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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獨島獨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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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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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과 논리 및 논술

11주차 : 역사과 관련 최근 이슈(2)

-

독도문제에 대한 비판적 글쓰기 수업과 군함도, 위안부 문제 소개

-

강의자 : 김보림 교수

(2)

독도의 역사 = 한국 영토인 증거

독도獨島

(3)

독도의 역사 = 한국 영토인 증거

(4)

1699년 숙종 25년 안용복의 활약으로 일본 어민의 울릉도 및 독도 왕래 금지 약속을 받아냄.

안용복의 활약, 일의 과정과 결과 모두 중요한 의미

 양국 최고 통치기구에서 공식적으로 독도가 울릉도의 부속 도서이며 두 섬이 조선의 영토임을 분명히 함

 독도가 조선의 땅임을 당시 일반 백성들도 알고 있었음

 이후 조선에서는 울릉도, 독도 등지에 대한 순찰을 강화

 일본에서는 이 사건의 결과로 일본의 서쪽 경계를 오키 섬으로 정함

독도의 역사 = 한국 영토인 증거

(5)

독도의 역사 = 한국 영토인 증거

지속적으로 순찰을 보내고 방비를 강화하였으나 관리를 파견하지 않았음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로 울릉도에 군수를 파견

•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격상하고, 이에 따라 울릉도 도감은 울도군 군수로 격상

• 울릉도와 죽도, 석도(=독도)를 관할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주요 내용

제1조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야 강원도에 부속하고 도감을 군수로 개정하야 관제중에 편입하고 군등은 오등으로 할 사(事).

제2조 군청 위치는 태하동으로 정하고, 구역은 울릉전도와 죽도, 석도를 관할할 사(事).

1905년 일본이 ‘시마네 현 고시 제40호’로 독도를 강제 병탄

(6)

※시마네 현 고시 40호의 불법성

독도는 당시 ‘무주지無主地’가 아니었음

 1900년에 울릉군수를 파견할 때 독도는 관할구역에 포함

 당시 일본 내무성은 러일전쟁의 종결 전에 독도를 강제 병탄하는 것이 한국 정부의 강한 저항을 불러올 것이라고 반대 = 독도가 대한제국의 영토였다는 것을 일본은 알고 있었음을 의미

선점의 경우, 무주지를 자국의 영역에 편입한다는 사실을 국내외에 공표해야함

 일본은 이러한 절차를 모두 무시하고 비밀로 함

 시마네 현 고시와 관련된 내용이 당시 일본의 신문에 기재되지 않았음

 1905년 6월 5일에 이르러서야 관보에서 고시에 명시된 ‘다케시마‘라는 명칭을 사용

시마네 현 고시는 관계자 몇몇이 둘러본 회람에 불과

 회람 : 글 따위를 여러 사람이 차례로 돌려 봄. 또는 그 글

 이 문건은 당시 「시마네현령」이나 「시마네현훈령」 어디에도 수록되어있지 않음.

독도의 역사 = 한국 영토인 증거

(7)

1945년 광복과 함께 한반도의 부속 도서로 반환

1945년 9월 27일에 발표된 ‘맥아더 라인’에 따르면 독도는 한국령으로 귀속

1946년 1월 29일 연합군 최고사령관 훈령 667호에 따르면 제주도, 울릉도, 독 도는 일본 영토에서 제외

1946년 6월 22일 연합군 최고사령관 훈령 1033호에 따르면 일본의 선박과 선 원은 독도의 12해리 이내에 접근해서는 안되며, 독도에 대한 어떠한 접근도 금

1952년 1월 18일 ‘이승만 라인’ 을 발표하여 독도가 우리의 영토임을 확고히 함

1953년 4월 독도 의용수비대 입도, 1956년 12월 25일 경북경찰청 울릉경찰서 에 인수인계

독도의 역사 = 한국 영토인 증거

(8)

일본 기록이 증명하는 우리땅 독도

일본의 고(古)지도

(9)

돗토리 번 답변서(1695)

• 울릉도, 독도는 돗토리 번의 부속도서가 아님을 밝힘

울릉도 도해 금지령(1696)

•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판단.

태정관 지령(1877)

태정관 : 메이지 정부 최고행정기관

• 울릉도 외 1도는 일본과 관련이 없음을 밝힘

돗토리 번 답변서

일본 기록이 증명하는 우리땅 독도

(10)

돗토리 번 답변서(1695)

• 울릉도, 독도는 돗토리 번의 부속도서가 아님을 밝힘

울릉도 도해 금지령(1696)

•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판단.

태정관 지령(1877)

태정관 : 메이지 정부 최고행정기관

• 울릉도 외 1도는 일본과 관련이 없음을 밝힘

울릉도 도해 금지령

일본 기록이 증명하는 우리땅 독도

(11)

돗토리 번 답변서(1695)

• 울릉도, 독도는 돗토리 번의 부속도서가 아님을 밝힘

울릉도 도해 금지령(1696)

•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판단.

태정관 지령(1877)

태정관 : 메이지 정부 최고행정기관

• 울릉도 외 1도는 일본과 관련이 없음을 밝힘

태정관 지령 부록 지도

→울릉도

독도 ←

일본 기록이 증명하는 우리땅 독도

(12)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 게재된 자료

일본측에 불리한 근거는 누락하거나 삭제

논리적, 사실적 근거 왜곡

홈페이지 뿐 아니라 팸플릿을 세계 각국어로 번역하여 배부한 것은 처음

→ 독도문제를 일본에 유리하게 하려는 것으 로 판단

우리측 주장에 대한 의견이나 일본에 불리한 주장은 고의적으로 누락

(13)

독도교육에서의 비판적 읽기 및 글쓰기 학습

학습 단계 학습 활동 교사의 역할

읽기 및 글

쓰기 전 학습 준비

목적 확인 ▪비판적 역사 읽기와 역사 글쓰기의 목적 확인

학습 목적 안내 및 내적 동기 유발 유 도 / 사전 지식의 토대 위해 글과의 상호작용을 촉진하 여 학습이 수행되도

록 유도 내용 예상

▪사전 지식을

활용하여 일본 외무성의 ‘다케시마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10의 포인트’

에 대한 주요 내용 예상

예상 되는 쟁점 ▪예상되는 의문점이나 질문 작성

학습모형 – 읽기 및 글쓰기 전

(14)

독도교육에서의 비판적 읽기 및 글쓰기 학습

학습모형 – 읽기 단계

학습 단계 학습 활동 교사의 역할

읽 기

내용 이해

▪ 분석

▪ 해석

▪ 추론

▪ 평가

내용 이해

▪일본 자료를 읽고 일본 정부의 평가를 포함, 내용 요약하기

▪어려운 용어, 개념을 찾아 정리하기

▪자기 사고 모니터링

비판적 읽기 및 글쓰기를 위한 사고전략

(TSCRWH)을 활용하여 학생 스 스로 내용을 이해하고 필요한 자료를 찾아 분석▪분류하도록 유도/지속적인 발문을 통해 학 생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여 사 료 비판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 도록 유도/ 비평적 피드백

가치

파악 ▪일본 정부의 가치가 드러난 부분을 찾고 분류하기 저자의

의도 추론

▪일본 외무성 자료를 분석 및 해석하여 저자의 주장 추론하기

▪일본 정부의 주장에 대해 근거의 정확성과 타당성, 주장에 대한 적절성 등을 평가하고 자신의 의견 제시하기

문제 인식 및 검토

▪일본 외무성 자료를 읽기 전에 자신이 생각한 쟁점과 읽기 과정 중에 생긴 쟁점에 대해 찾아 정리하기

▪자기 사고 모니터링

(15)

독도교육에서의 비판적 읽기 및 글쓰기 학습

학습모형 – 글쓰기 단계

학습 단계 학습 활동 교사의 역할

글 쓰 기

단계별 역 사 글쓰기

개인 글쓰기 (1차)

▪일본 정부의 주장과 근거에 대해 TSCRWH을 활용하여 자신의 의견 쓰기(논증적 역사 에세이)

▪자기 사고 모니터링 비판적 읽기 및 글쓰기를 위한 사 고전략(TSCRWH)을 활용하여 역 사 글쓰기, 모둠 토의를 할 수 있 도록 유도 / 발표 내용과 자신의 사고와의 상호작용을 촉진하도록 유도 / 비평적 피드백

모둠 글쓰기 (2차)

▪TSCRWH을 활용하여 모둠 토의에서 학생 개 인별 의견을 확인하고 비판적 검토

▪모둠 토의에서 도출된 내용에 대해 모둠 의견 쓰기(논증적 역사 에세이)

▪모둠의견 발표, 질의 응답

▪모둠 사고 모니터링

최종 글쓰기 (3차)

▪TSCRWH을 활용하여 자신의 최종 의견 쓰기 (논증적 역사 에세이)

▪자기 사고 모니터링

지금까지 수행한 학습 과정의 내 용이 적절하게 반영되도록 유도

(16)

독도교육에서의 비판적 읽기 및 글쓰기 학습

학습 진행 및 결과

1. 읽기 및 글쓰기 전 단계

◆ 학생들에게 학습의 목적을 확인하는 질문을 했을 때의 답변 - 일본의 주장을 비판하기 위해

-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증명하기 위해

- 일본 외무성 독도 자료를 비판적으로 읽고 자료 조사를 통해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알리기 위해

학습 목적에 대해 단편적으로 이해하는 학생 절반, 뚜렷하게 이해하는 학생 절반 정도

◆ 사전 지식을 활용하여 일본 외무성의 독도 자료 내용을 예상하라는 질문의 답변 - ‘독도, 우산도‘, ‘안용복‘ , ‘이승만 라인‘ 등 단편적 사실 중심의 단어가 많이 나옴

- ‘다케시마는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 봐도,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한 일본 영토‘라는 답변인 일부 뿐

=> 대부분 이전부터 독도에 대해 학습을 했으나 단편적인 사실 인식 수준에 머물러 있음

(17)

독도교육에서의 비판적 읽기 및 글쓰기 학습

학습 진행 및 결과

1. 읽기 및 글쓰기 전 단계

◆ 예상되는 쟁점이나 의문점을 말하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

- 일본과 우리나라의 각 주장과 근거는? → 역사적 사실에 대한 내용 확인

- 일본의 독도 편입이 합법적인가? , 일본의 근거는 타당한가?, 일본 주장은 신뢰성이 있는가?

→ 독도 문제에 대한 구체적 내용 제시가 아닌 기본적 쟁점 제기

◆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들을 종합했을 때

- 이 단계에서는 학습의 목적과 예상되는 쟁점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을 지니고 있음 -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구체적 내용 파악 X

- 독도 문제에서 언급되는 기본 용어의 이해가 필요

- 일본측 주장과 근거가 지니는 논리적 모순을 인식하게 할 필요

(18)

독도교육에서의 비판적 읽기 및 글쓰기 학습

학습 진행 및 결과

2. 읽기 단계

◆ 내용 이해 및 용어와 개념 정리

- 학생들 스스로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일본 외무성 자료 내용을 이해함

- ‘강치‘, ‘훈령’, ‘각의 결정‘, ‘관유지 대장‘ , ‘대한제국 칙령 41호’,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등을 인터 넷 검색이나 백과사전, 국어사전 등을 통해 정리 및 이해

◆ 사실과 가치 판단의 구분

- 일본 외무성의 자료가 주장과 근거를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어서 추측, 강조, 확신, 평가 등을 학생 들이 쉽게 찾을 수 있었음

(19)

독도교육에서의 비판적 읽기 및 글쓰기 학습

학습 진행 및 결과

2. 읽기 단계

◆ 자신의 사전 지식과 다른 부분 찾고 그에 대해 검토하기

- 일본의 독도 영유 주장에 대해 ‘독도는 원래 우리 땅이다‘는 방식의 단순한 답변이 많음 - 일본의 ‘대한제국 시기 전후에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한 사실이 없다‘ 에 대해

→ 시기와 맞지 않는 ‘독도 의용 수비대‘ 를 제시하는 등 적절하지 않은 내용 제시

일본의 주장과 근거에 대해 학생들의 사전 지식 수준이 낮음

독도 문제에 대한 지식수준도 단편적이거나 오개념을 지니고 있음

이런 경우 교사가 지속적인 비평적 피드백을 통해 학생들의 사고를 개선시켜야 함

→ 근거 제시 없이 주장만 작성한 경우, 그 근거를 제시할 수 있게 지원해 줌

→ 역사적 사실의 시기를 잘못 알고 있는 경우, 해당 사실의 시기를 정확하게 찾도록 하여 연대기 파 악력을 높일 수 있게 유도 해야 함

(20)

독도교육에서의 비판적 읽기 및 글쓰기 학습

학습 진행 및 결과

2. 읽기 단계

◆ 자료의 정확성과 신뢰도 검토하기

- ‘대한제국 칙령 41호’가 시마네현 고시보다 앞선 근대적인 문서라고 진술

-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에 일본이 포기해야 할 영토에 독도가 없다는 일본의 주장에 대해

→ 독도가 기재되어 있지 않다고 한들 독도가 일본 영토는 아니라는 진술

→ 중간까지는 우리 영토였으나 일본의 로비로 최종안에서 제외 되었다는 진술

⇒ 학생들은 자료의 출처보다는 자료의 신뢰성에 적극적으로 의문을 제기

⇒ 1/3의 학생들은 자신이 참고한 자료를 제시하여 역사적 근거를 기반했다는 것을 피력

◆ 역사적 사실 오류와 역사 맥락적 오류 검토하기

대다수의 학생들이 우리나라측 자료외에 일본, 연합국측 자료를 제시하여 일본 주장의 문제점을 논리적 측면, 국제법척 즉면, 사료 비판적 측면(불공정한 사료 해석)에서 비판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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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교육에서의 비판적 읽기 및 글쓰기 학습

학습 진행 및 결과

2. 읽기 단계

◆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저자의 평가 검토하기

-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 이승만 라인, ‘태정관 지령‘ , 일본영역도(1952년),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선언, SCAPIN 677호 등을 활용 → 독도에 대한 일본의 주장을 반박함과 동시에 우리 땅이라는 근거가 되는 우리나라, 일본, 연합국의 자료들을 활용

- 일본 주장의 독도 자료에 대한 부적절한 활용, 역사적 사실과 사료에 대한 불공정한 왜곡 해석, 추 론 과정에서의 논리적 비약 등의 문제점 지적

- 공정하면서 다각적인 차원의 근거를 활용하여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추론

⇒ 학생들이 텍스트와 서브 텍스트를 이해할 수 있게 됨

⇒ 역사교육의 핵심 목표인 텍스트 + 서브 텍스트 이해를 어느정도 달성

(22)

독도교육에서의 비판적 읽기 및 글쓰기 학습

학습 진행 및 결과

2. 읽기 단계

◆ 쟁점 제기

- ‘석도는 독도라 할 수 없나?’

- ‘독도 영유권 다툼에서 우리나라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 ‘시마네현 고시는 대외적으로 많이 알려진 공식 문서인가?’

⇒ 학생들은 학습 시작 단계에서는 단편적인 질문을 많이 던졌음

⇒ 학습이 진행 되면서 역사적 맥락을 고려한 구체적 쟁점에 대한 의문, 일본의 의도에 대한 의문, 독 도 문제 해결 방안 모색 등을 제시함

⇒ 논리적, 이념적 차원으로 그 수준이 진전되었음

◆ 자기 사고 모니터링

- 자신이 분석, 해석, 추론 한 내용에 대해 객관성 점검, 근거의 신뢰성 점검 등을 진술 - 탐구에 필요한 추가적인 질문의 제기 등을 진술

⇒ 학생들의 독도에 대한 인식이 여러 차례의 비판적 읽기 및 글쓰기를 수행하며 다소 높아짐

(23)

독도교육에서의 비판적 읽기 및 글쓰기 학습

학습 진행 및 결과

3. 루브릭(Rubric)분석으로 보는 글쓰기 단계

첫 번째 개인 글쓰기

(1) 형식적 측면

- 절반 정도의 학생들은 자료의 출처를 제시하는 것이 다소 미흡

- ¼의 학생들은 결론 도출 과정에서 일본의 주장에 대한 반론은 상세하게 제시

→ 독도가 한국 영토임은 효과적으로 제시하지 못했고, 논리적 비약으로 결론에 도달 (2) 내용적 측면

- 약30% 정도의 학생이 독도 영유권에 대한 핵심적인 내용을 이해 못함 - 일본 주장의 논거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음

- 독도가 한국 영토인 근거를 타당하게 제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음

- 한국, 일본, 연합국의 관점을 모두 고려하여 일본 주장을 반박하는 동시에 독도가 우리 땅인 근거 를 다각적으로 고려하는 학생은 약 25%

(24)

독도교육에서의 비판적 읽기 및 글쓰기 학습

학습 진행 및 결과

3. 루브릭(Rubric)분석으로 보는 글쓰기 단계

첫 번째 개인 글쓰기

(3) 성향적 측면

- 대다수의 학생이 독도에 관심을 갖고 끈기 있게 탐구함

→ 일본의 주장이 지니는 핵심적인 문제점 지적 및 이에 대한 반론 제기

→ 자신이 찾은 근거의 정확성과 타당성에 대해 비판적 검토를 수행하며 역사적 진실 추구 - 일본 주장을 비판하는 것은 수월하였으나 우리 영토임을 다각적으로 밝히는 것은 다소 미흡 - 자기 사고 성찰 : 근거의 보완, 예상 반론과 재반론 보완, 자신이 학습한 내용에 대한 반성 등

비판적 역사 글쓰기 루브릭(1~5단계)으로 평가했을 때

보통 수준(3단계) : 35% , 높은 수준(4단계) : 39% , 매우 높은 수준(5단계) : 26%

독도 문제가 학생들에게 어느정도 친숙, 학습 시간이 확보되어 학생들이 자료를 다양한 방식으로 다룰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높은 평가를 받음

(25)

독도교육에서의 비판적 읽기 및 글쓰기 학습

학습 진행 및 결과

3. 루브릭(Rubric)분석으로 보는 글쓰기 단계

모둠 글쓰기

- 모둠원 간의 활발한 상호 의견 교환과정에서 논증적 역사 에세이에서의 보완 등이 다뤄짐 - 형식적 측면의 보완, 참고한 자료의 출처 제시 보완, 일본측 근거에 대한 반박 논리 보완 등 - 모둠원끼리의 의견 교환 결과는 모둠의 논증적 역사 에세이 작성에 반영되었음

비판적 역사 글쓰기 루브릭(1~5단계)으로 평가했을 때

보통 수준(3단계) 17% , 높은 수준(4단계) 46% , 매우 높은 수준(5단계)37%

(26)

독도교육에서의 비판적 읽기 및 글쓰기 학습

학습 진행 및 결과

3. 루브릭(Rubric)분석으로 보는 글쓰기 단계

최종 글쓰기

- 개인 의견 쓰기와 모둠 의견 쓰기 등에서 나타난 단점, 근거 누락 파악, 근거 보강 등의 노력

비판적 역사 글쓰기 루브릭(1~5단계)으로 평가했을 때

보통 수준(3단계) 10% , 높은 수준(4단계) 50% , 매우 높은 수준(5단계)40%

역사적 핵심 쟁점 제기, 역사적으로 합리적 근거에 의거한 의견 제기, 역사적 진실 추구 등의 경향 은 단계별 글쓰기, 특히 모둠 의견 쓰기 단계에서 질적으로 향상됨.

(27)

일본에게 하시마 섬이란?

하시마 섬

(28)

일본에게 하시마 섬이란?

일본 나가사키 현 나가사키 시에 위치한 무인도

섬의 모습이 군함과 비슷하여 군함도(軍艦島)로 불림

석탄 채굴이 가능하다고 알려지며 개발이 이루어짐

60년대까지 탄광촌으로 사람이 거주

일본 근대화와 관련된 유산이 존재

201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하시마 섬 전경

(29)

1940년대 일제의 국가총동원령에 의해 강제 징용된 장소

1943년 ~ 1945년 약 500명에서 800명의 조선인이 징용

해저 탄광에서의 12시간이 넘는 강제 노역

‘지옥섬’ 또는 ‘감옥섬’이라 불림 한국에게 하시마 섬이란?

“진폐증으로 쿨럭쿨럭 기침을 해대는 조선 징용공들이 누에처럼 꿈틀거리며 잠들어 있는 지옥섬 하시마의 밤은 사 나운 파도 속에 묻혀가고 있었다.”

한수산 장편 다큐소설 『까마귀』 中

(30)

한국에게 하시마 섬이란?

(31)

하시마 섬 조선인들의 생활

2층 목조건물 4개 동에 분산 수용

• 일본인들은 콘크리트 아파트에서 생활

크기가 10M

2

되는 방 하나에 8명 ~ 15명이 생활

보통 하루 2교대 12시간씩, 최대 16시간까지 노동, 채탄 작업에서 가장 어려운 갱도 막장에 조선인을 투입

조선인 숙소 주변에는 감시탑 설치

조선인 숙소는 섬의 가장자리에 위치, 파도가 클 경우 침수되는 경우가 많았음.

• “

창문에 널판지를 달아 파도가 덮치는 걸 막으려 했다.”

현재 관광지로 개방되었지만, 조선인 숙소가 있던 북쪽은 비공개

(32)

2008년 9월 ‘규슈, 야마구치의 근대화 산업 유산군’의 일부로서 세계유산 잠정 목 록에 추가

• 민간이 아닌 총리실 산하 정부기구 주도

등재 과정 중 세계문화유산 추진 목록에 조선인이 강제 징용된 탄광과 조선소가 포함된 것이 알려짐

한국 정부의 강한 반발로 강제 징용 사실 명시 조건으로 2015년 6월에 정식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등재 직후 일본 정부는 태도를 바꾸어 강제 징용 사실을 언급하지 않고 있음

하시마 섬 논란의 발단

(33)

하시마 섬 논란의 발단

(34)

메이지 시대에(1868~1912)에 국한하여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

• 하시마 섬 내 대부분의 유적은 메이지 시대 이후에 형성

유적의 ‘완전성‘ 결여

• 완전성 : 유산이 가장 활성화되고 제대로 역할을 할 시기

• 하시마 섬의 완전성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시기

근대기 산업 유산은 원형이 보존되어야 함

• 현재 하시마 섬은 사실상 폐허로 방치되어 있는 유적

인류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와 전혀 관련이 없음

• 침략 전쟁을 준비한 군수산업시설에 불과

하시마 섬 논란의 발단

(35)

하시마 섬 논란의 발단

유네스코 스스로 자신들의 권위를 낮추고, 유네스코가 지켜온 원칙과 질서가

붕괴되는 것!

(36)

독일의 역사인식

메르켈 총리

•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는 것은 독일인의 영원한 책임.”

• “아우슈비츠는 인간이 서로에게 얼마나 잔인한 짓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경고.”

브란트 총리

• 1944년 바르샤바 봉기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기념비 앞에 서 무릎을 꿇음으로서 나치 범죄에 대해 상징적으로 사죄

• 당시 일부 독일 국민들은 이를 국가적 수모라고 생각할 정

도였음.

(37)

독일이 본 하시마 섬 논란

독일 언론 ‘디벨트‘의 <공포의 섬>이라는 기사 중

(38)

원폭 투하와 해방…

원폭이 투하 된 나가사키 시내와 하시마 섬은 매우 가까운 거리에 위치

원폭 현장의 사후 처리를 군함도의 조선인들이 담당

사후 처리에 동원된 조선인들에게서 피폭 증상 발견

• “

청소 작업 후 2주 동안 각혈이 멈추지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 갈 수 있는 일본 기업의 지원책은 전무

• 일본이 각종 명목으로 임금을 공제

징용 피해자들의 유골 수습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

• 1974년 하시마 탄광이 폐광되고, 조선인의 유골을 이장하면서 위패를 모두 불태움

• 유골 일부는 인근 절에 안치하고, 공양탑 설치가 전부

(39)

공양탑

(40)

공양탑

하시마 탄광 폐광 이후 조선인 징용피해자들의 유골을 이장하고 세운 탑

잘 정돈된 일본인 묘지와는 달리 공양탑 비석만 세워져 있음

방송 공개 이후 한국인들의 방문 증가, 공양탑으로 가는 길 정비

나가사키 시에서 안내판 설치 불허

• 공양탑에 묻혀 있는 조선인들의 유골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

현재는 나가사키시에 의해서 공양탑으로 가는 길이 폐쇄된 상태

나가사키 시에서는 조선인 유골을 인근의 금송사로 이전했다고 설명

(41)

공양탑

(42)

진실을 찾는 일본인

이노우에 요코

• ‘

조세이 탄광 수몰참사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 공동대표

※조세이 탄광 수몰 참사

1942년 조세이 탄광이 수몰된 사건. 136명의 조선인 사망자 발생

• 1991년 희생자 명단 입수 후, 한국의 유족들에게 전달

 이를 계기로 한국에서 유족회 결성

 매년 유족들은 일본에서 추모 집회 개최

 2013년 모금을 통해 추모비 건립

• “조선인들의 생명, 인생, 생활의 희생 위에 현재 일본인의 삶이 성립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을 부정적인 역사로 감추는 게 아니라 일본 정부가 똑바로

직시하고 인정하는 태도를 보여주길 바란다.

(43)

진실을 찾는 일본인

인천 삼릉의 ‘줄사택’

‘줄사택’은 미쓰비시 공장에 징용된 조선인들의 숙소

1940년대 인천 일대의 미쓰비시 군수 공장에서 많은 조선인이 강제 동원

“손가락이 잘리거나 다리가 절단돼 병원으로 실려오는 한국인 노동자가 많았다.”

– 삼릉 일대 병원 근무자 증언

삼릉 지역 외에도 전국에 8천개가 넘는 조선인 강제 징용 장소가 있음

하시마 섬의 해저 탄광 소유 기업

(44)

잊지 않기 위한 노력

소설 ‘군함도’ 출간 – 한수산 작가

• 2003년 조선인 강제 징용을 다룬 ‘까마귀’ 출간

• 2016년 제목을 ‘군함도‘ 로 바꾼 뒤 완결판으로 출간

• “작가가 해야할 일은 바로 과거의 역사를 문학적 기억으로 남기는 일“

영화 ‘군함도‘ 제작 예정 – 류승완 감독

• “정확한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게 필요.”

• 일본 내에서는 명백한 역사왜곡이며, 쓰레기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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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마 섬에서의 ‘게릴라가드닝’

• 도심 속 방치된 땅에 꽃과 나무를 심는 사회 운동

• 꽃을 심은 곳에는 하시마 섬 강제 노역에 대한 설명판 설치

• “하시마 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면 한다.”

잊지 않기 위한 노력

‘하시마 섬 강제 징용‘ 관련 내용 구글에 기재 – 서경덕 교수

• 일본 정부에 대한 신랄 한 비판

• “일본 정부의 이중적인 모습을 세계 네티즌들에게 알리는 것이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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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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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란?

일본이 만주 사변을 일으킨 직후부터 태평양 전쟁에서 패전한 1945년까지 전쟁의 효율적 수행이라는 명목 하에 설치한 ‘위안소’에 강제 동원되어 성노예 생활을 강 요당한 여성

문헌과 증언에 따르면 작부, 특수부녀, 추업부, 창기 등의 호칭으로 나타남

위안소도 육군오락소, 구락부, 군인회관 등의 호칭으로 불림

강제로

납치되거나 매수된 조선인 여성과 중국인 여성이 대다수

일본군이 점령하였던 동남아시아에서도 피해자 존재

유럽 내에서 유일하게 네덜란드가 위안부 피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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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란?

일본군 ‘위안소‘ 분포도

만주, 중국 본토, 동남아시아까

지 일본이 전쟁을 벌였던 지역

곳곳에 '위안소’가 설치되었음

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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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의 명칭 논의

정신대

• 정신대는 일제가 노동력 동원을 위해 만든 것

• 정신대에 강제 징용된 여성 일부가 ‘위안부’로 끌려간 사례는 있으나 같은 의미는 아님

‘위안부’(Comfort Women)

•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명칭

• ‘위안’이라는 단어는 일본군의 입장이기 때문에, ‘위안부'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

• 일본에서는 앞에 ‘종군’이라는 단어를 붙여 역사적 책임을 은폐하려는 시도를 보임

성노예(Military Sexual Slavery)

• 현재 UN 등 국제사회에서 주로 사용하는 명칭

• 1996년 UN인권위원회에 제출된 ‘라디카 쿠마라스와미’보고서에서는 이 문제를 명확하 게 ‘전시 하 군대 성노예제(Military Sexual Slavery in Wartime)으로 규정

• 일본의 강제적 모집, 폭력성 등을 고려한다면 가장 적합한 명칭

(50)

‘위안부’의 명칭 논의

(51)

'위안부’ 피해자들의 삶

연합군의 포로가 되어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다가 귀국하는 경우도 있었음.

상당수는 현지에 버려지다시피 함.

일본이 패전 후 ‘위안부’를 살해하는 일도 있었음.

구타 및 가혹행위로 인한 외상, 성병, 불임 등의 직접적인 후유증을 겪음.

육체적 고통으로 인한 약물 복용으로 약물 중독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음.

모욕감, 사회에서 받을 불이익과 낙인, 우울증 등의 심리적 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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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들의 절규

수요집회

• ‘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 이행을 통한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 회복 촉구

• 일본 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일 12시에 개최

• 1992년 당시 기이치 일본 총리가 방한한 것을 계기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들이 처음 시작

• 500회가 된 2002년 3월, 단일 주제로 개최된 집회 중 세계 최장 기간 집회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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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노력

한국 정부의 노력

일본 정부에 문제 해결 요구

 사죄와 반성 촉구 연설,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정부간 회담 진행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 피해자 지원 법률 제정(1993)

 특별 지원금, 생활안정금, 간병비 지원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연구와 기념사업 지원

 역사적 자료 수집, 조사, 연구, 전시 등의 사업 수행

 역사관, 기념관 설립 지원

국제사회 공감대 확산

 국제사회 동참 촉구

 프랑스 앙굴렘 국제 만화 전시회 참가(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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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노력

한국 시민 사회의 노력

피해자들에 대한 다양한 지원 활동

 재단 운영과 모금 운동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역사 알리기와 인권 활동

 역사관, 기념관 설립 및 운영

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에서 피해자 증언 활동 지원

피해 국가 및 관련 단체와 연대

 모의 여성국제전범법정 및 아시아연대회의를 통한 문제 해결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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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의 노력

미국의 경우 각지에 기림비를 설치

 설치 지역 : 미시간, 뉴욕, 캘리포니아, 버지니아, 뉴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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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책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하고, 이것이 우리의 ‘책임‘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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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및 출처

∙ 김해식, ≪글쓰기 특강≫, 파라북스, 2011.

∙ Ricard Marius, ≪역사글쓰기, 어떻게 할 것인가: 시간을 재구성하는 역사 글쓰기의 모든 것≫, 휴머니스트, 2010.

∙ 김한종 외 5인, ≪역사교육과 역사인식≫, 책과 함께, 2005.

∙ 김한종 외 5인, ≪역사교육의 이론≫, 책과 함께, 2009.

∙ 김한종 외 5인, ≪역사교육의 내용과 방법≫, 책과 함께, 2007.

∙ 문창로, <역사 글쓰기를 통한 사료학습방안>, ≪중등교육연구≫, 53, 2005.

∙ 양치구, <역사교육에서 비판적 읽기 및 글쓰기 학습 모형 개발 –독도교육 사례를 중심으로->, ≪역사교육 논집≫52, 2014.

∙ 최용성 외 3인, <연구윤리에서의 표절 문제와 표절 예방교육에 관한 연구>, ≪한국시민윤리학회보≫, 22, 2009.

∙ 김미선, <예비 역사교사의 논증적 역사 글쓰기 능력 신장을 위한 교수 방안>, ≪사회과 교육≫51, 2012.

∙ 김미선, <논증적 역사 글쓰기가 비판적 사고력에 미치는 효과 – 사범대학 역사교육과의 논술교과 운영을 중심으로> , ≪역사교육≫,12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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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및 출처

∙ 김은정, <대학생의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한 논증적 글쓰기 연구 – KBS 역사저널 그날 <고종, 아버지 장 례식 불참 사건>의 게시판 글을 중심으로 , ≪대학작문≫, 11, 2015. ≪≫

∙ 유시민, ≪유시민의 논술 특강≫, 생각의 길,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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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현, <고등학교 역사과 서술형-논술형 평가의 특징과 개선 방안>, ≪역사교육연구≫,4, 2006.

∙ 방지원, <역사과 서술형 평가의 필요성과 개선방안>, ≪역사교육연구≫, 11, 2010.

∙ 김진하, <프랑스 교육에서 논술의 위상에 대한 고찰>, ≪프랑스 어문 교육≫, 26, 2007.

∙ 김우준, <중북 동북공정과 우리의 대응>, ≪백산학보≫80, 2008.

∙ 박수경, <나가사키 하시마(군함도)를 둘러싼 로컬 기억의 생산과 정치≪일본어 문학≫,6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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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 사 합 니 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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