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둘리틀 전투단의 일본 폭격
작전입안
진주만 공습 이후 루즈벨트 대통령은 이러한 국면을 반전시키기 위한 보복 공격을 빨리 시행하라고 군 수뇌부를 날마다 질책하고 있었다.
이는 감정적인 복수 문제가 아니었다. 전황이 계속 불리하게 돌아가 는 상황에서 당시 미군의 사기는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선 작게라도 일본에게 통렬한 반격에 성공했음을 보여줄 필 요가 있었다.
그러나 한눈팔고 있다가 뼈아픈 한방을 맞고서 시종 일본군에게 밀 리고 있던 미군으로서도 뾰족한 수가 없는 판이었다.
태평양 함대에 전함이 한척도 없는 상황에서 몇 안되는 항공모함을 순양함 이하 급의 호위함과 같이 일본 근처까지 접근시키기에는 당 시 일본의 해군력이 너무 막강했으며, 그나마 개전 초반 괌과 웨이 크를 빼앗기는 바람에 작전을 엄호해줄 비행장이나 거점이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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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입안
일각에서 항모에 육상기지용 폭격기를 싣고 가서 일본 본토에 폭탄을 떨구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 나왔다.
기존의 함재기는 항속거리가 짧기 때문에 일본에 항공모함을 엄청 나게 접근시켜야 하므로 기습전에 들켜서 공격당할 확률이 많지만, 육상기지용 폭격기는 항속거리가 길기 때문에 멀리서 발진시켜도 되므로 최악의 경우 작전이 실패하더라도 항공모함을 비롯한 함대 는 살릴 수 있다는 의견이다.
문제는 육상기지용 폭격기는 활주거리가 길기 때문에 항공모함에서 이함시키는 것이 극히 곤란했고, 덤으로 착륙거리는 더 길기 때문에 사실상 착함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한 번 이함 후 비행해서 돌아오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작전을 시 작한 후에는 최대한 멀리 도망쳐서 비행기를 버리고 탈출 후 귀환하 기로 결정되었다.
작전입안
해당 지역이 아군 따위는 하나도 없는 적지 한복판인 데다 먼 바다 위 에서 파도에 흔들거리는 좁은 항공모함 갑판에서 거대한 폭격기를 이륙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진짜 엘리 트급 조종사가 필요했고 작전을 지휘할 사람으로 슈나이더컵 대회 에서 우승을 차지한 경력이 있는 제임스 둘리틀 육군 항공중령이 선 발되었다.
참고로 슈나이더컵 대회는 항공기의 최고 속도를 겨루는 대회로 엄 청난 항공기술의 혁신으로 슈퍼마린 스핏파이어나 A6M 등을 탄생 시킨 배경이 되었다.
당시는 수상기가 조금 더 빨랐기 때문에 수상기 경주 대회로,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에 열렸으며,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할 정도면 비행기 조종에 대해서는 최고급 전문가로 통하던 시 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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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전개
B-25는 본래 육상에서 운용하기 위해 개발된 미 육군의 폭격기였으므 로 활주거리가 짧은 항공모함에서 이륙하기에는 힘들었다. 그나마 항속거리가 길면서도 간신히 항공모함에서 이륙가능할 것으로 판단 되었기에 해당 폭격기가 선정된 것이다.
기체무게를 최대한 줄여야 했기 때문에 무전기도 빼버리고 기관총 도 기체 상부의 것과 기체 전면의 것만 남기고는 전부 빼버렸다. 대 신 적기가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나무 같은 것으로 기총좌 자리에 가짜 기총을 달아 놨다. 또한 어차피 작전상 목적을 달성한 후에도 비행기를 버려야 하므로 기체가 격추당하거나 포획당할 경우 당시 로서는 고급 기술인 노든 폭격조준기가 일본에 노획당하는 것을 막 기 위하여 아주 단순한 간이형 폭격조준기가 달렸다.
한편 이 공습에 참여한 폭격기 중 2대는 카메라를 탑재하여 폭격상 황을 촬영하도록 했다. 어차피 이 폭격의 의미는 실질적인 타격이 아니라 선전효과였으므로, 이 카메라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던 셈이 다.
B-25 미첼 폭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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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5의 제원
•
일반•
Crew: 5명(기장,부기장,레이더관제사,항법사,전자전)•
기장: 11 ft 52 in (16.1 m)•
날개폭: 67 ft 6 in (20.6 m)•
높이: 17 ft 7 in (4.8 m)•
날개면적: 610 ft² (57 m²)•
경하중량: 21,120 lb (9,580 kg)•
만재 중량: 33,510 lb (15,200 kg)•
최대이륙중량: 41,800 lb (19,000 kg)•
엔진: 2× Wright R-2600 "Cyclone" radials, 1,850 hp (1,380 kW) each•
성능•
최고속도: 275 mph (239 kn, 442 km/h)•
작전반경: 1,350 mi (1,170 nmi, 2,170 km)•
항속거리: 11,000 mi (9,560 nm, 15,000 km)•
상승고도:25,000 ft (7,600 m)•
상승률: 790 ft/min (4 m/s)•
탑재량/날개폭: 55 lb/ft² (270 kg/m²)•
무장•
기관총12-18 × .50 in (12.7 mm)•
Ordnance: 11,000 lb 이상 (4,960 kg 이상) 폭탄, 미사일, 공뢰 등호넷 항공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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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실행
모든 준비를 끝낸 특공대는 미 해군 항공모함 USS 호넷에 도착했고, B-25 때문에 호넷의 엄호를 위해 모여든 함대에 마지막으로 USS 엔 터프라이즈가 합류했다. 기동부대 지휘관은 해군 소장 윌리엄 홀시 제독이었다.
4월 18일 아침 7시 38분, 작전 수행을 위해 항해하던 미 함대는 일 본 연안경비정인 어선니토마루를 발견한다. 연안경비정 자체는 경 순양함 USS 내쉬빌이 쉽게 격침시켰지만 격침당하기 전에 연안경 비정이 암호로 일본에 긴급무전을 보낸 것이 포착되었으므로 이미 미 함대의 존재는 발각되었다,
결국 아침 08시 20분 원래 예정된 위치보다 310km 더 먼 35°N 154°E 지점에서 10시간이나 일찍 출격하게 되었다. 일본까지 1,200km를 날아야 하는 상황이였다
작전실행
10
작전실행
작전실행
한편 일본 해군은 적 함대의 경계부대로부터 적 항공모함의 존재를 확 인하고 요격을 위한 준비를 개시한다.
다만 이것을 항속거리가 짧은 일반적인 함재기에 의한 공습일 것이 라고 생각한 탓에 공습은 항모가 좀 더 접근한 다음날 아침에나 이 뤄질 것이라고 판단(원래 미국의 계획은 그날 저녁이었다)해 즉각 요격기를 발진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B-25는 이미 이 함을 개시했고 미 함대는 신속하게 퇴각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일본의 판단보다 20시간 쯤 빨리 B-25 편대가 일본 상공에 모습을 드러낸다. 일단 그 시점에 일본 육군 비행장에서도 요격을 위한 준비는 갖춰진 상태였고, B-25 역시 공습 이전에 발견되었다.
하지만 폭격기의 고도가 묘하게 높은데다, 암만 봐도 항모의 함재 기로는 보이지 않았던 탓에 일본군의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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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실행
어떤 부대는 아군 육군의 쌍발 폭격기일 것이라고 판단하여 발견했으 면서도 보고를 하지 않았고, 어떤 부대는 "국적 불명의 쌍발기 발견
"이란 보고를 올렸지만, 일본군 사령부는 "미 해군은 쌍발기를 운용 하지 않는다"며 믿으려 하지 않았기에 장장 15분간 전화 통화로 귀 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추가로 원래 계획상으로는 야간폭격이었으나, 계획보다 일찍 이륙 한 탓에 백주대낮에 폭격이 이뤄진 덕분에 그런 심리적인 효과가 더 욱 극대화되었다.
게다가 그 때가 하필이면 방공훈련이 끝난 직후였다고 하니, 그야말 로 "충격과 공포"가 따로 없었다(...). 하늘에 떠 있는 뭔가 이상한 폭 격기도 자기네 나라 비행기인 줄 알았던 일본인들은 그 폭격기가 폭 탄을 떨어트리는 걸 보고서야 미군기라는 걸 알고 크게 당황했고, 일본군이 허겁지겁 반격을 시도했지만 이미 특공대 전원은 중국과 소련으로 진로를 잡은 뒤였다.
작전의 결과
불과 16대의 쌍발 폭격기를 투입한 둘리틀 특공대의 성과는 사망자 50 명과 가옥 262채 파괴 , 제철공장 1, 석유저장소 1, 발전소 몇개, 개 장중이던 경항모 류호 우현 직격 등으로 크진 않았다.
다만 류호의 취역 지연은 미드웨이 해전 이후 일본 해군이 항모와 항공대 전력을 보충하지 못하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어차피 그들의 목적은 전과가 아니라 보복 그 자체. 국면을 전환하는 것이었고, 그 결과로 일본 육해군 수뇌부는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언론에는 둘리틀 중령의 이름을 빗대어 "Do little"이라 깎아내리면 서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대응하고 있었지만 실제 심리적인 효과는 진주만 공습에 못지 않았던 것이다.
일부러 언론이 이렇게 대응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의식하고 있 었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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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의 결과
일본군이 태평양 반쪽을 집어삼키고 인도양까지 넘보는 상황에서 일본 본토의 수도 한복판에 폭탄이 떨어지는 바람에 천황까지 위험에 처 하게 만든 것은 일본군의 장성이라면 진짜로 망신살이 뻗친 일이었 다.
또한 이 사건 때문에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의 미 항모들을 격멸 해야 한다는 생각이 힘을 얻어서 이런저런 이유로 지지부진했던 미 드웨이 해전의 작전 준비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고한다.
상세는 미드웨이 해전 항목을 참고. 그리고 일본 육군은 이를 계기 로 방공도시계획을 진행시키고 대폭격기 요격부대를 창설하게 된다
장렬 !! 두리틀 폭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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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렬 !! 두리틀 폭격대
장렬 !! 두리틀 폭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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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렬 !! 두리틀 폭격대
장렬 !! 두리틀 폭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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