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역사, 제 2학기 - 제 9주차
중세 중세 유고슬라비아 유고슬라비아
- - 오스만 오스만 터키의 터키의 발칸 발칸 침공과 침공과 코소보 코소보 전투 전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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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항 항
. .오스만 오스만 터키의 터키의 발칸 발칸 침공과 침공과 코소보 코소보 전투 전투
무라드 1세(재위 1359-1389)하의 세르비아 : ‘데브쉬르메 제도’의 토대를 마련
(점령지의 용병을 다른 지역 전투의 선봉에 내세움) -> ‘야니차르’와 ‘카페탄’ 계급 양성
: 세르비아의 라자르 왕자를 자치국의 봉신 영주로 임명
무라드 1세(왼)와 라자르 왕자(오 른)
무라드 1세와 그의 아들 바예지드 1세(재위 1389-1402) 시기 오스만 터키 영토
1389년 코소보 전투의 역사적 의미
: 6월 28일 비도브단은 이후 세르비아 역사의 민족 상징 일이 됨 -> 사라예보 총격 사건, 비도브단 헌법 …
: 코소보 전투의 전설들은 추후 세르비아 민족의 외세 저항 정신 의 상징이 됨(민담, 구전문학…)
: 세르비아 중세 왕국의 실질적 몰락 (민족의식의 출발점) -> 1878년까지 오스만 터키의 지배 시작
1389년 오스만 터키와의 코소보 전투 장면
세르비아의 재건 노력과 어려움
: 1402년 몽고 티무르 제국과의 앙카라 전투에서 터키군 패배 -> 1413년까지 티무르 제국 지배 하로 편입
-> 오스만 터키의 유럽 원정 중단
: 라자레비치(재위 1389-1427)와 브란코비치(재위 1427- 1456)의 재건 노력과 시련
-> 1428년 헝가리는 세르비아 재침 방지와 브란코비치 봉신 영주 승인을 터키에게 요구
-> 터키의 용인
-> 대가로 헝가리는 베오그라드를 포함한 북부 지역을 할양 -> 세르비아는 마지막 수도 스메데레보 건설
오스만 터키의 재침공과 세르비아 왕조의 패망
: 1437년 내분을 정리한 오스만 터키의 재침공과 전과 -> 1444년 바르나 십자군을 패배시킴
-> 1448년 제 2차 코소보 전투에서 승리 -> 1453년 콘스탄티노플 점령
-> 1459년 스메데레보 함락
1) 발칸유럽 내 크리스트교 국가의 복원 불가능 확인 2) 중세 세르비아 및 발칸유럽 국가들의 몰락
(약 400년간 오스만 터키의 지배 하로 편입)
3) 과거 서로마 지역 남슬라브족들과의 단절, 상이한 역사, 경제, 정치적 경험을 맞이함
콘스탄티노플 점령후 입성하는 메흐메드 2세(재위 1444-1446, 1451-1481)(왼)와 오늘날 공원으로 바뀐 스메데레보 요새(오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