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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the Spatiotemporal Interpretation of Derek Jarman's 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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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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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responding author: Jiayan Yun, Interdisciplinary Program in Landscape Architecture, Seoul National University, Seoul 151-742, Korea, Tel.: +82-2-880-8529, E-mail: [email protected]

데릭 저먼의 정원에 대한 시공간적(時空間的) 해석

윈쟈옌*․조경진**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협동과정 조경학․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A Study on the Spatiotemporal Interpretation of Derek Jarman's Garden

Yun, Jiayan*․Zoh, Kyungjin**

*

Interdisciplinary Program in Landscape Architecture, Seoul National University

**

Graduate School of Environment Studies, Seoul National University

ABSTRACT

This study looks at spatiotemporal theories regarding the pluralism of time inherent in garden space, and attempts to establish spatiotemporal theories suitable for garden spaces. Based on the established theories, this study analyzes the intimacy of garden spaces by focusing on the objective and subjective time of garden spaces in Derek Jarman’s garden through a literature review.

The sense of time inherent to a garden space was divided into objective and subjective time. The former refers to ecological time that is quantified and has durability, while the latter indicates time that changes according to the consciousness of the human subject. It also includes time that is emotionalized by the sense of the human subject. This study first interpreted Jarman’s garden space from the perspective of objective time. The garden transforms itself into a sensitive space according to Jarman’s personal emotions in the current space within objective time, showing the multilayered attributes of space.

Therefore, a garden space that exists in objective time is ultimately not objective, and is transformed according to the active reception of the human subject. Next, this study examined Jarman’s garden space from the perspective of subjective time. The garden space lost in Jarman’s memories and the one in his future illusion turn into a space that connotes abundant meaning according to Jarman’s imagination or perception. Therefore, in subjective time, garden space is transformed according to Jarman’s consciousness. This study verified that garden space, regardless of whether time is objective or subjective, can create infinite space according to the consciousness or emotions of the human subject beyond the existence of physical space. Since garden space has a unique intimacy unlike urban space, this study presented the uniqueness of garden space with an approach that differs from previous studies on gardens.

Key Words: Prospect Cottage, Garden Space, Objective Time, Subjective Time, Sensitive Space

국문초록

본고는 정원 공간에 내재된 시간의 다원성에 대해 역대 시공간 이론을 다루면서 정원 공간에 적합한 시공간 이론

(2)

구축을 시도하였다. 구축된 이론을 바탕으로 문헌 분석을 통해 데릭 저먼의 정원을 대상으로 정원 공간의 객관적인 시간과 주관적인 시간, 이 두 가지에 초점을 두어 정원 공간의 내밀성을 분석하였다.

정원 공간에 속하는 시간을 객관적인 시간과 주관적인 시간으로 구분하였는데, 객관적인 시간은 생태적인 시간, 즉 지속성을 갖는 양화된 시간을 말하는 것이고, 주관적인 시간은 인간 주체의 의식에 따라 변하는 시간을 가리킨다.

또한 인간 주체의 감각에 의해 감정화된 시간도 포함한다. 우선 객관적인 시간의 관점에서 저먼의 정원 공간에 대해 해석하였다. 객관적인 시간 안에서 정원의 현재 공간 속에 저먼 개인의 감정에 따라 정원은 하나의 감성 공간으로 변모하면 서 공간의 다층적인 속성을 보인다. 따라서 객관적인 시간 속에 존재하는 정원 공간은 결국 객관적이지 않고 인간 주체의 능동적인 감수에 따라 변모한다. 다음으로 주관적인 시간의 관점에서 저먼의 정원 공간을 고찰하였다. 저먼의 추억 속에 잠긴 정원 공간과 미래의 허상 속에서 연출되는 정원 공간은 저먼의 상상이나 자각에 따라 풍부한 의미를 내포한 공간으로 형성된다. 그러므로 주관적인 시간 속에서 정원 공간은 저먼의 의식에 따라 변모한다. 이상 연구를 통해 시간이 객관적인가 주관적인가의 여부에 관계없이 정원 공간은 물리적인 공간의 존재를 넘어서 인간주체의 의식이나 감정에 따라 무한한 공간을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혔다. 정원 공간은 도시 공간과 달리 독특한 내밀성을 지닌 공간이기 때문에 본고는 기존의 정원 연구방법과 다른 시도를 통해 정원 공간의 독특성을 제시하여 보았다.

주제어: 프로스펙트 오두막, 정원 공간, 객관적 시간, 주관적 시간, 감성 공간

Ⅰ. 서론

정원은 예로부터 손으로 직접 가꾸는 은밀한 즐거움이 가득 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공공성이 강조되는 시대로 넘어오면서 어느새 정원 일들은 그런 즐거움을 잊게 되었다. 사적인 정원 에 대한 관심이 공적인 공간을 다루는 공원으로 옮겨가면서 공 공의 선을 추구하는 제도와 공공 공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는 데(Lee, 2014:193), 현재 도시민들이 그린인프라를 형성하기 위해 개최하는 꽃 축제, 정원박람회, 공중텃밭 분양 등 다양한 형태의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들이 그러하다. 이와 더불어 시 민들의 꽃과 정원에 대한 관심도 많아졌고, 그로 인해 정원문 화는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한 키워드가 되었으며, 정원을 바 라보는 시선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런 문화적 흐름을 통해 정원이라는 곳이 사람들에게 어떤 특별한 존재와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어렴풋이 엿볼 수 있다.

정원은 존재에 대한 다양한 사유와 의미를 지닌다(Sung, 2012).

형이상학적인 시각으로 보면 정원은 이를 설계하고 가꾸는 사 람의 정신세계를 반영한다. 정원은 단지 경관의 한 부분이 아 니라 자신의 고유한 독특성을 일거에 통일적으로 창작한 색다 른 세계이며, 각 정원마다 고유한 장소의 정신을 품고 있다. 정 원은 그 속에 살고 있는 특유한 동식물로 인해 자신의 독특한 지역성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가꾸는 사람에게서도 지대한 영 향을 받는다. 정원사의 품성이나 기질, 그리고 그들의 신념이나 경험이 모두 물질세계에 반영되기 때문이다(Małgorzata, 2006).

이런 맥락에서 정원은 자기 나름대로의 정체성을 갖추면서 존 재하게 되는데, 정원사 없이는 그것이 가능할 수 없다(Clément, 2012:57).

그렇기 때문에 정원과 정원사, 즉 사람 사이에는 매우 긴밀

한 관계가 얽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원이 풍기는 에너 지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또한 사람과 상호작용하면 서 어떤 인간적인 감수성을 환기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이런 성찰을 통해 인간에게 있어 정원은 어 떤 가치와 의미를 갖고 있는지, 그리고 이런 가치와 의미가 어 떤 방식으로 전개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 하여 본고는 ‘데릭 저먼의 정원’에 착안하여 이런 문제에 대해 시공간의 다층적인 관점에서 정원의 공간에 대해 해석하고자 한다.

예술가로서 데릭 저먼은 다재다능했고 학제적 예술 활동을 하면서 회화, 영화, 문학 창작, 디자인과 정원설계 등 다방면에 서 높은 성취를 이루었다. 저먼은 삶의 마지막 시기에 자기 집 마당에 정원 가꾸기를 시작했다. 저먼의 정원은 2004년 런던의 데이트 모던 미술관에서 있었던 “Art of the Garden” 전시를 통해 예술작품으로서 선보이는 등, 최근 들어 작가적 정원으로 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영국 정원 역사를 살펴보면 아마추 어 정원사들의 활동이 두드러지는데, 윌리엄 셴스톤(William Shenstone),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 이안 해밀턴 핀 레이(Ian Hamilton Finlay) 등은 지금도 정원 작가로서 추앙받 는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하지만 이들과 같은 계보에 있는 저 먼의 정원 작품은 그의 뛰어난 영화 업적 때문에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고, 현재 이에 대한 연구도 미흡한 실정이다.

따라서 정원작가로서 저먼의 활동을 정리하고 그의 정원관(庭 園觀)을 분석하는 연구는 정원사(庭園史)의 지평을 넓히는데 필요한 작업이라 하겠다.

데릭 저먼의 정원에 관한 연구는 O'Quinn(1999)이 저먼의

저서인 “Modern Nature”에 나타난 그의 정원관에 대해 다룬

것과 Steyaert(2010)이 ‘헤테로토피아(Heterotopic)’ 공간이란

(3)

개념을 도입하여 저먼의 정원에 내재된 의미를 밝힌 것이 있는 데, 이곳이 동성애에 속한 공간이라는 주장이 주된 내용이다.

개인정원을 다루는 연구로는 Feld and Basso(1996), Nast and Pile(2005), Teather(1999), Rodaway(2002)가 있는데, 현상학 의 입장에서 개인정원은 하나의 놀랍고 황홀한 만남이 충만한 공간이라 주장한다(Davidson and Milligan, 2004). Bhatti et al.

(2009)와 Bhatti et al. (2014)는 영국 서섹스 대학교(University of Sussex)에서 개최한 MO(Mass Observation Archive) 데이 터를 활용해서 영국지역의 개인정원은 하나의 일상경관으로서 평화와 즐거움이 깃든 그리고 사적인 일상공간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이런 연구들은 모두 지리학적인 시각으로 정원의 속성 이나 경관으로서의 위상에 대해 정의한 연구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정원을 즐기는 형상만을 결론적으로 제시했을 뿐, 정원 이 왜 즐길 수 있는 형상이 되는지에 대한 이유 그리고 어떤 특유의 공간적인 특성을 지니는지에 대한 해석은 부족하다.

따라서 본고는 저먼의 정원 공간에 내포된 시간의 다층적 구 조와 시간 속에 잠긴 다원적인 공간을 중심으로 실재 정원 공 간이 지닌 특유한 내밀성

1)

을 밝히는데 그 목적을 둔다. 이런 내밀성을 밝히기 위해 첫째, 정원 공간에 적합한 새로운 이론 체계를 구축할 것이다. 공간과 시간이 어떤 방식으로 엮여 있 는지를 역대 공간이론들을 바탕으로 정리 및 재구성하고, 정원 의 시공간이 어떻게 연출되는지를 제시한다. 둘째, 데릭 저먼의

Figure 1. Prospect cottage2) Source: Drawn by author

정원에 대한 시공간적 해석을 위한 하나의 기초과정으로서 그 의 삶과 정원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가 정원을 만든 이 유는 무엇인지, 정원사로서 그는 자신의 정원을 어떻게 가꾸고 정의했는지를 탐구할 것이다. 셋째, 구축된 정원 공간 이론을 바탕으로 객관적인 시간 속에 전개된 정원 공간과 주관적인 시 간 속에 펼쳐진 정원 공간, 이 두 가지 시점으로 데릭 저먼의 작은 정원의 시공간을 해석할 것이다.

연구의 방법은 문헌 내용 분석을 통해 관련된 사실들에 이론 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본고에서 다루는 문헌은 “Derek Jarman's Garden(1995)”을 연구의 중점으로 삼았고, 저먼이 정원을 가꾸면서 일기장처럼 쓴 “Modern Nature (1992)”에 실 린 파편적인 정원 관련 내용을 보조 자료로 활용함으로써 다각 적인 서술들을 추출해낸다. 연구의 공간적인 범위는 영국 켄트 (Kent) 지역의 던지니스(Dungeness) 해변에 있는 저먼의 집인 프로스펙트 오두막(Prospect Cottage)이며, 주로 다루는 영역 은 오두막 집 마당에 있는 그의 작은 정원이다(Figure 1 참조).

Ⅱ. 정원의 시공간에 대한 시론(試論)

1. 근대 자연철학자의 공간의식

공간(space)이라는 단어는 라틴어의 거리 또는 뻗침을 뜻하 는 ‘spatium’에서 파생하였으며, 경주에서의 코스와 같은 고정 된 거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즉, spatium(공간, 장소, 한 바퀴) 또는 curriculum(달림, 경주, 경주의 코스)은 마차 경주에서 한 구간이었다. 중세 후기에 이르면 일부 저술가들이 (무엇을 담 는) 그릇과 좀 더 비슷한 의미에서 이 용어를 사용하였고, 장 소, 특정한 곳(locus)의 의미와 동의어로서 사용하기 시작한다 (Elden, 2009; Kim, 2014).

플라톤은 어머니의 자궁이 태아의 발생과 성장의 터전을 제 공하는 것처럼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에게 위치를 제공하는 자 리 또는 장소(topos)를 공간으로 보았고, 이를 코라(Khôra, χώ ρα )

3)

라고 하였다. 플라톤은 영원한 존재이자 본보기인 이데아

4)

가 자신을 실현하는 장이자 근거로 공간을 본 것이다. 사물이 차지하는 고유한 공간을 아리스토텔레스는 토포스(topos, toʊpoʊs) 라고 지칭하였는데, 이는 공간을 일종의 그릇으로 본 것이고, 텅 빈 공간(void)이 아니라 사물들로 꽉 채워진 것으로 인식하 였다(Schroer, 2006; Lee, 2009; Kim, 2014).

근대에 와서 자연철학자 데카르트는 물질과 공간을 구별하

고 분리하는 전통적인 공간개념에 반대하면서 공간과 물질을

구분하지 않고 물체의 본성을 연장(extension, res extensa)이

라고 보았는데, 이는 곧 물질과 공간은 결국 동일한 것이라고

인식한 것이다. 데카르트가 말하는 연장이란 부피를 포함하는

너비, 깊이, 길이 뻗침을 뜻하며, 물질이 공간을 차지(점유)하

(4)

는 속성을 말하기 때문에 물질과 같이 공간도 연장적 실체로서 개별적인 사물들처럼 존재하는 것이 된다(Kang, 2010).

그러나 뉴턴은 데카르트와 달리 물질을 공간과 구별하며 공 간을 절대공간과 상대공간으로 구분한다. 절대공간은 외부적인 어떤 사물과 관계없이 그 본성에서 늘 동질적이고, 움직이지 않는 상태로 존재하는 것으로서 물질이 어떻게 배열되어 움직 이든 그 자체는 변화하지 않는 절대적인 것이다. 상대공간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고, 물질의 운동을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데카르트처럼 유클리드 공간, 즉 물질의 물리 적 성질이 어느 방향에서도 한결같으며(等方性, isotropy), 균 질적이며 무한히 펼쳐진 3차원 공간으로 보았다(Kim, K., 2004;

Yang, 2009; Schroer, 2006; Huggett and Heofer, 2009).

라이프니츠는 물체들은 근본적으로 다른 물체와 인과적 관 계를 맺지 않으며, 현상세계의 인과 관계는 사실상 예정조화

5)

의 겉보기 현상이라고 보기 때문에 뉴턴의 인과성 원리를 거부 한다. 따라서 그에게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사물들의 공존질서 또는 관계(사물들 상호간의 위치 또는 거리)가 공간이며, 사물 들의 위치는 다른 사물들과 그때그때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 지 사물들의 절대적 위치는 있을 수 없고, 단지 이들 간의 상호 관계만이 있는 것이다. 즉 공간을 순전히 상대적인 것으로 바 라보는 관계론적 상대공간을 주장하는 것이며, 이에 비해 뉴턴 은 상대공간의 기준으로서 절대공간을 제시하는 것이다(Kim, K., 2004; Schorer, 2006; Elden, 2009; Huggett and Hoefer, 2009).

칸트는 지금까지 분석되어 왔던 모든 공간론들을 부정한다.

대신 라이프니츠와 뉴턴의 조화를 시도한다. 칸트는 공간이 어 떤 객관적이고 실재적인 것도 아니고, 실체도 아니며, 사건이나 관계도 아니라고 본다. 대신 공간을 시간 내면에 속하는, 그리 고 그것을 통해 인식이 가능하게 되는 주관적인 어떤 것으로 본다. 공간은 경험으로부터 얻은 것이 아니고, 선천적으로 우리 감성 속에는 마음의 한 성질인 외감(外感)이 있고 이 외감의 형식인 공간에서 외적 대상을 표상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 의 내적 상태를 직관하는 내감이 있는데, 내감은 시간 형식으 로 모든 현상을 표상한다고 주장한다(Kim, J., 2004; Jones, 2009;

Janiak, 2012; Rohloff, 2012).

근대 자연철학자들은 공간의 원형에 대한 논쟁을 통해 공간 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을 전개했다. 이러한 근대 자연철학자들 의 공간론은 기본적으로 공간의 본질과 관련하여 물질과 마찬 가지로 독립적인 실체를 갖는가 아니면 물질들 사이의 관계라 고 보는가, 인식주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가 여부에 따라 실 체주의, 관계주의, 절대주의, 상대주의, 객관주의, 주관주의 등 으로 입장을 달리하고 있다(Kim, 2014).

그러나 여기에서 제기해야 할 것은 라이프니츠의 공간론이 다. 지금 보고 있는 세계가 정말 실재 세계인가하는 질문을 던 지면서 그가 데카르트와 뉴턴의 주장, 즉 공간은 실재이며 마

음(mind)과 독립적인 실체란 것을 거부하였다. 라이프니츠는 형이상학이 신의 관점을 취함으로써 단순한 실체의 존재를 현 상계가 아니라 예지계에서 논하고 있다(Lee, 2013). 이 사실을 통해 라이프니츠로부터 공간에 대한 논의는 객관적인 사물을 넘어서 인간의 의식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것이 인간 의식 속의 공간에 대한 논쟁이 펼쳐지면서 공간 인식의 다원성을 제 시한다. 후에 칸트는 공간과 시간의 명제를 제기하였고 공간, 시간, 인간의 감각 이 세 가지 요소의 관계를 논함으로써 공간 속의 시간에 대한 탐구의 프롤로그가 열렸다.

2. 현대철학자의 시공간 논쟁

칸트는 공간과 시간의 본질적 특성을 선천적(선험적, a priori) 관념성이라고 보았으며, 공간은 외적 감각(경험)의 형식이고, 시간은 내적 감각(경험)의 형식이라는 것이다. 즉 감각기관이 외부세계로부터 자극을 받아 감각과 지각을 생기게 하는 것이 감성이며, 이를 통해 현상을 인식하게 되는데 바로 이러한 감 성의 선천적 형식, 경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앞 서 존재하는 직관형식을 공간이라고 보았다(Kim, J., 2004; Kwak, 1998).

순수감성이 본질체(物自體, Ding An Sich)를 접하고서 그것 을 시간과 공간의 형식에 따라 현상을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공간을 사물에 성질 또는 관계를 부여하는 선천적 관념의 사물 로서 규정하며, 외적 현상의 경험, 즉 세계를 표상하는 자신의 주관적 조건, 감성의 주관적 조건, 현상의 성립조건으로 간주한 다. 바로 우리의 감성에 주어지는 것은 이미 시간과 공간이라 는 틀에 근거하여 찍혀 나온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인식하는 것은 이미 시간과 공간이라는 선천적 형식에 따라서 구성된 것 이다(Kim, J., 2004; Carrier, 1992).

칸트에 의하면 시간도 공간처럼 개념이 아닌 직관의 형식이 다. 시간을 직관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우선 시간의 계속 은 무한히 연장되는 선(線)과 같은데 단지 선의 부분들은 동시적 으로 존재하지만 시간의 부분들은 연달아 일어나는 것(succes- sive)이라는 사실만을 예외로 한다. 이렇게 일직선으로 형상화 된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진행이라는 것이다. 상상에서가 아 니라면 과거, 현재, 미래를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가 없다. 이처 럼 선험적 형식으로서의 시간의 자체적 규정으로 인해 그것은 개념이 아니라 직관이라는 것을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시간에 대해 칸트는 공간에 종속되어 있다고 보았다.

기하학자나 물리학자가 파악하는 시간은 공간 속에서 동질적

인 시간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어디서나 같은 법칙의 지배를

받으므로 여기에 있는 시간이 저기에 있는 시간과 동일한 것으

로 보았던 것이다. 칸트의 공간과 시간관념의 동형성은 ‘연장적

크기(extensive Grobe)’ 및 ‘강도적 크기(intensive Grobe)’라는

(5)

개념에 잘 나타나게 된다. 연장적 크기란 부분의 표상이 전체 의 표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즉 부분을 차례로 더함으로 써 전체의 표상이 완성된다. 이러한 종합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부분들은 모두 동질적인 것이어야 한다. 즉, 모든 현상 은 연장적 크기이며 시간과 공간은 연장적 크기로 모든 현상을 재단하는 형식이다.

그러나 현대 철학자 베르그송의 시공간론은 칸트의 시공간 론을 전적으로 비판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무엇보다 공간의 개 념 아래 시간을 포섭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였다. 베르그송은 칸트가 시간을 동질인 장소로 간주하여 지속과 시간을 공간과 혼동하기 때문에 실재 지속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즉, 이에 대한 문제의 해결은 순수한 시간의 경험인 ‘지속’의 발견으로부 터 도출된다는 것이다. ‘지속’으로서의 시간은 양으로 나눌 수 있는 물리학의 측량가능한 시간이 아닌 사람에 따라 그것을 느 끼는 것이 다르고, 같은 시간과 공간 안에서도 한 사람의 마음 의 질에 따라서도 그 시간의 지속이 달리 나타나는 것을 의미 한다(Hwang, 2005).

시간은 지속, 질적인 것이 있기에 아예 다른 속성이라고 베 르그송은 주장하고 있다. 즉, 감각이 시간을 균일하게 채우고 있다는 칸트의 설명에서 시간은 여전히 일직선적인 공간적 이 미지로 드러나지만 베르그송은 감각을 양화하는 작업 혹은 양 적 도식으로 파악하는 태도가 의식상태의 진정한 존재방식을 왜곡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만약 시간이 공간과 마찬가지 로 균일한 장이라면 진정한 시간의식은 실종하게 된다. 베르그 송에서 시간은 의식상태의 질적 존재방식과 관련되기 때문에 칸트의 강도량 개념은 재고될 수밖에 없다(Ryu, 2010; Hwang, 2005). 다시 말하면 베르그송은 주관적 시간의 개념을 제기하 였다. 즉, 기억 속에서 부활한 과거에 경험했던 순간을 말한다 (Game, 1995). 이것이 공간속에 존재하는 시간의 다층적 구조 를 제시하였다.

“존재와 시간”에서 하이데거는 ‘현존재(Dasein)’만이 존재 이해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자로 간주한다. 현존재라는 단 어(Da-거기, Sein-있음)는 공간적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며, 존재의 자리이며, 의미 연관으 로서의 세계이다. 즉, 시간을 숙성시키는 인간의 실존, 바꿔 말 하면 역사적 삶은 그러한 의미 연관을 개척하는 것(세계의 “건 립”)이다. “존재와 시간”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바 로 현존재의 시간성(Zeitlichkeit)이다(Kang, 2011; Mun, 2005).

하이데거에 따르면 인간의 실존은 세계에 이미 ‘던져져 있는’ 과 거적 계기와 자신의 본래적 가능성을 ‘앞으로 던지는(entwerfen)’

미래적 계기, 그리고 여타의 존재자들 곁에서 이들을 심려하는 (Sorgen) 현재적 계기와 연관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시간은 주어지거나 선험적인 것이 아니며, 인간의 실존 자체는 ‘시간을 숙성시키며(Zeitigen)’, 역사적 맥락을 가지고 있다(Seo, 2008).

이 주장은 공간 속의 시간은 인간에 따라 변하고, 현재라는 시 각 안에서 인간의 의식에 의해 과거나 현재, 혹은 미래의 시간 이 포함된다.

베르그송과 하이데거가 제시하는 실존주의 시공간론과 달리 메를로 퐁티는 현상학의 시공간론을 제시하였다. 메를로 퐁티 의 공간에 대한 이해는 신체적 상황이 처한 ‘지각의 장’에서 드 러난다. 그는 안경실험

6)

과 베르트하이머의 실험

7)

을 통해 우리 의 신체가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설명한다. 이 실험들에 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나의 신체는 상황에 의해 규정되는 잠재적 신체라는 점이다. 즉, 신체는 ‘실체적 감각 뭉치가 아니 라 주어진 광경을 지각하기 위해서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간은 늘 새롭게 구축되며 구성된다는 것, 따라서 공간성은 시간성을 함축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메를로 퐁티는 우리의 신체는 공간 안, 더욱이 시간 안에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되고 그 것은 공간과 시간에 거주한다고 말한다(Sim, 2014). 다시 말하 면 메를로 퐁티에게 있어 인간의 몸을 매개체로 하여 공간속의 시간을 감지하는 것이다. 즉, 시간은 인간의 감각에 따라 정해 진다.

현대 철학자에 따라 공간 속에 존재하는 시간의 다차원적인 해석이 이루어지면서 근대 자연철학자 칸트가 제시한 단순히 양화된 시간의 인식을 넘어서 베르그송과 하이데거는 시간은 인간의 실존 자체로 정해지는 견해를 제론하면서 시간은 인간 의 주관적인 의식에 따라 정해진다는 점을 밝혔다. 이와 더불 어 메를로 퐁티는 공간 속에 존재하는 시간은 인간의 경험을 통해 생겨난 일련의 느낌으로 감지하게 되고, 시간은 인간의 감각으로 실현하게 된다고 보았다. 현대철학자가 제시하는 시 공간론을 총합적으로 보면 인간의 의식과 감각으로 드러내는 공간 속의 시간은 느낄 수 있는 경험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며 객체계(客體界)에 대립되는 현상계(現象界)의 세계에 속하는 것이다.

베르그송, 하이데거, 그리고 메를로 퐁티가 주장하는 시간에 대한 견해의 총합은 21세기의 물리학자 브라이언 그린(Brian Greene)이 시공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유사한 것으로서 나 타났다. 그의 책 “우주의 구조”에서 시공간이라는 것 자체가 실존하는 것이 아닌 우리의 의식에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개념의 틀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Yu, 2015:252).

이런 맥락에서 공간은 주관적인 의식의 산물로 볼 수 있는 한 인간 의식과 감각의 흐름에 의해 시간은 다차원적으로 발산되 면서 중층적인 공간 양상을 연출해낸다.

이상 내용을 다룸으로써 공간속에 존재하는 시간은 두 가지

로 나눌 수 있다고 보았다. 우선 칸트가 주장하는 시간은 객관

적인 존재로서의 정량화된 시간이며 현실세계를 그대로 담은

시간을 말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베르그송, 하이데거 그리

고 메를로 퐁티가 주장하는 시간이다. 이것은 개인의 감정이나

(6)

의식에 따라 수시 변모 가능한 시간을 가리키는 것이고, 본고 에서 이런 시간은 주관적인 시간으로 칸트가 제시하는 객관적 인 시간과 구별시킨다. 다시 정리하자면 공간 속에 존재하는 시간은 객관적인 시간과 주관적인 시간으로 구분할 수 있다.

3. 정원 시공간 이론 구축

형이상학적으로 ‘정원’의 개념은 건축학과 식물학에 한정되 지 않고, 꿈과 신화의 세계를 향하기 때문에, 정원은 하나의 이 상적인 대상으로 영혼과 땅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관계를 해설 하는데 사용된다(Liotta, 2009:247). 시대를 막론하고 많은 장 소에서, 에덴에서 추방된 인간들은 잃어버린 낙원을 재건하는 것을 시도하며 정원을 구상한다. 정원의 역사는 인간이 항상 정원은 뭔가 특별한 존재라고 여긴다는 것, 즉 어떤 향수나 깊 은 열망이 주입된 공간이라고 간주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그러므로 정원의 공간은 구체적 실체인 땅과 정신적 표 상인 영혼이 결합된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며 정원 은 물리적인 외재의 공간과 정신적인 내재의 공간으로 이루어 진다.

모든 정원은 지역 사회의 내적 삶에 대한 증거물이자 문화를 담는 그릇이며 세상을 해석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이상적이거나 실재적이거나의 여부에 관계없이 자기 정원의 조영자이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풍경의 변형의 일부이기도 하 다(Tagliolini, Alessandro and Massimo Venturi Ferriolo, 1987;

Liotta, 2009:247-8).

정원은 인간의 손길로 만들어진 인간성이 투입된 하나의 공 간이며 인간의 영혼, 즉 정신세계를 투영하는 곳이다. 인간의 정신에는 사고, 감정, 직관, 감각의 네 가지 기능이 포함되어 있 고(Lee, 1999:48), 정신에 있어서 공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 라 상대적이다(Jung, 1995:565-6). 때문에 정원에 내재된 상대 적인 공간은 사람의 정신세계에 따라 변모한다.

이런 정신세계로 연출된 시간의 차원은 숨겨진 허상의 공간 들이 펼쳐낸다. 정원 공간은 절대적인 지속된 시간 속에 존재 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재적인 의식 속에도 존재한다.

이런 존재로 인해 인간의 정신세계에 속하는 시간은 우주의 블 랙홀(black hole)처럼 공간을 왜곡하고 재편하게 한다.

또한 정원 공간은 도시 공간과 달리 역사적인 대사건으로 생 겨난 도시민들의 집단 기억(Collective Memory)이 거의 잠재 되어 있지 않고 단지 하나의 개인적인 곳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다차원의 시간 속에 연출된 공간은 불규칙한 형태를 갖고 있고 개개인의 정신세계가 띠고 있는 남과 차별화된 특수 성 때문에 예측 불가능한 속성을 가진다.

정원에 존재하는 시간은 여러 가지 종류의 것이 중층적으로 얽혀 있다. 객관적인 시간의 시점으로 보면 정원에 속하는 시

간은 생태적인 연속으로서 계절, 생장 주기, 낮과 밤, 일출과 일 몰 등의 자연적인 리듬을 말하는 것이고, 이와 상호 작용하는 시간은 일상생활의 과정 속에 밝혀진 사회적인 시간으로서, 일 어나는 것, 일하는 것, 밥 먹는 것, 자는 것, 정원을 가꾸는 것 등이 있다(Hitchings, 2003).

주관적인 시간은 인간이 정원을 거닐면서 생겨난 일련의 의 식과 감각으로 정해진다. 인간의 의식에 따라 정원 공간의 시 간은 현재일 수도 있고, 과거의 추억 속에 잠긴 공간일 수도 있 으며 넓은 미래의 환상에서 허구된 공간일 수도 있다. 또한 일 련의 감각에 의한 현재에 속하는 슬픈 공간일 수도 있고, 과거 나 미래에 속하는 무한 희열의 공간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정 원 안의 공간은 시간의 다층적인 발상으로 인해 여러 차원으로 투사된다.

그렇기 때문에 정원은 여러 면에서 매우 독특해서(Foucault and Miskowiec, 1986) 하나의 ‘다른(other)’ 장소로 여겨지며 (Whatmore, 2002), 하나의 ‘중개적인(in-between)’ 혹은 기이 하고 모순적인(paradoxical) 공간이라고도 한다(Longhurst, 2006;

Bhatti et al ., 2009). 정원에 존재하는 시간으로 인해 정원에 내 재된 공간이 펼쳐진다. 시간을 다차원적으로 투사함으로써, 동 일한 물리적인 공간 내의 다양하고 풍부한 내면을 환기시킨다.

이런 공간의 내면은 인간의 정신세계에 의해 유지되며 인간의 사고, 감정, 직관, 감각이 포함되어 있다. 정원 시간의 불규칙적 인 변동으로 인해 정원의 공간도 다양한 내밀성을 드러내는 것 이다. 따라서 정원 공간의 내밀성과 시간의 다층성은 서로 긴 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원사에게 정원은 ‘행위경관(taskscape)’이며 능동적인 참 여를 포함한다. 정원을 가꾸는 일은 일련의 감각으로 펼쳐진다.

시각으로 정원의 경관을 보고, 후각으로 흙과 식물의 냄새를 맡고, 정원 일을 하면서 연속된 촉각들도 불러일으킨다. 후설 (Husserl)은 촉각을 모든 감각을 정초 지우는 근원적 감각으로 간주한다. 즉 지각의 세계는 모든 상황들 중에서 촉각에 의해 구성된다는 것이다(Choi, 2009). 촉각은 근육의 감각과 관련되 어 우리의 신체가 공간 속을 움직이면서 감지하는 능력이다 (Bruno, 2002:6). 이것은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감지하는지에 도움이 되며, 때로는 작업이나 공구를 사용하는 데에서도 어떤 감각을 얻게 된다(Bruno, 2002; Feld and Basso, 1996; Gibson, 1966, 2013; Ingold, 2000; O'Neill, 2001; Rodaway, 2002; Bhatti et al ., 2009).

그렇기 때문에 촉감은 온몸의 감각을 포함하는 하나의 종합

적인 체험이라고 깁슨(Gibson)이 말했다(Gibson, 1982). 촉각

은 정원을 가꾸는 과정에서 빈번히 사용된다. 정원사가 농기구

를 잡거나 흙을 만질 때 신체와 물체는 서로 촉각으로 연결되

어 온몸의 감각을 자극하고, 이런 감각은 또한 몸의 한 부분이

된다. 촉각에 비해 시각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메를로 퐁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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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도 있다(Choi, 2009). 그러나 정원에서는 시각조차도 감정 을 포함한 촉각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미지(image)들이 눈을 충격하는 순간 촉각 경험에서부터 온 감각은 이미지들을 매개 로 하여 과거로부터 눈을 통해 누적된 감정적인 반응을 연속적 인 층면에서 활성화시킨다(Bruno, 2002:219). 이런 맥락에서 인간은 신체 감각, 특히 촉각을 통해 정원을 감지한다. 또한 이 런 감지로 인해 시각적으로 다층적인 공간 양상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정원은 한정된 객체적 존재인 공간의 무한함 앞에 인간 주체의 능동적인 의식과 감각이 계기가 된다. 따라서 정 원은 개인의 의식이 흐르는 공간이며, 촉각으로 느낄 수 있는 감각의 연장이며, 하나의 감성 공간(sensitive space)으로 간주 할 수 있다. 또한 도시 공간과 달리 사적인 면이 더욱 농후하기 때문에 개개인의 특수한 기질에 따라 셀 수 없이 무한한 차원 으로 변환할 수 있는 것이 정원 공간의 특징이다. 이런 특징으 로 인해 정원 공간은 인간으로서의 주체성을 최대로 긍정해주 는 역할을 하고 있는 사실을 명시해준다. 바로 이런 역할 때문 에 정원과 인간 간의 유대인 다원적인 공간으로 표현해내고, 이 런 공간들은 인간의 내면을 자의적으로 내성하는 동기가 된다.

정원 공간은 푸코(Michel Foucault)가 말하는 통치자의 권 력으로 포섭할 수 있는 공간과 달리, 어떤 정원 공간은 도시의 영역에 속해 있지만 정치적인 의도에 의해 좌지우지 되지 않는 탈영토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탈영토성은 정원에 종속되는 시 간의 다양한 양상으로 연출된 다차원적인 공간으로 인해 성립 하게 된다. 이렇게 보면 현대 도시 공간에 있어 정원은 인간의 자유 의식이나 감정이 제한 없이 최대한 주입된 곳이며 도시공 간 어디에도 없는 파편적인 유토피아적인 공간으로 존재한다.

Ⅲ. 저먼의 정원에 대한 시공간적 해석

앞장에서 정원의 시공간 이론에 대한 구축을 시도하였고, 정 원공간의 독특성을 해명함으로써 타 공간과의 차이성을 제시 하였다. 그리고 정원공간에 존재하는 시간은 객관적인 시간과 주관적인 시간으로 구분되었고, 이 두 가지 시간의 특질에 대 해 자세한 설명을 기재하였다. 본장에서는 먼저 데릭 저먼의 삶과 그의 정원에 대해 다루는데, 이 과정은 저먼이 정원을 왜 조성했는지, 또한 이 정원에 주입된 정열이나 희망이 무엇이지 를 해명함으로써 저먼이 생각하는 정원 공간의 특수성을 밝힐 것이다. 다음은 앞장에서 제시한 정원공간의 두 가지 시간, 즉 객관적인 시간과 주관적인 시간의 시점에서 저먼 개인의 감수 성과 주체의식에 관한 고찰을 중심으로 그의 정원에 대해 구체 적인 해석을 진행할 것이다.

1. 데릭 저먼의 삶과 정원 공간

1) 삶에서 정원과의 조우

데릭 저먼(1942~1994)은 영국의 노스우드(Northwood)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영국공군(RAF) 장교이며 어머니는 해로 우 미술학교(Harrow School of Art)에서 공부했고 잠시 의류 디자이너로 일했다. 1942~50년의 기간에 저먼은 부모님을 따 라 영국, 파키스탄, 이탈리아에서 거주했고 나중에 다시 영국으 로 돌아왔다(Wollen, 1996:161). 저먼의 정원과 가드닝에 대한 관심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시작됐다. 4살 때 부모로부터 처음 으로 정원 서적인 “Beautiful Flowers and How to Grow Them (아름다운 꽃과 꽃을 키우는 방법)”을 받았는데, 이 책을 정말 흥미롭게 읽었고, 이로부터 정원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고 했으 며(Jarman, 1995:11), 초등학교 때는 가드닝 상도 받았다. 그러 므로 정원과 가드닝은 유년기부터 이미 저먼의 의식 속에 뿌리 를 내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70년대 초반 저먼의 여동생 부부는 Verzons란 레스토랑을 인수해서 호텔로 개조하려고 했는데, 저먼은 그들에게 정원을 설계해주었다. 조성 계획을 실행했지만 불행하게도 정원이 완 성되기 전에 Verzons가 다른 사람에게 팔리게 된다. 아쉬운 것 은 저먼이 설계한 정원이 완성되지 못하고 설계계획안만 보관 된 점이다. 이때부터 정원설계는 저먼의 예술 활동의 중심으로 자 리 잡기 시작했다. 무대 및 세트 디자이너로서 그는 John Gielgud 의 작품 “Don Giovanni”에 조성된 정원처럼 오페라에서 연극 을 위한 다양한 허구의 정원을 조성했다. 또한 Ken Russell의

“he Devils” 속의 정원처럼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만든 정원도 있다(Steyaert, 2010). 이처럼 정원 디자인은 저먼의 예술 생애 를 계속 지속시켜 주었다.

1986년에 저먼은 자신이 에이즈(AIDS)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 다음 해인 1987년에 저먼과 HB(저먼의 연인)는 던 지니스(Dungeness) 바닷가를 산책할 때 갑자기 멀리에 있는 노란색 창틀이 있는 검은 오두막에 눈이 끌리게 되었고, 그 순 간 저먼은 그 집이 바로 자신이 원하는 집이어서 사고 싶은 마 음이 생겼다고 했다. 행운인 것인 그 집은 바로 그 때 팔려고 내놓은 상태였다는 것이다. 저먼은 순조롭게 그 집을 구입해서 집 앞뒤 마당에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다. 저먼 정원의 최고 성 취는 던지니스에 있다는(Wollen, 1996:19) 평가를 받았으니, 정원을 가꾸는 일은 저먼의 후반생에서 아주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로까지 여겨진다 (Lloyd, 1996).

1990년에 자신의 정원에서 영화 “The Garden”을 찍었고, 그

후에 출판된 책들 “Modern Nature(1992)”, “Derek Jarman's

Garden(1995)” 등에 정원에 관한 파편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기록하였으며, 정원을 통해 느껴진 정신세계에 대한 성찰도 기

술하였다. 던지니스는 마술같은 장소였고, 그곳을 방문하게 된

다면 저먼이 느낀 고독과 고요함을 감수할 수 있다는 주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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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Jarman, 1995:5). 한편으로 저먼은 일생동안 수많은 예술 활동을 했지만 정원이야말로 그의 일생의 맥락을 관통하는 것이 며, 에이즈(AIDS)에 걸려서 병의 고통으로 인해 나온 환영 속에 서 정원은 그의 정신세계와 현실세계를 연결하는 하나의 유대, 즉 보이지 않는 통로와 같은 존재였다고 간주할 수 있겠다.

2) 저먼의 정원과 영화 “정원” 속의 잠긴 공간

저먼은 던지니스에 있는 자신의 집을 ‘프로스펙트 오두막’이 라고 명명했다. 정원은 오래된 오두막의 진입로에 만들어졌다.

저먼은 80년대에 여기에 와서 주변에 흙이 없이 조약돌이 그나 마 드문드문 있는 식물을 지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정원이 있는 건물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거의 불 가능한 일이라고까지 생각했다. 지리적인 조건이 정원을 가꾸 기에 힘든 환경이었던 것이다. 해안 지역이어서 식물을 심기 어려운 모래땅이었고 집 주변에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환경은 아름다운 정원과는 거리가 멀었다(Figure 2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먼은 프로스펙트 오두막의 검은색에 반해버려 뜰 뒤에는 들장미를 심었고, 다음으로 흥미로운 유목을 발견하여 정원을 꾸미는 식재로 사용했으며, 장미 주변에 구멍이 있는

Figure 2. At the back of the garden, the power station is visible in the background

Source: Derek Jarman's Garden, p.49

Figure 3. Jarman as a gardener working in his garden Source: Film "The Garden"

돌로 목걸이를 만드는 등 언제나 열정이 있는 정원사로서 가드 닝을 시작했다(Jarman, 1995:11-14, Figure 3 참조).

저먼은 우선 정원을 가꾸는 데에 중요한 농기구를 모으는 데 열중했다. 첫 번째 정원 도구는 작은 모종삽이었고, 이것으로 프로스펙트 오두막의 화단을 가꾸었다. 다음으로 갈퀴, 괭이, 삽 등은 정원 가꾸기에 가장 유용한 도구라고 했으며, 전지가 위는 산톨리나(santolinas)를 자르는데 사용되었고, 가래와 갈 퀴는 거름을 옮길 때 썼다. 모든 도구 중에서 괭이는 가장 자주 쓰였는데, 흐릿한 백랍에 빛이 나게 하였다고 한다. 더 좋은 도 구를 구하기 위해 애플도어(Appledore)라는 곳에 가서 정원 도구를 매우 저렴하게 파는 가게를 찾아 다용도 도구를 샀는데, 형태는 삽 중에서 작은 사이즈였고 가격은 7파운드였다. 저먼 은 이제 더 이상은 예술가처럼 보이지 않았고 단지 가드닝에 열중하는 정원사로 보였다.

정원의 식재 종류도 다양하다. 먼저 들장미를 심었고, 갯배 추과 크램브마리티마(Crambe maritime)는 정원에서 가장 특 별한 식물이다. 다음 흰 패랭이, 야생 적색 양귀비는 정원에 색 깔을 입히고, 구석구석에서 움이 트는 하늘색의 수레국화도 있 다. 계절마다 가시금작화가 여러 모습으로 변하고, 라벤더도 자 생한다. 그 외에 엘더는 관목처럼 되었는데 다년생 콩, 갯완두 가 정원에서는 야생으로 자란다. 그러나 저먼의 정원은 생태학 적으로 보면 안정적이지만 모든 종류의 일이 기존의 영역에 지 장을 준다. 던지니스는 과학상 특별지구(SSSI: Site of Special Scientific Interest)였기 때문에 심을 수 있는 식물에 제한이 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색 캠피언, 아욱, 레스트-해로우 (rest-harrow), 스카버스(scabious) 등과 같은 여러 화초가 꽃 으로 장관을 이룬다. 던지니스의 특유한 지의류로는 순록 이끼, 밝은 녹색 이끼, 분홍 꽃이 있는 실새삼 이끼 등이 있다. 프로 스펙트 오두막에 심은 식물들은 환경 조건의 제약에 의해 마음 껏 자라지는 않지만 강한 생명력을 가졌다.

영화 “정원”은 저먼이 1990년에 자신의 정원인 프로스펙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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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에서 찍은 영화이며 그의 가장 비서사적이고, 또 가장 개인적인 영화라 할 수 있다. 순수 야외 촬영만으로 이루어진 이 영화는 ‘꿈’과 ‘기억’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두 형식 의 구조는 서로를 보완하고 의지하면서 내러티브를 이끌어간 다. 이 영화는 저먼 자신의 환상의 세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 신이 꿈꾸는 환영의 세계에 본인이 직접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Bae, 2005). “정원”은 구체적인 대화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장면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편적인 화면을 통해 동성 애자들이 세속의 편견 속에서 괄시를 당하는 것과 박해를 받는 것을 반영한다.

연쇄적으로 참혹한 현실의 장면들 사이에 정원의 아름다운 화면이 교차되고 있다. 그 가운데 저먼이 직접 정원을 가꾸는 장면과 정원에서 자라는 생명력 강한 식물의 모습들이 나온다.

영화의 끝에 동성의 연인이 이 세상을 떠나는 장면이 전개되면 서 이 영화의 유일한 독백이 등장한다.

나는 이 정원을 걷고 있다, 죽은 친구의 손을 잡고서.

내가 있는 냉혹한 세대의 만년이 빨리도 오는구나.

춥다, 춥다, 춥다, 그들은 그렇게 조용히 죽었다.

잊혀진 세대들은 비명을 질렀나?

아니면 완전한 체념 속에서 조용히 결백으로 항의했나?

춥다, 춥다, 춥다, 그들은 그렇게 조용히 죽었다.

……

내가 심은 꽃들, 장미, 제비꽃, 파랗구나.

기쁨이 사라진 나의 감미로운 정원, 내년에 다시 오기를

춥다, 춥다, 춥다, 내가 그렇게도 조용히 죽는구나.

8)

(Source: Film "The Garden", translated by author.)

여기에서 정원은 고통과 즐거움, 겟세마네와 에덴에 대한 은 유이다(O'Pray, 2003:43-45). 이를 통해 정원은 저먼에게 있어 사색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고, 또한 정원은 세속과 관계없이 저먼의 정신세계에 무한 희열을 내포하고 있는 존재인 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의 연쇄된 ‘춥다’는 세속의 차가운 지적과 마음 속 정원의 황폐에도 불구하고 내년 정원의 아름다움을 추구하 고 있다. 그러므로 영화에서 정원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에 대 한 깊은 희망이 담겨 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천국에서는 정원이 떠나지 않았고, 어떤 정원은 곧 천국이었 다. 저먼은 자기의 정원도 천국이었다고 했다(Jarman, 1995:

40). 저먼은 에이즈(AIDS) 병마의 아픔 속에서 가드닝을 하면서 정원 작업에 치료효과(pharmacopoeia)가 있음을 보았다(Jarman, 1995:12).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확실하게 안 상태 에서 정원 가꾸기를 시작했고, 하나의 평범한 정원사로서 자기 집 마당에 ‘천국’을 조성했다.

그러므로 저먼의 정원은 그의 영혼을 온전히 물려받은 것이 다. 정원은 다른 세계나 존재의 다른 질서로의 관문과 같은 장 소이며 저먼이 죽기 전에 그의 정신세계와 교감하는 공간이었 다. 여기에 나타난 것은 정원의 일반적 경계를 훨씬 넘어 확장 된 것인데, 이는 눈이 그것을 꿰뚫어보거나 그 이상의 것을 볼 수 있어서라기보다는 정원이 그것을 돌보는 이들을 대신하여 메시지를 보내고, 혹은 어떤 신념을 서술하기 때문이다(Harrison, 2012:85-88).

2. 객관적인 시간 속에서 전개된 정원 공간

정원 공간에 있는 객관적인 시간은 생태적인 시간을 말하는 것이다. 저먼은 자신의 저서인 “Derek Jarman's Garden"에서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정원의 사계절을 그대로 묘사한다. 그는 하나의 정원사의 신분으로 자연적인 시간 속에서 매일 변모하 는 정원을 관찰하여 기록하였다. 사계절로 연출되는 정원 안의 시간은 객관적인 시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시간들은 정원 사의 개인적인 주관 의식이 개입하지 않고 지구의 회전에 따라 변모하는 정원 경관을 그대로 담은 시간이다. 저먼은 봄의 정 원에 관해 이렇게 서술하였다.

길은 봄꽃으로 가득했다. 튤립은 경이로웠다. 자홍색 그리고 노란 색의 장식이 있었으며, 깊은 자주색 튤립은 무성한 황갈색 월-플라 워 위에서 흔들렸다. 흰색 캠피언, 파란 눈의 물망초 그리고 금잔 화가 있었다. 크램브코디폴리아, 마리티마는 패랭이꽃처럼 싹을 냈다. 용-이빨 모양의 암석은 거의 사라졌다. 정원은 봄의 기운으 로 가득 찼다. (Jarman, 1995:130)

봄에 피는 꽃인 튤립, 캠피언, 물망초, 금잔화 등에 대한 대 수롭지 않은 사사로운 이야기들이다. 생태적인 시간은 정원에 다채로운 면모와 생생한 활기를 가져왔고 저먼은 이런 경이로 운 풍경을 감상함으로써 매일의 일상을 단순화시켰다. 시간에 따라 색깔로 이루어지는 공간에서 저먼은 정원의 치료 효과를 느꼈고 마음의 평화를 느꼈다(Jarman, 1995:57). 이런 감각은 정원의 현재 시간에 속하는 경관에 대한 깊은 감수를 통해 정 신세계의 희열을 얻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객관적인 순환해오는 정원 시간에 정원을 거니는 자의 주관 적인 감각으로 정원 공간은 단지 하나의 물리적인 속성을 지닌 객관적인 존재를 넘어서 하나의 정적인 표시로 충만한 공간으 로 변모한다. 이때 정원 공간은 객관적인 시간에 속하고 있지 만 정원을 감수하는 자에게 다른 공간으로 보인다. 정원은 인 간의 정신세계와 교감하면서 은밀한 소통이 이루어진다. 비슷 한 기록은 여름의 정원에도 나온다.

던지니스가 최고일 때는 황금빛 태양이 빛나는 여름이다. 검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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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황금색으로 변하고, 그늘은 거의 바다를 만질 것처럼 펼쳐진 다. 분홍색에서 흰색으로 변하는 희미한 조약돌은 태양이 발전소 뒤로 진 이후 빛을 반사한다. 이곳에서의 황혼을 다른 곳에서의 황 혼과 비교할 수는 없다. 이곳에서의 황혼은 완벽한 고요함 속에 있 다. 이곳에서는 피곤한 시간이 잠깐 눈을 붙인다는 느낌을 받게 된 다. (Jarman, 1995:44)

저먼의 기록을 통해 해질 무렵 정원의 경관에 그의 마음이 매료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가 서쪽으로 저물면서 점차 변해가는 빛이 여러 색깔과 화면을 연출하며 고요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저먼이 느낀 이 완벽한 고요함은 정원 공간의 물리 적인 차원을 넘어서 주관적인 감각에 속한다. 생태적인 시간이 가져온 정원의 아름다운 경관은 사람의 심리적인 감수에 따라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큰 흐름 속에서 다시 다른 감성 공 간이 생겨난다. 즉, 객관적인 시간 속에서 저먼의 감수로 인해 주관적인 정원 공간이 전개된다. 겨울의 정원을 저먼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겨울이 되면, 돌로 만든 원이 꽃을 대신하였다. 정원의 앞쪽은 흰 색, 회색으로 된 돌들이 있었는데, 그러한 돌을 보는 일은 마법과 같은 순간이었으며, 가끔은 빨간색 돌도 거기 있었다. (Jarman, 1995:47)

꽃들이 모두 시든 겨울에 정원의 경관은 집 앞 마당에 있는 돌로 만든 조형물만 감상할 수 있지만, 저먼에게 무한한 재미 를 제공한 듯하다. 시선으로 돌을 만지면서 하나둘씩 살펴보는 과정 속에서 기묘한 마법과 같은 정신적인 자극이 감지된다.

촉각으로 직접 느껴진 것이 아니더라도 눈으로 스며드는 순간 풍부한 정적인 파편을 가져오는 동시에 정원 공간의 내포를 풍 부하게 해준다. 따라서 정원은 객관적인 시간 속에서 저먼의 주관적인 감각으로 인해 특별한 공간들이 중첩되면서 저먼의 개인적 감수가 충만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저먼은 이 렇게 말했다.

나는 한 시간 동안 식물을 바라볼 수 있다. 식물은 나에게 평화를 가져다준다. 나는 가만히 앉아, 식물을 바라본다. (Jarman, 1995:57, Figure 4 참조)

흘러가는 객관적인 한 시간 동안 저먼은 정원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지 식물을 관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평화가 감지 된다고 했다. 이런 평화는 저먼의 정신세계의 깊은 곳에서부터 환기되는 감정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것은 긴 시간 동안의 시 각적인 자극을 통해 얻은 감각이다. 시각은 촉각 속에 포함되 어 사람이 정원을 감지하는 주요 수단이 되었고, 신체에 불러 일으켜지는 감각은 촉각의 지배에 의해 퍼진다. 마음으로 감지

Figure 4. Looking at the plants Source: Derek Jarman's Garden, p.85

된 평화, 혹은 마법 같은 순간들은 사람의 시선을 매개체로 하 여 가장 근원적인 마음 혹은 영혼을 만지는 촉각으로 변환된다.

즉, 일종의 공감각(synaesthesia)이다. 바로 이런 공감각으로 인해 객관적인 시간에 속하는 정원공간은 더 이상 하나의 실존 공간이 아니라 그 자체를 넘어서 무한의 다차원적인 공간으로 펼쳐진다. 그래서 저먼은 이렇게 말했다.

정원에는 마법이 있었다. 놀라움, 보물찾기의 마법이었다. 정원은 보물찾기의 장소이고, 식물들은 술래잡기를 하였다. (Jarman, 1995:47)

이를 통해 정원은 저먼의 감각으로 인해 더 이상 하나의 물 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흐릿한 감각의 환영으로 인한 또 다른 신비한 내밀성이 가득한 공간이 되었다. 이는 정원과 저먼이 서로 무형의 감각적인 유대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정원의 세계는 정적인 것이다. 정원의 객관적인 시공간 은 물질세계를 넘어서 정원을 거니는 자의 감각에 의해 정신세 계에 들어가 생명체에게 환희를 주는 가치를 지니게 되며, 또 한 이런 가치로 인해 객관적인 시간에 속하는 정원 공간은 주 관적인 감성 공간이 된다.

그러므로 정원에는 개인의 감정이나 사유와 같은 정신세계

가 내포되어 있고 형이상학적인 의미가 반영되어 있다. 정원사

의 감각이나 창의적 발상으로 인해 정원 시공간의 어떤 의미가

부각되기도 하고 어떤 의미의 차원이 초월되기도 한다. 정원은

인간이 커다란 깨달음에 이르는 데 필요한, 즉 꿈 저 너머에 있

는 실재를 인식하는 데 필요한 수단들 중 하나이다(Clément,

2012:57). 그렇기 때문에 정원의 객관적인 시간 안에 표현하고

있는 것은 물질을 넘어서, 인간 주체의 감각으로 생겨난 일련

(11)

의 관념으로 인해 정원 공간의 내포를 풍부하게 해준다. 즉 객 관적인 시간 속에 존재하는 정원 공간은 결국 객관적이지 않고 인간 주체의 능동적인 감수에 따라 변모한다.

3. 주관적인 시간 속에 펼쳐진 정원 공간

정원에 속하는 주관적인 시간은 객관적인 시간과 달리 정원 사 혹은 정원을 거니는 자의 주체의식에 따라 변화하는 시간을 말한다. 정원 공간에 속하는 주관적인 시간은 객관적인 현존재 의 시간과 상관없이 정원을 거니는 자에 의해서만 정해진다.

정원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으로서 하나의 모태라고 볼 수 있는데 이 모태 속에 인간의 주관적인 의식을 삽입함으로써 수없이 다채로운 공간을 환기시킨다.

저먼에게 있어 정원 속에 존재하는 시간은 무질서하고 단지 저먼의 의식에 따라서 변화한다. 이런 불규칙한 시간 속에서 저먼은 자신이 가꾸는 정원 공간의 다층적인 차원을 불러일으 키면서 인간 주체의 주관적인 동기를 충분히 부여한 다음 주관 적인 시간 속에 펼쳐낸 정원 공간은 현존재의 부재로 표현해낸 다. 기억 혹은 추억 속에 잠긴 공간의 관점에서 저먼은 봄의 정 원에 퍼지는 꽃향기를 이렇게 말했다.

봄에 피는 모든 꽃들과 정향(丁香) 꽃의 향기는 내 마음속의 특별 한 장소에 있다. (Jarman, 1992:30)

생태적인 시간이 끊임없이 미래를 향해 달려도 저먼의 기억 속의 시간은 자유롭고 무한하다. 이것은 일종의 추억 속의 시 간이라고 볼 수 있다. 봄꽃들이 가득한 정원은 더 이상 하나의 구체화된 공간이 아닌 다른 차원에 있는 회상에 의해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추상적인 공간이 된다. 거기에는 정향꽃의 향기도 아직 남아있고 봄의 산뜻함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다차원의 시간을 통해 정원은 단지 현실적 공간의 존재뿐만 아 니라 시간의 다원성으로 인해 생성되는 내밀한 공간의 존재를 입증한다. 또한 저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원사는 다른 시간 차원에 속하며 거기는 과거와 미래가 없고, 시 작과 끝도 없다. 이것은 출퇴근 시간, 점심시간, 집으로 가는 막차 시간의 틈을 내는 시간이 아니다. 정원에 들어가면 이 시간에 속하 게 되며, 이 시간을 감지하게 되는 순간은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주변에 있는 풍경들이 다 변모했다. 아멘을 말하기 전에 이미 그곳 에 아멘이 있다. (Jarman, 1992:30)

저먼은 정원사에게 있어서 존재하는 정원 시간의 특수성을 강조하였다. 정원에 들어가게 되면 다른 시간의 차원이 존재하 며 이 시간에 처하게 되면 신도처럼 성결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고 보았다. 또한 이런 시간은 출퇴근 시간, 점심 먹는 시간 등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일상 속에 순환된 시간과 구별되며, 정원 에 속하는 시간은 양화된 일상의 규칙적인 시간 안에서 분리되 는 시간이며, 정원 공간에만 속해 있다는 것을 부각시켰다. 한 편, 정원 안에 속한 시간은 일상의 사사로운 질서들이 존재하 는 시간과 달리 독특한 차원에 위치한다고 말해준다.

이것은 정원 공간의 내밀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내밀성은 인간의 주체의식이 정해진 다양한 시간의 차원에 따라 다양해 진다. 만질 수 있는 물질세계에 존재하는 객관적인 정원은 정 원사의 주관적인 시간에 따라 계속적으로 변모하며 새로운 공 간의 의미나 차원을 부각시킨다. 그러므로 정원 시간의 다차원 에서 생겨나는 정원사의 의식변화로 인해 정원 공간의 내포는 풍부해지는 것이다. 이런 다원적인 내포로 정원의 물리적인 공 간은 다층적인 부재의 공간을 연출해낸다.

여기에서 정원은 저먼의 내면세계의 빛을 굴절시키는 거울 과 같은 존재로서 매우 중요한 공간이 된다. 정원 공간은 이제 자신 특유한 존재방식으로 하나의 매개체로 간주할 수 있는 한 인간과 세상이 서로 소통할 수 있게끔 한다. 이런 시각으로 보 면 정원 공간은 인간 주체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시간에 따라 인간의 내면과 실재의 존재인 외부세계와의 유대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정원은 주관적인 시간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영적(靈 的)인 공간이며 거기에서 시공간의 질서를 재편하게 되고 인간 의 의식에 따라 감정으로 체험된 공간이 된다.

혼자 정원에 있는 소중한 시간에 내가 눈을 뻔히 내 정원의 성장을 쳐다보고, 어떤 은연중에 감화되는 변화가 내 친구 같은 정원에서 발생하고 있다. 여기에서 내 꿈의 꽃잎이 피고 지고, 어떨 때 장미 의 잎이 갑자기 다 떨어지고 온 길에 깔려있었거나, 아니면 튤립은 하나의 꽃잎이 떨어져서 그의 완벽한 아름다움을 영원히 파멸했 다. (Jarman, 1992:18)

이 기술은 저먼이 자신의 정원에 처해 있을 때 미래 시간에 속한 먼 미래에 있는 정원의 공간 양상을 추상하는 것이다.

여기에 있는 시간은 저먼의 의지에 따라 미래에 속하는 것이 고, 미래의 정원은 꽃이 지고, 아름다운 경관이 사라지는 모습 이 머릿속에서 연출되는 것은 저먼에게 슬픔의 감정을 불러 일으키게 하며, 현재의 정원 공간은 저먼 개인의 감정과 미래 에서 가져오는 시간에 따라 다른 놀랍고 애처로운 공간으로 변모하였다. 따라서 정원에 속하는 시간은 정원사 혹은 정원 을 거니는 사람에 따라 변하면서 또한 감정적인 공간이 되는 것이다. 정원의 미래 시간에 대한 또 하나의 서술을 찾을 수 있다.

“들장미는 던지니스의 식물이에요. 세상이 멈추고 그리고 인류가

없어진다면, 들장미를 옮겨 심은 게 나인지 아니면 새인지 누가 말

할 수 있을까요?” (Jarman, 1995:28)

(12)

이것은 저먼이 처음에 정원을 가꿀 때 들장미를 자기 집의 마당에 옮겨 심으려고 한 것에 대해 캔터베리의 생태학 청교도 로부터 안 좋은 소리를 들었을 때에 대한 내용이다. 묘목을 옮 겨 심는 일이 피해를 줄 수 있다고 했는데, 저먼은 위에 인용된 말로 대답했다. 인류가 없어진다는 가정 하에서는 새들도 정원 사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원사 생명의 유한함을 인정하면서 정원사가 없더 라도 다른 정원사가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정원은 정원사의 유한한 생존 기간보다 더 오래 지속될 존재란 것을 설파한다.

현재의 정원에 잠겨 있는 많은 미래의 정원 양상 속에서 저먼 은 자신의 주관 의식 속의 시간으로 말하고 있다.

과거든 미래든 현재든 정원은 인간의 주관의식에 따라 공간 의 다차원적인 변화들을 연출시킨다. 이것은 정원 공간의 다층 적인 구조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정원이라는 공간 속에서 인간 의 주관적인 정서와 의식이 주도가 된다는 사실을 밝혔다. 정 원은 이제 물리적이고 객관적인 무생명의 공간을 넘어서 인간 의 감정이 충만한 하나의 감성 공간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Ⅳ. 결론

본고는 정원 공간에 내재된 시간의 다원성에 대해 역대 시공 간이론을 다루면서 정원 공간에 적합한 새로운 시공간 이론 구 축을 시도하였다. 구축된 이론을 바탕으로 문헌 분석을 통해 데릭 저먼의 정원을 대상으로 정원 공간의 객관적인 시간과 주 관적인 시간, 이 두 가지에 초점을 두어 정원 공간의 내밀성을 분석하였다.

정원 공간에 속하는 시간을 객관적인 시간과 주관적인 시간 으로 구분하였고, 객관적인 시간은 생태적인 시간, 즉 지속성을 갖는 양화된 시간을 말하는 것이고, 주관적인 시간은 인간 주체 의 의식에 따라 과거이거나, 미래이거나, 현재의 시간을 가리킨 다. 또한 인간 주체의 감각에 의해 감정화된 시간도 포함한다.

우선 객관적인 시간의 관점에서 저먼의 정원 공간에 대해 해 석하였다. 생태적인 시간 안에서 정원의 현재 공간 속에 저먼 개인의 감정에 따라 정원은 하나의 감성 공간이 변모하면서 공 간의 다층적인 속성을 보인다. 따라서 객관적인 시간 속에서 존재하는 정원은 또한 인간주체 즉, 저먼의 감각에 따라 정해 진다.

다음으로 주관적인 시간의 관점에서 저먼의 정원 공간을 고 찰하였다. 저먼의 추억 속에 잠긴 정원 공간과 미래의 허상 속 에서 연출되는 정원 공간은 저먼의 상상이나 자각(自覺)에 따 라 풍부한 의미를 내포한 공간으로 형성된다. 그러므로 주관적 인 시간 속에서 정원 공간은 저먼의 의식에 따라 변모한다.

이상 연구를 통해 시간이 객관적인가 주관적인가의 여부에 관계없이 정원 공간은 물리적인 공간의 존재를 넘어서 인간주

체의 의식이나 감정에 따라 무한한 공간을 연출할 수 있다는 내밀성을 말해준다. 이런 정원공간의 특수성을 해명함으로써 인간과 정원은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정신적인 교감을 일으켜 인간이란 존재의 주체의식과 감각체험을 극대화 시키고, 정원 은 인간에 의해 그의 내재된 특성과 가치, 즉 정원공간의 내밀 성이 밝혀졌다.

정원공간의 내밀성을 연구하는 것은 정원은 인간에게 왜 중 요한지, 또한 왜 필요로 하는지를 명시하는 하나의 시사점을 제공한다. 저먼의 정원공간은 그가 정원사로서의 삶을 기록하 고 그의 열망과 그가 당시 동성애를 괄시하는 영국사회와의 반 항정신을 내포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원은 저먼의 내적인 삶의 증거물이자 당시 영국의 사회문화를 반영하는 거울인 것을 인 식할 수 있다. 저먼의 정원에는 개인적인 감수나 의식이 흐르 고 퍼지고 있으며 순수감성의 공간으로 인간주체성의 역할을 긍정해준다.

다시 말하면 정원공간은 다른 열린 공간과 달리 인간 자체의 사적인 감수성이 더욱 많이 주입되어 정원의 물리적인 공간과 용합되면서 독특한 정원공간의 내밀성을 형성하였다. 때문에 정원공간은 하나의 감성 공간이며 개개인의 특수한 기질이나 성격, 감수에 따라 정원공간의 내밀성이 계속 변하게 되고 새 롭게 재편되기도 한다. 따라서 정원공간은 인간으로서의 자발 적인 능동성과 주체성, 즉 인간의 자유 의식이나 감정이 제한 없이 최대한 수용되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존의 정원 연구방법과 다른 시도를 통해 본고는 ‘정원과 정원사의 관계’에 주목해서 정원 공간의 독특성을 제시하여 보 았다. 최근 정원문화가 다시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으면서 우리 시대 문화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되고 있다. 이런 문화적 흐름에 부합하는 하나의 시사점을 찾기 위해 ‘데릭 저먼의 정원’이라는 정원공간을 살핌으로써 정원 공간에 깊이 내포된 인간의 주관 성으로 인해 생겨난 일련의 부재 공간들을 해석하였다.

본 연구는 시공간의 이론적인 층면을 중심으로 다루었고, 하 나의 작은 정원에 착안하여 구축된 정원 공간의 시공간 이론에 대해 검증하는 작업을 하였다. 그러나 단지 하나의 정원에만 한정되어 있는 것이 한계라 할 수 있다. 때문에 본 연구의 후속 으로 설문조사나 심층인터뷰를 통해 현재 도시 속에 배치된 정 원 혹은 정원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녹지공간이나 작은 마 당에 대해 도시민들의 생각과 감수들이 어떻게 전개되어 있는 지 본고에서 제기한 정원의 시공간 이론의 원리에 적합한지를 더욱더 검증해야 한다.

본고를 비롯하여 본 연구와 유사한 일련의 연구들은 도시에 서 정원이 도시민에게 있어 가지는 소중한 가치를 명시해준다.

또한 도시설계에 있어서도 작은 정원공간은 거대한 도시의 오

밀조밀한 주거단지와 상업단지 간에 인간의 감수성을 발현할

수 있는 인간성 있는 공간을 조성하는 데 하나의 실마리를 제

수치

Figure 1. Prospect cottage 2) Source: Drawn by author
Figure 3. Jarman as a gardener working in his garden Source: Film "The Garden"
Figure 4. Looking at the plants Source: Derek Jarman's Garden, p.8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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