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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한국대중음악학회 제 25회 정기학술대회: 기획 섹션 “음악이 사회를 만나는 하나의 방식: 정태춘, 박은옥의 음악적 실천” 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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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중음악학회, 통권 24

2019 한국대중음악학회 제 25회 정기학술대회:

기획 섹션

“음악이 사회를 만나는 하나의 방식:

정태춘, 박은옥의 음악적 실천” 라운드테이블

사회: 김창남 토론: 정태춘, 이영미, 서정민갑, 김준기

김창남

:

이름이 라운드테이블인데 테이블이 일자로 되어있네요

.

하지 만 객석에 계신 분들과 함께 마주 본다는 의미에서 라운드 테 이블로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패널 소개를 드리겠 습니다

.

먼저

,

정태춘

,

박은옥 음악의 문학적 세계를 비판적으 로

, ‘

,

그리고 읊조림

이라는 키워드를 갖고 대담해주실 이영 미 선생님이십니다

.

그리고 박은옥

,

정태춘 음악의 대중음악 사적인 여러 활동과 작품까지 평가해주실 대중음악의견가 서 정민갑 선생님이십니다

.

정태춘

,

박은옥

40

주년 프로젝트 총 감독을 맡고 계시고

,

오늘 정태춘 선생님의 사회적 실천 – 특 히 대추리 투쟁과 관련된 말씀을 해주실 김준기 선생님이십니 다

.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

정태춘 선생님 모셨습니다

.

박은옥 선생님은 건강상에 약간의 문제가 있으셔서 아쉽게도 오늘 함 께 자리하지 못했습니다

.

먼저

,

일단

,

객석에서 세 분의 발표

(2)

를 들으시면서 어떤 감상을 느끼셨는지 간단하게 말을 열어주 시죠

.

정태춘

:

제 노래가 제 생이었다고도 인터뷰에서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

또 한편으로는 제 노래는 제 삶의 아주 작은 일부였을지도 모 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즈음에

,

이런 귀한 학회의 프로그램 에 저희 노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다뤄주셔서 감사하고요

.

또 쑥스럽기도 했습니다

.

김창남

:

혹시 들으시면서

,

저건 좀 아닌데

,

저건 오해인데

,

이렇게 생각 하신 부분은 없으셨나요

?

정태춘

:

하나 있었어요

.

정태춘

,

박은옥을 듀엣이라고 이야기하신 내 용에 관해서 우리 부부는 전혀 인정 하지 않습니다

.

특히 박은 옥씨는

나는 솔로가수인데 왜 듀엣이라고 이야기를 하느냐

라고 조금 날카롭게 말씀을 하실 것 같아요

.

다른 건 제가 얘 기할 바 없고요

.

김창남

:

발표자 분들께서는

,

혹시 정태춘 선생님께 궁금했던 점이나 확인하고 싶으셨던 점이 있으셨나요

?

서정민갑

:

제가 책에 박은옥 선생님의 음반 리뷰를 쓰면서 더 이상 음반 이 나오지 않는 부분에 대한 아쉬움을 적었거든요

.

박은옥 선 생님의 또 다른 음반에 대한 계획이나 가능성이 있는지 여쭤 보고 싶습니다

.

정태춘

:

음악은 사실 다 끝났다고 생각을 합니다

.

창작은

10

여 년 전에 끝이 났고요

.

그리고 창작은 끝이 났는데 내 안에서는 계속 내 이야기가 흘러나오니까

,

다른 방향으로 돌려서 다른 일을 하고 있습니다

.

그 리고 이번에

40

주년이 되어서 시장으로 다 시 나왔는데 이제 곧 돌아갑니다

.

인터뷰도 이미 다 정리를 했 고요

.

제 인생에서 인터뷰는 다 끝났다고 생각할 정도로

(3)

새 앨범을 낼 계획은 제 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

서정민갑

:

혹시 박은옥 선생님도 계획이 없으신 상황일까요

?

정태춘

:

박은옥 씨는 저와 생각이 달라서

내가 곡을 쓰고 새 노래를 가지고 활동을 하겠다

라고 한다면 한편 환영할지 모르지만

,

그게 또 돈과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고

,

새 노래들에 대한 피드백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

글쎄요

..

김창남

:

그래도 여전히 내 안에서 할 말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말씀하 시잖아요

.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에 관해서는 어떤 게 있을까 요

?

정태춘

:

텍스트가 아니고 사진으로 표현을 해볼까 했어요

.

3

년 사진 을 열심히 찍었는데 나다운 사진이 나왔어요

.

이상한 것

,

아이 러니한 것

,

칙칙한 것 등등

..

이런 사진들이 나왔어요

.

이걸 가지고 사진전까지 했습니다

.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 였어요

. ‘

파렴치한 산업 시스템

,

나는 여기서 나가고 싶다

.

그 래서 비상구를 찾으려 한다

.

그런데 비상구가 막혀있더라

.’

런데 사진으로서의 설득력은 별로 없었던 것 같고요

.

사진 다 음에는 저 혼자 그냥 시간을 보내기로 했어요

.

이렇게 조용하 게 소진되는 것도 최고의 노년이라고 생각하면서 소진이라는 말을 제 머릿속에 담았죠

.

그러고는 가죽공예를 하면서 또 몇 년을 보냈고요

.

그러던 시기에 한문을 만나면서 한시 공부를 하게 됐지요

.

그리고 한시나 한글로 짧은 이야기들을 붓으로 쓰면서 새로운 이야기 통로를 확보하게 됐습니다

.

이렇게 여 러 방식으로 나의 말을 해 오고 있어서 결국 제 속에서 흘러넘 치는 이야기들을 멈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

그러면서도 좋 은 음악 을 들었을 때

,

어떤 음악에서 특별한 메시지를 접했을 때

.

-

나도 노래를 하고 싶다

.

나하고 스타일이 전혀 다르지

(4)

만 신나는 리듬을 가지고 음악을 만들 수도 있는데

,

그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할 수도 있을 텐데

,

나도 저런 음악을 만들어볼까 하는 유혹이나 자극은 늘 받고 생각을 하 기는 하지요

.

그렇지만 어떤 생각들을 노래로 만들어서 편곡 을 하고 앨범을 만들고 그걸 가지고 마케팅을 하고

,

이러한 과정을 소화해낼 수 있을 만큼 음악적인 열정이 남아 있지 않 다고 생각합니다

.

김창남

:

얼마 전에 제 컴퓨터를 뒤적거리다가 한

10

년쯤 전에 정태춘 선생님이 엄청 커다란 사진기를 들고 사진을 찍으실 때 저를 찍어주신 사진이 있더라고요

.

그걸 보면서

역시 사진보다는 음악을 하셔야겠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

웃음

)

이영미

:

노래를 그만두시고 다른 것을 하시는 게 전부 조형적인 것이 거든요

.

서예

,

가죽공예

,

사진과 같은 것들이요

.

시각을 통해 서 표현을 해보니 오래간 음악을 그만두고 나서 나에게 노래 를 할 때는 알 수 없었던 어떤 구석이 있었다고 깨닫거나 발견 한 게 있다면 그게 뭐예요

?

조형적인 일을 하면서 내 안에 있 었던 여러 가지 역량들 중에 새로 발견한 것은 무엇인가요

?

정태춘

:

그런 건 잘 모르겠어요

.

그런데 사실 음악에서도 시각적인 부

분이 있습니다

.

근래에 컴퓨터를 통해서 편곡을 많이 했습니 다

.

그런데 컴퓨터에 편곡하는 툴이 사용자에게 시각적인 것 을 보여줘요

.

수십 개의 트랙이 보이고

,

시간대가 적혀있습니 다

.

그러면 어떤 트랙의 어떤 악기를 언제쯤 배치해서 전체 음악을 만들어낼지 이게 시각적으로 보이는 작업으로 편곡을 하는데

,

그 작업을 하면서 음악이 또 달리 시각적으로 느껴지 기도 했어요

.

그 조형이라는 것이

,

우리가 듣는 게 두 귀로 들 으면서 그 소리 속에도 질감과 색깔이 있고 원근감이 있고 진

(5)

한 것과 흐린 것들을 소리로도 느낄 수 있듯이 시각적인 것과 청각적인 것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할 수 있었습니다

.

그리고

<

붓글

>

을 쓰면서도 늘 고민을 하지요

.

글씨를

,

무슨 이 야기를 쓸 것인가

?

그렇게 이야기는 정리가 됐는데 이것을 어 떻게 평면 위에 조형적으로 풀어낼 것인가

..

서예나 시각적 조 형예술에 대해서 공부한 바가 너무 없으니까 참 답답하기는 한데

,

고민 을 하지요

.

,

내용만이 아니고

,

조형이 주는 어떤 울림이나 힘 같은 것도 고민하게 되죠

.

음악을 했던 사람으로 서도 결국은 그 조형과 메시지 풀어내기의 연장선 안에 들어 있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

김창남

:

좀 전에 이영미 선생님께서 정태춘 선생님의 작품세계를 이야 기하면서

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이야기를 했어요

.

저는 처음 생각해보고 들어보는 이야기였습니다

.

그래서 굉장히 절 실하고 의미 있는 키워드를 잡아냈다는 생각을 했는데

,

정태 춘 선생님께서는 들으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

정태춘

:

너무 적절한 키워드였죠

.

저도

2012

년도에 「바다로 가는 시내

버스」라는 앨범을 만들면서

,

한두 달여 만에

7~8

여 곡을 쓰게 됐는데

, ‘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게 되는 거예요

.

그러면서 뒤를 돌아보니까

(

과거

)

에도 물 이야기들이 많았고

.

저한테 물 은 특별하지요

.

유년기에 저는 갯벌과 들판이 있는 동네에 살 았는데 갯벌을 지나가다 보면 큰 도랑이 있습니다

.

지금은 평 택호가 되었지만

,

그 도랑으로 바닷물이 꽉 차서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면 엄청난 흙으로 된 단층이 생깁니다

.

바닷물이 쫙 빠져나가면 갯벌이 무너져요

.

북극의 빙산이 무너지듯이

콰 광

하고 무너집니다

.

그 물 건너편에

평택군 안중면

이라는 곳 이 있었습니다

.

우린

팽성면

이었는데

.

이 넓지도 않은 물을

(6)

사이에 두고 우리는 그쪽 동네를

물 건너

라고 불렀습니다

.

거 기엔 다리도 하나 없었어요

.

그래서 물 건너에서 시집온 사람 은 다른 세상에서 온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

그 정도로 물 은 우리에게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었죠

.

그런 바다밖에 모르 던 사람이 새벽 안개 가득한 북한강을 지나가면서 느낀 정취 는 정말 특별한 것이었지요

.

그래서

<

북한강에서

>

와 같은 노 래가 나왔고

.

그런가 하면 시골 마을의 논 경지 정리를 하면 추운 겨울이 지나고 들판에 가득했던 황사가 사라지기 시작하 면서 어디선가 용수로라고 하는 물길로 물이 콸콸 들어옵니 다

.

그 물이 온 들판에 번져나가요

.

그 물을 받아서 못자리를 준비하죠

.

거기에 손이나 발을 대면 차갑기 이를 데 없고

.

그 런데 우리는 그 물이 어디서 오는지 몰라요

.

그런 물이 나에게 는 굉장히 선동적이었어요

.

뭔가 은밀하게 준비하다가 흘러오 는 차가운 물

.

이런 물에 관한 기억들이 있어요

.

그리고 내가 만들어낸 것이지 만 단절과 그 너머에 관한

,

물 너머에 관한 상상 – 이런 것들이 늘 있었다고 생각하고요

.

그리고

2012

년도 에 앨범을 만들 때 물이 그렇게 많이 등장했던 것은 당시에 제 정황이

떠나고 싶다

,

여기가 아니라 저 건너

와 같은 것들 이 많았던 시기라서 특별히 물에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나오 지 않았나 싶습니다

.

이영미

:

그런데 제가 궁금한 건

2010

년대 쯤 마지막 음반을 내면서 물 이 굉장히 중요한 심상이라고 생각하신 거잖아요

.

저도 그 음 반 나올 때쯤에서야 물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느꼈거든요

.

요 번에 글을 쓰면서 새로 안 것은 「아

,

대한민국

..

」에서 물이 사 라졌다는 것을 안 거였어요

.

어머

,

세상에

,

물이 없네

, <

황토

>

딱 하나밖에 없네

.

굉장히 중요한 심상이 상실됐다는 걸

(7)

안 게 저에게는 큰 소득인데

,

혹시 그걸 생각하고 적으신 건가 요

?

정태춘

:

아니요

,

아니요

,

그런 적은 없고

.

그런데 황토강이라는 물은 무엇일까

?

라는 생각은 했어요

.

황토강은 말씀하신 것과 전혀 다른 의미였어요

.

황토강은 세상을 쓸어버리고 내려가는 물이 었고 저에게 물은 대개 단절과 그 너머에 관한 상상이란 이미 지였지요

.

김창남

:

이영미씨 글에도 잠깐 나옵니다만

,

저도 이걸 읽고 나서 제가 좋아했던 정태춘 선생님의

<

서해 에서

>

를 다시 한 번 떠올렸 어요

.

그것이 갖고 있는 유토피아적 상상이 누구한테 보여진 정경을 그려준 것이라기보다

,

현재 우리가 갖고 있지 않기 때 문에 더욱 그립고 아름다운 것으로 쓰여진 바다가 떠올랐어 요

.

물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물 너머의 유토피아 에 관한 상상이고

,

그러한 자아가 눈앞에 싸우는 흙탕물을 통 해 싸움을 직시하는 장으로 변한 면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을 했습니다

.

이영미

:

그런 것 같아요

.

그걸 상상할 필요가 없는 거죠

.

그걸 당장 여 기서 구현하는 것으로 바뀌니까 내 면에 있었던 물의 그 심상 은 사라지는 거죠

.

정태춘

:

맞습니다

.

그리고 「아

,

대한민국

..

」을 냈던 시기는 우리 사회 에서 투쟁의 절정기에 올라갔던 시기인데요

,

그 이후

,

우리가 꾼 꿈들이 적지 않게 좌초되는 것을 봐야 하는 시기가 있었고

,

그걸 한동안 견디기가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

곽재구 시인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어요

.

제가 힘들어하고

,

세상에 환멸 을 느끼고

,

문명 자체에 관해서 근본적으로 혐오하는 이야기 를 하니까

, “

저 형이 너무 큰 박수를 받았던 경험이 있는 사람

(8)

이라서 좌절이 크고 분노가 큰 것일지도 모른다

.”

그때는 그 말이 듣기 안 좋았는데

,

맞는 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

인 기나 이런 게 아니고 공감대의 상실

..

,

이런 것

..

이영미

:

정태춘 선생님께서 계속

환멸의

90

년대

라는 표현을 많이 쓰 시는데

,

지금 한

20

년 떨어져서 보면 그 시기가 굉장히 좋은 시기거든요

.

우리 역사 속에서 아주 화려했던 시기고

.

그런데 그 화려했던 시기를

환멸의

90

년대

로 기억하고 계시는 거잖 아요

.

제가 그런 생각을 했어요

.

돌아보고 나니까

...

정태춘

:

그때 얻은 것도 있었죠

.

진보라고 할 수 있겠고

,

서민이나 민 중이라고도 하는 사회적 약자나 소외된 편에서 보면 일말의 진보가 이루어졌다고도 할 수 있겠고

.

민주화의 성과도 없잖 아 있었고

.

전체 큰 상상력으로서의 싸움은 다 와해가 되고 그러고는 문제의식들이 작게 쪼개지면서 거대담론을 버려라

,

미시담론으로 들어가자 – 라는 캠페인 같은 분위기가 있었어 요

.

그래서 시스템 논쟁과 이념논쟁을 종식하고 환경문제와 생활문제 등 작은 주제들을 가지고 운동을 해야 한다고 이야 기들을 했습니다

.

저는 조금 다르게 판단했습니다

.

그 당시에 세계화라는 것이 진행되면서

, -

이건 우리나라뿐만 아니고 문 명사적인 일이라고 보는데

-

국가 단위의 자본주의가 거의 해 체되고 국가 영역을 넘어선 새로운 자본주의가 도래하고

,

본주의만의 문제가 아니고 산업주의가 지구를 지배하고

,

나는 이게

진짜

거대담론이 오고 있다고 느꼈어요

.

그래서 이

진 짜

거대담론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을 했는데 아무도 동의하 지 않았어요

.

그래서 그런 상황에 대한 환멸도 있었죠

.

김창남

:

김준기 선생님께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

전 사실 정태춘

박은옥

40

주년 프로젝트 총감독이 김준기 선생님이라는 걸 알

(9)

고 약간 놀랐어요

.

미술을 하시는 분이고

,

큐레이터이시고

,

그 런데 음악인의

40

주년 전체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역할을 하신 걸 보고 놀랐습니다

.

두 분의 인연이 어떻게 생겼는지

,

프로젝 트를 맡게 된 사연

,

또 어떤 마음으로 함께 하게 되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

김준기

:

저는

건너간다

라는 제목의 전시를 만들어서

386

세대들이

90

년대를 어떻게 지내왔는가를 전시했었는데요

.

그 전시 때

,

그 냥 연락을 드렸더니 선생님께서 와주셨어요

.

격려도 해주시 고

.

그 이후

2005

년도에 정태춘 선생님께서

<

바람이 분다

>

공 연을 할 때 저도 같이 움직였고

,

이후에 비공식

시각 예술매니 저

로 활동했습니다

.

또 하나는

,

제가 대학 다닐 때 노래패 하 면서 음악적으로도 좋아하는 분이지만

,

예술이 어떻게 사회적 실천을 하는가에 관한 저의 관심에 중요한 씨앗을 뿌려주셨거 든요

. ‘

대추리

라는 것은 아주 중요한 터닝 포인트입니다

.

그 대추리의 씨앗이 강정과 용산으로 가고

,

오늘날 문화재단에서 도 이에 관한 토론과 공모사업까지 벌어질 정도가 되었거든 요

.

이런 것이 정태춘 선생님이 뿌려주신 중요한 씨앗인 것 같습니다

.

정태춘 선생님은 또 제 공부 선생님이기도 해서

,

그 런 인연으로

40

주년 프로젝트의 감독을 맡게 됐습니다

.

김준기

:

저도 정태춘 선생님께 질문을 드려보고 싶은데요

, ‘

언제까지

정태춘 선생님께서 해오신 역할을 대중음악으로 부를 것인가

’,

대학은 왜

실용음악

이라는 이름으로 학과를 만드는가

’, ‘

이 시대 대중들과 민중들의 생활과 정신에 깊숙이 들어있는 음악 에 관해서는 학제가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는가

’.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영역들은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통해서 인재를 길러내고 영역을 만들고 학술적으로 자료를 만들고 공

(10)

론의 장을 만드는 시스템을 갖고 있습니다

.

반면 대중음악은 그런 시스템이 부재하죠

.

이런저런 문제점들이 정태춘 선생님 께서 음악 활동을 접겠다는 이유 중에 있는 건가요

?

이렇게 열심히 음반을 만들어도 이 시대가 내 음악을 수용하지 않는 다

.

그 이유는 시장 중심의 돈 되는 음악만 살아남을 수 있는 대중음악 생태이다

.

분명히 반산업주의자로서 문제의식을 갖 고 계시단 말이에요

.

그런 점에서 이 시대가 요구하는 또 다른 어떤 상이 있을 것 같습니까

?

정태춘

: ‘

대중음악

이라고 구분하는 것이 적절한가

.

우리가 또

문화

라 고 고민하는 것들이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

.

문화예술이 지금 제가 이야기한 산업주의

,

아주 강고하고 야만적인 시스템 속 에 들어와 있는데 이제 우린 뭘 할 수 있을까

,

과연 산업의 통제로부터 인간이 벗어날 수 있을까

?

예술

,

학술

,

담론

,

철학 도

,

모두 시장이 먹어버린 상황 속에서 시장 바깥에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

시장이 통제하지 않는 무엇

,

시장으로부터 자 유로운 인간의 문예행동 – 이것이 가능할까

?

사실 제 고민은 그런 것들이었죠

.

그래서 답을 찾는다면 그 속에서 예술을 어 떻게 할 것인가라기보다는

,

저는 좀 이상주의에 가까운 사람 이니까

,

어떻게 이 산업주의에 균열을 낼 것인가

,

산업주의 시 스템을 정지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

이런 걸 고민했습 니다

.

그런데 이미 나이도 너무 많이 들어버렸고

, ‘

문화예술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대중음악이 어떻게 되는지

라는 고 민을 사실은 하지 못했습니다

.

다만 이번에

40

주년 프로젝트 를 시작하면서

, ‘

시장 밖 예술

이라는 말이 제 입에서 나왔어 요

.

시장의 지배로부터 벗어난 예술에 관한 이야기인데 그 이 야기를 좀 시작을 해보려고 하다 보니까

,

저는 이미 시장에

(11)

나와 있고

,

너무 오랜만에 나와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너무나 환대를 받고 있고

.

그래서 이미 자격상실이 되어버렸다고 느 껴지는 겁니다

.

이렇게 잠시겠지만 환대를 받는 상황에서 내 가 산업과 시장의 지배에 관해서 우울해 하고 화를 내고 그것 과 적대적인 자세를 보이면

,

그 시장 속에서 생존이라도 가능 할 수 있기를 바라는 어떤 예술가들은 나를 어떻게 바라볼 것 인가 – 생각하게 됩니다

.

이건 제 딸이 저에게 한 이야기입니 다

.

그래서 시장예술에 관한 화두도 접었습니다

.

김창남

:

접으실 필요는 없을 것 같고요

.

시장 바깥이라는 게

,

정태춘 선생님께서는 상당히 견고하고 모든 문제를 거대담론 중심으 로 생각하는 사고 관념을 갖고 계셔서 일종의 자기 결벽증으 로 표출되는 경향이 예전부터 있었어요

.

일찍이 시장에 관한 고민은 많은 사람이 하고 있었어요

.

오래전부터 해왔고요

.

소 위 공공영역

,

문화적 공공성

,

어떤 시장의 논리에 매몰되지 않 고 문화적 종 다양성을 살릴 방법에 관한 고민을

,

정책적 차원 에서나

,

운동적 차원에서나

,

늘 하고 있고 그걸 하기 위해서 앞서 시장과 산업과 공공권력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또 있 는 거죠

.

그런 차원에서 조금 더 너그러이 스스로에 대해 생각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

정태춘

:

그런데 저에겐 이것도 중요해요

.

시장의 원리

,

그러니까 내가 여기에 생존하는 동안에는 내 개인적인 이해관계로서의 시장 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민해야 하고

,

적응력을 발휘해야 해요

.

그러나 한편

,

거기에 매달리지 않아도 될 만큼의 나이를 먹어 버린 것도 있고

..

이 말이 어떻게 들릴진 모르겠는데

,

내 개인 적인 관계

,

이 문명과 이 시장과의 관계에만 크게 매달리지 않아도 될 만큼 나이가 들어버린 거예요

.

그러니까 더 원론적

(12)

인 이야기

,

더 이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

말이 좀 이상한가요

?

김창남

:

,

충분히 이해는 갑니다만

,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도 박은 옥 선생님께 얘기해서 물꼬가 트였다고 하시니

,

앞으로도 박 은옥 선생님께 얘기해서 물꼬가 트일만한 뭔가가 나오지 않을 까

,

그런 생각도 듭니다

.

이영미

:

사실 정태춘 선생님께서 하고 계신 고민은 많은 사람이 하고 있죠

.

어떻게 하면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인가

.

지 금 김창남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

산업화의 폭주와 그 논리 때문에 나타나는 모든 문제를 중화시키기 위한 공공 이나 국가나 정부 차원의 정책적 노력이 한 덩어리가 있는 거 고

.

또 하나의 방향은 훨씬 더 극단적으로 마을이나 공동체 중심의

파는 것과는 상관없는 자급자족인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이죠

.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다 보니까 그쪽을 보게 되 는데

,

인문학도 그 양쪽이 동시에 등장하거든요

.

인문학이 한 편으로는 정말 시장 안으로 들어가서 잘 팔리는 영역이 있기 도 하고

,

또 한편으로는 그곳으로만 가서 인문학이 파괴되기 도 해요

.

지금 인문학은 대학에서도 완벽하게 파괴되었잖아 요

.

아까 김준기 선생님은 대중가요

,

대중음악도 대학 안에서 뭔가 그 체계를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니냐

,

하셨지만

,

사실 대학 자체도 많이 붕괴가 되었어요

.

다들 경험하셨다시피

.

이런 상 황이 지속되지 않기 위해서 연구자들을 살린다고 연구재단을 만들고 무슨 지원금 주고 그런 공공적

,

정책적 노력이 하나가 있는 반면에

,

하나는 그런 것과 아무 상관없이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소수지만 존재하는 것이거든 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공동체가 지금처럼 국가단위

,

(13)

계단위로 움직이고 있는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존재할 것인가

란 문제는 또 역시 남는 것 같아요

.

녹색평론에서 얘 기하고 있는 환경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법은 결국은 자 급자족이란 논리를 충분히 이해함에도 불구하고 그러면 이 세 계와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냐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 것이 라서

,

지금 정태춘 선생님께서 하고 계신 고민은 궁극적으로 남을 고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또 하나는 정태춘 선생님께 서 빛을 발하는 대로 역시

시장

이었다는 생각이에요

.

시장 바 깥에서 활동하시던 기간은 굉장히 빛나는 기간이지만 그렇게 까지 길지 않고

,

시장 바깥에 마을 인문학

,

공동체 인문학 하는 것 같은 수준

,

연남동에서 하는 것처럼

팔리는 것과는 상관없 는

노래 만들고

,

노래 가르치고

,

노래를 부르는 이런 활동이 좀 더 큰 시장에서 빛나는 일이었다는 사실이죠

.

정말 아이러 니한

.

서정민갑

: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

정태춘 선생님께서 하고 계신 고민을 하는 젊은 뮤지션들이 꽤 있는 것으로 알기 때문에 만나보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

이영미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90

년대에 저는 한총련 소속 학생으로 연세대에서 날아다니는 헬리콥터 밑에서 싸우고 있었고 폭도 취급을 받았는데

,

당시 선생님께서는 환멸에 빠져 계시다니 이 온도 차이가 뭘까

-

하는 생각을 했어요

.

비난하는 것은 아니고요

,

세계에 여러 가 지 층위가 있는데 각자 이 중에 하나를 노래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

선생님께서도 하나를 노래하셨다고 보는데

,

혹시 아직 문제의식을 계속 갖고 계신다면 가죽을 만지는 것도 좋 지만 이번

40

주년 행사를 계기로 다시 한 번 젊은 뮤지션들을 만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거의 모든 공연을 매진

(14)

시킨 팬들의 마음도 그런 것이 아닐까

,

저는 그런 생각이 들어 요

.

김창남

:

고맙습니다

.

한마디만 더 붙인다면

,

시장 밖 예술이 단순히 시 장에 적대적인 예술로 해석한다면 문제는 전혀 풀리지 않을 것 같아요

.

그리고 시장 밖 예술

,

공공성을 고민하는 것은 시 장을 건강하고 다양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요

.

다른 방법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

정태춘

:

자꾸 주제가 다른 데로 빠져서 정말 죄송한데

,

시장을 건강하 게 – 라기보다는 시장을 인간이 통제할 수 있다면

,

하고 생각 을 하는 거예요

.

김창남

:

그게 그 얘기죠

.

정태춘

:

하하

.

그리고 시장 밖 예술 이야기를 다시 하자면

,

제가 생각 했던 것은

시장 밖 인간

이라는 것으로 생각을 했던 건데

,

우 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예술가들과 모이면서

시장 밖 문 화

’,

더 좁혀서

시장 밖 예술

이라고 얘기가 된 거죠

.

그걸 하나 의 이야깃거리로 계속 끌어나가지는 않을 것이고

,

그것 관련 된 프로그램에도 직접적으로 참여할 것은 아닙니다

.

김창남

:

오늘 한국대중음악학회에서 모처럼 정태춘 선생님 모시고 여

러 가지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

다소는 곤혹스럽고 어려운 자리일 수도 있었는데 함께 해주시고 끝까지 좋은 답해주신 정태춘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많은 분들이 이 자리에 오시면서 기대를 하셨을 것 같구요 본인도 마음의 준비를 하셨을 것 같은데

,

오신 김에 노래를 청해 듣는 순서를 가져볼까 합니다

.

(

정리

:

육재서

)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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