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 사상의 미학적 의의 1)
민 주 식2)
동양미학의 기초개념으로서의 풍류 .
Ⅰ
미적 생활방식 으로서의 풍류
. ‘ ’
Ⅱ
풍류 개념의 내용 .
Ⅲ
한국의 풍류 사상 .
Ⅳ
한국문화와 풍류 .
Ⅴ
풍류의 미학 그 과제와 전망
. ,
Ⅵ
동양미학의 기초개념으로서의 풍류 I.
본래 미학(aesthetics, esthétique, Ästhetik)이라고 하는 학문은 서구 근대의 소산 이며 그것은 미와 예술 그리고 감성적 인식을 주제로 하는 철학적 교과이다 그래, . 서 현재 일반적으로 미학‘ ( ) 이라고 하면 서구 사회에서 형성되어서 발전해온’ 학문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서구인이 생각하는 미와 예술의 개념이 반드시 동양인. 이 생각하는 그 개념과 일치하리라는 보증은 없다 또 서구 사회에서도 미와 예술. 의 개념은 항상 고정된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변천을 거듭해왔다.
따라서 현재 우리들이 동양미학 또는 한국미학을 연구한다고 할 때 서구어의 나 의 번역어로서 미나 예술의 개념을 주제로 하기보다는 서구사회
beauty fine arts ,
에서 이들 개념이 수행해 온 역할을 생각하면서 거기에 대응하는 한국의 또는 동 양의 개념을 발견하고 그것을 주제로 하는 편이 훨씬 유효할 것이다 그 때문에, . 미나 예술이라고 하는 말 자체가 반드시 동양미학의 주개념이라고는 단정할 수 없 다 적어도 한국의 전통사상 가운데에서는 미나 예술의 가치와 현상이 독자적인 것.
* 이 논문은1998년도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연구되었으며 한국미학예술학, 회2000년도 봄 특별 학술 심포지엄( 월5 20 ,일 홍익대)에서 발표되었음.
** 영남대학교 조형학부 교수
*
**
으로서 자립적으로 파악되지 않았으며 다른 가치나 현상과 깊은 관계를 갖는 것으, 로 간주되어 논의되는 일이 일반적이었다 특히 윤리나 도덕과 결부되어 때로는 이. 들에 종속되는 것으로서 생각되었다.
이 글에서는 미와 예술과 감성적 인식이라고 하는 서양미학의 세 주요 연구대상 을 포괄하면서 동양미학의 특징을 드러내는 방법적 개념으로서 풍류‘ ( ) 에 주’ 목하고자 한다 동양사상에서의 풍류는 많은 미학적 주제를 통합하는 것이며 또. , 동양 고전미학의 역사적 전개과정 속에서 항상 의식되어 왔다 그런 의미에서 풍류. 는 동양미학의 토대가 되는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다.1)
사실 서양의 학문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오랫동안 이론을 실천보다 우위에 두 는 입장을 취해 왔다 그리하여 대상을 관찰하고 인식하는 일을 소임으로 생각하였. 다 이에 반해 동양에서는 일찍부터 학문을 인간이 사회 속에서 훌륭한 삶을 영위. 해 나가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하였다 실천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만큼 학문은 자. 연스레 윤리나 교육의 영역과 깊은 관련을 맺게 된다 미학이라는 학문도 서양에서. 는 예술철학 이라는 말로 표방되고 있듯이 인식론의 성격이 두드러진 데 반하여‘ ’ , 동양에서는 풍류 개념을 통해 살펴보겠지만 삶을 값지게 하기 위한 미적 실천 (aesthetic practice)의 의미가 강하다.
현대 미국의 미학자 죠지 디키는 미학의 연구영역을 미적인 것의 이론 예술철, 학 그리고 비평철학의 셋으로 구분하고 있다, .2) 이 모두는 미와 예술의 원리를 체 계적으로 인식하려고 하는 인간의 사유활동이다 이러한 활동을 우리들은 미학이론. 또는 이론으로서의 미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동양미학은 이러한 이론으로. 서의 미학과는 달리 실천으로서의 미학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동양과 서양의 미학은 각각의 성격을 지닌 두 체계를 구성한다 중국 산동. ( 東) 대학의 주래상( ) 교수에 의하면 서양미학의 체계는 재현 모사 철학적 인식, , 을 강조하고 동양미학의 체계는 표현 정서의 표출 윤리학 및 심리학과의 통합을, , 강조한다.3) 전자가 대상과 인식의 문제를 중심내용으로 삼고 있음에 반하여 후자, 는 인격과 실천의 문제를 중심내용으로 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풍류는 바로 이. ‘ ’ 러한 성격을 지닌 동양미학의 중심개념이다.4)
1) , 東アジア における < >の槪念, 5 究 告 ,
년 월 참조
, 1997 6 , pp.55-68 .
女 大 究
2) George Dickie, Aesthetics : An Introduction, The Bobbes-Merrill Company, 1971, pp.43-46.
3) Lai-Xiang Zhou, “A Comparison between Eastern and Classical Aesthetic Theories”, Peter J. McCormick ed., The Reasons of Art, Univ. of Ottawa Press, 1985, pp.465-468.
4) 많은 학자들과 문필가들이 풍류 에 관해 언급해왔지만 이것을 미학의 논제로 다룬 경우는‘ ’ ,
II 미적 생활방식 으로서의 풍류 . ‘ ’
풍류란 바람의 흐름 처럼 분방하고 자유로운 정신 다시 말해 여유를 지닌 분방‘ ’ , 한 마음을 발휘하는 것이다 일찍이 공자가 자로. ( ) 증석, ( ) 염유, ( ), 공서화(公 ) 네 사람의 제자에게 장래의 희망을 물었을 때 자로는 정치가로서, 비상시국을 담당할 것을 지망하였고 염유는 경제계의 실력자가 되어 백성들의 이, 익을 도모하고 싶다고 대답하였으며 공서화는 관리가 되기를 희망한다는 뜻을 밝, 혔다 한 사람 증석은 답하지 않았는데 공자가 다시 묻자 봄 옷을 차려입고 젊은. , “ 친구 오륙 명과 동자 육칠 명과 함께 기수(沂 )에서 목욕을 하고 무우대, ( 臺) 에서 바람을 쐬고 노래를 부르며 돌아오겠습니다 라고 말했는데 공자는 길게 한숨” , 을 쉬고 말하기를 나는 증점“ (증석)의 주장에 동의하노라 라 하였다” .5) 세속과의 관 련을 끊는 이와 같은 증석의 의기( 氣)가 다름 아닌 풍류이다.
이 자유분방한 정신은 정치나 사회 속에서도 발휘되며 또 문예나 취미에서도, 이성( )과의 교제나 호색의 면에서도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서도 발휘된, 다 요컨대 환경의 자유로움과 풍격의 고상함을 지닌 자유인의 생활이 풍류이다. . 이를테면 은자( )의 생활을 즐기는 일이나 청담( 談)6)에 뛰어나는 것이 풍류 이다 이 청담의 기풍이 마침내 불교와 결합하여 현학. ( )이 되고 또 현학은 발 달하여 선( ) 사상이 되어 전개되는데 이것이 마음이라는 면에서 볼 때 풍류에서, 의 하나의 전통을 형성한다 그리고 풍류는 일상성을 벗어나서 개성으로써 곧 무엇. 인가 새로운 내용의 충실을 추구할 때 일상생활을 초탈적인 예술의 세계로 혹은, 미적 경지로 드높이려 한다 그러므로 풍류의 충실한 내용은 다름 아닌 미적 생활. 이다.
풍류의 내용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였으며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한, . ( ) 이전의 선왕‘ ( )의 유풍( ) 이라고 하는 원래 의미로부터 전환되어 풍류는’ ,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신은경의. 풍류― 동아시아 미학의 근원 (보고사, 1999)이 간행되었다 여기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근래 필자가 생각해온 풍류론의 구상과. , 매우 흡사하며 다루고 있는 문헌자료도 상당 부분 중복되고 있어서 주목을 끈다, .
5) 論 .
6) 청담이란 생활이나 권력이나 전통적 가치관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사람들이 정치의 방식이나‘ ’ 삶의 방식 등에 관해 노장사상에 입각하여 철학적인 논의를 하는 것이다 그 논의는 기존의. 권력풍습전통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롭게 행하는 것을 이상으로 한다 그래서 풍류라고. 하는 말이 청담의 이미지를 띠게 된다.
정교( 敎)의 미풍( ) 또는 인물의 품평 그 생활태도의 형용 나아가 일반 예, , 술미의 이념으로서 사용되었다 그리고 자연의 풍물이나 인물의 용모가 지니는 미. 를 의미하는 경우가 생겨나고 또 취미와 호색 등 미적 생활을 가리키는 경우가 생, 겨난다 이와 같은 일종의 미의식 의 표현으로서의 풍류 이념은 일반적으로 진. ‘ ’ ( ) 대에 이르러 성행하게 되었다.7)
원굉( 宏)의 후한기( 記) 에 의하면 풍, ‘ ( ) 은 외부로 펼치는 덕화’ ‘ (德 )’
를 의미하며 류, ‘ ( ) 는 내부에 의탁하는 절조’ ‘ ( : 절개와 지조) 주의’ ‘ ( ) 와’ 같은 의미인데 이러한 인격과 절조의 윤리적 도의적인 성격을 지닌 풍류가 진대, ‘ ’ 에 나타났다. 후한기 에서도 특히 도의명교, (道 敎)의 정화( )라고도 할 수 있는 태학생( )을 중심으로 한 청류‘ ( ) 의 당인’ (黨 )이 환관( 官)의 전 횡에 대항하여 생명을 걸고 싸운 사건을 기록한 뒤에 그것을 논하고 있다 이들, . 당인이야말로 원굉이 말하는 소위 풍류의 사도들이다 그 사람들이 보여준 풍류의. 전통을 세설( ) 에서는 명사‘ ( )의 풍류 라고 하였다’ .
진대에 접어들어 명사의 풍류는 노장적 사상과 도가적 은둔생활을 풍류라고 생‘ ’ 각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은자의 풍류 를 가리키고 있다 나아가 풍류는 시가. ‘ ’ . ( 歌)의 풍격‘ ( 格)과 성조( ) 를 의미하는 경우도 있었다 시가의 풍류라고 할’ . ‘ ’ 때의 풍 은 시가 갖는 품격이며 류 는 그 작품의 독자성이다 이렇게 보면 진대의‘ ’ , ‘ ’ . 풍류는 절조 이념을 바탕으로 하여 정치나 실무를 떠나 은둔생활을 영위하는 노‘ ’ 장적인 색채를 띤 풍조‘ ( ) 나 풍취’ ‘ ( ) 특히 귀족의 취미 적인 색채를 가미’, ‘ ’ 하여 예술음악의 미적인 풍류를 의미하게 되었다 원래 도가에서는 특히 장자의 경. 우 소요유( ) 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미적 생활을 역설하고 있기 때문에 이, 시대의 기반이 되고 있는 노장사상의 영향으로부터 이러한 풍류가 생겨난 것은 당 연하다 또 혜강. ( 康嵇 )과 완적( )의 음악 고개지, (顧愷 )의 회화 왕희지, (
)의 서예 금곡, (金曲) 곡수(曲 )의 아연( ) 등 예술이나 취미생활이 진의 호 족( )이 누린 호화사치스런 경제 위에 생성전개되었고 그리하여 풍류는 마, 침내 미적 이념에 근접하게 된다 요컨대 진대는 풍류라는 용어의 발생기였으며‘ ’ . , 후대의 미적 이념으로서의 풍류가 성립되는 과정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7) , 代における < >の 念の 過 について, 大 紀 ( 科 ) 1 , 1951年3 , pp.93-104; 2 , 1952年 2 , pp.100-114.
III 풍류 개념의 내용 .
풍류와 개성
위진( ) 남북조(南 )의 변란 기간 동안 전통의 압력은 소멸되고 개성적인, 풍류와 풍조( )가 발생하여 진전해 갔다 한. ( )대의 엄격한 예교( 敎) 격식으 로부터 인간 본성의 자각 개성의 해방이라고 하는 낭만적인 사상의 풍류가 생겨난, 다 그러한 과정 중에 한말. ( )의 명절주의( ) 시대가 있었다 그런데 본. 래 그 절조와 명예를 중시한다고 하는 사실은 도덕 예교 가운데서도 개인이나‘ ’ ‘ ’ ‘ ’ 자기 의 입장을 표방하는 것이 중심이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개성미의 발
‘ ’ . ‘
견이라고 하는 것이 진대의 풍류 이념의 큰 특색이다’ .
풍류와 자연
풍류의 사상적 기반이 되고 있는 노장철학은 위진시대의 정치불안과 사회질서의, 격동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에 일종의 의지할 곳을 가져다 주었다 노장의 처세관은.
자연 으로의 복귀주의이다 이 시대의 도연명
‘ ’ ‘ ’ . (陶 )과 사령운( ) 등은 자
기 본성의 해방을 얻기 위해 전원의 자연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사람들은 자연 속. 에서 진‘ ( ) 과 미’ ‘ ( ) 를 찾는 데 머물지 않고 사회의 부패로부터 도피해서 지’ , ‘ 조를 지키는 사람은 자연 가운데에서 선’ ‘ ( ) 까지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자’ . 연은 개성을 자유롭게 해방시키고 그 본래의 선을 회복시키기 위한 유일한 배경이, 었다 그들은 자연 속에서 현실사회의 이해득실을 잊어버릴 수 있는 도원경. ‘ (挑 境) 을 찾았다 이렇게 해서 본성으로서의 자연과 개성의 해방은 비현실적인 은자’ . ‘ 의 풍류라는 색채를 짙게 하였다 인간의 감동적인 개성미를 존중하는 풍류의 이’ . ‘ ’ 념은 이와 같이 자연의 미를 의미하게 된다‘ ’ .
풍류와 예술
음악무용의 예술에도 각각의 체제( )가 있고 풍류 즉 감동의 종류와 독자‘ 성이 있다는 것 다시 말해 각각의 풍격’ , ‘ ( 格) 과 유의’ ‘ ( ) 가 있다는 것은 시’ 가의 경우와 꼭 마찬가지이다 종류 분파 가운데서 그 독자성을 찾고 그 개성을 인. 정하려는 사고방식이라고 하는 점은 역시 인격 절조의 경우에서 의미하는 풍류 이, 념과 동일하다. 문선( ) 의 사령운 전론( ) 에서 말하는 풍류가 풍류라는 글자를 사용하면서도 거의 일풍일류‘ ( ) 라는 파별’ ( )의 의미에 가까운 것은 풍류가 품류, ( )로도 통하는 요소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문학음악에서의.
개성미 존중은 작가연주자의 개성과 작품의 개성이라고 하는 두 방면이 있다 고. 개지는 인물화에서 신기‘ ( 氣) 를 그리고 신리’ ‘ ( ) 를 포착하는 소위 전신사조’ ‘ ( ) 즉 인물의 개성을 화면에 살리는 것을 주안으로 삼았으며 산수 풍물’ , 에 관해서도 역시 그 자연 속에 있는 신리를 표출하는 것을 회화의 생명이라고‘ ’ 생각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신리의 표출인 신기 와 기운. ‘ ’ ‘ ’ ‘ (氣 ) 은 풍류와 거의’ 같은 의미이다.
풍류와 유사( )
중국 문화는 위진 특히 동진(東 )시대에 이르러 난숙하였다 그 문화를 주도한. 사람은 당시의 귀족과 은사( )였다 일반적으로 귀유. ‘ (貴 )의 자제로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세설신어( ) 가운데 등장하는 풍류인도 대부분이 젊은 나이의 재사(
)들이었다 당시는 귀족의 세력이 커서 그 자제들에게 활약의 무대가 주어졌다고. 한다 풍류는 진대 귀유의 자제들 사이에서 진전되었으며 그 낭만적인 미적 생활. , 은 당시 지식계급의 하나의 특색이 되었다 그래서 풍류는 은일자의 색채를 띠기보. 다는 도읍(都 ) 청년 귀족의 당세풍‘ (當 ) 의 취미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절조’ . 라고 하는 윤리적인 풍류는 진대 귀유의 미적인 풍류 가 되었다‘ ’ .
이 풍류라고 하는 숙어8)를 사용한 가장 오래된 용례는 중국의 한초( , 기원 전 세기2 )의 회남자( 南 ) 에 보이는데 그것은 풍속의 퇴폐를 의미하는 것이었, 다.9) 따라서 그것은 사람을 깔보고 업신여기는 말 즉 폄사( )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점차 후일에 이르러 풍속의 잔존유풍( )이라는 용법도 보인다.10) 위진 시대(3-4세기)에는 사람들이 흠모하는 풍격인격의 고상함을 가리키게 된다 그. 무렵 풍류의 명사‘ ( ) 라고 불리는 일군의 사람들은 옛부터 내려온 도덕이나 예’ 법을 무시하고 인습을 탈피하려 하였다 요컨대 그 어느 무엇에도 속박받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의 발현이 풍류로 불렸다.
8) 이에 관해서는 , の と , 國 國 20卷 8号, 1951 참조.
9) 南 卷8. “ 嗜 多 君 欺 .”(말세가 되자 풍속이 퇴
폐하여 사람들이 제 좋아하는 대로 행동하고 예의는 황폐하였으며 군주와 신하가 서로 속이 고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의심하게 되었다.)
10) 卷69. “其 氣 古 今 歌 慷慨 .”(그 가르침과 기질은 옛부 터 내려온 그대로이며 노래를 부르고 의기가 왕성해지는 그 옛 자취, (풍류)가 여전히 남아 있다.)
본래는 경멸의 의미를 지닌 말이 어떻게 경의를 나타내는 말로 되었는가를 생각 해볼 필요가 있다 풍류 즉 바람의 흐름은 바람이 불어 통과해서 지나가는 양상을. ‘ ’ 나타내므로 우선 어떠한 규격에도 맞출 수 없는 자립성을 갖지 못한 퇴폐의 표상, 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로부터 전환하여 풍류라는 말은 정신의 자유에 대한 비유로. 서 사용된다 그래서 풍류의 명사는 청담 즉 심원한 철학. ‘ ’ (노자장자의 철학)의 담론에 열중하여 현실업무를 돌보지 않게 되는데 그 때문에 유학의 전통을 굳게, 지키는 사상가나 정치가들로부터 책망을 받은 것도 당연하였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비난의 말이었지만 비난받은 당사자들은 오히려 그것을 거꾸로 받아들여 자기들의, 자존심을 강화시키는 말로서 사용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일반적으로도 받아들여지. 게 되었다.
풍류의 태도는 이와 같이 속‘ ( ) 즉 속인의 태도에 대립되는 의미를 지닌 아’ ‘ ( ) 와 거의 동의어이다 남조’ . (南 ) 제( ) 량( )의 시대( 세기6 )에 풍류의 어의 는 또다시 전환하여 관능적인 미 요염함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 무렵 편찬된 옥, . 대신영집( 臺 ) 에 수록된 시에서 이러한 의미로 사용된 많은 사례를 찾아 볼 수 있다 이에 앞서 세기에는 단정하지 않은 것 너저분한 모습을 한 사람을. 5 , 풍류라고 한 사례도 있다 그것은 방탄. ‘ ( ) 풍류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미 풍류와 방종을 구분하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감각은 또 당시의 문. 예관과도 연결된다 양. ( )의 간문제(簡 )가 문장은 방탕한 것이 좋다 라고 말‘ ’ 한 것은 과도한 감정의 움직임을 좋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요염함의 의미는 다시, . 나아가 호색과 결부된다 당시. (唐 ) 등에서 풍류 재자‘ ( ) 라는 말이 나타나는’ 데 바로 이 경우의 풍류는 호색가를 가리킨다 요컨대 풍류는 관능적인 미 특히 유. 녀( 女)를 비롯한 성적( )인 것을 연상시키는 의미로 사용되기에 이른다.
이와 같이 풍류의 어의는 다양하게 변화했는데 문장 즉 문언, ( )에서는 당대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동경이나 회고의 감정을 수반하고 있다 이것은 처음에 서. 술한 유풍 풍격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 ’ .
풍류라고 하는 말이 중국의 고전문헌에 나타난 용례는 패문운부( ) 11) 에 가장 많이 열거되어 있다. 사원( ) 에서는 이들 용례를 기본으로 하여 그 어의의 면에서 일곱 종류로 구분하고 있다 즉. (1) . 미풍( )의 잔존 을 말한다. (2) 及 度 . 풍채( ) 태도를 말한다, . (3) 格 . 품격. (4)
영광 총애 . ,
光 ( )를 말한다. (5) 拘 , ,
예법을 지키지 않고 스스로 일파를 이루어 보통 사람들과 다른 바를 보인다
. .
11) 청( ) 강희(康 ) 50년에 편찬된 사전으로 출전 및 용례를 상세하게 수록하고 있다, .
(6) . 정신이 특히 빼어난 곳. (7) 妓女 居 . 기녀가 사는 곳 등 이 그것이다.12)
이상의 내용을 개략적으로 검토해보면 우선 (1)의 풍류여운은 선왕‘ ’ ( )의 미 풍이 흘러옴을 말한다 따라서 왕도. ( 道)에 입각한 윤리적 정치적 문화의 실현을 의미하는 윤리 풍습의 전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요컨대 민간의 좋은 풍습 천하의, . , 미풍으로 해석된다.
(2), (3)은 개인적으로 탁월한 풍격이나 품격을 지칭하며 나아가 그 품격이 바, 깥으로 나타난 유형( )의 자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광의의 인간적인 장점을 지. 닌 생활태도를 가리킨다 경우에 따라서는 음악이 갖는 양식이나 유의. ( )라고 하는 의미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지만 예술작품 일반의 품격으로 생각해도 좋다, . (4)는 자연물의 속성 가운데에서 찾아볼 수 있는 미적인 것의 존재를 가리킨다 예. 를 들면 버드나무와 같은 자연물이 갖고 있는 우미( )한 심미성이 그것이다.
(5), (6)은 아치( ) 있는 초속비범( ) 혹은 독자적인 고매한 정신적 경 지를 가리킨다 그것은 탈속문아. ( )의 일면이 있어서 윤리적인 면에 국한, 되지 않고 오히려 미적 예술적 또는 학문적 교양이 많음을 말한다 아취. ( ) 시, 취( ) 등의 문인적 풍치가 있음을 의미한다. (7)은 풍류라고 하는 말의 특수한 전의( )로서 호색( )에 관한 것을 의미한다.
풍류의 일반적 용법은 대체로 이상과 같다 이들 용례를 뒷받침하는 근본적인. 의미는 간단히 말해 탁월한 정신문화적 가치가 있는 존재양상이다 그 내용은 처음. 에는 주로 정교적( 敎 )이었지만 점차로 널리 윤리적미적 가치의 영역에까지 미쳐 그 소재는 천하의 민속 특정한 개인 자연물 예술작품 등에 널리 걸쳐 있다, , , 고 볼 수 있다.
IV 한국의 풍류 사상 .
한국의 고전문헌 가운데에서 풍류 라고 하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 12세 기에 씌어진 역사서 삼국사기( 國 記) 에 인용되고 있는 최치원( )의 난 랑비서(鸞 ) ( 세기 후반9 )이다.13) 유감스럽게도 이들 역사서보다 빠른 용례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난랑비서 에 의하면 풍류도‘ ( 道) 는 신라 독자의 화랑’ ‘
12) 館, p.1634.
13) 國 記 卷 , 羅 紀 .
( ) 에 대한 실천적 교육이념이었다’ .14) 풍류도는 그 내용이 유불선 삼교의 사상을 포함하고 있는데 본래 옛부터 내려온 전통사상이 발전하여 외래사상인 삼, 교와 결합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한민족 고유의 전통사상을 밝. ‘ (광명) 사상’15)이 라고 부른다거나 부루‘ (풍류의 고어) 사상’16)이라고 부르는 학자도 있다.
한국에서는 풍류 사상이 신라(B.C. 57 A.D.~ 935 )의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하년 는 청소년의 수양단체인 화랑 집단과 긴밀한 연관을 갖고 이념적으로 정착한다 그. 것은 미적 인간의 형성을 목표로 하는 화랑의 교육이념으로서 풍류도 로 불리게‘ ’ 된다 그 주된 내용은 도의와 미풍을 배우고 생활에 예술을 끌어들이며 아름다운. , , 자연을 완상( )하는 것이었다 도의와 미풍을 배우는 것은 풍류의 원래 의미인. 선왕의 미풍의 흐름을 계속 지켜나감으로써 윤리적정치적 문화의 실현에 기여
‘ ’
하는 것을 의미한다 생활에 예술을 끌어들인다고 하는 것은 신라인 특히 화랑들이. 시가 음악 무용 등의 예술을 중시하고 이것들을 즐김으로써 인간정신의 초속적이, , 며 조화로운 승화를 기하였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예술적 생활을 통해 정신을 순화. 하고 심정의 내적 조화를 얻으며 무한한 정신의 자유와 기쁨을 맛보았다 또 아름. 다운 자연을 완상하는 것은 산수를 순례하며 심신의 단련을 기하는 수련방식이다.
화랑들은 경치가 빼어난 명산대천을 돌아다니면서 대자연에 대한 신앙심과 외경심 을 기르게 된다 그들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웅대함을 관조하고 그것에 대해 기도. , 하며 또 그 정기( 氣)를 호흡하고 자연 속에 침잠함으로써 마침내는 초속적이고, 고매한 정신적 세계를 자신의 내부에 구축한다 이러한 풍류도는 신라 문화의 주된. 이념이며 특히 화랑의 교육이념이 되어 국가의 융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신라시대에 정착한 풍류 사상은 그 이후 계승발전되어 한국인의 미의식의 전 통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행한다 한국에서 풍류란 자연의 경물을 완상하고 예술을. 즐김으로써 인간 정신의 초속적이고 우아한 조화적 승화를 추구하는 전체적인 가 치이다 그것은 항상 윤리의식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데 때로는 온화한 융화의 정신. 에 의해 때로는 절조, ( )와 반골( 骨)의 정신에 의해 또 때로는 무상, ( )과 표박( )의 정신에 의해 다양한 전개상을 보이게 된다.
여기에서 한 가지 생각할 것은 신라시대 이전에도 이미 한국 민족에게는 풍류, 사상에 준하는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이 있었다고 하는 점이다. 삼국지 위지 동이 전에서 말하고 있듯이,17) 고대 한국의 부여고구려옥저예삼한 등의 부족국
14) , 道의 , 제 집 한국미학회11 , , 1986 참조. 15) 東, 古歌 究, 일조각, 1965, p.528.
16) 南 , 答, 삼성문화재단, 1972, pp.151-152.
17) , 國 卷30 東 .
가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현상으로 제천‘ ( )의 의례( ) 가 행해졌’ 다 한국 민족은 오랜 옛날부터 하늘에 주재자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하늘에 대해. 경건하게 기도드렸다 하늘에는 절대적인 존재이며 권위 있고 게다가 만물의 생성. 을 자유자재로 가능하게 하는 천신( )이 존재하는데 모든 사람들이 함께 숭배, 하고 기원하는 신앙의 대상이었다 주목할 것은 이 의례의 내용이 첫째로 음주가. ‘ 무를 수반하고 둘째로 남녀가 모여 논다’ , ‘ (群 ) 는 것이다 이천 년 이상이나’ . 오래 전부터 우리의 선조는 하늘에 제사지내고 마시고 노래하며 춤추는 국중, (國 )의 대집회를 열었다 이러한 행위는 속계. ( 界)로부터의 이탈과 영혼의 자유를 추구하며 의식의 세계와 무의식의 세계가 상통하는 도취의 상태로 이끈다 이것은, . 예술적 경지이기도 하며 또 윤리적 규범으로부터 융통무애의 경지에 이르는 경계, 이기도 하다 고대 한국인의 제천의례는 음주와 가무를 수반한 집단적 행사였다. . 그것은 물론 천신에게 제사지내는 종교적 의식이며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적 행사 이지만 형벌을 정지하고 죄수를 해방시키며 노래하고 춤추면서 행해진다 이 제의, , . 의 실제적 목적 가운데는 공동체적 유대를 강화하는 동시에 일상의 속박이나 생활 규범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마음의 해방감과 생의 기쁨을 맛보는 것이 중심이 되어 있었다 이것을 우리는 원시 풍류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 ’ .
또 신라의 승려 원효( )의 풍류 행위도 흥미롭다 그는 불교의 경전에 정통하. 고 많은 저술을 남기고 있는데 그 저작은 당시 중국에서도 높이 평가되었다 그의, . 사상의 핵심은 백가( 家)의 쟁론을 조화화합하는 일 즉 화쟁( )에 있는데, 그 실천방법으로서 그는 계율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행동을 보였다 그는 스스. 로 노래부르고 춤추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승려이면서도 속인의 복장을 하고. , 귀족이면서도 광대 행세를 했다 다시 말해 그는 어떠한 것에도 속박됨이 없는 무. 애( )의 풍류인으로서 가무를 행하면서 배회하였다 승려이며 귀족이었던 그는. 무엇보다도 우선 승려와 귀족의 특권적 의식을 스스로 파괴하려 했다 이러한 사실. 은 신라 화랑의 풍류의 생활태도가 원효의 행동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삼국유사 에는 원효불기( ) 조18)가 있듯이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실로 불기‘ ’ 라고 부르기에 충분하다 불기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속박되지 않음을 가리킨다. ‘ ’ . 그는 말로 나타내는 것으로 부족하면 노래를 했고 노래로 나타내는 것으로 부족하, 면 춤을 추었다 그에게서 춤추고 노래하는 일은 진리를 전달하는 방편이었다 민. . 중 속에 들어가 가무를 행하는 것은 이러한 의미가 있다 큰 박을 두드리면서 춤추. 는 원효의 모습은 기묘하였다고 전하는데 그의 무애 의 유희는 진리를 전하기 위, ‘ ’
18) 國 卷 , , .
한 행위이며 설법을 대신하는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는 실로 무애의 풍류인이었. 다.
풍류라고 하는 의식의 근저에는 문자 그대로 바람의 흐름이라고 하는 이미지가‘ ’ 있다 물의 흐름은 지형이나 강줄기에 의해 지배되지만 바람의 흐름에는 아무런. , 속박도 없다 세속을 초월하고 인습을 탈피하며 명리. ( )를 벗어나 허공에 노니, 는 기백이 풍류의 근저에는 자리잡고 있다 이 바람의 흐름은 때와 장소에 따라 강. 약이 있고 또 완급이 있다 부드럽게 불어오는 봄날의 산들바람이 있는가 하면 냉. 랭한 가을 바람이 있다 폭우를 동반하여 엄습하는 태풍이 있는가 하면 눈을 수반. 하는 눈보라가 있다 한국미학의 역사를 풍류사상의 전개라고 하는 관점에서 볼. 때 그 바람의 흐름은 시대에 따라 그 파도가 높게 일기도 하고 또 때로는 잔물결, 이지만 그 파문을 멀리 펼쳐가기도 한다 계절이나 토지 환경에 따라 온냉의 바. 람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풍류에도 온화한 풍아, ‘ ( ) 의 세계가 있고 또 차디’ 찬 풍자‘ ( ) 의 세계가 있다 다시 말해 한편으로 긍정적적극적인 풍류가 있는’ . 반면 다른 한편으로 부정적반항적인 풍류가 있다 조선 전기의 서거정, . ( 居 ) 이나 성현( )의 풍류가 전자를 대표한다면 조선 후기의 박지원, ( )과 정약 용( )은 후자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는 한국에서의 풍류 사상의 전개과정을 총체적으로 충실하게 다룰 수는 없는 형편이므로 간략하게나마 몇 가지 경우만을 선별하여 잠시 논하고자 한다, .19)
조선 왕조는 예악‘ ( ) 사상 과 문’ ( )을 숭상하는 우문‘ ( ) 사상을 문화적’ 기반으로 삼았다 초기에는 정치적사회적인 안정을 배경으로 하여 전아. ( )한 문화를 꽃피웠다 서거정의 화국. ‘ ( 國 나라를 훌륭하게 함: ) 의 문예론과 성현의’
‘중화( ) 의 음악론은 이 시기의 윤리적미적인 가치관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 . 의 풍류는 귀족적인 성격이 강한 풍아로 나타났다‘ ’ .
서거정에게서 시문( )의 사명은 시경( 經) 의 소아( ) 와 대아(大 ) 에서 볼 수 있는 기쁨과 즐거움 행복과 평화의 감정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 이와 같은 감정의 세계는 풍아라고 불리는 것이다 요컨대 태평의 기운‘ ’ . (氣 )을 펼쳐나가는 것이 군신(君 )의 사명이라고 여겼으며 시문은 이를 위해 도움이 되, 는 것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20) 그는 지금의 군주의 문은 이 같은 역
19) 이러한 논의는 사실상 인접학문의 성과를 바탕으로 하여 미학 분야에서 앞으로 계속 수행하 여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 점과 관련하여 특히 조동일. , 한국문학사상사 시론, 지식산업사, 1978 한국철학회 편; , 한국철학사 전 권 동명사3 , , 1987; 이민홍, 이조중기 시가의 이념과 미의식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 1993 등에 크게 힘입고 있다.
20) 居 , 東
할을 충분히 행하고 있으며 지금은 주( )나라 시대의 융성에도 비견할 수 있는 시대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시문의 품격으로서 풍성. ‘ ( ) 화려’ ‘ ( )’ ‘호방(
) 을 중시하는데 이것은 왕도’ , ‘ ( 道)의 풍( ) 을 모범으로 하는 윤리성이 강한’ 풍아가 중시됨을 의미한다.
성현도 서거정과 마찬가지로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관료 문인이다 특히 서화. , 음악 등의 예술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이고 있다 부휴자전. ( ) 가운데 모“ 름지기 시문 산수의 탐승, ( ) 가야금, (琴)을 즐겼다 라고 하는 기록은 풍류를” 좋아했던 그의 생활을 잘 나타내고 있다 나아가 그는 현실에 대한 인식도 깊어서. , 민족문화에 대해서도 커다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예악에 의한 질서를 가장. ‘ ’ 중시하고 자연에서 성립하는 질서와 조화를 사회 속에 실현하는 것 즉 중화 의, , ‘ ’ 실현에 힘을 쏟는다 사회를 평화롭게 하는 것 또 인간의 감정을 부드럽게 하는. 것 이것이 성현의 중화의 미학이며 풍아 의 세계이다, ‘ ’ ‘ ’ .21)
다른 한편 조선 후기의 박지원은 풍류 사상을 표면에 내세우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들은 그의 사상이 갖는 깊이와 그 스케일의 웅대함에서 볼 때 가히 풍류 인‘ 물 이라고 부를 수가 있다 그에 의하면 예술이란 각 시대의 생활을 기반으로 한’ . 창조적 활동이며 예술가의 역할은 현실에 근본을 둔 진취‘ ( ) 가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22) 이것은 예술 창작에서의 독창성의 주장이기도 한데 고문, (古 ) 의 모방을 즐긴 당시의 의고적( 古 ) 풍조에서 보자면 혁신적 태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글을 쓰는 것을 전쟁에 비유한다 이것이야말로 하나의 창조적인 설명. . 방식이다 그는 문자를 병사에 문의. , ( )를 장군에 비유한다 다시 말해 글을 쓰. 는 것은 문의인 장군이 문자인 병사를 지휘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전투이다.23) 글쓰 는 일을 전투에 비유한 것은 그에게서 글쓰는 일이 전쟁을 수행하는 것처럼 투쟁 적이었기 때문이다.
또 정약용은 오랜 유배생활 끝에 한층 원숙한 사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자신의, 현상황에 구애됨이 없이 민중이 당하고 있는 고난을 널리 이해하고 그 고난의 정, , 체와 해결법을 찾는 것이 선비( )의 사명이라고 생각하였다 그에게서 문예음. 악회화 등의 예술적 활동은 인륜관계를 선도( 導)하고 사회를 광정(匡 )하는
‘광제일세(匡 ) 를 사명으로 한다’ .24) 그 때문에 그는 시의 풍격으로서 힘세고 고뇌하는 기성(氣 )을 갖는 창경기굴‘ ( 勁奇堀) 을 모범으로 생각한다’ .25) 사회의
21) , 軌
22) , ,
23) , , 檀
24) , 稿 , 堂 1, 景 , 1981, p.267.
모순과 대결하는 시라면 아무래도 일종의 비장( )의 미라고도 말할 수 있는 창‘ 경기굴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서 풍류의 정신은 정치와 사회’ . 에 대한 강한 비판 즉 풍자 로서 부각되고 있다‘ ’ .
바람은 거기에 마주 대하는 사람이 어떠한 방향을 취하는가에 따라 순풍( ) 이 되기도 하고 역풍( )이 되기도 한다 조선 후기 사회는 외측으로부터 불어오. 는 강한 바람에 견딜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자신의 힘으로 근대화를 실로 시작하려. 고 할 무렵 바깥으로부터 불어오는 강풍에 휘말려 전통 위에 선 근대화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래서 한국의 풍류 사상은 상당한 기간 동안 위축되지 않을 수 없. 었음도 사실이다.
한국문화와 풍류 V.
한국의 문화와 예술의 특질을 논할 때 자주 멋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멋은 우‘ ’ . 리의 고유어이며 한국인의 미의식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말의 하나로 간주 된다.26) 멋이라는 말은 자연물이나 예술작품의 아름다움을 가리키는 경우에도 사용 되지만 특히 인간의 인격태도행동생활방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미적 가치, 를 가리킨다고 하는 점에서 그 밖의 미의 범주와는 다른 독자성이 있다 멋은 한, . 국인의 미적 가치판단의 규준임과 동시에 인간형성의 이념으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래서 교육학자 한기언. ( 基 )은 이 멋을 한국인에게서 인간형‘ 성의 핵( )이 되는 사상이라고도 말하고 있다’ .27)
한국인의 미의식으로서의 멋은 예술적인 것 이상으로 생활이념으로서 발전해 왔 다 멋이란 무엇보다도 정신적 자유이며 현실에 구속되지 않은 생활이다 이런 의. , . 미에서 멋은 풍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달리 말해 멋은 현대인에게서 풍류의. 별명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정쟁. ( )에 시달린 혼미했던 시대에 세속과 단절하 여 명리를 버리고 산림에 파묻혀 자유로운 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하나의 멋이다.
그러나 멋은 단순한 은둔 사상과는 다르며 낙천성과 직접 결부되어 있다 멋이라, . 고 하는 말이 언제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는지는 분명하지가 않다 그러나 필자는 풍. 류가 귀족계급이나 교양 있는 문인의 미의식 내지 생활태도를 나타내는 것임에 반
25) , , 堂 1, 景 , 1981, p.447.
26) 주지하다시피 멋에 관한 체계적 논의는 조지훈, 멋의 연구― 한국적 미 의식의 구조를 위 하여 , 1964( 조지훈 전집 Ⅳ, 일지사, 1973에 재수록)가 있다.
27) 基 , 한국인의 교육철학 서울대학교 출판부, , 1988, p.338.
하여 멋은 서민의 생활 속에 깊이 침투한 풍류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풍류의 한글판을 멋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28)
한국인에게서 주요한 미적 범주인 멋이 학식과 덕망을 겸비하고 인정 많고 관, 대하며 순량한 선비를 형성하는 교육이념이기도 한 것은 주목해볼 일이다 한국인. 은 멋 또는 풍류라고 하는 미적 이념을 인간형성의 지표로 삼아 왔다 신라시대‘ ’ ‘ ’ . 의 화랑의 인간형성의 이념이 풍류였듯이 조선시대의 선비의 인간형성의 이념은‘ ’ , ‘ ’ 멋이었다 양자에는 모두 흥과 신바람이 있다 자유분방한 낙천적 유희성이 있는. ‘ ’ ‘ ’ . 가 하면 기개(氣槪) 신의( ) 절조( )가 있고, 호방( )과 의연( )이 있다 한국인에게서 멋있게 산다라거나 풍류를 안다라고 하는 말은 최고의 찬사. ‘ ’ ‘ ’ 의 말이다 멋과 풍류는 미적 생활방식. ‘ (aesthetic way of life) 의 이념이다’ .
그런데 멋에는 그것 자체가 지니고 있는 많은 성질 때문에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음도 사실이다 예를 들면 그 비정제성. ( )은 무중심 무통일 산만이 되기, , 쉽다 다양성도 마찬가지이다 율동성은 단순과 무미. . ( )로 빠지기 쉽다 특히 표. 현에서의 완롱성( )은 멋을 타락시키는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기묘 기발 돌발적인 표현을 수반하기도 했다 과도한 완롱성은 경박한 느낌을 가, , . 져다준다 또 멋의 정신적 특질인 비실용성에는 향락과 장식으로 통하는 면이 있고. 그 바탕에는 사치성이 있다 우리말에는 겉멋이라는 것이 있다 겉이란 외면 외. ‘ ’ . , 부 껍질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겉멋이라고 하는 것은 외면적이며 피상적인 멋, . , 허구허식허세의 멋 의사, ( ) 멋을 가리킨다 진실된 멋과 나란히 가짜 멋이. 세상에 만연하고 있음을 나타내주는 말이다 멋이 우리 시대에 과연 어떻게 받아들. 여지고 있는지를 신중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풍류라거나 멋이라고 하는 말이 사용되는 빈도가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감소하였다 모든 것이 평균화되어 가는 현대사회에서 이 말이 갖는 의미. 는 매우 희박해지고 풍화되어 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풍류나 멋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와 그 사상성을 문화의 국제화 시대에 점차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이러한 시대이기 때문에 오히려 점차 잊혀져 가는 풍류의 미학을 탐구하 는 일이 더욱 큰 의의를 가질 수도 있다.
28) 풍류의 사전적 의미 역시 첫번째로 멋을 내용으로 한다. 琦 편, 國 (을유문화사, 1964)에서는 속되지 않고 멋스럽게 노는 일“ ”, , 국어대사전(민중 서관, 1968)에서는 속된 일을 떠나서 풍치가 있고 멋스럽게 노는 일 평양 사회과학 출판“ ”, 사 조선말 대사전, (1992)에서는 풍치있고 멋스러운 일 로 설명한다“ ” .
VI 풍류의 미학 그 과제와 전망 . ,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바탕으로 여기에서 우리들은 풍류의 개념을 다음과 같 이 규정할 수 있다 풍류란 자유분방한 정신이 세속적인 가치를 초탈하여 현실과. , 의 관련을 지니면서 생명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 경우 자연은 그 정신의 자유가. 공간적으로 얽매임 없이 펼쳐나가는 열린 장을 제공하는 것이며 시, ( ) 음악(
) 무용( ) 술( ) 기녀(妓) 등은 그러한 정신을 발휘하기 위한 매개물이다.
풍류는 미적윤리적 성격을 갖는 행동이나 생활의 방식이다.
풍류에 관해 근래 발표된 일본인의 연구로 이시다 카오리, ( )의 “풍류” 의 미 ― 풍류 개념을 중심으로 하여 본 일본인의 미적 감각 분석“ ” 29)과 후지와라 시게카즈(藤 )의 풍류의 사상 이 있다.
이시다의 연구발표의 주된 논지는 나중에 현상학적 화장론 오샤레의 철학, 30) 에서도 다루어지고 있는데 여기에서 그녀는 일본의 전통적인 미 의식을 풍류라고, 부른다 거기에는 기라. ‘ (綺羅)의 미와 소’ ‘ ( )의 미가 있으며 특히 소박한 바탕의’ , 아름다움은 일본 문화의 특징적인 것으로 현대 일본 여성의 화장에 대한 의식과, 공통되는 점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시다가 생각하고 있는 풍류 개념은 미적 장식. 의 측면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후지와라는 풍류의 구조를 논하면서 풍류를 생태학적 삶, ‘ (ecological life)’
의 모델로 생각하려 한다 그에 따르면 풍류의 구조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아무. 런 구속 없는 자세 놀이 여유 열린 마음과 몸 무심, , , , ( ) 등이다.31) 그리고 이 들 모두의 근저에는 자연 이 깊이 침투하고 있다 요컨대 풍류란 자신에게도 대상‘ ’ . 에게도 속박됨이 없이 자유자재로 경계를 왕래하며 주객, , ( 客)의 구분 없이 무경 계로 서로 융화하며 놀이하는 마음으로 즐기며 항상 여유를 갖고 유연하게 사물, , 에 접촉하며 모든 사물에 심신을 열고 무심이 되어 바람의 마음에 맡기면서 인생, , , 이라고 하는 길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는 이제 우리들은 생명 있는 모든 것으로 이. 루어지는 전체 생태계의 윤리에 입각한 새로운 생명의 체계와 삶의 작법( )을 창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때 자연을 기반으로 한 전체 생태계와 사. 귀는 교제의 시학( ) 그리고 풍류의 작법이 유효한 사상으로서 조용히 소생할, 것이라고 말한다 필자 역시 후지와라의 개념 파악에 거의 동의하면서 그가 주장하.
29) , 45号, 大 局, 1995.
30) , , おしゃれの , , 1995.
31) 藤 , の , 館, 1994, pp.262-266.
는 생태학적 제안을 매우 흥미롭게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가 자연과의 관련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한편으로 사회적 현실을 경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인상을 받게 됨도 사실이다.
다른 한편 하마시타 마사히로( 宏) 교수는 동양의 유희‘ ( ) 론을 재구축’ 한다는 관점에서 풍류 개념을 강조하면서 한편으로 그 한계를 지적하고 그 보완으, 로서 풍광‘ ( 狂) 을 논한다’ .32) 그는 필자가 제시한 동아시아에 공통된 풍류의 미의 식에 크게 주목하면서 그 탈세속적 성격을 유희론의 관점에서 파악한다 그러면서. 도 그는 풍류 개념의 의미내용을 설령 확대한다 할지라도 실천적 미의식으로서의 한계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하였다 그에 따르면 우선 풍류의 범위에서는. 자기변혁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풍류는 인격으로 결실을 맺어 탁월한 성. 격의 인물을 형성(build-up)할지는 모르나 생사를 직시하고 반성하며 대치하는 엄, 격함을 과연 얼마만큼 포함할 수 있는지가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풍류 이. 상으로 사회비판이나 자유의 태도를 선양하는 풍광‘ ( 狂) 의 정신이 갖는 의미를’ 부각시키고 그 대표적인 사례로서 이큐, ( ) 선사( )를 예로 들고 있다 이큐. 선사의 반항적 태도에는 명리( )에 마음을 빼앗기는 일 없이 세속과의 거리를, 명확하게 하며 규범과 권위와 권력을 부정하는 자유와 자립을 향한 실천적 의지가, 철저하다 이와 동시에 자기부정 자기에 대한 비판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런 의. , . 미에서 풍광 은 풍아를 한가롭게 향수하는 풍류의 부정이 되며 엄격한 창조적인‘ ’ , 유희의 미의식의 표현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하마시타가 강조하고 있는 풍광의 미의식은 내용적으로는 필자가 뜻하는 풍류 개념 속에 포함되어 있다 그 자신이 지적하듯이 중국의 한문에는 풍광이라는. 용례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사실 한국에서도 사용되고 있지 않다 필자가 말한 차. . 디찬 풍자의 세계에 의해 뒷받침되는 풍류가 바로 그가 의미하는 풍광 개념에 해 당한다고도 볼 수 있다 여하튼 풍광 개념은 동아시아 풍류론의 연장선상에서 또. , 는 그 범위 내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영역임에 틀림없다.
필자는 여기에서 동아시아의 풍류 사상이 이제부터 생태학적 삶의 모델로서 또 인간의 주체성에 근본을 두고 개성을 연마하는 유효한 삶의 방식의 모델로서 그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 갈 것을 기대한다 그러한 역할은 다름 아닌 앞으로의 미. 학이 수행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32) 宏, びの , としての びの , 7 究 告 ,
, 1999 7 , pp.31-41.
廣島大 較 究 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