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수필론
한국고전문학약사
• 고전문학의 시대구분
고대(상고) – 중세 – 근대이행기
고대 – 통일전쟁기까지
중세전기 – 삼국통일~고려전기(불교)
중세후기 – 고려전기~조선전기(유교)
근대이행기 – 조선후기~갑오경장
고대와 중세 개념 비교
• 고대 : 민족종교, 선민의식
중세 : 거대종교(이념)의 시대
• 고대 : 민족종교에 기반한 신화 – 건국신화 (단군, 주몽 등)
중세 : 거대종교에 기반한 종교문학
중세와 근대의 개념 비교
• 중세 : 종교(또는 그에 상응하는 이념)의 지 배를 받음 – 불교, 유교, 기독교 등
근대 : 다양한 이념과 종교가 용인됨
• 중세 : 신(이념) 중심 – 보편성, Code
근대 : 인간 중심 – 개별성, 다양성 인정
• 중세 : 보편성에 기반한 시문학 발달(상징)
근대 : 개별성에 기반한 산문문학 발달(사
실주의, 경험주의)
고대문학(건국신화)
• 건국신화(서사시) - 선민의식, 자기중심주의, 순장제
단군신화(고조선) – 천신족(환웅), 곰과 호랑이 토 템
주몽신화(고구려) – 천신족(해모수), 물의 신(하백- 딸 유화)
국중대회(나라굿)에서 원시종합예술로 연행 – 영 고(1월, 부여), 동맹(10월, 고구려)
영웅서사시 - 영웅의 일생
고대문학(고대가요)
• 배경설화
공후인은 조선 진졸사람인 곽리자고의 아내 여옥이 지었다. 곽리자고가 새벽에 일어나 배를 젓 고 있었는데 머리가 센 미친 사람 하나가 머리를 풀고 술병을 낀 채 물살을 헤치며 건너가려 했다. 그의 아내가 뒤따르며 막아보려 했으나 막지 못하고 결국 미친 이는 물에 빠져 죽었다.
이에 그의 아내는 공후를 타며 공무도하(公無渡河)의 노래를 지었는데 소리가 매우 구슬펐는데 노래를 마치고는 스스로 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
곽리자고가 돌아와 아내 여옥에게 그 노래소리를 들려주며 이야기를 하였더니, 여옥은 이를 슬 퍼하여 공후를 타며 그 소리를 그대로 내었는데 듣고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여 옥은 그 소리를 이웃에 사는 아낙인 여용에게 전해 주었는데 이를 이름하여 공후인이라 불렀다.
[고금주 권 중. 음악 제3]
공무도하가 - 여옥. 고조선(290-306)
公無渡河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公竟渡河 임은 그예 건너시고 말았네 墮河而死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當奈公何 가신 임을 어이할꼬
[해동역사 권47. 예문지6. 본국시1]
• 쟁점
백수광부는 酒神 그처는 樂神(정병욱)
백수광부는 미숙련된 巫夫, 그의 익사자체는 죽음의 신비체험에 의한
자기 변용을 꾀하는 入巫的 苦行을 수행하다가 실패로 돌아가자 일어
난 익사사건으로, 당시 샤먼의 능력이 현저하게 약화된 것으로 인식되
던 시기의 사회 배경을 깔고 있다.(김학성)
구지가 구간 등. 신라 유리왕19(42)년 .
龜何龜何 거북아 거북아 首其現也 머리를 내어라
若不現也 내어 놓지 않으면 燔灼而喫也 구워서 먹겠다
[삼국유사 권2. 가락국기]
원시종교 생활에서 볼 수 있는 원시적 기
도로서의 祝願詞
황조가 -고구려 유리왕 3(기원전 17)년
翩翩黃鳥 펄펄 나는 저 꾀꼬리 雌雄相依 암수 서로 정답구나 念我之獨 외로운 이내 몸은 誰其與歸 뉘와 함께 돌아갈꼬
[삼국사기 권13. 고구려본기1. 유리왕]
쟁점
성적 제의에서 한 부족장에 의해 불리워진 구애의 노래, 禾姬와 雉姬의 문제 에 있어 禾(벼) 稚(꿩) 착안하여 시대상과 결부시켜 유리왕대가 수렵경제체 제로 부터 농경경제생활체제로 발전된 역사적 사실을 신화적으로 투영.(김 승찬)
유리왕이 화희·치희 사건을 겪고 나서 이미 있어왔던 짝을 찾는 노래로서의
황조가를 불렀을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조동일)
중세전기 문학 - 불교
• 신라
향가 – 승려(융천사, 월명사, 충담사, 광덕, 영 재, 균여), 불교적 기원(도천수대비가, 풍요), 문헌설화
고려가요 - 궁중음악
중세후기문학 - 유교
• 고려후기 – 성리학의 유입(안향)
경기체가(한림별곡, 관동별곡, 죽계별곡)
성리학에 대한 이해 - 가전체 문학(觀物窮理)
• 조선전기
유교윤리의 전파(오륜가)
성리학에 대한 이해 심화(강호시가)
修己(物我一體, 獨善其身) -> 治人(兼善天下)
士林派(道學)와 勳舊派(詞章)
士禍와 黨爭
畿湖士林과 嶺南士林
心性假傳 - 天君傳類
훈구파와 사림파
• 훈구파 : 훈구란 개념이 명확해지는 기점은 세조가 단종에게서 왕위를 찬탈 했던 시기
왕의 측근으로서 하나의 특권적인 부류를 형성한 집단
훈구파의 공통점은 중앙 정계에서 확고한 기반을 구축하고 권력과 토지를 차지한 채 그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세력이었다는 점
훈구파란 관료적인 성격이 강한 문인들의 세력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음.
• 사림파 : 사림이란 용어가 공식적으로 자주 쓰이게 된 것은 학통으로 보아 정몽주-길재-김종직으로 이어지는 신진사류가 15세기 후반 중앙정계에 진 출하면서부터
사림이란 아직 관계에 진출하지 못하고 전원이나 산림에 묻혀 유학(儒學)을 궁구하며 실천하는 학자·문인집단
관계 진출 후 훈구파에 대항하여 왕도정치의 실현이란 공동의 선을 위해 집결된 정치 집단
사림파가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것은 성종 연간에 김종직․김광필․정여창 등이 중앙정계에 진출하여 활동하기 시작할 때
• 성리학 실천 방법
훈구파는 사장을 중시하고 사림파는 경술을 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