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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앙코르 유적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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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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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 정보

간략 해설집

( )

Version 1.2 (2006.12.03)

주의 : 본 파일은 2005년 1월 11 (Version 1.0)일 에 최초로 작성되었습니다.

그리고 2005년 3월 27 (Ver 1.1)일 에 일부 내용이 수정 추가되었고, , 년 월 일 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2006 12 3 (Ver 1.2) .

관련 내용은 www.ilovecambodia.co.kr [앙코르 유적 메뉴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 차후 갱신된 정보는 사이트에 방문하셔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본 파일의 배포는 www.ilovecambodia.co.kr에서만 하고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 복사된 형태로 다운받았다면 갱신되지 않은 파일일 수도 있습니다.

본 자료의 상업적 사용은 불가능합니다.

아울러 본 자료는 사이트의 내용을 대부분 그대로 복사한 것이므로 일무 문구는, 본 자료와 어울리지 않는 것도 있을 것이므로 착오없으시기 바랍니다.

*** 주요 목차 ***

들어가기에 앞서 --- 2

캄보디아 유적 개요 --- 4

앙코르 유적 관람 안내 입장료 매표소 영업시간 교통편( , , ) --- 7

앙코르 유적 관람 일정 --- 8

캄부자 왕국의 연대기 --- 12

앙코르 유적 건축 연대표 --- 13

앙코르 유적 지도 --- 14

앙코르 와트의 눈물 --- 15

앙코르 유적 건축 소재 --- 17

앙코르 유적 주요 사원 설명 --- 18

부록 앙코르 유적 지도 ( ) --- 30

http://www.ilovecambodia.co.kr

(2)

들어가기에 앞서

캄보디아 씨엠립 부근에 산재해 있는 앙코르 유적은 지금 현재 캄보디아 최대의 관광 자원이다 내전이 종료. 된 후 수많은 외국인들이 찾고 있다 그런데 앙코르 유적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씨엠립 주변의 앙코르 유적. 만을 떠올리게 되지만 사실은 씨엠립 주변 외에도 캄보디아 전역에 앙코르 시대의 유적이 널려 있으며 또한 주변국인 태국과 라오스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다만 본 사이트에서는 씨엠립 주변의 앙코르 유적에 대해. 서만 우선 소개하기로 한다 다른 지역의 유적에 대해.

서는 차후에 장기적 관점에서 천천히 준비하여 올릴 예 정이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앙코르 시대의 유적 외에 앙코르 왕조 이전 시기의 부남(扶南)과 진랍(眞臘) 시대의 유적 도 캄보디아 전역에 퍼져 있다 다만 이들 유적에 대해. 서는 역사적인 자료가 부족한 실정이어서 별도로 소개

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 일부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으나 아직은 미미한 실정이다 관심있는 분들은 본. . 사이트 운영자에게 별도로 문의하기 바란다 참고적으로 각 지역 정보에도 유적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 있. 다.

위성 사진으로 본 앙코르 유적

(1) :

캄보디아의 유적은 전지역에 다양하게 산재해 있지만 앙코르 와트“ (Angkor Wat)”로 대변되는 씨엠립의 앙코 르 유적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지역의 유적은. 1992년에 유네스코(UNESCO)에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록되었으며 그 규모는 산림 지역을 포함하여 400㎢에 달할 정도로 방대하다.

http://www.unesco.or.kr/whc/wor_630_10.html

http://portal.unesco.org/culture/en/ev.php-URL_ID=2672&URL_DO=DO_TOPIC&URL_SECTION=201.html

아래 나사(NASA)의 위성 사진을 보면 앙코르 유적에 대해 개괄적으로 가늠해 볼 수 있다 사진 하단에는 씨. 엠립 시내가 있고 왼쪽에는 씨엠립 공항이 있다 공항 아래쪽에서 시내쪽으로 연결된 대각선은. 6번 국도이 며 육로 국경인 포이펫으로 입국하는 분들은 이곳을 통해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씨엠립 시내의 북쪽에는 대부분의 앙코르 유적이 있다 먼저 씨엠립 시내 위의 작은 네모는 앙코르. 와트이다 물론 둘러싸고 있는 부분은 해자. (垓子)이며 그 안에 앙코르 와트가 있다 앙코르 와트 위의 크다. 란 네모는 앙코르 톰이다.

역시 둘러싸고 있는 부분 은 해자(垓子)이다 앙코르. 톰 안에는 바욘과 바푸온, 코끼리 테라스 나왕의 테, 라스 등 주요한 유적이 있 다.

사진에는 보이지는 않지 만 아래쪽에는 아시아 최, 대의 호수인 톤레삽이 있 으며 오른쪽에는 앙코르 초기 유적인 롤루오스 유 적군이 있다 롤루오스 유. 적군은 롤레이, 바콩, 프

(3)

레아 코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롤루오스 유적군은 규모가 작기 때문에 짧은 일정으로 방문하는 분들은. 대다수 제외하고 있는 실정이다 마찬가지로 사진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사진의 북동쪽에는 반테아이 쓰레. , 이 프놈 쿨렌 등이 있다, .

그리고 앙코르 톰의 좌우에는 인공 호수인 바라이(Baray)가 있다 사진에서 왼쪽은 서. ( )西 바라이이다 현재. 많은 부분이 물에 차 있다 그러나 오른쪽의 동. ( )東 바라이는 지금 현재 땅으로 메워져 있다 일부의 흔적. 만이 과거에 인공 호수였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을 따름이다.

앙코르 유적 관람시 참고할 점

(2) :

앙코르 유적의 관람 복장은 태국 왕궁처럼 반바지는 안된다는 등의 규정은 없으므로 자유로운 복장이 허용 된다 다만 햇살이 따가우므로 옷차림에 주의해야 한다 모자나 선글라스 양산 혹은 우산. . , ( ), 자외선 차단제 등을 준비하고 이동하기에 편한 복장을 갖추는 것이 좋다 신발은 장시간 걷기에 편한 것을 고르고 특히 잘. , 미끄러지지 않는 것을 고르도록 한다.

그리고 유적 간의 이동은 도보로는 무리가 따른다 따라서 모또 툭툭 택시 등을 이용해야 한다 일부 여행. , , . 자들은 자전거를 직접 몰기도 하지만 먼 거리는 힘들 것이다 어쨌든 준비를 알차게 한다면 평생의 기억에. 남을만한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4)

캄보디아 유적 개요

캄보디아의 유적 전반에 대해 이해를 하고자 한다면 부남(扶南), 진랍(眞臘), 앙코르라는 시대 구분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 즉 캄보디아의 시대 구분에 있어서 최소한 앙코르 시대까지는 세 부분으로 분류할 수. 있다 물론 그 중에서 가장 중요도가 높고 찬란했던 문명을 꽃피운 시대는 앙코르 시대이다 캄보디아 씨엠. . 립의 앙코르 유적을 방문하는 여행자들은 바로 이 시기의 유적을 보게 되는 것이다.

캄보디아의 시대 구분

(1) :

캄보디아의 역사를 살펴보면 캄보디아 최초의 국가는 부남(扶南)이었다 부남은 산. ( )山을 뜻하는 브남(bnam, 고대 크메르어 혹은 프놈) (phnom, 현대 크메르어 의 발음을 중국인들이 옮긴 것이다 부남의 중심은 메콩강) . 하류와 메콩 델타였으며 당시의 흔적을 현대 캄보디아

에서는 바 프놈(Ba Phnom), 앙코르 보레이(Angkor 프놈 다 등에서 찾을 수 있다 부남 Borei), (Phnom Da) . 의 역사적 등장은 1세기 전후로 추정할 수 있는데 이는 중국의 역사 자료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550년 경에 메콩강 중류 지방에 진랍(眞臘)이

등장하였으며 부남은 자연스럽게 진랍에게 통치권을 넘겨주게 된다 물론 진랍이 부남을 완전히 정복한 것은. 그 이후의 일이다 그런데 진랍은. 706년 이후에 육( )陸진랍과 수( )水진랍으로 분열되어 혼란기에 접어들게 된다. 진랍 시대의 유적은 프놈 바용(Phnom Bayong), 삼보르(Sambor), 삼보르 프레이 쿡(Sambor Prei

프라삿 안뎃 등이 있다

Kuk), (Prasat Andet) .

분열된 진랍은 자바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802년에 자야바르만 2세가 독립을 선포하고 앙코르 제국을 건설 하게 된다 이후 아유타야 왕국 태국 의 침입을 받아서. ( ) 1431년에 앙코르 왕도를 포기할 때까지 600여 년 동 안 찬란한 문명을 꽃피우게 된다.

이상과 같이 살펴보았듯이 캄보디아의 시대 구분은 부남 진랍 앙코르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진랍, , . 시대는 전( )前 앙코르 시대라고도 한다 물론 이는 말그대로 앙코르 시대 이전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앙. . 코르 시대 이후인 15세기에서 19세기까지를 쇠퇴기라고 하고 있다.

참고적으로 위에서 언급한 부남(扶南) 및 진랍(眞臘)의 용어에 대해서는 부연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우선 부. 남 및 진랍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중국의 사료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부남의 경. 우 Funan으로 표기되고 있으며 종종 푸난이라고도 한다 또한 진랍의 경우에는. Chenla 혹은 Zhenla로 표기 하여 첸라 첼라 혹은 젠라로 읽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 . . Funan과 Chenla는 부남 및 진랍을 발음에 가깝게 표기한 약속에 불과하기 때문이며 푸난 혹은 첸라로 발음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쨌든 본 사이트에서는 푸난 및 첸라가 아닌 부남 및 진랍으로 표기할 것이므로 착오없기. 바란다.

앙코르 유적 개요

(2) :

앙코르 시대의 도래는 자야바르만 2세에 의해 분열되었던 진랍이 통일되고 이어서 인드라바르만, 1세 때 완 전한 독립국이 됨으로써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수많은 왕들에 의해 대도성이 건설된다 왕명표에는. . 년부터 년까지 명의 왕이 등장하지만 공식적으로는 명 단명한 명을 제외하여 명이라고도

802 1431 37 28 ( 2 26

함 을 왕으로 보고 있다 앙코르 왕국은 특히 인도 불교의 영향을 받아 독자적인 아름다움을 꽃피우게 되며) . , 그 뒤 왕국의 번영과 함께 많은 건축물과 예술품이 생겨났다 그러면 재위했던 왕을 중심으로 발전 과정을. 개략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겠다.

먼저 자야바르만“ 2 ”세 는 802년에 자바 오늘날의 자바와 동일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임 에서 건너 와 독립을( ) 선포하고 앙코르 왕국을 건설하였다 자야바르만. 2 (세 자바에서 출생 는 옛 왕조와 관련되어 있는데 그의 가)

(5)

계가 자바로 간 것은 망명 혹은 강제로 끌려갔다는 견해가 있다 이어 그가 귀국하여 독립을 선포하였다는. 것이 일반적이나 프랑스 학자 에이모니는 자야바르만, 2세가 자바의 허락을 받아 귀국하여 대신회의에서 왕 으로 선출되었다고 주장하고도 있다 어쨌든 자야바르만. 2세는 앙코르 왕국을 건설하였으며, 802년부터 834 년까지 재위 과거의 자료에서는( 850년이라고 하고 있으나 최근의 연구 성과에 따라 834년이 대세임 했다) . 처음에는 수도를 인드라푸라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반테아이 프레이 노코르로 추정 로 정했으나 나중( ) 에는 롤루오스 하리하랄라야 옮겼다 그리고 프놈 쿨렌 마헨드라파르바타 에는 크메르 양식으로 최초의 건축( ) . ( ) 물을 짓기도 했다.

자야바르만 2세의 후계자는 아들인 자야바르만“ 3 ”세 이다 그는. 834년부터 877년까지 통치하였다 이후 인. “ 드라바르만 1 ”세 는 877년에 권력을 획득한 후 889년까지 재위하였는데 국가의 기틀을 확립하고 후대 왕들, 의 본보기가 되는 관례를 만들었다 그는 롤루오스 지역에 인공 호수인 인드라타타카를 만들었고 현재에는. ( 물이 말라 기능 상실), 프레아 코를 지어 조상들에게 헌사하였으며 또한 바콩도 건축했다, .

그다음으로는 인드라바르만의 아들인 “야소바르만 1 ”세 가 즉위(889년 했다) . 그는 893년에 인드라타타카의 한 가운데에 롤레이를 건설하여 조상에게 헌사하였다 그리고 앙코르 지역에 처음으로 수도를 정하였는데 그. 중심은 프놈 바켕이었다 프놈 복과 프놈 크롬에는 각각 사원을 건립했다 또한 거대한 인공 호수인 야소다. . 라타타카를 건설하였는데 바로 오늘날의 동 바라이 현재 땅으로 메워져 있음 이다 이후 장남인, ( ) . “하르샤바 르만 1세 가 프라삿 크라반을 건설하였고 박세이 참크롱의 건립도 시작했다 그러나 갑자기 사망한 이후 그” , . 의 차남인 이샤나바르만“ 2 ”세 가 즉위하였다.

그리고 자야바르만“ 4 ”세 때에는 수도를 오늘날의 코 케르 지방으로 잠시 옮겼으며 라오스의 왓 푸를 지어, 시바 신에게 바쳤다 자야바르만. 4세 이후에는 그의 아들인 하르샤바르만“ 2 ”세 가 뒤를 이었다.

하르샤바르만 2세가 사망한 후에는 “라젠드라바르만 2 ”세 가 권력을 물려받았다 그는 야소다라푸라로 수도. 를 다시 이전하였고 그 가운데에 동 메본을 남쪽에는 프레 룹을 건립했다 이 외에도 쓰라 쓰랑 반테아이, . , 쓰레이 후대 왕이 완성 등을 건설했다( ) .

라젠드라바르만의 아들인 “자야바르만 5 ”세 가 968년에 왕위에 오른 후에는 타 케우를 건설하였으나 완성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의 후임은. “우다야디티야바르만 1 ”세 였으나 “자야비라바르만 에게 제거되어 몇 개월 밖” 에 통치하지 못했으며 자야비라바르만도 몇 년 밖에 통치하지 못했다, .

그 후 수리야바르만“ 1세 가 내전의 최종 승리자가 되어 장기간 재위하게 된다 그는 긴 기간동안 타 케우를” . 완성하고 프레아 비헤아르, 프놈 치소르 등을 건설했다. 또한 서 바라이의 축조를 시작했다. 그의 아들인 우다야디티야바르만 세 는 바푸온을 건설하고 서 바라이를 완성했다 서 바라이의 가운데에는 섬을 만들

“ 2 ” , .

고 사원을 건립했다.

하르샤바르만 세 자야바르만 세 다라닌드라바르만 세 를 거쳐 즉위한 수리야바르만 세 는 위대

“ 3 ”, “ 6 ”, “ 1 ” “ 2 ”

한 정복자였다 그는 장기간 참파를 점령하기도 했다 재위 기간 동안에는 앙코르 와트 톰마논 차우 사이. . , , 테보다 프레아 팔릴라이 프레아 피투 반테아이 쌈레 벵 메알레아 등을 건축하였다, , , , .

수리야바르만 2세 후에는 “다라닌드라바르만 2 ”, “세 야소바르만 2 ”, “세 트리부바나디티야바르만 이 재위했” 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에는 질서가 문란해지고 왕권이 약해졌다 하지만. . 1181년에 강력한 “자야바르만 7 세 가 즉위하여 다시 질서를 바로잡았다 그의 재위 기간 동안에는 수많은 건축물이 완성되었는데 타 프롬” . , 프레아 칸 바욘 앙코르 톰 코끼리 테라스 나왕, , , , (癩王)의 테라스 네악 페안 타 쏨 반테아이 크데이 반테, , , , 아이 츠마르 등이 그것이다 이처럼 자야바르만. 7세 재위 당시에는 앙코르 왕조의 최대 번영기였다 그러나. 자야바르만 7세의 사망 이후에는 국력이 서서히 기울기 시작하였고 왕들의 업적도 눈에 띄지 않게 된다.

앙코르 왕국의 멸망

(3) :

앙코르 왕국는 자야바르만 7세 이후 급속한 쇠퇴 경향을 보인다. 1350년에는 아유타야 왕국 시암( , = 태국) 이 신흥 강국으로 부상하게 되는데 마침내, 1430~1431년에 앙코르를 점령하였다 시암족의 앙코르 침략은. 침략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위대했던 600년 문화의 종말로 이어졌다 과거 수백 년 간 앙코르 왕국으로부터. 지배받았던 터라 철저하게 유린했다.

아유타야의 왕 파라마라자는 앙코르의 다르마쇼카 왕(1429~1431 재위 을 죽이고 자신의 아들 인드라파트를)

(6)

점령지의 통치자로 임명했다 앙코르의 왕자 폰하 야트. (Ponha Yat, 폰헤아 야트 가 대신 장군 병사들을 소) , , 집하여 식민 통치자인 인드라파트를 살해하고 왕위에 올랐으나 수리 시설이 파괴되어 도성을 더이상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도성을 포기하면서 앙코르 왕국은 막을 내리게 된다.

자료 참조시 유의사항

(4) :

본 사이트의 유적 관련 자료는 전문 서적을 다량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다 그러나 자료 작성 과정 중에 오타. 나 오류가 내포되어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전문적인 연구를 원한다거나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을 습득하고. 자 한다면 국내외 전문 서적을 직접 참조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이곳의 자료는 여행에 있어서 참조하는데. 한정하기 바란다 그리고 본 운영자는 오류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므로 착오없기 바란다. .

또한 이곳에서 사용하고 있는 유적이나 지명의 명칭은 현지의 발음과 차이가 날 수도 있다 즉 이곳에서 사. 용하는 명칭은 현지의 발음을 정확하게 표기하기보다는 임의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는 지금 현재 캄보디아어. 의 경우 공식적인 표기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 점 착오없기 바란다. .

(7)

앙코르 유적 관람 안내

씨엠립의 앙코르 유적은 전체를 포괄하여 입장료를 징수하고 있으며 매표소 출입구 에서 표 확인을 한다 또( ) . 한 중요한 일부 유적의 입구에서도 표 검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낮은 유적의 경우에는. 표 검사를 하지 않거나 또는 안내 직원조차 없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씨엠립 시내에서 북동쪽 방향으로. 48 정도 떨어져 있는 프놈 쿨렌(Phnom Kulen) ,과 프놈 쿨렌에서 동남쪽 7 부근에 있는 벵 메알레아(Beng

㎞ ㎞

에서도 별도의 입장료를 받고 있다 이들 지역은 먼거리에 있기 때문에 씨엠립 지역과는 별도이다

Mealea) . .

앙코르 유적 관람 개관

(1) : 씨엠립의 앙코르 유적의 관람은 보통 새벽 05:00경부터 저녁 18:30경까지 가능하다 매표소는 여행자들이 프놈 바껭이나 앙코르 와트로 일출을 보러가는 새벽부터 영업을 시작한다. . 그러나 일반적으로 일출을 보지 않는 경우라면 07:00 혹은 08:00 전후에 관람을 시작하면 된다 그리고 일. 몰 시간 때에는 입장권 검사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으므로 그냥 입장할 수도 있다 대략. 17:00 혹은 17:15 이후에 표를 구입하면 다음 날부터 계산해 준다.

유적 입장료

(2) : 앙코르 유적 입장권은 1일권은 20$, 3일권은 40$, 7일권은 60$이며, 1일권 외에는 사 진 1장이 필요하다 사진이 없을 경우에는 무료로 촬영해 주지만 혼잡한 시간대에는 대기 시간이 길어질 수. 도 있다. 12세 미만의 어린이는 입장료가 면제된다 입장권은 항상 소지하여야 하며 분실하더라도 재발행되. 지 않는다.

앙코르 유적 교통편

(3) : 앙코르 유적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교통편 섭외가 필수적이며 도보로 이동하기 에는 무리가 있다 도보로 이동시에는 길을 잃거나 일사병의 위험이 있다 교통편은 대다수 숙소에서 섭외. . 가능하며 개인적으로 길거리에서 섭외하는 것도 가능하다, .

모또 오토바이 택시 모또는 여행자가 직접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 기사가 딸려있는 것을 말

(a) ( ) :

한다 보통 여행자는 뒷자리에. 1인이 탑승할 수 있다 비용은. 1일 5~7$ 정도가 기본적이다 상승의 여지( 있음). 롤루오스 유적군이나 반테아이 쓰레이 등 먼 거리를 갈 경우 추가 요금(2~5$ 정도 추가 이 발생) 된다 기사는 기본적으로 가이드를 할 수 없지만 영어로 소통이 가능하다면 이동 간에 여러 얘기를 주. , 고받을 수도 있다.

택시 가장 편리한 교통 수단이다 다만 한국과 같은 미터 택시는 아니며 일반 승용차와 별반 차이가

(b) : . ,

없다 에어컨이 시원스럽게 나오며. 4인이 함께 탑승할 수 있다 비용은. 1일 20~30$ 정도이다 그러나. 각자 분담하면 부담이 줄어들 것이다.

툭툭 오토바이 뒤에 인력거를 단 형태의 교통수단이다 인이 탑승 가능하며 일 정도의 비용

(c) : . 2~3 1 10$

이 든다 에어컨 시설은 없으나 앙코르 유적을 운치있게 즐길 수 있다. .

버스 버스는 주로 단체 관광객을 위한 교통수단이다 기본적으로 숙소에서 섭외하거나 현지 여행사에

(d) : .

문의하면 된다 미니버스의 경우에는 하루. 35$ 정도이다 반면 대형 버스는 유적의 안전을 위해 최근에. 는 운행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대여 렌트 가까운 거리는 자전거를 대여 렌트 해서 이용해도 되지만 먼 거리는 상당히 힘들 것이다

(e) ( ) : ( ) .

대여 비용은 1~3$ 정도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전동 자전거도 가능하며 대여 비용은. 4$ 정도라고 한다. 오토바이도 대여 가능하나 도난의 위험이 있다 어쨌든 대여시에는 신분증을 맡기는 등 신분 보증이 필. 요하다 참고적으로 차량을 대여해서 직접 운전을 할 경우 주캄보디아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확인을 받. , 은 후 캄보디아 정부로부터 적법한 절차를 거쳐 발급을 받아야 한다 국내 또는 국제운전면허증은 원칙. 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

앙코르 유적 가이드 생략

(4) ( )

(8)

앙코르 유적 관람 일정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은 세계 최대의 거석 문화 유적이다 따라서 대충 둘러 보는 데에도 상당한 시일이 소. 요된다 상세히 보기 위해서는 적어도. 1주일은 투자해야 할 것이지만 여행자에게는 대부분, 3일 일정이 추천 되고 있다 물론. 3일 일정도 충분하지는 않지만 앙코르 와트와 앙코르 톰 등 주요한 곳을 둘러볼 수 있다. 여기서는 일반적으로 추천하는 일정을 소개함과 아울러 본 사이트 운영자가 추천하는 일정도 소개하기로 한 다 그러나 모든 추천 일정은 임의적인 것이므로 각자의 사정에 따라 자유롭게 조절해도 될 것이다. .

앙코르 유적 관람 일정 개관

(1) :

앙코르 유적 관람 일정을 소개하기 전에 먼저 어떻게 정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보통의 일정은 오전. 과 오후로 나뉜다 오전의 일정은. 07:00~08:00경에 시작하고 12:00 전후에 마무리하여 숙소로 귀환한다. 점심과 휴식을 취한 후에는 14:00경에 시작하여 17:00~18:00 전후에 일정을 마무리하게 된다 물론 일출을. 볼 경우에는 오전 05:00 전후에 출발하여 일출을 본 다음 숙소로 돌아와서 조식을 먹고 오전 일정을 시작하 게 된다.

그런데 오전 일정을 마무리하고 숙소로 귀환하는 것이 의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날씨가 더운 나라인. 만큼 중간에 쉬어주는 것이 타당하다 물론 기사와 협의하여 숙소로 귀환하지 않고 유적 주변에서 식사를 하. 는 등의 일정을 보낼 수도 있다 아울러 기사의 식사 문제도 고려될 수 있을 것인데 기본적으로 점심 식사. , 를 하기 위해 숙소로 귀환하는 경우라면 신경쓰지 않아도 무방하다 원래 교통편의 섭외 비용에는 기사의 식. 사 비용은 포함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일출과 일몰 외에는 대부분의 일정은 반나절 일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반나절 일정을. 적절히 배분하면 자신만의 멋진 일정을 정할 수 있다 물론 아래의 소개 내용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것이며. 절대적인 것은 아니므로 착오없기 바란다.

참고적으로 일출 장소는 앙코르 와트가 대표적이며 프레 룹 쓰라 쓰랑 프놈 바켕 등에서도 가능하고 일몰, , , 장소는 프놈 바켕 앙코르 와트 프레 룹 등이 대표적이다 일출의 경우에는 각 일정 중 편한 날을 골라 새, , . 벽에 다녀오면 될 것이고 일몰은 유적 관람을 마무리하면서 자연스럽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외에 지, . 뢰 박물관이나 왓 트메이 킬링필드 희생자 유골를 봉안한 사원( ), 전쟁박물관 등은 여유 시간에 다녀오면 될 것이다 또한 압사라 댄스 관람은 원하는 날의 저녁에 넣어두면 된다. .

가 앙코르 유적 입장권으로 가능한 반나절 일정 유적 중심) ( ) :

관람할 유적 참고사항

1 롤루오스 유적군 롤레이( , 바콩, 프레아 코)

초기 유적이라는 의미가 있으나 규모가 작고 관람 시간도 적게 걸린다 보통 짧은 일정인 경우에는 이곳을 제외하거나 또는 마지. 막 날에 일정을 넣어두고 유동적으로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방문. 시간은 오전 오후 상관없다 기타, . “프레이 몬티 를 추가 방문하” 는 것도 가능하다 혹은 시간이 남는다면 시장 등 현지인들의 삶. 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방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2 앙코르 와트 프놈 바켕 대표적인, ( 일몰 장소)

앙코르 와트는 방대한 규모이므로 장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프놈. 바켕에서 일몰을 보고자 한다면 오후 일정이 적당하다 물론 앙코. 르 와트에서도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

3

박세이 참크롱, 앙코르 톰 남문, 앙코르 톰 바욘( , 바푸온, 피메아 나카스, 코끼리 테라스, 나왕(癩

의 테라스 등

) )

오전 오후 모두 가능하다 위의, . “앙코르 와트 프놈 바켕, ” 일정 과 묶어서 하루 일정을 만든 경우라면 오전 일정으로 넣어두면 될 것이다 그리고 앙코르 톰 내의 유적은 왼쪽에 언급한 곳 외에. 도 “왕궁 프레아 피투 클레앙 프레아 팔릴라이 텝 프라남 프, , , , , 라삿 수오르 프랏” 등도 있으므로 시간적인 상황에 따라 유동적 으로 추가 여부를 결정하면 될 것이다.

(9)

나 앙코르 유적 입장권이 없어도 가능한 일정 반나절 혹은) ( 1일 소요) :

관람할 유적 참고사항

7 톤레삽 수상가옥 마을, 프놈 크 롬

아시아 최대의 호수인 톤레삽의 방문은 색다른 경험이 될 수 있 다 일정이 여유롭지 못한 경우에는 유적 일정을 축소해야 할 것. 이다 오후에 방문한다면 일몰 감상도 가능하다 프놈 크롬은 톤. . 레삽 근처에 있는 유적이다 반나절 일정으로 충분하다. .

8 서( )西 바라이 서 메본( ), 악욤

서 바라이(West Baray)는 인공 호수이다 동. ( )東 바라이가 땅으로 메워져 있는 것과 달리 현재에도 물이 차 있다 별도의 입장권은. 필요없다 바라이 내. ( )內의 사원인 서 메본은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악욤은 서 바라이 아래에 있는 사원이다 반나절 일정으로. . 충분하다.

9 프놈 쿨렌

프놈 쿨렌은 캄보디아에서 신성한 장소 중의 하나이다 별도의 입. 장료(20$)를 징수하고 있다. 씨엠립 시내에서 60㎞ 정도 떨어져 있으므로 하루 정도 투자해야 한다 크발 스페안과 연계하여 다녀. 와도 될 것이다. 그런데 과도한 입장료에 비해 볼거리가 없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캄보디아인들에게는 매우 신성한 장소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10 벵 메알레아 코 케르,

외곽 지역의 유적이다 짧은 일정인 경우 방문을 고려하기에는 힘. 들 것이다 반나절 이상에서 하루 정도를 예상해야 한다 두 곳을. . 연계하여 다녀오는 것도 가능하다.

다 기타 참고사항) :

앙코르 유적 입장권은 1일권, 3일권, 7일권만 판매하고 있다 그런데. 3일 이상 관람하고자 할 경우에는 3일 권을 끊어야 할 지 아니면 7일권을 끊어야 할 지 잘 판단해야 할 것이다 즉 위의 일정 중에서 일반적인 앙. 코르 유적 입장권 없이 관람할 수 있는 곳도 있기 때문이다.

앙코르 유적 관람 추천 일정 일 일정

(2) (3 )

앙코르 유적 관람은 하루만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는 1주일 이상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짧은 여행의 특. 성상 3일 일정이 추천되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반나절 일정을 원하는대로 배치하면 손쉽게 일정을 만들 수. 다.

4 프레아 칸 네악 페안 타 쏨 동, , , 메본 프레 룹 일몰 장소 ( )東 , ( )

오전, 오후 모두 가능한 일정이지만 프레 룹에서 일몰을 보고자 한다면 오후 일정이 권장된다.

5 반테아이 쓰레이 반테아이 쌈레, , 크발 스페안

반테아이 쓰레이는 먼 거리에 있기 때문에 대부분 오전 일정이 권장된다 다녀오는 길에 반테아이 쌈레를 관람하면 된다. . 크발 스페안은 반테아이 쓰레이에서 30분 정도 더 가야한다 여. 유 있는 일정을 원한다면 반테아이 쓰레이와 반테아이 쌈레만 방 문하고 빡빡하기는 하지만 크발 스페안까지 둘러볼려면 오전 일, 찍 출발하면 될 것이다 혹은 크발 스페안은 프놈 쿨렌과 연계하. 여 방문해도 될 것이다.

6

승리의 문 톰마논 차우 사이 테, , 보다 타 케우 타 프롬 쓰라 쓰, , , 랑, 반테아이 크데이, 프라삿 크 라반

오전 오후 모두 가능하다 또한 역순으로도 관람하는 것이 가능, . 하다. 그리고 중요하거나 꼭 둘러봐야 할 유적, 예를들면 타 케 우 타 프롬 쓰라 쓰랑 위주로 관람하고 앙코르 와트에서 일몰을, , 보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10)

가 일반적인 앙코르 유적 관람) 3일 일정 (★★★) :

일정 구분 관람할 유적지

일째 1

오전

경 숙소 출발 박세이 참크롱 앙코르 톰 남문 바욘 바푸온

07:00~08:00 → → → → →

피메아나카스 → 코끼리 테라스 → 나왕의 테라스 기타 주변의 유적 감상( ) → 숙소로 귀환 중식( )

오후 14:00경 숙소 출발 → 프레아 칸 → 네악 페안 → 타 쏨 → 동( )東 메본 → 프레 룹 일몰( 감상) → 숙소로 귀환 저녁에 압사라 댄스 관람( )

일째 2

오전 05:00경 숙소 출발 → 앙코르 와트에서 일출 감상 후 숙소로 귀환 → 조식 → 반테아이 쓰레이 → 반테아이 쌈레 → 숙소로 귀환 중식( )

오후 14:00경 숙소 출발 → 앙코르 와트 → 17:00경에 출발하여 프놈 바켕으로 이동 일몰, ( 감상) → 숙소로 귀환

일째 3

오전 07:00~08:00경 숙소 출발 → 톰마논 → 차우 사이 테보다 → 타 케우 → 타 프롬 → 쓰라 쓰랑 → 반테아이 크데이 → 프라삿 끄라반 → 숙소로 귀환 중식( )

오후 오후 일정은 롤루오스 유적군이나 톤레삽 나머지 유적 가운데서 선택 다만 톤레삽, . 방문을 우선시한다면 마지막 날이 아닌 둘째 날이 적절.

나) 운영자 추천 3일 일정 ( ) :★

일정 구분 관람할 유적지 진한 부분은 추천 혹은 필수( )

일째 1

오전

롤루오스 유적군 롤레이 프레아 코 바콩( , , ), 신시장(Psar Leu)과 구시장(Psar Chaa) 방문 롤루오스 유적군은 앙코르 초기 유적으로 씨엠립 시내 남동쪽에 위치해 있다 거리가 약

( .

간 멀기 때문에 기본 비용에서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화려한 유적은 아니지만 초기 유적. 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대다수의 여행자들은 웅장하고 화려한 앙코르 와트나 앙코. 르 톰을 관람한 후에 마지막으로 이곳을 찾게 되는데 별로 감흥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 유적 관람에 있어서는 화려하지 않은 것부터 봐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는 본인의 원칙상 이곳부터 관람하기를 추천한다 다만 유적의 규모는 매우 작기 때문에 관람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남는 시간에는 시장을 둘러보면서 현지인의 삶을 돌아보는 것도 의. 미가 있을 것이다.)

오후

앙코르 와트, 프놈 바켕 일몰 장소( )

오후 일정은 부터 시작된다 앙코르 와트는 규모면에서 볼 거리가 아주 많다 최소

( 14:00 . .

한 3시간은 투자해야 한다 관람이 끝나면. 17:00경에 근처의 프놈 바껭으로 이동하여 일 몰을 감상하게 된다 만약 일출을 볼 예정이라면 새벽. 5시 경에 출발하여 앙코르 와트나 프놈 바켕에서 감상하면 된다.)

일째 2

오전

박세이 참크롱, 앙코르 톰 바욘 바푸온 피메아나카스 코끼리 테라스 나왕의 테라스( , , , , ) 박세이 참크롱은 앙코르 톰 남문 바로 앞 왼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규모가 작아서 많은 (

사람들이 지나치는 곳이다 앙코르 톰은 한 변이. 3㎞에 달하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총 5개의 문이 있다 여행자들이 제일 처음 도착하는 곳은 바로 남문이며 오전에는 수많. , 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좀 여유를 즐기고자 한다면 오후 일정으로 변경하면 좋을 것이다. . 앙코르 톰의 중심부에는 바욘 등의 중요한 유적이 있으며 여러 곳에 산재해 있는 소규모, 유적은 여유 시간을 고려하여 관람 여부를 유동적으로 선택하면 된다.)

오후

프레아 칸 네악 페안 타 쏨 동, , , ( )東 메본 프레 룹 일몰, ( )

이 코스는 앙코르 톰을 지나 시계 방향으로 관람하게 된다 프레 룹에서는 또다시 일몰

( .

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11)

앙코르 유적 관람 일정 기타

(3) ( ) :

일반적으로 추천되는 3일 일정보다 여행 일정이 짧은 경우에는 취사선택의 문제가 발생한다 결론적으로는. 자신이 원하는대로 선택하면 될 것이다 중요도가 높다고 생각되는 것은. “앙코르 와트 와” “앙코르 톰 내의 주요 사원 특히 바욘 일 것이다 아울러 프레아 칸과 타 프롬 그리고 반테아이 쓰레이도 결코 놓쳐서는 안( )” . , 될 것이다.

만약 1일 일정의 짧은 일정이라면 앙코르 와트와 앙코르 톰 내의 사원 위주로 관람하도록 한다. 2일 정도의 일정이라면 위에서 중요하다고 언급한 사원 위주로 방문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새벽과 저녁에는 일출과 압. 사라 댄스 관람도 빠뜨리지 않도록 하면 된다 아울러. 7일 정도의 여유로운 일정이라면 3일 내지 7일 입장 권으로 가능한 유적을 먼저 둘러 본 다음 외곽 지역의 주요 유적을 느긋하게 둘러보면 될 것이다, .

일째 3

오전

반테아이 쓰레이 반테아이 쌈레,

반테아이 쓰레이는 씨엠립에서 정도 떨어져 있다 기본 교통 비용에서 추가 비용이

( 12㎞ .

발생하며 이동하는데, 1시간 정도 걸린다 가는 동안 캄보디아의 전원 풍경을 즐길 수 있. 다.)

오후

프라삿 크라반 반테아이 크데이 쓰라 쓰랑, , , 타 프롬 타 케우,

오후 일정은 앙코르 와트를 지나 시계 반대 방향으로 관람하는 코스이다 물론 역방향도

( .

상관없다 저녁에는 레스토랑에서 압사라 댄스를 관람하는 일정을 넣어두면 될 것이다. . 일정에 여유가 있다면 하루를 더 늘려 프놈 쿨렌 크발 스페안 벵 메알레아 유적도 방문, , 해 볼 만하다 이들 유적은 씨엠립과는 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반나절에서 하루 정. , 도는 투자해야 한다 그리고. 3일 일정 중 중요한 유적만 둘러볼 예정이라면 롤루오스 유, 적군은 제외하는 대신에 톤레삽 일정을 넣어도 될 것이다 그러나 톤레삽 일정이 불가능. 하면 서(西) 바라이 서 메본 로 대체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 .

(12)

캄부자 왕국의 연대기

캄부자 왕국의 연대기는 여행자들에게 있어서는 단순한 숫자의 열거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 적 설명을 참조하면서 재위했던 왕을 살펴보면 앙코르 시대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참. 고적으로 캄부자(Kambuja), Kambujadesa, Campuchea, Cambodia, Khmer, Angkor, Cambodge 등은 모 두 캄보디아 민족 또는 국가를 뜻하는 말이다.

아래의 내용은 서규석씨의 “신화가 만든 문명 앙코르 와트 리북 에서 일부 발췌하였고 외국의 자료도 일부”( ) 대조하였다 그런데 연구 자료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도 있다 가급적 왕실 자료를 기초로 참조하는. .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연대가 거의 확실한 자야바르만. 8세까지만 소개하기로 하며 자야바르만 파라, 메슈바라 즉위 이후인 1327년부터는 캄보디아의 사료는 부족하므로 제외하기로 한다.

왕명 프레룹 비문 스독칵톰 비문 기타 비문 왕실 자료

1 자야바르만 2세 802-850 802-850 802-834

2 자야바르만 3세 850-877 850-877 834,850 834-877 3 인드라바르만 1세 877-889 877-889 877-889

4 야소바르만 1세 889-910 889-900 889-912

5 하르샤바르만 1세 910-925 900- 910,912 912-922

6 이샤나바르만 2세 925-928 -928 925-928

7 자야바르만 4세 921-942 921-942 928 928-942 8 하르샤바르만 2세 942-944 942-944 941,942 942-944 9 라젠드라바르만 2세 944-968 944-968 944-968 10 자야바르만 5세 968-1001 968-1001 968 968-1001 11 우다야디티야바르만 1세 1001-1002 1001 1001-1002

12 자야비라바르만 1001 1002-1011

13 수리야바르만 1세 1001-1049 1002-1050

14 우다야디티야바르만 2세 1049- 1050-1066

15 하르샤바르만 3세 1080-1113 1066-1080

16 자야바르만 6세 1107-1113 1080-1107

17 다라닌드라바르만 1세 1107-1113

18 수리야바르만 2세 1113-1150

19 다라닌드라바르만 2세 1150-1160

20 야소바르만 2세 1160-1165

21 트리부바나디티야바르만 1165-1181

22 자야바르만 7세 1181-1219

23 인드라바르만 2세 1219-1243

24 자야바르만 8세 1243-1295

하략

( ) 1432-?

(13)

앙코르 유적 건축 연대표

앙코르의 건축물은 시대에 따라 변화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각 건축물을 개별적으로 파악하기보다. 는 전체적으로 조망해 볼 필요가 있다 아래에서는 재위했던 왕을 기준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추후 건축 양. . 식에 따른 구분도 제공할 예정이다.

그런데 아래의 내용 중 일부 연대는 다른 자료와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이는 명확한 연대가 확인되지 않은. 경우에 학자에 따라 견해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참고시 주의하기 바란다, . .

왕명 왕실 자료 주요 건축물

인드라바르만 1세 877-889

롤루오스(Roluos) 지역에 인공호수인 인드라타타카 현재 물이 말라( 기능 상실 건설 프레아 코) . (Preah Ko) 건설(879) 및 바콩(Bakong) 건설(881).

야소바르만 1세 889-912

인드라타타카 한 가운데에 롤레이(Lolei) 건설(893). 프놈 바켕(Phnom

사원 건설 프놈 복 과 프놈 크롬

Bakheng) (900). (Phnom Bok) (Phnom 에도 사원 건설 야소다라타타카 현재의 바라이 건설

Krom) . ( 東 ) .

하르샤바르만 1세 912-922 프라삿 크라반(Prasat Kravan) 건설(921). 박세이 참크롱(Baksei 건설 시작 라젠드라바르만 세 때인 년 완성

Chamkrong) ( 2 947 ).

자야바르만 4세 928-942 수도를 코 케르(Koh Ker) 지역으로 옮김 왓 푸. (Wat Phu, 현재의 라오스 남부에 위치 건설) .

라젠드라바르만 2세 944-968

수도를 다시 야소다라푸라로 이전 하르샤바르만. 1세 때 건설 시작한 박세이 참끄롱(Baksei Chamkrong) 완성(947). 동 메본(East Mebon) 건축(952). 피메아나카스(Phimieanakas) 건축 수리야바르만( 1세때 성문과 성벽 완성). 프레 룹(Pre Rup) 건축(961). 쓰라 쓰랑(Sras

반테아이 쓰레이 건설 왕 교체시기에

Srang), (Banteay Srei) (967~968,

건설). 클레앙(Kleangs) 목조로 건축 자야바르만( 5세와 수리야바르만 세때 사암을 이용해 재건축

1 ).

자야바르만 5세 968-1001 타케우(Ta Keo) 건설 시작 수리야바르만( 1세 완성).

수리야바르만 세1 1002-1050

자야바르만 5세 때 시작된 타 케우(Ta Keo) 완성. 프레아 비헤아르

프놈 치소르 건설 서 바라이 축조

(Preah Vihear), (Phnom Chisor) . ( )西 시작 우다야디티야바르만( 2세에 의해 완성).

우다야디티야바르만 세

2 1050-1066 바푸온(Baphuon) 건설(1060). 서( )西 바라이 완성.

수리야바르만 2세 1113-1150

왕코르 와트(Angkor Wat), 톰마논(Thommanon), 차우 사이 테보다(Chau Say Tevoda), 프레아 팔릴라이(Preah Palilay), 프레아 피투(Preah Pithu), 반테아이 쌈레(Banteay Samre), 벵 메알레아(Beng

건축 Mealea) .

자야바르만 7세 1181-1219

타 프롬(Ta Prom) 불교 사원 건설(1186. 사후에 힌두교 사원으로 개조). 프레아 칸(Prea Khan) 건설(1191). 바욘(Bayon) 사원 건설. 앙코르 톰(Angkor Thom) 건축 참파군의 침략( (1177 )년 으로부터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왕도를 요새화). 코끼리 테라스(Elephant Terrace), 나왕(癩王)의 테라스(Leper King Terrace), 네악 페안(Neak Pean), 타 쏨(Ta som) 건축 쓰라 쓰랑. (Sras Srang) 재건 반테아이.

크데이(Banteay Kdei), 반테아이 츠마르(Banteay Chmar) 건축.

(14)

앙코르 유적 지도

앙코르 유적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지도를 지참하는 것이 필수적일 것이다 가장 현명한 방법은 캄보디아 여. 행 가이드북을 구입하여 참조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캄보디아 현지에서도 무료로 지도를 구할 수도. 있다. 다만 인터넷에서 미리 지도를 구하고자 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본 사이트에는 [캄보디아 자료 실] 본 문서에는 맨 끝에 첨부( )을 참조하기 바란다 기타 캄보디아 지도와 관련하여서는. [캄보디아 일반 정보] 메뉴 하위의 [캄보디아 지도] 메뉴 또한 참조하기 바란다.

그리고 캄보디아 관광부 청( ) 서울사무소의 한글 사이트와 현지에서 Cambodia Visitors Guides를 출판하여 무가지로 배포하고 있는 Canby Publications Co., Ltd(http://www.canbypublications.com 의 웹사이트에서) 도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다 이 외에. The Angkor Guide(http://www.theangkorguide.com 사이트에서는 예) 전의 유적 지도를 다운받을 수 있다.

(15)

앙코르 와트의 눈물

▣ 이 글은 2003년 7월 12일에 발행된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 한겨레신문사 에서 인용한 글이다 원본 글) . 은 2001년 5월 29일 시사주간지 한겨레' 21' 제361호에 실렸던 것인데 책을 내면서 글을 약간 손질한 것으, 로 판단된다 푸 키아. (Puy Kea)씨는 캄보디아 내전 중 일본 공산당이 발행하는 일간신문 아카하타(Akahata) 프놈펜 지국 기자로 활동했으며 일본 [교도통신] 프놈펜 특파원으로 일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캄보디아 고대유적과 문화는 모조리 파괴되고 말았다 그 찬란했던 조각들. 도 웅장했던 사원들도 모두 깨지고 팔려나갔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는 유물 도난과 불법, . 거래는 캄보디아 사회를 파괴시켜 가고 있는 주범 가운데 하나다.

언제부터 캄보디아 유물과 유적들이 도굴당하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학, 자들 사이에는 1863년 프랑스 식민통치자들로부터라는 데 이견이 없다 그동안 도굴 현장을. 찾아다녔던 문화예술부 차관 미첼 트라넷은 거리낌없이 말해왔다. “유물 도난은 역사를 있는 자리에서 보지 못하고 어떻게든 자기 방에 옮겨놓고 자랑삼아야 적성이 풀리는 서양인들의 감상 태도와 동시에 자신들의 역사를 돌보지 않는 부패한 캄보디아 정치가들이 공모한 결과다.” ‘자리 같은 데 연연하지 않는다는 미첼은’ 정부를 사정없이 몰아붙였다.

돈에 눈 먼 시민들만 탓해서는 도굴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

다 정부가 역사관을 갖고 심각하게 이 사안에 매달려야 한다. .”

훈센 총리도 유물 카드 를 빼들고 국내외에 핏대를 올린 바 있‘ ’ 다.

사진 / 훼손된 앙코르 유적 캄보디아 유물 유적은 프랑스 식. ·

민통치 기간보다 오히려 1970년대에 조직적 대량파괴를 당했다.

유물 도난은 부자 나라들의 조직적인 횡포다 해당국들은 불법 도굴과 판매를 법으로 금지하고 강탈해간 유

“ .

물들을 반환해야 한다.” 2001년 3 , 60월 여 나라 대표들이 참석한 프놈펜 유네스코회의에서 훈센 총리가 강 조했지만 돈 많고 힘센 국제사회로부터 냉담한 반응만 얻었다 나라 안에서도 별 신통한 소리를 듣지 못했, . 다 시민들 가운데 누구도 정부가 진정으로 도둑맞은 유물들에 대한 반환과 복구를 위해 노력해 왔다고 믿는. 이들이 없었던 탓이다.

년 월 추안 리크파이 타이 총리가 캄보디아를 방문했을 때도 훈센 총리는 도난 유물 건을 상정해서 반 2000 6

환협정을 끌어냈다 그러나 아무것도 되돌아온 게 없다 여기서 캄보디아의 유적 파괴와 유물 도난의 특징이. . 하나 드러난다 전통적으로 이 악습에는 인접국 타이가 중개상 노릇을 해왔다는 점이다. ‘ ’ .

리버시티 로 알려진 방콕 골동품 가게들이 거래하는 유물 수십만 점이 캄보디아산 불법 도굴품이라는 사실

‘ ’

을 알 만한 이들은 모두 알고 있다 타이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간단하게 해치울 수 있는 일이라고 국제사회. 가 믿어왔다. 실제로 두 번에 걸쳐 캄보디아 당국이 타이로 향하던 불법 도굴품을 압수한 결과 압사라상과 가루다상 같, 은 귀중한 유물들이 20톤도 넘게 쏟아져 나와 당국을 경악케 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그동안 타이 당국이 반환한 유물은 지난 1996년과 년 국경 부근 반테이 츠마르 사원에서 무장조직이 강탈 1997

해갔던 유물 가운데 122점이 전부다.

사진 / 되찾은 유물들

(16)

문이다 캄보디아도 타이도 모두 돈이 문제다. , .” 이래서 미첼은 인접국이 지닌 상호 협력과 공존이라는 대의 명분을 매우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현재 캄보디아 현실을 놓고 보면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도난품들에 대한 역사적 자료나 기록이 없다는 점이 다 정부도 시민들도 불법 도굴과 불법 유통으로 사라진 유물들에 대한 반환 의지를 높이고는 있지만 정작. , , 그 유물들을 조사할 만한 사업자금이 없다는 게 또 다른 문제다 이러다 보니 캄보디아 정부는 예산을 쥐고. , 흔드는 일본에 유물 복구와 조사 사업까지 모두 맡겨버린 상태다 도난 유물 명단을 만들어야 하는데 뜻있. , 는 시민들 사이에서는 과연 이런 일을 일본에 맡겨놓는 게 옳은지를 놓고 말들이 많다. 2차대전을 전후해 아시아 유물들을 훔쳐간 일본에 대한 불신감 때문이다.

아무튼 30년 내전을 치르고 난 캄보디아에 남은 것은 폐허뿐이다. 1,200만 인구 가운데 36%가 극빈에 허덕 이는 판에 하루 종일 사회복구와 경제개발 구호만 난무한다 정부 예산을 모조리 원조에 기댄 실정이니 별로.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하나 있다면 앙코르와트를 내세운 관광산업 정도를 캄보디아 자손심으로 떠. , 올려볼 만할까?

최근 캄보디아를 방문한 고촉통 싱가포르 총리도 눈치를 챘는지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 “캄보디아가 중공업 개발로 경쟁하겠다는 건 불가능하다 관광산업에 초점을 맞춰라. .”

그렇잖아도 캄보디아 시민들은 앙코르와트를 비롯해 전국에 산재한 1,080개 유적지들을 찾아와 연간 1억 2 천만 달러를 뿌리고 가는 50만여 명의 외국 관광객을 자랑스럽게 여겨 왔다 그래서 시민들은 지금처럼 유. 물들이 계속 도굴되고 팔려나간다면 캄보디아에 미래가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캄보디아가 먹고살기 위. 해서라도 유적 훼손과 도굴을 막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시민들 생각과 달리 현실은 만만찮다 최근까지도 앙코르와트를 찾는 관광객들이 알게 모르게 현지로. 부터 예술품 조각들을 구입해 가고, ‘러시안 마켓 으로 잘 알려져 있는 프놈펜 중심가 투올톰퐁 시장에만도’ 개에 이르는 골동품 판매상들이 버젓이 유물들을 팔고 있다 왕궁 근처에 자리잡은 약 여 개 골동품

115 . 30

가게들도 관광객을 유혹해 왔고.

년 미만인 것들만 팔고 있다 투올톰퐁 시장 골동품 가게 주인의 말을 믿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20 .” .

문화예술부 법령을 보면 “70년 미만인 조각품들은 팔아도 된다 고 명시해 놓았지만 이 역시 눈 가리고 아” , ‘ 웅 일 뿐이다’ . 70년 된 것인지 100년 된 것인지를 구분해낼 혜안을 갖춘 전문가가 몇이나 되겠는가?

유물반환운동? 오늘도 팔아먹기에 정신 나간 사람들과 어떻게든 손에 넣겠다고 몸살 앓는 사람들이 득실거 리는 세상에서 유물반환운동이란 말은 그저 좀 고상하게 들리는 구호일 뿐이다 자본가들이 과연 캄보디아로. 부터 유물 획득 욕망을 멈출 수 있을까? 강대국들은 강탈해 간 캄보디아 유물을 반환할 것인가? 캄보디아 정부가 진정으로 유물 반환을 요구할 수 있을까? 또 먹고살겠다는 캄보디아 시민들은 도굴 유혹으로부터, 손을 끊을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캄보디아 땅에선 이런 의문만 나돌 뿐 아무런 대꾸도 없다, .

앙코르와트가 캄보디아만의 유적이 아니라 인류의 유산이라는 사실을 국제사회가 깨닫는 일이 그래서 도굴, , 과 판매에서 손떼는 일이 결국 캄보디아 유적과 시민을 동시에 살리는 길이다.

(17)

앙코르 유적 건축 소재

앙코르의 건축 소재로는 라테라이트(Laterite), 사암(Sandstone), 벽돌 스터코, (Stucco), 목재 금속 등이 주, 로 사용되었다 아래에서는 여행자를 위해 간략히 소개하기로 한다 보다 상세한 내용을 원한다면 관련 전문. . 서적을 참조하기 바란다.

앙코르 유적 건축 소재와 관련하여서는 도올 김용옥의 [앙코르와트ㆍ월남가다 라는 책에서 일부 인용 여타] ,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재구성하였다 추후 다른 자료를 더 보충할 예정이다. .

건축 소재 설 명

1 라테라이트 (Laterite)

우리말로는 홍토라고 하는데, 철분함량이 높은 진흙으로 붉은 황토빛을 띤다. 그늘과 햇빛에 번갈아 말리게되면 돌처럼 매우 단단하게 굳게 된다 크메르인들. 은 이렇게 만든 벽돌을 건물의 바닥재나 기초재 내면벽으로 쓰거나 보이지 않, 는 공간을 채우는데 사용했다.

2 사암

(Sandstone)

프놈 쿨렌에서 채취한 사암은 내구성이 강한 보편적 소재였다 주로 정교한 조. 각을 요구하는 문틀 등에 사용했다 타 케우 사원은 전체를 사암으로 만든 최초. 의 사원이다. 사암은 짙은 회색으로부터 핑크빛 홍조를 띠는 것, 초록색 빛이 나는 것 등 여러 종류가 있다 프레아 코의 사암은 회색이다 반테아이 쓰레이. . 사원의 경우에는 홍조를 띠고 있어 무척 아름답다 초록색 사암은 더 단단하고. 고운 최상급의 돌로서 청록의 반질반질한 빛이 나는 매우 희귀한 것이다.

그런데 공급량이 제한되어 있는 이 사암을 무분별하게 사용하여 자야바르만 7 세(1181-1219) 무렵에는 고갈되고 만다 그 뒤에 크메르 제국도 급격히 쇠락하. 는 운명을 맞게 된다.

3 벽돌

벽돌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붉은 벽돌가 큰 차이가 없다 벽돌과 벽돌을. 쌓아 올라가는 과정에서 크메르인들은 현재의 시멘트 역할을 하는 석회(mortar) 를 쓰지않고 여러 식물의 수액을 사용해서 쓰는 독특한 접착제를 개발했다고 한 다 다만 벽돌은 돌 소재에 비해 내구성에는 한계가 있다고 한다. .

4 스터코

(Stucco)

스터코는 벽돌로 쌓아올린 벽을 장식하기 위하여 사용한 것으로 소석회(slaked

고운 모래 타마린드 열매 슈가 팜 개미집 점토

lime), , (tamarind) , (sugar palm),

등을 반죽하여 만든 소재이다 이것을 벽돌 위에 발라 그것으로 조각을 하는 것. 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스터코벽은 탈락하여 버렸지만 프레아 코의 일부 벽은 아직까지도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5 목재 금속,

사원의 내부 장식에는 목재와 금속이 쓰였다 다만 목재로 사용된 것들은 세월. 을 견디지 못해 그 원형을 찾을 수 없는 것들도 많다 금속은 동 청동 철이. , , 쓰였다 주달관의. [진랍풍토기 에 의하여 유추하자면 외부장식에도 금이나 청동] 이 많이 쓰였을 것이다.

6 도기 타일 요즈음의 목욕탕 타일과 같이 사각형 형태로 생긴 문양이 일정한 도기 타일도, 발견되고 있다 주로 사원의 지붕 안쪽 문양은 연꽃 등의 문양이 사용되었다. .

(18)

앙코르 유적 주요 사원 설명

본 자료에서 소개하는 앙코르의 주요 사원 설명은 여행자를 위해 간략히 정리한 것이다 상세한 내용은 전문. 서적을 참조하기 바란다 짧은 여행 기간동안 가볍게 참조할 경우에는 일반적인 가이드북으로도 충분할 것이. 다 본 자료의 내용은 서규석씨의. “신화가 만든 문명 앙코르 와트” 초판의 부록 및 국내외 관련 자료 등을 참조하여 작성하였다. 참고적으로 서규석씨의 책은 초판(2003년 과 달리 개정판) (2006 )년 에는 본 메뉴에서 인용한 해당 부록은 제외되어 있다 그리고 아래의 내용과 명칭 중 일부는 본 운영자가 수정을 하였거나 보. 충하였다 따라서 부정확한 것도 있을지 모르므로 유의하기 바란다. .

앙코르 와트(Angkor Wat)

앙코르 시대의 역사적 자료는 산스크리트어나 고대 크메르어, 소승불교의 경전을 기록하는데 사용된 팔리 어로 비문에 새겨저 있으나 발굴된 자료가 많지 않고 기록된 내용 또한 부분적이고 단편적이며 한정적 (pali)

인 것들인 데다 지배층에 국한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자료적 한계 속에서도 숲속에 잠자던 앙코르 와. 트를 세계 속에 알린 것은 18세기 이후 동양문화를 탐험하려는 프랑스의 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프랑스. 의 동양학자 1세대의 선구자인 아벨 레뮈사(Abel Remusat)는 왕립도서관에서 중국 관련 목록을 편찬하면서 크메르의 고대사 연구에 중용한 단서를 찾아냈는데 그것이 바로 주달관의 견문록, <진랍풍토기 였다 그는> . 이 기록을 프랑스어로 번역하였는데 초창기 동양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가치를 제공했다 이후 폴 펠리오. , 조르쥬 세데스가 후속 연구를 이어받아 캄보디아사 연구에 한 획을 긋게 된다.

앙코르 와트(Angkor Wat)는 수리야바르만 2 (1113~1150)세 가 비슈누신에게 바치기 위해 지은 사원이며 그 가 죽은 후에도 부분적으로 부조가 조각 되는 등 37년 이상의 세월 속에서 건축되었다 앙코르 와트는 남북. 의 길이가 1.3㎞, 동서 1.5㎞에 이를 만큼 광대한 피라미드형 사원이며 개방형으로 건축되어 좌우 대칭미와 뛰어난 시각성을 자랑한다 출입구가 서쪽을 향해 있고 건축의 중심축이 서 동으로 전개되어 있는 것도 특. ~ 징 가운데 하나이다.

앙코르 와트는 중앙에 있는 신전을 세 겹의 회랑(回廊)이 감싸고 있으며 바깥쪽에는 주벽(周壁)을 만들고 그 외부에 저수지 해자( ,垓字)를 배치했다 또 사원 안에. 40m의 작은 연못을 남쪽과 북쪽에 한 개씩 만들고 주, 벽을 4.5m의 높이로 쌓아올려 사원을 속세와 구분 짓는 공간 개념을 반영했다 저수지는 대양을 뜻하고 중. , 앙의 신전은 신왕(神王)의 권위를 상징한다.

앙코르 와트는 사면(四面)에 출입문이 있다 출입문은 주벽의 동 남 북에 각각 하나씩 있으며 정문의 서쪽. , , 에는 다섯 개나 된다 서쪽 정문의 출입구 가운데 두 개는 코끼리 부대와 기마 부대인 주력군이 출입할 수. 있도록 군사용으로 활용되었으며 나머지 세 개는 바라문을 비롯한 출입자들이 사용했다, .

앙코르 와트는 아름답고 웅장하지만 사원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가 없기로도 유명하다 이 때문에 앙코르 와. 트가 신들을 위한 사원인지 왕의 장제전인지 건축 용도를 둘러싸고 학자들간에 많은 논란이 제기되었다 캄, . 보디아의 전설에 의하면 앙코르 와트는 원래 왕궁이었으며 왕의 사후에는 묘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조르쥬, . 세데스는 앙코르 와트의 성격에 대해서 비뉴수신에게 바쳐진 신전이었으나 수리야바르만 왕의 사후에는 왕 의 묘가 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설에 의하면 앙코르 사원의 대부분이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 데 반해 앙. , 코르 와트는 서쪽을 바라보고 있어 그 이유로 묘지라는 설도 있다.

앙코르 왓의 회랑은 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중앙의 탑을 기준으로 장방형 형태에 세겹으로 둘러쌓여 있다.

중앙의 첨탑이 있는 회랑을 제 회랑 가운데 제 층의 회랑을 제 회랑 바깥에 있는 회랑을 제 회랑이라고1 , 2 2 , 3 한다 물론 세 개의 회랑 가운데 가장 뛰어난 시각성과 회화성을 자랑하는 것은 제 회랑이다 참고적으로. 3 . 앙 코르 와트를 소개하는 많은 책들은 바깥을 제 회랑 안쪽을 제 회랑이라고 부르고 있다 서규석씨는 만다라의1 , 3 ( 원리상 이를 반대로 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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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회랑3 의 부조 가운데 주요 장면은 대략 열 개 정도이다 제 회랑을. 3 田 형태로 분할하고 이를 서쪽 정면에 서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1) 쿠루평원의 전투 서쪽벽 남측문( ), (2) 시바신 남서쪽( 모서리), (3) 수리야바르만왕의 행진 남쪽벽 서측면( ), (4) 천국과 지옥 남쪽벽 동측면( ), (5) 유유바다 젓기(乳 동쪽벽 남측면 비슈누신과 아수라 동쪽벽 북측면 크리슈나와 아수라인 바나의 전투 북쪽

, ), (6) ( ), (7) (

海攪拌

벽 동측면), (8) 21명의 신과 21명읭 아수라 북쪽벽 남측면( ), (9) 비슈누신 동서쪽 모서리( ), (10) 랑카의 전투 서쪽벽 북측면 순이 된다

( ) .

제 회랑에서 제 회랑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수 십 개의 기둥이 서 있는 다주실3 2 (多柱室) 건물을 통과해야 한 다 이 곳이. 십자회랑이 다 제 회랑과 제 회랑 사이에 황금으로 덧칠한 기둥이 십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어서. 3 2 십자회랑이라 부르는 이 곳은 앙코르 와트에서 유일하게 넓은 공간이다 여기서부터 지상계가 끝나고 신의. 세계가 시작된다 역사적인 부조장면을 장식한 지상의 세계는 제 회랑에서 끝나며 십자회랑에서부터 비슈누. 3 신의 만다라산으로 올라가는 신의 세계가 시작된다.

제 회랑2 달이 뜨고 지는 것을 건축으로 표현한 곳이기 때문에 회랑 내부가 어둡다 우선 서쪽에는 하나의 창. 문만 있고 남쪽 75m 길이에는 9개의 창문이 나있다 반면 동쪽에는. 26 (개 북측 14, 남측 12 ),개 북쪽은 32 개의 창문이 나있다 이들 창문은 달의 주기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 회랑에는. . 1500여 명이 넘는 압사라 여, 신들이 조각되어 있어 또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중앙신전이 있는 제 회랑1 은 어두컴컴한 제 회랑과는 대조적으로 장엄한 곳이다2 . 제 회랑으로 올라가는 것1 또한 쉽지 않다. 70도로 경사진 중앙신전은 당시에 왕과 최고의 사제들만이 출입하도록 제한했을 만큼 성스 로운 곳이다 따라서 중앙탑을 오르는 데는 계단을 손으로 잡고 한발자국씩 움직여야 한다 즉 인간의 접근. . 을 쉽게 허용치 않는 곳이다 제 회랑은 우주의 중심 메루산 수미산. 1 ( ), 혹은 우유바다 젓기의 중심축을 상징 하며 비슈누신이 거주하는 장소다 이와 같은 상징은, . 12, 28, 108(54/54), 365 등과 같은 숫자를 통해서 풀이할 수 있다 중앙신전에는 네 개의 탑과 중앙탑이 있는데 이 중앙첨탑은 높이가 약. , 60m이다 프랑스 학( 자 나필리앙의 조사에 의하면 정확한 높이는 58.08m라고 한다). 이 곳이 신들이 거주하는 우주의 중심 메루 산이며 비슈누신이 강림하여 왕과 신이 일체화하는 장소이다 중앙신전은 새로운 왕이 등극할 때마다 엄숙, . 한 의식을 거행하여 국민들에게 신왕사상을 주입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곳으로부터 만다라 세계를 이. 루어 나가려 했다 만다라는 중앙에서 시작하여 바깥으로 세계를 구성해 간다 최고의 신이 사방과 주변의. . 신을 창조하여 만다라를 채워간다 즉 앙코르 와트는 바로 우주의 중심 메루산을 중심으로 우주적인 만다라. 를 이루고 바깥을 향해 시간과 공간을 채워가는 형식의 비슈누 사원이다.

메루산(Meru) : 대륙의 정 중앙에 있다고 하는 세계의 중심산 힌두교에서 메루산은. 8 4만 천 요자나(126

만㎞)의 정상에 인드라신을 비롯하여 주요 신들이 거주하는 성스러운 산으로 만다라산과 카일라사산 등 네 개의 봉우리가 감싸고 있다 소승불교에서는 수메루. (Sumeru)로 불리며 흔히 수미산(須彌山)으로 번역 된다 크메르의 사원은 메루산을 형상화하여 피라미드 형으로 짓거나 산 위에 짓는 것이 일반적이다. . 만다라(Mandala) : ‘에워싸다 는’ mand에서 유래한 만다라는 동서남북으로 문이 있는 불탑(stupa)의 평면

도에서 그 개념이 출발했다 만다라는 원 구. , (球), 차륜 등 완전무결과 무수한 원심을 가진 원을 상징한 다.

진랍(眞臘) : 점랍(占臘)이라고도 한다 진랍. (chenla, zenla)은 <수서(隨書)>에서 점랍은, <송사(宋史)>의

진랍전(眞臘傳)에서 나온다.

(20)

앙코르 톰(Angkor Thom) 안에 있는 유적

앙코르 톰은 1177년 참파군의 침략으로부터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왕도를 요새화하기 위해 자야바르만 7세 가 건축한 것이다 앙코르 톰에 높은 성벽을 세우고 다섯 개의 성문을 만들어 출입을 통제하는 (1181~1219) .

한편 도성밖에 환호(環濠, 해자 를 만들어 이중의 견고한 방어막을 만들었다 그 이후 앙코르 톰은) . 1431년 태국의 세력이 침입하여 도성을 함락시킬 대까지 2세기 동안 영광의 빛을 간직하였다.

앙코르 톰은 한 변이 3 ,㎞ 높이 8m의 라테라이트로 성벽을 쌓은 성곽 도시로 한 가운데에 국가 사원인 바 욘이 위치해 있고 바푸온을 비롯하여 왕궁 코끼리 테라스 나왕의 테라스 텝 프라남 프레아 팔릴라이 프, , , , , 레아 피투 클레앙과 같은 수많은 유적이 모여 있다, .

앙코르(angkor)는 산스크리트어로 왕궁 도시를 뜻하는 나가라(nagara)에서 파생된 단어로 도시국가 를 지칭‘ ’ 하는 말이며 톰, (thom)은 형용사 커다란 뜻으로서 앙코르 톰은 곧 대도시 국가 의 의미가 된다‘ ’ ‘ ’ .

앙코르 톰의 성벽에는 다섯 개의 성문이 있다 바욘 사원을 축으로 남문 동문 서문 북문이 있으며 왕궁. , , , 앞 광장에서 동쪽을 향해 승리의 문 이 하나 더 있다 정문은 남문 남대문 이며 동문은 사자‘ ’ . ( ) , ‘ (死者)의 문 으’ 로 불리었고 승리의 문은, 700㎞ 떨어진 참파로 향하는 출발점인데 자야바르만 7세의 영토 확장과 과거 앙 코르의 함락에 대한 복수의 의미가 깔려 있는 곳이다.

성문은 높이가 20m로 사암으로 축조되었으며 성문 꼭대기에는 약, 3m에 달하는 사면불(四面佛)로 조각된 관음보살상이 있다 또한 성문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다리 난간에는 좌우로. 54개의 석상(石像)이 일렬로 배열 되어 있다 이 조각은 앙코르 와트. (Angkor Wat) 회랑에 부조된 것처럼 힌두신화에서 신과 악마들이 장생불 사의 영약을 만들기 위해 바수키 뱀의 꼬리를 축으로 천년동안 우유바다를 휘젖는 장면을 상징한다.

라테라이트(Laterite) : 철분과 알루미늄을 함유하여 붉은색을 가진 홍토석 햇볕에 건조하면 시멘트 이상.

으로 재질이 단단하여 기둥이나 주춧돌로 많이 사용된다.

바수키(Vasuki) : 우유바다 젖기에서 신과 아수라가 바다를 회전시키는데 로프로 이용된 성스러운 뱀 세.

샤뱀(Sesa)으로도 불린다.

프레아(Preah) : ‘성스러운 존경하는 뜻의 형용사, ’ . Pra, Prah도 같은 뜻이다 프레아 산. (Preah San)은

승려 프레아 코, (Preah Ko)는 성스러운 소 프레아 칸, (Preah Khan)은 성스러운 칼을 뜻한다.

바욘 (a) (Bayon)

바욘은 앙코르 톰의 동서남북 각 대문으로부터 1㎞ 지점에 위치한 중심 사원으로 왕이 신봉하는 관음보살상 인 4면불(四面佛)을 총 196개나 조각해 놓았다 이 사원은 동쪽이 정문이며 제 회랑은 동서. , 1 160m, 남북

이며 회랑 중앙에 제 회랑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다 제 회랑 벽면에는 민중의 생활상 자야바르만

140m 2 . 1 , 7

세가 톤레삽에서 참파군을 물리치는 해전 장면이 부조되어 있다 특히 톤레삽에서 어망을 던져 고기를 잡는. 장면 시장에서 물건을 매매하는 장면 장기를 두거나 닭싸움과 개싸움하는 장면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장, , , 면 등 서민의 생활상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물론 왕비를 비롯한 궁중여인과 귀족들의 생활상도 있다. . 제 회랑은 동서2 80m, 남북 70m에 달하는 데 이 곳은 제 회랑과 달리 대부분 크리슈나 시바신 가루다를, 1 , , 탄 비슈누 신 등 힌두교 신화와 전설이 부조되어 있다 한편 상부 테라스에는 사면불인 관음보살상이 부조. , 되어 있으며 회랑은 둥근 형태로 만들어졌다 흔히 크메르의 미소 로 평가되는 관음보살상 조각은 휴먼 모. ‘ ’ 티브를 특징으로 한다 얼굴은 보통. 2m 내외이며 머리에는 연꽃 모양으로 장식을 둘렀다 상층부의 중심탑. 높이는 약 64m이며 원형의 중심탑 주위에는, 16기의 첨탑이 순례를 위해 만들어졌다 이 첨탑은 소위 바이. ‘ 욘의 미소 로 불리는 것첨 은은하고 자비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관음보살상이’ 4면으로 조각되어 있고 첨탑, 내부에는 전국 각지의 수호신이 모셔져 있어 기존 힌두교 세력을 개혁하기 위한 혁신적 사상이 반영된 승원 이다.

크리슈나(Krishna) : 비슈누신의 여덟 번째 화신 원 뜻은 비뉴수신의 검은 머리카락에서 파생되어 검은. ‘

것 을 의미한다’ .

(21)

가루다(Garuda) : 비슈누신이 타고 다니는 새 몸과 다리는 사람 머리는 독수리 형상을 하고 있다. , .

코끼리 테라스

(b) (Terrace of Elephants)

왕궁 광장 앞에 위치하며 자야바르만 7세 때 건축되었다 바푸온 사원에서부터 나왕의 테라스까지 약. 300m 길이에 실물 크기의 코끼리 가루다 말 폴로 게임과 유사한 추각 게임 장면 등이 부조되어 있다 이곳은, , , . 자야바르만 7세가 군사행진을 하던 곳이며 각종 행사가 열렸던 광장이었다, . 1911년, 1916년 앙리 마르샬에 의해 복원되었다.

나왕 의 테라스 문둥이 왕 테라스

(c) (癩王) ( , Terrace of Leper King)

자야바르만 7세 때 건축한 것으로 코끼리 테라스 옆에 위치하며 나가 상과 수많은 신들이 부조되어 있고 테 라스 위에는 약 1m 크기의 나왕의 좌상(座像)이 있었다 현재 이 조각은 프놈펜의 국립박물관에 옮겨져 있( 다). 나왕의 주인공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엇갈린다 코마유는 시바신이라고 주장하며 에이모니에는 야소. , 바르만 1세라고 하고 조르쥬 세데스는 야마신이고 주장하는 등 이견이 많다. 1911 , 1917년 년 앙리 마르샬 에 의해 복원되었다.

피메아나카스

(d) (Phimieanakas)

황금의 탑에서 국왕의 머리가 아홉 달린 뱀왕의 딸(nagi)과 밤바다 잠을 잤다는 설화를 간직한 이 사원은 자 야바르만 4 (?)세 때부터 건축이 시작되어 라젠드라바르만 2 ,세 수리야바르만 1세에 의해 성문과 성벽이 완 성되는 등 후대의 왕들에 의해서 설계 변경이 이루어졌다 사원의 이름은 천상의 궁전 공중누각 산스크리. ‘ , ’(

트어로는 vimanaakasa)이란 뜻을 가졌지만 왕궁이 아니라 사원이다. 라테라이트로 지었으며 1층은 최상층은 에 이르나 회랑의 폭은 에 지나지 않는다 사원 북쪽에는 의 남자의

35x28m, 30x25m 1m . 125x45m

연목 동쪽에, 40x20m의 여자의 연못(srah srei)이 있다. 1944년까지 네 차례나 복원되었다.

바푸온

(e) (Baphuon)

바푸온은 아들을 숨긴 사원 이란 뜻이다 두 형제가 태국과 캄보디아를 다스리는 왕이 되었는데 태국 왕의‘ ’ . 아들을 크메르 왕이 길렀다 그러나 조카가 자라면 왕위를 찬탈할 것이라는 신하들의 충고를 듣고 왕이 그를. 죽였다 이 소식을 들은 태국 왕이 쳐들어오자 크메르의 왕비가 아들을 살리기 위해 이 사원에 숨겼다는 일. 화가 있다 우아야디티야바르만. 2 (1050~1066)세 때인 1060년에 지은 이 사원은 바욘과 피메아나카스 중간 에 위치해 있으며 입구는 코끼리 테라스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 변경이 있었다 동쪽 탐문에서 사원 입. 구까지 200m에 달하는 참배길은 육교 형식으로 설계되어 공중 참배길 로 불리며‘ ’ , 1층은 120x100m, 2층은 층은 의 규모다 층은 크리슈나의 어린 시절을 묘사한 부조가 있고 라마야나와 마하바

70x65m, 3 50x45m . 2 ,

라타의 부조가 있다 주달관의. <진랍풍토기 에 바푸온 사원을 동탑> (銅塔)으로 묘사한 것으로 보아 청동으로 만든 중앙탑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나 현재 중앙탑은 허물어져 있는데 학자들은 인근 사원을 건축할 때 바, 푸온은 석재를 가져다 활용한 때문으로 보고 있다 건축사적으로 바푸온은 하나의 양식을 이루고 있는데 바. ‘ 푸온 양식 은 첫째 코끼리나 나가 상’ ( )像이 장식의 모티브로 등장하지 않으며 둘재 회랑은 있으나 부조되어, 있지 않고 탑문과 파풍(破風)에 부조를 해 넣은 방식이 주로 이용되었다 셋째 주벽에 처음으로 부조가 새겨. 지기 시작하였으며 그 소재는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였다 넷째 인간을 소재로 한 조각은 가슴 윗부분이 누. 드로 표현되었으며 여신들의 스커트 길이는 발목까지 내려온다 스커트는 완전한 주름을 이루고 물고기 꼬리. 모양(fish-tail type)으로 드레이핑(draping)하여 우아한 곡선미를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1908년부터 1918년 까지 코마유와 마르샬에 의해 복원되었고, 2002년에도 복원작업을 거쳤다.

라마야나(Ramayana) : 인도의 시인 발미키(Valmiki)가 쓴 대 서사시로 전체 24,000 (1송 송은 16음절로 2

행으로 되어 있다 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학자들에 의하면 기원전) , 4세기경부터 서기 200년 사이에 현재 의 형태로 완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요드야 왕국의 라마왕자와 그를 돕는 원숭이 왕국의 하누만 그리. 고 이에 대항하는 악마의 왕 라바나의 전쟁을 그린 서사시로 라마왕자를 통하여 제왕이 따라야 할 정의, 도덕률 규범을 제시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 태국 탐보디아 등 고전기 동남아시아의 궁정문학과 드라, , , ,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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