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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탈/식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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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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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탈/식민성

PlasticDe/coloniality

박경은 / 서울대학교 강사

KyeongeunPark / Lecturer, SeoulNationalUniversity

Ⅰ. 들어가며

Ⅱ. 인간-플라스틱의 발견, 발명, 은폐 1. (비)인간의 발견과 발명

2. (비)인간의 은폐

Ⅲ. 플라스틱 생동성

Ⅳ. 나가며

* 이 논문은 한국미학예술학회 2021년 봄 정기학술대회 기획심포지엄에서 발표한 원고를 수정보완하여 게재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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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이 글은 근대성/식민성에 천착해온 탈식민 담론과 다양한 물질성과 그 생동성에 주목하는 비인간 담론의 교차점 에서, 플라스틱 해양폐기물의 물질성과 그 의미를 알레한드로 두란(AlejandroDurán)의 <워시드업 Washedup> 프 로젝트를 통해 살펴본다. 플라스틱 폐기물의 흐름과 자연환경 정복의 이면에서 인간중심주의적 근대세계가 구축 해온 식민성이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해양부유물들이 흐르고 쌓이는 곳에서 인종적, 사 회적, 젠더적 불균등한 사회경제적 구조의 차별적 결과들, 그리고 자연이라는 거대한 행위자의 영향력이 중첩적으 로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플라스틱 폐기물의 물질성과 순환성은 근대성/식민성의 작동 기제를 여실 히 드러내는 물질이자 흐름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와 동시에, 플라스틱은 만들어진 물건에서 세계의 지형을 새로이 짓는, 근대성의 신화와 인간의 통제에 저항하는 생동하는 물질이다. 플라스틱 폐기물의 범람과 생동하는 움직임은 은폐되고 식민화된 비인간의 세계를 가시화하면서 인간중심적 근대세계에서 가려진 타자적 차이, 즉 식민적 차이 (colonialdifference)를 드러낸다. 플라스틱의 자유분방한 물질성과 그 이면에 맺힌 인간중심주의적 근대성/식민성 기제를 고찰하고 탈인간중심주의 시대에 가능한 공존의 탈식민성에 대해서 논의해 보고자 한다.

핵심어|비인간 담론, 생동성, 알레한드로 두란, 탈식민성, 플라스틱

ABSTRACT

This study, at the intersection of decolonial studies and nonhuman discourses, attempts to address the materiality and vitality of plastic litter and its currents. Behind the flow of plastic waste and its natural environment occupation, we discover the dark side of the human-centered narrative of modernity.

Plastic waste reproduces and fortifies the world’s racial, gendered, and socioeconomic structure by contaminating and impacting the marginalized lives of humans and nonhumans. Plastic creates the global environment’s flow and persistently engenders another form of colonial structure by revealing the limitations of the human-centered modern world view through natural and social crises. At the same time, plastic waste shows that unruly and vital materiality is out of human control throughout the world’s topography reformation. In this sense, the plastic flow visualizes the silenced nonhuman world, the otherness that is the colonial difference of the nonhuman power hidden in the anthropocentric modern world. By examining the figure of plastic litter in Alejandro Durán’s artistic project Washed Up, this study intends to analyze the possible forms of decolonial topography and coexistence between human and nonhuman lives.

Key Words|AlejandroDurán, Decoloniality, Nonhumandiscourse, Plastic, Vit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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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며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플라스틱 폐기물들이다. 만들어지고, 부서지고, 사라지고, 다 시 돌아오는 플라스틱 쓰레기들. 한때는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었던 물건들이 그 쓸모를 다하고 버려진다. 버려지기 전에 미세 플라스틱 물질이 되어 우리의 몸에 쌓이기도 하고. 경제 적 유용성을 벗어나 할 일을 다 한 플라스틱 물건들은 폐기물이 되어 재활용되기도 하며, 또 어 떤 것들은 소각되어 대기 중으로 퍼졌다가 우리의 숨으로 환원되기도 한다. 인간의 손을 떠난 쓰레기들의 발견은 느닷없이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이루어진다고 우리는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사실상 버려진 플라스틱을 만나는 장소들이 아주 뜻밖의 장소는 아니다. 가난하고 더러 운 동네 어귀나 쓰레기장 혹은 소위 말하는 깨끗한 자연환경 속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더러 운 장소들과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의 장소가 가진 공통점은 무엇일까? 폐기물들이 흘러 드는 곳은 다름이 아닌 인간중심주의적 근대성이 만들어온 사회적, 계층적, 경제적, 자연적 주 변부이다. 도시화, 근대화가 미치지 않은 지역으로 빈민가로 쓰레기들이 흘러든다. 빈곤과 재 난, 환경이 만들어내는 불행의 경험은 사회 취약 계층이나 자연과 가까이 사회와는 멀리 살아 가는 원주민과 그들을 에워싼 환경으로 모여든다. 그리고 빈곤한 이들과 국가의 면면이 유색 인종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사회경제적 불공정한 관계는 비단 사회경제적 가난이나 재난 뿐 아니라, 환경오염과 같은 자연환경의 불평등한 경험과도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다.

독성 식민주의(toxic colonialism), 폐기물 식민주의(wastecolonialism), 환경적 인종주의 (environmentalracism), 쓰레기 제국주의(garbageimperialism)와 같은 신조어1가 시사하듯, 자본시장이나 기술의 세계화만큼이나 활발한 폐기물의 전지구적 움직임을 만드는 것은 지구 의 자연적 순환 때문만은 아니다. 소위 선진국이라는 국가들에서 배출되는 폐기물은 가난한 동 남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등으로 수출되고, 이를 막기 위해, 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을 금지 하는 바젤 협약(1989년)이 맺어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쓰레기는 해류뿐만 아니라 돈의 흐름과 도 맞물려 흐르고 있다. 플라스틱 폐기물의 흐름과 자연환경 정복의 이면에서 인간중심주의적 근대세계가 구축해온 식민성이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해양 부유물들 1. 폐기물 식민주의는 1989년 바젤 협약 당시, 유해 폐기물들이 GDP가 높은 선진국에서 상대적으로 GDP가 낮은

동남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등과 같은 개발도상국으로 수출되는 상황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된 용어이 다. 같은 맥락에서, 국가 간의 경제적인 불균형이 환경적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 독성 식민 주의, 쓰레기 제국주의, 유해 테러리즘과 같은 용어가 등장했다. 특히, 환경적 인종주의는 이러한 사회적, 경제 적, 환경적 불균형이 인종주의적 식민의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강조한다. 관련 용어에 관한 정보는 Liboiron Max, “Waste Colonialism”, in: Discard Studies (2018), https://discardstudies.com/2018/11/01/waste-colonialism/을 참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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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흐르고 쌓이는 곳에서 인종적, 사회적, 젠더적 불균등한 사회경제적 구조의 차별적 결과들, 그리고 자연이라는 거대한 행위자의 영향력이 중첩적으로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플라스틱 폐기물의 물질성과 순환성은 근대성/식민성의 작동 기제를 여실히 드러내는 물질이자 흐름으로 이해될 수 있다. 쓰레기가 흐른다, 움직인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그의 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수많은 물질의 흐름과 교차를 상상해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의미 에서, 플라스틱이라는 새로운 비인간 타자의 몸에 얽힌 서사와 몸성을 읽어내는 것은 인간-내- 타자뿐만 아니라 인간-외-타자를 양산하는 서구주의적/인간중심주의적인 근대성과 식민성의 문제를 성찰할 수 있는 한 방법인 동시에 비인간 물질의 생동성/위반성을 탐험할 수 있는 통로 인 듯하다. 따라서 식민성에 천착해온 탈식민 담론과 다양한 물질성과 그 생동성에 주목하는 비인간 담론의 교차점에서 출발해, 카리브해에 버려지는/발견되는/거주하는 플라스틱 폐기물 의 물질성과 그 의미를 알레한드로 두란(AlejandroDurán)의 <워시드업 Washedup> 프로젝 트를 통해 되짚어볼 것이다. 이를 통해, 플라스틱의 자유분방한 물질성과 그 이면에 맺힌 인간 중심주의적 근대성/식민성 기제를 고찰하고 탈인간중심주의 시대에 가능한 공존의 탈식민성 에 대해서 논의해 보고자 한다.

Ⅱ. 인간-플라스틱의 발견, 발명, 은폐

플라스틱은 인간에 의해 발명되었고, 그 상품성이 발견되었고, 생동성이 은폐되었다. 먼저 플라스틱에 투영된/스스로 상징하는 식민성/탈식민성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 식민성의 근본이 지배와 종속의 관계항에 기반하고 타자의 몸, 즉 타자의 물질성에 대한 앎과 차별로 타 자를 예속해왔다는 것을 고려할 때, 탈식민 담론에서 제시하는 식민과 탈식민의 개념틀은, 비 인간의 물질성과 실재에 초점을 맞추는 존재론적 이론들과의 대화를 통해 비인간의 영역까지 확장될 수 있다.2 플라스틱이라는 물질을 둘러싼 사회경제적, 정치적, 물질적 식민성의 배치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플라스틱이 가진 존재론적 타자성도 앞서 고려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이러 한 타자성을 배태한 것이 근대성/식민성의 출현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중심의 세계 구성에서 드러난 식민성과 플라스틱, 즉 사물-타자의 행위성과 그 배치를 읽어내기 위해 2. 두 담론에 대한 비판점과 접합점에 관한 논의는 다음을 참고하라. Angela Last, “Anti-colonial ontologies: A

dialogue”, in: Coloniality, Ontology, and the Question of the Posthuman, ed. Mark Jackson (Abingdon: Routledge 2017), pp. 63- 80. Peta Hinton, Tara Mehrabi & Josef Barla, “New materialisms/New colonialisms”, Unpublished manuscript (Turku:

Åbo Akademi University 2015). Lucy Bell의 “Place, People and Processes in Waste Theory: A Global South Critique”

경우, 신유물론과 탈식민 이론 사이의 대화를 바탕으로, 전지구적 남부에서 폐기물의 의미를 분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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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는 탈식민 담론과 존재론적 관점의 생산적 대화가 필요하다.

라틴아메리카에서 등장한 탈식민(decolonial)3 담론은 오랜 시간 권력의 식민성 문제와 전 지구적 타자의 탈/식민성 가능성에 천착해왔다.4 근대성과 근대세계체제에서, 자본주의의 세 계화에 이르는 사회구성에 있어 식민성은 구성요소이자 결과였고, 이러한 식민성을 탈피하 고 타자의 존재와 자리를 복권하려는 일련의 흐름이었다. 그러나 탈식민 담론의 경우, 논의 의 대상을 인간사회로 국한함으로써 비인간 세계까지 확장되어가는 식민성의 흐름을 놓친 부 분이 있다. 반면, 존재론적 전환(Ontologicalturn)을 이끄는 신유물론, 객체지향존재론, 생기 론 등 현대 서구 이론들은, 인간-비인간 사이의 차이를 지우며 근대성이 낳은 이분법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왔다.5 1990년대 이전의 사회 구성주의적(Social constructionist) 이론들이 언어와 기표, 문화와 담론 등의 비물리적인 사회 현상에만 주목하 며 인간중심주의적인 인식론적 사고틀을 벗어나지 못한 점을 비판하며 등장한 일련의 비평적·

철학적 이론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존재론적 시선은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 리며 비인간 타자와 존재자의 물질성, 즉 물(物) 자체에 주목한다. 다양한 (비)인간 물질성과 그 들의 행위성에 주안점을 두면서, 비인간의 영역으로 시선을 확장해왔다. 인간/비인간, 자연/사

3. 본 논문에서는, ‘decolonial’을 ‘탈식민’으로 ‘post-colonial’을 ‘포스트식민’으로 사용한다. 탈식민 담론과 포스트식 민주의와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각주 8번을 참고하라.

4. 라틴아메리카 탈식민 담론은 라틴아메리카 문화연구 분야의 성장과 함께 등장한 담론으로, 근대성/식민성에 대 한 인식을 바탕으로 탈식민적 대안을 연구해온 이론적 흐름이다. 라틴아메리카 문화연구와 탈식민 담론에 관해 서는 다음 책을 참고하라. Ana del Sarto et al. (eds.), The Latin American Cultural Studies Reader (Durham/London:

Duke University Press 2004); Santiago Castro-Gómez & Ramón Grosfoguel (eds.), El giro decolonial: reflexiones para una diversidad epistémica más allá del capitalismo global (Bogotá: Siglo del Hombre Editores 2007); Mabel Moraña, Enrique Dussel & Carlos A. Jáuregui (eds.), Coloniality at Large: Latin America and the Postcolonial Debate (Durham/London:

Duke University Press Books 2008). 관련 국내 논문으로는 김은중, 「포스트식민주의를 거쳐, 모더니티를 넘어, 트 랜스모더니티로」, 『이베로아메리카연구』 21권, 1호 (2010), pp. 1-32 (DOI: 10.22927/snuibe.2010.21.1.1), 우석 균, 「라틴아메리카 연구와 라틴아메리카니즘」, 『트랜스라틴: 근대성을 넘어 탈식민성으로』, (이숲 2013), pp. 11- 33; 조경진, 「라틴아메리카 탈식민담론과 인류학: 인식론적 전환을 넘어서」, 『한국문화인류학』 47권, 3호 (2014), pp. 1-32 (DOI: 10.22927/snuibe.2010.21.1.1); 존 베벌리, 「라틴아메리카니즘이라는 사건: 정치적-개념적 지 도」, 『라틴아메리카니즘과 하위주체연구』, 김동환 옮김 (마루북스 2018), pp. 9-37 등이 있다.

5. 철학, 여성주의, 미디어 연구, 언어, 권력 등 서로 다른 분과학문에서 다양한 이론이 나왔고, 큰 틀에서는 이러 한 이론적 전회를, 일원론, 이원론에 따라 크게 신유물론과 사변적 실재론이라는 두 가지 흐름으로 나눌 수 있 다. 하지만 비인간을 비롯한 우리의 주변을 둘러싼 존재론적 또는 물질론적 환경에 주목한다는 점은 공통점이 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련의 이론적 흐름을 물질적 전환(Material turn), 존재론적 전회(Ontological turn), 혹은 비인간 전회(Nonhuman turn) 등의 용어로 지칭한다. Diana H. Coole & Samantha Frost (eds.), New Materialisms:

Ontology, Agency, and Politics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2010), pp. 1-43; Richard A. Grusin, “Introduction”, in: The Nonhuman Turn, ed. Richard A Grusin (2015), pp. vii-xxix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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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 정신/물질 등 기존의 위계적인 이분법을 타파하고, 비인간 사물, 즉 비인간 신체들의 행위 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세계를 구성하는 관계망에 대한 인식 전환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이 러한 이론들이 비판받는 지점은, 여전히 인간 사회에서 유효한 인종이나 젠더, 계층의 불균형 과 이로 인해 파생되는 인종화, 젠더화, 계층화된 물질성의 불균형한 지평에 대해서는 적극적 으로 개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1. (비)인간의 발견과 발명

플라스틱의 위반적인 행위성과 인간과의 상호연관성, 감응 관계를 보기 위해 발견과 발명이 라는 용어가 내포하는 식민성에 대해 먼저 살펴보자. 발견과 발명이란 용어는, 자연을 인간과 분리하여 타자화하기 시작한 순간을 시사한다. 플라스틱의 발견과 신대륙의 발견으로 인간중 심적 근대성과 식민성을 중심으로 한 유사 평행관계가 존재한다. 신대륙의 발견이 인간 내/외 타자를 양산한 거대 서사의 시발점이었다면, 플라스틱의 발견은 그러한 타자에 대한 식민적 패 러다임의 연속성과 실패를 반영하고 있다. 탈식민 담론은 근대성과 식민성이 동전의 양면이라 는 것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월터 미뇰로의 말을 빌리자면 식민성은 근대성의 어두운 면과 같 아서 서로 분리된 개념이 아니라 공존하는 개념이다.6 아니발 키하노(ÁnibalQuijano)는 인종 주의와 지식에 기반한 사회적 계층화를 뜻하는 ‘권력의 식민성(colonialityofpower)’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7 식민주의 (colonialism)가 영토와 그 영토에 속한 사람들에 대한 물리적, 정 치적 지배와 착취에 관한 것이라면, 식민성은 식민주의의 종결과 상관없이 계속되는 식민화하 는 권력을 일컫는다.8 근대성이 성립된 이후에 식민성이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식민성은 근대 성의 구성 요소이자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월터 미뇰로(WalterMignolo)는 키하노의 식민성을 확장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새로운 양태를 보이며 지속되는 지배와 저항의 관계항이라고 재정

6. Walter Mignolo, “El pensamiento decolonial: desprendimiento y apertura: un manifiesto”, in: El giro decolonial:

reflexiones para una diversidad epistémica más allá del capitalismo global, eds. Santiago Castro-Gómez y Ramón Grosfoguel (Bogotá: Siglo de Hombres Editores 2007), p. 27.

7. Aníbal Quijano, “Colonialidad del poder, euro- centrismo y América Latina”, in: La colonialidad del saber: eurocentrismo y ciencias sociales. Perspectivas Latinoamericanas, ed. Edgardo Lander (Buenos Aires: Consejo Latinoamericano de Ciencias Sociales 2000), p. 203.

8. 포스트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의 간극은 식민성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온다. 포스트식민주의에서 이야기하는 식 민주의 또는 식민성은 식민주의 이후 파생적인 산물이라면 탈식민주의에서 식민성는 근대성을 구성하는 한 축 이자 어두운 단면이다. 식민성을 생각하는 것자체가 탈식민의 가능성을 안고 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탈식민주 의와 포스트식민주의와의 분화 과정에 관해서는 김은중, 「포스트식민주의를 거쳐, 모더니티를 넘어, 트랜스모더 니티로」, pp. 1-32를 참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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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한다.9 자연을 포함해 비인간 개체에 대한 타자화, 이를 바탕으로 타자의 몸성, 물질성을 전 유하고 통제하는 것을 합리화하기 시작한 것이 근대성/식민성의 출발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탈식민 담론은 식민성 탄생의 주요한 지점으로 1492년의 사건을 제시한다.

탈식민 담론이 단순히 라틴아메리카 연구자들을 통해 등장한 이론적 흐름이기 때문에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만남을 가져온 이 시점을 주요하게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두 대륙 간의 의도치 않은 만남이 파생시킨 전지구적인 체제변화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그 이전까지는 각자 의 독립적 세계로 존재하던 아메리카 대륙과 여타 대륙들이 이 사건을 계기로 뒤얽히게 되고 새로운 세계체제, 즉 유럽중심주의적 근대세계관을 기초로 한 세계체계가 성립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발견이라는 단어에는 능동적 주체인, 발견하는 자와 수동적 대상인 발견되는 자로 상정되어 버린, 유럽인들과 아메리카의 불균형한 힘의 역학 관계가 암시되어 있다. 신대륙 “발 견”이라는 용어는 발견하는 ‘주체’인 유럽인들의 시선 앞에, 발견 ‘당하는’ 아메리카 대륙 및 그 곳에 거주하는 모든 객체들의 관계를 전제한다. 이미 거기 있는 아메리카라는10 대륙이 유럽인 들의 도착과 함께 발견됨으로써, 인식되고 인정받는 과정을 거쳐 존재하게 된 사건이라는 것을

‘발견’이라는 단어 속에 내포하고 있다. 신대륙 발견이라는 용어에서 주체-객체 관계의 편향성 과 더불어 문제가 되는 지점은, 식민지화, 즉 정복의 과정, 폭력의 역사를 감춘다는 점이다. ‘발 견’이라는 말로 배치된 주체, 객체 사이의 관계항은 시선의 편향성을 기반으로 두 항 사이의 불 균형한 역학 관계를 만들어낸 철학적, 사상적 근거가 되었다.

멕시코의 역사철학자 에드문도 오고르만 (EdmundoOGorman)은 콜럼버스의 오해와 발견 에서 태어난 신대륙을, 유럽중심주의적인 세계관이 투영된 일종의 발명품이라고 재명명했다.11 오고르만은 콜럼버스는 이미 존재한 대륙에 유럽인들의 상상 속에 존재해온, 아시아의 이미지 와 지리적 위치를 투영해 새로운 영토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본다. 즉,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론 적 본질과 상관없이 콜럼버스로부터 시작해서 이후 유럽인들은 유럽 중세 기독교 사상을 바탕 으로 아메리카 대륙을 재편해온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아메리카라는 문화적 기호로도 물 리적 실체로서도 유럽사상의 소산물이 되었고, 발견의 주체-객체 관계항은 근대인-야만인, 정 복자-피정복자 등의 불공평한 관계쌍으로 변주되어왔다. 이는 유럽 중심부와 비유럽 주변부로

9. Walter Mignolo, “Preface”, in: Local Histories/Global Designs: Coloniality, Subaltern Knowledges, and Border Thinking, Princeton Studies in Culture/Power/History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0), pp. ix-xix.

10. 아메리카라는 대륙의 명칭에도 명명하는 자와 명명되는 자의 관계를 볼 수 있다. 아메리카라는 새로운 이름 또 한 정복자들로부터 강요받은 이름이며, 아메리카라고 새로이 이름 지으며, 유럽의 정복 이전의 아메리카 존재와 역사를 부정당했다.

11. Edmundo O’Gorman, La invención de América (México: Fondo de Cultura Económica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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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는 유럽중심주의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고,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를 교화하고 개척하고 정 복해야 해야 한다는,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따라서 오고르만이 제시한 ‘발명’이라는 용 어는 ‘발견’이라는 미명에 감추어진 유럽사상의 식민성과 제국주의적 근대성을 비판적으로 재 성찰할 수 있는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12 유럽, 백인, 이성애자 남성이 발견과 발명의 주체가 되면서, 인간이라는 종을 대변하는 존재로 거듭난 사건이 신대륙의 발견인 것이다.

엔리케 두셀(EnriqueDussel)은 오고르만이 제시한 발명이라는 개념틀에서 더 나아가 신대 륙 발견은 일종의 타자의 은폐라는 역사적 과정이었음을 짚어낸다. 유럽인들에게 있어 “아메 리카는 ‘상이한’ 그 무엇으로, ‘타자’로 발견된 것이 아니라 동일자를 투사하는 질료”로, 유럽 인들은 아메리카를 ‘타자의 출현’이 아니라 ‘동일자 투사’로 받아들였고, 아메리카라는 타자를

‘은폐’한 사건이라고 역설한다.131492년은 비단 서로 상이한 타자들의 만남과 같은 가치중립 적인 사건이 아닌, 유럽인들이 비유럽 타자를 만나고 그들의 희생과 그 비용을 전유하면서 가 능하게 된 서구적 근대성 신화의 시발점이 되었다. 근대성은 “해방의 이성적 개념을 포함함과 동시에 그 내부에 이미 타자에 종족학살적 폭력을 전제하고 있다”고 두셀은 설명한다. 이런 맥 락에서 월터 미뇰로는 신대륙의 발견은 서구중심적인 ‘근대성’의 시작이자 타자에 대한 착취와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식민성’이 탄생한 역사적 순간이라고 설명한다. 식민성/근대성 탄생의 순간은 인간 탄생의 순간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다른 타자, 즉 원주민을 비롯해 아메리카라는 비인간 세계의 물질성을 자신들과 분리하면서, 인간이라는 종의 경계를 확정하고 공고하게 만 들어낸 순간이기도 하다.

2. (비)인간의 은폐

이 모든 과정에서 은폐된 타자가 또 있다. 자연의 존재, 땅의 존재, 그리고 수많은 물질들. 다 시 말해, 비인간 타자가 탄생과 동시에 은폐되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한 것은 그의 의지와 당대의 정치적 상황이 만든 인간 주도의 사건만은 아니다. 발견이라는 명제 자체가 인 간중심적인 견지이며 해석이다. 신대륙의 발견은 배를 밀고, 아메리카에 도착하게 만든 해류와 바람, 동물의 힘이자 이 모든 생물과 무생물이 얽혀서 만드는 집합적 효과였다. 아메리카의 광 12. 월터 미뇰로는 발견이나 발명과 같은 용어는 따라서 “동일한 사건에 대한 다른 해석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패러다임’을 의미하는 것이라 지적한다. 전자가 유럽중심적인 “제국적 관점, 즉 ‘근대성’으로 불리는 성취를 전제한다면, 발명은 역사의 뒷전으로 밀려난 채 자신들과는 무관한 역사의 진보적 성취를 따라잡기를 희 망하는 사람들의 비판적 관점을 반영한다고 설명한다. 월터 D. 미뇰로, 『라틴아메리카, 만들어진 대륙』, 김은중 옮김, (그린비 2010), p. 40.

13. 엔리케 두셀, 『1492년 타자의 은폐』, 박병규 옮김 (그린비 2011), pp. 3-9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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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자연은 그들을 위협하기도 했고, 유혹하기도 했으며, 정복당하기도 했다. 정복 전쟁 과정 에서도, 인간의 의지보다 더 강한 힘을 발산한 바이러스와 말 같은 비인간 행위자들이 있었다.

아메리카 대륙에 들여온 말(馬)은 정복의 속도와 효율을 달리했고,14 특히 전쟁에서 유럽인들의 수적 열세를 극복할 수 있게 한 주된 요소였다. 그리고 몇 번의 전쟁보다 빠르게 원주민을 대량 학살한 것은 사실상 균이었다.15 균은 인간보다 더 주도면밀하게 아메리카의 땅을 점령한 행위 자였다. 인간 주도의 발견과 정복이라는 서사에서 인간중심의 서사로 은폐된 것은 비인간 행위 자들의 행위력, 수행력이라고 하겠다. 이들은 근대의 출발에서 타자화되었고 동시에 그 존재를 은폐당했다. 이러한 집합적 효과와 행위성에서 타자, 사물의 힘을 지워버리고 침묵시킨 것은 유럽 사고에 기반한 인간중심적 근대성인 것이다.

원주민들의 세계관에서는 자연과 인간은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서구인들이 자연과 문화를 구별하고, 원주민들을 자연, 야만, 야생의 원료로 전락시키고, 인간을 이 모든 비인간 타자들을 발견, 즉 인식하는 주체로 상정한다. 하지만 원주민들의 세계관에서는 자연과 같이 인간과 분 리된 환경이라는 것은 없다. 대신 파차마마(Pachamama)라고 부르는 인간 이상의 현상을 가 르키는 개념이 있다. 원주민들은 “자신들이 파차마마로부터 분리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음 을 인식했다. 그와 같이 문화가 자연이었고 자연이 문화였다 (그리고 문화이다).”16 하지만 유 럽인들은 이들의 세계관을 배제하고 인간중심적인 사고체계를 강요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은

“정복자들의 경제적 목표 성취를 위해 존재하는 대상화되고 중립화된, 그리고 주로 스스로 움 직일 수 없는 물질성”이 되었다. 자연환경과 원주민들과 그들의 문화로 “충만한 공간”이었던 아메리카 대륙의 세계가 유럽인들에 의해 빈 공간으로 정의되고, 유럽인들의 발견을 통해서

“인간적 의미의 생활세계”로 통합했다고 두셀은 지적한다.17 은폐된 것은 인간-타자이자 정복 의 대상이 된 원주민뿐만이 아니다. 두셀이 말하는 충만한 공간은, 아메리카 대륙의 비인간 행 위자들에 대한 고려라기보다는 그곳에서 번성한 문화적 세계를 바탕으로 한 표현이다. 하지만, 유럽중심적 인간적 의미의 생활세계 구축 과정에서 지워지고 은폐된 것은 아메리카의 비인간 사물 행위자들의 충만한 공간이기도 하다. 근대성이 인간중심적이고 유럽중심적이라는 것은 14. 말(馬)과 균 등 비인간 타자가 얼마나 활발하게 신대륙 정복에 개입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피타 켈레크

나, 「말이 유럽에서 출생지로 돌아오다」, 『말의 세계사』, 임웅 옮김 (글항아리 2019), pp. 585-664; 제레드 다이아 몬드, 「가축의 치명적 대가, 세균이 준 사악한 선물」, 『총, 균, 쇠』, 김진준 옮김 (문학사상사 2005), pp. 285-313 등을 참조하라.

15. 다이아몬드, 「가축의 치명적 대가, 세균이 준 사악한 선물」, pp. 285-313 참조.

16. 월터 D. 미뇰로, 『서구 근대성의 어두운 이면: 전 지구적 미래들과 탈식민적 선택들』, 김영주, 배윤기, 하상복 옮김 (현암사 2018), p. 81.

17. 두셀, 『1492년 타자의 은폐』, p.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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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세계관 때문이다.

자연이나 비인간 사물에 대한 발견과 발명이라는 말은 인간의 주체적 위치를 전제한다. 이는 인간이 다른 인간 및 비인간 타자를 인식할 때에 비로소 타자들이 존재한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플라스틱을 발견하고, 발명하는 과정 중에 우리-인간이 플라스틱이라는 물질의 타자성을 온전히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피어났다. 이 믿음의 근간에는 인간이 세계 를 제도하고 지배하여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주체라는 근대적 사고체제가 밑바탕 이 되어있다. 이 용어들은 비인간 객체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합리화한, 근대성의 식민적 권력 매트릭스 위에 성립하는 언표라 인식할 수 있으며, 인간-내-타자와 인간-외-타자에 대한 차이 와 구별, 객체인 대상에 대한 앎을 통한 존재의 서열화를 구성해온, 인간중심주의와 근대성과 식민성(coloniality)을 대변하는 기표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플라스틱을 구성하는 원물질의 가능성을 발견하여, 여러 가지 형태로 발전시켜 다양 한 형태의 플라스틱을 발명하여 이용해왔다. 가볍고 유연하지만, 탄성이 있고 단단한 플라스틱 은 짧은 역사에 비해 비약적으로 다량 생산되고 이용되었다.18 이러한 플라스틱의 무한성과 가 소성(plasticity) 덕분에, 히서 데이비스는 플라스틱이 “근대성의 약속”을 대변하는 물질이 되 었다고 설명한다.19 인간이 원하는 대로 상품을 빚어낼 수 있고,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부패하 거나 녹슬지 않아 플라스틱은 그야말로 풍요와 가능성의 질료가 된 것이다. 여기서 플라스틱 이 “우리의 현실에서 더러움, 부패, 부정한 행위 등을 없앨 수 있으리라는 환상을 반영”하는 근 대성의 상징으로 역할 했다. 즉, 플라스틱은 근대적 주체 — 자연을 비롯한 모든 비인간 타자를 통제하고 지배하는 주체 — 를 구체화하는 구성 요소인 한편, 근대성에 대한 믿음으로 탄생한 결과물이다.

따라서 1950년대 이전, 세계 제2차 대전 이전의 미술에서는 이러한 플라스틱의 가소성과 유 연성, 가벼움, 그리고 합성물질로서의 다양한 가능성에 주목했다. 러시아 출신 구성주의 조각 18. 세계 2차 대전 당시 부족한 전쟁 자원을 채우기 위해서 플라스틱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플라 스틱으로 무기와 군사 물품을 대량 제조하면서 플라스틱 생산량이 비약적으로 늘었다. 이후, 플라스틱은 더 다 양한 방식으로 생산되면서 인류사에 필수불가결한 물질로 대두된다. 플라스틱의 가능성이 발현하고 널리 쓰이 기 시작한 순간이 세계 제2차 대전이라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플라스틱은 그 시작점에서부터 식민성과 불가분 의 관계를 맺고 등장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플라스틱은 제국주의, 자본주의 등 식민적 권력 관계를 배경 으로 등장했고, 물리적 식민의 기제로 작동하던 플라스틱은 이제 군사적, 경제적 경계를 넘어 사회적, 환경적 식 민성의 재생산하는 행위자로 역할하고 있다. 플라스틱의 역사적 탄생 배경과 플라스틱 위기에 관해서는 스티븐 부라니, 「굿바이 플라스틱」, 『지구에 대한 의무 The Long Road』, 최민우 옮김 (북저널리즘 2019), pp. 8-35 참고.

19. Heather Davis, “Life & Death in the Anthropocene: A Short History of Plastic”, in: The Routledge Companion to Critical Approaches to Contemporary Architecture, eds. Swati Chattopadhyay & Jeremy White (London/New York:

Routledge 2019), pp. 349-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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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자 예술가인 나움 가보(NaumGabo)는 플라스틱 합성물을 자신의 예술에 도입하여, 여 러 가지 플라스틱 합성물을 시도하며 플라스틱이라는 소재의 물질성을 극대화한 예술을 선보 였다. 라슬로 모호이 너지(LászlóMoholy-Nagy) 역시 예술, 과학, 산업의 교차점으로 플라스 틱이라는 신물질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예술적 재료로 사용한 대표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세 2차 대전 이후 플라스틱 사용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미술계에서도 플라스틱은 실험적이고 미래적인 물질에서 일상을 대변하는 소재로 변모한다. 특히, 1960년대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 스 지역의 플라스틱 산업의 성장과 함께, ‘피니쉬 페티쉬(FinishFetish)’ 또는 ‘빛과 공간(Light andSpace)’ 미술 작가들은 플라스틱 소재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조형예술 작품을 선보였다.20

하지만 1980년대부터 플라스틱의 가소성, 유연성, 가벼움과 같은 특질들이 인류에게 재앙이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 예술에서도 플라스틱은 사회적·환경적 위기를 대변 하는 소재로 변모한다.21 플라스틱의 속성이 인간의 몸을 비롯해 생태계를 이루는 다양한 생물, 무생물의 몸속으로 침투하고 뻗어 나가 다른 물질들의 신체를 점령하는 과정을 수월하게 했기 때문이다. 지구 생태계에 유해하고 플라스틱의 생명이 여타 유기체들의 짧은 생에 비해 무한 에 가깝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플라스틱은 인간 사회에서 배제와 축출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발전과 풍요, 깨끗함의 플라스틱은 이제 유독하고, 더럽고, 위협적인 흐름으로 인간 세계로 되 돌아온다. 비단 바다 생태계뿐 아니라 지구 (무)생물들의 몸에 옥죄고 구속하고, 스며들어 독성 을 퍼뜨리기 시작했다.22 티모시 모턴(TimothyMorton)은 이런 방식의 달갑지 않은 되돌아옴 과 순환성을 “검은 생태(Darkecology)”라고 정의한다. 모턴에게 있어 검은 생태는 “모든 물질 들이 루프 형식”으로 얽혀 있다는 생태학적 인식이다.23 뫼비우스 띠처럼 인간과 비인간 사물 이 뒤얽혀 집합체를 이루는 공간이며 원인과 결과, 주체와 객체의 관계는 존재하지 않고, 선형 적 시간성이 결여된 공간이 생태인 것이다. 인간이 환경오염의 주된 원인 제공자이면서 동시에 20. 오정현, 「1960-1970년대 로스엔젤레스 미술 연구: 피니쉬 페티쉬와 빛과 공간 미술을 중심으로」, 『인문과학연

구논총』 40권, 2호 (2019), pp. 267-299 (DOI: 10.22947/ihmju.2019.40.2.010).

21. 미술사적, 미학적 배경에서 플라스틱의 물성에 대한 부분은 다음을 참고하라. Benedetta Ricci, “Agents of Change: Plastic. or How Plastic Became an Era-Difining Material”, in: Artland, https://magazine.artland.com/

agents-of-change-plastic-or-how-plastic-became-an-era-defining-material/ (2021년 5월 15일 최종 접속).

22. 플라스틱 폐기물은 생태계를 교란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분비계를 교란시킨다. 특히, 비스페놀 A (Bisphenol A BPA)라고 불리는 화학물질은 인간의 번식 능력, 생식 체계를 무너뜨린다. 이런 의미에서, 플라스틱은 문자 그대로 인간종의 멸종을 가능하게 하는 포식자 같은 위치에 있다. 하지만 히서 데이비스는 이러한 플라스틱의 침투성과 다른 몸과의 뒤얽힘에 주목하면서, 독성 물질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보여준다. Heather Davis, “Toxic Progeny: The Plastisphere and Other Queer Futures”, in: PhiloSOPHIA, vol. 5, no. 2 (2015), pp. 235-236 참고.

23. Timothy Morton, Dark Ecology: For a Logic of Future Coexistence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6), pp. 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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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일 수 있는 것은 비선형적 순환 고리를 형성하는 검은 생태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 다. 플라스틱의 물질성은 이러한 검은 생태의 뫼비우스 띠 같은 연관 관계를 잘 보여준다. 근대 성의 약속의 상징이었던 플라스틱은 근대성의 저주가 되어서 지구를 장악하기 시작했고 플라 스틱은 역설적으로 근대성의 모순을 상징하는 물질로 변모하고 있다. 플라스틱이 번영하는 근 대 사회로 이끌 것이라는 환상만큼이나 전 지구적으로 움직이고 축적되고 있는 플라스틱을 온 전히 폐기할 수 있으리라는 것도 인간의 큰 환상임이 명확해졌다. 현대 사회에서 넘쳐나는 플 라스틱 폐기물들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었고, 플라스틱으로 오염된 자연이 앞으로의 환경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 모든 터무니없는 환상은 인 간이 전적으로 플라스틱을 발견하고, 발명했고, 통제할 수 있다는 사고에서 시작되었다고 본 다. 즉, 근대라는 관념을 바탕으로 인간중심주의적 오류가 탄생한 것이다.

플라스틱은 기표를 넘어, 범람하고 생동하는 움직임으로, 은폐되고 식민화된 비인간의 힘, 즉 식민적 차이(colonialdifference)를 드러낸다. 근대성의 신화가 은폐하고 억압한 타자적 차 이, “즉 유럽적 보편성(universality)이 갖는 동일성의 논리에 의해 통합되고 배제되는 억압된 타자들보다 더 급진적인 타자적 차이에 대한 인식이 요구된다. 이런 인식을 미뇰로는 ‘식민적 차이(colonialdifference)’로 명명한다.”24 플라스틱 폐기물은 이런 맥락에서 비인간 사물들의 식민적 차이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며 억압된 물질들의 타자적 차이를 인식하게 만들고 있다. 플 라스틱은 만들어지고, 폐기되지만 다시 인간과 주변 환경으로 돌아와 인간을 창조자에서 피해 자로 전락시키며 검은 생태를 일구는 사물-행위소가 되고 있다. 만들어진 물건에서 세계의 지 형을 새로이 짓는 물질로 변화하고, 근대성의 신화를 받치고 있는 선형적 시간관에 저항하는 플라스틱의 생동성은 탈식민적이라 할 것이다. 플라스틱 폐기물을 이용한 알레한드로 두란의 작품들은 이러한 플라스틱의 탈식민적 생동성을 잘 보여준다. 두란의 작품을 통해 인간 중심의 서사를 뒤집고 근대성을 탈신화화하는 플라스틱 쓰레기들의 “사물-권력의 배치”25를 살펴보고 자 한다.

24. 김용규, 「트랜스모더니티와 문화의 생태학- 식민적 차이와 유럽중심주의적 근대성 비판」, 『코기토』 70호 (2011), pp. 117-156, p. 127.

25. 사물 권력이라는 개념은 생기적 유물론자인 제인 베넷에 의해 제시된 개념이다. 사물-권력(Thing-power)이란 비인간 (무)생물에게도 고유의 개체성을 유지하거나 다른 사물과의 관계를 맺으며 내는 특정한 힘이나 에너지 같은 것이 존재함을 뜻한다. 제인 베넷, 『생동하는 물질』, 문성재 옮김 (현실문화 2020), pp. 3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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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플라스틱의 생동성

1974년 멕시코시티 태생으로, 현재 미국과 멕시코를 오가며 활동 중인 작가 알레한드로 두란은 <워시드업: 쓰레기 더미가 된 경관 바꾸기 WashedUp: Transforming aTrashed Landscape>라는 제목으로, 2010년부터 일종의 멀티미디어, 멀티플랫폼 예술-운동 프로젝트 를 진행하고 있다.26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보호되고 있는 멕시코의 카리브 연안에 흘러 들어 온 폐기물들을 모아 시안 칸(SianKan) 지역에 예술 작품을 설치하고, 이 작품들을 사진으로 촬영하여 전시하는 프로젝트이다.27 두란의 기록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금까지 이 지역에서 60여 개국에 이르는 각기 다른 나라에서 흘러온 쓰레기들을 주웠다고 한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야생의 자연에서 동물과 식물이 자리를 잡아야 할 공간에, 이 ‘국제적인’ 폐기물들을 설치 하여 알록달록한 쓰레기-자연 경관을 엮어내는 사진 작업을 해왔다.

알레한드로 두란이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지역이 카리브해 지역, 시안 칸이라는 것은 지정학 적인 의미가 있다. 자연보호구역이라는 점을 넘어 라틴아메리카의 지정학적 특성으로 인해 겪 어왔던 식민의 경험이 카리브해를 장악하고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통해서 드러나기 때문이 다. 유럽의 제국주의와 미국의 신자유주의를 겪으면서 한편으로는 착취의 대상이자, 다른 한편 으로는 거대 쓰레기 처리장의 역할을 해온 것이 라틴아메리카였다. 실질적으로, 멕시코의 경우 미국이라는 최강국의 뒤편이 되어 미국과의 국경지대에서 양산되는 막대한 양의 전자폐기물 들을 감당하고 있다.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과테말라의 경우도, 제대로 된 폐기물 처리 시스템 의 부재로 인해 사람이 쓰레기에 깔려 죽는 사건이 있었고, 바다와 강에서 모여든 폐기물들로 하나의 거대한 쓰레기 하구를 이루어 어부들은 이제 물고기 대신 쓰레기를 낚고 치우고 있다.28 이 지역의 해양쓰레기들은 풍부한 생물다양성(biodiversity)을 자랑하는 멕시코 칸쿤에서 니카

26. <워시드업: 쓰레기 더미가 된 경관 바꾸기> 웹페이지, https://alejandroduran.com (2021년 3월 1일 최종 접속).

27. 예술 활동과 더불어, 두란은 시안 칸 지역에 폐기물 박물관과 지역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환경 교육 프로그램 을 진행 중이다. 환경운동이자 예술 활동인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두란은 소비주의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식 민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한다. “The resulting photo series depicts a new form of colonization by consumerism, where even undeveloped land is not safe from the far-reaching impact of our disposable culture […] The alchemy of Washed Up lies not only in transforming a trashed landscape, but in the project’s potential to raise awareness and change our relationship to consumption and waste.” Alejandro Durán, “Washed Up Artist Statement”, Griffin Museum of Photography, https://griffinmuseum.org/show/alejandro-duran-washed-up/ (2021년 3월 1일 최종 접속).

28. Amelia Urry, “How Plastic Pollution Is Making Central America Uninhabitable”, in: The Intercept (2019), https://

theintercept.com/2019/10/27/plastic-pollution-guatemala/ (2021년 3월 1일 최종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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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과에 이르는 메소아메리카의 암초 지대를 위협하고 있다.

쓰레기를 양산하는 곳은 주로 선진국이라 불리는 국가들인데 반해 쓰레기가 모여드는 곳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가난한 국가들이고, 그중에서도 자연과 가까이 사는 빈곤한 사람들 또는 원주민들의 터전이다.29 카리브해를 끼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지역들이, 주변 도시로부 터 바다로부터 모여드는 해양폐기물들로 원주민들의 삶과 생태환경이 위협받고 있다.30 플라스 틱은 식민지 시대부터 지속되어온 지역 간 국가 간의 권력의 불균형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 서, 플라스틱은 자연과 취약한 계층의 사람을 식민하는 직접적 주체이자, 영속하는 식민적 관 계를 반영하는 메타포로 작동한다. 경제적, 사회적 불균등의 식민을 넘어 환경적 식민에 이르 는 카리브해의 중첩적 식민 상황을 미술로 풀어내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하는 라틴아메리카 예 술가들이 2000년대 이후 두드러진 활동을 보이고 있다. 도미니카 출신의 토니 카페얀(Tony Capellán)과, 멕시코 출신의 가브리엘 오로스코(GabrielOrozco)와 같은 세계적 예술가들 이 해안가 폐기물을 가지고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일회용 행성 (Single-UsePlanet)”

(2019) 과 같은 주제로 다양한 지역 출신의 라틴아메리카 출신의 작가들이 환경문제를 주제로 폐기물을 활용한 작품을 워싱턴에서 전시하기도 했다.

알레한드로 두란은 <워시드업> 프로젝트에서, 해안가의 플라스틱 폐기물을 이용해 식민하고 식민되는 쓰레기와 자연과 같은 대립관계 대신에 쓰레기와 자연, 인간 사이의 구분 없는 경관 을 만들어 낸다. 두란은 쓰레기와 오염이 인간에게 가져오는 위협이나 위기보다는, 쓰레기 경 관이 가진 미학적이고 예술적인 면모에 주목한다. 근대성/식민성의 모태가 되고, 다시금 신자 유주의라는 경제적, 물리적 권력의 착취 대상이 되어온 라틴아메리카의 해변에서, 두란은 검은 생태를 작동하게 하는 식민성의 뫼비우스의 띠를 끊어낼 대안을 실험하고 있다. 두란은 해안에 버려진 쓰레기들에 주변경관과 가장 어울리는 색을 입혀 자연과 인공의 구분이 없는 미학적 풍 경을 만들어 왔다. <워시드업> 프로젝트를 통해 발표한 작품들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인간적 시 선을 배제한 채, 플라스틱 폐기물과 자연을 주목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두란은 인간중심적인 시선을 뒤집고, 플라스틱의 타자성을 강조하면서 근대 관념의 실패와 대안을 촉구하는 장관을 선사한다.

29. Lucy Bell, “Place, People and Processes in Waste Theory: A Global South Critique”, in: Cultural Studies, vol. 33 (2018), pp. 98-121 (DOI: 10.1080/09502386.2017.1420810), pp. 102-103.

30. 카리브해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심각하게 오염된 지역이며, 기후변화로 인한 여러 가지 환경 재해로 큰 위 협을 받고 있다. “Blue Awakening as Latin America and Caribbean States Say No to Plastic”, UN Environment programme (2018), https://www.unep.org/news-and-stories/story/blue-awakening-latin-america-and- caribbean-states-say-no-plastic (2021년 3월 1일 최종 접속)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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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 폐기물들이 카리브해로 모여드는 것은 우연이면서, 우연이 아니다. 해류와 바람 등 자 연의 순환과 예기치 못한 일들과 사물들의 겹침, 물질들과 만남이 겹쳐져서 만들어낸 하나의 커다란 사건이다. 플라스틱을 만들고 사용하고 버린 것은 사람이지만 60여 개에 달하는 국가 의 쓰레기들을 카리브해로 옮긴 것은 온전히 인간의 역할 때문만은 아니다. 마치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제인 베넷은 사물에게도 권력이 있음을 말한다. 사 물-권력이란 “생기를 불어넣는, 어떠한 행위를 하는, 극적이고 미묘한 효과를 생산해내는, 활 기 없는 사물의 기이한 능력이다.”31 베넷은 사물에게 이러한 힘과 같은 효과가 존재하지만, 신 체들을 만나고 얽히면서 관계할 때 그 효과를 드러낸다고 주장한다. 또한, 인간의 의지와 관련 된 효과 역시 이러한 여러 행위소들의 교차점에서 일어난다고 설명한다.32 두란은 그의 작품에 서 이러한 사물들의 역동적인 뒤얽힘과 되기, 마주침과 부서짐을 기록한다. 또한 버려진 쓰레 기로서의 플라스틱이 아니라, 인간 사회를 벗어나 독창적 지형을 새로이 만들어가는 플라스틱 의 사물-권력과 타자들과의 배치를 부각한다.

마이테 수비아우레(MaiteZubiaburre)는 여타의 폐기물 예술에서 보이는 이미지와는 달리 두란의 작품의 쓰레기들이 깨끗하고 미학적으로 묘사되는 점에 주목한다. 특히 국경 이민자들 의 흔적을 반영하는 마이클 웰스(MichaelWells), 제이슨 데 레온(JasonDeLeón)의 작품과 비 교하며, 수비아우레는 두란의 작품에서는 이민자들의 고통과 트라우마의 흔적이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두란의 작품에 전시된 플라스틱은 상대적으로 깨끗하고, 선명하고, 다채롭다. 오래되고 낡은 파편들보다는 한눈에 보기에도 버려진지 얼마되지 않은 듯한 물건들 이다. <소녀의 꿈 SueñodeNiña>(2010)은 어린 소녀들의 물건이었을 것만 같은 분홍 슬리퍼 들과 부서진 인형의 팔, 다리를 바닷가에 배치한 작품이다. 낡은 슬리퍼들과 핏자국처럼 바닷 가 돌 사이를 파고든 검붉은 분홍색감을 통해 “버려짐과 슬픔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 작품 에 개별화된 사람에 대한 정서를 이입할 공간은 없다. 낡은 슬리퍼들과 파편화된 인형의 몸에 서는 수명이 다하기 전에 용도를 다해 버려진 쓰레기에 대한 감응이 일뿐이다. 이런 측면에서, 수비아우레의 지적은 적확하다: “그는 고통스럽지 않다.”33 두란은 사람-관람자의 감정이나 반 응에 호소하기보다는 플라스틱의 타자성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즉, 근대적 자본주의 체제가 배 제하고 착취해온 자연과 비인간 물질의 타자적 차이에 주목한다. 그는 인간의 감정적 투사물이 나 메타포로 오브제-객체로서 플라스틱을 배치한 것이 아니라 폐기물들 자체가 환경과 뒤얽혀

31. 베넷, 『생동하는 물질』, p. 46.

32. 베넷, 『생동하는 물질』, p. 97.

33. Maite Zubiaurre, Talking Trash: Cultural Uses of Waste (Nashville: Vanderbilt University Press 2019), p.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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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재영토화하는 과정을 강조하고 있다.

두란은 무엇보다도 자연과 플라스틱의 공존에 초점을 맞춘다. <바다 Mar>(2010)는 해안가로 쓸려온 국적 다양한 플라스틱 폐기물을 이용한 작품이다 [도 1]. 시원하게 치는 파도와 플라스 틱 의자, 바구니, 호스, 그물 등 파란색을 입은 청량한 파편들의 조화가 흥미롭다. 주변을 둘러 싼 생물들과 플라스틱 쓰레기 사이의 이질적인 질감은, 주변 자연환경의 톤과 색깔에 맞춘 폐 기물들의 형형한 색감으로 상쇄된다. 다채로운 색감과 완벽한 자연과의 조화에도, 바다에 부서 져 내려앉은 플라스틱은 복합적 감정을 일으킨다. 보기에 아름답다면 아름다울 수 있는 이 사 진은, 역설적으로 사진을 보는 우리-인간을 불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두란은 스스로도 이 프 로젝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워시드업> 프로젝트는 전세계 각지에서 멕시코 해변 으로 쓸려온 파편들을 미학적인 그러나 불편한 정서를 일으키는 작품으로 변모시키는 환경적 설치예술이자 사진 프로젝트이다.”34 그의 말처럼, 대부분의 <워시드업> 프로젝트의 사진 작품 에는 다양한 물질들의 색채가 어우러져 만드는 미학적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하지만 언뜻 장관 을 이루는 사진 작품을 면밀하게 살펴보기 시작하면, 두란이 이야기하는 불안과 동요를 느끼게 된다.

바다와 하늘, 쓰레기들의 색감이 조화를 이루면서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약하게 지워낸다.

또한, 깨끗함과 더러움, 생물과 무생물, 움직임과 멈춤 등의 서로 모순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을 공존시킨다. <노마드의 바다 MaratNomade>(2013)에서는 조금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아름 다움과 더러움, 자연과 인위, 예술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면서 환경 자체가 예술이자 삶 의 터전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다른 작품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스파이럴 형태의 배치는 34. “Transforming a Trashed Landscape is an environmental installation and photography project that transforms the international debris washing up on Mexico’s Caribbean coast into aesthetic yet disquieting works.” Alejandro Durán,

“Statement”, in: Wahsed Up: Transforming a Trashed Landscape, https://alejandroduran.com/statement (2021년 5월 15일 최종 접속).

[도 1] 알레한드로 두란, <바다>, 2010, 사진 [도 2] 알레한드로 두란, <노마드의 바다>, 2013,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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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적인 사물들이 뒤얽혀 살아가는 양태를 한층 강화해서 드러낸다 [도 2]. 이런 방식으로, 두 란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 그리고 주체와 타자 사이의 분리된 거리는 인간의 상상에 불과한 것임을 보여준다. 자연경관과 쓰레기 경관은 색감을 통해 서로 소통하고 호응한다. 인간 문화 세계를 벗어난 두 타자가 뒤얽혀 새로운 배치를 형성하며 자연과 인간, 다른 비인간의 분리된 영역이 아님을 드러낸다.

또한 쓰레기들이 자리 잡은 공간은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국가와 전 세계로부터 보호받 는 생태 지역을 점령하고 있는 오염원이 되어버린 폐기물에 대한 위기감을 보여주기 때문이 다. 가볍고, 싸고, 버리기 쉬운 플라스틱이 그저 세계를 부유하는 것이 아니라 유독성의 생태 계 교란 물질임이 밝혀졌다. 스티븐 부라니의 설명처럼 단순한 “잡동사니”에서 “사악한 존재”

로 인식되기 시작했다.35 쌓이고 축적되고 사라지지 않는데다가 변화를 거듭하는 오염물-되기 (becoming)의 존재라는 인식이 199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이제 쌓이고 흐르는 폐기물들은 가 볍지가 않고 점점 그 부피와 무게를 늘려가며 지구를 잠식하고 있다. 이런 쓰레기들이 존재하 지 않아야 할 곳, 즉, 자연유산으로 보호된 지역에 쓰레기들이 있다는 사실은, 인간이 자연환경 을 파괴하고 있다는 분명한 현실을 보여주는 한편 인간은 자연을 보호할 능력조차 없음을 보여 준다. 인간의 주체성, 비인간 타자에 대한 우월성이 터무니없는 환상인지를 깨닫게 하는 장면 이다.

플라스틱은 인간이 주도한 경제적 목적과 본래의 가치를 벗어나 천연의 환경을 재영토화 하 고 있다. 만들어지고 버려진 상품을 벗어나 세계를 바꾸는 주요한 행위소로 역할 한다. 바다와 플라스틱의 배치는 인간 부재의 자리에서 새로운 지형을 만들어 내고 있다. <바다>에 쌓인 플 라스틱은 거의 새것 같은 질감을 보인다 [도 1]. 빠르게 소비하고 가볍게 버리면서 닳기도 전에 버려진 것 같은 물건들의 배치는, 자본주의와 환경 파괴와의 깊은 연관성을 시사한다. 두란은 그의 작품을 통해 “소비주의에 의한 새로운 형태의 식민지화”를 시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 는 플라스틱 폐기물들이 개발되지 않은 환경까지 흘러 들어가는 현실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 려는 듯하다. 식민지화라는 개념이 땅의 점령과 그 땅에 속한 개체들에 대한 정복을 뜻하는 것 이라면 “일회용 문화(disposableculture)”가 양산해낸 폐기물들은 지구 생태에 등장한 새로운 정복자들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부라니는 싸고, 가볍고, 버리기 쉬운 플라스틱의 등장은

“폐기 중심의 소비문화로 이동하는 기폭제”가 되었다고 한다. 폐기와 배제가 가능하다는 믿음 은 선형적 시간관에서 온다. 하지만 플라스틱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지구의 생태로 돌아온 다. <바다>의 쓰레기들의 선명한 색감처럼 형형하게 존재하면서, 탄생-사용-폐기의 근대적/자 35. 부라니, 「굿바이 플라스틱」, p.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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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주의적 통제에 반기를 든다. 해양부유물들은 불균형한 자본주의 세계의 구조를 역행하고, 근 대 체계가 만든 구분과 구별의 관념을 부정하는 존재다.

파도의 역동성과 쓰레기들은 대비되지만 비슷한 시간성을 공유한다. 반복하고, 순환하며, 잘 사라지지 않는다. 파도는 부수고, 다시 짓고를 반복을 통해 영원 같은 시간을 만들어낸다.

파도와 플라스틱의 거의 무한에 가까운 시간성은 행위의 리듬이고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레 비 브라이언트는 각각의 존재들이 “시간성을 복수”로 만든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모든 기계 [존재]는 독자적인 시간성의 내부형식을 갖추고 있어서 각자의 시간적 리듬이 다르기” 때문이 라 설명한다. 플라스틱의 시간성은 인간의 시선에서는 무한하지만 그것은 상대적인 개념일 뿐 이다.36 플라스틱과 인간 개체의 리듬과 구성은 다르지만 무한한 존재는 아니다. 플라스틱 역시 다른 사물과 물질들을 만나면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물이다. 굽이치는 파 도와 젖은 바위, 쓰레기들은 서로 다른 리듬으로 사물-권력을 발현하고 뒤얽히면서 개별적 타 자에서 하나의 집합체로 약동한다. 그리고 이러한 비인간 타자들의 집합적 배치는 직선적이고, 발전적인 시간과 공간을 전복시킨다.

이러한 플라스틱이라는 물질의 작동 방식과 그에 따른 시간을 마주하는 것은 근대적 인간에 게 두려움을 선사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지속해온 인간중심적, 근대적, 유럽적 인식의 외부 에 존재하는 완벽한 타자성을 마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마드의 바다>의 경우, 원경에 위 치한 사진 풍경과, 조금 더 때가 묻은 듯한 쓰레기와 원색이 살짝 죽은 창백한 색감과 신발과 얼음틀 등 실생활과 더 가까운 물건들에게서 노스탤지어와 같은 감응을 느낄 수 있다: 밀려난 것, 버려진 것들에서 느끼는 쓸쓸한 감정. 그러나 이러한 감정은 한때나마 저 물건들을 소유했 던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폐기물들이 본인의 리듬으로 다른 사물들과 마주 치면서 거쳐온, 거치고 있는 오염의 과정을 목도하면서 생기는 것이다. 플라스틱의 시간적, 물 리적 편재성은 인류세의 딜레마를 드러낸다.37 아만다 뵈츠케스(AmandaBoetzkes)는 지구를 지배할 수 있었던 인류의 힘은, 역설적으로 인간 스스로의 멸종을 초래했고 이것이 인류세의 딜레마라고 설명한다. 뵈츠케스는 플라스틱 폐기물들의 영속성과 생동성에서 인류세의 역설 적 상황, 즉 인간종의 멸종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바다>들에서 우리는 인간의 부재한 장명을 통해 인간 멸종의 미래를 본다.

사진 <싹 Brotes>에는, 나무와 풀들이 우거져야 할 해안가 수풀을 버려진 칫솔들이 빼곡하게

36. 레비 브라이언트, 『존재의 지도』, 김효진 옮김 (갈무리 2020), pp. 241-243.

37. Amanda Boetzkes, Plastic Capitalism: Contemporary Art and the Drive to Waste (Cambridge, MA: The MIT Press 2019), pp. 201-20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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