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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시조에 나타난 위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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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 진 희

*15)

<국문초록>

영어시조란 영어로 쓰인 시조를 말한다. 본고에서는 영어시조가 지닌 한 특성 인 위트에 대해 논의하였다. 위트는 영어권에서 시조를 논의할 때 종종 주목받아 온 특성이며, 실제로 영어시조에는 매력적인 위트가 보이는 작품들이 다수 존재 한다. 이렇듯 위트가 영어시조에서 부각된 양상과 그 문학적 가능성을 본고에서 는 살펴보았다. 비평적 의미에서의 위트는 ‘부조화의 조화’를 핵심으로 하며, 비 상한 이미지나 역설, 아이러니 등을 통해 흔히 구현된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비평 적 의미에서의 위트가 시조에서 구현되어 인식적․풍자적․해학적 즐거움을 유 발하는 양상을 고찰하였다. 먼저 고시조에 나타난 위트의 예를 들어 비교의 자료 로 삼은 후, 이어 영어시조를 살펴보았다.

경구시와 소네트 같은 기존 장르, 아이러니와 위트에 대한 오랜 문학적 관념 등과의 연관 속에서 시조는 영어권에 수용되었다. 삼장 구조 중 종장의 반전이 지닌 묘미, 이에서 발생하는 아이러니와 위트는 영어권 사람들에게 시조가 어렵 지 않게 수용되고 창작될 수 있었던 주요소였다. 이에 영어시조에는 위트를 통해 인식적․풍자적․해학적 즐거움을 주는 내용이 풍부하게 담길 수 있었다. 이러한 위트는 물론 고시조에도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신랄한 풍자나 과장된 해 학만이 아니라, 각박한 일상 속에서도 문득 스쳐지나가는 다양한 해학적 순간들 을 포착해 낸 것은 영어시조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일상의 힘을 북돋아 줄 수 있는 일상 속의 시로서 시조가 지닌 가능성을 영어시조는 보여 주 고 있다.

주제어 : 시조, 영어시조, 위트, 아이러니, 웃음, 풍자, 해학

* 아주대학교 기초교육대학 강의교수

(2)

1. 들어가며

영어시조란 영어로 쓰인 시조를 말한다. 하이쿠를 영어로 쓰듯이 시조를 영어로 쓴 것이 영어시조이다. 이러한 영어시조의 창작이 본격화된 것은 대 략 1990년대 무렵의 일이다. 인터넷에서 래리 그로스[Larry Gross]의 ‘시 조 포럼’[Sijo Forum]

1)

과 같은 온라인 영어시조 창작 모임이 생기고 단행 본 영어시조집의 발간이 이루어진 것이 이때의 일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 는 미국 시카고에서 결성된 세종문화회[Sejong Cultural Society]

2)

의 주 관으로 2008년부터 해마다 영어시조 대회가 열리고 있으며, 미국의 몇몇 중 등교육기관 및 대학에서도 영어시조의 창작을 교육하고 있다.

고시조를 넘어 현대시조로, 민족문학을 넘어 세계문학으로, 시조의 외연은 점차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외연의 확장은 시조를 살찌우는 일임이 틀림없 기에, 국내에서도 영어시조에 대한 관심을 차츰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3)

이 글에서는 이러한 관심의 일환으로, 영어시조가 지닌 한 특성에 대해 논의해 보려 한다. 이 글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영어시조에 나타난 위트[wit]이 다. 위트는 영어권에서 시조를 논의할 때 종종 주목받아 온 특성이며, 실제로 영어시조에는 매력적인 위트가 보이는 작품들이 다수 존재한다. 따라서 이

1) <http://groups.yahoo.com/group/sijoforum>.

2) <http://sejongsociety.org>.

3) 박미영, 「미주 발간 창작영어시조집에 나타난 시조의 형식과 그 의미」, 시조학논총

제34집, 2011, 71∼110면; 「야후 영어 사이트에 존재하는 영어시조 동호회《sijoforum》의 구성과 의미」, 고전문학연구, 제42집, 한국고전문학회, 2012, 71∼105면; 한재남, 「시조의 미국 진출-번역과 수용」, 인문과학연구 제19집, 동덕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2, 79∼106면. 이처럼 영어시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한편에는 영어시조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가, 또는 영어시조도 시조라 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하는 점 등에 대해 의문이 남아 있다. 이 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시조의 형식적․내용적 본질에 대한 더 깊은 고찰이 필요할 것이다. 이에 대한 것은 후고로 미루고, 본고에서는 시조를 표방하며 영어로 쓰인 시작품들을 일단 영어시조로 규정하며 논의를 진행하였다.

(3)

글에서는 영어시조에서 위트가 부각된 양상과 그 문학적 가능성을 살펴보려 한다.

한국인들에게 시조와 위트는 별 관련이 없는 말들로 들릴 수도 있을 듯하 다. 그러나 영어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시조의 위트에 흔히 주목해 왔다.

* 첫째 행에서는 주제를 제시하고, 둘째 행에서는 이를 발전시킨다. 셋째 행 에서는 반대되거나 전환된 주제가 제시되는데, 이로써 시상이 완결된다.

만일 첫째․둘째 행이 의문이나 질문으로 구성된다면, 셋째 행은 그에 대 한 대답이나 해결이 될 것이다. 셋째 행에서는 위트 있는 표현으로 시상이 전환될 수도 있다. …(중략)… 시조의 특성과 본질은 흔히 강한 위티시즘을 동반하며 날감정을 단순한 형식 속에 표현하는 특유의 감수성에서 찾을 수 있다.4)

* 첫째 행에서는 독자에게 주제를 제시하고, 둘째 행에서는 위트와 은유로 주제를 비틀고 확장하며, 마지막 행에서는 시상을 매듭짓는다.5)

* 시조의 마지막 행은 흔히 서정적이고 주관적이다. 그것은 주제를 비틀어, 심오하거나, 위트 있고 아이러니컬하거나, 해학적이거나 속담과도 같은 내 용들을 표현하기에 용이하다.6)

4) “The theme is stated in the first line, developed in the second and an anti-theme or twist is introduced in the third, which rounds out the whole in terms of resolution. If the first two lines consist of a query or question, the concluding line will answer or resolve it.

Or it makes a neat comment with a witty turn. … The characteristic or essential spirit of the sijo is sensibility expressed in the simplicity of naked emotion, often with a strong dash of witticism.”-Jaihiun Kim, Classical Korean Poetry, Asian Humanities Press, 1994, pp.Ⅹⅷ∼ⅩⅩ.

5) “the first line stating a theme to hook the readers, the second twisting and expanding the theme with wit and metaphor and the last concluding or resolving the theme.”-Kim Unsong, Modern Sijo, One Mind Press, 1995, p.V.

6) “That final sijo line is frequently lyrical, subjective or personal, and may very well supply a profound, witty, ironic, humorous or proverbial twist.”-Larry Gross, “Sijo Primer #1”,

<http://www.sejongculturalsociety.org/writing/current/resources/sijo_guide.php>

(4)

* 마지막 행의 전반부에서는 의미나 리듬, 어조, 그밖의 다른 장치들을 통해 놀람을 유발하는 ‘비틀기’를 이용한다. 성공적인 시조가 되기 위해서는 마 지막에 독창적인 위트와 통찰, 강한 정서적 대단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7)

* 시조는 하이쿠보다 서정적․주관적․사적인 편이며, 그 마지막 행은 주제 를 전환하여, 심오하거나, 위트 있고 해학적이거나, 속담과도 같은 내용들 을 표현할 수 있다.8)

위의 예들은 모두 시조 종장에서 이루어지는 주제의 전환[turn] 혹은 비틀 기[twist]를 강조하며, 이러한 구성을 통해 시조가 위트 있는 결말을 이끌어 낼 수 있음에 주목하고 있다. 종장의 구조에 대한 이러한 주목은 시조에 대한 영어권 담론에서 이전부터 있어 온 것인데,

9)

위트 있는 결말의 중요성은 영

(original publication: 30/11/2000, http://www.egroups.com/message/sijoforum/15).

7) “The first half of the final line employs a ‘twist’ by means of a surprise in meaning, sound, tone or other device. To end with originality of wit, a profound observation or a strong emotional finale is a must for a successful sijo.”-St. Jacques, Elizabeth, Around The Tree of Light: a collection of Korean sijo, Maplebud Press, 1995, p.12.

8) “The sijo is often more lyrical, subjective and personal than haiku, and the final line can take a profound, witty, humorous or proverbial turn.”-Jane Reichhold, <http://www.ahapoe try.com/sijo.htm>.

9) “but the twist at the beginning of the last line acts as a countertheme before the rest of the line completes the poem.”[마지막 행 초반의 비틀기는 후반부에서 시상을 종결하기 전에 ‘전환주제’로 기능한다.]-Richard Rutt, The Bamboo Grove, The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1998, p.11. “The introduction of a deliberate twist in phrasing or meaning in the third line is often a test of the poet's originality.”[종장에서의 표현상․의미상의 고의 적인 비틀기는 시인의 독창성을 시험할 수 있는 관건이 되곤 한다.]-Peter Lee, Anthology of Korean Literature, The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81, p.ⅩⅩⅱ. “The first two lines of the sijo present and develop the topic, while the third line introduces a ‘twist,' a new turn, direction, or term, then moves through a slightly expanded second segment to the conclusion.”[시조의 첫 두 행은 주제를 제시하고 발전시킨다. 셋째 행에서는 새로운 방향이 나 용어로 ‘비틀기’가 이루어지고, 이어 살짝 확장된 두 번째 마디를 거쳐 결론으로 나아간 다.]-David McCann, Urban Temple: sijo, twisted & straight, Bo-Leaf Books, 2010, p.8.

“For the third line not only brings the poem to a close, but frequently it also sharpens the

(5)

어시조의 창작과 관련하여 더욱 강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위 인용 문들의 출전은 대부분 영어시조의 창작과 관련된 것들이다. 영어권 독자들은 고시조에서 위트를 찾을 수 있는 경우가 드물다고 여기면서도, 시조의 분량 이나 구조를 감안할 때 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결말을 시조에서 흔히 기 대하게 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10)

이는 서양의 문학적 전통인 警句詩 [epigram] 나 소네트 등에 비추어 시조를 수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재론할 것이다.

영어권 시조담론에서 ‘비틀기’와 위트의 요소를 중시했던 만큼 영어시조에 는 그러한 요소가 잘 살아 있다. 이 글에서는 영어시조의 이러한 특징적 면모 를 미국에서 발간된 개인시조집들을 대상으로 살펴보려 한다. 김운송의 현 대시조 Modern Sijo, 데이비드 맥캔의 도시의 절간 -시조, 비틀리고 똑바 른 Urban Temple: sijo, twisted & straight, 린다 박의 지붕 위의 탭 댄스 Tap Dancing on the Roof: sijo(poems)

11)

등이 분석의 대상이다.

그러나 이들 작품집을 분석하기에 앞서 위트의 개념과 고시조에 나타난 위트 의 양상을 먼저 살펴볼 것이다. 위트는 결코 단순하지만은 않은 용어이고, 영 어시조에 나타난 위트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비교대상으로서 고시조의

theme developed in the first two lines but introducing a jolting twist or countertheme.”[셋째 행은 단순히 시를 매듭짓는 것이 아니라, 처음 두 행에서 발전된 주제를 날카롭게 하고 충격적인 비틀기나 ‘전환주제’를 제시한다.]-Kichung Kim, Classical Korean Literature, M.

E. Sharpe, Inc., 1996, pp.77∼78.

10) 다음과 같은 언급을 참고하였다. “The conclusion of a sijo is seldom epigrammatic or witty. … A sijo in translation may therefore often seem to lack the firm clinch that the Westerner would expect in a poem whose style and length suggest an epigram.”[시조의 결말은 警句詩的이거나 위트 있는 경우가 드물다. … 서양인들이 보기에 시조의 스타일과 길이는 경구시에 알맞을 것으로 보이는데, 번역해 놓은 시조는 결말의 강렬한 인상이 부족 하다고 느껴지기 쉽다.]-Richard Rutt, op.cit., p.12.

11) Kim Unsong, op.cit. David McCann, op.cit. Linda Sue Park, Tap Dancing on the Roof:

sijo(poems), Clarion Books, 2007.

(6)

위트 또한 알아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2. 위트의 개념

위트의 요소가 영어시조에서 중시될 수 있었던 것은 위트가 영미문학사에 서 중요하게 다루어져 온 비평용어이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위 트는 일상적으로 흔히 쓰이는 말이지만, 비평적 의미에서의 위트는 오랜 시 기에 걸쳐 다양한 의미로 쓰여서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그런가하면 일상적 의 미에서의 위트 또한 인접개념들과의 차이가 애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따라 서 시조의 위트를 분석하기에 앞서 위트의 개념을 일상적 의미와 비평적 의미 로 나누어 규명할 필요가 있겠다.

1) 일상적 의미

‘위트가 있다’, ‘유머러스하다’ 등의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일상적인 의미에 서 위트는 유머와 별로 다르지 않게 쓰인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위트는 대체로 재치 있는, 혹은 지적인 유머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컨대 바보 흉내를 내는 사람을 보고 유머러스하다고는 할 수 있지만 위트가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일상적 의미에서 유머와 위트가 지닌 이러한 차이는 다음 과 같은 사전적 정의를 통해서도 살필 수 있다.

12)

* 위트: 말이나 글을 즐겁고 재치 있고 능란하게 구사하는 능력.

* 유머: 남을 웃기는 말이나 행동.

12) 한국어 사전으로는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http://stdweb2.korean.go.kr>을, 영 어 사전으로는 Oxford Dictionaries<http://www.oxforddictionaries.com>를 참조했다.

(7)

* wit: N1. The capacity for inventive thought and quick understanding;

keen intelligence. [참신한 사고력과 빠른 이해력, 예리한 지성.]

N2. A natural aptitude for using words and ideas in a quick and inventive way to create humour. [유머를 자아내도록 민첩하고 참신하게 생각하고 어휘를 사용하는 능력.]

* humour: N1. The quality of being amusing or comic, especially as expressed in literature or speech. [특히 문학이나 연설에 표현된 즐겁고 우스운 성질.]

N2. A mood or state of mind. [기분이나 마음의 상태.]

V1. Comply with the wishes of (someone) in order to keep them content, however unreasonable such wishes might be. [상대방을 만족시키기 위해,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비록 비합리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에 응하다.]

유머가 즐겁거나 우스운 성질 그 자체와 관련된 것임에 반해 위트는 반드시 지성 및 언어적 표현력과 연관된 것임을 위의 사전적 정의에서도 알 수 있다.

어원적으로 보아도 유머는 보다 물질적인 것에, 위트는 정신적인 것에 가깝 다. 유머는 본래 라틴어로 體液[body fluid]을 의미했다고 한다. 고대 그리 스에서는 인간에게 네 종류의 체액이 존재한다고 보았는데, 이러한 체액이 균형을 이룰 때 인간의 육체와 정신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으로 여겼 다.

13)

반면 위트는 앵글로색슨[anglo-saxon] 언어에서 정신과 知性을 의

13) “humour: N3. Each of the four chief fluids of the body (blood, phlegm, yellow bile (choler), and black bile (melancholy)) that were thought to determine a person’s physical and mental qualities by the relative proportions in which they were present.”-Oxford Dictionaries. “humour: 1a. In ancient and medieval physiology and medicine: any of four fluids of the body (blood, phlegm, choler, and so-called melancholy or black bile) believed to determine, by their relative proportions and conditions, the state of health and the temperament of a person or animal.” -Oxford English Dictionary.

(8)

미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14)

한편, 유머나 위트와 유사한 용어로 諧謔, 滑稽 등도 있다. 이 말들은 웃음 을 유발하는 언어표현과 관련하여 흔히 사용되어 왔지만, 표현의 문제라기보 다는 상황 자체의 우스움과 관련된 경우 역시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용어들은 ‘유머’[humour]나 ‘코믹’[comic]과 같은 외국어의 번역어로 쓰이 면서,

15)

현재는 외국어의 의미에 맞추어 그 뜻이 규정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 다. 그런가하면 위트의 번역어로 쓰이는 용어에 ‘機智’가 있고, 해학의 인접 개념으로 ‘諷刺’도 있다. 이 중 ‘기지’는 보통 재치나 지혜, 꾀 등을 의미해서, 언어적 표현과 관련되며 웃음을 유발한다는 위트의 일상적 의미와는 잘 부합 하지 않는 면이 있다. 풍자 역시 대상을 비꼬아 공격한다는 발화의 내용적 특 성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위트와 내포를 달리한다.

따라서 유머의 일종이되, 언어적 표현과 관련된 지적인 유머로서, 인접 개 념들과 구분되는 위트의 일상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겠다. 물론 이러한 구분 은 서로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위트와 유머, 해학이 겹치듯이 위트 와 풍자, 기지도 겹친다. 위트는 열등한 행동을 재현하는 유머와 함께 쓰일 수도 있고

16)

부정적 대상을 비꼬는 풍자 속에서 쓰일 수도 있다.

14) C. S. Lewis, Studies in Word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4, pp.86∼87.

15) ‘해학’은 ‘유머’의, ‘골계’는 ‘코믹’의 번역어로 쓰인다.

16)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우스운 것은 “타인에게 고통이나 해악을 끼치지 않는 일종의 과오 혹은 추악”한 것이다. 다음 구절 참조. “희극은 전술한 바와 같이 보통인 이하의 악인 의 모방이다. 그러나 이때 보통인 이하의 악인이라 함은 모든 결점에 관하여 그런 것이 아니라, 그 특별한 종류 즉 우스운 것에 관하여 그런 것이니, 우스운 것은 추악한 것의 일종 인 것이다. 우스운 것은 타인에게 고통이나 해악을 끼치지 않는 일종의 과오 혹은 추악이다.

예컨대 우스운 가면은 고통을 주지 않는 일종의 추악한 것이요, 왜곡된 것이다.”-아리스토 텔레스, 시학, 손명현 역, 박영사, 1991, 57면.

(9)

2) 비평적 의미

문학의 비평용어로서 쓰일 때 위트는 유머와의 연관성이 다소 멀어지고 사 고나 언어의 한 특성을 의미하게 되는데, “부조화스러운 것들의 어울림”이 바 로 그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16∼17세기의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 are, 1564∼1616] 및 일군의 형이상학파 시인[Metaphysical Poets]

17)

들에 의해 부각된 것이라고 하는데,

18)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 중 다 음 대목을 예로 들어 볼 수 있다.

즐겁고도 비극적이라고? 지루하고도 간결하다고?

그것은 뜨거운 얼음이며 놀랍고도 이상한 눈이로구나!

어떻게 하면 이 부조화의 조화를 우리가 발견할 수 있을까?

Merry and tragical? Tedious and brief?

That is hot ice and wondrous strange snow!

How shall we find the concord of this discord?19)

인용문은 극 중 테세우스[Theseus]가 바텀[Bottom] 등 평민들의 연극을 공연하기에 앞서 하는 말이다. 그는 여기서 “즐겁고도 비극적이며 지루하고 도 간결한, 놀랍고 마법 같은” 예술이 어떻게 하면 존재할 수 있을지 묻고 있

17) Metaphysical Poets: “Donne의 영향을 받아 엘리자베스 시대의 낭만적인 인습에서 벗어 나서 페트라르카풍의 기상(conceit)과 감미로운 표현을 버리고 엉뚱한 심상과 교묘한 논리 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기상을 채택하여 거친 대화체 언어와 율격으로 시를 쓴 사람들을 형이상학파 시인이라 명명하는데, 여기에는 종교시를 주로 쓴 Herbert, Crashaw, Vanghan, Quarles, Traherne과 왕당파로 활약한 King, Cowley, Cleveland와 청교도파에서 활약한 Marvell 등이 속한다.”-김우탁, 영문학사1, 을유문화사, 1986.

18) The New Princeton Encyclopedia of Poetry and Poetics,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8, p.1375.

19) James Biester, Lyric Wonder: rhetoric and wit in renaissance English poetry, Cornell University Press, 1997, p.1에서 재인용.

(10)

다. 여기서 그가 말한 ‘부조화의 조화’[concord of this discord]는 17세기 후반 이후 英詩 비평가들이 위트의 본질로 말한 바로 그것이다. 코울리[Ab raham Cowley, 1618∼1667]는 ‘형이상학적 위트’[metaphysical wit]는 가장 관련 없는 것들을 연관시키는 기발한 착상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라 하였 고,

20)

존슨[Ben Johnson, 1573∼1637] 또한 위트를 “명백히 같지 않은 것들 사이에서 불가사의한 유사성을 발견하는 것, 상이한 이미지들의 조 합”

21)

이라고 설명하였다.

위트가 위와 같은 비평적 의미를 띨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의 본래적 의미와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위트는 본래 지성을 가리 키는 용어였다. 이후 그것은 라틴어 ‘ingenium’의 번역어로 쓰이면서, 천부 적으로 부여받은 智力이라는 의미를 띠게 되었고, 그리하여 재능, 상상력과 유사한 의미를 내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후에 위트의 의미는 보다 세 속화되어 정신의 민첩성을 쉽게 드러내는 언어 형식들, 즉 언어유희나 격언 등을 특히 가리키게 되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17세기 후반의 영시 비평가 들은 위트가 지닌 본래적 의미와 세속적 의미가 녹아들어 있는 용어로서 위트 를 시 비평에서 사용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16∼17세기의 형이상학파 시 들에 나타난 奇想[conceit]

22)

과 역설, 아이러니 등 부조화의 조화를 문학적 위트의 본질로 보는 관점이 생겨나게 되었다.

23)

20) “Wit, for Cowley, depends on the unexpected thought which yokes together 'things by nature most unneighbourly'.”-C. C. Lewis, op.cit., p.106.

21) “After that comes the perfection of Johnson, 'a kind of discordia concors, a combination of dissimilar images, a discovery of occult resemblances in things apparently unlike'.”Ibid., p.109.

22) 奇想[conceit]: “문학에 있어서의 수사법(修辭法). 상식적으로는 결부시킬 수 없는 2개 이상의 관계로부터 공통성을 발견하여 억지로 결부시키는 것으로 규모가 큰 비유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16∼17세기의 영국문학, 특히 형이상시(形而上詩)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두산백과, <http://www.doopedia.co.kr>.

(11)

위와 같은 의미에서의 문학적 위트가 다시 조명을 받은 것은 20세기의 신 비평[new criticism]에 의해서라고 한다. 엘리어트[T.S. Eliot, 1888∼1965]

와 브룩스[C. Brooks, 1906∼1994] 등은 낯설게 하기와 아이러니, 역설, 패러디 등을 시의 중요한 장치로 내세웠는데, 이와 함께 17세기 형이상학파 시인들의 위트와 이른바 ‘상호텍스트적 위트’[intertextual wit] 등이 지닌 의미가 새롭게 평가받게 되었다.

24)

이처럼 위트는 영문학사에서 오랫동안 주목받아온 비평적 개념이며 그 비 평적 의미는 일상적 의미와는 구별된다. 비평적 의미에서 위트는 우스운 상 황과는 필연적인 관련이 없고,

25)

비유와 아이러니 등의 문학적 장치를 통해 기발한 착상, 부조화의 조화를 표현하는 발화를 뜻하는 것이다. 이러한 위트 는 영문학사에서 오랜 주목을 받아온 개념이기에, 영어권 학자들이 시조라는 낯선 장르를 읽을 때도 쉽게 원용될 수 있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시조 종장의 전환 구조는 셰익스피어 소네트[sonnet]의 마지막 聯句[couplet]

가 지닌 전환 구조와 그 위티시즘[witticism]을 연상시키는 만큼,

26)

시조에

23) 위트는 기발하고 역설적이거나 기묘한 이미지의 조합, 그리고 은유, 환유, 아이러니, 역설, 언어유희, 대조 등의 수사법을 활용하는 능력과 관련된 것으로 여겨진다. “In its heyday as a critical term, w. referred to the inventive or imaginative faculty and, in particular, to the ability to see similarity in disparates. Indeed, w. could be prized for its ability to discover brilliant, paradoxical, or far-fetched images and figures esp. metaphor, metonymy, irony, paradox, pun, or antithesis….”-The New Princeton Encyclopedia of Poetry and Poetics, p.1375.

24) Ibid.

25) 영국의 형이상학파 시인들은 신학적 주제를 자주 다루었다.

26) 소네트는 13세기 이탈리아의 민요에서 파생되어 르네상스 시대에 유럽 전역에 유포된 유럽의 대표적인 시형이다. 총 14행으로 되어 있는데, 셰익스피어 형식이라고 불리는 영국 소네트는 4․4․4․2행으로 구성된다. 셰익스피어 형식의 소네트에서 마지막 2행은 주제 를 첨예하게 드러내거나 예상치 않은 방식으로 시상을 전환시키며 작품을 마무리하는데, 이러한 소네트에 비겨 시조는 영어권에서 흔히 이해되었다. Kichung Kim, op.cit., pp.79∼80 참조.

(12)

서도 3단 구성을 통한 아이러니한 시상 전개, 그리고 위트의 요소를 영어권에 서는 특히 기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제 비평적 의미에서의 위트가 고시조와 영어시조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려 한다. 그러나 그 전에 영국의 대표적인 형이상학파 시인인 존 던 [John Donne] 의 시 한 수를 예로 들어 문학적 위트의 양상을 살펴보는 것 이 도움이 될 것이다. 다음은 그의 작품 중 널리 회자되는 <벼룩 The Flea>

의 일부이다.

오, 잠깐, 한 마리 벼룩 속에 세 목숨을 살려주오.

우리는 그 속에서 거의 결혼, 아니 그 이상을 했소.

이 벼룩은 당신과 나 그리고 이건 우리 신방이며, 결혼식 성전이오.

비록 부모가 싫어하고 당신도 그렇지만, 우리는 만나서, 살아 있는 이 흑옥의 벽 속에 은거하고 있소.

…(중략)…

잔인하고 황급하게, 당신은 이미

죄 없는 피로 당신의 손톱을 붉게 물들였단 말이오?

이 벼룩이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이오?

당신한테서 빨아먹은 피 한 방울 말고?

그럼에도 당신은 기세당당하게 말하기를

당신 자신도 나도 그 때문에 더 약해진 것은 아니라 하는구려.

그건 사실이오. 그러니 두려움이 얼마나 허위인가를 배우시오.

꼭 그만큼의 정조가, 당신이 내게 몸을 맡길 때

소모될 거요. 이 벼룩의 죽음이 당신에게서 앗아간 생명만큼만.27)

27) “Oh stay, three lives in one flea spare, / Where we almost, nay more than married are.

/ This flea is you and I, and this / Our marriage bed, and marriage temple is; / Though parents grudge, and you, w'are met, / And cloistered in these living walls of jet. /…/ Cruel and sudden, hast thou since / Purpled thy nail, in blood of innocence? / Wherein could

(13)

위의 시는 求愛의 주제와 벼룩을 연관시켜, 엉뚱하고 이질적인 이미지인 奇想을 만들어내고 있다. 벼룩이 자신과 애인의 피를 빨아먹은 사실에 착안 하여, 사랑의 완성이라는 주제를 벼룩의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한 편, 시의 후반부에서는 애인의 행위에서 시적 화자가 예상치 않은 의미를 도 출해 내어 상황의 아이러니를 연출한다. 벼룩을 통해 엉뚱하게도 사랑의 완 성을 노래하는 시적 화자 앞에서 화자의 애인은 단번에 그 벼룩을 죽여 버린 다. 화자의 애인은 화자의 위트가 과장된 터무니없는 것임을 말하며 화자의 억지스러운 주장을 무화시키고자 벼룩을 죽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애인 의 행위를 통해 시적 화자는 놀랍게도 貞操의 무의미함이라는 예상치 않은 의미를 이끌어 낸다. 의도치 않은 결과, 원인과 결과 간의 이러한 불일치는 상황의 아이러니를 만들어 낸다.

위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부조화의 조화라는 비평적 의미에서의 위트는 비 상한 이미지나 역설, 아이러니 등을 통해 흔히 구현된다. 시조의 위트 또한 이러한 측면들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비평적 의미에서의 위트는 일상적 의 미의 위트에 보다 가까울 수도, 보다 멀 수도 있다. 일상적 의미의 위트는 웃 음을 자아낸다는 특성을 지니는데, 문학적 위트는 해학과 풍자를 동반하며 웃음을 유발할 수도 있으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예로 든 존 던의 <벼룩>

과 같은 경우, 이 시의 위트는 해학과 풍자 양자 모두와 관계된다고 볼 수도 있고, 반대로 어느 쪽과도 별로 관련되지 않은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 사랑 을 벼룩에 빗대는, 상식을 깨는 기발함은 어처구니없는 것으로 비칠 여지가 있기에 해학성을 띤다. 그런가하면 마지막의 아이러니는 맹목적 정조관념에

this flea guilty be, / Except in that drop which it sucked from thee? / Yet thou triumph’st, and say'st that thou / Find’st not thy self, nor me the weaker now; / ’Tis true; then learn how false, fears be: / Just so much honor, when thou yield’st to me, / Will waste, as this flea’s death took life from thee.”-<http://www.poetryfoundation.org/poem/175764>.

번역은 김선향 편역, 17세기 형이상학파 5인 시선집, 열음사, 1996, 24∼26면에서 인용.

(14)

대한 풍자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기상과 아이러니는 완전히 터무니없 거나 열등한 것은 아니고, 남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만 근거한 것도 아니다.

한편으로 이는 미처 깨닫지 못한 현상의 이면을 독자가 포착할 수 있게 하여, 마치 수수께끼를 풀 때와 유사한 인식적 즐거움을 유발한다. 이처럼 문학적 위트는 해학적, 풍자적 웃음뿐 아니라 지성적인 인식의 즐거움도 가져다준 다.

이제, 부조화의 조화를 이루는 문학적 위트가 시조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 지를 살펴볼 것이다. 기상과 아이러니를 통하여 형성된 시조의 위트가 여러 종류의 즐거움, 즉 인식적 즐거움, 풍자적 즐거움, 해학적 즐거움 등을 유발 하는 양상을 고찰하고자 한다. 먼저, 고시조에 나타난 위트의 예를 들어 비교 의 자료로 삼은 후, 이어 영어시조의 양상을 살펴볼 것이다.

3. 고시조의 위트

조선 전기의 사대부 시조와 위트는 별 관련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기 쉽다.

이 시기의 시조는 江湖歌道나 道學을 흔히 노래했으니, 이런 진지한 주제가 위트 있게 표현되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歌 論중 가장 엄격하다 할 만한 가론을 제시한 李滉(1501∼1570)의 시조에서 도 비평적 의미에서의 위트를 찾을 수 있다. 다음의 작품이 그 예이다.

愚夫도 알며 거니 긔 아니 쉬온가 聖人도 못다 시니 긔 아니 어려온가 쉽거나 어렵거나 즁에 늙 줄을 몰래라28)

28) 이 장에서 인용한 고시조의 텍스트들은 靑丘永言 珍本(靑丘永言, 朝鮮珍書刊行 會, 1948)에서 가져왔다.

(15)

위의 작품은 이황의 <陶山十二曲> 중 마지막 수이다.

29)

초장과 중장은 서 로 대구를 이루며 역설적인 상황을 제시한다. 학문은 어리석은 이도 잘할 수 있고 聖人도 잘하기 어려운 것이라 하였으니 모순되는 상황을 나타낸 것이 다. 이는 中庸의 한 구절을 詩化한 것인데, 君子의 道는 광대하면서도 숨 어 있다는 費隱章의 구절

30)

이 그것이다. 이렇게 초․중장에서는 중용의 구 절을 원용하여 학문의 오묘함을 표현하였다. 그런데 종장에서는 문득 방향을 선회하여, 학문의 즐거움을 서술하고 있다. 종장의 ‘늙는 줄을 모른다’라는 표 현 또한 전고가 있는데, 論語 述而篇에서 “(나는 학문에) 마음을 다해 먹 는 것도 잊고, 너무도 즐거워한 나머지 모든 근심을 잊고, 늙어 가는 것도 모 르는 사람이다."

31)

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전고에 비추어 볼 때 종장 에서 표현하고 있는 것은 학문의 즐거움임을 알 수 있다.

종장에서의 예기치 않은 방향 선회는 초․중장 사이의 역설과는 별도로, 초․중장과 종장 사이에 또 하나의 역설을 만들어 낸다. 학문은 다 이해하기 어려운 오묘한 것이지만 동시에 그 어려움을 생각할 겨를이 없을 만큼 즐거운 것이기도 하다는 점이 역설의 내용이다. 어려움은 괴로움을 유발하는 것인데 오히려 이를 즐거움이라 하였으니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중층의 역설을 통해 이 작품은 쉽고도 어렵기에, 또한 어렵고도 즐겁기에, 노력할 수 있고 노력해야 하며 노력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학문임을 깨닫게 한다. 이러

29) <도산십이곡>은 ‘言志’의 前六曲과 ‘言學’의 後六曲으로 이루어지는데, 이 작품은 후육 곡의 마지막이자 全篇의 마지막 작품이다.

30) “君子之道, 費而隱. 夫婦之愚, 可以與知焉, 及其至也, 雖聖人, 亦有所不知焉. 夫婦之 不肖, 可以能行焉, 及其至也, 雖聖人, 亦有所不能焉.”[군자의 도는 광대하면서도 숨어 있다. 필부필부의 어리석음으로도 가히 함께 하여 알 수 있지만 그 지극함에 이르러서는 비록 성인이라도 역시 알지 못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필부필부의 불초함으로도 가히 행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지극함에 이르러서는 비록 성인이라도 역시 행할 수 없는 바가 있는 것이다.]

31) “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云爾.”

(16)

한 모순 속의 진리가 역설과 아이러니를 통해 이 작품에는 표현되어 있다. 인 식의 즐거움을 유발하는 위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위트를 담 은 시조의 또 다른 예로는 다음과 같은 작품들을 들 수 있다.

반되 불이 되다 반되지 웨 불일소냐 돌히 별이 되다 돌이지 웨 별일소냐 불인가 별인가 니 그를 몰라 노라

어뎌  일이여 그릴 줄를 모로던가 이시라 더면 가랴마 졔 구야 보고 그리 情은 나도 몰나 노라

冬至ㅅ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여 春風 니불 아레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첫 번째 작품은 申欽(1566∼1628)의 <放翁詩餘> 중 한 수이고, 뒤의 작 품들은 잘 알려진 黃眞伊(생몰미상, 조선중기)의 시조들이다. 신흠의 시조 에서는 ‘반디’와 ‘돌’의 비유, ‘불’과 ‘별’의 음운적 유사성 등이 才氣 있게 사용 되고 있다. ‘불이 된 반디’란 반딧불을, ‘별이 된 돌’이란 流星을 의미한다. 이 들의 공통 속성은 그 본질이 오인되기 쉽다는 점이다. 반딧불은 곤충이지 본 래 불이 아니고 유성은 떨어지고 나면 원래 별이 아니라 우주의 돌이었을 뿐 이다. 그런데 세간에서는 반디를 불이라 하고 유성을 별이라 하는 것처럼 현 상의 본질을 바라보지 못함을 이 시에서는 표현하고 있다.

두 번째의 황진이 시조에서 표현된 것은 아이러니컬한 정서적 상황이다.

떠날 때는 잡지 않고 떠나고 나서는 후회하는, 연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17)

불합리한 심리인데, 이는 중․종장의 전개를 통해 드러난다. 한편, 이러한 아 이러니에 더불어 이 시조에서 또 하나의 특징적인 문학적 장치는 중장 마지막 부분의 行間 걸침[enjambement] 현상이다. 시조의 행들은 서술어로 끝나 완결성을 지닌 문장 형태로 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중 장은 ‘졔 구야’로 끝나 부사어가 마지막에 놓여 있어서, 이 부분이 종장과 연결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볼 경우 ‘졔 구야’는 종장의 ‘보

고’를 수식하게 되어, 님을 보내기 싫으면서도 굳이 보내고 잡지 않은 억지스 러운 심리 상태를 더욱 부각하게 된다.

마지막 작품은 역시 황진이의 시조인데, 시조에서 보기 드물게 발랄한 상 상력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애정시가에서 흔히 슬픔을 심화시키는 배경으로 작용하는 동짓달의 긴 밤을 이 작품에서는 절망이 아닌 희망의 이미지로 변화 시킨다. 밤이라는 비물질적이고 非可逆的인 시간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서 리서리 넣었다가 굽이굽이 펼 수 있는’ 실꾸리 같은 이미지로 환치시킴으로써 동짓달 밤은 미래의 春宵를 위한 희망의 시간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물질적 비유를 통해 정서적 상태를 표현하는 것은 후대의 기녀시조나 사설시 조 등에서 종종 보인다. 예를 들어 ‘랑이 엇더터니’로 시작하는 松伊(생몰 미상, 조선후기)의 시조 같은 기녀시조들은 사랑의 속성을 물질적인 비유를 들어 표현하였다.

32)

또 ‘窓 내고쟈’로 시작하는 사설시조

33)

는 마음의 근심 을 과장된 창문의 비유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러한 비유들은 추상적인 것을 물질적인 것으로 표현하는 기발함을 지니며, 이를 통해 사랑이나 근심과 같

32) “랑이 엇더터니 두렷더냐 넙엿더냐 / 기더냐 쟈르더냐 발을러냐 자힐러냐 / 지멸이

긴 줄은 모로되 애 그츨만 더라” ; “물 아래 셰가랑 모래 아무리 다 발자최 나며 / 님이 날을 아무리 괴다 내 아더냐 님의 안흘 / 狂風에 지부친 沙工치 기픠를 몰라 노 라”.

33) “窓 내고쟈 窓을 내고쟈 이내 가슴에 窓 내고쟈 / 고모장지 셰살장지 들장지 열장지 암돌져귀 수돌져귀 목 걸새 크나큰 쟝도리로 닥 바가 이내 가슴에 窓 내고쟈 / 잇다감 하 답답 제면 여다져 볼가 노라”.

(18)

은 마음의 상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이처럼 고시조는 역설과 아이러니 및 기발한 비유, 또는 음운유사성[ass onance] 이나 음성상징어 등의 장치를 통해 부조화의 조화를 이루는 위트 있 는 인식을 드러낸다. 한편, 고시조의 위트가 두드러지는 경우는 아무래도 풍 자적이거나 해학적인 주제 속에서 그것이 쓰인 경우일 것이다. 다음은 풍자 적 작품의 예이다.

얼일샤 져 鵬鳥ㅣ야 웃노라 져 鵬鳥ㅣ야

九萬里長天에 므스 일로 올라간다

굴헝에 볍새 새 못내 즐겨 다

두터비 리를 물고 두험 우희 치라 안자

것넌山 라보니 白松骨이  잇거 가슴이 금즉여 풀덕 여 내다가 두험 아래 쟛바지거고

모쳐라 낸 낼싀만졍 에헐질 번괘라

앞선 시조는 신흠의 작품이고, 뒤의 시조는 작자 미상의 시조다. 신흠의 시 조에서는 鵬鳥를 비웃는 ‘뱁새와 참새’가 풍자되고 있다. 붕조는 莊子의 逍 遙遊篇에 나오는데, 한 번 날면 구만리를 날아간다는 거대한 상상 속의 새 다. 이러한 붕조를 작은 메추리가 비웃는다는 것은 장자에 이미 나와 있는 얘기인데,

34)

이는 자신의 깜냥이 적은 줄은 모르고 위대한 것을 오히려 비웃

34) “有鳥焉, 其名爲鵬. 背若太山, 翼若垂天之雲, 搏扶搖羊角而上者九萬里. … 斥鷃笑 之曰: ‘彼且奚適也? 我騰躍而上, 不過數仞而下, 翶翔蓬蒿之間, 此亦飛之至也, 而彼且 奚適也?’ 此小大之辯[辨]也.” [새가 있으니 그 이름을 붕이라 한다. 등은 태산과도 같고 날개는 하늘을 가득 메운 구름과도 같아서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리나 솟아오른다. 메추 라기가 비웃기를, “저것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가? 나는 힘껏 날아올라도 몇 길 되지 않아 내려와서 쑥대밭 사이에서 날아다니는데, 이것 역시 낢의 지극함이거늘 저것은 또 어디로 가는 것인가?”라고 한다. 이것이 작은 것과 큰 것의 차이이다.]

(19)

는 어리석은 이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러한 풍자적 내용이 신흠의 시조에서 는 초․중장과 종장 사이에서 유사 대화체로 이루어진 아이러니컬한 대조를 통해 표현되어 있다. 이 작품의 초․중장은 뱁새․참새의 발화로 되어 있고, 종장은 이들을 바라보는 3인칭 화자의 서술로 되어 있다. 초․중장에서는 ‘뱁 새와 참새’의 입을 통해 붕새의 어리석음이 반복적으로 강조되고 붕새는 조롱 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종장에 오면 ‘뱁새와 참새’는 사실 조롱의 참된 주체 가 아니라 오히려 그 대상이었음이 밝혀진다.

뒤의 사설시조 역시 유사 대화체 형식을 통해 초․중장과 종장 사이에서 아이러니컬한 웃음을 자아낸다. 이 작품에서 파리를 괴롭히다가 백송골에 놀 라 두엄더미에 빠진 두꺼비의 모습은 약자에겐 가혹하고 강자에겐 비굴한 중 간계층에 대한 풍자로 대개 읽힌다. 작품의 중장에서 제시된 행동만으로도 두꺼비의 추악한 모습은 충분히 비웃을 만하다. 그런데 종장에서는 이에 두 꺼비의 터무니없는 발화까지 더해져 두꺼비의 어리석음이 더욱 부각되고 있 다. 중장에서 두엄 더미에 빠진 것만도 우스운데, 종장에서 두엄 더미에 빠지 고 나서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두꺼비의 자화자찬은 폭소를 일으키는 것이 다.

한편, 3장 구조의 아이러니컬한 내용 전개를 통해 위트를 지니는 시조들 중 에는 다음에 보는 것처럼 해학적인 작품들도 많다.

어이려뇨 어이려뇨 싀어마님아 어이려뇨

쇼대남진의 밥을 담다가 놋쥬걱 잘를 부르쳐시니 이를 어이 려뇨 싀어마님아 져 아기 하 걱졍 마스라 우리도 져머신 제 만히 것거 보왓노라

졋 건너 흰 옷 닙은 사 믭고도 양믜왜라

쟈근 돌리 건너 큰 돌리 너머 밥여 간가  여 가고 애고애고 내 書房 삼고라쟈

(20)

眞實로 내 書房 못 될진대 벗의 님이나 되고라쟈

각시 玉 튼 가슴을 어이 구러 다혀 볼고

통綿紬 紫芝 쟉져구리 속에 깁 젹삼 안셥히 되여 죤득죤득 대히고 지고

잇다감  나 붓닐 제 힐 뉘를 모르리라

위의 작품들에서 보는 것처럼 사설시조에는 노골적으로 욕망을 추구하는 내용이 많다. 사설시조의 화자들은 체면을 불구하고 본능의 영역에만 충실한 저급성을 기꺼이 드러내며 독자 혹은 청중에게 웃음을 준다. 그런데 이러한 해학적 웃음은 종장의 예상치 않은 결말로 인해 한층 더 커진다. 예시한 세 편의 시조 모두 초․중장에서 이미 시적 화자들은 자신의 욕망을 대놓고 떠 벌리는 우스운 인물들이다. 그런데 이 시조들의 해학성은 종장의 내용 전환 을 통해 한층 더 심화된다. 첫 번째 시조에선 예상치 않은 ‘시어머니’의 욕망 이 폭로됨으로써, 두 번째와 세 번째 시조에선 한층 더 공교로운 욕망의 내용 이 제시됨으로써 웃음에 웃음을 더하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 시조에서는 내 님이 못 된다면 벗의 님이라도 되게 해 달라고 빎으로써, 세 번째 시조에서는 님이 입은 저고리의 안섶이 되는 것도 모자라 그것이 땀 때문에 님에게 달라 붙는 상황까지 상상함으로써 한층 더 노골적인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지금까지 고시조의 위트가 인식적, 풍자적, 해학적 즐거움을 유발하는 양

상을 보았다. 시조의 위트는 비유나 언어유희 등을 통해서도 형성되지만, 무

엇보다 3장구조의 아이러니컬한 시상 전개에 힘입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다음

에서 살펴볼 영어시조에서도 유사하다. 영어권에서 시조에 대한 담론들은 3

장 구조 및 종장의 시상 전환이라는 시조의 구조적 특징에 주목해 왔는데, 이

러한 구조적 특성을 활용하여 영어시조들은 위트 있는 작품 세계를 구현해

낼 수 있었다.

(21)

4. 영어시조의 위트

데이비드 맥캔의 다음 시조는 시조의 구조에 대한 시조로서, 일종의 메타 시조다.

가벼운 동아줄을 나에게 꼬아주오, 세 겹

삼베로 된 동아줄을 꼬아주오, 그 줄을 부여잡고서 올라갈 수 있도록!

O braid me a lightweight, three-ply

hempen rope, that I may climb! -<셋째 행 Third Line>35)

여기서 세 겹의 가벼운 동아줄은 삼 행으로 된 시조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 인다. 세 번 꼰 동아줄을 타고 위로 올라간다는 것은 언뜻 전래동화를 연상시 키는 친숙한 이미지인데, 이는 시상을 제시하고 이를 발전시키며 마지막의 결정적 전환점을 지나 시적 의미를 획득하는 시조의 구조를 뜻하는 것으로 읽힌다. 그 자체 이러한 시조의 구조를 활용한

36)

이 시조는 형식 자체가 내 용을 지시하는 기발함을 보여준다.

위와 같은 메타시조를 쓸 만큼 시조의 3단 구성과 종장의 전환점에 관심을 기울인 시인이니, 그의 시조가 이러한 시조의 구성적 묘에 중점을 두었을 것 임은 쉽게 짐작이 된다. 다음의 예들은 맥캔의 영어시조들 중 종장의 아이러 니를 통해 인식적 즐거움을 유발하는 경우이다.

포근한 참나무숲 Warm oak woods

깊어도 너무 깊어 too deep for us to penetrate, 우아한 주위에서 we linger instead

35) 번역은 원형태에 맞추어 하되 시조의 리듬에 가깝도록 의역한 부분도 있다.

36) 이 시조는 반점을 통해 시조의 삼 행 형식을 표현하였는데, 초․중장에서 제시된 동아줄 이라는 소재가 지닌 의미는 종장에 와서야 비로소 드러난다.

(22)

우린 그저 맴을 도네 in the graceful periphery

나무공 때린 소리에 while a dog chases hopelessly after 강아지 쫓아 뛸 때 wooden balls struck so well the mallets

sing.

-<잃은 것 Lost>

쌍둥이 참나무에 The twin oak back by the house 구멍 깊이 파여 있네 has been drilled, carved deep for grubs.

딱따구리 벌레 찾아 The woodpeckers heard them chewing, 구멍 가에 분주하네 worked their intricate necklace of pits.

“죽었어!”37) 소리치며 빌은 "This one's dead!" Bill shouts in anger, 지팡이로 둥치 치네 whacking the trunk with his cane.

-<시작 Onset>

<잃은 것>에서는 초․중장과 종장 사이에 몇 가지 대조적인 심상이 그려진 다. 초․중장의 어렴풋한 시각적 심상에 대비되는 종장의 또렷한 청각적 심 상, 초․중장에 표현된 인생의 비밀에 대조되는, 종장에 그려진 강아지의 즉 각적 반응 등이 그러하다. ‘너무나 깊은 참나무숲’은 아늑하면서도 범접할 수 없는, 어머니의 자궁처럼 친숙하면서도 낯선, 생의 비밀에 대한 상징 같다.

그 근처에서 안타깝게 서성이는 우리들의 서툰 몸짓이 초․중장에서는 그려 진다. 이 고요를 종장에서 깨는 것은 누군가 던진 나무공 소리에 사방팔방 쫓 아 뛰어가는 개다. 이러한 대조는 의외인데, 인간의 존재 방식에 대하여 어떠 한 통찰을 드러내는 것 같다. 나무공 소리에 반짝 놀라 뛰는 것은 개뿐일까?

우리 삶에서 활기차게 반짝이던 모든 순간들이 다 이와 같지 않은가? 부질없 는 좇음과 길 잃음, 이러한 것들로 얽혀 있는 존재의 방식에 대한 통찰이 스 쳐지나가는 순간이다.

37) 나무가 죽었다는 뜻.

(23)

< 시작>에서 또한 초․중장과 종장 사이의 대조를 통해 삶과 죽음의 秘境이 탐구된다. 초․중장에서 그려지는 것은 참나무에 난 벌레 구멍에서 벌레를 찾아 분주한 딱따구리의 모습이다. 벌레는 나무속에서 삶의 터전을 이루고, 딱따구리는 다시 이 벌레를 먹으며 삶을 영위한다. 그러나 종장에서 드러나 는 사실은 이 모든 삶의 활동이 참나무에겐 죽음의 신호라는 사실이다. 삶이 시작되는 곳에서 죽음이 시작된다. 이처럼 데이비드 맥캔의 영어시조들은 일 상을 스쳐가는 짧은 장면들을 시조의 3단 구조 안에서 스케치하여 아이러니 한 삶의 비경을 독자에게 던져준다.

시조의 아이러니가 삶의 부정적 측면과 관련될 때 그것은 풍자적 성격을 띠 게 된다. 다음의 작품들을 예로 들 수 있다.

복제된 까마종이38) Three clones of black nightshade grow vigorous 무럭무럭 자라나네 on a fertile patch of soil in the wayside

토끼들 이파리 모두 뜯고 Rabbits pluck away all leaves

꽃만 남겨 놓았네 leaving a few pale blue flowers sad-eyed

몇 주 뒤 이파리들 되살아나 They regenerate foliages in a few weeks 천적에게 다시금 뜯어 먹히리 only to be eaten away by the predators

wild-eyed

-<시지프39)의 고뇌 Sisyphean agony>

38) 까마종이는 “쌍떡잎식물 통화식물목 가지과의 한해살이풀”(두산백과)이다.

39) 시지프[시지푸스]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코린토스의 창건자다. 신들을 기만한 죄로,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고 그 바위가 정상 근처에서 굴러 떨어지면 다시 그것 을 밀어 올려야 하는 영원한 형벌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

1960]는 시지프의 신화라는 저서에서 부조리한 인간의 전형으로 시지프를 부각한 바 있 다.

(24)

사적이라는 건 사적인 일을 하는 거지 Private is as private does:

기업이나 화장실 같은 것 enterprise, a bathroom.

반 마일이 채 안 되는 This less than half-mile run 해변의 이 포장도로 of asphalt road along the coast:

이 도로, 늘어선 집들 모두 They own it, the homes that line it.

‘사적 소유물’이라 써붙여 있네 All Property, and Private.

-<프라우츠 네크 Prouts Neck>40)

앞선 시조는 김운송의 작품이고, 뒤의 시조는 데이비드 맥캔의 작품이다.

김운송의 시조는 미국의 물질문명에 대한 비판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많은데,

41)

위에서 제시한 작품에는 약육강식 세계의 비정함과 허무함이 드 러나 있다. 맥캔의 시조에서 또한 공공재마저 온통 사적 소유물이 되어 버린 자본주의 사회의 면모를 꼬집고 있다. 이러한 풍자적 내용들은 두 작품에서 모두 아이러니컬한 시상 전개를 통해 표현되었다. <시지프의 고뇌>에서는 왕 성한 생명력이 오히려 끊임없는 착취의 원천이 되는 상황이, <프라우츠 네크>

에서는 해변 도로라는, 만인이 이용하고 즐겨야 할 공공재가 사적 소유물들 로 뒤덮인 상황이 초․중장과 종장 사이에서 그려진다.

한편, 풍자에 해학이 가미된 다음과 같은 작품들도 있는데, 이들은 더욱 위

40) 프라우츠 네크는 미국 메인[Maine] 주 스카보로우[Scarborough]에 있는 반도이다.

41) 다음의 작품들을 예로 들 수 있다. “추남 얼굴 대회마저 / 경기가 치열해 // 심사위원 퇴짜 놓길 / 추함이 모자라 // 시장 경제 체제에선 / 경쟁 정말 치열해” [Even ugly faces are marketable / the contest rough // Interviewers reject most of them / because they are not ugly enough // In market economy / competition is real tough]-<시장 경제 Market Economy>. “여러 문화 모인 곳이면 / 미국인들은 승리에 도취되지 // 타민족 얕잡아보며 / 아첨꾼들로 싸잡는다지 // 달팽이 기어가게 그냥 두게나 / 짓밟는 코끼리 안 부러우니”

[In arenas of cultural gatherings / Americans run amok triumphant // Belittling other peoples / as a bunch of abject sycophant // Behold the snails crawling / never envious of the stampeding elephant]-<부럽지 않아 Not Envi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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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 있게 느껴지는 측면이 있다.

점심을 먹는 내내 All through lunch, from my table 너희 논쟁 지켜본다, I keep an eye on your disputes, 거품 이는 수조 속 green lobsters in the bubbling 초록빛 가재들아. tank by the restaurant door.

싸우고 물고 뜯지 말고 -이유가 뭐든 간에

Slights, fights, bites-Whatever the cause, 평화를 되찾아라, 나와 함께 도망치자!

make peace and flee, escape with me!

먹이통은 대롱대롱 The feeder hangs suspended 창밖에 달렸는데 outside the glass of the window.

비둘기들 참새떼들 On the couch, I sit watching doves, 박새 한 쌍 모여드네 swarms of sparrows, chickadees in pairs.

홍관조 법석통에 외치기를 All the mess and noisy disputation

“빨간 것을 있게 하라!” two cardinals end with Let there be red!

-<마티니처럼 -비틀기가 있는 삼행시 Like a martini:

three lines with a twist>

차들이 쏘아대는 Into the light the way cars 불빛들 속으로 move on their own beams' 귀찮지만 어쩔 수 없이 discoveries, meddlesome 저 물상들 속으로 yet with an air of inevitability, 오늘도 우리는 걷는구나 we walk on, close to the speed limit 제한속도에 닿을 듯이 of 65 and getting closer each day.

안개에 쌓이거나 There are days we seem surrounded 태양이 작렬하는 날들도 있지만 by a cold fog, others when the 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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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샤워 후엔 is flat out too hot to endure.

옷 입으러 가다가 This morning, though, as I stopped 당신이 책 읽고 있는 on my way from shower to dressing, 침대가를 지나다가 where you lay on the bed reading,

고양이꿈 이야기가 I had the story of last night's dream 떠올라 꺼냈네 to tell, of a kitten bright colored 까맣고 흰, 또는 주황빛의 orange, black, and white, that found 고양이 꿈 이야기 at some complicated picnic.

길조라 우린 맞장구쳤지 A good omen, we agreed, while somewhat 내 알몸에 다소간 한눈을 팔며 distracted by my nakedness.

-<제한속도 Speed Limit>

두 작품 모두 데이비드 맥캔이 지은 연시조인데, 현대 문화의 일단을 풍자 하는 면모를 지니고 있다. <마티니처럼>에서는 서로 헐뜯고 비방하기에 바쁜 현대인의 모습이, <제한속도>에서는 속도에 쫓기며 맹목적으로 살아가는 현 대인의 행태가 풍자의 대상이다. 그런데 이 작품들의 풍자는 신랄하기보다는 오히려 해학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 <마티니처럼>의 첫 수에서는 논쟁의 주체가 가재이며 그런 가재에게 시적 화자가 탈출을 권유한다는 동화적 상상 력에 웃음을 짓게 된다. 이어지는 둘째 수에서 법석을 떠는 새들의 무리 또한 동화적 상상력을 자극하는데, 종장에 나오는 紅冠鳥의 사뭇 진지한 모습에 는 홍소하지 않을 수 없다.

< 제한속도> 역시 연시조 형태를 취하였는데, 첫 수의 풍자적 태도는 마지

막 수에 오면 해학적 내용으로 바뀐다. 앞 단락에서 언급한 것처럼 첫 수는

맹목적으로 속도를 추구하는 현대인의 삶을 풍자하고 있다. 그런데 두 번째

수에 오면 이러한 내용이 ‘오늘 아침’에 일어난 시적 화자의 특정한 경험으로

전환된다. 그리고 마지막 수에서 제시되는 것은 샤워 후 옷도 채 입지 않은

(27)

채 고양이 꿈 이야기를 길조라 해석하는 부부의 해학적 장면이다. 그러한 해 학성은 종장에서 드러난 裸身으로 인해 일시에 증대된다.

해학이 가미됨으로써 풍자의 날은 무뎌진다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은 현실 을 직시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해학성은 부정적 현실을 멈추게 하는 기제가 되기도 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한속도>에 서 해학성은 속도광을 멈추게 한다. 두 번째 수의 전반부까지 제시된 도시의 회색빛 삶은 그 수 후반부에서 영롱한 경험으로 전환된다. 아침의 침대, 사랑 하는 이의 독서와 알록달록한 고양이 꿈 이야기, 시적 공간은 문득 고요한 따 스함으로 충만해지는 것이다. 이 충만한 정지의 근원에는 상식에서 벗어나 삶을 바라보는 시인의 엉뚱함, 벌거벗은 눈이 있다. 이 벌거벗음의 해학성은 부정적인 풍자의 대상마저 따스한 색채로 물들이는 마법 같은 힘이다. 이것 은 어쩌면 공격이 아닌 화해를 가능하게 하는 단 하나의 힘일지도 모른다. 이 처럼 <제한속도> 마지막 수의 종장에 제시된 해학적 알몸은 단지 기분전환용 의 웃음만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해학성이 지닌 의의 자체 를 환기하고 있는 듯하다.

일상의 해학성을 포착하는 것은 데이비드 맥캔의 영어시조가 지닌 두드러 진 특성 중 하나이다. 이는 그가 한국어로 처음으로 지은 시조라는 <하룻밤 안동 시내>에서부터 보이며, 그 외에도 여러 작품들에서 간취된다. 일상의 해 학적 순간은 노상에서 볼일을 보면서 자못 점잖게 눈알을 굴리던 한국남자의 시선에서도, 볼일 보는 시간도 아까워할 만큼 서핑에 목말라하는, 그림같이 도열한 미국 서퍼들에게서도, 다람쥐 도토리 줍듯 시상을 수집하는 시인의 詩癖에서도 찾아진다.

42)

또 해학성은 다음의 작품들에서 보는 것처럼 童心

42) 다음 작품들을 참조했다. “하룻밤 안동시내 골목술집 구경하고 // 머리가 삥삥 돌 때

밭둑길을 거닐다가 // 도야지 꿀꿀 소리야 이제 왔노 하노라” [One night in Andong / after a tour of back-alley wine shops, // head spinning, I staggered down / the narrow, paddy-field paths, // when the two pigs grunted / "So, you! Home at last?"]-<첫 번째

(28)

을 통해 표현되기도 한다.

복잡한 잎맥체계 But someone makes these leaves, 이 잎들로 또 누군간 complicated systems of veins 가지 위에 전시하여 that feed them, branch-born display 구경꾼을 사로잡네 for sightseers or buyer's gaze.

원해요? 이 낙엽을? Want a leaf? You can pick one up 돈 몇 푼만 가져와요. on the corner. Just bring cash.

훔친 차 탄 삼인조가 The trio cruising the streets 거리를 누비다가 in the car they've just stolen 모퉁이 돌아가며 (important part of the ritual)

“다음 녀석!” 외치더니 turn the corner, say "next one's it."

삼인조, 한 아이를 쏘네, Three climbs out and shoots the kid where he stands,

다만 한 낙엽으로 using nothing but a leaf.

-<낙엽들 The Common Leaf> 中 시조: 하룻밤 안동시내 First Sijo: A Night in Andong>. “달빛 아래 혹은 광대하게 / 간헐적 으로 혹은 일관되게 // 시골과 도시를 / 수놓던 붓자국들 // 점잖게 시선 굴렸지, / 흐를 대로 두는 일 / 마저 마치며” [Moonlit or Grand Style, / intermittent or steady //

brushstrokes redefining / the country or urban scene, // perspective modestly shifting its gaze / as they finished the job of letting it / go where it wished.]-<서예가 있는 풍경 Landscape Calligraphy> 中. “일기예보 듣고 모인 / 민첩한 낙천론자들 // 새까만 수영복 입고 / 바다에 바투 앉아 // 화장실 갈 때 빼곤 열망하지 / 쫓고 놔주고 오르고 타기 를”[Today's forecast calls for a line / of agile optimists // sitting just off the coast in dark suits / rising periodically to // nature's call. They yearn for sets of five: / tag and release, rise and ride.]-<메인에서의 서핑 Surfing in Maine>. “도토리 뒤지는 다람쥐나 / 낙엽 뒤치 는 까마귀처럼 //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 나는 얻네 내 시들을 // 택시 안, 쓰고 있는 이 시도 / 집에 가면 모두 다 당신 거라오” [Like a squirrel digging nuts up / or those crow turning dead leaves // over, I go places and take / poems, this one from the back seat // of the cab on its way to the airport. / When I get home, it's all yours.]-<앤을 위한 한 수 One for 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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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로 오는 길에 On this walk so far I think 열 개 남짓 모았네, I have gathered dozens of them:

크고 작고, 밝고 어둡고, Sand dollars, large, small, bright, dull, 심지어 주황빛의 성게 화폐들. even orange, strange currency.

여기에 계약금이 있소! 모래성과 젖은 벽,

Down payment! Sand castle, dripped walls 탑과 해자, 이 시를 위한. and turrets, moat; these poems.

-<부동산 Real Estate>

What's in your pocket right now? I hope they're not empty:

Empty pockets, unread books, lunches left on the bus-all a waste.

In mine: One horse chestnut. One gum wrapper. One dime. One hamster.

주머니 속에 뭐가 들어 있나요? 비어 있진 않길 바라요.

빈 호주머니, 읽지 않은 책, 놓고 내린 도시락 -모두 다 쓸모없어.

내 주머니엔: 마로니에 열매 하나, 껌종이 하나, 십원 짜리 동전 하나, 햄스터 한 마리.

-<주머니들 Pockets>

모든 음식은 집게나 뒤집개로 Each food plopped by tongs or spatula 건져져 각자의 작은 영역으로- into its own little space-

네모난 피자는 여기, 네모난 브라우니는 저기

square pizza here, square brownie there;

우유는 정방형, 쟁반은 직사각형. milk carton cube, rectangle tray.

방과후 집에서 먹는 간식은? My snack at home after school?

모서리 있는 건 빼고 주세요. Anything without corners.

-<학교 급식 School Lunch>

(30)

앞의 두 작품은 데이비드 맥캔이, 뒤의 두 작품은 린다 박이 지은 것이다.

린다 박의 시조는 그의 동시집 속에 들어 있는 것으로, 시조를 동시의 형식으 로 원용한 경우이다. 한편, 맥캔의 작품들은 동시를 표방한 것은 아니지만 다 분히 동시적 착상을 보여주고 있다. 동심은 엉뚱하면서도 기발하고, 모자라 면서도 솔직하다. 이 때문에 동심이 유발하는 것은 해학적 웃음이다. 동심을 통해 일상의 문제는 적나라하게 드러나지만, 동심을 통한 폭로는 아무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는다. 동심의 욕망은 남을 해치지 않을 만큼 소박하고 환상 속 에 자리할 줄 알기 때문이다. 동심 속에서는 물욕도 물욕이 아니고, 폭력이나 공격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물욕은 모래성을 성게 화폐로 사거나 주머니에 햄스터를 넣고 다니는 물욕이고, 남에게 쏘는 것은 다만 한 낙엽일 뿐이며, 견딜 수 없어 바꾸고 싶은 것은 단지 네모난 식판에 담긴 네모난 음식들일 뿐이다. 누가 이 소박한 욕망과 환상들에 화를 낼 것인가? 윗시조의 종장들 에서 한결같이 나타나는 동심의 세계에 누가 웃음 짓지 않겠는가? 이 시조들 은 물질주의, 획일성, 폭력과 같은 이 시대의 부조리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되기보다는, 그러한 문제들이 천진한 동심 속에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어떤 것 으로 살며시 바뀌어 있는 장면을 보여준다.

현실의 문제를 환기하면서도 그것이 신랄한 풍자가 되기보다는 해학적 웃 음과 동심의 세계를 동반하는 것은 영어시조가 보여주는 독특한 매력이다.

一張一弛라 해서 우리 선인들은 擺脫의 내용을 담은 滑稽傳을 짓고 돌려보

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그와 같은 과장된 웃음이 아니어도, 일상에 숨어 있

는 어린아이 같은 바보짓들에 한눈팔며 미소 짓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보이

지 않는 줄에 매달려 쉼 없이 손발을 놀리는 고단한 인생에서 벗어나게 해주

는 것은 잠시 눈을 돌려 마리오네트 인형들의 춤을 바라보는 것일 거다. 벌거

벗은 임금님이 지니던 부조리한 권력과 억압은 아이의 눈을 통해 웃음으로

해체된다. 한 꺼풀을 벗기고 보았을 때 맡을 수 있는 인생의 향기, 이것이 “마

(31)

티니 같은, 비틀기가 있는 삼행시”의 미학이 아닐까.

5. 나오며

문화는 교류를 통해 넓고 깊어진다. 한편에선 이미지의 홍수를 퍼붓느라 리듬을 느낄 겨를조차 주지 않는 자유시가 창작되고, 다른 한편에선 말장난 같은 이른바 ‘라임’[rhyme]이 대중가요 리듬의 주조를 이루는 요즘, 너무 익 숙해서 낡아 보이는 시조가 外人의 호기심 어린 눈을 통해 새롭고도 친숙한 어떤 것으로 되돌아오는 모습을 보는 것은 사뭇 반가운 일이다. 한시와 하이 쿠의 감각성은 20세기 서양의 이미지즘에 풍부한 자극제가 되었고, 반대로 19 세기말 프랑스를 중심으로 퍼진 서양의 자유시[vers libre] 운동은 동아 시아 문단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와 유사하게, 직설적이면서도 반전의 묘미를 지닌 시조는 외국인들이 일상의 다양한 詩心을 포착해내는 시적 도구 로 차용되었고, 그 도구의 쇄신된 쓰임새를 우리는 역으로 다시금 배우려 한 다.

경구시와 소네트 같은 기존 장르, 아이러니와 위트에 대한 오랜 문학적 관

념 등과의 연관 속에서 시조는 영어권에 수용되었다. 삼장 구조 중 종장의 반

전이 지닌 묘미, 이에서 발생하는 아이러니와 위트는 영어권 사람들에게 시

조가 어렵지 않게 수용되고 창작될 수 있었던 주요소였다. 이에 영어시조에

는 위트를 통해 인식적․풍자적․해학적 즐거움을 주는 내용이 풍부하게 담

길 수 있었다. 이러한 위트는 물론 고시조에도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신랄한 풍자나 과장된 해학만이 아니라, 각박한 일상 속에서도 문득 스쳐지

나가는 다양한 해학적 순간들을 포착해 낸 것은 영어시조에서 두드러지는 특

징이라 할 수 있다.

(32)

엉뚱한 시선, 또는 어린이의 눈에 비친 전도된 일상의 해학적 순간을 위트 있게 그려낸 것은 영어시조가 보여 준 인상적인 지점이다. 고대 그리스인들 이 생각했던 ‘유머’[humour]는 體液을 뜻하는 것이어서 그 개념은 현대어와 다르지만, ‘유머’가 조화를 이루어야만 신체적․육체적 건강을 이룰 수 있다 고 본 그리스인들의 생각은 오늘날에도 어떠한 시사점을 주는 것 같다. 유머 가 일상을 견디게 해 주는 힘임을 우리는 안다. 그것은 결코 거창한 것도 아 니고, 삶의 심각한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일상이 병들지 않게 해 주는 것은 무엇보다 한 꺼풀을 벗기고 벌거벗은 눈으로 삶을 바라보 는 여유와 유머다. 이러한 일상의 힘을 북돋아 줄 수 있는 일상 속의 시로서 시조가 지닌 가능성을 영어시조는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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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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