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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보건의료기술평가학회 > 학회지 > 왜 자살률 세계 1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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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 론

2003년 이후 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이하 OECD)

a)

국가 중 한국의 자살률은 계속 해서 1위를 지키고 있다. 2위는 일본으로, 한국과 일본은 인구 대비 자살률에 있어서 내내 부동의 1, 2위를 지켜 왔다. 인구 표본 추출로 자살률을 추정해 온 중국의 자살률이 거의 한국 이나 일본과 대등한 수준일 것으로 추정된다. 동아시아 국가

들의 자살률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에 있다.

1,2)

한 사람의 자살만을 파고 드는 자살의 심리적 부검(psycholog- ical autopsy)에서는 유서나 자살 당시의 상황, 개인력, 가족력 등을 모두 들여다 보게 된다. 그런데 한 개인이 아니라 한 시 대로 눈을 돌려서 종적(역사적), 횡적(동시대적)으로 사회적 부검(social autopsy)을 시도해 보자.

1987년 한국의 자살률은 19.67명/인구 10만 명이었고 이후 10년 후까지 극적 변동 없이 유지되다가, 1998년 돌연 자살률 이 26.69명으로 치솟은 이후 더욱 높아진 후 유지되면서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14년 동안 지속되었다. 만약 자살이 개인적인 심약한 기질이나 염세적인 태도나 우울 성향과 같

Why Being Ranked the World 1st in the Suicide Rate?

Guk-Hee Suh

Editor-in-Chief, JoHTA; Professor, Hallym University School of Medicine, Hwaseong, Korea

왜 자살률 세계 1위인가?

보건의료기술평가 편집위원장, 한림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서 국 희

Received May 28, 2017 Revised May 30, 2017 Accepted June 5, 2017 Address for Correspondence:

Guk-Hee Suh

Department of Psychiatry, Dongtan Sacred Heart Hospital, Hallym University

College of Medicine, 7 Keunjaebong-gil, Hwaseong 18450, Korea Tel: +82-31-8086-2340 Fax: +82-2-382-5910 E-mail: [email protected]

The World Health Organization found higher suicide rates among the elderly in rapidly industrial- ized Asian countries such as China, Hong Kong, Japan, South Korea, Malaysia and Singapore, com- pared to the corresponding rates of recently industrializing Asian countries like Vietnam and Sri Lanka. As a case in point, suicide rates in South Korea have been the highest in the world since 2003 and are rising especially among older people. Since the middle of the 20th century, regional indus- trialization−the so called modernization−has taken place in Asian countries like Japan, Korea, Tai- wan, Hong Kong and Singapore, and is in the process of happening in mainland China, India, Thai- land, Indonesia, Philippines, Vietnam, Cambodia, Myanmar and Sri Lanka. This has caused a rapid social and economic transition towards transforming a person who used to be tied to a family, a com- munity and a set of traditional values, into an individual with the liberty to live a life of their own in pursuit of acquiring goods and relying on services. The process of rapid industrialization in East Asia witnessed ever increasing broken family ties. The consequences of industrialization in East Asia have brought about urbanization, the collapse of patriarchy and the empowerment of younger people, women and the ‘working classes’. The Industrial Revolution in the West broke strong family ties and small intimate communities whose members depended on each other for survival, in the same way that modernization has done in East Asia. On the psychological level, happiness depends on expec- tations rather than objective conditions, which means people become satisfied when reality matches expectations. Dramatic development caused expectations balloon so that all the achievements in recent decades translate into greater expectations rather than greater contentment and into greater dissatis- faction after experiencing losses during economic crisis in 1997 and 2008 in Korea.

Key Words Suicide · Asia · Korea · Happiness · Satisfaction · Economy.

J Health Tech Assess 2017;5(1):1-6 ISSN 2288-5811

Copyright © 2017 The Korean Association for Health Technology Assessment

Editorial

JoHTA

a)

2017년 WHO 보고서에 한국이 자살세계 4위로 보고되었지만,

OECD 국가 중에서는 여전히 1위이다. 농약 사용 규제가 효과적이

었다고 한다.

(2)

은 개인의 성향에 의한 것이라면, 통계적으로 대수의 법칙을 따를 것이기 때문에 기복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갑자기 치솟은 자살률은 격심한 사회변동이라는 집 합적 충격이 개별 자살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음을 시사한다.

에밀 뒤르켐은 그의 저서 <자살론>에서 자살이 개인적 현 상에 불과하다고 여기던 당시의 통념을 깨고, 개별 자살들에 서 관계를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특정한 경향을 해석함으 로써, 그 특정한 경향을 사회변동과 연결시켰다. 1997년 외 환위기로 IMF 관리체제하에 들어가면서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파산과 실직과 더불어 노숙자가 늘어나고 가족 이 해체되고 자살자가 급증했다. 그런데 마니너스 경제성장 과 실직이나 파산이 자살 급증의 원인이었다면, IMF 관리체 제를 벗어나고 경제가 다시 활황 국면을 맞았을 때 자살률 이 이전 수준으로 낮아져야 하는데 자살률은 점점 더 높아져 갔다.

사회가 앓는 병을 불가피하게 개인도 앓는다.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병이 무엇일까? 에밀 뒤르켐은 “한계를 모르는 욕 망이 목표를 잃는 경우” 아노미(anomie)가 발생한다고 말한 다.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경제성장률의 상승은 개인의 기대치를 부풀어 오르게 만들어 삶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지 못하거나 떨어뜨리는 상황이 발생하면 기대와 현실 사이의 차이가 아노미를 초래한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아노미’라고 진단하기에 앞서, 먼저 아노미가 생겨나게 만든 원인을 역사적 으로 들여다 보고, 작금의 급속한 사회적 변화에 주목하자.

아노미의 역사적 고찰: 개인과 여성의 자유

‘개인’이라는 개념은 개별적 인간의 존중과 자기 결정을 바 탕으로 한다. 프랑스혁명은 자유와 평등이란 가치를 바탕으 로 ‘개인’이라는 의식이 생겨나게 만들었다. 중세를 지나 계몽 시대가 오고 봉건체제에서 해방되자 개인의 존중을 외치기 시작했다. 특히 개인의 개별성을 자각한 여성에게 평등은 곧 남녀 평등을 의미했다. 하지만 당시의 배타적인 가족과 친밀 공동체는 여성의 자유와 남녀 평등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한 번 개별성을 자각한 여성은 지속적으로 억 압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했다. 여성이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와 남녀 평등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한 것은 여성의 노동력을 필 요로 했던 산업사회로 대별되는 시장(market)이었다. 산업사 회라는 시장은 익명의 다수가 모인 곳으로 여성의 노동력과 남성의 노동력에 동등한 가치를 부여했다. 당시의 가족과 친 밀공동체는 지금의 국가와 시장이 제공하는 모든 것을 제공하 고 있었기 때문에 개인은 굳이 국가나 시장에 의지하지 않고 도 많은 것들을 가족과 친밀공동체(가문, 문중, 마을 등) 내

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려 는 시장은 생산을 늘리기 위해 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노동력 확보와 시장 확대에 지장을 주는 가족과 친밀 공동체를 약화시키려고 했다. 이를 위해 시장과 더불어 국가 는 학교 교육을 통해 대중에게 개인이라는 개념을 일깨우고, 국가가 교육, 보건의료, 연금, 복지, 주거, 국방 등의 안전을 모두 책임진다는 사실을 가르쳤다. 시장의 필요에 따라 개인 에게 직업의 자유와 거주 이전의 자유가 주어졌고, 사유재산 에 버금가는 이념으로 자리잡았다. 채 200년이 지나지 않아 여성의 자유와 남녀 평등이 이루어졌다. 여성이 사회로 진출 하자 가족 속에서 여성이 하던 역할이 축소되거나 사라졌고 점차 가족이 축소되거나 해체되기 시작했다. 가족이 해체되 기 이전에 이미 친밀공동체는 축소되거나 소멸했다.

여성이 자유를 획득하고 남녀 평등을 이룰 수 있었던 가장 강력한 동력은 산업사회의 일원이 되면서 획득한 경제적 능 력이었다. 과거 가족과 공동체에 의존했던 당시의 여성에게는 가족이나 공동체로부터의 추방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런데 여성 해방의 대가는 가족과 공동체의 해체였다. 인 권이기도 한 남녀평등은 산업사회의 주역들이 노인이 되기 시작하는 후기산업사회에 부메랑으로 돌아와 후기산업사회 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다시 가족제도를 부활시키거나 전통 사회의 공동체로 회귀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개인이라는 개념 과 인권에 눈 뜨고 그것을 쟁취해 온 역사를 결코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가족과 공동체의 와해

가족과 공동체가 와해되자 개인은 가족과 공동체가 제공하

던 유대감을 상실한 채, 경제적 거래를 통해서 서비스를 구매

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삶의 조건에 처하여 소외당하고 위협

을 받고 감시를 당한다고 느낀다. 하지만 과거의 가족과 공

동체가 개인에게 가한 억압이 현대 사회가 지금 개인에게 가

하고 있는 억압보다 결코 덜하지 않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

만 해도 부모가 자녀를 때리거나 모욕하지 못하도록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무시당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회에서 부모의 권위는 신성한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부모에 대한 존경과 복종은 가

장 신성한 가치에 속했고, 부모는 거의 모든 행위를 아무런

제약 없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다. 심지어 신생아를 살해

하거나, 아기를 노예로 팔거나, 나이가 두 배나 많은 남자와

딸을 결혼시킬 수도 있었다. 지금은 부모의 권위가 완전히

떨어졌다. 젊은이는 연장자의 말을 따를 의무가 있다고 믿지

않는다. 국가 역시 가족관계를 전보다 예리하게 주시하고 있

(3)

다. 부모에게는 자녀를 정부의 학교에 보내어 교육받게 할 의무가 있다. 부모가 자녀를 학대하거나 폭력을 가하면 국가 가 나서서 저지할 수 있다. 필요하면 국가는 부모를 감옥에 보내고 아이를 다른 가정에 위탁할 수도 있다.

표 1에 가족과 공동체 대 국가와 시장의 특성을 비교해 보 았다.

자신이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이 존재감의 원천이 다. 존재감은 자신이 어딘가에 연결되어 있을 때에만 생겨난 다. 현대인은 익명이기를 원하면서도 모순되게도 간절하게 어딘가에 연결되었다는 존재감을 원한다. 개인이 익명의 투 명한 존재로 세상과 연결되어 살 수 있도록 해 준 것은 돈으 로 대별되는 자원이었다. 하지만 자원이 고갈되어 더 이상 소 비를 할 수 없게 되어 연결이 단절될 때마다 존재감을 상실 하고 불안과 공포에 빠지게 된다.

그럼에도 개인은 살이 맞닿는 거리에서 느끼는 친밀감과 온정을 그리워한다. 결핍된 친밀감을 회복하려는 욕구를 지 닌 현대인의 허기가 마약에라도 취한 듯 SNS 등을 통해 가 상적 연결을 추구하게 만들지만, 이런 허기가 실제로 이상적 인 공동체를 향한 강력한 동력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왜냐하면 개인의 자유는 언제나 공동체의 결속과 상충하기 때문이다. 점점 더 작은 단위로 쪼개지고 개인을 넘어 한 개 인이 같은 것을 여럿 소비하게 되면서 경제가 폭발적으로 발전했다. 여기에 가족과 공동체가 해체되어야 할 이유가 있 다. 왜냐하면 공동체가 존재하면 경제가 발전하지 않기 때문 이다. 가족과 공동체의 해체는 역사적 필연이었다.

우리 사회의 해체 징후

소련의 붕괴를 예측하여 유명해진 인류학자 에마뉘엘 토드 는 문맹률이 낮아지면 문명화가 이에 비례하여 이루어지고 저출산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문명화는 도시화율과도 밀접

한 연관이 있다. 저출산 경향은 문명화와 도시화, 소비화 흐름 속에서 일어난다.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인 한국사회의 문 맹률은 세계 최저 수준이고, 소비화의 또 다른 척도이기도 한 도시화율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 사회에 가족이나 공동체가 해체된 징후들이 뚜렷해 지고 있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 급격히 1위로 부상한 일 인가구, 독거노인의 증가, 사회 관계의 축소, 무미건조하고 사무적인 인간 관계의 증가 등에 따른 공허감과 고립감이 상 존하고 있다. 유행처럼 혼자 술을 마시고(혼술) 혼자 밥을 먹 는(혼밥) 사람을 위한 술집이나 식당이 늘어나고, 결혼이라는 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이혼이 아니라면 졸혼(卒婚)이 라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b)

여성이 경제적 능력을 획득하 고 남녀평등이 이루어지면서 결혼의 굴레를 벗어나자고 나선 것이다. 이렇게 가족은 급속히 해체되고 있다. 이미 과거에 막 강한 영향을 행사했던 혈연공동체나 지연 공동체도 힘을 상 실하고 거의 사라졌다. 불행하게도 인간 간 연결고리에 존재 하는 인간들 간의 신뢰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보증도 가족 한테는 서지만 친구한테는 서주지 않는 세상이다. 친구는 언 제 배신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웃사촌’이란 말은 이제 死 語가 된지 오래다. 과거에는 이웃 간의 따뜻한 정으로 이어진 인연이 어설픈 혈연보다 강했지만 지금은 그런 의식이 급속 히 사라졌다. 마지막 보루로 여기던 가족끼리도 서로 돕지 않 는 시대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가족, 개인과 공동체와의 관 계가 축소되는 대신, 개인과 기계(스마트폰, 컴퓨터)와의 관계 가 새롭게 확대되고 있다. 기계는 시공간을 넘어 시장의 정보 와 메시지를 개인에게 전파한다. 개인과 기계의 관계 속에서 개인에 대한 시장의 영향력이 일방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신 뢰할 수 있는 인간 관계는 사라지고 낯선 사람들과의 인간 관 계를 SNS 등을 통해 경험하면서 사회적 관계가 팽창되지만, 신뢰에 기반한 관계가 아니라는 불확실성이 불안, 걱정, 우울 을 유발한다.

수백만 년 동안 친밀감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 속에서 살 아왔던 인류의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개인은 모래알처럼 흩 어져 기계를 매개로 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인간-기 계 관계가 시작되면서 인간-인간 관계가 더욱 소원해지고 있다. 인간-기계 관계가 늘어날수록 진정한 친밀감을 느낄 수 없게 되어 개인이 느끼는 고립감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동일한 공간 속에서 일하는 동료들도 각자 컴퓨터에 매달 려 있고, 한 집에서 가족이 마주보고 대화를 하기보다는 같 은 방향을 쳐다보며 같이 텔레비전을 보거나 각자 스마트폰

b)

일본에서 졸혼에 대한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를 가능하 게 만든 것은 2007년 법 개정을 통해, 배우자의 연금의 절반을 이혼 후에도 받을 수 있도록 만든 사회적 변화였다.

Table 1. 가족과 공동체 대 국가와 시장의 특성

가족과 공동체 국가와 시장

존재 과거 현재

경제 호혜성 경제(예: 품앗이,

두레)

화폐 경제

분쟁 해결 수단 복수 법률

세금 부과 대상 가족이나 공동체 개인

구성원 간 결속력 강력함 느슨함

개인의 자유 불인정 인정

인간의 평등 불인정 인정

시간 관념 느슨함 강박적, “시간은 돈”

연금 자식, 구성원 연금가입과 불입이 필수

교육 선별적 소수 개인

(4)

이나 컴퓨터에 매달려 있다. 버스나 지하철 속의 승객들은 어딘가에 접속하여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고 있을 뿐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다.

사회적 구심력(Centripedal Force)과 사회적 원심력(Centrifugal Force)

구심력은 회전하는 물체에서 중심방향으로 작용하는 힘으 로, 물체를 줄에 달아서 회전시킬 때 물체가 날아가지 않도 록 줄을 잡아당기는 힘이다. 동시에 물체는 줄에서 떨어져 중 심 밖으로 나가려는 힘을 받게 되는데, 이것이 원심력이다. 사 회적 구심력은 행복을 증가시키고, 사회적 원심력은 고통을 증가시킨다. 여기에는 네 가지 요소가 있다. 사회적 구심력에 는 건강, 관계, 자원, 지식 및 기술이 있고, 이것이 결핍되면 사회적 원심력으로 작용하는 질병, 고립, 빈곤, 무지가 발생 한다. 건강-질병, 관계-고립, 자원-빈곤, 지식 및 기술-무지 라는 네 개의 짝들이 생긴다. 설사 네 가지 요소를 다 갖추지 못 하더라도 건강과 관계, 두 가지만을 유지하더라도 자살이라 는 극단적 선택을 할 가능성은 급격히 줄어든다. 설사 관계의 결핍으로 고립이 발생하더라도 건강과 자원, 둘만 있어도 여 전히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할 가능성은 낮다. 고립과 빈 곤에 처하더라도 건강과 지식 및 기술, 둘만 있더라도 아직 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할 가능성은 낮다. 그런데 건 강의 결핍으로 인한 질병이나 부상과 자원의 결핍인 빈곤의 두 요소가 겹치면 자살의 위험이 높아진다. 사회적 원심력 중 어느 셋만 겹치더라도 자살의 위험은 더욱 현저하게 높아질 것이다.

건강과 질병

물질적 풍요가 가져온 편리함과 안락함은 육체적 수고를 줄여 에너지 소모를 줄이고 만성적인 에너지 과잉 상태를 초 래하여 비만,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심장병 등 만성병들을 유발하고 있고 환자 숫자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나아가 평 균 수명이 증가하면서 암 발생률도 급속히 증가하여 암 환 자도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2003~2010년 사이의 기대여명 은 3년 증가했지만, 평생 만성병을 앓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 간은 7~8년으로 보고되었다. 마지막 10년 중 병을 앓는 기간 은 남성 5.4년, 여성 5.9년이다. 질병은 고통을 증가시키고 행 복을 감소시키기 때문에 자살을 유발할 위험이 크다.

관계와 고립

가족 속에 친밀성이 존재하고 인간은 친밀성을 필요로 한 다고 하면, 결코 가족을 포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친밀성은

본능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밀성을 가족 내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모든 가족 관계에 친밀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가족 관계는 양면적이다. 가족은 가장 확실하 게 소속감과 친밀감을 제공할 수 있지만 동시에 자기밀도를 낮추어 개인을 질식시킬 수도 있다. 개인들이 네트워크로 연 결된 사회이기에, 개인은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되는 ‘연대’를 통해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관계를 확립할 수도 있다. 고립 관련 국내 지표로는, 최근 20년간 우리나라의 황혼 이혼 비율 이 6.1%에서 26.4%로 증가한 것을 들 수 있다.

자원과 빈곤

사회학자가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가구 형태를 핵가족(nu- clear family)이라고 명명했을 때에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가장 작은 단위라는 뜻을 내포한 것이었다. 그런데 정규분포 의 종 모양 곡선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표준적 속성을 지닌 집단이었던 핵가족이라는 정상성의 지위를 계승한 ‘새로운 정상성(the new normal)’으로 ‘1인 가구’가 부상하고 있다. 1 인 가구에는 가정 경제를 책임지는 부모, 집안 분위기를 윤 택하게 해 주고 소원해진 부부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자녀, 속내를 이야기할 수 있는 배우자가 없이 혼자다. 왜 더 많은 사람들이 1인 가구가 될까? 1인 가구 증가는 단연 노인 인구 에서 두드러진다. 오래 살수록 혼자 살게 될 가능성이 높아 지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볼 때 1인 가구의 증가는 이타주 의의 몰락이라기보다는 단지 가정중심성이 약화되는 징후로 볼 수 있다. 평균 수명의 증가로 말년에 혼자 살게 되는 여성 이 늘어나고, 이혼율이 높아지면서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나 고, 만혼이나 비혼으로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자원이 전혀 없이 노년을 맞이하는 노인이 늘어나고 있다. 젊은 세대일수록 그럴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만 65세 이상 노인의 절반이 아직도 일을 하고 있고, OECD 평균이 12.8%인 노인빈곤율이 우리나라는 48.5%

이다. 노인이 은퇴 후 빈곤선 아래로 몰락하는 비율이 프랑 스 20명 중 1명, 독일이나 영국 10명 중 1명, 일본 5명 중 1명 인 데 반해 우리나라는 2명 중 1명이다. 만약 선진국도 복지 혜택이 사라진다면, 지금의 우리나라보다 빈곤선 아래로 몰 락하는 비율이 더 높아진다.

생물학적 빈곤선이란 생존 자체를 위협할 정도의 영양실

조와 기아에 처한 한계상황을 말하며, 수천 년 동안 인류는

생물학적 빈곤선 아래로 몰락할 위험이 상존하는 세상에서

살아왔다. 폭우로 농사를 망치거나 강도를 당해 가축을 모두

빼앗기면 식구 모두가 굶어 죽기 일쑤였다. 20세기의 정치적,

경제적, 기술적 발전으로 인류는 생물학적 빈곤선 아래로 몰

락할 위험은 거의 없어졌다. 실직이나 전 재산을 잃는 일이

(5)

벌어져도 당장 굶어 죽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빈곤은 건강 문제를 일으키고 기대수명을 낮춘다. 현대 문명 사회에서 기아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가 비만이다. 우리 사 회에서는 빈곤 그 자체보다는 심리적으로 느끼는 상대적 빈곤 감이 훨씬 더 중요해졌다.

지식 및 기술과 무지

21세기에 들어서는 과거 한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획기적인 발명이 거의 매년 등장하고 있다. 이로 인해 여러 분야에서 급속히 일어나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학습하고 수 용하고 따라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기술은 모바일폰의 앱들이고, 가장 획기적인 기술은 인공지 능이다. 예컨대, 인공지능 알파고는 프로 바둑기사를 완전히 제압하고 바둑계를 은퇴하면서, 알파고끼리 두었던 기보 50 국을 남겼다. 기보는 이미 인공지능이 인간을 훨씬 능가했음 을 입증했다. 이미 암 치료를 도우는 IBM의 왓슨은 국내 병 원들에서 암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머지 않아 생명공학 분 야에서도 인공지능에 버금가는 획기적인 성과를 낼 것이고, 인류의 건강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컴퓨터가 조종 하는 무인자동차가 상용화되고,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는 인 공지능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이런 21세기의 발전들은 이미 개인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한 물질적인 바탕을 제공하고 있고 더 많은 획기적 편의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마치 산업혁명 시대의 도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등 장처럼 인공지능이 단순노동부터 전문가의 일까지 대신하면 서 점점 더 늘어나는 쓸모가 없어진 사람들이 새로운 계급을 형성할 것이다. 새로 형성되고 있는 ‘용도폐기계급’의 불만 과 좌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겪을 아노미는 자살의 증가뿐만 아니라 폭력의 증가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행복과 자살

21세기 들어 전례 없는 번영과 평화를 누리고 기대수명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선진국들은 경제적 부, 안전, 편리한 삶 등을 누리지만 전통사회보다 훨씬 높은 자살률을 보이고 있다. 중미의 코스타리카 사람들이 한국, 일본, 중국, 싱가포 르나 유럽 국가들의 국민들보다 삶의 만족도가 훨씬 높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 가난과 정치적 불안에 시달리는 개발 도상국 페루, 아이티, 필리핀, 가나에서는 매년 10만 명당 채 다섯 명도 자살하지 않는다. 반면 스위스, 프랑스, 뉴질랜드 등 부유하고 평화로운 국가들에서는 매년 10만 명당 10명 이 상이 자살한다. 한국은 1985년 당시 10만 명당 9명 정도가 자 살을 했지만, 2012년 당시 한국인의 연간 자살률은 10만 명당

36명이었다.

2015년 미국 여론조사 기관 갤럽이 조사한 행복지수에서 한국은 143개국 중 115위에 랭크되었다. 파라과이, 콜럼비아, 베네수엘라, 코스타리카가 1위부터 4위를 점했다.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경제의 눈부신 발전과 1인당 실질소득의 증가, 자동차, 냉장고, 에어컨, 진공청소기, 식기세척기, 세탁기, 전 화기, 컴퓨터 등으로 생활이 완전히 달라졌음에도 1950년대 와 1990년대의 주관적 행복은 비슷한 수준이었다.

심리적 수준에서 볼 때, 행복은 객관적 조건보다 주관적 기 대치에 달렸다. 우리는 실제와 기대가 일치할 때 만족한다.

그러므로 평화와 번영을 누린다고 무조건 만족하고 행복한 것이 아니다. 왜 그럴까? 조건이 나아질수록 기대치도 덩달 아 높아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십 년 동안 높아 진 것은 삶의 만족도가 아니라 기대치였던 것이다. 실제의 삶 의 수준이 나아지더라도 기대치가 같이 높아지거나 상대적 으로 더 높아지는 사태가 벌어지면,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지 않거나 심지어 낮아질 수 있다. 역설적으로, 더 많이 성취할 수록 삶의 만족도는 오히려 낮아질 수도 있는 것이다. 20세기 후반 우리나라는 급속한 산업화를 이루면서 눈부신 발전을 통해 엄청난 성취를 했고, 그 성과들이 기대치를 지속적으로 높였고, 외환위기 이후 중산층의 감소로 상징되는 계층 하강 을 경험한 집단의 상대적 박탈감이 전체 사회의 삶의 만족 도를 상대적으로 낮아지게 만드는 현상으로 드러났고, 그것 이 높은 자살률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본능의 수준에서 볼 때, 행복으로 간주되는 유쾌한 감각은 찰나적이어서, 지속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나치게 행복을 추구하려는 강박은 오히려 불쾌한 감각을 만들게 된다. 전체 사회나 개인이 행복 에 집착한다는 것은 역으로 전체 사회나 개인이 불행하다는 사실의 반증이 된다.

결 론

산업혁명 이후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여성이 직업을 가지고

사회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은 여권 신장으

로 이어졌고, 차츰 남녀 평등이 이루어지면서 가족과 공동체

가 해체되기 시작하였다.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일인 가구

가 급증하고 개인의 파편화도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변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과정에서 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갖추어지

지 않은 사회에서는 사회적 구심력이 충분하지 않아 자살로

사회로부터 이탈하는 인구가 두드러지게 증가하고 있다. 한

국 사회의 높은 자살률은 눈부신 발전으로 세계 최고 수준

으로 높아진 기대치와 외환위기 등 사회적 충격으로 발생한

현실적 상대적 박탈감 사이의 넓혀진 갭과 제대로 갖추어지

(6)

지 않은 우리 사회의 사회적 안전망 때문에 초래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건강, 관계, 자원, 지식 및 기술이라는 사회 적 구심력을 높이려는 노력이 개인적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 적 차원에서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REFERENCES

1) Suh GH, Gega L. Suicide attempts among the elderly in East Asia.

Int Psychogeriatr 2017;29:707-708.

2) Zhang W, Ding H, Su P, Xu Q, Du L, Xie C, et al. Prevalence and risk

factors for attempted suicide in the elderly: a cross-sectional study in

Shanghai, China. Int Psychogeriatr 2017;29:709-71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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