981年), p.20.
90) ICJ(1984. 3. 21),Libya/Malta Case, para. 34.
http://www.icj-cij.org/docket/files/68/6393.pdf(2009년 3월 12일 방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